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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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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쥔(雷军)
샤오미(小米, Xiaomi)

레이쥔(雷军, léi jūn)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업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전자회사 중 하나인 샤오미(Xiaomi)의 창업자이다. WPS오피스로 유명한 킹소프트(Kingsoft)와 유씨웹(UCWeb)의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생애[편집]

샤오미 창립자 겸 CEO인 레이쥔은 1969년 중국 후베이성에서 태어나 쟈오완 촌에서 9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창의력이 뛰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곧잘 생각했고 발명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는 고향 학교의 선생이었고 그탓인지 레이쥔은 늘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아쉽게도 한번도 1등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레이쥔은 멘양 사범부속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지역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멘양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87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고 우한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레이쥔은 대학 입학시험 점수로 칭화대학(清华大学)에 갈 수 있었지만 붙지 못할까 두려워 우한대학에 지원했다. 입학시험 점수보다 낮은 대학에 입학한 것이 아쉬워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시절, 그는 빌게이츠스티브잡스를 다룬 실리콘밸리의 불(Fire In the Valley)이라는 책을 접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 책을 읽고 스티브잡스의 기업가 정신 등 많은 것을 느끼고 세계 최고 IT기업을 세우자는 목표를 다졌다.

레이쥔은 초중고 학창시절처럼 대학에서 역시 총명하고 활발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교수들의 총애를 받았다. 2년 만에 졸업에 필요한 대학 4년의 전 과정을 마치고, 대학교 2학년 때에는 이미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심지어 후베이성 공안국에 초빙되어 강의를 하기도 했다. 레이쥔은 2학년 때부터 우한 전자상가에서 현장 실무자들과 기술 교류를 했는데 이 시기는 그의 인생에 있어 많은 도움을 준 시기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전자상가에서 만난 훗날 킹소프트(金山軟件有限公司)의 부회장이 되는 왕촨궈와 리루슝과 함께 중국어 입력시스템인 진산 한카를 모방한 제품을 발명해 싼써라는 회사를 창업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기술유출로 인해 실패했다. 동료의 배신으로 절치부심을 하던 중 추보쥔을 만나 이듬해인 1992년 킹소프트 창립에 참여하였다. 레이쥔은 한 인터뷰에서 그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헛되이 보내지 않은 시기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서의 꿈을 위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과학연구소를 떠나 킹소프트에 입사한다. 오랫동안 킹소프트에 몸 담아 일하며 베이징 킹소프트 연구개발부의 최고책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킹소프트의 상장에 크게 기여해 2007년 킹소프트에서 가장 빛나는 한 해를 맞이했지만, 회사에 남지 않고 오히려 사장직에서 물러났다.[1]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킹소프트의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창업이었다. 그는 2008년 12월 유씨웹(UCWeb)이라는 인터넷 기업의 회장을 맡았다. 모바일 브라우저 제조가 주업으로 중국인도에서 모바일 브라우저, 검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이 업체가 개발해 내놓은 UC브라우저[2]라는 제품은 2014년 3월 기준 사용자가 5억 명에 이른다. 킹소프트의 성공도, 유씨웹의 성공도 그의 벤처인생에선 서막에 불과했다. 그의 인생 대전환점은 샤오미를 창업한 2010년 4월 6일로 기록된다. 2010년 4월 레이쥔은 구글차이나, 모토롤라 베이징연구센터, 베이징과기대 공업설계학부의 교수, 킹소프트의 전 대표 등 초기 멤버 10여 명을 끌어들여 샤오미 테크의 문을 열었다. 그는 6개월 동안 중국 전역을 돌며 창업 멤버를 모았다. 그는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라는 말로 지금이 샤오미를 창업할 기회임을 역설했다.

잘나가는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이사 출신인 그가 41세의 나이에 창업에 나선 것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중국에서도 IT벤처 창업은 주로 20대 초반에 하는 일이다. 40세가 넘은 나이에 창업하는 일은 드물다. 그럼에도 레이 회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젊은이처럼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베이징 정보기술(IT) 클러스터 중관춘(中關村)에 둥지를 틀었다. 베이징 북서부 하이디옌(海淀)구에 자리한 중관촌은 2017년 기준 입주 기업 2만여 개, 연간 매출 4200억 달러(430조5000억원), 해외에서 유턴한 창업자만 2만여 명, 스타트업 3000개, 벤처 투자 규모가 중국 전체 벤처 투자의 3분의 2가 넘는 6조원 이상인 중국 최대의 벤처 클러스터다. 세계 1위 PC기업 레노보와 중국판 구글이라는 바이두, 칭화대(靑華大), 칭화사이언스파크(靑華科技園), 베이징대, 창업거리(innoway), 레전드캐피털, 중국 최대 창업인큐베이터 창신공장(創新工場ㆍinnovaiton works) 등이 줄지어 입주해 있다. 샤오미를 창업한 레이쥔도 여기에 자리 잡았다.[3] 그렇게 2010년 4월, 베이징에서 레이쥔은 샤오미를 창립했다. 창립 맴버들과 좁쌀죽을 마시며 조용히 샤오미를 탄생시켰다. 그후 샤오미는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내며 중국 스마트폰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4]

