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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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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to12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7월 29일 (수) 11: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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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장비(communication equipment)란 통신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해주는 하드웨어적인 장비이다.

개요

통신이란 인간의 의사, 지식, 감정 또는 각종 자료를 공간적인 제약을 넘고 주고받는 행위 즉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우편, 전신, 전화 등의 매체를 사용하여 정보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인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으로 나타내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상호간에 의사를 소통하지 않고서는 영위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은 음신(音信)이나 표정 또는 손짓·발짓에 의해, 그리고 그림(또는 문자)을 그리는 것 등을 통하여 자기 의사나 기타 정보를 타인에게 전달하고, 후대의 사람, 또는 장소를 달리하는 타인, 다수의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장소를 달리하는 사람에게 정보나 의사를 전달(수송)하는 수단을 통신이라고 한다. 통신이란 인간과 사물에 관한 사상·정보의 장소적 이동, 즉 전달기능을 하는 서비스 행위이다. 따라서 같은 서비스업이라고 해도 인간 또는 사물 그 자체를 전달하는 교통·운수업과 구분되며, 유형재(有形財)를 교환하는 실물경제(實物經濟)에서의 상업이나 요식·접객업 같은 일반서비스업과 구분된다. 넓은 의미의 교통을 사람과 재화(財貨) 및 음신을 장소적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라고 볼 때, 그 중에서 사람과 재화를 장소적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운송 또는 운수라 하고, 이에 대하여 음신을 장소적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통신이라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대중 전달도 통신에 해당하나 좁은 의미에서는 직접적인 의사 소통, 우편물과 전기통신과 같은 개별적 전달을 통신이라 한다. 통신의 원초적 의미는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면서 교환되는 사상의 전달이나 소문의 파급과 같이 인간관계의 모든 의사소통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통신은 파발마(擺撥馬)·우체통·전화·전신 등 이른바 통신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통신서비스의 생산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통신수단이란 통신서비스 생산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물적 매개체로, 이에는 통신통로(通路)·통신기기·통신전달동력 등이 있으며, 이를 통신의 3대요소라고 한다. 따라서 이 통신수단을 보유하고 통신서비스 생산을 전담하는 행위를 통신업이라고 하는데, 통신수요의 급팽창과 통신수단의 발달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점차 기계화, 전기·전자화하여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통신기능을 보유하게 되었다. 디지털시대의 통신은 전기 에너지의 작용에 의하여 문자와 영상을 유선과 무선의 연결방식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먼 거리에 있는 사용자와 교류가 가능한데 이러한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비가 존재해야 했다. 현대 기술의 발달에 따라 통신장비도 발달하였다. 이 통신장비들에 대해 알아보자[1]

등장배경

19세기에 유럽과 특히 미국인들은 정보통신 분야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느꼈다. 19세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은 빛과 소리와 같은 전통적인 정보 전달 수단 이외에 전기를 이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 법, 즉 전신을 창안해 내었다. 이 전신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주식의 변동, 시장 가격의 변동, 열차 출발 시간, 정치적 사건, 전쟁 소식 등 멀리 있는 곳의 소식을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빠른 속도로 전달받 을 수 있게 되었고, 당시 사람들에게 이것은 분명 혁명적인 변화였다.

