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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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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조스(Jeff Bezos)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젋은 시절
아마존(Amazon)
아마존 웹서비스(AWS; Amazon Web Service)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1964년 1월 12일 생으로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에서 태어났다. 아마존(Amazon)의 창업자 겸 대표이사이다. 마이애미 팔메토 하이스쿨을 졸업하였으며 1982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1986년까지 컴퓨터공학 학사로 수석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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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제프 베조스는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주 엘버커키에서 테드 졸겐슨(요르겐센) (Ted Jorgensen, 아버지), 재클린 자이스(Jacklyn Gise,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프의 출생 당시 테드는 18세, 재클린은 17세로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당연히 제프가 태어났을 당시의 성은 베조스가 아니라 졸겐슨(요르겐센)이었다(Jeffrey Preston Jorgensen). 제프가 태어나기 전에 테드와 재클린은 결혼했으나, 17개월 뒤 이혼했다. 곧 재클린은 쿠바 출신 미겔 베조스(Miguel Bezos)와 재혼하여 미겔은 제프의 새 아버지가 되는데, 우리가 아는 베조스라는 성은 그에게서 온 것이다.

미겔 베조스는 아무 밑천 없는 10대 쿠바 이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노력하여 석유기업 엑슨(EXXON)에 입사하고 훗날 경영진에 오르는 등 제프 베조스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는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설립할 때 첫 투자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인터뷰에서 제프는 자신을 키워준 새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낸 바 있다. 제프 베조스에게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이는 외할아버지 프레스톤 자이스(Preston Gise)였다. 프레스톤 자이스는 젊은 시절 미국 국방부의 연구기관인 다르파(DARPA) 우주공학 미사일 방어 시스템 분야의 전문가로 일했으며 원자력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제프 베조스는 16살이 될 때까지 매년 여름 방학을 텍사스(Texas)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보내었는데, 이 때의 경험들이 기업가의 꿈을 키우는데 중요한 영양분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휴스턴의 리버 오크스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IBM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컴퓨터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시간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스타트렉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흔한 게임 폐인 한편으로는 초등학생 시절에 자기 방 출입문에 사이렌 경보장치를 달아서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켜지게 하는 등 아이디어와 기술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평가는 대단히 총명하나 리더의 자질은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주최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실버 기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마이애미 팔메토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제프 베조스는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양자역학을 배우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당시 반에 3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 3-4명의 학우가 자신이 12시간을 걸려 이해하고 푼 문제를 아무 거리낌 없이 풀며 이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물리학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학점 4.2/4.3 만점으로 졸업을 하였다. 훗날 베조스는 인터뷰에서 프린스턴 대학교는 자신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수 없다라는 걸 알려준 동시에 컴퓨터공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다는걸 가르쳐주었다고 밝혔다.

졸업 후 제프 베조스는 유명 대기업인 인텔, AT&T벨연구소, 앤더슨컨설팅의 오퍼를 거절하고 무명의 벤처기업 피텔에 입사하여 통신 프로토콜 프로그래밍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입사 1년 후 기술 및 사업개발담당 부책임자로 승진하였으나 입사 2년 후 퇴사하였다. 제프 베조스는 그 이후 뱅커스 트러스트에 컴퓨터 관리자로 입사하였다. 그는 뱅커스 트러스트 입사 10개월 만에 회사 내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그 이후 제프 베조스는 신생 금융사 D.E. Shaw로 옮겨 테크놀로지 기반 트레이딩 전략팀을 이끌기도 하고 인터넷 기반 사업 구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D.E. Shaw 입사 1년 후 26세의 최연소 부사장, 몇 해 후 수석 부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D. E. Shaw에서 같은 회사 연구원인 매킨지 터틀을 만나 1993년에 결혼을 하였다.[1]

아마존 창업[편집]

1994년 7월 그는 회사를 퇴사하고 시애틀로 출발하였다. 그의 동행은 아내와 인터넷 서점이라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200만 달러의 창업자금을 투자받았는데 그 중에는 제프 베조스의 아버지인 미겔 베조스의 투자금도 있었다.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아버지 미겔 베조스에게 사업 성공 가능성을 30%라고 이야기한 후 아마존닷컴의 주식 58만 2,528주를 팔아 1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 이후 1995년 7월 제프 베조스는 시애틀 자신의 집 창고에서 3대의 워크스테이션을 가지고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

