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성남시(城南市)는 대한민국 경기도중앙부에 위치한 시이다. 서울의 위성도시 중 하나로서 서울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26km 거리에 있는 시이다. 광주산맥에 둘러싸여 있으며 탄천을 따라 형성된 분지지형이다.
목차
개요
- 행정 단위: 대한민국 경기도 도시
- 면적: 141.72km²
- 인구: 940,064명 (2020년)
- 시청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대로 997
- 시장: 은수미(더불어민주당)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eongnam.go.kr/main.do?
지도
명칭 유래
성남(城南)이란 이름은 성(남한산성)의 남쪽에 있다는 뜻이다.
역사
삼국시대
서기전 18년 백제 시조 온조왕이 도읍지로 정한 하남위례성의 옛터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지역으로서,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에 남하하여 한산성을 함락하고 북한산군을 설치, 551년 백제성왕이 신라와 연합군을 결성 한산성을 탈환하였고, 553년 신라 진흥왕이 한산성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고, 557(진흥왕18)에 신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568년 (진흥왕29)에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를 설치하였으며 604년(진평왕26)에 남천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가 662년(문무왕 2) 남천주가 설치되고, 664년 한산주로 개칭되고, 767(경덕왕16)에 시행된 한화정책에 따라 한주로 개명되었다.
고려시대
신라말까지 "한주"라고 불리어오던 "성남지역"이 속한 주군의 명칭을 940년 (태조23)에 "광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고, 983년(성종2)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광주목으로 되었음. 995년(성종14)에 12목제 대신 12주절도사제와 10도제를 병행 실시하여 관내도에 예속되어 봉국군 절도사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9)에는 양광도에 예속되고 절도사제를 폐지하여 안무사를 설치하였고 1310(충선왕2)에 전국 주군의 읍호를 고칠때 지주사로 강등되어 8목에서 제외되었다가, 1356(공민왕5)에 다시 광주목으로 복귀되었다.
조선시대
조선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명종 14년(1559년)에 목사가 파견되었고 1577년 (조선 선조 10년) 광주부(廣州府)로 승격하고 경안, 오포, 도척, 실촌, 초월, 퇴촌, 초부, 동부, 서부, 구천, 중대, 세촌, 돌마, 낙생, 대왕, 언주, 왕륜, 일용, 월곡, 북방, 송동, 성곶, 의곡면(儀谷面) (도합 23개면)을 관할하였다. 즉 이때 광주부가 승격되면서 광주군의 면이 생긴 것이다. 이후 1626년(인조 4년) 남한산성이 축성되었다.
1789년(정조 13년)에 일용면과 송동면이 수원군으로 편입되었다.
1530년 이전에 광주목은 여주목, 이천도호부, 양근군, 지평현, 음죽현, 양지현, 죽산현, 과주현을 관할하였다. 행정 관리는 목사 1인(종 3품), 판관(判官) 1인(종 5품), 교수(敎授) 1인(종 6품)을 두었다.
1883년 4월 23일(음력 3월 17일) 박영효는 광주부(廣州府) 유수로 발령을 받았다.
대한제국
1906년(대한제국 고종 44년) 군(郡)이 되어 군청을 중부면 산성리에 설치하고 북방면, 성곶면, 월곡면을 안산군에, 초부면을 양주군에 편입하였다.
일제강점기
- 1911년 8월 29일 상적리에 대왕면사무소를 개설하고 돌마면은 1911년 말 정자리에 면사무소를 개설하였다.
- 1914년 4월 1일 광주군 군내면 소속의 7개리 (산성, 검복, 불당, 오전, 광지원, 용미, 상산곡리) 와 세촌면 소속의 7개리 중 6개리 (단대, 상대원, 수진, 복정, 창곡, 탄리)를 관할로 하여 중부면이 신설되었으며, 세촌면 1개리(하대원리)는 돌마면에 편입되었음. 이로써 경안면, 중부면, 동부면, 서부면, 오포면, 초월면, 실촌면, 도척면, 퇴촌면, 남종면, 낙생면, 돌마면, 대왕면, 언주면, 구천면, 중대면의 16면으로 개편하고 중부면 산성리에 군사무소를 배치하였다. 이때, 의곡면, 왕륜면을 합하여 "의왕면"(儀旺面)이라 하고 수원군에 편입되고, 양평군 남종면은 광주군으로 편입되었다.
