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링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역사) |
(→역사) |
||
12번째 줄: | 12번째 줄: | ||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기술은 정보검색과 활용에서 혁명을 가져온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기까지 수 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의 웹(web)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웹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꾸며 거대한 문화적 혁명을 일으켰지만 아직도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가 생각한 '진정한 웹'은 구현되지않은 상태다. 좀 더 편하고 완벽한 정보 연결과 지식의 학습을 위해 웹은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팀 버너스 리가 생각하는 '정보의 연결을 통한 지식의 공유와 학습'은 그 이전부터 많은 학자들이 꿈꾸던 일이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어쩌면 거의 반세기 동안 하이퍼링크 구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던거와 같은 셈이다. 1965년에는 테드 넬슨이 메멕스에서 제시된 개념을 실제로 정리해 하이퍼텍스트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사실 'hypertext'는 넬슨이 1963년부터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정식으로 지면에 나온게 1965년이기에 1965년을 'hypertext'의 출현 해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하이퍼텍스트는 연속적으로 적어야 하는 종이와 달리 좀 더 유연한 비선형(비연속적) 방식의 표시방식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종류 문서를 저장하고 이들 문서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제나두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를 위해 비선형 쓰기를 쉽게 해주고, 사용자가 전자문서의 경로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글틀을 생각한다. 그가 정희한 바에 따르면 비연속적 쓰기와 사용자가 선택한 것을 대화식 화면으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말하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하이퍼텍스트의 개념과 일치한다. 2년 뒤인 1967년에 브라운 대학의 앤디 반담(Andy van Dam)은 테드 넬슨의 하이퍼텍스트를 구현한 시스템을 창안하고 넬슨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는 하이퍼텍스트 에디팅 시스템(HES)을 만들어 전자문서 작성의 길을 열었는데, 최초의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1968년에는 이런 과정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GUI 방식의 선구자로 불리는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Carl Engelbart)는 계산기 분야에 머물렀던 컴퓨터 사용 분야를 일상생활분야로 확장한다. 엥겔바트는 1968년 12월 9일, 멘로파크 스탠포드 연구소의 'Augmentation Research Center'에서 90분 간의 공개 시범을 보인다. 여기에서 그가 1962년부터 연구한 'agument' 관련 결과물과 NLS(oNLine System) 등이 포함된다. 이 자리는 마우스가 처음 선보인 자리로 유명한데, 마우스는 이날 선보인 혁신적인 기술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이퍼텍스트를 포함해 객체주소, 동적 파일 링킹 등의 개념이 이때 선보이며 큰 충격을 준다. 엥겔바트에 의해 하이퍼텍스트 환경이 구현된 1968년 이후 하이퍼텍스트의 연구 속도는 빨라진다. 19872년에서 1975년에 연구된 ZOG를 거쳐 1978년에는 MIT 아키텍처 머신 그룹의 앤디 리프먼(Andy Lippman)이 'Aspen Movie Map'이라는 하이퍼 미디어 시스템을 처음 개발해 텍스트 외의 다양한 매체 활용 가능성으로 확대시켰다. 1984년에는 매킨토시를 위한 하이퍼미디어 데이터베이스인 'Filevision'이 선보이게 된다. 1987년에는 첫 번째 하이퍼텍스트 컨퍼런스(Hypertext Conference)가 애플컴퓨터를 포함한 23개 회사와 벨통신연구소, 하버드대학, 제록스 PARC 등 29개 연구기관의 협조로 열렸다. 이때부터 하이퍼텍스트는 본격적으로 많은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분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1987년에는 매킨토시에서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만든 하이퍼카드(hypercard)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연구되던 하이퍼링크 개념이 일반인에게 보급되는 하이퍼링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ref name="IT문화원">〈[http://www.ith.kr/chair/semanticweb/sw0201_2.html 하이퍼링크의 역사(History of Hypertext)]〉, 《IT문화원》</ref> |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기술은 정보검색과 활용에서 혁명을 가져온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기까지 수 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의 웹(web)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웹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꾸며 거대한 문화적 혁명을 일으켰지만 아직도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가 생각한 '진정한 웹'은 구현되지않은 상태다. 