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이동통신
1세대 이동통신이란 음성통화만 가능한 아날로그 통신 시대를 말한다. 1세대(generation)의 줄임말로 1G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아날로그 이동 통신 시스템은 음성 전송에는 주파수 변조(FM)를, 신호전송에는 주파수 편이 변조(FSK) 방식을 이용한다.[1]
목차
개요
1세대는 200~900MHz의 주파수 대역에서 10Kbps의 속도를 음성을 전송하며 AMP(미국), TACS(영국), NMT(스웨덴) 등의 기술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AMPS 방식은 1983년 미국에서 상용화가 되었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1984년 AMPS 방식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종류
1세대 이동통신의 종류와 활용 국가[2]
NMT
NMT는 에릭슨 회사가 개발한 북유럽 표준 1세대 이동 통신 기술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자동 휴대 전화 시스템이며 1981년 아날로그 휴대 전화를 대체하기 위하여 최초로 상용화되었다. 당시 사용화된 아날로그 휴대 전화 네트워크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의 전자 공학도 외스텐 매키 탈루가 시스템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NMT를 사용한 국가는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 핀란드)가 있다.[2]
TACS
TACS는 영국에서 개발한 아날로그 방식의 셀룰러 전화 방식이며 영국 표준 1세대 이동 통신 기술이다. TACS를 사용한 국가는 (스페인, 아일랜드,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있다.[2]
RC 2000
RC 2000은 프랑스의 기간 공중 통신 사업자인 프랑스 텔레콤 사가 제공하는 전국적인 셀 룰러 방식의 이동 통신 서비스이다. RC2000을 사용한 국가는 (프랑스)가 있다.[2]
C 450
C 450은 독일에서 사용한 1세대 이동통신이다. C 450을 사용한 국가는 (독일)이 있다.[2]
AMPS
AMPS는 벨 연구소에서 개발된 아날로그 이동 전화 시스템이며 미국(1983)과 이스라엘(1986) 호주(1987)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된 방식이다. AMPS를 사용한 국가는 (미국, 호주, 이스라엘, 대한민국)이 있다.[2]
특징
1세대 이동통신은 흔히 아날로그 이동통신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음성을 전송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파수 변조(FM:frequency modulation) 방식이 아날로그이기 때문인데 음성통화만 가능하다. 아날로그 방식은 통화에 혼선이 생기고 주파수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3] 무선 접속 방식은 다중 접속(FDMA) 방식이며 주파수의 범위는 800MHz대까지이다.[4] 통화만 가능한 첫 번째 휴대전화 서비스는 1983년 모토로라 다이나 텍 8000x 와 함께 시작했다. 나중에는 1세대로 불리게 되는 초기 아날로그 셀룰러 방식 이동통신은 할당된 주파수를 여러 개의 채널로 잘게 쪼개 썼다. 기존에 쓰던 유선 전화는 당연히 `음성통화`만 하는 기기였기에, 이용자들도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집 전화기` 정도로 여겼다.[5]
구조와 기능
1세대 이동통신의 구성은 공중 교환 전화망(PSTN)에다가 MTSO라는 이동통신 교환국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셀룰러 위치관리 기능을 부가하고, 그 밑에 기지국 시설을 둔 채 기존의 공중 교환 전화망(PSTN)을 확장하는 개념이다.[4]
구조
1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표준화된 국제 규격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셀룰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셀룰러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와 용어는 2세대 이동통신에 와서야 표준으로 정립이 되었는데 2세대 이동통신 표준에 정의된 셀룰러 시스템 기본 구조이다.[6]
구조 분석
1세대 이동통신의 구조는 일단 기본적으로 이동단말(MS), 기지국(BTS), 기지 국제어기(BSC), 이동통신교환기(MSC), 공중전화 교환망(PSTN) 이렇게 5가지 구성요소로 구분되어 있다. 우선 다중화기 구간(Mobile station)은 이름 그대로 이동 가능한 휴대용 단말장치를 의미하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도 다 여기에 해당된다. 해당 다중화기 구간이 다른 이동통신 단말과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전파를 송수신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데 이것이 기지국(Base Tranceiver Subsystem)이다. 각 기지국은 여기서 말한 셀 영역 안에 들어오는 이동통신 단말이 무선 구간으로 연결되어 통신을 위해 주고받는 음성 데이터를 전송해 통화 채널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지국들을 한곳으로 모아 중앙에서 관제하는 장치가 바로 기지국 제어기(BSC)이다. 등가 채널이란 보통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기지국 장비들의 서비스 상태 모니터링 및 통신에 필요한 리소스 관리를 담당하며 기지국 제어기(Base Station Controller)이란 이름 그대로 기지국 제어기 역할을 수행한다. 