마침내 1995년 7월 16일에 사업을 개시한 아마존닷컴은 창업 일주일 만에 미국 전역과 전세계 45개 도시에 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1996년 5월에는 월스트리트지가 아마존닷컴(Amazon.com)을 일면에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물품 없이 온라인 카탈로그만 존재하는 순수 전자상거래 업체로 출발한 아마존닷컴은 1997년 5월 주당 18달러에 상장됐고 이후 주당 100달러까지 상승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것도 잠시, 리먼 브라더스는 아마존닷컴이 일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결국 이 보고서 발표 후 아마존닷컴은 1주일만에 주가가 19%나 급락하였다. 게다가 뒤이은 2001년 초 닷컴버블의 파장으로 자금 경색이 심화된 아마존닷컴은 최고 100달러였던 주가가 2002년에는 6달러로 추락할 정도의 경영 위기를 겪게 되었다. 결국 아마존닷컴은 2001년 직원 1,300명을 해고한 후 사업 다각화를 실시하게 되는데, 우리가 아는 종합 쇼핑몰로서의 아마존닷컴이 바로 이 때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닷컴버블 붕괴와 경영 위기를 인터넷 종합쇼핑몰로 변신하는사업 다각화를 통해 타개한 제프 베조스는 이후 이북(ebook) 단말기 킨들 시리즈와 킨들 파이어, 그리고 파이어폰 등의 제품과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계속해서 내놓으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하는 경영 전략을 구사하였다.[1]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편집]

제프 베조스의 얘기를 하면서 아마존 얘기를 빼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인생이 곧 아마존의 역사고, 아마존의 움직임이 바로 그의 뜻이기 때문이다. 베조스는 지인 300명을 초청해 홈페이지의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후 1995년 7월 16일 아마존 홈페이지를 정식으로 공개했다. 서비스는 기대 이상으로 빨리 성장했다. 서비스를 개시하고 2년 만에 아마존은 기존 오프라인 상점의 자리를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98년부터 도서뿐만 아니라 음반, 영상물 등 다양한 미디어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유통망과 계약을 맺어 옷, 전자제품, 장난감 등 사용자가 원하는 모든 콘텐츠와 그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실물 콘텐츠뿐만 아니라 전자책, 앱, 게임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취급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파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아마존과 이베이, 옥션 같은 기존 온라인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뭐가 다른 걸까. 콘텐츠 공급자와 만물상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아마존은 책, 음반, 비디오, 게임, 앱 등 콘텐츠와 비디오 게임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반면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콘텐츠보다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품 위주로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현재는 아마존도 여러 유통망과 계약을 맺다 보니 가구부터 운동화까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없게 됐고,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 역시 콘텐츠 판매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어 둘의 차이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둘 다 사이 좋게 만물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콘텐츠 공급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다. 일단 홈페이지 전면에는 언제나 콘텐츠와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만 배치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해 사용자들을 아마존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책 서비스 킨들이다. 지난 2007년 전자책 단말기 킨들과 킨들을 통해 책을 구독하는 서비스를 출시한 후 아마존은 줄곧 미국 전자책 시장 1위를 고수했다. 심지어 2011년부터는 아마존에서 판매된 전자책 수가 종이책을 뛰어넘기까지 했다. 베조스와 아마존은 미국 독자들의 책을 읽는 방식마저 송두리째 바꿨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경쟁자 반즈앤노블(미국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애플, 구글 등이 아마존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아마존의 위치는 확고하다. 아마존은 경쟁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지난해 7월 초강수를 둔다. 월 9.99달러에 70만 권 이상의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구독할 수 있는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다. 읽는 콘텐츠뿐 아니라 음악과 비디오 같은 보고 듣는 콘텐츠 제공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연 99달러에 제품 무료 배송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아마존의 멤버십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무료로 보여주고 있고, 100만 곡 이상의 음악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음악은 애플 아이튠즈, 비디오는 넷플릭스라는 경쟁자가 꽉 잡고 있지만 언제든지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2]

쉽고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편집]

