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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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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왓슨(Thomas John Watson Sr.)

토머스 왓슨(Thomas John Watson Sr. 1874~1956)은 IBM 전 회장이며 최고 경영자(CEO)이다.

개요[편집]

토머스 왓슨은 1987년 2월 17일에 출생하여 미국 뉴욕 주 시골 지방에서 자랐다.[1][2] 토머스 왓슨은 고등학교 졸업 후 뉴욕 주 핑거레이크 부근의 농장지대에서 피아노 같은 악기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근면, 성실감을 자부하고 실적 보너스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그 두 가지 자질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토머스 왓슨은 피아노 세일즈를 그만둔 뒤 정육점을 개업했지만 가게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문을 닫았고, 세일즈 실패와 사업 실패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였다. 그는 지명도가 높았던 사무용품 회사인 엔씨알(NCR)사 버펄로 지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성공의 길로 나아갔으며, 28살이되는 해, 그 회사 워싱턴주의 총책임자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토머스 완슨이 40살이 됐을 때 엔씨알의 회장과 문제가 생겼고, 그는 엔씨알을 떠났다. 그는 전산제표기록회사(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T-R)사에 입사하였고, 1924년 토머스 왓슨은 회사이름을 국제상업기기회사(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로 바꿨고, IBM은 시작되었다.[3] IBM이 컴퓨터 세상에 발을 내민 건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에이켄이 마크1이라는 컴퓨터를 개발할 대 제작비용과 장비를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마크1의 발표회장에서 토머스 왓슨을 뒷자리 좌석에 있었고 언론에서도 IBM의 역할은 별로 언급이 없이, 에이켄 교수만 칭송하였다. 토머스 왓슨은 자신의 대접에 대해 견딜 수 없었고, 그는 마크 1보다 훨씬 뛰어난 컴퓨터를 자체 개발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194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왓슨 연구소'를 세웠고, IBM의 상업적인 시도가 아닌 만들었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1952년, IBM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IBM 701을 개발하고 판매에 돌입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4] 토머스 왓슨은 이렇게 1914년부터 1956년까지 IBM이 국제적으로 성장하는 일을 감독하였으며, IBM 건설에서 그는 가장 잘알려진 인물로 거듭나 있다. 그는 IBM만의 경영방식과 기업 문화를 개발하였으며, 기술을 넘어 교육, 세계 문제 및 예술까지 확대하였다. 그는 1933년부터 1956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의 수탁자였으며, 1937년~1939년까지 국제상공회의소 회장에 임하였다. 자수성가한 지도적인 실업가인 토머스 왓슨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 한명이었고, 1956년 6월 19일 뉴욕에서 죽음에 이르렀고, 세계 최고의 세일즈맨으로 불리기도 했다.[1][2]

경력[편집]

약력
  • 1891년 : 클라렌스 리즐리즈 마켓 경리
  • 1896년 : 엔씨알(NCR) 근무
  • 1914년 : 씨티알(CTR)에 최고 경영자(CEO) 취임
  • 1924년 : IBM 설립
  • 1933년 ~ 1956년 : 컬럼비아 대학교 수탁자
  • 1937년 ~ 1956년 : 국제 상공 회의소 회장
  • 1945년 : 왓슨 연구소 설립
학력
  • 컬럼비아 대학교

주요 업적[편집]

IBM 설립[편집]

