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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은 특정한 성과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수여되는 둥글거나 타원형의 금속성 물체로, 일반적으로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 스포츠, 학문, 예술, 군사적 업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자에게 주어지며, 우수성, 성취, 기여를 인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메달은 기념이나 표창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형태와 재질, 디자인은 대회나 시상식의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목차
개요
메달은 올림픽에서 각 종목 1, 2, 3위 선수에게 수여되는 메달이다.
IOC는 지구촌 최대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 각 종목마다 최종 1, 2, 3위를 한 수상자에게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을 수여한다. 메달 수상자는 큰 명예가 주어지며, 각 국가에서 큰 포상을 받는다. 이 외에도 각종 광고나 TV 프로그램 출연 러브콜을 받는다. 각 국가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메달리스트를 후하게 대우하는 것은 비슷하다. 다만 포상을 어떻게 받는지는 나라에 따라 다르며, 포상 금액도 천차만별이다. 영국 같이 포상금이 없는 나라도 있다.
올림픽 종목에 해당되는 모든 스포츠인들이 몇년동안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이유이자, 목적이 바로 이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올림픽 금메달 1개의 연금 액수와 포상 수준만 놓고 보면 웬만한 고등고시 출신과도 비교가 가능할 정도로 포상이 두둑하다. 은행 대출 심사에서도 당연히 의사 수준의 최상위권 전문직 대우를 해줄 정도로 위상이 높다.
패럴림픽 메달도 대체적으론 올림픽 메달과 비슷하나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다.[1]
메달의 역사
메달의 역사는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메달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상품으로 사용되었고, 나중에는 군인들에게 훈장으로 주어졌다.
19세기에는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대회에서 메달이 도입되었다. 이는 차례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로 나뉘어졌다. 메달은 스포츠 경기에서의 우승과 성과를 인정하고, 차별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 고대 메달
- 고대 그리스와 로마
- 고대 그리스에서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올리브 관을 사용했다. 이는 현재의 메달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 고대 로마에서는 전투에서 용맹한 군인들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로마의 메달은 주로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종종 군사적 승리나 특별한 업적을 기념하는 데 사용되었다.
-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 중세 유럽:
-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들과 왕들이 특별한 이벤트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메달을 제작했다. 이 시기의 메달은 주로 금, 은, 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 르네상스 시대
- 근대 메달
- 근대 올림픽
-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첫 근대 올림픽에서는 금, 은, 동메달 대신 은메달과 올리브 관이 수여되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부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금, 은, 동메달이 도입되었다. 각 메달의 재질과 디자인은 대회마다 다르게 제작되었다.
- 기타 국제 대회:
- 현대 메달
- 현대 스포츠와 대회
- 현대의 스포츠 대회에서는 메달이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메달은 선수들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각 대회마다 특별히 디자인된 메달이 수여된다.
- 메달은 금속으로 제작되며, 디자인에는 대회의 상징과 이름, 날짜 등이 포함된다. 올림픽 메달은 특히 그 디자인과 제작에 많은 공을 들이며, 각 개최국의 문화를 반영한 독특한 디자인을 채택한다.
- 기타 분야에서의 메달
- 스포츠 외에도 메달은 다양한 분야에서 수여된다. 예를 들어, 학문, 예술, 군사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는 사람들에게 메달이 수여된다.
- 노벨상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메달로, 과학, 문학, 평화 분야의 최고 성과를 기리는 상이다.
메달의 의미와 중요성 메달은 단순히 금속 조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메달은 개인이나 팀의 성취와 노력을 인정하고 기념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는 선수나 수상자에게 큰 자부심과 만족감을 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더 큰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메달은 또한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국가나 사회가 특정 성취를 기념하고 격려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메달 종류
금메달
우승자인 1위에게 선사한다. 금메달을 딴 사람을 금메달리스트라고 부른다. 올림픽 금메달은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예롭고 권위있는 상 중 하나로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허락해야 받을 수 있는 상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랭킹 1위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상이다. 대표적으로 피겨스케이팅선수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배드민턴선수 리총웨이, 테니스선수 노박 조코비치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한국의 태권도선수 이대훈 역시 세계선수권에서 3번이나 금메달을 따고 월드 그랑프리 12연패를 이루어냈지만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는 그만큼 큰 명예가 주어진다. 사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에 속하는 나라라서 금메달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전종목 통틀어 올림픽 금메달을 단 한 번도 따보지 못한 나라가 수두룩하고 메달 자체를 따본 적이 없는 나라 역시 굉장히 많다.
