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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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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146.11.109 (토론)님의 2020년 7월 16일 (목) 17: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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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不確實性, uncertainty)은 장래 일어날 수 있는 사상(事象)에 관해서 인간이 가진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하나의 구분을 말한다. 즉, 불규칙적인 변화로 인해 미래에 전개될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이다. 행정학에서의 불확실성은 의사결정의 행동노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가변적(可變的)이거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개요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힘들어한다. 예를 들어, 학창시절에 숙제를 안 하고 학교에 갔다고 하자. 숙제를 검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체념하고 혼날 각오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 날, 선생님께서 숙제를 검사하실지 안 하실지 모른다면 어떨까? 그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불안에 떨어야한다. 혼날 각오를 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검사를 안 할수도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기에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감이 극대화된다.

극단적인 예로, 도박, 그 중에서도 얼마 전에 열풍이 불었던 비트코인을 들어보자. 비트코인은 가격이 시간대마다 천차만별이기에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 이득을 보는 구조이다. 가격이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 모르기에 코인을 산 사람들은 자신이 산 코인의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처럼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낳고, 사람들은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다. 매달 꽤 많은 돈을 들여가며 보험에 들고, 적금도 들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 일부 사람들은 '오늘의 운세'와 같은 문구를 보며 미래를 알고싶어한다.[1]

불확실성의 문제는 의사결정과 정책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연과학은 물론 모든 사회과학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미래를 설계하고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추구하는 행정학에서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이다.[2]

역사

역사적 관점에서, 불확실성의 문제가 과학계 내에서 항상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과거의 과학계는 불확실성을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 즉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하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물리학자들이 '뉴턴 역학은 분자 수준에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 19세기 후반까지 건재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통계적 역학과 관련된 새로운 방법들이 개발되었고 통계적 평균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것. 즉, 불확실성을 회계처리하는 미시적 실체들의 특정한 발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대량의 미시적 실체의 활동을 요약한 통계량은 적절한 거시적 변수를 가진 모델에서 연결될 수 있다. 그 이후,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았던 뉴턴 역학의 역할과 그 기초 미적분학은 확률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통계 역학, 즉 무작위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형태를 포착할 수 있는 이론으로 대체되었다. 통계 역학의 발달 후,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달성될 수 있고 동시에 불확실성의 양을 계량화한다는 의미에서, 지난 세기에 걸쳐, 불확실성의 영향을 고려하는 과학의 점진적인 추세가 있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과학 모델의 불확실성을 계량하는 데 있어서 선도적인 이론은 확률론이었다. 확률은 1500년대부터 도박꾼들이 운의 게임에서 확률의 법칙을 인식하던 카르다노 시대까지 오랜 사용 역사를 가지고 있다. 뉴턴 시대에 이르러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그 공리와 운영 이론에 부합하는 확률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상대적 주파수 확률과 주관적 또는 개인주의적 확률이다. 후자의 발전은 Rev에 기초했다. 토마스 베이지스의 (1763년경) 조건부 확률을 위한 1763년경)의 강력한 정리. 주관적 확률은 인간의 믿음 정도나 베팅 의지가 이론적 구성 내에서 확률에 대한 수학적으로 일관성 있는 해석이라고 명시했다.

확률 이론을 이용한 불확실성 표현의 점진적 진화는 1937년 맥스 블랙이 그의 학생들과 연구한 것을 시초로, 1965년 로트피 자데에 의한 퍼지 집합의 도입으로 시작되었다. 자데의 연구는 불확실성에 대한 사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유일한 표현으로서 확률 이론뿐만 아니라 확률 이론이 근거한 바로 그 기초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확률 이론과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 논리에 대한 대안의 첫 발전을 더 많은 종류의 불확실성을 다루기 위한 패러다임으로 보았다. 얀 루카시위츠(Jan Lucasiewicz)는 다중 값과 이산논리(circa 1930)를 개발했다. 1960년대에 아서 뎀스터(Arthur Dempster)는 처음으로 무지의 평가 또는 정보의 부재를 포함하는 증거 이론을 개발했다. 1965년, 로트피 자데는 퍼지 집합론이라고 부르는 연속 가치 논리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발표했다. 1970년대에 글렌 샤퍼(Glenn Shafer)는 뎀스터의 연구를 확장하여 둘 이상의 출처로부터 정보를 다루는 완전한 증거 이론을 만들어 냈고, 로트피 자데는 퍼지 집합의 특수한 사례에서 비롯되는 가능성 이론을 설명했다. 이후 1980년대에 다른 조사관들은 퍼지 척도라고 불리던 것의 사용과 함께 증거 이론, 확률 이론, 가능성 이론 사이의 강한 관계를 보여주었고, 지금은 모노톤 척도 라고 불렸다.[3]