아마존은 정말 매섭게 성장했다. 반즈앤노블, 이베이, 그루폰 등 미국 내 경쟁자들은 아마존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995년 고작 51만 달러(5억 6,000만 원)에 불과했던 아마존의 매출은 2013년 745억 달러(약 82조 원)로 수직 상승했다. 아마존이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쉽고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아마존을 이용한 사용자가 다른 곳에서 제품을 구매한다는 상상 자체를 못하게 했다.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마존만의 독특한 시스템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쉬운 결제를 들 수 있겠다. 1999년 아마존은 미국 특허청에 원클릭(1-Click)이라는 이름의 특허를 등록하고, 이를 아마존 홈페이지에 적용했다. 원클릭은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즉시 주문과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아마존 계정에 신용카드 정보만 입력해두면 즉시 원클릭을 이용할 수 있었다. 주문과 결제가 편리해지니 주문은 폭증했고, 그만큼 아마존의 매출도 급성장했다. 아마존은 결제만큼 환불도 쉬웠다. 당시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제품을 반품하려면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합의가 필요했다. 아마존은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사용자는 제품을 반품하기 위해 판매자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됐다. 배송상자 겉에 적혀있는 주소로 제품을 다시 보내기만 하면 알아서 반품과 환불 처리가 완료됐다. 지금이야 어떤 전자 상거래 사이트든 너무나도 당연한 시스템이지만, 아마존은 예전부터 ‘묻지마 반품’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무조건 남들보다 더 싸게 파는 박리다매 전략도 주효했다. 온라인 쇼핑몰은 오프라인 상점과 직원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한층 저렴한 판매가 가능하다. 아마존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출혈경쟁을 시작했다. 사용자들은 아마존이 내놓는 밑지고 파는 것 아닌지 의심스러운 제품 패키지에 열광했다(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실제로 밑지고 파는 제품이 맞다). 싼 것을 싫어하는 소비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존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실제로 실천에 옮긴 것뿐이다. 웹 페이지 캐시를 활용한 제품 미리 보여주기 기능도 인상적이다. 아마존은 사용자의 웹 브라우저에 남아있는 캐시를 활용해 사용자가 과거에 살펴봤던 제품을 리스트 형태로 다시 보여주는 서비스를 전자 상거래 사이트 가운데 최초로 선보였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이 구매를 망설인 제품을 실제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거뒀다.[2]

성장전략[편집]

아마존은 높은 매출과 달리 영업 이익이 바닥 수준이다. 대부분 그 비율이 1%가 채 되지 않고, 그마저도 적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 이익이 기업의 내실을 판단하는 척도인 점을 감안하면 아마존의 낮은 영업 이익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는 베조스의 고도의 경영 전략이다. 베조스의 경영 철학은 확고하다.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을 주지 않고, 대신 사용자들에게 보다 저렴하게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지배력을 확보하면 낮은 영업 이익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새로운 사업 영역 개척 및 R&D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한다. 아마존은 투자 대신 벌어들인 현금을 투입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R&D 비용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 덕분에 베조스는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베조스는 “성장(Growth)은 낮은 가격구조(Lower Cost Structure)와 낮은 가격(Lower Price)에서 나오고 이는 곧 훌륭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고객 경험은 곧 홈페이지 트래픽 증가(Traffic)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판매자들(Sellers)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판매자가 늘어난 만큼 고객 경험의 질도 한층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베조스가 그린 아마존의 경영전략이다. 그 어디에도 이윤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2]