토머스 왓슨은 엔씨알에 입사 후 어느 날 사법기관에서 출석요구가 있어 보니, 경쟁회사에서 반독점 금지법 위반 협의로 고소를 당하였다. 그는 1년 징역형을 받고 당시로선 7년 정도 모아 갚을 금액인 5000불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잘못이 이해가 가지 않던 토머스 왓슨은 회사에서 떠나기로 결심하였고, 그는 해고당하였다.[5] 엔씨알 회사에서 해고된후, 시계, 저울, 계산기를 만들던 전산제표기록회사에 입사하였고, 토머스 왓슨 덕분에 이 회사는 부진을 털고 일어섰다.[6] 얼마 뒤, 이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5] 회사는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으며, 1924년 토머슨 왓슨이 50세가 된 해에, 전산제표기록회사의 소유주가 되어 회사 이름을 국제상업기기회사,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머신즈(IBM)으로 바꾸었다. 토머스 왓슨은 자신과 사원 모두 IBM의 대사로 임명하였고, 언제나 회사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했다. 공장의 근로자들도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해야 한다고 느꼈고, IBM 모든 사람은 회사에 소속감을 느꼈고, IBM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전 임직원들을 씽크(Think)의 세계로 몰아 넣었고, 회사 전체를 씽크로 도배 하였다. 현관 입구에도 놋쇠로 만든 씽크를 박았다. 이러한 씽크의 열정으로 전 임직원에게도 물들었고, 얼마 안 돼서 IBM은 미국 최고의 씽크(Think)기업이 되었다. IBM이 씽크였고, 씽크가 IBM 이었다. 1936년, 토머스 왓슨은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었다. 토머스 왓슨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의 해군기지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교와 공동으로 첫 번째 컴퓨터를 개발했다. 그렇게 IBM사가 컴퓨터 산업의 선두주자가 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토머스 왓슨은 IBM의 전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로, 1941년부터 1956년까지 IBM이 국제적으로 성장하는 일을 하였으며, 천공 카드 태블레이팅 머신표 작성기를 계기로 이 기업을 효율성 높은 판매 조직으로 전환시켰다. 1957년, IBM은 미국 1위의 기업이 되었고, 1987년에는 시가 총액 약 79조원으로 세계 1위의 기업이 되었다. IBM은 5900개에 달하는 세계 최다 특허 보유 기업이고, 직원 5명이 노벨상도 받았으며, 가장 창조적인 기업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다. 적자로 인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있었지만, 100년이 넘은 지금도 건재한 IT 선두 기업이며, IBM 재단을 창설하고 지난 100년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회공헌을 한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토머스 왓슨은 IBM을 만들면서 인류를 위해 생각하고(Think), 미래를 위해 생각할 것(Think)을 요구한 것이 IBM의 역사인 셈이다.[6][7] 토머스 왓슨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렇게 토머스 왓슨의 2세, 토머스 왓슨 주니어가 IBM을 이끌게된다.

어록[편집]

  • "가장 엄격한 공사 감독은 매일매일 해야 할일을 메모하는 일이었다."[8]
  • "위험하지만, 독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주시해 따르라. 자신의 생각을 논쟁의 소재가 되도록 하라. 미친놈이라는 꼬리표보다는 어떤 의견에 부합했다는 오명이 더 치명적이다. 자신의 외모, 조직, 행동, 야망, 성취에 대해 항상 생각하라."[9]
  •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승진 시키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뭐가 사실인지를 말하는 반항적이고 고집 센, 거의 참을 수 없는 타입의 사람들을 항상 고대했다.만약 우리에게 그런 사람들이 추운히 많고 우리에게 이들을 참아낼 인내가 있다면 그 기업에 한계란 없다."[10]
  • "나는 처음부터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11]
  • "Success is on the far side of failure." (성공은 실패의 반대편에 있다.)
  • "If you want to succeed, double your failure rate." (성공하려면 실패율을 두 배로 늘려라.)
  • "Wisdom is the power to put our time and our knowledge to the proper use." (지혜는 우리의 시간과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힘이다.)
  • "All the problems of the world could be settled easily if men were only willing to think. The trouble is that men very often resort to all sorts of devices in order not to think, because thinking is such hard work." (정말 큰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정중하고 사려 깊고 관대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항상 모든 사람에게 있다.)[12]

각주[편집]

  1. 1.0 1.1 토머스 J.왓슨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D%86%A0%EB%A8%B8%EC%8A%A4_J._%EC%99%93%EC%8A%A8
  2. 2.0 2.1 왓슨 공식홈페이지 - https://watson.foundation/about/history
  3. 이두용 동기부여 전문기자, 〈기자칼럼 - IBM의 시작 토머스 왓슨〉, 《한국투데이》, 2019-08-05
  4. 울산청년창업센터, 〈생각을 강조하다.! IBM 최고의 경영자 토마스 왓슨을 조명하다.〉, 《네이버 블로그》, 2015-05-20
  5. 5.0 5.1 서경석, 〈Tink1 .....IBM의 탄생은!〉, 《네이버 블로그》, 2016-04-10
  6. 6.0 6.1 이두용 동기부여 전문기자, 〈기자칼럼 - IBM의 시작 토머스 왓슨〉, 《한국투데이》, 2019-08-05
  7. 서경석, 〈Think 2 ....IBM의 토마스 왓슨 이야기.〉, 《네이버 블로그》, 2016-04-14
  8. 스댕블로그, 〈에세이-적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티스토리》, 2020-01-28
  9. 채은이 아빠, 〈유명 기업 최고 경영자의 한마디. (창업자의 명언)〉, 《네이버 블로그》, 2010-09-19
  10. KFQ, 〈경영자 명언 : 토마스 왓슨(IBM 창업자)〉, 《네이버 블로그》, 2018-06-11
  11. 문화창조벤처단지, 〈오늘의 브랜딩 명언레터-by 토머스 왓슨(IBM창립자)〉, 《네이버 블로그》, 2016-11-17
  12. AZ QUOTES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azquotes.com/author/15354-Thomas_J_Watson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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