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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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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볼
 
;코볼
그녀는 프로그램이 기계 코드보다는 영어에 가까운 언어로 작성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코볼 언어의 작업을 주도했다. 코볼은 저작권이 없어서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이용할 수 있어 성공적이었다. 코볼의 확산은 비즈니스 코딩의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다.<ref name="위키피디아"> Grace Hopper Wikipedia - https://simple.wikipedia.org/wiki/Grace_Hopper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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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는 컴퓨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기업 고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일상 언어, 즉 영어로 된 지시문과 명령어를 사용한 상위 언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호퍼와 연구진은 1953년 A-Z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A-Z 시스템은 고객에게 소스 코드를 보내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한 최초의 무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패키지 중 하나이다. 이후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연구를 계속해 플로우 매틱을 개발했다. 플로우 매틱은 영어 명령을 이용한 최초의 데이터 처리 언어이다. 자동 청구 기능,자동 급여 계산 등 기업의 업무를 더욱 쉽게 프로그래밍할 있도록 개발된 플로우 매틱은 긴 문자 이름을 지원하고 적은 수지만 영어 명령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 보면 기능도 제한적이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1959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컴퓨팅 전문가와 학자들이 모여 '콘퍼런스 온 데이터 시스템즈 랭귀지즈'(Conference on Data Systems Languages)를 개최했고 호퍼도 여기에 참석했다. 이 회의의 목적은 기업 사용자를 위한 통일된 상위 컴퓨터 언어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오랜 논의를 걸쳐 이들이 제시한 것이 바로 코볼이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채택한 표준문서와 배포한 최초의 언어인 코볼-60은 모두 여러 언어를 바탕으로 했지만 각종 연산과 기능은 플로우 매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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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코볼은 수차례에 걸쳐 개정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2009년 탄생 50주년이 지난 이후에도 일부 분야와 업무에는 코볼이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2013년 영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마이크로 포커스(Micro Focus)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비즈니스 시스템 중 90% 이상을 코볼이 지원하며, 현금자동입출금기 대부분이 코볼로 작성되었고, 일부 교통관리, 병원 정보시스템, 항만물동 제어시스템 등의 핵심 소프트웨어를 코볼이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매년 약 50억 개의 라인에 해당하는 새로운 코볼 코드가 개발되는 등 코볼은 여전히 컴퓨터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f name="엘지">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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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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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말 호퍼는 하버드를 떠난 후, 1949년 에커트-모칠리에 취직했다. 이 회사는 연구실과 군대에서만 사용되던 컴퓨터를 기업에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에니악]](ENIAC) 개발자들이 만든 회사였다. 이곳에서 호퍼는 유니박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고, 프로그래머를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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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는 자신이 이전에 컴퓨터용으로 개발한 모든 서브루틴을 모아 자기테이프에 저장했다. 그리고 서브루틴마다 호출 번호를 붙여 컴퓨터가 테이프에 있는 서브루틴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이 방법은 기호로 작성된 수학코드를 기계언어로 변환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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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박용 A-0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술이 됐다. A-0 소프트웨어는 호퍼가 1952년 컴퓨터 분야에 처음 소개했던 컴파일러(원시언어로 된 프로그램을 목적언어로 된 프로그램으로 번역하는 프로그램)의 개념을 구현한 최초의 컴파일러였다.<ref name="엘지"> </ref>
 
;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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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군에서 근무하던 1945년 여름, [[마크II]]가 계속해서 오작동을 일으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컴퓨터를 조사했다. 컴퓨터에는 죽은 나방이 끼어 있었다. 호퍼는 잡은 나방을 마크 II 일지에 붙이고 '버그가 발견된 첫 번째 실제 사례'라고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호퍼의 연구진은 컴퓨터를 '디버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달리 디버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호퍼가 아니다. 1878년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자신의 기계 및 전기발명품  
 
