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조스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1964년 1월 12일 생으로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에서 태어났다. 아마존(Amazon)의 창업자 겸 대표이사이다. 마이애미 팔메토 하이스쿨을 졸업 하였으며 1982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1986년 까지 컴퓨터공학 학사로 수석졸업 하였다.
목차
생애
제프 베조스는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주 엘버커키에서 테드 졸겐슨(요르겐센) (Ted Jorgensen, 아버지), 재클린 자이스(Jacklyn Gise,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프의 출생 당시 테드는 18세, 재클린은 17세로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당연히 제프가 태어났을 당시의 성은 베조스가 아니라 졸겐슨(요르겐센)이었다(Jeffrey Preston Jorgensen). 제프가 태어나기 전에 테드와 재클린은 결혼했으나, 17개월 뒤 이혼한다. 곧 재클린은 쿠바출신 미겔 베조스(Miguel Bezos)와 재혼하여 미겔은 제프의 새아버지가 되는데, 우리가 아는 베조스라는 성은 그에게서 온 것이다. 미겔은 아무 밑천 없는 10대 쿠바 이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노력하여 석유기업 엑슨(EXXON)에 입사하고 훗날 경영진에 오르는 등 제프 베조스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는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설립할 때 첫 투자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인터뷰에서 제프는 자신을 키워준 새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낸 바 있다. 제프 베조스에게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이는 외할아버지 프레스톤 자이스(Preston Gise)였다. 프레스톤 자이스는 젊은 시절 미국 국방부의 연구기관인 DARPA 우주 공학 미사일 방어 시스템 분야의 전문가로 일했으며 원자력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제프 베조스는 16살이 될 때까지 매년 여름 방학을 텍사스(Texas)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보내었는데, 이 때의 경험들이 기업가의 꿈을 키우는데 중요한 영양분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휴스턴의 리버 오크스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컴퓨터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시간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스타트렉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흔한 게임 폐인 한편으로는 초등학생 시절에 자기 방 출입문에 사이렌 경보장치를 달아서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켜지게 하는 등 아이디어와 기술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평가는 대단히 총명하나 리더의 자질은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플로리다 대학에서 주최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실버기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마이애미 팔메토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베조스는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양자역학을 배우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당시 반에 3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 3-4명의 학우가 자신이 12시간을 걸려 이해하고 푼 문제를 아무 거리낌 없이 풀며 이해하는 모습을 바라 보면서 물리학자가 되기를 포기한고 만다. 이후 컴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학점 4.2/4.3 만점으로 졸업을 한다. 훗날 베조스는 인터뷰에서 프린스턴 대학교는 자신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수 없다라는걸 알려준 동시에 컴퓨터 공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다는걸 가르쳐주었다고 밝혔다. 졸업 후 제프 베조스는 유명 대기업인 인텔, AT&T의 벨연구소, 앤더슨컨설팅의 오퍼를 거절하고 무명의 벤쳐기업 피텔에 입사하여 통신 프로토콜 프로그래밍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입사 1년 후 기술 및 사업개발담당 부책임자로 승진하였으나 입사 2년 후 퇴사한다. 제프 베조스는 그 이후 뱅커스 트러스트에 컴퓨터 관리자로 입사한다. 그는 뱅커스 트러스트 입사 10개월 만에 회사내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 이후 제프 베조스는 신생 금융사 D.E. Shaw로 옮겨 테크놀로지 기반 트레이딩 전략팀을 이끌기도 하고 인터넷 기반 사업 구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D.E. Shaw 입사 1년 후 26세의 최연소 부사장, 몇 해 후 수석 부사장이 된다. 그리고 그때 D. E. Shaw에서 같은 회사 연구원인 매킨지 터틀을 만나 1993년에 결혼을 하게 된다.[1]
아마존 창업
1994년 7월 그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출발하게 된다. 그의 동행은 아내와 인터넷 서점 이라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200만 달러의 창업자금을 투자받았는데 그 중에는 제프 베조스의 아버지인 미겔 베조스의 투자금도 있었다.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아버지 미겔 베조스에게 사업 성공 가능성을 30%라고 이야기한 후 아마존닷컴의 주식 58만 2,528주를 팔아 1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 이후 1995년 7월. 제프 베조스는 시애틀 자신의 집 창고에서 3대의 워크스테이션을 가지고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7월 16일에 사업을 개시한 아마존닷컴은 창업 일주일 만에 미국 전역과 전세계 45개 도시에 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1996년 5월에는 월스트리트지가 Amazon.com을 일면에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물품 없이 온라인 카탈로그만 존재하는 순수 전자상거래 업체로 출발한 아마존닷컴은 1997년 5월 주당 18달러에 상장됐고 이후 주당 100달러까지 상승하게 된다.