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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오목의 기원
 
;오목의 기원
오목이 처음 시작된 곳은 중국의 황하유역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며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목에 관한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BC 2세기경 후한시대의 역사가 반고가 저술한 한서(漢書)라는 역사서이며 같은 시기인 기원전 270년 경 오목은 중국에서 일본의 야요이(彌生)문화로 전래되었으며 이후 오랜 세월동안 발전하며 현대오목으로 이어졌다. 현재 일본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목서적인 『오석정적집(五石定蹟集, 1856)』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목은 동북아시아지역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그리스, 콜롬비아 등지에서도 이에 관한 사료가 발굴됨에 따라 어느 한 곳에서 유래되었다기보다는 세계 여러 곳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목이 바둑의 여기(餘技)로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초창기의 오목은 매우 단순하고 단조로운 형태의 놀이였기 때문에 오히려 바둑보다 앞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한국에서도 독자적으로 오목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직접적인 역사적 자료나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ref name="오목의 역사">멋진드림, 〈[http://blog.daum.net/drimplus/7637508 (스크랩) 오목의 역사(歷史) ]〉, 《다음블로그》, 2009-01-1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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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 처음 시작된 곳은 중국의 황하유역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며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목에 관한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BC 2세기경 후한시대의 역사가 반고가 저술한 한서(漢書)라는 역사서이며 같은 시기인 기원전 270년 경 오목은 중국에서 일본의 야요이(彌生)문화로 전래되었으며 이후 오랜 세월동안 발전하며 현대오목으로 이어졌다. 현재 일본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목서적인『오석정적집(五石定蹟集, 1856)』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목은 동북아시아지역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그리스, 콜롬비아 등지에서도 이에 관한 사료가 발굴됨에 따라 어느 한 곳에서 유래되었다기보다는 세계 여러 곳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목이 바둑의 여기(餘技)로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초창기의 오목은 매우 단순하고 단조로운 형태의 놀이였기 때문에 오히려 바둑보다 앞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독자적으로 오목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직접적인 역사적 자료나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ref name="오목의 역사">멋진드림, 〈[http://blog.daum.net/drimplus/7637508 (스크랩) 오목의 역사(歷史) ]〉, 《다음블로그》, 2009-01-14</ref>
  
 
;고모쿠와 렌주
 
;고모쿠와 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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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주룰의 정립
 
;렌주룰의 정립
“렌주(RENJU)"라는 표기는 1899년 중국계 문학가 고바야시 덴리(Tenry Kobayashi)에 의해서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에는 연주(聯珠 : 구슬을 잇다)라고 불렀으며, 훗날 연주(連珠 : 구슬 연결하다)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19세기 중엽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거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국제적ㆍ진보적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일치감치 서구의 선진문물을 도입하고 스스로를 개혁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는 대국의 승패보다는 대국자체를 즐길 줄 아는 문화가 이미 조성되어 있었고, 그들 역시 승부에 초월적인 태도를 지향함으로써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더욱 재미있고 공정한 방식으로 대국을 두길 원했고, 그러한 욕망은 결국 렌주룰의 정립이라는 형식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오목에서 흑(黑)에 대한 제약은 오목이 단순한 놀이에서 논리적인 두뇌스포츠로 전환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였다. 이것은 먼저 시작하는 흑이 매우 유리해서 항상 공정하지 못한 대국을 해야만 하는 이유 때문이다. 1906년 도쿄렌주협회의 선수들은 최초로 흑에게 제약을 가하는 규칙의 적용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가로ㆍ세로 19줄이었던 오목판이 15줄로 바뀌게 되었고 흑의 세 번째 수에 제약을 주자는 의견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으로도 많이 부족함을 느꼈고, 흑이 3-3ㆍ4-4ㆍ장목 등을 금수(琴手)로 정하여 둘 수 없게 하였다.  대부분의 오목마니아들은 금수개념이 오픈개념보다 먼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만, 실제로는 오픈개념이 먼저 개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36년 마침내 현재의 국제규칙과 대동소이한 렌주룰을 일본렌주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오목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ref name="오목의 역사"></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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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주(RENJU)"라는 표기는 1899년 중국계 문학가 고바야시 덴리(Tenry Kobayashi)에 의해서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에는 연주(聯珠 : 구슬을 잇다)라고 불렀으며, 훗날 연주(連珠 : 구슬 연결하다)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19세기 중엽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거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국제적ㆍ진보적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일치감치 서구의 선진문물을 도입하고 스스로를 개혁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는 대국의 승패보다는 대국자체를 즐길 줄 아는 문화가 이미 조성되어 있었고, 그들 역시 승부에 초월적인 태도를 지향함으로써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더욱 재미있고 공정한 방식으로 대국을 두길 원했고, 그러한 욕망은 결국 렌주룰의 정립이라는 형식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오목에서 흑(黑)에 대한 제약은 오목이 단순한 놀이에서 논리적인 두뇌스포츠로 전환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였다. 이것은 먼저 시작하는 흑이 매우 유리해서 항상 공정하지 못한 대국을 해야만 하는 이유 때문이다. 1906년 도쿄렌주협회의 선수들은 최초로 흑에게 제약을 가하는 규칙의 적용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가로ㆍ세로 19줄이었던 오목판이 15줄로 바뀌게 되었고 흑의 세 번째 수에 제약을 주자는 의견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으로도 많이 부족함을 느꼈고, 흑이 3-3ㆍ4-4ㆍ장목 등을 금수(琴手)로 정하여 둘 수 없게 하였다.  대부분의 오목마니아들은 금수개념이 오픈개념보다 먼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만, 실제로는 오픈개념이 먼저 개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36년 마침내 현재의 국제규칙과 대동소이한 렌주룰을 일본렌주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오목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ref name="오목의 역사"></ref>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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