그녀는 군에서 근무하던 1945년 여름, [[마크II]]가 계속해서 오작동을 일으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컴퓨터를 조사했다. 컴퓨터에는 죽은 나방이 끼어 있었다. 호퍼는 잡은 나방을 마크 II 일지에 붙이고 '버그가 발견된 첫 번째 실제 사례'라고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호퍼의 연구진은 컴퓨터를 '디버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달리 디버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호퍼가 아니다. 1878년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자신의 기계 및 전기발명품  
을 설명한 한 편지에서 "이게 정지하면서 흔히 사소한 결함과 문제점을 의미하는 버그(Bugs) 가 드러난다..."고 말한 바 있다. 엔지니어와 기계공 사이에서 버그는 흔히 사용되는 용어였고, 1934년판 웹스터영어사전(Webster's New Internationall Dictionary)에도 등재되어 있다.하지만 이 용어를 컴퓨터 분야에서, 특히 프로그램 오류를 설명하는 용어로 대중화시킨 것 은 호퍼와 그녀의 팀이다.<ref> Clive Gifford, 〈[https://blog.lgcns.com/1021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엘지씨엔에스》, 2016-02-01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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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설명한 한 편지에서 "이게 정지하면서 흔히 사소한 결함과 문제점을 의미하는 버그(Bugs) 가 드러난다..."고 말한 바 있다. 엔지니어와 기계공 사이에서 버그는 흔히 사용되는 용어였고, 1934년판 웹스터 영어사전(Webster's New Internationall Dictionary)에도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용어를 컴퓨터 분야에서, 특히 프로그램 오류를 설명하는 용어로 대중화시킨 것은 호퍼와 그녀의 팀이다.<ref name="엘지"> Clive Gifford, 〈[https://blog.lgcns.com/1021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엘지씨엔에스》, 2016-02-01 </ref>
  
 
==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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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있으면 배는 안전하다. 그런데 배는 그럴려고 만든 게 아니다."(A ship in port is safe, but that'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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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있으면 배는 안전하다. 그런데 배는 그럴려고 만든 게 아니다." (A ship in port is safe, but that'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좋은 발상이 생각났으면 일단 저질러야 한다. 허락 받는 것보다 저질러놓고 사과하는 게 더 쉽다."(If it's a good idea, go ahead and do it. It's much easier to apologize than it is to get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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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발상이 생각났으면 일단 저질러야 한다. 허락 받는 것보다 저질러놓고 사과하는 게 더 쉽다." (If it's a good idea, go ahead and do it. It's much easier to apologize than it is to get permission.)
#"우리말 중 가장 위험한 표현은, '여태껏 이렇게 해왔어'다."(The most dangerous phrase in our language is, WE'VE ALWAYS DONE IT THI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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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중 가장 위험한 표현은, '여태껏 이렇게 해왔어'다." (The most dangerous phrase in our language is, WE'VE ALWAYS DONE IT THI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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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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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호퍼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A%B7%B8%EB%A0%88%EC%9D%B4%EC%8A%A4_%ED%98%B8%ED%8D%BC
 
*그레이스 호퍼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A%B7%B8%EB%A0%88%EC%9D%B4%EC%8A%A4_%ED%98%B8%ED%8D%BC
*Grace Hopper Wikipedia - https://simple.wikipedia.org/wiki/Grace_Hopper 
 
 
*권홍우 기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772856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어메이징’ 그레이스 호퍼]〉, 《서울경제》, 2015-12-09
 
*권홍우 기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772856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어메이징’ 그레이스 호퍼]〉, 《서울경제》,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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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ve Gifford, 〈[https://blog.lgcns.com/1021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엘지씨엔에스》, 2016-02-01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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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4일 (화) 17:21 판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Brewster Murray Hopper 1906년 12월 9일~ 1992년 1월 1일)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국 해군 제독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COBOL)의 개발을 주도하였다.

생애

그레이스 호퍼는 1906년 미국 뉴욕에서 그레이스 브루스터 머레이(Grace Brewster Murra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월터 머레이(Walter Murray)는 미 해군 제독이었으며 외할아버지는 토목기사였다.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호퍼는 수학과 기하학에 관심이 많았다. 1924년, 뉴욕 배서대학교(Vassar College)에 입학하여 수학, 물리학, 공학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1930년에 수학 석사와 1934년에 수리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0년에 빈센트 포스터 호퍼(Vincent Foster Hopper)와 결혼하였고, 남편의 성 "호퍼"로 성을 바꾸었다.