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것도 잠시, 리먼 브라더스는 아마존닷컴이 일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된다. 결국 이 보고서 발표 후 아마존닷컴은 1주일만에 주가가 19%나 급락하게 된다. 게다가 뒤이은 2001년 초 닷컴버블의 파장으로 자금 경색이 심화된 아마존닷컴은 최고 100달러였던 주가가 2002년에는 6달러로 추락할 정도의 경영 위기를 겪게 된다. 결국 아마존닷컴은 2001년 직원 1,300명을 해고한 후 사업 다각화를 실시하게 되는데 우리가 아는 종합쇼핑몰로서의 아마존닷컴이 바로 이 때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닷컴 버블 붕괴와 경영 위기를 종합쇼핑몰 변신이라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타개한 제프 베조스는 이후 이북 단말기 킨들 시리즈와 킨들 파이어, 그리고 파이어 폰 등의 제품과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계속해서 내놓으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하는 경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1]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
베조스의 얘기를 하면서 아마존 얘기를 빼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인생이 곧 아마존의 역사고, 아마존의 움직임이 바로 그의 뜻이기 때문이다. 베조스는 지인 300명을 초청해 홈페이지의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후 1995년 7월 16일 아마존 홈페이지를 정식으로 공개했다. 서비스는 기대 이상으로 빨리 성장했다. 서비스를 개시하고 2년 만에 아마존은 기존 오프라인 상점의 자리를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98년부터 도서뿐만 아니라 음반, 영상물 등 다양한 미디어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유통망과 계약을 맺어 옷, 전자제품, 장난감 등 사용자가 원하는 모든 콘텐츠와 그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실물 콘텐츠뿐만 아니라 전자책, 앱, 게임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취급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파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아마존과 이베이, 옥션 같은 기존 온라인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뭐가 다른 걸까. 콘텐츠 공급자와 만물상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아마존은 책, 음반, 비디오, 게임, 앱 등 콘텐츠와 비디오 게임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반면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콘텐츠보다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품 위주로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현재는 아마존도 여러 유통망과 계약을 맺다 보니 가구부터 운동화까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없게 됐고,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 역시 콘텐츠 판매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어 둘의 차이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둘 다 사이 좋게 만물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콘텐츠 공급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다. 일단 홈페이지 전면에는 언제나 콘텐츠와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만 배치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해 사용자들을 아마존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책 서비스 킨들이다. 지난 2007년 전자책 단말기 킨들과 킨들을 통해 책을 구독하는 서비스를 출시한 후 아마존은 줄곧 미국 전자책 시장 1위를 고수했다. 심지어 2011년부터는 아마존에서 판매된 전자책 수가 종이책을 뛰어넘기까지 했다. 베조스와 아마존은 미국 독자들의 책을 읽는 방식마저 송두리째 바꿨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경쟁자 반즈앤노블(미국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애플, 구글 등이 아마존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아마존의 위치는 확고하다. 아마존은 경쟁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지난해 7월 초강수를 둔다. 월 9.99달러에 70만 권 이상의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구독할 수 있는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다.
읽는 콘텐츠뿐 아니라 음악과 비디오 같은 보고 듣는 콘텐츠 제공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연 99달러에 제품 무료 배송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아마존의 멤버십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무료로 보여주고 있고, 100만 곡 이상의 음악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음악은 애플 아이튠즈, 비디오는 넷플릭스라는 경쟁자가 꽉 잡고 있지만 언제든지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2]
쉽고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
아마존은 정말 매섭게 성장했다. 반즈앤노블, 이베이, 그루폰 등 미국 내 경쟁자들은 아마존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995년 고작 51만 달러(5억 6,000만 원)에 불과했던 아마존의 매출은 2013년 745억 달러(약 82조 원)로 수직 상승했다.