금메달의 또다른 영예 중 하나로,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소속 국기가 중앙 최상단에 펼쳐지며 동시에 국가가 연주된다. 이때 선수는 환하게 웃거나, 국가를 부르거나,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전세계가 보는 가장 권위있는 스포츠 대회에서 자국의 국가가 울려펴지고 국기마저 화면에 꽉차게 보여주니 괜히 금메달리스트가 복귀 후 국위선양한 영웅 대접을 받는 게 아니다. 특히 스포츠 약소국이나 국력이 약한 나라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거의 구국영웅 비슷한 대우을 받는다.
그렇다면 공동 금메달일 때 국가연주 순서는 어떻게 될까? 만약 공동으로 금메달이 나오면 국가 영문등록명 순으로 국가가 연주된다. 국기도 마찬가지로 영문등록명이 빠른 나라의 국기가 왼쪽에 위치한다. 물론 국기의 높이는 같다. 금메달 수상자가 세명일때도 마찬가지. 서울 올림픽 체조 종목에서 소련 선수 두 명이 공동 1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는 소련 국기는 두 개가 같은 높이에 있었으나 소련 국가는 한 번만 연주되었다.
초기에는 1등에게 은메달을 줬으며, 금메달로 변경된 것은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부터다. 그때는 순금으로 자그마한 메달을 만들어 줬지만 팔아치우는 선수들이 자꾸 생기고 비싼 재료값 때문에 운영비 문제가 불거져서 1920 안트베르펜 올림픽 때부터는 도금 메달을 수여해 왔다. 현재 규정상으로 금메달은 99.9% 이상의 순은으로 만들고 도금에는 최소 6g 이상의 순금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은메달은 완전히 순은으로 만든다.
초창기 올림픽에서는 특정 종목의 금메달리스트에게 메달 이외의 부상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는 IOC에서 "아마추어 우승자에게 메달 이외의 부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경하게 밀고 있어서, 이런 부상을 주는 경우는 없다. 실제로 손기정은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과 함께, 나무 묘목과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를 수여받았다. 이후 이 투구는 오랜 시간의 방황 끝에 손기정 선수에게 돌아 왔고, 현재 보물 제90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운동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할 때 올림픽 금메달을 '올금'이라고 줄여서 이야기하기도 한다.[1]
은메달
준우승한 2위에게 선사한다. 심리학자들이 공인한 가장 불행한 메달이다. 순위는 은메달이 동메달보다 높지만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의 경우 은메달은 결승전을 지고 받는 메달인 반면 동메달은 3위 결정전을 이기고 받는 메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림픽에서 시상식을 보면 결승에서 패하고 은메달을 딴 선수나 팀은 거의 예선탈락을 한 것처럼 아쉬워 하거나 끝내 눈물을 보이는 반면, 3위 결정전을 이기고 동메달을 딴 선수나 팀은 거의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대조 효과(contrast effect)라고 부른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도 케바케로, 몇 가지 예외가 있다.
토너먼트가 아닌, 점수로 채점하는 기록 경기나 한 명씩 한 명씩 차례차례 탈락하는 서바이벌 경기에서는 대부분 은메달이 동메달보다 더 큰 기쁨을 제공한다. 상단에 전술했듯이, 결승에 진출한 단 둘만이 금메달이란 최종 우승을 목전에 두고선 상대방과 겨루는 경우가 아니어서 대조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스피드 스케이팅 또는 봅슬레이와 같은 썰매 종목들과 서바이벌 형식의 사격이 대표적이다. 조영재가 2024 파리 올림픽 권총 속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은메달을 따내자 대단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는 조영재의 앞에 있던 중국인 선수가 이미 압도적 성적을 기록하고 있어 금메달을 확정지어놓은 상황이었던지라 조영재로서는 만점을 쏴도 역전이 불가능했기에 또 다른 우승 후보였던 다른 중국인 선수를 3위로 내려앉히고 2위를 사수한 것만으로 대단히 큰 성과였다.
리그전인 경우에는 최종전에서 승리함으로써 2위가 되고 패했으면 순위가 더 처질 수도 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와 최종전 상대 선수가 좋은 예이다. 양정모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했지만 1위가 됐다. 상대 선수는 양정모를 근소한 차이로 이겨서 2위가 됐다. 크게 이겼으면 1위, 패했으면 3위가 될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기뻐하는 패자와 아쉬워하는 승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다.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의 소련이 그 예시.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도 미국에게의 충격패 때문에 화가 나서 메달에 이름을 새기는 관례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넘사벽의 괴물급으로 센 선수나 팀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일찌감치 단념하고는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은메달을 따기 위해 경쟁하며, 은메달 획득으로도 크게 기뻐한다.
