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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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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위치

부리람주(태국어: บุรีรัมย์)는 태국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3][4]

개요[편집]

부리람주의 면적은 10,080㎢이며 인구는 1,566,308명(2024)이다. 주도는 부리람이다. 남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깨오주, 나콘랏차시마주, 콘깬주, 마하사라캄주, 수린주와 인접해 있다. 남동쪽은 캄보디아오다르메안체이주와 접한다.

주 문장은 프놈룽 사원을 묘사한 도장은 힌두 신 시바에게 바쳐진 크메르 양식의 사원을 상징한다. 이 사원은 9세기부터 12세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이후 크메르 제국이 아유타야 왕국에 의해 밀려난 후 폐허가 되었다가 현재는 사적공원으로 보존되어 있다.

'부리람'이라는 지명은 즐거움의 도시라는 뜻을 지니며, 지역 주민에게는 살기 좋은 곳으로, 외지인에게는 방문할 만한 도시로 여겨져 왔다. 부리람 지역에는 다양한 크고 작은 석조 사원들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의 찬란했던 문화를 보여준다.

부리람주는 동북부 태국에서 북부 크메르인 인구가 상당히 많은 지역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주민은 이산어(태국 동북부 방언)를 사용하지만, 가장 최근 인구조사에 따르면 약 27.6%의 주민이 일상생활에서 북부 크메르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전통 축제로는 쏭끄란(태국의 설날), 새해 외에도, 음력 5월에 열리는 공덕 쌓기 행사, 불상 목욕과 노인 목욕, '사바' 같은 전통놀이와 줄다리기 등이 있다. 특히 푸타이송(Phutthaisong) 지역에서는 전통 로켓놀이 '방파이(Bang Fai)', 불교 사순절 시작일인 '카오판싸(Khao Phansa)', 그리고 '로이크라통(Loi Krathong)'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2021년 BLACKPINK의 태국인 멤버 리사의 솔로 데뷔곡 LALISA 뮤직비디오에 부리람 주의 대표 유적지가 등장했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방문 증가로 인하여 지역 상인들의 매출이 엄청 올랐다고 한다.

부리람은 스스로를 '스포츠 도시'로 홍보한다. 부리람 유나이티드(Buriram United)는 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팀으로, 리그, FA컵, 리그컵, AFC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홈구장은 태국 내 클럽 소유 경기장 중 최대 규모인 창 아레나(Chang Arena)이다. 또한 창 아레나 인근에는 FIA Grade 1 및 FIM Grade A 인증을 받은 모터 레이싱 경기장인 창 인터내셔널 서킷(Chang International Circuit)이 위치한다.

자연환경[편집]

부리람주의 전반적인 지형은 고원지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점차 낮아지는 구조이다. 완만한 구릉 지대, 계단식 평야, 산악지대가 있으며, 약 90만~10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산줄기 사이로 협곡이 펼쳐진다. 남부는 산악 및 고지이며 중부는 완만한 구릉 지형이며 북부는 문 강 유역의 저지 평야 지역이다.

2017년 11월에는 50년 전 자연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태국 들두루미가 후아이แซง느어 보호구역 습지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부리람주 남부의 산악 지역에는 동야이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따프라야 국립공원이 위치해 있으며, 이들은 동프라야옌–카오야이 세계자연유산 산림지대의 일부로 다양한 희귀 야생동물들이 서식한다. 이 지역은 여러 하천의 발원지로, 최종적으로 문 강으로 흘러든다.

부리람주 연중 세 계절이 있으며 건기는 2월 말 ~ 5월이며 최고 기온 36℃(4월)이다. 우기는 6월 ~ 9월이며 서남몬순이 판놈둥락 산맥에 막혀 강수량은 많지 않으며 한기는 10월 ~ 1월 이며 날씨가 춥고 건조하며 최저 기온은 11℃이다.

역사[편집]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드바라바디 시대, 그리고 특히 고대 크메르 문화에 해당하는 유적과 유물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크메르 문화의 유산으로는 벽돌 사원과 석조 사원이 60곳 이상 존재하며, 도자기 가마터, 도기 유물, 크메르 도자기로 알려진 유물 등이 발견되었고, 그 연대는 서기 10~13세기에 해당한다. 또한 마하프라즈냐 파라미타불(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불상)도 발견되었다.