좀 더 편하고 완벽한 정보 연결과 지식의 학습을 위해 웹은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팀 버너스 리가 생각하는 '정보의 연결을 통한 지식의 공유와 학습'은 그 이전부터 많은 학자들이 꿈꾸던 일이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어쩌면 거의 반세기 동안 하이퍼링크 구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던거와 같은 셈이다. 1965년에는 테드 넬슨이 메멕스에서 제시된 개념을 실제로 정리해 하이퍼텍스트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사실 'hypertext'는 넬슨이 1963년부터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정식으로 지면에 나온게 1965년이기에 1965년을 'hypertext'의 출현 해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하이퍼텍스트는 연속적으로 적어야 하는 종이와 달리 좀 더 유연한 비선형(비연속적) 방식의 표시방식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종류 문서를 저장하고 이들 문서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제나두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를 위해 비선형 쓰기를 쉽게 해주고, 사용자가 전자문서의 경로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글틀을 생각한다. 그가 정희한 바에 따르면 비연속적 쓰기와 사용자가 선택한 것을 대화식 화면으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말하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하이퍼텍스트의 개념과 일치한다. 2년 뒤인 1967년에 브라운 대학의 앤디 반담(Andy van Dam)은 테드 넬슨의 하이퍼텍스트를 구현한 시스템을 창안하고 넬슨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는 하이퍼텍스트 에디팅 시스템(HES)을 만들어 전자문서 작성의 길을 열었는데, 최초의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1968년에는 이런 과정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GUI 방식의 선구자로 불리는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Carl Engelbart)는 계산기 분야에 머물렀던 컴퓨터 사용 분야를 일상생활분야로 확장한다. 엥겔바트는 1968년 12월 9일, 멘로파크 스탠포드 연구소의 'Augmentation Research Center'에서 90분 간의 공개 시범을 보인다. 여기에서 그가 1962년부터 연구한 'agument' 관련 결과물과 NLS(oNLine System) 등이 포함된다. 이 자리는 마우스가 처음 선보인 자리로 유명한데, 마우스는 이날 선보인 혁신적인 기술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이퍼텍스트를 포함해 객체주소, 동적 파일 링킹 등의 개념이 이때 선보이며 큰 충격을 준다. 엥겔바트에 의해 하이퍼텍스트 환경이 구현된 1968년 이후 하이퍼텍스트의 연구 속도는 빨라진다. 19872년에서 1975년에 연구된 ZOG를 거쳐 1978년에는 MIT 아키텍처 머신 그룹의 앤디 리프먼(Andy Lippman)이 'Aspen Movie Map'이라는 하이퍼 미디어 시스템을 처음 개발해 텍스트 외의 다양한 매체 활용 가능성으로 확대시켰다. 1984년에는 매킨토시를 위한 하이퍼미디어 데이터베이스인 'Filevision'이 선보이게 된다. 1987년에는 첫 번째 하이퍼텍스트 컨퍼런스(Hypertext Conference)가 애플컴퓨터를 포함한 23개 회사와 벨통신연구소, 하버드대학, 제록스 PARC 등 29개 연구기관의 협조로 열렸다. 이때부터 하이퍼텍스트는 본격적으로 많은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분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1987년에는 매킨토시에서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만든 하이퍼카드(hypercard)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연구되던 하이퍼링크 개념이 일반인에게 보급되는 하이퍼링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ref name="IT문화원">〈[http://www.ith.kr/chair/semanticweb/sw0201_2.html 하이퍼링크의 역사(History of Hypertext)]〉, 《IT문화원》</ref> | ||
− | [[파일:하이퍼카드,빌앳킨슨.jpg|썸네일|400픽셀|빌앳킨슨]] [[파일:하이퍼카드와_하이퍼카드도구.jpg|썸네일|400픽셀|하이퍼카드와 하이퍼카드도구]] | + | [[파일:하이퍼카드,빌앳킨슨.jpg|썸네일|400픽셀|빌앳킨슨]] |
+ | [[파일:하이퍼카드와_하이퍼카드도구.jpg|썸네일|400픽셀|하이퍼카드와 하이퍼카드도구]] | ||
==특징== | ==특징== |
2020년 9월 3일 (목) 17:46 판
하이퍼링크(hyperlink)란 하나의 개체를 다른 개체로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간략히 링크(link)라고 한다. 하이퍼링크가 포함된 텍스트 문서를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고 한다. 하이퍼링크를 따라 하이퍼텍스트를 읽도록 해 주는 응용 프로그램을 브라우저(browser)라고 한다.