클라우드 시장을 개척하다[편집]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장사꾼’ 베조스와 ‘전자 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에 대해 알아봤다. 하지만 베조스와 아마존에게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일면이 존재한다. 지난 2002년, 베조스는 아마존 서비스를 구축/유지/관리하는 직원들에게 아마존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모든 서비스 규격을 하나로 통일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할 수 있게 정리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즉시 해고할 것이라는 경고를 함께 담아서. 베조스는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걸까. 블랙 프라이데이사이버 먼데이(미국 추수감사절 다음 금요일과 그 다음 주 월요일)는 4일 동안 기업 연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소비가 이뤄지고, 홈페이지 트래픽도 그만큼 급상승한다. 당연히 아마존에게도 한해 장사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이때 서버가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고 뻗어버린다면? 그때 발생할 손해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베조스와 아마존은 이러한 대규모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서버 규모를 확장했다. 하지만 쇼핑 시즌이 지나자 증설한 서버는 파리만 날리는 잉여 자원이 되어버렸다. 특정 시기에 100만큼의 서버가 필요하다고 해서 110으로 확장했는데, 평소에는 10만큼의 서버만 있어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는 서버를 다른 사업자에게 빌려준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하드웨어인 서버를 다른 사업자에게 빌려줄 수 있을까. 베조스는 먼저 여러 대의 서버를 물리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한 군데에 모아 하나의 거대한 가용자원으로 만들었다. 그 다음 '가상화' 기술을 활용해 다른 사업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서버 자원을 떼어내 빌려주면 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아마존의 다양한 기술을 함께 제공하길 원했다. 막대한 트래픽을 분산 처리하는 기술, 사용자의 유입 경로 및 서비스 이용 패턴을 분석하는 기술, 대용량 이미지를 빠르게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술, 방대한 판매 데이터를 분석/정리하는 기술 등… 이미 아마존 내부에는 아마존 홈페이지를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유용한 기술이 많이 개발된 상태였다. 다만 성장에 맞춰 중구난방으로 개발하다 보니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베조스의 이메일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메일을 보내고 4년 후, 마침내 시장에 아마존의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한다.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 줄여서 AWS라고 부르는 공용 클라우드 서비스(Public Cloud)를 시작했다. AWS는 충격적인 서비스였다. 클릭 몇 번만하면 서버를 증설하거나 축소할 수 있었다. 서버 추가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분 내외였다. 홈페이지 관리자는 트래픽이 증가하는 조짐이 보이면 AWS에 접속해 트래픽에 맞춰 서버 몇 대만 더 증설해주면 됐다. '서버 증설 = 실제 서버 설치'라고 생각하고 있던 기업 구매 담당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서버 자원을 빌려 쓴다'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때문에 실제 서버를 치우고 자사의 홈페이지와 인터넷 서비스를 모두 AWS로 옮기는 회사마저 생겨나게 된다. 기업 활동의 일대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베조스와 AWS의 업적은 기업 비용 절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창인 스타트업(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벤처 기업) 창업 열풍의 토대가 된 것도 그의 업적이다. IT 관련 창업자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 했던 서버에 대한 부담을 혁신적으로 일소한 것이다. 스마트폰이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을 보여줬다면, 베조스와 AWS는 스타트업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셈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주변의 많은 서비스가 AWS 위에서 실행되고 있다. 아마존닷컴이 한국에 진출했든 아니든, 아마존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상태다.[2]

언론에 그의 혁신을 심을 수 있을까?[편집]

2013년 8월 5일, 전세계 언론사는 큰 충격에 빠진다. 베조스가 1877년 창간되어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워싱턴포스트를 2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써 그는 아마존, 블루오리진에 이어 워싱턴포스트까지 3개에 이르는 회사를 보유하게 됐다. 베조스는 언론사를 구매해 무엇을 하려는 걸까. 급변하는 IT 환경 속에서 언론사가 어떻게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는 것은 아닐까? 베조스는 언론사가 콘텐츠(기사)를 팔아서 유지되는 것은 너무 낡은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언론사 역시 기술을 파는 IT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와 함께 워싱턴포스트에서 개발한 콘텐츠 관리 도구(CMS) ‘메소드’의 라이선스를 다른 기업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2]

꼼꼼한 경영자의 어두운 일면[편집]

베조스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아마존 홈페이지 UI(사용자 환경)의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직접 관여한다. 그의 이메일(jeff@amazon.com)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 아마존 사용자 누구나 자신이 아마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그에게 적어서 보낼 수 있다. 베조스는 이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본 후 해당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전달한다. 마지막에 ‘?’라는 단어를 하나 더 추가해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직원을 지정해 직접 명령을 내리는 베조스의 모습은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베조스와 잡스는 닮은 부분이 많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심지어 자신의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을 즉시 해고하는 것까지 닮았다. 앞에 적어놓은 그가 보낸 이메일의 6번째 문장도 ‘해고’를 언급하고 있다. 본사의 직원들이 해고의 두려움에 떤다면, 물류와 유통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낮은 임금과 형편없는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두고 미국과 독일 아마존 직원들이 임금과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너무 긴 근로시간을 줄여달라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국제노조총연맹은 세계 최악의 CEO로 베조스를 지목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베조스와 아마존이 막강한 콘텐츠 유통능력을 앞세워 콘텐츠 제작사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아셰트 작가연합, 보니어, 워너 브라더스, 월트 디즈니 컴퍼니 등 여러 콘텐츠 제작사들과 분쟁을 벌였다. 심지어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마존은 독점적 구매자로서 공급자들에게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고, 그 힘을 남용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베조스와 아마존이 1세대 IT 창업가이자 기업으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혁신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1세대 IT 기업들처럼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아마존은 노동환경까지 열악하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베조스가 진정한 혁신가로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으려면 이렇게 산적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2]

제프 베조스의 키워드[편집]

최초의 아마존닷컴사이트 모습

도전과 혁신[편집]