1776년 라따나꼬신 왕조의 창건자인 라마 1세(프라붓타요파 쭐라록 대왕) 시대에, 무엉 낭롱의 통치자(프라야 낭롱)가 참파삭의 왕족인 짜오오, 짜오인, 우빠핫과 함께 반란을 꾀했다. 이에 프라야 낭롱은 처형되었고, 당시 북부 도시들을 담당하던 짜오프라야 수라시(라마 1세의 이복동생, 마하 수라싱하나트)가 군대를 이끌고 참파삭, 메콩강변 도시, 아타푸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왕족들을 처형하였다. 이후 크메르 빠동, 탈룽, 수린, 상카, 쿠칸 등의 지역을 회유하여 복속시키고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1807년 라마 1세는 해당 지역을 도시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무엉 뻬라 하였으며, 푸타이송의 파이타이만의 아들을 초대 도시 지사로 임명하여 프라야 나콘팍디라는 작위를 주었다. 그는 크메르 빠동인, 라오인, 기타 소수 민족을 다스렸다. 본래 그의 이름은 피아 렉사톤(เพี้ยเหล็กสะท้อน)이며, 아버지는 피아 시팍(พระยาเสนาสงคราม)으로, 푸타이송의 초대 도시 지사였다. 이 가문은 본래 수완나품(현재 례이엣 주 수완나품군)의 관리였으며, 이후 독립하여 푸타이송을 세웠다.

프라야 나콘팍디는 텅 시푸미(ท่งศรีภูมิ)의 왕 짜오 깻몽콘(เจ้าแก้วมงคล)의 후손으로, 란쌍 왕조의 왕실 혈통을 계승하였으며, 이후 이산과 북부 태국의 20개 이상의 도시에 자손들을 파견하여 통치하게 하였다. 예를 들면 수완나품, 례이엣, 콘깬, 마하사라캄, 시사껫, 푸타이송, 부리람, 파크산(라오스), 난 등이다. 따라서 초대 부리람(무엉 뻬) 지사인 프라야 나콘팍디는 란쌍 왕실과 이산 지역의 여러 도시들과 혈연관계를 맺고 있었다.

1827년 짜오 아누웡(Chao Anouvong)이 라오스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군대를 파견해 푸타이송, 무엉 뻬, 낭롱 일대에서 사람들과 식량을 약탈하였다. 이에 프라야 나콘팍디(홍, 프라야 나콘팍디의 아들)가 주민들과 함께 싸웠으나 패배하여 푸타이송으로 도주하다가 채메트 고개에서 포로가 되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라오스군에 의해 례이엣 수완나품 평야에 억류되었으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모두 살해되었다. 이후 태국군이 짜오 아누웡의 군대를 물리친 뒤, 프라야 나콘팍디(홍)의 아들인 루앙 플랏을 무엉 뻬의 도시 지사로 임명하였다. 이는 수적 열세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한 부리람 지도자의 용맹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후 도시의 명칭이 부리람으로 바뀌었으며, 1890년에는 부리람과 낭롱을 북부 라오스 관할로, 푸타이송과 탈룽은 여전히 나콘랏차시마에 소속시키는 행정 개편이 이루어졌다.

부리람의 마지막 도시 지사(프라야 나콘팍디 통디)는 프라야 나콘팍디(홍)의 손자로, 그 이후로는 도시 지사 대신 도지사 체계로 전환되었다. 1897~1898년경, 부리람은 나콘랏차시마 관할구역인 나롱 관구에 재편입되었고, 도시 지사직은 폐지, 프라 랑싼산사킷(เลื่อน)이 초대 부리람 도지사로 임명되었다. 1899년)에는 나롱 관구를 무엉 나롱으로 개명하였고, 관청은 부리람에 두었으며, 지사 인장은 나롱 명칭을 사용하였다. 1901년 8월 3일, 명칭과 관청 명칭 모두를 부리람으로 통일하였다.