제2차 세계대전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의 많은 여성들은 군에 입대했다. 호퍼도 그 중 한 사람으로 1943년 해군으로 들어갔다. 수학자인 호퍼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바사르 대학의 교수진이었다. 호퍼는 1943년에 미사일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오드넌스 연산 프로젝트에 임명되었다. 해군은 1944년에 최초의 전자 컴퓨터 중 하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프로그래밍을 배운 것도 해군에서였다. 호퍼가 간 해군 연구소에는 컴퓨터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하워드 에이킨(Howard H. Aiken)이 있었다. 하워드 에이킨은 최초의 프로그램 방식 디지털 컴퓨터, 마크 I을 만든 사람이다. 에이킨은 호퍼에게 탄젠트 보간법의 계수를 찾는 일을 맡겼다. 호퍼는 이 과정 속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40대가 넘어 배운 프로그래밍이지만 누구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미 해군 최초의 여성 제독이다. 그녀는 컴퓨터를 이용해 해군의 함정 탄도 측정 계산기를 만들어 혁신적인 초탄명중률을 기록하는 등의 공로를 세웠다.

전쟁 후

전쟁이 끝나고 제대 후 1949년 에커트-모칠리 컴퓨터 회사(Eckert–Mauchly Computer Corporation)에 취직하였다. 에커트-모칠리는 곧 1950년에 레밍턴 랜드 회사(Remington Rand Corporation)에 매각되었고, 레밍턴 랜드는 1955년에 스페리 회사(Sperry Corporation)와 합병하였다. 이후 스페리 회사는 1986년에 유니시스로 합병되었다. 스페리 회사에서 호퍼는 실수가 잦을 수 밖에 없는 코드 작업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호퍼는 연구진들과 이러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로 세계 최초의 컴파일러인 A-0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1954년에는 미분 해석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미분해석기는 한 사람이 6개월간 매달린 복잡한 함수를 18분만에 해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57년 B-0 개발에 성공했다. B-0의 정식 이름은 플로우 매틱스(Flow-Matics)로, 유니백에서 구현했다. 이 프로그램은 최초의 영어 데이터 처리 컴파일러다. 그전까지 숫자만 사용 가능했던 컴퓨터 언어를 넘어 단어를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가 개발된 것이다. 그 후 IBM과 허니웰에서도 차례로 비슷한 컴파일러를 발표했다. 상용언어 표준이 여러가지가 되어 업계에 혼란이 올 것을 대비해 중립적 위치에 있는 대학에서 코볼을 출범시키는 모임이 열렸다. 비록 코볼이 최종적인 형태로 나온 것은 호퍼가 속해 있지 않은 위원회였지만 위원들은 호퍼의 플로우 매틱스가 자신들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1]

말년

1966년 60세에 소령으로 만기 전역한 뒤에도 미 해군은 주요 과제가 있을 때마다 호퍼를 소집해 ‘3번 입대·3번 전역’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1986년 80세를 맞아 현역을 떠날 때 최종 계급은 준장이었다. 호퍼의 준장 진급은 신고식(1983)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참석했을 만큼 국민적 관심사였다. 호퍼는 사망했어도 그의 이름은 거리와 기념관, 상과 메달에 녹아 있다. 미 해군이 자랑하는 고고도 미사일 요격용 SM-3 미사일을 실험했던 함정인 이지스 구축함 DDG-70의 함명도 ‘호퍼’다. 미국인들은 그를 여전히 ‘어메이징 그레이스(경배할만한 그레이스)’라는 애칭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1992년에 사망하였다.[2]

