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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화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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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화텅(马化腾, 텐센트 창업자)
텐센트(Tencent, 藤迅)
큐큐(QQ)
위챗(Wechat)

마화텅(马化腾, 마화등, Ma Hua Teng, mǎ huà téng)은 세계 최대 게임 개발, 유통사 텐센트(Tencent)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2019년 3월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리스트에서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이 보유자산 388억 달러(약43조 7000억원)로 20위로 선정되었으며 중국 부자들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1]

현재 마윈과 함께 중국 부자 투톱이며, 포브스, 타임, 포춘 등 세계적인 경제지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로 다루는 인물이다. 마화텅은 중국인들의 국민 메신저인 큐큐(QQ)와 위챗(Wechat)을 만든 인물이다. 2019년 6월 기준 텐센트의 시총은 약 4000억 달러에 달한다. 마화텅의 영문이름은 포니 마(Pony Ma)이다.

생애[편집]

유년시기[편집]

마화텅 회장은 1971년 10월 29일 중국 해남도동팡시팔소항(海南岛东方市八所港, 현재 해남성 동방시)에서 태어나 하이난성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4살터울의 누나가 한명있다. 1984년 13세에 부모를 따라 선젼으로 이사한 후 선젼중학교를 다니고 1989년에 739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선젼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선전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해 천재 해커로 이름을 날렸으며, 졸업 후에는 선젼룬쉰통신발전유한회사(深圳润迅通讯发展有限公司)에서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로 일하며 호출기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한다.[2]

천번째로 얻은 '부'[편집]

1998년, 실용 소프트웨어 개념은 마화텅의 예민한 소프트웨어 시장 감각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많은 이익을 거두게 했다.마화텅은 한 시대를 풍미한 주식카드(股霸卡)의 저자 중 한 사람으로, 친구와 협력하여 개발한 주식카드(股霸卡)는 세그 전자시장(赛格电子市场)에서 줄곧 잘 팔리고 있었다. 마화텅은 또한 친구의 회사를 위해 끊임없이 소프트웨어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이것은 그를 업계 내에서 작게나마 유명세를 타게 하였고 상당한 원시적 축적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마화텅의 첫번째 '부'는 주식시장에서 왔으며 그 하이라이트는 10만원을 70만원까지 만든 것이다. 이는 마화텅에게 독립 창업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2]

텐센트 창업[편집]

1998년 선전대학 컴퓨터공학과 동기인 장즈동(張志東)과 함께 텐센트(Tencent)를 창업하고 쩡리칭(曾李青, 증이청, Ceng Li Qing, céng lǐ qīng), 시유천예(许晨晔, 허진엽, Xu Chen Ye, xǔ chén yè), 천이단(陈一丹, 진일단, Chen Yi Dan, chén yī dān) 3명이 주주로 합류한다. 벤처자금이 투입되지 않고 설립된 소프트웨어 회사로 초기설립자금은 모두 마화텅과 그의 동기들이었다. 마화텅은 3개월 만에 중국판 메신저 QQ(당시 OICQ)를 발표하고 큰 성공을 거뒀다.

2011년에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내놓았는데, 중국 스마트폰 사용자의 대부분이 위챗을 사용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밖에도 마화텅은 포털 사이트, 게임 등 각종 인터넷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며 텐센트를 중국 최대 IT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텐센트는 창업초기 마화텅 회장이 최고경영자를 맡아 회사를 운영하고, 장즈둥이 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아 기술 개발을 전담하기로 했다. 이러한 텐센트의 구조는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장즈둥은 텐센트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로 여전히 마화텅 회장과 함께 텐센트를 이끌고 있다.[2]

소송사건[편집]

초기 발전 과정에서 텐센트는 매우 중요한 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1999년~2000년 경에 ICQ에 따라 개발된 OICQ가 많은 ICQ의 사용자 그룹, 특히 중국 본토 사용자들을 빼앗아, 나중에 ICQ사가 법적 으로 소송했으며 텐센트가 패소하였다. 그리하여 'OICQ'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며 ICQ에 OICQ 도메인 이름을 돌려주고 일정액의 비용을 배상, 후에는 QQ라는 명칭을 사용했다.[2]

자금난[편집]