1907년 내무부는 행정 개편을 통해 나콘랏차시마 관할로 3개 도시, 17개 군을 편입하였고, 이 중 부리람은 4개 군(낭롱, 푸타이송, 프라콘차이, 랏나부리)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랏나부리는 수린 주 소속이다.

1933년에는 시암 왕국 지방행정법이 제정되어 나콘랏차시마 몬톤이 폐지되고, 전국이 도와 군으로 재편되면서, 부리람은 공식적으로 부리람주가 되었다.

산업[편집]

부리람주는 농업, 상업 분야 모두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주요 작물로는 쌀, 사탕수수, 고무나무가 있으며 기타 작물도 일부 경작되고 있다.

산업 부문에서 주요 산업 지대는 무앙부리람군(도심 지역)에 위치하며, 그 외에도 낭롱군, 럼플라이맛군, 사뜩군 등에도 산업 지대가 분포하고 있다.

사회[편집]

태국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난민들과 인신매매이다. 국제연합으로 부터 최악의 아동 인신매매 국가로도 분류된다. 미국 국무부는 이러한 태국을 북한, 시리아, 이란 등과 함께 3등급(최하 등급)으로 분류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분류했다. 태국은 현재 유엔 추산 200만 명 정도로 무국적자나 난민들이 많은 편이다. 이는 과거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는 공산화,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로 반대 정치 세력에 대한 숙청과 학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고 태국으로 피한 동남아인이 많은 편이다. 태국에 가면 관광 가이드들 중에서 비태국인 가이드들도 있다. 주로 캄보디아인이거나 미얀마인이다. 이들이 박해를 피해 급하게 밀입국을 하다 보니 신분이 말소됐고, 이들이 태국에서 낳은 후손들은 무국적 상태가 되다 보니 붕 떠서 태국 법안에서 벗어나버렸다. 인신매매 브로커들은 난민들의 신분상 허점을 이용해 난민들을 새우 가공공장, 쓰레기장, 노가다 등 태국 내 3D업종으로 팔아버린다. 또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의 로힝야족들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밀입국하기 위해 태국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제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태국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든 흥분하지 않고 태연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갈등을 피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서로 갈등할 여지가 있다면 과민할 정도로 '마이 루우~(몰라)'라고 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는 무책임한 게 아니라 서로 조화로운 방향으로 다시 고려해보자 정도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면 된다.

태국은 타이족이 다수이지만 인구의 20%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하지만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그러듯이 태국은 소수민족들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다. 1950년대에 중국계 태국인인 시 우이(Si Ouey)라는 한센병 환자가 아이들 고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여겨서 아이들을 납치해 살해하고 먹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태국 경찰은 증거도 없이 소수민족들 짓이라고 여기고, 소수민족들이 사는 마을로 들이닥쳐서 인권 탄압을 장난 아니게 저질렀다. 그 와중에 여론까지도 그렇게 여기고 과격파들이 가서 소수민족들의 마을을 일부 불태우는 일까지 저질렀다. 그러나 정작 범인은 소수민족들과 전혀 무관한 인물. 참고로 이 범인은 범죄가 들통나서 체포되었고 정신병원에 갇혀있다가 1959년 9월 16일 사형시켰는데, 시체는 방부 처리되어 태국 방콕에 있는 시리랏 종합병원 부속 의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태국에서도 사람이 구경거리냐며 전시를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다.[5][6]

문화[편집]

태국은 불교의 나라이자 사원의 나라이다. 주민의 95% 이상이 불교 신자이며, 거의 대부분이 소승 불교 신자이다. 태국의 승려들은 한국과는 달리 육식과 음주를 허용하지만 정오 이후의 식사는 금지하며, 여성은 승려와 접촉할 수 없다. 또한 태국에는 아름다운 왕궁과 많은 불교 사원들이 있다. 태국은 왕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대단한 나라이다. 조상에 대한 존경은 태국의 정신적 관습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태국 사람들은 환대하는 마음과 관대한 마음을 가졌으나 강한 사회적 계급 의식도 있다. 태국 문화에서 어른 공경은 중요한 요소이다. 연장자가 항상 가족 대소사를 결정하거나 의례를 주관한다. 태국의 전통 인사법인 "와이"는 두 사람 중 젊은 사람이 먼저 하는데, 이는 손바닥끼리 서로 닿도록 두 손을 모은 다음, 손가락 끝은 위로 향하게 하고 얼굴이 손에 닿도록 머리를 숙여서 하는 인사이다. 이 인사를 할 때는 남자는 "사왓디 크랍", 여자는 "사왓디 카"라는 인사말을 함께 한다. 그러면 연장자가 같은 방법으로 답례한다. 태국의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부모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이며 "와이"를 행한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와이는 타인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인데 이는 인도 문화권의 나마스테와 비슷하다.