동메달이거나 아예 메달을 따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음에도 추후에 높은 순위의 선수들이 여러 사유로 실격으로 처리되며 메달을 박탈당하여 은메달로 순위가 상승한 경우.
평소에 주종목이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기량을 발휘하여 은메달을 획득한 경우.
결승전이 준결승전을 거치고선 금메달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게 아닌, 여러 명 내지는 팀 단체가 한 번에 각축을 벌이며 금과 은 및 동메달을 바로 단판 승부로 결정짓는 형태 혹은 첫 번째 예시로 전술한, 개인 내지 단체의 기량으로 고득점을 획득하며 순위를 매기는 기록 경기일 경우.
대표적으로 수영, 육상의 트랙 경기들, 쇼트트랙 등과 같은 속도를 겨루는 경주 계열의 종목 및 체조나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기록으로 채점하는 경기들.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일 경우 4위는 패자조 준결승 패자가 차지하고 동메달은 패자조 결승 패자, 은메달은 결승전 패자가 받아서 둘 모두 메달이 확정된 상태에서 져서 받는 메달인데, 기성 스포츠에서는 많이 드문 방식이라 심리학 연구를 할 표본이 부족하다. e스포츠나 보드게임 대회에선 꽤 많이 쓰는데, 올림픽에서는 소프트볼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대한민국 선수에게는 남성 선수가 메달을 따는 데 실패했을 경우, 좀 다른 은메달 확정이라고 자조하는 드립도 있다. 특히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리스트만 병역 혜택을 주므로, 해당 드립이 더욱 성행한다.[1]
동메달
3위 결정전에서 승리한 3위에게 선사하는 것이 원칙이나, 일부 종목은 동메달이 2명에게 수여된다. 편의상 동(銅)메달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동메달이라고 하는 것은 순수한 구리(copper)가 아니라 구리에 주석을 섞은 청동 메달(bronze medal)이다. 영어 bronze medal도 정확한 표현은 아닌 셈이다. 근데 청동 메달이라고 직역할 경우 혼자 쇠 이름이 두 글자가 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편의상 동메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어차피 청동 메달과 구리 메달을 구분해서 수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별 문제가 없기도 하다.
또 메달이 금/은/동이라고 해도 다른 성분의 쇠도 얼마 간 섞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디까지나 주된 성분이 금 · 은 · (청)동이라는 의미에서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이라고 하는 것이니깐 정확한 성분명을 표기할 필요는 없다. 물론 특이하게 bronze medal과 copper medal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면, 둘을 정확히 구분해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보기 힘들지만 보통은 각각 청동과 동으로 번역된다.
FIFA 월드컵에서도 3, 4위전 승자에게 동메달을 수여했다.[1]
메달 순위 집계 기준
결론부터 얘기하면 올림픽 메달 종합순위의 공식적인 기준은 없다. 그렇다보니 나라마다 집계하는 방식은 조금 다른데 주로 금메달 위주로 보는 금메달순과 금은동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메달을 많이 딴 숫자로 보는 합계순으로 나뉜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메달 개수로 순위를 따지지만 미국, 캐나다 등 일부 서양 국가들은 합계순으로 본다.
다만 합계순 방식의 경우 단순히 메달의 개수로만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의 가치를 서로 동등하게 본다는 결점이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보편적인 올림픽 메달 종합순위는 금메달순이다. 이는 실제로 올림픽 기간마다 IOC 홈페이지에서 표기되는 단일 올림픽 메달 순위도 금메달순이고, 거의 모든 통계사이트에 기재된 역대 올림픽 메달 종합순위도 금메달순인 것에서 드러나는 부분이다. 물론 앞서 서술된 대로 공식적인 기준은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올림픽을 즐기는 하나의 오락 요소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1]
의미와 중요성
- 의미
- 성취의 상징: 메달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개인이나 팀의 성취를 상징한다. 이는 수상자의 노력, 헌신, 재능을 인정받는 증표이다.
- 영예와 명예: 메달은 수상자에게 높은 영예와 명예를 부여한다. 이는 수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며, 그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된다.
- 동기부여: 메달은 수상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메달을 획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성취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신도 목표를 향해 노력하게 만든다.
- 사회적 인정: 메달은 개인의 성취를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방법이다. 이는 수상자가 사회에서 존경받고, 그들의 성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중요성
- 개인적 중요성: 메달은 개인에게 큰 자부심과 만족감을 주며,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받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는 자신의 성취를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중요한 증표로 작용한다.