아마존이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쉽고 저렴하게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아마존을 이용한 사용자가 다른 곳에서 제품을 구매한다는 상상 자체를 못하게 했다.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마존만의 독특한 시스템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쉬운 결제를 들 수 있겠다. 1999년 아마존은 미국 특허청에 원클릭(1-Click)이라는 이름의 특허를 등록하고, 이를 아마존 홈페이지에 적용했다. 원클릭은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즉시 주문과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아마존 계정에 신용카드 정보만 입력해두면 즉시 원클릭을 이용할 수 있었다. 주문과 결제가 편리해지니 주문은 폭증했고, 그만큼 아마존의 매출도 급성장했다.
아마존은 결제만큼 환불도 쉬웠다. 당시 일반 전자 상거래 사이트는 제품을 반품하려면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합의가 필요했다. 아마존은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사용자는 제품을 반품하기 위해 판매자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됐다. 배송상자 겉에 적혀있는 주소로 제품을 다시 보내기만 하면 알아서 반품과 환불 처리가 완료됐다. 지금이야 어떤 전자 상거래 사이트든 너무나도 당연한 시스템이지만, 아마존은 예전부터 ‘묻지마 반품’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무조건 남들보다 더 싸게 파는 박리다매 전략도 주효했다. 온라인 쇼핑몰은 오프라인 상점과 직원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한층 저렴한 판매가 가능하다. 아마존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출혈경쟁을 시작했다. 사용자들은 아마존이 내놓는 밑지고 파는 것 아닌지 의심스러운 제품 패키지에 열광했다(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실제로 밑지고 파는 제품이 맞다). 싼 것을 싫어하는 소비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존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실제로 실천에 옮긴 것뿐이다.
웹 페이지 캐시를 활용한 제품 미리 보여주기 기능도 인상적이다. 아마존은 사용자의 웹 브라우저에 남아있는 캐시를 활용해 사용자가 과거에 살펴봤던 제품을 리스트 형태로 다시 보여주는 서비스를 전자 상거래 사이트 가운데 최초로 선보였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이 구매를 망설인 제품을 실제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거뒀다.[2]
제프 베조스의 키워드
도전과 혁신
사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과학 영재는 세상에 정말 많을 것이다. 하지만 베조스가 달랐던 점은 이것이다. 바로 '도전과 혁신'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베조스는 자신의 도전적인 성격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덜 안전한 길을 택한다. 그런 선택이 자랑스럽다" 프린스턴을 수석졸업했음에도 안정적인 대기업이 아닌 벤처기업 피텔(Fitel)을 선택한 것은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이후 돌연 금융업계로 넘어간 그는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Bankers Trust)와 D.E.쇼(D.E. Shaw & Co,)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컴퓨터와 과학을 전공했다가 펀드매니저가 된 것이 큰 도전이었을 텐데 제프 베조스는 투자회사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1994년 30세가 되던 해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이 등장한 1990년대 초 앞으로 매년 인터넷 이용자가 수십 배씩 급증할 것이라는 기사를 읽은 베조스의 머리에 번뜩이는 상상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서점을 열겠다는 것이었고 이 아이디어에서 아마존이 탄생 하였다.[3]
제프 베조스의 경영철학 5가지
첫 번째, 고객을 중시한다. "We're a customer-obsessed company"라고 아마존을 설명하는 베조스의 제1 원칙은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에 집중하는 것이며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고객이 앞으로 무엇을 원할지를 예측하는 것이 아마존의 존재 이유이다" 경쟁 회사를 볼게 아니라 고객을 보면서경영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치에 집중한다. 아마존은 책 판매로 시작했다. 그러나 베조스는 한 번도 책을 팔아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객에게 단순한 책이 아닌 '편리한 구매'라는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아마존은 수익성보다는 고객이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책을 결제하고 원하는 시간에 받아볼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초창기에 다른 인터넷서점과 달리 편집자와 작가를 뽑아 고객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글을 쓰게 한 것도 고객 가치를 위해서였다. 