창업 초기 마화텅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웹페이지를 만들고 시스템 통합, 프로그래밍을 했다. 하지만 시장과 시장의 흐름을 몰라 텐센트의 제품을 들고 나와 운영자에게 판매하다가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다른 인터넷 회사와 마찬가지로 자금과 기술이 텐센트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텐센트가 1999년 2월 첫 중국풍 ICQ, 즉 OICQ를 개발한 뒤 사용자 인기를 끌자 등록자가 폭주해 단기간에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인원이 늘면 서버를 확충해야 하는데 그때는 서버 관리비 2,000위안도 회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2000년 1차 인터넷 거품이 중국 인터넷을 휩쓸면서 텐센트는 가장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었고 자금난에 처했을 때 개발한 ICQ 소프트웨어를 선젼텔레콤 데이터국(深圳电信数据局)에 60만 위안에 팔 뻔했으나 가격 때문에 무산됐다.[2]

길이 열리다[편집]

소프트웨어는 팔리지 않았지만 사용자는 빠르게 성장하고 QQ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투자는 점점 커져 마화텅은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마화텅은 6개 버전을 고치고 20페이지가 넘는 비즈니스 계획서를 가지고 해외 벤처를 찾아 나서면서 결국 IDG(International Data Group)과 PCCW(盈科数码)로부터 첫번째 투자를 획득하고 텐센트는 점차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2]

2004년 6월 16일, 마화텅은 텐센트를 홍콩 거래소 메인보드에 상장시킨다.[2]

정치생애[편집]

  • 2015년 7월 12기 전국청년련 부주석에 선출.
  • 2018년 1월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광둥성)로 선출.
  • 2018년 5월 9일 중국사이버사회조직연합회 부회장에 선출.[2]

도서작품[편집]

2018년 4월 28일, 마화텅의 출판도서 '손가락 끝의 중국(指尖上的中国)'이 정식 출시되었으며 이 도서는 중국이 모바일 상호연결 대국으로서 사회 전반을 변천하는 과정을 그렸다. 책은 각 분야의 매우 신선하고 생동한 사례를 소개했다.[2]

사회 활동[편집]

  • 2015년 12월 16일 제2회 세계인터넷대회 개막식에 참석.
  • 2016년 03월 03일 전인대 대표이인 마화텅은 2016년에는 전국 양후이(两会)에서 '인터넷+' 착지 조치와 공유경제, 인터넷 의료, 디지털 콘텐츠 산업, 인터넷 생태안전에 관한 5가지 권고안을 제시한다.
  • 2016년 06월 16일 중국 '인터넷+' 정상회의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마화텅은 현장에서 업종별로 볼때 인터넷은 하나의 신경제, 새로운 분야뿐만 아니라 자신의 업종과 직결돼 반드시 포용하여야 한다. 지난 1년간, "인터넷+"정보 에너지의 거대한 부능 하에서 통신, 금융, 소매, O2O, 교통 분야 모두에 커다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 2018년 04월 서호대학 창교 이사회 멤버 임명.[2]

경영 전략[편집]

지금의 텐센트를 일궈낸 마화텅의 핵심 경영전략은 '창조적 모방'이다. 텐센트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무선호출기와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휴대전화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무선호출기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고, 마화텅 회장과 동지들은 다른 사업을 찾아야만 했다. 이때 주목한 서비스가 인터넷 메신저다. 당시 인터넷 메신저 시장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만든 'ICQ(I Seek You)'와 미국의 온라인 업체 AOL이 만든 'AOL 인스턴트 메신저'가 양분하고 있었다. 마화텅 회장은 ICQ의 기능에 주목하고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인터넷 메신저 'OICQ(Open I Seek You)'를 출시했다. 이름에 개방을 상징하는 오픈(Open)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 ICQ를 그대로 베낀 유사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OICQ는 난립하는 수 많은 유사품 속에서 차별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개인정보를 이용자 PC에 저장하는 ICQ와 달리 텐센트 서버에 저장해 언제 어디서 접속해도 동일한 친구목록과 대화내용이 보이도록 했다. 여기에 중국 이용자를 위한 기능을 추가해 호응을 이끌어냈다. 베끼되 더 좋게한다. 이것이 텐센트의 핵심 경영전략인 창조적 모방이다. 이를 두고 마화텅 회장은 "텐센트가 작은 회사였을 때에는 성장을 위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야만 했다. 하지만 단순히 모방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해외에서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서 이를 중국 상황에 맞게 현지화하고 더 나은 기능을 추가해 혁신을 이끌어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 ICQ를 인수한 AOL은 텐센트를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고소해 승소를 이끌어냈다. 패소한 마화텅 회장과 텐센트는 OICQ의 이름을 'QQ'로 변경했다. 중국인들의 국민 인터넷 메신저인 QQ는 이렇게 태어났다. QQ는 중국인들을 위한 각종 부가서비스를 추가하며 그 세를 넓혔다. 그에게는 운도 따랐다. 텐센트를 고소한 AOL과 ICQ는 정작 기술 개발을 소홀히해 마이크로소프트 인스턴트 메신저(MSN 메신저)에게 밀려서 시장에서 퇴출되었고, 때문에 AOL과 텐센트의 분쟁도 흐지부지되었다.

