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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프라스틱㈜'''는 1971년 3월 10일 설립된 자동차 내외장 부품류 플라스틱 생산 기업이다. [[한국지엠]], [[현대모비스]] 등에 중점으로 납품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전병규]]이다.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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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프라스틱㈜은 21세기 초일류기업을 지향하기 위해 설계, 개발, 연구, 생산 및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제품과 품질을 자랑하는 자동차 내외장 부품류 플라스틱 생산 기업이다. 1971년 창립 이래 안전하고 튼튼한 차량용 프라스틱 내외장재의 부품 및 산업용 강화프라스틱 제품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 플라스틱 부품 산업의 국내 1등 제품의 수준을 넘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시장을 주도해 왔다. 이에 따른 일신프라스틱㈜의 비전은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임직원이 한마음이 되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간다'이다. 이에 따른 사훈도 '인화단결'(人和團結), '기술개발'(技術開發), '품질향상'(品質向上)으로, 임직원의 단결과 최고의 품질로 고객의 만족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일신프라스틱㈜의 사명은 [[중국]] 은나라 탕왕의 고사에 나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문장에서 유래했다. 진실로 새로워지려면 매일매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는 뜻이다. 일신프라스틱㈜은 50여 년의 시간동안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매일매일 새롭게 성장해 왔다. 2016년 8월 공장을 신설하고 생산라인을 선진화하며 본사 이전을 단행했다. 또한 일신프라스틱㈜은 2대가 함께 힘을 모아 회사를 이끌고 있는 가업승계 기업이다. 승용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콘솔 부문 생산에 특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차 범퍼와 차체 조립에 쓰이는 리테이너 볼트는 [[현대자동차㈜]] 전 차종에 공급 중이다. 일신프라스틱㈜은 2013년 중소기업품질대상 수상, 2016년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 경영혁신형 중소기업(MAIN-Biz) 인증 등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차별화된 기술력을 공인받았다.<ref name="중소기업벤처부"> 중소기업벤처부,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izinfo1357&logNo=22106002864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백년을 이어나갈 가업승계 모범기업_일신프라스틱(주)]〉, 《네이버 블로그》, 2017-07-26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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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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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5월: [[쌍용자동차㈜]] 협력업체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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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2월: [[대우국민차㈜]] 협력업체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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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3월: 대구 달성공단 증설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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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3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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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3월: [[대우기전㈜]] 협력업체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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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3월: 일신프라스틱 공업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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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ISO-9002/QS 9000 인증 (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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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HMC/KMC SQ-MARK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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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ISO/TS 16949/IS0 14001 인증 (AFAQ-EA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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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6월: 벤처기업 선정 (기술보증기금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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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기업혁신형(이노비즈)선정 (중소기업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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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대구광역시 주관 3030기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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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대구 국가산업단지 확장 공장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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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대구광역시 주관 스타기업 선정<ref name="공식홈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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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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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프라스틱은 1971년 설립되었다. 플라스틱 성형제품 제조를 위해 [[전동근]] 회장이 설립한 일신프라스틱공업사가 그 시초인데, 설립 이후 50여 년 그 규모와 외형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지만 현재도 플라스틱 성형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현재 일신프라스틱은 설립자인 전동근 회장과 함께 아들인 전병규 사장이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전동근 회장이 처음 회사를 설립했을 때는 조그만 공업사로 시작했다. 플라스틱이라는 소재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은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섬유산업용 제품을 많이 생산했다. 플라스틱은 1909년 미국의 리오 베이클랜드가 만든 페놀 수지가 시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히 발달하기 시작해 현대를 '플라스틱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최근 급격하게 대중화된 소재다. 석유, 석탄, 천연 가스 등에서 추출된 유기 화합물을 결합해 만든 고분자 화합물이나 그 고분자 화합물을 이용해 만든 물건을 통칭하며 합성수지라고도 불린다. 한국은 1950년대 페놀수지 독자개발에 성공하며 국산화가 시작됐으며, 6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7천만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으며 한국은 플라스틱 생산 세계 5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1971년에 시작된 일신프라스틱은 한국의 플라스틱 초창기 세대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그만큼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데, 초기 섬유산업 위주로 제품을 생산하던 일신프라스틱은 198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부품 생산을 시작한다. 1987년에는 전량 수입에만 의존했던 모터 부품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1980년대 자동차 산업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 일신프라스틱도 탄탄하게 성장해 갔다. 하지만 일신프라스틱이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만은 아니다. 10년간 소규모 플라스틱 업체에 근무했던 전동근 회장은 1971년 퇴직금 전부를 투자해 대구 동인동 주택가에서 점포 하나로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플라스틱 산업의 1세대인 전동근 회장은 당시로서는 희소가치가 높았던 플라스틱 전문가로서 10년의 직장 생활 기간 동안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단기적 이윤 추구보다 더 큰 꿈을 위해 흔들리지 않고 10년을 근무한 전동근 회장은 그 큰 꿈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했던 사업은 불과 2년 만에 위기를 맞는다. 1973년 중동발 오일 쇼크가 급성장기에 있던 대한민국 경제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기업의 도산이 이어지던 그 시기에 일신프라스틱 역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근성으로 위기를 버텨낸 전동근 회장과 일신프라스틱은 설립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위기를 극복한 힘으로 탄탄하게 성장하던 일신플라스틱은 1980년대 유망산업으로 떠오르던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이후 자동차 부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기업 진단은 일산프라스틱이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됐다. 특히 원가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진단 결과를 통해 생산 공정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기업 진단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신프라스틱은 재고 관리를 비롯한 관리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생산 프로세스를 개선하며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또한 중진공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며 공정 혁신 프로그램을 이수할 계획이다. 기업의 미래 비전에 있어서도 사업다각화와 글로벌 시장 개척에 대한 방향성을 수립하게 되었다.<ref name="중소기업벤처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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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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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신프라스틱㈜ 공식 홈페이지 - http://www.ilshin-plast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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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기업벤처부,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izinfo1357&logNo=22106002864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백년을 이어나갈 가업승계 모범기업_일신프라스틱(주)]〉, 《네이버 블로그》,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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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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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3일 (화) 10:17 판