명언[편집]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세계 최고의 IT 기업가가 되겠다는 어렸을적 꿈을 이룬 레이쥔은 스스로 갈고 닦으면 태풍이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에도 거뜬히 날아오를 수 있다는 의미로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레이쥔이 발견한 3가지 태풍은 전자상거래, 모바일 인터넷, 커뮤니티였고, 마침내 2010년 4월 샤오미를 설립하게 되었다.[5] 그가 2010년 찾아낸 태풍의 길목은 모바일 인터넷이었다. 모바일 인터넷이 향후 10년간 대세가 될 것을 확신한 레이쥔은 7명의 동업자와 함께 샤오미를 창업, 하드웨어펌웨어의 이상적인 결합, 최상의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기업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례 없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레이쥔은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태풍에 편승하여 놀라운 성공을 일군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다음 불어올 제2의 태풍 길목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 그가 찾은 태풍은 사물인터넷(IoT)이었다. 이후 레이쥔은 스마트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사물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태풍에 올라탈 준비에 자본과 연구력을 집중한다. AIoT 역시 그 일환이다. 가성비 높은 스마트폰, 공기청정기, 전동스쿠터, 드론 등 샤오미의 모든 제품을 샤오미 사물인터넷 플랫폼에 연결시키는 것 역시 이러한 미래전략의 일환이다.[6] 보잘것없는 좁쌀을사명으로 쓴 샤오미는 불과 5년 만에 <월스트리트저널>이 평가한 기업가치 460억 달러(약 50조 6,000억 원)에 이르는 회사가 되었다. 2014년 3분기 중국 휴대폰 시장의 점유율 14.8%를 차지하며, 중국에서 삼성전자㈜를 끌어내리고 1위를 차지했다. 세계시장에서도 점유율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7]

별명[편집]

샤오미 CEO인 레이 쥔의 별명은 ‘레이 잡스’다. 레이 쥔에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를 더한 말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레이 쥔을 ‘중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레이잡스(레이쥔 + 스티브잡스)란 별명이 싫다. 샤오미는 애플과 구글, 아마존을 합한 회사다.” 레이쥔은 홍콩 봉황TV와 인터뷰에서 자신을 애플의 전 CEO였던 스티브잡스와 비교하는 데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쥔의 성공배경에 잡스의 그림자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레이쥔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주저없이 잡스를 꼽는다. 스스로에게 잡스의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노력한다. 새 제품을 공개하는 발표 행사 때 스티브 잡스를 떠오르게 하는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원 모어 씽(One more thing)”을 외치는 등 잡스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입히려는 노력을 한다. 레이쥔은 잡스에 대한 독자적 관점을 설명하며 자신의 행보가 단순한 잡스 따라하기가 아님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잡스는 스스로 숭상했던 아름다움을 IT제품에 담았다”며 “아름다움은 인류의 영원한 가치이며 이는 잡스가 추구한 디자인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잡스의 정신을 벤치마킹하려는 레이쥔의 노력은 성공적이다. 레이쥔의 웨이보 팔로어 수는 800만 명에 이른다. 미펀(米粉)이라고 불리는 샤오미 팬들도 상당히 많다. 잡스와 애플의 열혈 추종자들이 많은 것과 비슷하다.[8]

레이 쥔은 자신뿐 아니라 샤오미에도 애플의 이미지를 입히려 노력한다. 우선 스마트폰과 태블릿 디자인은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와 언뜻 보면 헛갈릴 정도로 닮아 있다. 소프트웨어 미유아이(MiUI) 역시 환경만 안드로이드 기반일 뿐 다른 모든 건 iOS와 상당히 비슷하다. 이렇게 애플을 보고 자란 샤오미는 이제 중국에서만큼은 애플보다 몸집을 키웠다. 2013년 이미 중국내 애플의 시장 점유율을 따라 잡았다.[9] 레이쥔은 애플을 대놓고 흉내 냄으로써 소비자를 상대로 중국식 넛지 마케팅을 한 셈이다. 기업 대표가 잡스처럼 차려입고 행동까지 흉내 내면서 품질이나 기술도 애플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상품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불어넣은 것이다. 거기에 가격은 그보다 훨씬 싸니 소비자들이 혹할 수밖에 없다. 샤오미는 혹한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시장을 확대해왔다. 넛지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행동을 이끌어왔다.[3]

각주[편집]

  1. 이주형 기자, 〈(이주형 기자의 세계 대부호 15) 레이쥔 샤오미 회장〉, 《CEO뉴스》, 2022-07-21
  2. UC 브라우저〉, 《나무위키》
  3. 3.0 3.1 채인택 기자, 〈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9) 레이쥔 샤오미 회장〉, 《더중앙》, 2017-12-16
  4. 차이나매거진,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 그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 《네이버 포스트》, 2020-09-16
  5. 레이쥔〉, 《위키백과》
  6. 최재윤 대표, 〈샤오미 CEO, '레이쥔'의 성공 비결〉, 《기술과혁신》
  7. BBDO코리아 정호훈 국장, 〈좁쌀로 세계를 들어올리다〉, 《우체국과사람들》, 2015-05
  8. 이민재 기자, 〈샤오미의 레이쥔은 어떻게 '중국의 잡스'가 됐나〉, 《비즈니스포스트》, 2014-07-14
  9. 권혜미 기자, 〈샤오미 - 사과 열매를 먹고 자란 좁쌀〉, 《블로터》, 2014-11-26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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