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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릭클린은 1985년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 개발하는 소규모 컨설팅 회사인 소프트웨어가든(Software Garden)을 설립했다. 소프트웨어가든 사의 설립배경은 댄 브릭클린의 데모(domo)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전에 시연할 수 있도록 했으며, [[윈도우]](Window) 기반 프로그램을 위한 튜토리얼(tutorial)을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다. 댄 브릭클린은 1990년 [[슬레이트]](Slate)를 공동 설립할 때까지 소프트웨어가든의 사장을 지냈다. 1992년, 댄 브릭클린은 소프트웨어가든을 떠나 [[피닉스]](Phoenix)에 본사를 둔 슬레이트의 부사장이 되었다. 1994년 슬레이트가 문을 닫으면서 댄 브릭클린은 소프트웨어 가든으로 돌아왔다.<ref name="위키피"></ref> 1995년에 댄 브릭클린은 트레일릭스 사이트 빌더(Trellix Site Builder)의 이름을 딴 트레일릭스(Trellix)를 설립했다. 트레일릭스는 웹 사용자가 온라인 게시 도구를 사용하여 개인 웹 사이트를 설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이다. 트레일릭스는는 2003년 현 웹닷컴(Web.com)인 [[인터랜드]](Intertland)에 인수됐으며 2004년 초까지 댄 브릭클린이 최고기술책임자를 지냈다.<ref name="위키피"></ref> | 댄 브릭클린은 1985년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 개발하는 소규모 컨설팅 회사인 소프트웨어가든(Software Garden)을 설립했다. 소프트웨어가든 사의 설립배경은 댄 브릭클린의 데모(domo)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전에 시연할 수 있도록 했으며, [[윈도우]](Window) 기반 프로그램을 위한 튜토리얼(tutorial)을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다. 댄 브릭클린은 1990년 [[슬레이트]](Slate)를 공동 설립할 때까지 소프트웨어가든의 사장을 지냈다. 1992년, 댄 브릭클린은 소프트웨어가든을 떠나 [[피닉스]](Phoenix)에 본사를 둔 슬레이트의 부사장이 되었다. 1994년 슬레이트가 문을 닫으면서 댄 브릭클린은 소프트웨어 가든으로 돌아왔다.<ref name="위키피"></ref> 1995년에 댄 브릭클린은 트레일릭스 사이트 빌더(Trellix Site Builder)의 이름을 딴 트레일릭스(Trellix)를 설립했다. 트레일릭스는 웹 사용자가 온라인 게시 도구를 사용하여 개인 웹 사이트를 설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이다. 트레일릭스는는 2003년 현 웹닷컴(Web.com)인 [[인터랜드]](Intertland)에 인수됐으며 2004년 초까지 댄 브릭클린이 최고기술책임자를 지냈다.<ref name="위키피"></ref> | ||
− | 한편 댄 브릭클린은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 도구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소프트웨어가든의 사장으로 계속 근무하며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휴대용 기기에 더욱 적합한 자유로운 메모장 앱인 노트테이커 HD(Note Taker HD)를 출시했다.<ref name="위키피"></ref> 한편 1994년, 댄 브릭클린은 정보 처리에 관련된 연구 및 기술 진흥, 상호간의 정보 교환 및 회원의 능력 향상과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컴퓨터학회(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의 회원으로 취임했다. 또한 매사추세츠 기술 리더십 위원회의 창립 수탁자로 소프트웨어 출판협회와 보스턴 컴퓨터 협회(Boston Computer Society)의 이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국립 공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회원으로 선출되었다.<ref name="위키피"></ref> | + | 한편 댄 브릭클린은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 도구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소프트웨어가든의 사장으로 계속 근무하며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휴대용 기기에 더욱 적합한 자유로운 메모장 앱인 노트테이커 HD(Note Taker HD)를 출시했다.<ref name="위키피"></ref> 한편 1994년, 댄 브릭클린은 정보 처리에 관련된 연구 및 기술 진흥, 상호간의 정보 교환 및 회원의 능력 향상과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컴퓨터학회(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의 회원으로 취임했다. 또한 매사추세츠 기술 리더십 위원회의 창립 수탁자로 소프트웨어 출판협회와 보스턴 컴퓨터 협회(Boston Computer Society)의 이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국립 공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회원으로 선출되었다.<ref name="위키피"></ref> 댄 브릭클린의 저서 '브릭 온 테크놀로지(Bricklin on Technology)'는 2009년 5월에 와일리(Whlie)에 의해 출판되었다. |
