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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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219.87.92 (토론)님의 2025년 1월 12일 (일) 20:37 판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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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서울시립대입구)역(Cheongnyangni station, 淸凉里驛)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는 경원선, 중앙선철도역이자 수도권 전철 1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수도권 전철 경춘선,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전철역이자 환승역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은 이 역부터 서울역까지 지하 구간이고 서울교통공사 구간이다.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은 심야에 3편성이 주박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 5월 1일청량리(서울시립대입구)역으로 다시 환원됐다.

청량리역사

청량리역은 경원선을 처음 계획할 당시에는 구상되지 않았던 정거장이었으나 서울의 동쪽 간문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뒤늦게 정거장 개설지로 추가됐다.

이에 따라 청량리정거장과 왕십리정거장은 서로 2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 불과할 정도로 다른 구간에 비해 매우 인접한 곳에 자리하게 됐다.

청량리(서울시립대입구)역은 1911년 10월 용산~의정부 구간을 우선 개통할 때부터 처음 사용됐다.

전차노선인 청량리선은 바로 연장되지 않고 이후 조선박람회를 위해 역전역을 신설하며 연장한다.

기능 확장 및 철도관사 건설

철도부설과 더불어 철도직원의 주거대책을 해결하기 위하여 철도관사 역시 건축됐다.

일제강점기 관청, 공공기관, 기업체가 각 기관의 공무원이나 회사원에게 공급한 주택을 관사·사택으로 불렀는데, 이러한 주택들은 용산일대 등 철도 및 일본의 관리나 일본군의 주둔지 등에 건립된 경우가 많았다.

청량리지역 역시 중앙선 부설에 앞서 역 주변 전농정(典農洞) 위치에 철도관사를 약 400호 건축했다.

현 동대문구 전농동, 전농2동 일대에 일부 남아있다.

관사는 관(官) 주도로 조직적으로 건축돼 관리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급하는 일종의 공공임대주택이다.

1920년대 이후 주택난이 가중될 당시 경성부청이 민간 회사에 공문을 보내 사택을 건설할 것을 요청할 정도로 관사와 사택의 건설이 정책적으로 권장됐고, 그 결과 1920년대 초반 신축된 일식주택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관사는 강점기간 내내 꾸준히 건설됐다.

관사의 공급 확대에도 불구하고 주택난이 심화되자 1930년대 후반 일제는 소규모 관사의 공급을 확대한다.

조선의 교통량이 증가해 경성역이 혼잡하게 되자, 총독부는 경성역의 화물부담을 청량리역으로 이전하고자 결정한다.

이를 청량리(서울시립대입구)역은 경성일대의 화물취급을 담당하기 위해 1935년 당시의 10배 이상으로 확장된다.

이에 따라 1937년에 청량리 철도관사가 건립된다.

두 차례의 개칭

이후 1936년에 경성부가 확장되고, 1938년에 경춘선의 기점이자 중앙선의 종점으로 지정됐고, 경성역의 화물부담을 인계받아 경성일대의 화물취급을 담당한 등 역의 지위가 향상됨에 걸맞게 5월 1일부로 동경성역(東京城驛)으로 역명을 변경한다.

이 때 영등포역도 남경성역으로 함께 역명을 변경한다.

또한 경성역의 화물취급 역시 같은 해 7월부터 정상적으로 이전됐다.

그러나 중국에 있는 역명과 혼동이 있다는 이유로 1942년에 영등포역과 함께 다시 청량리(서울시립대입구)역이란 원래의 이름을 회복한다.

개요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공사 소속 청량리역은 경원선, 중앙선철도역으로, 중앙선의 기점으로 이 역에서 경원선으로부터 분기한다.

중앙선 무궁화호태백·영동선 무궁화호의 시·종착역이며, 경춘선 ITX-청춘강릉선 KTX,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이 정차한다.

수도권 전철 경춘선 전동차가 편도 10회 시·종착하고, 수인·분당선 열차는 상·하행을 포함해 18회 정차하며, 극히 드물게 임시 무궁화호도 다닌다.

드물게 임시 열차가 경원선, 경부선을 경유해 서울역, 영등포역으로 운행한다.

국수역, 지평역, 춘천역 방면으로 간 전철은 왕십리역 출발 후 청량리역 진입 이전 중앙선 선로로 진입하며, 반대로 문산역 방면으로 간 전철은 청량리역 출발 후 경원선에 합류한다.