- 1914년 9월 4일 경기도고시 제46호로 도내 각 면의 사무소 위치를 고시하였는데 언주면사무소 소재지는 염곡동, 대왕면은 괴하동이었으며 신동면은 우면리였다.
- 1915년 동리 폐합과 함께 일부 군·면계가 조정되었으며, 특히 한강 이북에 있던 동부면 팔당리가 양주군 와부면에 편입되었다.
- 1917년 12월 군청 소재지를 경안면 경안리로 이전
- 1938년 1월 1일 경안면을 광주면으로 개칭하였다.
- 1939년 군청 소재지를 광주면 송정리로 이전
대한민국
- 1946년 중부면 성남출장소 설치: 중부면은 면 중앙에 남한산성의 준령이 있어 그 서남기슭에 취락이 형성된 지역적 여건으로, 1946년 3월 3일 종전의 세촌면 관할구역 6개리(단대, 탄, 수진, 상대원, 복 정, 창곡리 27.43km2)를 관할하는 중부면 성남출장소를 설치하여 탄리 275번지에 개소하였다가 1948년 수진리로 옮겨 사무를 보게 되었다.
- 1963년 1월 1일 구천면 등이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다.
- 1964년 2월 24일: 광주군 조례 제68호에 의거 중부면 성남출장소가 "광주군 직할 성남출장소"로 승격되어 수진리 145번지에 성남출장소 건물을 신축 개소하여, 인구 및 행정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광주군수 직할 지휘 감독 체제로 전환하였다.
- 1973년 7월 1일 광주군 대왕면·낙생면·돌마면 일원과 중부면 중 단대리·상대원리·탄리·수진리·복정리·창곡리를 관할로 성남시가 설치되었다.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라 1980년대 들어 성남시는 인구 기준 전국 10위 도시로 부상하였다. 따라서 비약적으로 증대하는 행정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성남시 조례 제858호(1988. 6. 3 공포)에 따라 1988년 7월 1일 기존의 돌마출장소, 대왕출장소, 낙생출장소를 폐지하고, 성남시 수정출장소 및 중원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89년 5월 1일에는 성남시 조례 제931호에 따라 수정 출장소, 중원 출장소 2개 출장소를 각각 수정구, 중원구로 승격하였다.
- 1989년 4월 27일 성남시 남쪽 지역의 소위 '남단녹지'를 중심으로 한 540여만 평 규모의 분당 지역 일대에 10만 6천 호의 주택을 건설하여, 42만 인구를 수용하는 분당신도시 건설 계획이 공식 발표·착수되었다. 이에 따라 성남시 조례 제971호 (1989. 6. 20 공포)에 의거 1989년 6월 1일 분당 지구 개발 지원 사업소를 설치 운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증해 1991년 9월 17일 중원구에서 분당구가 분구되어 현재의 3구에 이르고 있다.
- 2009년 11월 2일 중원구 여수동으로 시청을 이전하였다.
- 2015년 12월 7일, 위례신도시 건설에 따라 서울특별시 송파구 및 경기도 하남시와 행정 구역 경계를 조정하였다.
지리
동쪽으로 남한산(522m)과 청량산(479m)·검단산(535m)·불곡산(312m)의 긴 산줄기를 경계로 하남시·광주시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청계산(618 m)을 경계로 과천시와 의왕시를 접하며, 북쪽은 서울특별시 송파구·강남구·서초구, 남쪽은 용인시와 접한다. 광주산맥에 둘러싸여 탄천을 따라 남북으로 긴 협곡 분지 지형이며, 1989년 성남시 남부에 건설된 분당신도시 및 2000년대에 건설된 판교신도시는 성남 구시가지와 그린벨트로 생활권이 단절되어 있어 시가지와 생활권이 양분되어 있다.
행정 구역
성남시의 행정 구역은 수정구, 중원구, 분당구로 구성되어 있다.
- 수정구(壽井區)
- 중원구(中院區)
- 분당구(盆唐區)
참고자료
같이 보기
- 넘겨주기 틀:한국 행정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