기지국 제어기는 이동통신 단말 이동단말(MS)이 동일 셀 안에서 혹은 다른 셀 간 이동 중일 때, 끊김 없는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데, 이런 특징을 핸드오버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기지국 제어기에서 관리하는 임의의 이진 탐색 트리(BST) 셀 영역에 위치한 이동단말(MS)이 다른 기지국 제어기(BSC)에서 관리하는 이진 탐색 트리(BST) 셀 영역으로 이동하는 셀 간 이동의 경우에도 통신 신호의 끊김을 막기 위한 기지국 제어기(BSC)의 장비 간 핸드오버가 발생되는데 이때 두 기지국 제어기(BSC) 장비 사이에 엇 교환기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이동통신교환기(MSC) 장비이다. 이동통신교환기(Mobile Switching Center)는 이동통신교환기를 의미하며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통화 및 각종 부가 서비스를 제어하고 통화 채널 성립 및 다른 기지국 제어기(BSC) 간 스위칭 연결과 외부망과의 연결 기능을 제공한다. 또 이때의 외부망을 공중전화 교환망(Public Switched Telephone Network)이라고 하는데 소규모 회선교환 전화망들을 합친 더 큰 규모의 공중교환전화망을 의미한다. 1세대 이동통신에서는 인터넷과 같은 데이터 기반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에 유선 전화망이 유일한 네트워크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일반 유선 통신망을 포괄적으로 공중전화 교환망(PSTN)이라고 부른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단말장치인 이동단말(MS)이 외부 명인 PSTN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동단말-기지국-기지 국제어기-이동통신교환기-공중전화 교환망 순으로 각 구성요소를 거쳐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6]
기능
첫 번째 상용 휴대전화 모토로라 다이나텍 8000x와 함께 시작되며 나중에 1세대로 불리게 되는 초기 아날로그 셀룰러 방식 이동통신이다. 주파수 여러 개의 채널로 잘게 쪼개 썼고 채널을 분리했기에 여러 명이 같은 주파수를 써도 전화처럼 1 대 1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문제 메시지 같은 부가 기능은 없었고, 넣을 나닐 생각도 안 했다. 기존에 쓰던 유선 전화는 당연히 '음성 통화'만 하는 기기였기에, 이용자들도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집 전화'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음성 통화도 품질이 좋지는 못했다.[5]
국내 1세대 휴대전화 서비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시작했는데 국산 휴대폰은 1989년 5월에 출시된 삼성전자 SH-100이다. 휴대전화라고 부르긴 하지만 요즘 스마트폰 기준으로 보면 벽돌처럼 투박하게 느껴진다. 당시 별명은 냉장고 폰이었으며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후 1994년 히트 상품인 '애니콜'브랜드 첫 모델 SH-770을 내기에 이른다.[5]
한계
1세대 이동통신의 첫 등장은 그때 당시에는 혁신적이었지만 음성 중심의 통화 서비스만 제공되다 보니, 당시에는 유선 전화를 써도 되는데 굳이 이동단말을 들고 무선으로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지는 못했다. 특히 당시 1G 휴대폰의 비싼 가격도 영향이 있었는데 1983년 세계 최초로 출시 도니 AMPS 방식의 1G 휴대폰인 모토로라의 다이나택8000X 모델은 당시 출시 가격이 3.999달러로 한화 10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휴대폰의 무게는 800g으로 꽤 무거운 편이였다. 크기도 커서 일명 벽돌폰이라고도 불렸다. 게다가 10시간 완충하면 최대 30분만 통화가 가능해 휴대 용면에서도 단점이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신호의 특성상 간섭으로 인해 신호의 왜곡이 많아 통화품질도 낮았다.[6]
한국의 이동통신 변화
1세대 이동통신은 한국에서 당시 시장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84년 3월 에스케이텔레콤의 전신인 (한국 이동통신서비스 주식회사){이하 한국 이동통신)가 처음으로 차량 전화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1G 이동통신 서비스의 막을 열었다. 한국 이동통신이 내놓은 차량 전화는 휴대전화라고 부르기보다 차에 전화기를 달아놓아서 흔히 카폰이라고 불렸다. 카폰의 가격은 400만 원의 가격으로 당시 대학 등록금이 60만 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가격이다. 그 후 1988년 7월 현재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전화의 서비스가 시작되며 벽돌처럼 큰 전화기를 가방에 넣고 이동하면서 전화를 할 수 있었는데 이동하면서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이용자가 꾸준히 늘어나 1996년에는 290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보유했다. 하지만 디지털 방식의 2G가 등장하면서 아날로그 방식의 1G 이동통신은 1999년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다.
이후 2세대 이동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음성통화만 가능했던 1G 와는 달리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등의 데이터 전송이 가능했고 당시 널리 이용된 통신 방식은 코드분할 다중 접속(CDMA;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와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방식으로 휴대전화 사용 요금이 크게 낮아지고 통화품질도 좋아지며 휴대전화 사용 대중화에 큰 역할을 기여했다. 그 외에도 개인휴대통신 서비스(PCS)도 이용되었는데 개인휴대통신 서비스는 기존 2G보다 한 단계 발전한 2.5G 이동통신 기술이며 데이터 전송량이 커지고 통화품질이 1.6배 좋아져 데이터 전송하는데 좋았다. 하지만 고주파수 대역이라 더 많은 중계기를 설치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과 개인휴대통신 서비스(PCS)를 사용했다.
