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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1일 (목) 00:48 판
영주시(榮州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북부 중앙에 있는 시이다. 동쪽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서쪽으로는 예천군, 남쪽으로는 안동시, 북쪽으로는 마구령을 경계로 강원도 영월군, 죽령과 고치령을 경계로 충청북도 단양군과 인접한다. 풍기인삼과 소수서원, 부석사,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유명하다.
개요
- 행정 단위: 대한민국 경상북도 도시
- 면적: 668.89km²
- 인구: 103,119명 (2020년)
- 시청 소재지: 경상북도 영주시 시청로 1 (휴천2동 470)
- 시장: 장욱현(국민의힘)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yeongju.go.kr/open_content/main/index.do
지도
역사
통일신라때 내령군(奈靈郡)으로 개칭하여 상주(尙州)에서 관할하였으며, 선곡현(善谷縣, 현재의 안동시 예안면·도산면 일대)과 옥마현(玉馬縣, 현재의 봉화군 일대) 2개 현을 영현으로 두었다. 고려때 강주(剛州)로 개칭하였다. 이후 1018년에 길주(吉州, 현재의 안동시)에 편입되었다. 1143년에 순안현(順安縣)으로 개칭하여 현령을 두었다가, 1413년에 영천군으로 개칭하였다.
- 1413년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이 되었다.
- 1457년 순흥도호부가 폐지되어 그 일부를 편입되었다.
- 1687년 순흥도호부가 복원되어 편입한 지역 일부를 환원하였다.
- 1895년 안동부(安東府) 영천군이 되었다.
- 1896년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 1906년 임지면을 봉화군에 편입하였다.
- 1914년 4월 1일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화천면, 수식면, 수민단면 제외)을 영주군(榮州郡)으로 통폐합하였다.[1] 세 군의 중심인 '영천'을 그대로 통합 군명으로 채택하지 않고, 같은 경상북도 내의 영천군(永川郡)과 혼동되지 않도록 '영주'로 바꾸었다.
- 1940년 11월 1일 영주면을 영주읍으로 승격하였다.[2]
- 1980년 4월 1일 영주읍을 영주시로 승격하고, 영주군을 영풍군으로 개칭하였다.[3]
- 1995년 1월 1일 영주시 일원과 영풍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영주시가 설치되었다.[4]
- 1998년 10월 15일 상망동과 하망1동을 통합하여 상망동으로, 하망2동과 하망3동을 통합하여 하망동으로, 영주1동과 영주2동, 영주3동을 통합하여 영주1동으로, 영주4동을 영주2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1읍 9면 9동)[5]
- 2008년 10월 16일 문수면 벌사리를 대양리로 개칭하였다.[6]
지리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영주시는 남북이 길고 동서로는 협소하며,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주봉인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연화봉(1,394m)과 죽령을 경계로 하여 도솔봉(1,315m)으로 이어진 소백산 산록 고원부지에 형성되어 있으며 봉황산과 북부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봉화군을 관류하여 문수면 수도리에 이르고,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연화봉과 죽령계곡에서 발원한 남원천과, 국망봉에서 발원한 죽계천이 고현동에서 합류되어 서천을 이루어 시가지를 감돌아 낙동강으로 유입되며, 토질은 대부분이 사질양토로 각종 농산물이 잘 자라며, 특히 북부 산악지대는 사양토이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어 인삼, 사과 등의 생육에 적절한 곳이다.
행정 구역
영주시의 행정 구역은 1읍, 9면, 9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 풍기읍(豊基邑)
- 이산면(伊山面)
- 평은면(平恩面)
- 문수면(文殊面)
- 장수면(長壽面)
- 안정면(安定面)
- 봉현면(鳳峴面)
- 순흥면(順興面)
- 단산면(丹山面)
- 부석면(浮石面)
- 상망동(上望洞)
- 하망동(下望洞)
- 영주1동(榮州1洞)
- 영주2동(榮州2洞)
- 휴천1동(休川1洞)
- 휴천2동(休川2洞)
- 휴천3동(休川3洞)
- 가흥1동(可興1洞)
- 가흥2동(可興2洞)
참고자료
- 〈영주시〉, 《위키백과》
- 〈영풍군 (경상북도)〉, 《위키백과》
같이 보기
- 넘겨주기 틀:한국 행정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