역사

1. 전기를 이용한 전신의 초기 역사 전기를 이용해서 신호를 전달하려는 전신은 이미 갈바니와 볼타가 동전기를 발견하면서 그 가능성이 엿 보였다. 1809년 독일의 폰 죄머링(S.T. von Smmerring)은 전기가 용액을 통과할 때 거품이 생기는 것을 관찰하고, 이것을 이용해서 알파벳을 전달하는 전신 장치를 고안해 내었다. 이때 그는 26개의 전 선을 이용해서 약 3킬로미터까지 알파벳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기분해를 이용한 그의 전신 장치는 당시에는 전기 부품의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어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1820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있던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자침의 회전에 미치는 새로운 전자기 현상을 발견했다. 외르스테드의 이 놀라운 발견은 곧 프랑스의 과학자 앙페르에 의해서 확인되었는데, 이후 많 은 사람들이 자침을 이용해서 신호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1833년 독일의 유명한 수학자 프 리드리히 가우스는 그의 조수였던 물리학자 빌헬름 베버와 함께 자침을 이용한 전신 장치를 발명했다. 그들은 두 개의 구리 전선을 이용해서 약 2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실제로 통화를 해보기도 했다. 1837년 영국의 쿠크(W.F. Cooke)와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은 5개의 자침을 이용해서 알파벳 을 전송하는 전신기를 창안해서 특허를 출원했다. 쿠크와 휘트스톤이 창안한 방식은 곧 영국의 철도 회 사에서 채용되었고, 이후 이들의 전신은 영국의 전신 방식을 지배하게 된다. 이들이 만든 최초의 전신 장치는 죄머링의 장치와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전선을 이용해서 신호를 전송하는 병렬 데이터 전송 (parallel data-communication)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병렬 전송 방식은 곧 비용 문제 와 부딪히게 되었고, 자침의 수는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하나의 자침만을 사용하는 체계로 변하게 된 다. 이로써 자침 전신기는 최초의 직렬 데이터 전송(serial data-communication) 장치로도 기록되게 되었다.

2. 모스의 전신 영국의 쿠크와 휘트스톤의 자침 전신기보다도 19세기 전신의 혁명에 더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은 1837년 미국의 저명한 화가였던 모스(Samuel F.B. Morse, 1791 1872)가 특허를 출원한 전신기였다. 모스는 1832년 유럽으로 여행하던 중 배 안에서 보스턴의 화학자 잭슨(Charles T. Jackson)에게서 앙 페르의 전자기 실험과 전기의 속도가 전선의 길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는 이야기를 우연 히 듣고, 이것을 통신에 이용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많은 화가들이 발명가로서도 활약했는데, 모스는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개념 설계를 마치 미술품을 제작하는 식으로 해나갔다. 또한 화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듯이, 모스는 자신의 기계 작업실에서 전신기라는 발명품을 고안하 고 개량해 나갔던 것이다. 모스의 전기학에 관한 지식은 아주 빈약했지만, 그는 예일 칼리지를 졸업하고 뉴욕 대학의 교수로 있으 면서 뉴욕의 과학자들과 연결을 맺을 수 있었다. 우선 모스는 자신의 대학 동료이며, 화학, 지질학, 광 물학 교수였던 레오나드 게일로부터 전기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게일은 전자석을 이용해서 전신기를 창안했던 조지프 헨리의 작업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조지프 헨리는 1831 32년에 이미 건전 지, 전도체, 전자석 등을 이용해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력을 전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 증했었다. 전자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헨리는 전신에 관한 기본적인 장치를 창안해 내었지만, 그는 이 것을 더욱 진척시켜서 특허로 출원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이미 1832년 잭슨으로부터 앙페르의 전자기 법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전신에 이용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던 모스는 헨리와는 달리 헨리의 실험에 대한 정보를 게일로부터 얻은 뒤에 이것을 더욱 개량해서 마침내 전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게 된다. 모스는 기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기계공 출신의 알프레드 베일(Alfred Vail)의 도움을 얻어 전 신에 필요한 기계를 제작할 수 있었다. 모스의 발명품이라고 하는 전신은 사실 상당히 많은 부분은 베 일이 개량한 것이었다. 베일은 1844년까지 수신기를 다양한 시계 기술을 이용해서 단순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송신 장치도 놀랄 만큼 간단하게 개량시켜 놓았다. 심지어 오늘날 '모스 부호'라고 부르는 기본 적인 통신 코드도 실제적으로는 대부분 베일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베일의 몫이 아니라 최초의 창안자였던 모스의 업적으로 돌아가 버렸다.

