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
히타치(Hitachi, 日立, 株式会社日立製作所)는 일본 최대의 전기 전자기기 제조업체로 다국적 기업이다. 자회사로 히타치 화학공업, 히타치 전선, 히타치 금속이 있다. 전자제품, 정보기술, 전력 및 산업시스템, 전자소비재, 기계제품, 금융, 의료기기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2010년 창립 100주년을 맞았으며, 일본 제조산업의 상징이다. 연매출은 9조 엔(한화 약 125조 원)에 이른다. 세계 최초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철도좌석예약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일본 은행의 온라인 결제시스템을 주도한 회사이다. 히타치 그룹의 모회사이며, DKB 그룹 회사의 일원이다. 히타치 그룹의 회장은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 宏明, Nakanishi Hiroaki)이며 CEO는 토시아키 히가시하라(Toshiaki Higashihara)이다. 2020년 기준 영업매출은 8조7670억엔이며 직원 29만5941명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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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920년 설립된 일본의 전기전자산업, 중공업, 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하는 초거대 복합기업이다. GHQ체제 이후로는 일본 수위를 다투는 재벌이다. 창업자는 오다이라 나미헤이(小平 浪平)이며 히타치 제작소라는 사명의 유래는 이바라키현의 히타치시에 있는 히타치 구리 광산이다. 이 광산 작업용 기계수리소에서 일본 최초로 5마력 모터를 자체 개발한 것이 히타치제작소의 기원이다.
2008년엔 전자업계 사상 최대 적자폭인 7,880억엔(당시 환율로는 10조원에 육박)의 적자를 냈다. 심지어 본사 사옥도 팔고 이사 갔다. 하지만 2010년 들어서 다시 대규모 흑자를 기록, 2013년도에는 5,328억엔의 영업이익 및 3,640억엔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해 과거 최고 이익을 갱신했다.
2011년 8월 4일, 갑자기 업계에서 "미쓰비시 중공업과의 사업 합병설이 사실이냐?"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리고 확인되었다. 다만 그 견해차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8월 4일 석간에 경영통합 합의 '환영' 사설과 기사가 나갔는데, 다음날 자정에 일본 각 통신사들은 속보로 "통합 합의를 잠정 유보했다"라고 속보로 타전, 그러다가 결국 화력발전 부문을 2014년 1월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전통적인 제조업을 포기하고 고부가가치 사업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6월, 히타치의 화학 자회사인 '히타치 화성(日立化成)'이 납축전지 데이터 날조를 하다가 발각되는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대상 제품은 약 6만대로 납품처는 약 500사에 달한다고 한다. 복수의 원자력 발전소에도 납입되었다.
2019년 화학 자회사인 히타치 화성을 일본 화학 기업 쇼와 전공에 9,600억엔(약 10조원)에 매각되었다.
2020년에는 스위스의 중전기(重電機) 대기업인 ABB의 송배전 사업을 8조 2,000억원에 인수하여 지멘스 등 경쟁사를 제치고 송배전 사업 분야에서 세계 선두로 올라섰다.
주요 인물[편집]
- 오다이라 나미헤이(小平 浪平, Odaira Namihei, 1874년 1월 15일 ~ 1951년 10월 5일) : 히타치를 설립한 일본 기업가이자 자선가이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약 100km 떨어진 도치기 현에서 태어났다. 1900년 도쿄 제국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그는 광산 회사에 발전소의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전력 회사에 들어갔다. 1906년, 히타치 구리광산의 쿠하라 광산에 엔지니어링 부서장으로 입사했다. 광산에서 그의 주요 임무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보장하고 광산의 전기 장비를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그와 그의 동료들은 5마력 전기 모터의 제조에 착수했다. 이것은 1910년 오다이라에 의해 설립된 히타치가 되는 발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다만 구하라 광산회사의 사내 벤처로 시작했기 때문에 히타치의 소유주는 오다이라가 아니라 구하라 후사노스케 광산회사 사장이었다. 히타치는 1920년에 독립 회사로 설립되었다. 1910년부터 1929년까지 히타치의 전무이사, 1929년부터 1947년까지 사장직을 맡았다. 1947년, 오다이라는 미국 점령당국에 의해 이 직위에서 물러났다. 1951년, 이 명령은 해제되었고, 그는 명예회장으로 회사에 복귀했다. 귀국 직후인 1951년 10월 5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
-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 宏明, Nakanishi Hiroaki, 1946년 3월 14일~ ) : 일본의 사업가로 현재 히타치 회장이다. 2010년 히타치 10대 사장이 되었으며, 2014년에는 회장 겸 CEO로 취임했다. 그는 또한 지진 재해 복구 사업부의 보상 위원회 위원장 겸 총괄 책임자이다. 나카니시는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도쿄 대학에 다녔고, 1970년에 전기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1979년 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나카니시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70년에 히타치 오미카 워크스(Omika Works ) 컴퓨터 제어 설계부에 들어갔다. 그의 첫 번째 관리직은 정보통신 그룹이었다. 1998년, 그는 히타치 유럽의 전무이사가 되었다. 2004년에 그는 수석 부사장이 되었다. 2007년에는 Hitachi America의 회장 겸 Hitachi Global Storage Technologies의 회장이 되었다. 2010년 그는 사장이 되었고, 웨스턴 디지털의 판매를 포함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회사를 재정비하는 스마트 변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2013년에 1억 3700만엔의 보상금을 받았다.[2]
역사[편집]
히타치는 1910년 이바라키 현의 전기 기술자 오다이라 나미헤이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회사의 첫 번째 제품은 구리 광산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일본 최초의 4킬로와트(5mph) 유도 모터였다.