세 번째, 발명한다. 2013년 제프 베조스는 몰락해가던 종이신문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평가했지만 그는 '새로운 발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말대로 새로운 신문을 개발해가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웹과 모바일 앱을 개편했고 뉴스 발행 시스템(CMS)을 새롭게 개발해 워싱턴포스트를 IT기업으로 변모시켰다. 물론 실패의 예도 있습니다. 2014년 자체 스마트폰 '파이어폰'을 발명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베조스는 기죽지 않고 "비판받기 싫으면 새로운 것을 안하면 된다" 네 번째, "데이터가 기반이 된다" 그가 도전과 발명을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베조스의 도전은 동물적인 감각에 시작되지만 그 바탕에는 데이터적 엄밀함이 있다. 그는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해서 아마존을 운영하며 사업의 미시구조 역시 꼼꼼히 관리한다. 계약서나 언론 보도자료도 직접 관여하기로 유명하다. 창업 초기부터 베조스는 베타 테스트를 철저하게 검증하였다. 인터넷 서점의 로그인, 검색, 주문, 배송 판매 기록도 특화했다. 독자의 도서 구매 이력을 데이터로 만들어 도서 추천 시스템으로 활용한 것이다. 다섯 번째, 인내한다. 베조스 말합니다. "나는 월가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시작한 대표 서비스가 바로 서버 증설이 어려운 기업에게 남는 서버를 빌려주는 '아마존웹서비스 AWS(Amazon Web Service)'이다. AWS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 왜 하냐는 비난이 많았지만 베조스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키우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는데요, 현재 클라우드 컴퓨터 사업부로 확대되어 아마존의 핵심 서비스가 된 AWS는 아마존의 이익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최고 수익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라고 말하였다.[3]
블루 오리진
비슷한 삶을 살아온 엘론 머스크가 스페이스 X를 세워 우주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베조스도 블루 오리진을 세워 자체 로켓 및 우주선 개발, 로켓 재사용 등을 연구하고 있다. 민간 사업자로서 ULA에 로켓엔진을 납품하는 등 매우 건실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경쟁자 구도로 세워지는게 그 스페이스 X인지라 아무래도 블루 오리진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건 재사용 보다는 오히려 엔진 제품군인 BE-3와 BE-4. ULA의 러시아 엔진 의존을 멈춰줄 차세대 유망주들이 되시겠다. 발사체 재사용 기술 때문인지, 스페이스X를 직접적으로언급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의식한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발언 후에는 넷상에 퍼져서 스페이스X와 비교되며 조롱 당하는 처지이다. 콩라인 그 자체 실제로 팔콘 9은 v 1.2 block 4 FT가 날아다니고, 상업적 재사용도 하고, 블록 5는 좀 있으면 나오는데다가, 팔콘 헤비도 1월 중 화성까지 가실 예정인데, 블루오리진은 아직도 뉴 셰퍼드나 가지고 깔짝 거리는 처지이니... 뉴 셰퍼드는 2020년 이전이라는 말만 있지 언제 쏠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불루 오리진은 궤도에 올라간적이 없으니 스페이스X와는 비교가 힘들다. 한참 뒤처지는 걸 베조스가 언플로 대등한 거처럼 보이게 한다는 게 중론이다.[1]
워싱턴 포스트 인수
2013년 8월에 제프 베조스가 경영난에 허덕이던 미국 3대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를 개인 돈 2억5천만 달러로 인수하였다. 인수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제프 베조스의 지휘 아래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한다. 엔지니어를 대거 고용하고 온라인 컨텐츠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년만에 워싱턴 포스트 웹사이트 방문자가 3배가 증가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영성과와는 별개로 대통령 당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를 너무 심하게 극딜하다보니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아마존과 워싱턴 포스트를 디스하면서 제프 베조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1]
이혼
2019년 1월 돌연 결혼 생활 25년차인 아내 매킨지와 이혼한다는 뉴스가 떴다. 원인은 베조스의 외도로[17], 12년 이상 결혼을 지속했을 시 무조건 이혼 때 50:50으로 재산을 나누는 법에 따라, 위자료를 받고 난 후의 매킨지는 세계 4위의 여성 부자가 되며 추가로 베조스가 가지고 있는 아마존 주식도 반토막나서 경영권 보호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18] 결국 매킨지에게 최소 350억 달러(약 39조 8000억, 사실상 40조)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1]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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