벨과 그레이의 전화 발명 오늘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전화는 알렉산더 그레이험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 1922)과 그레이(Elisha Gray, 1835 1901)에 의해서 거의 동시에 발명되었다. 1876년 2월 14일 그레이는 벨보다 조금 늦게 특허를 신청했는데, 이 일화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간발의 차로 엄청난 기회를 놓쳐 버린 극적인 사건으로 자주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발명에 얽힌 실제 내막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레이의 발명가로서의 전력 그레이는 1835년 오하이오 주의 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1865년부터 전문적인 발명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전화를 발명하게 되는 1870년대에는 이미 전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발명가 로 성장해 있었다. 1874년 경 그는 욕조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처음으로 소리를 전류로 바꾸는 가능 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런 착상을 더욱 발전시켜서 바이올린의 음을 전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 바이올린 수신기'를 창안해 내었다. 더 나아가 그는 그 해 5월 금속 진동판으로 이루어진 전자기 수신 기를 제작했고, 이것에 대한 특허까지 출원했다. 당시 그레이는 바이올린 수신기를 착안하는 과정에서 만든 이 금속 진동판 전자기 수신기가 음악 전신 기, 다중 전신, 음성 전신 등에 모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874년 그레이가 전 신 관계자들 앞에서 자신의 발명품에 대해서 시범을 보였을 때, 그들은 그레이의 발명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즉 전신 전문가와 전신 관련 잡지사 편집인들을 비롯한 당시의 전신 전문가들은 그레이 가 발명한 '전화'가 음악과 음성을 전달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단지 아주 흥미로운 과학적 창안품일 뿐 이지 직접적인 실용적인 응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음성을 전달하는 전 화를 단지 재미있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웨스턴 유니언 회사를 비롯한 주요 전신 회사에서는 발명가들에게 하나의 선으로 여러 모스 신호 를 보낼 수 있는 다중 전신을 개발해줄 것을 간절히 원했는데, 이런 전신 관련 분야의 요구 때문에 전 문적인 발명가였던 그레이는 자신의 발명품을 전화보다는 다중 전신에 활용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한편 그레이가 전화에 관한 기본적인 창안을 해놓고도 이것을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 쪽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다중전신 쪽으로 이용하려고 더 노력하고 있는 동안, 그레이와는 아주 독립적으로 이와 비슷한 장치를 개발해 나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더 그레이험 벨이었다. 2. 벨이 전화를 발명하게 된 배경 벨은 소리를 내는 음성 기관의 위치와 작용을 나타내는 음성학적 기호를 체계화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에든버러 출신의 발성법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발성법 집안에서 자란 벨은 장성한 뒤 자신의 아버지가 개발한 이 '시화법'(visible speech) 체계를 농아에게 발성법을 가르치는 데에 활용하게 된다. 이리하여 1872년 그는 농아에게 발성법을 가르치는 학교를 보스턴에 개설했고, 자신도 그곳에서 강사로 있다가 1873년에는 보스턴 대학의 음성 생리학 교수가 되었다. 발성법에 관한 관심이 높았던 벨은 헤르 만 헬름홀츠의 음성과 감각에 관한 실험에 대해 공부한 뒤 조화 단진동을 합성해서 복합 모음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조화 전신기를 고안해 내었고, 1875년 4월 6일 다중 전신에 관한 특허까지 신청했다. 이 조화 전신기와 다중 전신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벨은 전화를 발명하게 되었던 것 이다. 벨은 기계 제작에는 아주 문외한이었지만, 기계 수리공이며 모형 제작자였던 토머스 왓슨의 도움으로 음성을 전기적으로 전달할 때 필요한 기구를 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벨이 도움을 주던 농아 메이블 허 버드(Mable Hubbard)의 아버지로부터 이런 기구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 었다.(전화 발명을 마친 뒤인 1877년 벨은 10년 연하인 이 메이블 허버드와 결혼했다.) 벨에게 재정적 인 지원을 해주던 허버드도 처음에는 그레이와 웨스턴 유니언의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전화의 실용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었고, 오히려 벨이 다중 전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를 원했다. 하 지만 농아에게 말을 가르치는 데 관심이 많았으며 전신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전문가였던 벨은 다중 전신보다는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75년 6월 음성을 전기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한 벨은 그 해 9월부터 전화에 대한 기본적인 착상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1876년 1월 20일 전화에 대한 공증을 마치고 2월 14일에 특허를 신청해서 1876년 3월 7일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전화 특허를 받게 된다.

