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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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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
코볼(COBOL)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Brewster Murray Hopper 1906년 12월 9일~ 1992년 1월 1일)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국 해군 제독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COBOL)의 개발을 주도하였다.

생애[편집]

그레이스 브루스터 머레이(Grace Brewster Murray)는 1906년 뉴욕에서 세 아이들 중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월터 머레이(Walter Murray)는 미 해군 제독이었고, 어머니 메어리 밴 혼(MaryVan Horne)은 수학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그런 면을 그레이스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레이스의 부모는 두 딸들도 아들처럼 똑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는 어릴 때부터 기계에 무척 관심이 많았는데, 한번은 그녀가 일곱살일 때 자명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려고 해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명종을 제대로 다시 원상태로 조립하지 못하자, 그녀는 집안에 있는 자명종 7개를 어머니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전에 모두 해체해 버렸다고 한다.[1] 1924년, 뉴욕 바사르 대학교(Vassar College)에 입학하여 수학, 물리학, 공학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1930년에 수학 석사와 1934년에 수리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0년에 빈센트 포스터 호퍼(Vincent Foster Hopper)와 결혼하였고, 남편의 성 "호퍼"로 성을 바꾸었다.

제2차 세계대전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의 많은 여성들은 군에 입대했다. 수학자인 호퍼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바사르 대학의 교수진이었다. 호퍼는 진심으로 입대하길 원했으나, 그녀는 36살이라 나이가 우선 많고, 게다가 키는 168cm에 몸무게가 47kg으로 해군의 최저체중 54kg 보다 7kg이나 저체중이어서, 모병국에서는 그녀에게 장래 군인이나 선원을 가르치는 곳에서 그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불합격 시켰다. 그러자 호퍼는 바사대학을 휴직하고 모병국에 다시 와서 그녀를 받아들이도록 그들을 설득해, 마침내 1943년 장교후보생으로 선서하고 입대하여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그녀는 1944년 장교후보생학교를 그 학년에서 일등으로 졸업해 중위로 임관이 된 후, 즉시 하버드 대학교의 병기국 계산팀에 배속되었다.[1] 호퍼는 1943년에 미사일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오드넌스 연산 프로젝트에 임명되었다. 해군은 1944년에 최초의 전자 컴퓨터 중 하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프로그래밍을 배운 것도 해군에서였다. 호퍼가 간 해군 연구소에는 컴퓨터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하워드 에이킨(Howard H. Aiken)이 있었다. 하워드 에이킨은 최초의 프로그램 방식 디지털 컴퓨터, 마크 1(Mark I) 만든 사람이다. 에이킨은 호퍼에게 탄젠트 보간법의 계수를 찾는 일을 맡겼다. 호퍼는 이 과정 속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40대가 넘어 배운 프로그래밍이지만 누구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미 해군 최초의 여성 제독이다. 그녀는 컴퓨터를 이용해 해군의 함정 탄도 측정 계산기를 만들어 혁신적인 초탄명중률을 기록하는 등의 공로를 세웠다.

전쟁 후

전쟁이 끝나고 제대 후 1949년 컴퓨터 회사인 에커트-모칠리(Eckert–Mauchly Computer)에 취직하였다. 에커트-모칠리는 곧 1950년에 레밍턴랜드(Remington Rand) 사에 매각되었고, 레밍턴 랜드는 1955년에 스페리(Sperry) 사와 합병하였다. 이후 스페리 회사는 1986년에 유니시스(Unisys)로 합병되었다. 스페리 회사에서 호퍼는 실수가 잦을 수 밖에 없는 코드 작업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호퍼는 연구진들과 이러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로 세계 최초의 컴파일러인 A-0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1954년에는 미분 해석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미분해석기는 한 사람이 6개월간 매달린 복잡한 함수를 18분만에 해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57년 B-0 개발에 성공했다. B-0의 정식 이름은 플로우 매틱스(Flow-Matics)로, 유니백에서 구현했다. 이 프로그램은 최초의 영어 데이터 처리 컴파일러다. 그전까지 숫자만 사용 가능했던 컴퓨터 언어를 넘어 단어를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가 개발된 것이다. 그 후 IBM과 허니웰에서도 차례로 비슷한 컴파일러를 발표했다. 상용언어 표준이 여러가지가 되어 업계에 혼란이 올 것을 대비해 중립적 위치에 있는 대학에서 코볼을 출범시키는 모임이 열렸다. 비록 코볼이 최종적인 형태로 나온 것은 호퍼가 속해 있지 않은 위원회였지만 위원들은 호퍼의 플로우 매틱스가 자신들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2]