사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과학 영재는 세상에 정말 많을 것이다. 하지만 베조스가 달랐던 점은 이것이다. 바로 '도전과 혁신'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베조스는 자신의 도전적인 성격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덜 안전한 길을 택한다. 그런 선택이 자랑스럽다" 프린스턴을 수석졸업했음에도 안정적인 대기업이 아닌 벤처기업 피텔(Fitel)을 선택한 것은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이후 돌연 금융업계로 넘어간 그는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Bankers Trust)와 D.E.쇼(D.E. Shaw & Co,)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컴퓨터와 과학을 전공했다가 펀드매니저가 된 것이 큰 도전이었을 텐데 제프 베조스는 투자회사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1994년 30세가 되던 해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이 등장한 1990년대 초 앞으로 매년 인터넷 이용자가 수십 배씩 급증할 것이라는 기사를 읽은 베조스의 머리에 번뜩이는 상상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서점을 열겠다는 것이었고 이 아이디어에서 아마존이 탄생 하였다.[3]

제프 베조스의 경영철학 5가지[편집]

첫 번째, 고객을 중시한다. "We're a customer-obsessed company"라고 아마존을 설명하는 베조스의 제1 원칙은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에 집중하는 것이며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고객이 앞으로 무엇을 원할지를 예측하는 것이 아마존의 존재 이유이다" 경쟁 회사를 볼게 아니라 고객을 보면서경영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치에 집중한다. 아마존은 책 판매로 시작했다. 그러나 베조스는 한 번도 책을 팔아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객에게 단순한 책이 아닌 '편리한 구매'라는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아마존은 수익성보다는 고객이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책을 결제하고 원하는 시간에 받아볼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초창기에 다른 인터넷서점과 달리 편집자와 작가를 뽑아 고객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글을 쓰게 한 것도 고객 가치를 위해서였다.

세 번째, 발명한다. 2013년 제프 베조스는 몰락해가던 종이신문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평가했지만 그는 '새로운 발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말대로 새로운 신문을 개발해가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모바일 앱을 개편했고 뉴스 발행 시스템(CMS)을 새롭게 개발해 워싱턴포스트를 IT기업으로 변모시켰다. 물론 실패의 예도 있습니다. 2014년 자체 스마트폰 '파이어폰'을 발명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베조스는 기죽지 않고 "비판받기 싫으면 새로운 것을 안하면 된다"

네 번째, "데이터가 기반이 된다" 그가 도전과 발명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베조스의 도전은 동물적인 감각에 시작되지만 그 바탕에는 데이터적 엄밀함이 있다. 그는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해서 아마존을 운영하며 사업의 미시구조 역시 꼼꼼히 관리한다. 계약서나 언론 보도자료도 직접 관여하기로 유명하다. 창업 초기부터 베조스는 베타 테스트를 철저하게 검증하였다. 인터넷 서점의 로그인, 검색, 주문, 배송 판매 기록도 특화했다. 독자의 도서 구매 이력을 데이터로 만들어 도서 추천 시스템으로 활용한 것이다.

다섯 번째, 인내한다. 베조스 말합니다. "나는 월가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시작한 대표 서비스가 바로 서버 증설이 어려운 기업에게 남는 서버를 빌려주는 '아마존웹서비스 AWS(Amazon Web Service)'이다. AWS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 왜 하냐는 비난이 많았지만 베조스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키우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는데요, 현재 클라우드 컴퓨터 사업부로 확대되어 아마존의 핵심 서비스가 된 AWS는 아마존의 이익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최고 수익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라고 말하였다.[3]

기타[편집]

블루 오리진[편집]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일론 머스크스페이스엑스(SpaceX)를 세워 우주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베조스도 블루 오리진을 세워 자체 로켓 및 우주선 개발, 로켓 재사용 등을 연구하고 있다. 민간 사업자로서 ULA에 로켓엔진을 납품하는 등 매우 건실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경쟁자 구도로 세워지는게 그 스페이스 X인지라 아무래도 블루 오리진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건 재사용 보다는 오히려 엔진 제품군인 BE-3BE-4. ULA의 러시아 엔진 의존을 멈춰줄 차세대 유망주들이 되시겠다. 발사체 재사용 기술 때문인지, 스페이스X를 직접적으로언급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의식한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발언 후에는 넷상에 퍼져서 스페이스X와 비교되며 조롱 당하는 처지이다. 콩라인 그 자체 실제로 팔콘 9v 1.2 block 4 FT가 날아다니고, 상업적 재사용도 하고, 블록 5는 좀 있으면 나오는데다가, 팔콘 헤비도 1월 중 화성까지 가실 예정인데, 블루오리진은 아직도 뉴 셰퍼드나 가지고 깔짝 거리는 처지이니... 뉴 셰퍼드는 2020년 이전이라는 말만 있지 언제 쏠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불루 오리진은 궤도에 올라간적이 없으니 스페이스X와는 비교가 힘들다. 한참 뒤처지는 걸 베조스가 언플로 대등한 거처럼 보이게 한다는 게 중론이다.[1]