무선 전신의 발명: 마르코니와 브라운 20세기 정보통신 혁명 시대를 연 가장 획기적인 발명 가운데 하나는 19세기말에 굴리엘모 마르코니 (Guglielmo Marconi, 1874 1937)와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 1850 1918)이 발명한 무선 전신 이었다.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전파를 이용한 무선 전신의 발명은 곧 지구를 동시에 순간적으로 연결하 는 지구촌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곧이어 라디오, 텔레비전을 비롯한 매스컴의 출현을 가져왔고, 20세기 후반의 획기적 발명품인 휴대용 무선 전화의 가능성도 열어 놓았던 것이다. 이미 1861년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은 빛과 유사한 성질을 지닌 전자기파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예언 했다. 1887년 하인리히 헤르츠는 맥스웰이 예언한 이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했는데, 그 뒤 헤르츠가 관찰했던 이 전자기파를 실용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노력이 세계 도처에서 나타났다. 전자기파 를 통신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자기파를 송신하고 탐지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 다도 필수적이었다. 헤르츠와 거의 동시에 맥스웰의 전자파를 실험적으로 검출할 뻔했던 영국의 로지 (Oliver Joseph Lodge, 1851 1940)는 전자기파가 통과할 때 전기적 저항이 변하도록 금속 조각을 채 워서 만든 코히러(coherer)를 발명해서 전자기파를 탐지할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장치를 만들었다. 하 지만 곧이어 나올 마르코니의 무선 전신 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장치는 로지의 장치가 아 니라 브랑리(Edouard E.D. Branly)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었다. 브랑리는 로지의 것과 유사한 장치를 개발해서 1891 92년 사이에 과학 학술 저널에 기고했고, 이에 따라 그가 행했던 실험은 당시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었다. 1894년부터 이탈리아의 기술자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볼로냐에 있던 리기(Augusto Righi) 교수의 도움 을 받아 가며 헤르츠가 발견한 전자파를 전신에 이용하려는 실험에 착수했다. 우선 마르코니는 리기 교 수로부터 어떻게 전자기파가 발생·방사·탐지되는 지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마르코니는 브랑리보다 훨씬 좋은 수신 감도를 얻기 위해서 브랑리의 코히러를 개량해 나갔다. 수신 장 치와 함께 마르코니는 보다 먼 거리에서 전자기파를 송수신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전체 장비 역시 개량 해 나갔다. 마침내 1895년 마르코니는 자신이 만든 상당히 조야한 실험 장치로 약 2.4 km 거리까지 신호를 무선으로 전송하는데 성공했다.