말년

호퍼는 학계 또는 산업계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미국 해군에 비역으로 자문도하고 강사로도 일했다. 호퍼는 1966년말 예비역으로는 20년간밖에 일할 수 없다는 법적 제한 때문에 60세에 중령으로 퇴역한다. 7개월 동안의 퇴역후, 1967년에 다시 해군 자료자동화사령부에 리더로 복귀하여 6개월 동안 일하라고 요청받은 것이 무기한으로 연장되었다. 그녀는 1971년에 또다시 퇴역하였으나, 1972년에 다시 복귀하도록 요청을 받아 일하게 되며 1973년에 대령으로 진급한다. 중요한 과제가 있을 때 마다 그녀는 3번 입대 3번 퇴역이라는 기록을 세우는데, 호퍼는 1985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준장으로 진급하고, 마침내 1986년 해군에서 가장 나이 많은 장교로 80세의 나이에 퇴역하였다. 퇴역 후 호퍼는 85세로 1992년 세상을 뜰때까지 디지털 장비회사에 시니어 컨설턴트로 일한다. 그녀는 1991년 부시대통령으로부터 기술자로서의 최고영예에 해당하는 국가기술훈장을 받았는데, 개인으로는 호퍼가 최초로 받았다. 1992년 8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성대한 해군 의전으로 장례식이 치러지고 알링톤 국립묘지에 묻혔다.[1] 호퍼는 사망했어도 그의 이름은 거리와 기념관, 상과 메달에 녹아 있다. 미 해군이 자랑하는 고고도 미사일 요격용 SM-3 미사일을 실험했던 함정인 이지스 구축함 DDG-70의 함명도 ‘호퍼’다. 미국인들은 그를 여전히 ‘어메이징 그레이스(경배할만한 그레이스)’라는 애칭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1992년에 사망하였다.[3]

경력[편집]

학력
  • 1924년: 뉴욕 배서 대학교 입학
  • 1930년: 예일대학교 수학 석사
  • 1934년: 예일대학교 수리물리학 박사 학위
약력
  • 1941년: 바사대학교 부교수 임용
  • 1943년: 해군 입대
  • 1945년: 해군 제대
  • 1949년: 에커트-모칠리 취직
  • 1950년: 레밍턴 랜드 매각
  • 1955년: 스페리 회사로 합병
  • 1960년: 해군 2차 입대
  • 1966년: 60세에 소령으로 만기 전역
  • 1967년: 해군 프로그래밍 언어 그룹의 책임자로 3차 복귀
  • 1985년: 해군 소장 임명
  • 1986년: 80세 준장으로 퇴역

주요 활동[편집]

코볼[편집]

호퍼는 컴퓨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기업 고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일상 언어, 즉 영어로 된 지시문과 명령어를 사용한 상위 언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호퍼와 연구진은 1953년 A-Z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A-Z 시스템은 고객에게 소스 코드를 보내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한 최초의 무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패키지 중 하나이다. 이후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연구를 계속해 플로우 매틱을 개발했다. 플로우 매틱은 영어 명령을 이용한 최초의 데이터 처리 언어이다. 자동 청구 기능, 자동 급여 계산 등 기업의 업무를 더욱 쉽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개발된 플로우 매틱은 긴 문자 이름을 지원하고 적은 수지만 영어 명령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 보면 기능도 제한적이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1959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컴퓨팅 전문가와 학자들이 모여 '콘퍼런스 온 데이터 시스템즈 랭귀지즈(Conference on Data Systems Languages)'를 개최했고 호퍼도 여기에 참석했다. 이 회의의 목적은 기업 사용자를 위한 통일된 상위 컴퓨터 언어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오랜 논의를 걸쳐 이들이 제시한 것이 바로 코볼이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채택한 표준문서와 배포한 최초의 언어인 코볼-60은 모두 여러 언어를 바탕으로 했지만 각종 연산과 기능은 플로우 매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후 코볼은 수차례에 걸쳐 개정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2009년 탄생 50주년이 지난 이후에도 일부 분야와 업무에는 코볼이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2013년 영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마이크로 포커스(Micro Focus)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비즈니스 시스템 중 90% 이상을 코볼이 지원하며, 현금자동입출금기 대부분이 코볼로 작성되었고, 일부 교통관리, 병원 정보시스템, 항만물동 제어시스템 등의 핵심 소프트웨어를 코볼이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매년 약 50억 개의 라인에 해당하는 새로운 코볼 코드가 개발되는 등 코볼은 여전히 컴퓨터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4]

컴파일러[편집]

1940년대 말 호퍼는 하버드를 떠난 후, 1949년 에커트-모칠리에 취직했다. 이 회사는 연구실과 군대에서만 사용되던 컴퓨터를 기업에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에니악(ENIAC) 개발자들이 만든 회사였다. 이곳에서 호퍼는 유니박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고, 프로그래머를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개발했다. 호퍼는 자신이 이전에 컴퓨터용으로 개발한 모든 서브루틴을 모아 자기테이프에 저장했다. 그리고 서브루틴마다 호출 번호를 붙여 컴퓨터가 테이프에 있는 서브루틴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이 방법은 기호로 작성된 수학코드를 기계언어로 변환해 주는 유니박용 A-0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술이 됐다. A-0 소프트웨어는 호퍼가 1952년 컴퓨터 분야에 처음 소개했던 컴파일러(원시언어로 된 프로그램을 목적언어로 된 프로그램으로 번역하는 프로그램)의 개념을 구현한 최초의 컴파일러였다.[4]