일신프라스틱㈜는 1971년 3월 10일 설립된 자동차 내외장 부품류 플라스틱 생산 기업이다. 한국지엠, 현대모비스 등에 중점으로 납품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전병규이다.

개요

일신프라스틱㈜은 21세기 초일류기업을 지향하기 위해 설계, 개발, 연구, 생산 및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제품과 품질을 자랑하는 자동차 내외장 부품류 플라스틱 생산 기업이다. 1971년 창립 이래 안전하고 튼튼한 차량용 프라스틱 내외장재의 부품 및 산업용 강화프라스틱 제품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 플라스틱 부품 산업의 국내 1등 제품의 수준을 넘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시장을 주도해 왔다. 이에 따른 일신프라스틱㈜의 비전은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임직원이 한마음이 되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간다'이다. 이에 따른 사훈도 '인화단결'(人和團結), '기술개발'(技術開發), '품질향상'(品質向上)으로, 임직원의 단결과 최고의 품질로 고객의 만족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일신프라스틱㈜의 사명은 중국 은나라 탕왕의 고사에 나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문장에서 유래했다. 진실로 새로워지려면 매일매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는 뜻이다. 일신프라스틱㈜은 50여 년의 시간동안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매일매일 새롭게 성장해 왔다. 2016년 8월 공장을 신설하고 생산라인을 선진화하며 본사 이전을 단행했다. 또한 일신프라스틱㈜은 2대가 함께 힘을 모아 회사를 이끌고 있는 가업승계 기업이다. 승용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콘솔 부문 생산에 특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차 범퍼와 차체 조립에 쓰이는 리테이너 볼트는 현대자동차㈜ 전 차종에 공급 중이다. 일신프라스틱㈜은 2013년 중소기업품질대상 수상, 2016년 대구시 스타기업 선정,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 경영혁신형 중소기업(MAIN-Biz) 인증 등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차별화된 기술력을 공인받았다.[1]