1896년 영국에서 특허를 낸 마르코니는 맨 먼저 영국 우편국에서 성공적으로 무선통신을 선보였으며, 189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메시지를 요트 위에 있던 황태자에게 보내는 데 성공하면서 자신이 발명 한 무선 전신의 실용적 가치를 영국 사회에서 점차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더욱이 18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마르코니 무선 전신 회사를 차린 마르코니는 무선 기술을 계속 향상시켜서 1899년에 이르면 약 120 km까지 신호를 무선으로 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변조 방식의 발전: AM과 FM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전성 시대를 맞이하여 무선 전화에는 디지털 방식인 펄스-코드 변조(Pulse-Code Modulation)를 채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시분할 다중 접속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새로운 코드 분할 다중 접속 방식까지 등장해서 바야흐로 휴대폰 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게 되었다. 디지털 무선 전화가 등장하기 이전에 우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음성을 무선으로 전달했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진폭 변조(Amplitude Modulation)와 주파수 변조(Frequency Modulation)라는 기술이었다. 1. 페슨던과 변조 기술의 시작 모스의 전신이 벨과 그레이의 전화 발명으로 이어졌듯이, 마르코니와 브라운이 발명한 무선 전신은 곧 바로 라디오와 무전기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무선 전신이 발명된 이후 처음으로 음성을 전파에 실어 보 내는 데에 성공한 사람은 미국의 무선공학자였던 페슨던(Reginald Fessenden, 1866 1932)이었다. 1892년부터 퍼듀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웨스턴 대학(현재의 피츠버그 대학)에서 전기공학 교수로 재직하 던 페슨던은 1900년에서 1902년까지 미국 기상청의 특수 요원으로 일하면서 일기예보와 폭풍 경보에 적합한 무선 전신 체계를 개발했다. 이때 그는 전기분해를 이용해서 매우 감도가 좋은 탐지기를 발명했 는데, 이 고감도 탐지기가 곧이어 그가 개발한 50,000 헤르츠의 고주파 발진기와 헤테로다인 수신기 등과 결합되어서 전파로 음성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중 전신과 디지털 통신의 출현 모스가 전신을 발명하고 벨과 그레이가 전화를 발명한 이래로 하나의 선을 이용해서 여러 사람들이 동 시에 신호와 음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다중 전신 혹은 다중 전화는 많은 발명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추구되었다. 모스의 전신이 다중 전신으로 발전하면서 텔레타이프라이터가 개발되었고, 이 과정에서 시 분할 다중화(time-division multiplex), 주파수 분할 다중화(frequency-division multiplex) 등과 같은 다양한 다중 전신·전화 기술이 출현했다. 이어 시분할 다중화 방식은 펄스 코드 변조와 같은 디지털 변 조 방식과 결합되어 다중 전화 분야에 이용되었다.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코드 분할 다중 접속(CDMA) 방식이라는 새로운 다중 무선 전화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실용화되어 세계에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모스 전신이 나온 직후였던 1846년 미국 뉴욕의 발명가 하우스(Royal E. House)는 인쇄형 전신기를 발명해서 모스 전신 체계와 경쟁을 했었다. 발명 초기에 이 인쇄형 전신기는 상업적인 면에서는 모스 전신 체계에 비해 열악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인쇄형 전신 기술 자체는 그 뒤에도 지속적인 기술 진 보를 이룩하면서 현대적인 텔레타이프라이터로 발전해 나갔다. 우선 미국의 음악 교사이자 자연철학 교 사였던 휴즈(David E. Hughes)는 피아노를 흉내낸 28개 키로 종이에 문자가 찍히도록 구성된 전신기 를 고안했다. 또한 프랑스의 전신 교환원이었던 마이어(Bernard Meyer)는 8개 키를 이용해서 한 선으 로 동시에 모스 부호를 전송하는 다중 전신 방식을 고안해 내었다.

1. 보도의 시분할 다중전신 휴즈와 마이어에 이어서 프랑스의 보도(Jean-Maurice-Émile Baudot, 1820 1895)는 휴즈 전신기와 마 이어 전신기의 장점을 최대 한도로 결합해서 가히 통신의 혁명이라 부를 만한 대단히 빠른 전신기를 창 안해 내었다. 즉 그는 1872년 피아노와 유사한 5개 키를 지닌 시분할 다중화 전신 체계를 창안해서 통 신의 역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1877년 보도의 전신 방식은 프랑스 우편 전신국에서 공 식적으로 채용되었는데, 당시에 보도의 이름은 빠른 전신기라는 말로 통했을 정도로 시분할 다중화 전 신 방식은 전신 분야의 기술 진보를 선도했다. 1899년 영국의 도널드 머리(Donald Murray)는 보도의 이 체계를 더욱 발전시켜서 오늘날 우리가 보도 코드라고 부르는 5 비트 전송방식에 바탕을 둔 실용적 인 텔레타이프라이터를 만들어내게 된다. 물론 보도가 처음으로 5 비트 혹은 5 단위 코드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모스와 거의 동시에 독 일에서 전신을 창안했던 가우스와 베버도 전신에 5 단위 코드를 제안했었고, 1860년에는 버넷(W. H. Burnett)이 5 단위 코드를 다중 체계에 사용할 것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보도가 처음으로 실 용적인 면에서 인쇄형 전신을 다중 체계에 성공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5 단위 코드를 흔히들 보도 코 드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 5 단위의 보도 코드는 오랫동안 전신에서 활용되었고, 특히 텔레타이 프라이터 분야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통신 코드로 자리잡았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컴퓨터 통신을 비롯한 디지털 통신이 발전함에 따라 5 단위 코드가 표현할 수 있 는 32 가지 문자보다도 더 많은 문자를 전송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이에 따라 텔레타이프라이터와 함 께 널리 퍼졌던 보도의 5 비트 코드보다 더욱 발달된 새로운 표준화된 전송 코드가 출현하게 되었다. 1963년 미국 표준화 협회(American Standard Association)에서는 통신의 효율성과 신뢰도 면에서 신 호 요소들의 배열을 최적화 할 것이 아니라 정보 처리와 확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새로운 통신 코드를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이리하여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바로 1963년에 제정되어 1965년에 부분적으로 수정된 7 비트 코드를 바탕으로 하는 ASCII(American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 문자 코드였다.

