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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카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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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카이롱(蔡凱龍, cài kǎi lóng)

차이카이롱(蔡凱龍, 채개룡, cài kǎi lóng)은 중국인민대학(中国人民大学) 핀테크 연구소 고급 연구원이다. 후오비 미국 회사의 대표이사(CEO)를 맡은 적이 있다.

약력[편집]

▷ 차이카이롱

차이카이롱은 중국인민대학 핀테크 연구소 연구원이며 재경평론가이다.

중국의 샤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99년도에 미국에 유학을 다녀가서 경제학 석사,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후에 금융학 박사과정을 다니다가 뉴욕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IRD(Interest rate derivatives) 사업부에 취직하였으며 2008년도 금융위기를 직접 체험하였다. 2011년에 IRD사업부를 정리할 때 핀테크사업부의 전신인 과기전략부로 전근하였다.

2014년 3월에 중국신화사 북미본부의 요청으로 미국 핀테크 발전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14년 6월에 귀국하여 친구들과 IFC 1000 (Internet Finance Club 1000)의 설립운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IFC 1000은 2017년 3월에 중국 민정부(The Ministry of Civil Affairs) 산하 사이트 Chinanpo.gov 에 제출된 미등록 사회조직 리스트에 올랐으며, 2018년 2월에는 비법조직 명단 리스트에 올랐다.[1] 2016년에는 인생의 저조기로 헤메다가 년말에 새롭게 나갈 방향을 선정하고, 2017년에는 58개 문서를 창작하여 28개 미디어 개인 포럼에 발표하였다. 독자들의 클릭수는 3,400만차를 기록하였으며 차이카이롱 본인도 유명한 포럼 평론가가 되었다.

2018년 1월 2일에 후오비 리린 사장의 요청으로 암호화폐 거래소에 정식으로 취직하였으며 그 달 하순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다녀가 후오비 미국회사를 설립하였다. 8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후오비 미국 회사 대표이사직을 그만두었으며 그 뒤에 중국인민대학 핀테크 연구소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2][3]

주요활동[편집]

▷ 후오비 미국회사

2017년 12월의 어느날에 차이카이롱은 후오비그룹의 창시자이자 회장인 리린(李林, 이림)의 요청을 받고 베이징 샹산 등산을 함께 하였다. 2017년에 암호화폐의 붐으로 후오비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차이카이롱도 7월에 후오비의 요청으로 어드바이저가 되고 11월에 사외이사를 맡았다.

등산하는 과정에 리린은 공식적으로 후오비에 가담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후오비의 국제화로 차이카이롱과 같은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설명을 하였다. 리린은 ‘채선생님, 당신도 분야의 전문가이니 아시겠지만 이 산업은 그 많은 사람들이 천년 가도 만나기 어려운 분야이고 기회입니다. 지금 후오비하고 함께 사회에 유익한 일들을 하시고 이후에 다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선택이 노력보다 중요합니다’ 라고 권장을 하였다. 한동안 검토를 한 뒤 차이카이롱은 후오비에 합류하였으며 2018년 1월 2일부터 정식으로 출근을 하였다. 같은 달 20일에 차이카이롱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 떠나 후오비 미국회사의 설립에 나섰다.

후오비 미국회사의 운영은 생각과 같이 쉽지 않았으며 제일 큰 원인은 후오비 미국회사의 중국식 문화와 미국사회의 문화 간의 차이였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암호화폐 거래는 합법적이지 않다. 후오비가 미국의 금융관리 당국에 신고를 하고자 하는 단계에 후오비는 옛날 그대로 미국의 투자자들을 받아 주었으며 이는 미국의 금융관리법을 어기는 행동들이었다. 만약에 미국의 IP를 차단하며 회사에 손실이 크고 계속하면 나중에 사법기관에 사기행위 법적인 책임을 안게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리린이 타협을 하여 미국투자자들의 IP를 막기는 하였으나 이 과정은 참 힘든 일들이었다.

이러는 과정에 본인의 개성상 대표이사(CEO)를 맡아 회사운영을 맡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2018년 8월에 회사를 그만두었다.[2][4]

▷ IFC 1000

2013년 차이카이롱은 도이체방크의 전략과기부 부총재를 맡아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때 IFC 1000 창시자인 황전(黄震) (중국중앙재정경제대학 금융법연구소 소장, 중국핀테크 혁신연구원 원장)을 비롯 한 여러 친구들이 륜번으로 찾아와 귀국하여 창업을 하자고 요청하였다. 그들의 이유는 ‘미국금융업계는 이미 자리가 다 잡혀져 있는 상황이여서 20년을 기다려야 위에 있는 놈들이 자리를 내줄것이지 않겠냐? 중국은 금방 개발하는 단계이니 그 곳에 기회가 있다’ 였다. 친구들의 권장으로 차이카이롱은 중국으로 귀국하였으며 IFC 1000 설립에 나섰다.

시작은 어려웠으며 전직으로는 차이카이롱 하나였다. 그러나 조직은 점차 발전하였으며 후에 12명의 전직인원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차이카이롱은 월스트리트에서 가질 수 없는 인맥과 자원들을 구축하였다. 여기에서 차이카이롱은 리린, 스타 수, 저스틴 선(JustinSun), 장쇼우셩 등 심지어는 차기 금융관리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인물까지 알게 되었다.

후에 IFC 1000은 중국정부의 제한으로 해체되었고 차이카이롱은 레전드 산하의 온라인 금융대출회사 eloancn으로 전근하였다.[4]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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