연혁

1992년 05월: 쌍용자동차㈜ 협력업체 등록 1989년 02월: 대우국민차㈜ 협력업체 등록 1988년 03월: 대구 달성공단 증설 이전 1987년 03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등록 1987년 03월: 대우기전㈜ 협력업체 등록 1971년 03월: 일신프라스틱 공업사 설립 2000년 12월: ISO-9002/QS 9000 인증 (KSA) 2003년 10월: HMC/KMC SQ-MARK 인증 2005년 12월: ISO/TS 16949/IS0 14001 인증 (AFAQ-EAQA) 2006년 06월: 벤처기업 선정 (기술보증기금주관) 2006년 10월: 기업혁신형(이노비즈)선정 (중소기업청) 2007년 10월: 대구광역시 주관 3030기업 선정 2016년 09월: 대구 국가산업단지 확장 공장 이전 2016년 11월: 대구광역시 주관 스타기업 선정[2]

역사

일신프라스틱은 1971년 설립되었다. 플라스틱 성형제품 제조를 위해 전동근 회장이 설립한 일신프라스틱공업사가 그 시초인데, 설립 이후 50여 년 그 규모와 외형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지만 현재도 플라스틱 성형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현재 일신프라스틱은 설립자인 전동근 회장과 함께 아들인 전병규 사장이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전동근 회장이 처음 회사를 설립했을 때는 조그만 공업사로 시작했다. 플라스틱이라는 소재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은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섬유산업용 제품을 많이 생산했다. 플라스틱은 1909년 미국의 리오 베이클랜드가 만든 페놀 수지가 시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히 발달하기 시작해 현대를 '플라스틱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최근 급격하게 대중화된 소재다. 석유, 석탄, 천연 가스 등에서 추출된 유기 화합물을 결합해 만든 고분자 화합물이나 그 고분자 화합물을 이용해 만든 물건을 통칭하며 합성수지라고도 불린다. 한국은 1950년대 페놀수지 독자개발에 성공하며 국산화가 시작됐으며, 6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7천만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으며 한국은 플라스틱 생산 세계 5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1971년에 시작된 일신프라스틱은 한국의 플라스틱 초창기 세대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그만큼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데, 초기 섬유산업 위주로 제품을 생산하던 일신프라스틱은 198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부품 생산을 시작한다. 1987년에는 전량 수입에만 의존했던 모터 부품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1980년대 자동차 산업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 일신프라스틱도 탄탄하게 성장해 갔다. 하지만 일신프라스틱이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만은 아니다. 10년간 소규모 플라스틱 업체에 근무했던 전동근 회장은 1971년 퇴직금 전부를 투자해 대구 동인동 주택가에서 점포 하나로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플라스틱 산업의 1세대인 전동근 회장은 당시로서는 희소가치가 높았던 플라스틱 전문가로서 10년의 직장 생활 기간 동안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단기적 이윤 추구보다 더 큰 꿈을 위해 흔들리지 않고 10년을 근무한 전동근 회장은 그 큰 꿈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했던 사업은 불과 2년 만에 위기를 맞는다. 1973년 중동발 오일 쇼크가 급성장기에 있던 대한민국 경제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기업의 도산이 이어지던 그 시기에 일신프라스틱 역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근성으로 위기를 버텨낸 전동근 회장과 일신프라스틱은 설립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위기를 극복한 힘으로 탄탄하게 성장하던 일신플라스틱은 1980년대 유망산업으로 떠오르던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이후 자동차 부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기업 진단은 일산프라스틱이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됐다. 특히 원가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진단 결과를 통해 생산 공정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기업 진단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신프라스틱은 재고 관리를 비롯한 관리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생산 프로세스를 개선하며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또한 중진공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며 공정 혁신 프로그램을 이수할 계획이다. 기업의 미래 비전에 있어서도 사업다각화와 글로벌 시장 개척에 대한 방향성을 수립하게 되었다.[1]

각주

  1. 1.0 1.1 중소기업벤처부, 〈백년을 이어나갈 가업승계 모범기업_일신프라스틱(주)〉, 《네이버 블로그》, 2017-07-26
  2.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EA.B3.B5.EC.8B.9D.ED.99.88.ED.8E.98.EC.9D.B4.EC.A7.80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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