  • 경제학
불확실성이란 표현을 경제학에 처음 사용한 것은 프랭크 나이트이다. 그는 불확실성이란 개념과 위험성의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려고 했다. 프랭크 나이트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불확실성과 위험을 다른 것으로 보았다. 위험이란 단어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경제적인 토론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이유에서다. 그에 반해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는 경제학의 이익 개념 이론에서 먼저 등장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담론에서는 불확실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위험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위험은 사건이 일어난다는 확률이고 불확실성은 확률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분류했다.[4]

특징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는 무엇을 위해 결정을 하는가의 목적이 반드시 있다. 이 목적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여하는 요인은 2가지가 있다. 의사결정자가 제어가능한 요인인 '의사결정자의 행동'과 제어불가능한 요인인 '사회ㆍ자연 상태/타인의 전략'이 있다. 이때 제어불가능한 요인에 관해서 의사결정자는 정보의 정확성을 4가지로 분류한다. 확실성, 리스크,

불확실성 회피 성향

불확실성 회피가 낮은 문화권 사람들에 비해서 불확실성 회피가 높은 문화권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대한 포용력이 적어서 높은 수준의 불안감을 표현하고 공식적인 규칙의 필요성을 말하며 사회적 상식에서 벗어난 생각이나 행위에 대한 아량이 적다. 여기서 불확실성 회피는 어떤 문화권 사람들이 일정한 체계가 없어 불명확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감지했을 때 불안해하는 정도를 말한다.

그리고 불확실성 회피가 높은 문화권에서 자신과 남의 공격적인 행위는 허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갈등과 경쟁을 피해 공격성을 견제하는 것을 선호한다. 불확실성 회피가 높은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콘센서스에 대한 강한 욕구를 보인다. 따라서 상식적이지 못한 행위는 수용되지 않는다. 불확실성 회피가 높은 문화권은 또한 불확실성 회피가 낮은 문화권보다 감성을 더 많이 표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확실성 회피가 낮은 문화권은 불확실성 회피가 높은 문화권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고 자아를 감시하는 무의식적 양심의 수준이 낮으며 이의 제기에 관대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

홉스테드의 분석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불확실성 회피성향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위에 언급한 일반적인 경향들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개별 행동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의사결정에 있어 동조에의 압력이 강하고, 자율권한이 주어졌을 때 주체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모방적인 경우가 많으며, 극단적으로,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자체를 포기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불확실성 회피성향은 하나의 성향으로, 정도의 차이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강의를 하며 이십 대 초반 학생들의 극단적인 안정감 추구성향을 확인하고,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뿌리깊은 불확실성 회피성향을 확인할 때면, 병리적인 수준의 ‘사회문제’로 느껴지기도 한다.[5]

  • 리스크와 위험 기피, 그리고 보험
실제 우리 생활에서 확실한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수박을 산다고 했을 때 그 수박을 먹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만족을 할지는 확실치 않다. 즉, 설탕덩어리처럼 달디 단 수박일 수도 있고 반면 무를 먹는 듯 전혀 단 맛이 없는 수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런 수박과 관련된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반면, 주식 시세, 부동산 시세 등 궁극적으로 자신의 재산 또는 돈과 관련된 불확실성에는 아주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도 특별히 돈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별도로 이름을 붙여서 리스크(risk)라고 부른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억원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1억원을 내야하는 경기가 있다. 만약 이 경기에 참여할 것인지 물었을 때 기꺼이 이 경기에 참여한다면 위험 선호자(risk lover)이고, 하지 않는다면 위험 기피자(risk averter)라고 한다. 또한, 위험을 선호하지도 기피하지도 않는 사람은 위험 중립적(risk neutral)이라고 한다.
정확히 정의하자면 이 경기는 1/2의 확률로 1억을 받고 1/2의 확률로 1억을 잃기 때문에 그 기댓값이 0이다. 만약 이 경기를 하지 않으면 당연히 이득은 0이 된다. 따라서 경기를 하든 말든 기댓값은 동일하다. 다만 경기를 하지 않으면 위험이 없고 경기를 하면 돈을 크게 따거나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수반된다. 도박을 즐겨하거나 복권을 사는 등 사람들이 위험을 선호하는 행위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위험에 대해 기피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사람들은 위험을 싫어하기에 투자 수익률이 낮아도 위험이 적은 곳에 투자하는 행위를 자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위험기피적인 성향은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만일 이 세상에 자동차 보험이 없어서 혹시라도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피해자에게 100% 자신의 돈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면 과연 운전을 몇 사람이나 할까? 혹시라도 깜박이 신호를 못 보거나, 재수가 없어서 무단횡단 하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잘못 사고나서 평생 장애가 생긴다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풍요, 가정의 평화 등이 모두 한 순간에 깨질 수 있으므로 사실 운전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다란 사고 없이 평생을 운전하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날 확률은 매우 낮다. 설사 사고가 나더라도 1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했을 때 사고 날 확률이 0.01%라면 운전자의 사고 배상의 기댓값은 10만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운전자가 위험 기피적, 즉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라면 이런 낮은 기댓값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운전을 포기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의 수요가 많아지기에 대중교통을 운행하는 사람 또한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운전을 꺼려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버스 기사가 되도록 하려면 버스 기사의 급여가 엄청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높아진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대중교통의 이용료 또한 지금의 몇 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고, 자연스레 경제가 위축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대신 맡아 준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더라도 부탁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버스 기사를 하고 싶지만 사고의 위험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에게 사고가 나면 회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위험을 대신 감수해 주겠다고 하면 그 운전자는 상당히 큰 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위험을 떠맡기고 싶을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보면 이렇게 위험을 타인에게 전가한 운전자가 낮은 급여를 받더라도 버스를 운전할 것이므로 효율성에 큰 증가가 이루어진다.[6]