이 회사는 이바라키현 히타치에 있는 쿠하라 후사노스케의 광산회사의 사내 벤처로 시작했다. 오다이라는 1918년에 도쿄로 본사를 옮겼다. 오다이라는 두 개의 간지 문자를 합성하여 회사의 이름을 만들었다. 히(日)는 태양을 의미하고 타치(立)는 "상승"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많은 공장들이 파괴되었고, 전쟁 후 불협화음이 일어나면서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창업자 오다이라는 회사에서 퇴출되었고 히타치 조센 주식회사는 퇴출되었다. 전쟁 후 히타치의 재건 노력은 1950년 노동 파업으로 인해 방해를 받았다. 한편, 히타치는 1949년에 공개되었다.
히타치 아메리카는 1959년에 설립되었다.
소련은 1975년에 에어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바쿠(Baku) 공장은 일본 기업 히타치(Hitachi)의 인가를 받아 설립됐다. 소련의 에어컨 생산량은 연간 약 50만 대로 부족했다. 하지만 에어컨은 큰 자부심의 문제였다. 주로 창문 에어컨이 생산되었으며 대부분의 출력을 내보냈다.
히타치 유럽 주식회사는 1982년에 설립되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히타치는 125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으며, 이는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손실이었다. 이에 따라 히타치는 2021년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수의 사업부와 사업부를 구조조정하고 매각했다.
2011년 3월, 히타치는 자사의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자회사인 HGST를 웨스턴 디지털(Western Digital)에 43억 달러 상당의 현금과 주식을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EU 위원회와 연방무역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의 WD 및 Seagate Technology의 이중화 우려로 인해 히타치의 3.5인치 HDD 사업부는 토시바(Toshiba)에 매각되었다. 거래는 2012년 3월에 완료되었다.
2012년 1월, 히타치는 일본에서 텔레비전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2년 9월, 히타치는 수백만 년 동안 정보를 보존할 수 있는 쿼츠 글라스를 사용한 장기적인 데이터 솔루션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 10월, 히타치는 영국에 본사를 둔 원자력 회사인 Horizon Nuclear Power를 인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회사 E.ON 과 RWE 로부터 7 억 파운드에 영국에 최대 6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 할 계획이었다. 2012년 11월, 히타치 중공업과 미쓰비시 중공업은 화력발전 사업을 합작하여 미쓰비시 중공업이 65%, 히타치 중공업이 35%를 소유하기로 합의하였다. Mitsubishi Hitachi Power Systems(MHPS)라는 이름의 합작 회사는 2014년 2월에 운영을 시작했다.
2015년 10월, 히타치는 Johnson Controls와 계약을 체결하여 히타치의 HVAC 사업을 인수하는 합작 회사를 설립하였다. 히타치는 그 결과로 생긴 회사인 Johnson Controls-Hitachi Air Condition의 지분 40%를 유지했다. 2016년 5월, 히타치는 IoT에 28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참사와 대부분의 일본 원자력 발전소의 일시적 폐쇄된 이후 히타치 원전 사업은 수익성이 떨어졌고 2016년 히가시하라 도시아키 히타치 최고경영자(CEO)는 일본이 다양한 경쟁 원자력 기업의 합병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타치는 2016년에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과 함께 SILEX 기술 레이저 우라늄 농축 합작회사의 가치에서 약 650억 파운드의 결손 떠안게 되었다.
2017년 2월, 히타치와 혼다는 전기 자동차용 모터 개발, 생산, 판매를 위한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또 2017년에는 사모펀드 KKR이 히타치코쿠사이(히타치 자회사) 반도체 장비 사업부를 인수해 코쿠사이전기(Kokusai Electric)가 됐다. 2019년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 Inc.)는 KKR로부터 코쿠사이전기을 22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018년 히타치는 시장점유율이 1%로 떨어져 일본에서 TV 판매를 중단하고 기존 딜러 네트워크를 통해 소니 TV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2018년 3월 14일, 줌데이터(Zoomdata)는 일본의 빅데이터 분석 시장 개발을 돕기 위해 Hitachi INS Software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2018년 12월, 히타치는 ABB의 전력망 사업부의 80%를 64억 달러에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히타치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구조조정과 매각을 통해 일본 내 상장 그룹사와 통합 자회사 수를 각각 22개에서 4개로, 400여 개에서 202개로 줄였다. 조만간 IT 및 인프라 정비 전문 기업으로 도약할 계획이다.
