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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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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創造)

창조(創造)는 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신(神)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새로운 성과나 업적, 가치 따위를 이룩함'도 창조라 한다.

창작물에서는 파괴, 소멸, 파멸과 반대되며 대립하는 능력이다. 원자나 분자를 조작해 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아예 없던 존재 자체를 만들어내거나 세계를 만드는 능력으로 표현된다.

즉 창조의 능력을 가지면 사실상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일부 창작물에서는 파괴나 소멸 또는 파멸까지 손에 얻는다면 신과 동급의 존재로 각성하게 된다.

창조와 관련된 것들[편집]

  • 창조설 : 창조설(創造說)은 우주 만물이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에 의해 창조됐다는 교리인 창조론을 과학의 영역에 도입하려는 유사과학적 시도에 의한 가설이며, 젊은 지구설, 지구평면설 등과 함께 근본주의자들의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사례이다. 보통 흔히 창조과학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창조설과 창조론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자연과학은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 '가설 → 이론 → 입증'의 순서를 밟는데, 창조설은 해석과 추측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운 소리만 있지, 제대로 된 체계와 추론과정이 없으므로 '이론'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진화론은 실험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과학적 법칙이라기 보다는 과학적 추론이지만, 창조설은 과학적 억측이라 할 수 있다. 창조과학으로 일반에 더 잘 알려진 이 창조설은 19세기 말경 미국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창세기 해석에 의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무렵 통일교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 창조론 : 창조론은 창세 신화로부터 기반하며, 창조 신화를 종교의 교리로서 적용한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창조 신화가 어떠한 '이야기' 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창조론은 '창조에 대한 교훈과 해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신학과 종교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전에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하는 것처럼 세계의 법칙들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현대는 과학이 이를 대체한 상태이다. 과학의 역할 이외에도, 창조론은 '절대자가 세상을 창조한 이유와 방법' 등의 요소를 들어 인간이 살아야 할 방향과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 법칙 등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였다.
  • 천지창조 : 천지창조(天地創造)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창조신화이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져 있는 아담의 창조가 유명하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하나님 야훼라고도 불리는 신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라고 믿고 있다.
  • 창조신
  • 빛이 있으라
  • 현실 조작을 할 줄 아는 캐릭터 및 전지전능 캐릭터들.

창조와 창조력[편집]

창조는 매력이며 가능성의 단어이다. 창조력이 있는 사람은 무언가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돌파구를 마련하여 헤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창조를 추천하며 창조하기를 권한다. 창조가 어디서 나오는지 말하지 않고 '창조', '창조'를 되뇌며 좋은 말만 해댄다. 듣는 사람은 별생각 없이 듣다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뿐이다. 창조란, 어쩌다가 섬광처럼 번쩍이며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달리 창조하려고 노력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기적처럼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사실, 창조는 그렇게 순간적일 수도 있으나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는 더욱더 없는 것이다. 무엇이든 생각할수록 가까워지고 이름을 불러야 다가오고 찾아 나서면 발견하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오든 발견하든 그것을 낚아 채어 필요한 곳에 활용하며 창조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활로를 개척하고 영업을 위하여 열심히 발품을 파는 것은 성과도 있지만 언제나 그랬던 재래식 영업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거래처 창조의 1단계이다. 당연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창조의 2단계이다. 필요한 곳에 접목하는 것이 3단계인 창조화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하던 것을 180도 돌아보고 비틀어보고 내려다보는 시각이라야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의 재능은 타고나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창조하는 힘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자신의 노력에 달렸다. 김정운 교수가 "편집이 창조"라고 하였 듯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창조는 없다. 이미 있었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 새로운 것에서도 더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노력 속에 창조력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창조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다양한 시선, 시각의 차이, 스칼라(크기)보다는 벡터(방향)야말로 창조가 태어나는 씨앗의 지번이다. 이제부터는 창조가 내 것이 아니라고 그냥 듣고 흘려보낼 것이 아니다. 창조력의 근원이 되는 곳에서 목을 빼 돌려보고 쳐다보고 굽어보는 와중에 안보이던 사각지대가 보이는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곧 그 사각지대가 바로 우리가 놓치고, 잊고 있었던 99%의 땀으로 발아된 창조가 꾸물꾸물 양육되어 나오는 창조의 에너지 영역이다. 따라서 창조는 1%의 영감과 독창적 사고라기보다는 그 지번과 지대에서 보고 또 보고 끊임없는 연구와 훈련을 계속한 끈질긴 노력의 소산물이다. 창조화 이후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하여 최선의 환경을 만나는 것은 창조의 마지막 단계이다.

창조경제[편집]

창조 경제(創造經濟, 영어: creative economy)는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주창한 개념으로,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는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대한민국

정보기술을 중심으로 한 첨단과학기술을 산업 전반에 접목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개념으로 추진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였을 당시 핵심적인 경제 공약으로 발표되었고, 집권 후에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한국어의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 즉 첨단기술의 융합을 바탕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경제정책을 일컫는 단어로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존 호킨스가 주창한 개념은 흔히 창조산업이라고 말하고, 한국어의 창조경제는 국가 정책을 일컫는 어휘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를 '창조적 인간,창조적 산업, 창조적 도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체제로 창조적 행위와 경제적 가치를 결합한 창조적 생산물의 거래'로 정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창조경제를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기존의 시장을 단순히 확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중심에는 제가 핵심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있다."고 정의했다.

모호성에 대한 논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비전이 불명확하고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민간 중심의 창조성이 중심이 되어야 할 성장을 정부가 주도하게 되면, 지원을 명목으로 규제가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왔다.

또한, 창조경제의 모호성이 논란이 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 위해 자동차 튜닝, 신도시 사업, 국방 분야, 금융사업 등 가는 곳마다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행보를 보여, '그렇다면 창조경제가 아닌 분야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까지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정책 목표는 무엇이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집권 3년차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201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사전트(70) 뉴욕대 석좌교수이자 서울대 겸임교수가 최근 사석에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구상에 대해 "불쉿(Bullshit·허튼소리)"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창조경제·일자리창출 특별위원회 전체회의 1차회의에서 이만우 의원은 "사전트 교수와 함께 식사를 한 자리에서 그의 제자 한 명이 10여분간 창조경제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고 들은 소감을 물었더니 딱 한마디로 말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창조'와 '창의'의 차이[편집]

창의적 사고에 대한 의미뿐만 아니라 그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공감을 더하기 위해 창조라는 단어와의 비교해보겠다. 우선 창의란 전에 없던 것에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창조와 유사하지만 이 둘의 속성은 다르다. 창조는 결과적 성격이 짙은 반면 창의는 과정적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창조는 뭔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라면 창의는 이를 위한 새로운 탐구와 개발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창의적 활동은 창조적 활동의 선행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창의와 창조의 속성 때문에 각각이 내포하는 가치 역시 다르다. 창조는 우선 결과물을 요구하기 때문에 쉽게 하기 힘든 활동인 반면 창의는 아이디어 선에서 그 의미가 충분하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충분히 창의적 활동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창조적 체험이라고 한다면 어떤 새로운 실행 결과물을 얻는 체험이 되어야 하지만 창의적 체험이라고 한다면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체험이면 된다. 그래서 창조적 활동은 주로 결과물을 요구하는 문화예술 혹은 경제 분야에서 수행되어지는 반면 창의적 활동은 창조적 결과물을 내기 위한 사전 단계 즉 창의적 사고를 함양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주로 교육 분야에서 다루어진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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