2. 펄스 코드 변조의 출현 주파수 분할 다중화 방식은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주로 아날로그 방식의 통신에 이용되었다. 한편 현대 적인 디지털 통신은 펄스 코드 변조(Pulse-Code Modulation) 방식이라는 새로운 변조 방식이 출현하 면서 시작되었다. 1926년 미국의 레이니(Paul M. Rainey)는 펄스 코드 체계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지 만, 당시에 그의 발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잊혀졌었다. 1937년 국제 전신전화회사(International Telephone and Telegraph Company)의 파리 연구소에서 일하던 영국인 리브스(Alec H. Reeves)는 이 펄스 코드 변조 방식을 재 발명해서 자신의 특허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디지털 통신 방식에 이용할 전기 회로 장치의 발전 수준이 충분치 못해서 거의 이용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벨 전화 회사의 블랙(Harold S. Black) 팀이 전화의 통신 보안에 힘쓰던 미군 통신대를 위해서 최초로 실용적인 펄스 코드 변조 방식을 이용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하지만 초기에 디 지털 통신은 군사용과 같은 특수 목적을 제외하고 민간 분야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트랜지스터와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IC 회로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펄스 코드 변조 방식이 전화 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집적회로의 기술이 놀라운 진보를 하면서 디지털 방식의 통신은 아날로그 방식을 점차로 압도하게 된다. 펄스 코드 방식을 다중 전신이나 다중 전화에 이용하기 위한 방식으로는 우선 시분할 다중화 방식이 있 다. 이것은 보도의 전신 체계에서 보듯이 시간을 분할해서 여러 명이 단일한 회선으로 통화를 할 수 있 게 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 무선 전화 방식에서 사용되고 있는 코드 분할 다중화 방식은 아날로 그 방식에서 사용하던 주파수 분할 다중화 방식이나 기존의 디지털 통신에서 사용하던 시분할 다중화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방식이다. 이 코드 분할 다중 접속(CDMA) 방식에서는 각각의 송신자 에게 코드를 부여하고 수신자는 코드를 해독해서 자신에게 전달하려는 디지털 신호만을 선택해서 더욱 많은 수의 다중 통화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2]

종류

■ IRDA (Infrared Data Association)