2002년 QQ는 이용자수가 1억명을 돌파하는 등 시장에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마화텅 회장과 텐센트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QQ의 이용자수는 많았지만,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몰랐다.

마화텅 회장은 한국 시장에서 그 답을 찾았다. 홈페이지와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싸이월드의 캐시 아이템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바로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지는 않았다. 싸이월드의 비즈니스 모델을 철저히 분석했다. 단순히 예쁜 아이템만 제공하지 않고 실제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해 유명 브랜드의 상품을 QQ 이용자의 아바타에 입힐 수 있는 창조적 모방을 꾀했다.

2003년 출시된 아바타 상품 'QQ쇼'는 텐센트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많은 이용자들이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캐시 아이템을 구매했고, 패션 브랜드들은 QQ쇼에 입점하기 위해 앞다투어 텐센트에 연락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QQ는 중국의 국민 메신저라는 입지를 굳혔다. PC용 인터넷 메신저의 전성기였던 2009년 QQ의 가입자수는 10억명을 돌파했다.

창조적 모방은 텐센트가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0년 모바일 열풍이 불자 QQ의 경쟁자였던 모바일 메신저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몰락했다. MSN 메신저는 페이스북 메신저와 왓츠앱에 밀려 사라졌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메신저 업계를 꽉잡고 있던 네이트온이 카카오톡에 밀려 존재감이 사라지는 등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QQ도 곧 경쟁자와 마찬가지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2010년 마화텅 회장은 자회사를 설립한 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특히 카카오톡을 많이 참고했다. 이를 토대로 2011년 1월 모바일 메신저 위챗(WeChat, 微信)을 선보였다.

위챗은 중국 이용자를 위한 다양한 기능과 간편결제 서비스인 위챗페이를 바탕으로 이용자수를 빠르게 늘려나갔다. 모바일 결제 및 송금, 오프라인 결제, 음식 배달, 쇼핑, 공과금 납부, 택시 호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현금이나 카드 없이 위챗만 있어도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만들었다.

방대한 생태계를 활용해 위챗은 서비스를 개시한지 1년 만에 5000만명, 2012년 9월에는 2억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2017년에는 월실사용자수(MAU)가 10억명을 돌파하는 등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에 이어 업계 3위 자리를 굳혔다. 다른 메신저 업체들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몰락한 것과 달리 마화텅 회장과 텐센트는 PC에서 모바일로 시장이 변하는 것에 대응해 위챗 서비스 생태계를 일궈냈고, 이를 통해 전보다 더 큰 성공을 이끌어냈다.

위챗의 성공은 13억명이 넘는 중국의 막대한 내수시장과 중국 정부가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등의 중국 시장 진입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마화텅 회장과 텐센트가 중국내 경쟁자가 치고 올라오는 것을 견제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위챗을 시장에 안착시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3]

사회평가[편집]

2019년 6월 기준 텐센트의 시총은 약 4000억달러에 달한다. 경쟁사 알리바바를 제치고 근소한 차로 상장된 중국 기업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수 많은 '짝퉁' 서비스를 양산한 '카피캣(Copy cat, 타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그대로 모방한 것을 비하하는 용어)'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공을 일궈냈다. 텐센트가 작은 인터넷 메신저 회사에서 간편 결제와 게임 등을 아우르는 중국 최대 기업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3] 마화텅은 온화하고 겸손한 사람이지만 중국에서는 유명한 스타다. 1998년에 회사를 창업하고 오늘까지 발전했지만 그는 단지 성공적인 기업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외동 자녀 가정과 방대한 모바일 인터넷 인구를 연동시켰다. 마화텅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겸손한 부자이다. 한편, 마화텅은 외국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해 중국화 하는 탁월한 경영 감각을 가졌다고 평가되나 반대로 외국 시장을 모방하고 폐쇄적인 중국 시장을 독점했다는 비판도 받는다.[2]

각주[편집]

  1. 차이나랩, 〈포브스 "중국 최고부자는 마화텅" 外〉, 《네이버 블로그》, 2019-06-06
  2.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马化腾〉, 《百度百科》, 
  3. 3.0 3.1 아주경제, 〈강일용의 CEO열전 카피캣에서 호랑이로? 마화텅의 텐센트 성장 전략〉, 《네이버 포스트》, 2019-06-1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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