불확실성의 부정적인 효과

불확실한 미래는 확실한 미래보다 두렵고 불안하며, 심지어는 불쾌하기까지 할 수 있다. 불확실할 때 우리의 마음은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또는 상대가 어떤 상대인지 파악하기 위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생각, 감정이 우리 머릿속에 더 오래 남고, 부정적인 것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점점 더 부정적인 기분이 든다.

불확실성의 두려움은 공포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불확실한 대상은 확실한 대상보다 두렵다. 공포 영화에서 공포의 대상은 적군의 수장과 같은 확실한 상대이기보다는 귀신 같은 불확실한 상대인 경우가 절대다수이다. 정체도 알지 못하는 존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도망쳐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공포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의 부정적 효과는 감정적 측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헤어진 연인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전 애인에 대한 미련과 애정이 아직 남아있는 사람에게 전 애인이 이따금씩 카톡이나 전화로 연락을 하며 여지를 남겨 놓는다면 어떨까? 당사자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전 애인도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 등이 하루 종일 들게 된다. 흔히 '희망 고문'이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조차 불확실성에서 오는 고통이다. 차라리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해주면 당장은 힘들더라도 서서히 나아지겠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남아있으면 정리도 하지 못하고 고통이 더 오래가기 마련이다.[7]

불확실성의 역설

불확실성은 언제나 우리를 불행으로 몰고 가는, 최대한 없애고 피해야 하는 것일까? 위에서 예시로 든 상황들은 모두 불확실한 '부정적' 사건들과 연관되어있다. 마냥 불확실한 상황이 싫은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불확실성은 때때로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고, 불확실할수록 그 기분이 오래간다. 선물로 받은 선물 상자의 포장을 뜯을 때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시작하기 직전과 같은 기분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간다.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보기 전에 미리 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도 알고 보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아예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신비주의' 전략을 통해 신비로움을 유지함으로써, 즉 불확실성을 남겨 둠으로써 대중의 관심과 호감을 증폭시키는 전략이다. 또한 문학에서 여운을 가져다주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열린 결말' 또한 결말을 맺지 않는 불확실성을 가졌다. [7]

각주

  1. 임낭연, 〈두산백과 - 불확실성〉, 《네이버지식백과》, 2019-10-14
  2. 하동석, 〈이해하기 쉽게 쓴 행정학용어사전 - 불확실성〉, 《네이버지식백과》, 2010-03-25
  3. J.M. Booker, 〈An evolution of uncertainty assessment and quantification〉, 《ScienceDirect》, 2011-05-07
  4. 불확실성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B%B6%88%ED%99%95%EC%8B%A4%EC%84%B1
  5. 金度潤 雜文集, 〈실패하지 않는 삶: 불확실성 회피성향의 덫 Part. 1〉, 《내 삶의 심리학 mind》, 2015-07-25
  6. 불확실성과 정보의 경제학 White paper - http://web.yonsei.ac.kr/_ezaid/board/download.aspx?method=download&pfkHomepageNo=11893&fkBoardEntryPkNo=2&attacheFileChoice=1&pkNo=100399y
  7. 7.0 7.1 임낭연 교수, 〈불확실성의 역설: 때론 불확실할 때 더 행복하다!〉, 《내 삶의 심리학 mind》, 2019-10-14

참고자료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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