경력

학력
  • 1924년: 뉴욕 배서 대학교 입학
  • 1930년: 예일대학교 수학 석사
  • 1934년: 예일대학교 수리물리학 박사 학위

주요 활동

코볼

호퍼는 컴퓨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기업 고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일상 언어, 즉 영어로 된 지시문과 명령어를 사용한 상위 언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호퍼와 연구진은 1953년 A-Z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A-Z 시스템은 고객에게 소스 코드를 보내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한 최초의 무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패키지 중 하나이다. 이후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연구를 계속해 플로우 매틱을 개발했다. 플로우 매틱은 영어 명령을 이용한 최초의 데이터 처리 언어이다. 자동 청구 기능,자동 급여 계산 등 기업의 업무를 더욱 쉽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개발된 플로우 매틱은 긴 문자 이름을 지원하고 적은 수지만 영어 명령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 보면 기능도 제한적이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1959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컴퓨팅 전문가와 학자들이 모여 '콘퍼런스 온 데이터 시스템즈 랭귀지즈'(Conference on Data Systems Languages)를 개최했고 호퍼도 여기에 참석했다. 이 회의의 목적은 기업 사용자를 위한 통일된 상위 컴퓨터 언어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오랜 논의를 걸쳐 이들이 제시한 것이 바로 코볼이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채택한 표준문서와 배포한 최초의 언어인 코볼-60은 모두 여러 언어를 바탕으로 했지만 각종 연산과 기능은 플로우 매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후 코볼은 수차례에 걸쳐 개정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2009년 탄생 50주년이 지난 이후에도 일부 분야와 업무에는 코볼이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2013년 영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마이크로 포커스(Micro Focus)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비즈니스 시스템 중 90% 이상을 코볼이 지원하며, 현금자동입출금기 대부분이 코볼로 작성되었고, 일부 교통관리, 병원 정보시스템, 항만물동 제어시스템 등의 핵심 소프트웨어를 코볼이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매년 약 50억 개의 라인에 해당하는 새로운 코볼 코드가 개발되는 등 코볼은 여전히 컴퓨터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3]

컴파일러

1940년대 말 호퍼는 하버드를 떠난 후, 1949년 에커트-모칠리에 취직했다. 이 회사는 연구실과 군대에서만 사용되던 컴퓨터를 기업에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에니악(ENIAC) 개발자들이 만든 회사였다. 이곳에서 호퍼는 유니박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고, 프로그래머를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개발했다. 호퍼는 자신이 이전에 컴퓨터용으로 개발한 모든 서브루틴을 모아 자기테이프에 저장했다. 그리고 서브루틴마다 호출 번호를 붙여 컴퓨터가 테이프에 있는 서브루틴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이 방법은 기호로 작성된 수학코드를 기계언어로 변환해 주는 유니박용 A-0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술이 됐다. A-0 소프트웨어는 호퍼가 1952년 컴퓨터 분야에 처음 소개했던 컴파일러(원시언어로 된 프로그램을 목적언어로 된 프로그램으로 번역하는 프로그램)의 개념을 구현한 최초의 컴파일러였다.[3]

버그

그녀는 군에서 근무하던 1945년 여름, 마크II가 계속해서 오작동을 일으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컴퓨터를 조사했다. 컴퓨터에는 죽은 나방이 끼어 있었다. 호퍼는 잡은 나방을 마크 II 일지에 붙이고 '버그가 발견된 첫 번째 실제 사례'라고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호퍼의 연구진은 컴퓨터를 '디버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달리 디버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호퍼가 아니다. 1878년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자신의 기계 및 전기발명품 을 설명한 한 편지에서 "이게 정지하면서 흔히 사소한 결함과 문제점을 의미하는 버그(Bugs) 가 드러난다..."고 말한 바 있다. 엔지니어와 기계공 사이에서 버그는 흔히 사용되는 용어였고, 1934년판 웹스터 영어사전(Webster's New Internationall Dictionary)에도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용어를 컴퓨터 분야에서, 특히 프로그램 오류를 설명하는 용어로 대중화시킨 것은 호퍼와 그녀의 팀이다.[3]

어록

  1. "항구에 있으면 배는 안전하다. 그런데 배는 그럴려고 만든 게 아니다." (A ship in port is safe, but that'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2. "좋은 발상이 생각났으면 일단 저질러야 한다. 허락 받는 것보다 저질러놓고 사과하는 게 더 쉽다." (If it's a good idea, go ahead and do it. It's much easier to apologize than it is to get permission.)
  3. "우리말 중 가장 위험한 표현은, '여태껏 이렇게 해왔어'다." (The most dangerous phrase in our language is, WE'VE ALWAYS DONE IT THIS WAY'.)

각주

  1. 그레이스 호퍼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A%B7%B8%EB%A0%88%EC%9D%B4%EC%8A%A4_%ED%98%B8%ED%8D%BC
  2. 권홍우 기자,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어메이징’ 그레이스 호퍼]〉, 《서울경제》, 2015-12-09
  3. 3.0 3.1 3.2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EC.97.98.EC.A7.80"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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