버그[편집]

그녀는 군에서 근무하던 1945년 여름, 마크 2(Mark II)가 계속해서 오작동을 일으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컴퓨터를 조사했다. 컴퓨터에는 죽은 나방이 끼어 있었다. 호퍼는 잡은 나방을 마크 II 일지에 붙이고 '버그가 발견된 첫 번째 실제 사례'라고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호퍼의 연구진은 컴퓨터를 '디버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달리 디버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호퍼가 아니다. 1878년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자신의 기계 및 전기발명품 을 설명한 한 편지에서 "이게 정지하면서 흔히 사소한 결함과 문제점을 의미하는 버그(Bugs) 가 드러난다..."고 말한 바 있다. 엔지니어와 기계공 사이에서 버그는 흔히 사용되는 용어였고, 1934년판 웹스터 영어사전(Webster's New Internationall Dictionary)에도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용어를 컴퓨터 분야에서, 특히 프로그램 오류를 설명하는 용어로 대중화시킨 것은 호퍼와 그녀의 팀이다.[4]

기념[편집]

장소
  • 그레이스 호퍼 애비뉴(Grace Hopper Avenue) :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 위치한 곳으로 해군 함대 수치 기상학 및 해양학 센터, 국립 샌프란시스코만 기상예보 센터가 있는 곳이다.
  •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공원(Grace Murray Hopper Park) :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사우스조이스 스트리트에 위치한 곳으로, 그레이스 호퍼가 살았던 리버하우스 아파트 앞에 있는 작은 기념 공원이다. 현재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 소유이다.
  • 그레이스 호퍼 레인(Grace Hopper Lane) : 조지아주 어거스타에 위치한 곳으로, 네이선 딜 조지아 사이버 혁신 및 트레이닝 센터 외곽에 있는 거리이다.
교육 기관
  • 호퍼 칼리지(Hopper College) : 예일 대학의 기숙형 칼리지 중 하나이다.
  • 그레이스 호퍼 아카데미(Grace Hopper Academy) : 뉴욕의 이머시브 프로그래밍 영리 학교이다. 2016년 1월에 문을 열었으며 소프트웨어 공학 분야에서 여성의 비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축물
  • 그레이스 호퍼 지역 해군 데이터 자동화 센터(Grace M. Hopper Regional Navy Data Automation Center)
  • 그레이스 호퍼 빌딩(Grace Hopper Building) : 샌디에이고주에 위치한 미 해군 비행장 북섬에 있는 1482 빌딩이다. 이 건물에는 해군의 컴퓨터 및 전기통신 담당국과 그레이스 호퍼 박물관이 입주해 있다.
  • 그레이스 호퍼 박물관(Grace Hopper Museum) : 샌디에이고주 그레이스 호퍼 빌딩에 입주해 있는 해군 통신의 역사를 기념하는 박물관이다.
  • 호퍼 홀(Hopper hall) :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최신 사이버 작전 건물로, 처음으로 여성의 이름을 딴 군사관학교 건물이다. 이 소식을 발표한 해군 중장 월터 카터 주니어(Walter E. Carter Jr.)는 그레이스 호퍼를 일컬어 '사이버 바다의 제독'이라고 칭했다.
  • 그레이스 호퍼 빌딩(Grace Hopper Building) :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해군 지원 활동 행정 건물이다.
  • 그레이스 호퍼 추모의 다리(Grace Hopper Memorial Bridge) : 구스 크릭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센터(Grace Murray Hopper Center) : 뉴햄프셔주 울프보로 지역의 학교 브류스터 아카데미가 그레이스 호퍼에게 헌정한 컴퓨터 연구실이다. 이곳은 컴퓨터 시스템 분야에서 뛰어난 졸업생에게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상을 수여한다.[5]

어록[편집]

  1. "항구에 있으면 배는 안전하다. 그런데 배는 그러려고 만든 게 아니다." (A ship in port is safe, but that'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2. "좋은 발상이 생각났으면 일단 저질러야 한다. 허락받는 것보다 저질러 놓고 사과하는 게 더 쉽다." (If it's a good idea, go ahead and do it. It's much easier to apologize than it is to get permission.)
  3. "우리말 중 가장 위험한 표현은, '여태껏 이렇게 해왔어'다." (The most dangerous phrase in our language is, WE'VE ALWAYS DONE IT THIS WAY'.)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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