==주요 활동== | ==주요 활동== |
2020년 7월 15일 (수) 20:18 판
댄 브릭클린(Dan Bricklin, 1951년 7월 16일~)은 최초의 전자 스프레드시트(spreadsheet) 소프트웨어인 비지칼크(VisiCalc)를 만든 개발자이다. 소프트웨어아트(Software Arts), 소프트웨어가든(Software Garden), 트레일릭스(Trellix) 사를 설립한 기업가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소프트웨어가든의 사장 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2020년 기준) 비지칼크 작업으로 댄 브릭클린은 종종 '스프레드시트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생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댄 브릭클린은 종교적으로 다원적인 유대인 학교를 다녔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 수학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1973년 컴퓨터 과학으로 전환하여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벡슬리 홀(Bexley Hall)에 거주하게 된 그는 학교를를 졸업하자마자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회사인 디이씨(Digital Equipment Corporation, DEC)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현금 등록기 제조업체인 파이팩스(FasFax)에 합류하여 1976년까지 근무했다. 1977년 그는 학업으로 복귀하길 희망하여 MBA 과정을 다니던 중 지루한 반복 작업을 줄이기 위해 비지칼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1] 1979년 하버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댄 브릭클린은 친구인 밥 프랭크스톤(Bob Frankston)과 함께 소프트웨어아트(Software Arts) 사를 설립하여 비지칼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때, 댄 브릭클린이 베이직(Basic)에서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작성하면 밥 프랭크스톤이 프로토타입을 제품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2] 사람들은 $100짜리 비지칼크를 이용하기 위해 $2,000짜리 애플Ⅱ 개인용 컴퓨터를 구매했고, 비지칼크로 시작된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을 비롯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들은 결국 사무실 내에서 정보를 관리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댄 브릭클린은 1985년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 개발하는 소규모 컨설팅 회사인 소프트웨어가든(Software Garden)을 설립했다. 소프트웨어가든 사의 설립배경은 댄 브릭클린의 데모(domo)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전에 시연할 수 있도록 했으며, 윈도우(Window) 기반 프로그램을 위한 튜토리얼(tutorial)을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다. 댄 브릭클린은 1990년 슬레이트(Slate)를 공동 설립할 때까지 소프트웨어가든의 사장을 지냈다. 1992년, 댄 브릭클린은 소프트웨어가든을 떠나 피닉스(Phoenix)에 본사를 둔 슬레이트의 부사장이 되었다. 1994년 슬레이트가 문을 닫으면서 댄 브릭클린은 소프트웨어 가든으로 돌아왔다.[1] 1995년에 댄 브릭클린은 트레일릭스 사이트 빌더(Trellix Site Builder)의 이름을 딴 트레일릭스(Trellix)를 설립했다. 트레일릭스는 웹 사용자가 온라인 게시 도구를 사용하여 개인 웹 사이트를 설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이다. 트레일릭스는는 2003년 현 웹닷컴(Web.com)인 인터랜드(Intertland)에 인수됐으며 2004년 초까지 댄 브릭클린이 최고기술책임자를 지냈다.[1]
한편 댄 브릭클린은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 도구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소프트웨어가든의 사장으로 계속 근무하며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휴대용 기기에 더욱 적합한 자유로운 메모장 앱인 노트테이커 HD(Note Taker HD)를 출시했다.[1] 한편 1994년, 댄 브릭클린은 정보 처리에 관련된 연구 및 기술 진흥, 상호간의 정보 교환 및 회원의 능력 향상과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컴퓨터학회(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의 회원으로 취임했다. 또한 매사추세츠 기술 리더십 위원회의 창립 수탁자로 소프트웨어 출판협회와 보스턴 컴퓨터 협회(Boston Computer Society)의 이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국립 공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회원으로 선출되었다.[1] 댄 브릭클린의 저서 '브릭 온 테크놀로지(Bricklin on Technology)'는 2009년 5월에 와일리(Whlie)에 의해 출판되었다.