IrDA는 적외선 통신 링크에 사용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들기 위해 산업계가 후원하는 조직으 로서 1993년에 결성되었다. 무선전송의 특별한 형태인 적외선 통신에서는, 테라 헤르쯔 또는 트릴리온 헤르쯔에서 측정되는 적외선 주파수 스펙트 럼 내의 모아진 광선이, 정보로 변조되어 송신기로부터 비교적 짧은 거리 내에 있는 수신기로 보내어진다. 적외선 방사는 리모콘으로 T V를 제어하는데 사용되는 것과 같은 기술이다. 적외선 데이터 통신은 노트북 컴퓨터와 PDA,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 무선호출기 등의 대중화에 따라, 이제 무선데이터 통신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것들 또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것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노트북컴퓨터에서 프린터로 문서를 보낸다. - 포켓용 PC를 이용하여 명함을 교환한다. - 데스크탑 컴퓨터와 노트북 컴퓨터 사이에 스케줄이나 전화번호부를 같게 맞춘다. - 노트북컴퓨터에서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멀리 있는 팩시밀리에 팩스를 보낸다. - 디지털 카메라에서 컴퓨터에 이미지를 광선으로 보낸다. 적외선 통신에서는 쌍방의 장치에 모두 송수신기가 있어야한다. 특별한 마이크로칩이 이 기능을 위해 제공된다. 그 외에도, 통신을 동기화시켜주는 특별한 소프트웨어가 하나 또는 모든 장치들에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95 운영체계에서 IR에 관한 특별한 지원이 그 예이다. IrDA-1.1 표준에서, 전송될 수 있는 가장 긴 데이터의 길이는 2,048 바이트이며, 최대 전송속도는 4 M bps이다. IR은 어느 정도 먼 거리의 상호연결에도 사용될 수 있으며, 근거리통신망 내의 상호연결 가능성도 있다. 최장 유효거리는 약 1.5 마일 정도이며, 계획되는 최고의 대역폭은 16 M bps이다. IR은 가시광선을 전송하는 것이므로 안 개와 같은 대기조건에 민감하다.

■ RF (radio frequency) ; 무선 주파수

무선 주파수라는 용어는, 안테나에 들어오는 입력이 전류일 때 무선 방송이나 통신에 적합한 전자기장이 생성되는 특성 을 갖는 교류를 가리킨다. 이러한 주파수들은 무선 통신에 할당된 가장 낮은 주파수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속함)인 9 kHz로부터 수천 GHz 까지 걸쳐 있음으로써 전자기 방사 스펙트럼의 중요한 부분을 커버한다. 무선 주파수 전류가 안테나에 공급되었을 때, 공간을 통해 전파되는 전자기장을 발생시킨다. 이 자계는 때로 무선주파수 자계라고도 불리며, 기술적인 뉘앙스가 좀 덜 섞인 용어로는 "무선파"라고도 부른다. 어떠한 무선주파수 자계라도 파장은 주파수와 반비례 관계를 갖는다. 만약 주파수를 f 라하고 파장을 s 라 하면, s = 300/f 가 된다. 무선 주파수 신호는 전자기 파장에 상응하는 만큼 반비례한다. 9 kHz에서 자유공간 파장은 약 33 km이다. 제일 높은 무선 주파수에서의 전자기 파장은 약 1 mm 정도이다. 무선 주파수 스펙트럼을 넘어 주파수가 증가함에 따라, 전자기 에너지는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UV), X 선, 그리고 감 마선 등의 형태를 갖는다. 무선 장비의 대부분의 형태는 무선 주파수 자계를 사용한다. 코드 없는 전화기나 휴대전화, 라디오 및 T V 방송국, 위성통신 시스템, 그리고 쌍방향 무전기 등은 모두 무선 주파수 스 펙트럼 내에서 작동한다. 일부 무선 장비는 전자기 파장이 무선 주파수 자계보다 짧은 적외선, 또는 가시광 주파수에서 동작한다. 그 예로는 대부분의 T V용 리모콘, 일부 무선 키보드나 무선 마우스 그리고 무선 헤드폰 등이 이에 포함된다. 무선 주파수 스펙트럼은 몇 가지 대역으로 나뉘어진다. 가장 낮은 주파수 대역을 제외하고는, 각 영역은 크기(10의 멱) 순서에 따른 주파수 상승을 의미한다. 아래의 표에 무선 주파수 스펙트럼 내의 여덟 개 대역을 서술하였는데, 주파수와 대역폭의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SHF와 EHT 대역은 종종 극초단파 스펙트럼이라고 불려진다.

■ 이더넷(Ethernet)

1973년 제록스 PARC의 멧칼프가 발명해 CSM A를 동축케이블에서 실현시켜 CSM A/CD 방식을 도입한 방식을 이더넷 이라 한다. 현재 초고속정보통신 1등급 아파트 구축에 사용되는 기술로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방식이다.