워싱턴포스트 인수[편집]

2013년 8월에 제프 베조스가 경영난에 허덕이던 미국 3대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를 개인 돈 2억5천만 달러로 인수하였다. 인수 이후 워싱턴포스트는 제프 베조스의 지휘 아래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한다. 엔지니어를 대거 고용하고 온라인 컨텐츠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년만에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 방문자가 3배가 증가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영성과와는 별개로 대통령 당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를 너무 심하게 면박을 주다보니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아마존과 워싱턴포스트를 디스하면서 제프 베조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1]

이혼[편집]

2019년 1월 돌연 결혼 생활 25년차인 아내 매킨지와 이혼한다는 뉴스가 떴다. 원인은 베조스의 외도로, 12년 이상 결혼을 지속했을 시 무조건 이혼 때 50:50으로 재산을 나누는 법에 따라, 위자료를 받고 난 후의 매킨지는 세계 4위의 여성 부자가 되며 추가로 베조스가 가지고 있는 아마존 주식도 반토막나서 경영권 보호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결국 매킨지에게 최소 350억 달러(약 39조 8000억, 사실상 40조)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1]

제프 베조스-로렌 산체스, 당당 공개 데이트[편집]

최고경영자(CEO)가 연인인 TV 앵커 출신의 로렌 산체스와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 로저 페더러(스위스·3위)와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1위)의 '2019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을 관람하고 있다. 베조스는 지난 1월 작가인 매켄지와의 25년 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가운데 이혼 배경으로는 산체스와의 불륜 관계가 드러났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4]

제프 베조스 비트코인 채택 가속화[편집]

억만장자 사업가인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수천 개의 위성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릴 계획인 가운데, 한 암호화폐 분석가는 이것이 비트코인 채택을 가속화 시킬 것이라고 주장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약 3,200개의 저궤도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아마존은 이를 통해 위성 인터넷을 구축하고 인터넷에 제대로 접속하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저렴한 초고속 인터넷망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보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엑스 대표이사(CEO)도 지구와 가까운 저궤도에 1만 2천여 개의 위성을 쏘아 우주공간에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지구적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스타링크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지난 5월에 60개를 발사했다.

이에 25일(현지시간)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비트코이니스트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 간의 우주 개발 경쟁(space race)으로 누구나 저렴하게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게 돼 비트코인 채택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트위터 상의 유명 암호화폐 분석가인 리듬트레이더(Rhythmtrader)는 트윗을 통해 "앞으로 저렴한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보편적인 인터넷 접속이 비트코인을 진정으로 "사람들의 통화(currency of the people)"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듬트레이더는 "달러는 국가의 통화이고, 페이스북의 암호화폐인 리브라(Libra)는 기업의 통화이며, 비트코인은 사람들의 통화"라고 덧붙였다.

반면 또 다른 트위터 암호화폐 분석가인 데이브 더 웨이브(Dave the Wave)는 리듬트레이더의 트윗에 대해 "기업들이 '디지털 감시(digital surveillance)'로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미디어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38억 명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광대역 통신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5]

각주[편집]

  1. 1.0 1.1 1.2 1.3 1.4 제프 베조스〉, 《나무위키》
  2. 2.0 2.1 2.2 2.3 2.4 2.5 강일용 IT동아 기자, 〈아마존,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 《네이버 지식백과》, 2015-02-26
  3. 3.0 3.1 박지은 기자, 〈제프 베조스, [CEO 시리즈 공룡을 만든 사나이 '제프 베조스'의 원칙 5가지]〉, 《사이다 경제》, 2018-05-28
  4. 김현승 기자-〈제프 베조스, [웜블던제프 베조스-로렌 산체스, 당당 공개데이트〉,《국제뉴스》, 2019-07-14
  5. 박병화 기자, 〈제프 베조스, 애널리스트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 우주개발경쟁, 비트코인 채택 가속화〉,《코인리더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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