2019년, 히타치는 후지필름에 17억 달러에 의료 영상 사업을 매각했다. 쇼와덴코(Showa Denko)는 히타치와 다른 주주들로부터 주당 42.97달러에 Hitachi Chemical을 인수했다. 그때까지 히타치화학은 그룹의 핵심 유닛으로 여겨져 왔다. 히타치 또한 진행하기에 적절한 "사기업으로서의 경제적 합리성"을 제공하지 못함에 따라 영국 자회사인 Horizon 원자력 발전의 ABWR 개발을 중단했다.
2019년 10월, 히타치와 히타치 자동차 시스템의 4대 자동차 부품 사업인 Showa, Nissin, Keihin을 통합하기 위한 Hitachi Astemo라는 이름의 "메가 공급업체"가 2021년 1월에 탄생했다.
2020년 9월, 히타치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한 자금 문제 때문에 글로스터셔와 웨일즈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보류했다. 같은 달, 히타치캐피탈은 2016년 히타치 자회사에 투자한 2대 주주이자 사업 파트너이자 전 경쟁사인 미쓰비시 UFJ 리스가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 11월에는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마지막 남은 상장법인인 히타치금속과 히타치건설기계가 그룹에서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히타치는 지난 12월 터키 아르셀릭에 해외 가전사업 지분 60%를 미화 3억 달러에 매각했다.
제품 및 서비스[편집]
자동차 시스템
전자 시스템 및 장비
정보 통신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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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기계
고급 재료
전력 시스템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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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시스템
사회 기반 시설과 산업 시스템
디지털 미디어 및 소비자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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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치 아스테모[편집]
히타치 아스테모(Astemo)는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에 크게 공헌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2021년 1월, 히타치 오토모티브 시스템즈, 케힌, 쇼와, 닛신공업(日信工業) 4개사가 통합된 회사로 탄생했다. 히타치 Astemo는 자동차를 위한 전동 파워 트레인, 선진 섀시, 자율 운전·선진 운전 지원 시스템과 이륜차용 시스템의 분야에서, 각사의 강점을 융합한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의 제공을 통해서, 교통사고나 정체 등의 사회가 안는 문제의 해결과 배기가스의 클린화나 연비 개선을 통한 환경 부하의 저감 등, 지구와 사람에게 좋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의 실현에 공헌하고 있다.
'선진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에 공헌하는 기술을 통해 안전하고 쾌적하고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 라이프를 제공한다'는 기업의 의지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Advanced Sustainable Technologies for Mobility'의 머리 글자를 연결해 Astemo(아스테모)라고 명명했다. 히타치 아스테모는 약 9만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CEO는 브리스 고흐(Brice Koch)이다.
제품 시스템[편집]
- 파워트레인시스템(엔진, 전동) : 고효율엔진시스템, 저배출파워트레인시스템, 고효율구동모터, 고출력인버터
- 섀시시스템 : 서스펜션 시스템, 모터파워조향시스템, 제어시스템.
- 자율주행, 주행지원시스템, 인터넷 : 환경식별센서, 자율주행 ECU, OTA 기반 제어소프트웨어 기술
- 오토바이 시스템
한국과의 관계[편집]
LG그룹과 연관이 깊어,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시절 1960년대 말부터 히타치와 제휴했다. 또한 오티스 엘리베이터와 제휴하기 전까지 엘리베이터 부문에서 히타치와 기술제휴를 했다. 현재 합작 사업으로는 히타치 계열인 LG히다찌, Hitachi-LG Data Storage와 LG그룹 계열인 LG-히타치워터솔루션이 있다. 이 외에 현재는 LS산전 등의 회사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에 걸쳐 대우중공업에서 히타치 굴삭기를 절찬리에 라이선스 생산했던 덕분에 히타치 굴삭기는 국내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한국이 수입자유화를 하기 이전이라 사실상 보호무역의 틀 안에서 기술제휴 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지금의 중국이 행하는 사업관행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여기있는 제휴 사례들은 정식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철도 분야에서는 1944년에 데로2형 전기기관차를 납품하였으며, 1974년 대한민국이 최초로 서울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때 히타치제작소에서 제작된 전동차를 도입하였으며, 2009년 누리로 열차 및 대구 3호선 전동차도 히타치와의 기술제휴로 제작되었다.
설립 시기에서 짐작가능하듯이 이 회사도 소위 '전범기업'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지금까지도 주로 합작회사를 통해 사업을 해오고 있어서 기껏해야 굴착기나 하드디스크 제조사 정도로나 명성이 있는 편인데다, 대표적인 욕받이인 미쓰비시 그룹에 가려서 존재가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각주[편집]
- ↑ "Namihei Odaira", Wikipedia,
- ↑ "Hiroaki Nakanishi", Wikipedia,
참고자료[편집]
- 히타치 글로벌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hitachi.com/
- 한국히타치그룹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hitachi.co.kr/
- 〈히타치(기업)〉, 《나무위키》
- 〈히타치〉,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히타치 제작소〉, 《위키백과》
- "Hitachi", Wikipedia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