개요
하이퍼텍스트 문서 내의 하나의 단어나 구(phrase), 기호, 화상과 같은 요소와 그 문저 내의 다른 요소 또는 다른 하이퍼텍스트 문서 내의 다른 요소 사이의 연결을 의미하며 하이퍼텍스트 링크, 핫 링크라도고 한다. 하이퍼링크가 되어있는 것엔 밑줄이 있거나 다른 색상으로 구분되어 표시된다. 사용자가 링크된 요소를 클릭하면 하이퍼링크로 활성화된다. 하이퍼링크를 이용하면 같은 하이퍼 텍스트 문서 내의 한 요소와 다른 요소의 연결을 선택하여 검색할 수 있고, 다른 인터넷 호스트에 있는 월드 와이드 웹(WWW) 서버 상의 하이퍼텍스트 문서 내 다른 요소와의 연결을 선택하여 검색할 수도 있다. [1] 하이퍼링크를 사용할 경우 유의해야할 사항이 있다. 일반적으로 링크를 하는것은 저작권법에 위반되지않는다. 하지만 뉴스 기사를 긁어와서 개인 사이트(블로그나 카페 등등)에 올리는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이므로 반드시 링크 스크랩을 해줘야한다. 왜냐하면 인터넷 신문 회사의 수익 구조는 조회수가 바로 광고 수입으로 직결되어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조회수가 줄어들면 신문 회사의 수입이 줄어들게됨으로 경제적인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2005~2006년 경, 신문 회사들이 연합하여 뉴스 기사를 긁어 와서 타 사이트에 올리는 행위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였고, 이후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이와 같은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된것이다. [2]
등장배경
하이퍼링크(hyperlink)라는 용어는 1965년 쯤 테드 넬스(Ted Nelson = Nelson, Theodor H.)이 제너두 프로젝트(Project Xanadu)를 시작하면서 고안되었다. 테드 넬슨은 배니버 부시의 유명한 논문인 As We May Think(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에서 감명을 받았다. 이 논문에서 배니버 부시는 마이크로필름 기반의 머신 메멕스를 통해 사람은 어떠한 두 페이지의 정보를 관련 정보의 '꼬리(trail)'에 연결시켜 이 꼬리 속에 페이지 사이를 오고가며 마치 하나의 마이크로필름 두루마리에 있는 것처럼 할 수 있었다고 서술하였다. 우리에게 이와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본다면 한 토픽에 관련된 웹 페이지들의 즐겨찾기 목록을 만드는 작업을 예로 들 수 있다. [3]
역사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기술은 정보검색과 활용에서 혁명을 가져온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기까지 수 많은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의 웹(web)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웹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꾸며 거대한 문화적 혁명을 일으켰지만 아직도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가 생각한 '진정한 웹'은 구현되지않은 상태다. 좀 더 편하고 완벽한 정보 연결과 지식의 학습을 위해 웹은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팀 버너스 리가 생각하는 '정보의 연결을 통한 지식의 공유와 학습'은 그 이전부터 많은 학자들이 꿈꾸던 일이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어쩌면 거의 반세기 동안 하이퍼링크 구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던거와 같은 셈이다. 1965년에는 테드 넬슨이 메멕스에서 제시된 개념을 실제로 정리해 하이퍼텍스트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사실 'hypertext'는 넬슨이 1963년부터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정식으로 지면에 나온게 1965년이기에 1965년을 'hypertext'의 출현 해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하이퍼텍스트는 연속적으로 적어야 하는 종이와 달리 좀 더 유연한 비선형(비연속적) 방식의 표시방식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종류 문서를 저장하고 이들 문서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제나두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를 위해 비선형 쓰기를 쉽게 해주고, 사용자가 전자문서의 경로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글틀을 생각한다. 그가 정희한 바에 따르면 비연속적 쓰기와 사용자가 선택한 것을 대화식 화면으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말하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하이퍼텍스트의 개념과 일치한다. 2년 뒤인 1967년에 브라운 대학의 앤디 반담(Andy van Dam)은 테드 넬슨의 하이퍼텍스트를 구현한 시스템을 창안하고 넬슨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는 하이퍼텍스트 에디팅 시스템(HES)을 만들어 전자문서 작성의 길을 열었는데, 최초의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1968년에는 이런 과정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GUI 방식의 선구자로 불리는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Carl Engelbart)는 계산기 분야에 머물렀던 컴퓨터 사용 분야를 일상생활분야로 확장한다. 엥겔바트는 1968년 12월 9일, 멘로파크 스탠포드 연구소의 'Augmentation Research Center'에서 90분 간의 공개 시범을 보인다. 여기에서 그가 1962년부터 연구한 'agument' 관련 결과물과 NLS(oNLine System) 등이 포함된다. 이 자리는 마우스가 처음 선보인 자리로 유명한데, 마우스는 이날 선보인 혁신적인 기술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이퍼텍스트를 포함해 객체주소, 동적 파일 링킹 등의 개념이 이때 선보이며 큰 충격을 준다. 엥겔바트에 의해 하이퍼텍스트 환경이 구현된 1968년 이후 하이퍼텍스트의 연구 속도는 빨라진다. 19872년에서 1975년에 연구된 ZOG를 거쳐 1978년에는 MIT 아키텍처 머신 그룹의 앤디 리프먼(Andy Lippman)이 'Aspen Movie Map'이라는 하이퍼 미디어 시스템을 처음 개발해 텍스트 외의 다양한 매체 활용 가능성으로 확대시켰다. 1984년에는 매킨토시를 위한 하이퍼미디어 데이터베이스인 'Filevision'이 선보이게 된다. 1987년에는 첫 번째 하이퍼텍스트 컨퍼런스(Hypertext Conference)가 애플컴퓨터를 포함한 23개 회사와 벨통신연구소, 하버드대학, 제록스 PARC 등 29개 연구기관의 협조로 열렸다. 이때부터 하이퍼텍스트는 본격적으로 많은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분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1987년에는 매킨토시에서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만든 하이퍼카드(hypercard)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연구되던 하이퍼링크 개념이 일반인에게 보급되는 하이퍼링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4]
특징
각주
- ↑ 〈하이퍼링크(hypertext)〉, 《사이언스올》
- ↑ 〈하이퍼링크〉, 《리그베다위키》, 2015-03-28
- ↑ 〈하이퍼링크〉, 《위키백과》
- ↑ 〈하이퍼링크의 역사(History of Hypertext)〉, 《IT문화원》
참고자료
- IT문화원,〈하이퍼링크의 역사(History of Hypertext)〉, 《IT문화원》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