주요 활동
비지칼크
- 비지칼크 개발
- 하버드 대학교 경영 대학원에 다니던 댄 브릭클린은 어느 날 강의 중에 "숫자 하나만 대입하면 복잡한 방정식이나 계산 표를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마술 칠판(magic blackboard) 같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매사추세츠 공과대 동창생인 밥 프랭크스턴과 함께 '비지칼크'를 개발하였다. 비지칼크가 개발되기 전에는 재무 및 회계용 프로그램은 대형 컴퓨터에서만 작동 가능했지만 비지칼크가 등장하면서 개인용 컴퓨터로도 회계용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브릭클린은 인쇄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70년대 중반 초창기의 컴퓨터 조판 장비 판매와 관련된 일을 했었는데, 구조가 치밀하게 짜인 조판 작업을 보고 행과 열로 배열된 셀(cell) 개념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 비지칼크는 취미용 장난감 정도로 취급받던 PC를 업무용 도구로 전환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당시 비지칼크는 애플2의 판매량을 무려 10배나 증가시킨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이었다. 81년에는 에이치피(HP), 아이비엠(IBM)과도 호환되면서 절정기를 맞는다. 그러나 비지칼크는 5년 후 비지칼크 개발팀의 일원이이면서, 로터스 1-2-3(Lotus 1-2-3)을 개발한 미치 케이퍼(Mitch Kapor)에게 그 역할을 넘겨 주었다.[3] 그러다 2008년 6월 10일, 비지칼크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데, 댄 브릭클린이 위키기반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를 개발 했다는 소식을 기업용 위키 소프트웨어 업체 소셜텍스트(Socialtext)가 발표했다. 이 소프트웨어의 이름은 소셜칼크(SoicalCalc)이고, 자사 고객 전용 프라이빗 베타 버전을 제공했다.[4]
- 비지칼크가 특허를 취득하지 않은 이유
- 1990년대 후반까지 소프트웨어 발명이 일상적으로 특허를 받았기 때문에 '왜 비지칼크가 특허를 받지 못한 것인가'는 매우 흔한 질문이다. 1979년, 비지칼크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을 당시에는 소프트웨어 발명에 대한 특허가 현재에 비해 아주 드물게 인정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프로그램은 단순한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생각되었고, 수학적 알고리즘은 자연의 법칙으로서 특허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 비지코프(VisiCorp), 퍼스널소프트웨어(Personal Software)의 출판사는 퍼스널소프트의 경영진들을 만나 변리사를 고용했다. 그러나 변리사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특허를 획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을 숨기는 다양한 기술(기계로 둔갑하는 등)을 사용해도 성공 가능성은 10%에 불과했다. 이런 조언과 관련된 비용 지출에 따라 비지칼프는 특허를 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저작권 및 상표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가했지만, 스프레드시트의 엄청난 중요성과 가치, 저작권 보호, 특허 보호를 신청하기엔 2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 무용지물이었다. 그 사이 로터스 1-2-3이 개발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로터스 1-2-3과 너무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제품 제조자들을 로터스 1-2-3쪽에서 고소를 했는데, 증빙자료를 특허가 아닌 저작권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큰 진전은 없었다. 이 이유에서인지 1970년 ~ 1980년대에는 아무도 소프트웨어 발명에 특허를 내려고 하지 않았다. 댄 브릭클린은 현재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소프트웨어에 대한 특허가 법률에 의해 장려되고, 이런 보호 활성화하는 것이 댄 브릭클린의 의무라고 생각했다.[5]
수상
- 1981년 :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 수상
- 1996년 : 스프레드시트의 개발과 상용화, 비즈니스와 산업에서 육성된 심오한 변화를 개척한 공로로 IEEE컴퓨터학회(IEEE Computer Society)와 함께 컴퓨터기업가상(Computer Entrepreneur Award) 수상
- 2003년 : 기술 변화를 리드한 공로로 와튼 인포시스 비즈니스 전환상(Wharton Infosys Business Transformation Award) 수상, 이때 정보 기술을 산업 변환 방식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뉴베리 대학(Newbury College)에서 명예 휴먼문학박사(Honorary Doctor of Humane Letters)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2004년 : 컴퓨터 역사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의 회원이자 특별연구원으로 임명[1]
각주
- ↑ 1.0 1.1 1.2 1.3 1.4 1.5 Dan Bricklin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Dan_Bricklin
- ↑ Jessica Livingston, Dan Bricklin Cofounder, Software Arts, Apress, 2007, p1
- ↑ 무명의 더쿠, 〈엑셀을 만든 사람〉, 《더쿠》, 2019-04-09
- ↑ Interesting IT, 〈엑셀의 "원조"를 아세요?〉, 《티스토리》, 2008-11-24
- ↑ Dan Bricklin, 〈Patenting Visical〉, 《개인 홈페이지》
참고자료
- Dan Bricklin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Dan_Bricklin
- Jessica Livingston, Dan Bricklin - Cofounder, Software Arts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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