이슬람권 국가만큼은 아니지만 주류 규제가 엄격하다. 불교가 음주와 육식에 대해 그리 관대한 종교가 아니라서 그렇다. 물론 태국의 상좌부 불교의 특성 때문에 육식은 자유이다. 승려들은 일해서 음식을 사먹지 않고, 요리를 할 수 없으며 매일 새벽에 돌아다니며 보시를 받아 정오가 되기 전에 식사를 한다. 태국 대부분의 매장은 주류 판매 시간에 제한이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이다. 거의 예외가 없으며, 구입 가능한 시간대에 미리 사둬야 한다. 식당에서도 그 시간에 술을 팔지않는 경우가 있다. 편의점은 술이든 냉장고를 자물쇠로 잠글 뿐만 아니라 아예 보이지도 않게 가리는 곳까지 있다. 클럽에서는 새벽 2시쯤 되면 갑자기 불 켜고 영업을 마쳐야만 한다.

태국의 젊은 세대들은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같은 문화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일본 만화도 옛날부터 많이 전파되어 왔고, 그래서 태국 만화를 보면 일본식 망가 그림체로 그려져있는 경우가 많으며, 만화시장에서도 일본만화의 점유율이 높다. 대형 서점에는 한국에도 정식발매되지 않은 만화나 라이트 노벨 등도 태국어로 번역되어 팔리고 있다. 에까마이의 에까마이 게이트웨이 같은 경우는 쇼핑몰 전체가 일본풍인데, 유카타를 입은 직원들도 있고 일본 만화처럼 메이드복 차림의 직원들을 갖춘 카페도 보인다.

교통[편집]

  • 항공 - 부리람 공항은 주 내 유일한 공항으로, 녹에어(Nok Air)와 타이에어아시아(Thai AirAsia)에서 방콕 돈므앙 공항(DMK) 노선을 운항한다.
  • 고속도로
    • 고속도로 218호선: 부리람 - 낭롱
    • 고속도로 219호선: 반끄루앗 - 프라콘차이 - 부리람 - 반단 - 싸뚝 - 파약카품피싸이 - 양씨수랏 - 나쭈억 - 보라부
    • 고속도로 226호선: 나콘랏차시마 - 찰름프라끼앗 - 짜까랏 - 후아이탈랭 - 람쁠라이맛 - 부리람 - 끄라쌍 - 수린 - 시꼴라품 - 쌈롱탑 - 후아이탑탄 - 우툼폰피싸이 - 씨사껫 - 깐타라롬 - 워린참랍
    • 고속도로 2074호선: 부리람 - 쿠무엉 – 푸타이송
  • 도시 간 교통 - 국영 철도청(SRT)은 부리람 기차역을 통해 방콕, 우본랏차타니 등 주요 도시로의 노선을 운영하며, 나콘랏차시마 등지로의 통근 열차도 있다. 버스는 부리람 버스터미널과 인근의 나콘차이 에어(Nakhonchai Air) 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다.
  • 대중교통 - 부리람 송태우 시스템(BSS)은 부리람 시의 대중교통 수단으로, 두 노선이 있다. 노선 1은 시립시장-카오끄라동 삼림공원, 노선 2는 반부아를 운행하며, 두 노선 모두 분홍색 차량을 운행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이동 부리람주〉, 《위키백과》
  2. 이동 부리람주〉, 《나무위키》
  3. 이동 "จังหวัดบุรีรัมย์", Wikipedia
  4. 이동 "Buriram province", Wikipedia
  5. 이동 태국〉, 《나무위키》
  6. 이동 태국〉,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도시
동남아시아 지리
동남아시아 바다
동남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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