향후 이동통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휴대전화 기능과 성능도 갈수록 높아졌는데 3G 이동통신 기술에서는 빠른 속도와 함께 휴대전화에 다양한 기능들이 접목되기 시작했다.3세대 이동통신은 음성통화와 문자뿐만 아니라 영상통화와 인터넷 등 멀티미디어 통신까지 가능한 통신 표준을 의미한다. 3G 이동통신에 대한 정확한 규격은 국제 전기통신연합(ITU)의 IMT-2000 규격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ITU 규격에서는 EV-DO Rev.0(CDMA2000)부터 3G로 규정하지만, 한국에서는 2G로 분류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WCDMA와 EV-DO Rev.A부터 이동통신이라고 부른다.
광대역 코드 분할 다중 접속을 의미하는 WCDMA(Wideband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는 가장 많이 이용되는 3G 이동통신이다. 3G 이동통신 기술은 그때 당시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를 즐기기 힘들었던 탓에 영상통화로 대변되었는데, 영상통화 기술은 3G 이동통신에서나 가능해진 기술이 아니다. 기존에도 영상통화 기술은 있었지만 영상을 주고받기에는 통신 속도가 너무 느려 상용화가 되기 어려웠을 뿐이다. 이 밖에 이전 2G용 휴대전화도 카메라나 MP3, DMB 기능들이 있긴 했지만, 성능은 거의 제한적이고 정작 중요한 휴대전화 자체 성능도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고질적인 문제는 애플 사의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해소되었다.
그 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자 3G 이동통신 방식보다 더 빠른 속도를 원했고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의 방식 중에는 먼저 진화형 HSPA+(Hight Speed Packet Access+)가 있다. 광대역 부호 분할 다중 접속(WCDMA) 방식이자 고속 상향 패킷 접속(HSUPA) 기술의 개량형이다. 다운로드 최고 속도는 21Mbps이며 광대역 기술을 접목한 Dual Cell HSPA+의 최고 속도는 42Mbps다. 국제 전기 통신 연합(ITU)에서는 4G로 분류했지만 한국에서는 3G로 분류하고 있다.
또 다른 4세대 이동통신 방식으로는 와이맥스(WiMAX)가 있다. 와이맥스는 고정형과 이동형으로 분류되며 이동형 와이맥스를 국내에서 와이브로(WiBro)로 부르고 있다. 와이브로는 한국이 주관으로 개발한 4G 이동통신 기술이지만 LTE가 대세로 흘러감에 따라 점점 버려지고 있다. 4G 이동통신 방식 중 가장 잘 알려진 LTE는 10MHz 대역폭 기준, 다운로드 최대 속도가 75Mbps이므로 40MHz 대역폭을 확보하면 이론 상 최대치인 300Mbps의 속도를 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에스케이텔레콤과 엘지유플러스가 2011년 7월부터 상용화했으며, 케이티는 2G 서비스를 종료한 후 확보한 주파수로 상대적으로 늦은 2012년 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7]
각주
- ↑ 〈1세대 이동통신〉,《네이버 지식백과》,
- ↑ 2.0 2.1 2.2 2.3 2.4 2.5 〈1세대 이동 통신〉, 《위키백과》
- ↑ 카스피, 〈이동통신 세대별 특징〉, 2019-04-20
- ↑ 4.0 4.1 〈1세대 이동통신〉, 《정보통신기술용어해설》,
- ↑ 5.0 5.1 5.2 〈세대별 이동통신 네트워크에 따른 휴대폰의 진화〉,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 2019-10-30
- ↑ 6.0 6.1 6.2 〈1세대 이동통신 표준 기술 및 구조 한 번에 정리하기〉, 《네이버 블로그》, 2019-08-31
- ↑ 임병선 기자, 〈빠르게, 더 빠르게…무선 이동통신 20년 역사〉, 《스마트 PC사랑》, 2021-06-15
참고자료
- 〈1세대 이동통신〉, 《네이버 지식백과》
- 〈1세대 이동 통신〉, 《위키백과》
- 〈세대별 이동통신 네트워크에 따른 휴대폰의 진화〉,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 2019-10-30
- 〈1G 1G Mobile Communication Generation 1세대 이동통신〉, 《정보통신기술용어해설》
- 〈1세대 이동통신 표준기술 및 구조 한번에 정리하기〉, 《네이버 블로그》, 2019-08-31
- 〈빠르게, 더 빠르게…무선 이동통신 20년 역사〉, 《스마트PC사랑》, 2021-06-15
- 〈이동통신 세대별 특징〉,2019-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