■ 홈PNA(Home PNA)

전화선을 이용해서 음성과 데이터를 분리하는 기술로 하나의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전화 및 팩스를 사용하더 라도 전혀 음성이나 데이터에 영향을 주지 않는 국제표준 기술. 5.5∼9.5Hz의 고대역폭을 사용하며 전송거리는 150∼400m이다. 이더넷과 호환가능하며 허브없이 25노드까지 네트워크 구축이 가능하다.

■ PLC(Power Line Communication)

가전제어, 원격검침 등의 응용을 위한 저속용 통신으로 출발해서 최근 구내 모든 장소에 비치된 전력선을 사용, 재배선 이 필요없는 고속의 데이터통신(1∼10M bps)을 제공하는 기술. 220v의 전력선을 사용하며 현재 1M bps의 속도가 가능하고 10M bps의 속도구현을 개발중이며 150∼300m의 거리를 커 버한다. PLC는 저속, 중속, 고속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저속은 수십 bps~10kbps로 조명, 홈 오토메이션 등의 제어용에 이용되 고 있고, 중속은 10k~1M bps로 무인자동검침, 정보가전 등의 데이터 통신에 이용되고 있으며, 고속은 1~10M bps로 가 입자 액세스망 등의 데이터 통신에 이용되고 있다.

■ 블루투스(Bluetooth)

비허가 대역인 2.4GHz ISM (Indestrial Scientific M edical)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며 전송속도는 1M bps로 10m내에서 각 종 단말기들을 접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 블루투스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휴대 정보 통신 기기를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은 채로 다른 정보 통신 기기와 통신할 수 있는 점이다. 블루투스는 근거리, 일대다, 음성과 데이터전송을 위한 무선방식이다.

■ IEEE1394

차세대 홈네트워크 인터페이스 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한 IEEE1394는 모드에 따라 100M bps, 200M bps, 400M bps 등 세 가지 속도로 전송가능한 빠른 전송속도가 특징이다. 이와같은 속도로 디지털 오디오나 동화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가능하며 주변 기기마다 IEEE1394 인터페이스를 제어 할 수 있는 IC를 내장할 수 있기 때문에 PC를 통한 화상회의 등의 응용분야에서 우수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양방향 통신이 뛰어나고 PnP(Plug and Play)를 지원하며 4.5m의 케이블로 연결된다. 현재 CAT 5 UT P케이블을 이용하여 보다 먼 거리를 800~1,600M bps급의 전송속도로 통신할 수 있는 IEEE 1394b의 표준 화가 진행중에 있다.

■ HomeRF(Home Radio Frequency)

HormRF도 비허가 대역인 2.4GHz ISM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며 전송속도는 0.8∼1.6M bps다, 서비스 반경은 50m이며 변복조 FHSS를 사용한다. N:N의 연결형태를 가지며 PC기반의 음성채널 6개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무선랜 벤더들과 PC 및 가전제품 제조업체로 구성된 HomeRF WG에서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802.11을 기초로 한 기존 제품들이 기업 환경에 맞춰져 있고 가정 환경의 특수 요구에 맞추기에는 가격이나 전력 면에서 너무 높 다는 인식 하에 그룹이 형성됐다. 가정 환경에서 이러한 장치들을 연결하기 위한 결과적인 HomeRF 스펙이 SWAP이며, 무선 및 데이터 네트워킹을 지원 하는 공통의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무선랜(Wireless LAN)

무선랜은 기존 유선랜을 대체 또는 확장한 유연한데이터 통신시스템으로 무선주파수(RF) 기술을 이용하여 유선망 없이 도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즉, 유선망에 구속됨이 없이 이더넷이나 토큰링과 같은 전통적인 랜 기술의 모든 이점과 기능을 제공한다. 역시 비허가 대역인 2.4GHz ISM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며 전송속도는 5.5∼11M bps다. 서비스반경은 약 50m 가량이며 1:N의 연결구조와 CSM /CA 프로토콜을 사용하며 데이터전송에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3]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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