서울교통공사 (수도권 전철 1호선)

서울교통공사 관할 청량리역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점으로 유치선이 있다. 다만, 선로는 경원선 회기역과 연결돼 있어 실질적 모든 열차들의 기·종점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경원지선 용산~성북 구간 열차가 폐지되기 이전은 경인선 일부 열차와 구로역 이남으로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열차들의 기·종점이었다. 신창, 천안-청량리 구간을 운행하는 급행열차는 이 역에서 시·종착하며, 완행열차는 광운대역까지 연장 운행된다(단 일부 열차는 이 역에서 시 종착한다).

지상으로 올라갈 때 절연 구간이 있으며, 회기역에서 내려올 때 유치선을 통해 천안·신창 급행 열차를 볼 수 있다.

한국철도공사가 제공하는 운행 시각표상 표기는 1지청이며, 이는 “1호선 지하 청량리의 약자로, 서울시립대입구라는 병기역명이 있다.

부근에 서울시립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환승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엔 직접 연결된 환승 통로는 없었으나, 승차권에 환승 표시를 하는 방식으로 역외를 통한 환승이 가능했었다.

이후 1986년 자동 요금 징수, 마그네틱 종이 승차권 도입 등에 따라 환승이 제한됐지만, 2010년 8월 20일 청량리역 민자역사 준공과 함께 환승 통로가 개설돼 자유로운 환승이 가능해졌다.

연혁

1999년부터 가설 임시 역사로 운영되다가, 2010년 8월 18일민자역사가 완공됐다.

이에 앞서, 2010년 3월 5일부터 역무 기능을 기존의 임시 역사에서 우선 이전했다.

한국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 (수도권 전철 1호선)

사고

2007년 8월 13일 오후 5시 40분경 청량리 민자역사 신축 공사장에서 약 25m 높이의 천공기가 전복되어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일반인 2명이 사망했다.

사고의 여파로 고압선이 끊어져 경원선경춘선, 중앙선 일부 구간이 단선됐으며, 이튿날 자정이 넘어서야 열차 운행이 재개됐다.

경찰 측은 공사장에서 터 파기 작업을 위해 철심을 박던 중 크레인을 옮기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공사장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밤샘 조사를 벌였다.

역 구조

출구는 7개다.

지상

4면 8선의 승강장이며 전철 승강장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다.

회기(경의·중앙선, 경춘선)/상봉(중앙선)/시·종착역(수인·분당선)
| | | | | | | | 78 |
왕십리(경의·중앙선, 수인·분당선) ↓/서울(경강선, 중앙선) ↓/시·종착역(경춘선 )
1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일반열차 선정릉·서현·기흥·수원·인천 방면
2 수도권 전철 경춘선 급행열차·일반열차 상봉·퇴계원·평내호평·가평·춘천 방면
3 강릉선·중앙선 KTX 서원주·만종·강릉·동해·제천·안동 방면
4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급행열차·일반열차 회기·망우·구리·덕소·용문·지평 방면
경춘선 ITX-청춘 상봉·평내호평·마석·청평·가평·춘천 방면
5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급행열차·일반열차 왕십리·이촌·용산·문산 방면
경춘선 ITX-청춘 왕십리·옥수·용산 방면
6 강릉선·중앙선 KTX 행신·서울 방면
7~8

중앙선 태백선 정선선

KTX

무궁화호
ITX-새마을
ITX-마음
정선아리랑열차

원주·제천·영주·안동·부전 방면
태백·동해·부전 방면
제천·민둥산·정선·아우라지 방면

지하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이며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이 역은 지하역이면서도 대합실이 아래층에, 승강장이 위층에 있는 특이한 역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회기 방면 선로를 지상으로 쉽게 유도하여 경원선직결 운행하기 위하여 승강장을 얕은 깊이에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1호선 승강장
회기
| 상 하 |
제기동
상행 수도권 전철 1호선 광운대·의정부·양주·동두천·연천 방면 (일반, 급행)
청량리급행 당역종착
하행 동대문·종로3가·시청·서울역·부천·서동탄·천안·신창(순천향대) 방면
·신창(순천향대) 급행 당역출발

1호선 청량리역 진입 전에 X자형 교차가 존재하며, 인천·서동탄·천안·신창(순천향대) 방면 열차가 청량리(서울시립대입구)역 신창 방면 플랫폼(2번)으로 역주행해 정차한 후, 회차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안·신창 방면으로 출발할 때가 있으며 이 때 X자형 선로를 이용한 것이다.

2019년 12월 30일부터 천안, 신창발 경부선 완행열차 대부분 시•종착역이 청량리역에서 광운대역으로 변경됐다. 단 경부선 완행열차 일부 한정으로 다시 이 역에서 시종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