- 사회적 영향: 메달은 국가나 지역 사회에 큰 자부심을 안겨준다. 이는 국민들의 단결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메달리스트는 종종 사회적 롤모델로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 역사적 기록: 메달은 특정 대회나 사건의 역사적 기록으로 남는다. 이는 후대에 전해질 중요한 유산이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 문화적 가치: 메달은 특정 문화나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는 메달의 디자인, 재질, 수여 과정 등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작과 디자인
IOC는 메달의 물리적 특성을 지시하고 완성된 디자인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메달의 규격은 올림픽 개최국의 국가 올림픽 위원회(NOC)와 함께 개발하지만, IOC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해진 규칙을 도입했다.
- 수상자: 상위 세 명의 선수가 메달을 받는다.
- 모양: 보통 원형이며, 체인이나 리본이 달렸다.
- 지름: 최소 60mm
- 두께 최소 3mm
- 재료:
- 종목 세부 정보: 메달이 수여된 종목이 메달에 적혀 있어야 한다.
1896년 최초의 올림픽 메달은 프랑스의 조각가 쥘 클레망 샤플랭이 디자인했으며, 앞면에는 제우스가 그리스 신화의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안고 있고 뒷면에는 아크로폴리스가 그려져 있었다. 파리 조폐국에서 제작했으며 파리에서 개최한 1900년 올림픽 메달도 여기에서 제작했다. 이를 계기로 메달 주조 책임을 개최 도시에 부여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후 몇 번의 올림픽에서는 개최 도시가 메달 디자인도 선택했다. 1912년까지 금메달은 순금으로 만들어졌다.[2]
트리온포
1923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하계 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할 조각가 공모전을 열였다. 주세페 카시올리의 트리온포 디자인이 1928년 우승작으로 선정되었다. 앞면에는 니케가 다시 등장했지만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우승자의 왕관과 손바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주요 초점이었다. 메달의 오른쪽 상단에는 올림픽 개최지 이름과 대회 숫자를 위한 공간이 남겨졌다.
뒷면에는 승리한 선수를 떠받친 군중이 그려져 있다. 그의 우승 디자인은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1928년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였다. 로마에서 열린 1960년 하계올림픽 메달은 디자인을 뒤집어 앞면에는 군중이, 뒷면에는 니케가 그려졌다. 이 디자인은 뮌헨의 1972년 하계올림픽에서 메달 뒷면에 다른 디자인을 적용할 때까지 40년 동안 사용되었다.
카시올리의 디자인은 올림픽 개최지와 숫자가 업데이트되면서 매번 다시 만들어졌지만, 더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영감을 주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올림픽까지 메달의 앞면은 트리온포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했고, IOC는 업데이트된 버전의 제작을 허용했다. 이후 몇 번의 올림픽에서는 니케 모티프의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다른 측면은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시드니에서 열린 2000년 하계올림픽 메달 디자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2000년 이후에 이러한 추세는 끝났다. 2000년 메달의 디자이너(보이치에흐 피에트라니크)는 전통적인 로마 콜로세움 대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앞면에 넣었지만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콜로세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스 언론은 올림픽의 발상지에 대한 무지라고 이 디자인을 비판했다. 메달 앞면의 오랜 특징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아닌 로마 콜로세움을 잘못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드니 조직 위원회는 다른 버전을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76년이 지난 아테네의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을 묘사한 디자이너 엘레나 보치의 새로운 디자인이 소개되었다. 이 새로운 앞면 디자인은 계속 사용 중이다.[2]
맞춤형 뒷면 디자인
독일 올림픽 위원회인 독일 올림픽 체육 연맹은 메달의 뒷면을 변경하기로 결정한 최초의 하계올림픽 주최자였다. 1972년 디자인은 바우하우스 출신의 예술가 게르하르트 마르크스가 만들었으며 신화 속 쌍둥이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가 등장한다. 이후 개최지 조직 위원회는 뒷면 디자인에 대한 자유를 얻었고, IOC가 최종 승인을 내린다.[2]
동계 올림픽 메달
IOC는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하계패럴림픽, 동계패럴림픽을 포함한 모든 올림픽 메달의 디자인 사양을 최종 결정한다. 동계올림픽에는 하계올림픽과 달리 IOC가 특정 디자인을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다양한 디자인이 사용되었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 메달에는 올림픽 상징인 오륜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니케는 1932년과 1936년 올림픽 메달에 등장했지만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메달 디자인에 등장하지 않았다. 단골 모티브는 눈송이이며, 월계수 잎과 왕관은 여러 디자인에 등장한다. 올림픽 표어인 Citius, Altius, Fortius(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는 4개 대회 동계 올림픽 메달 등장하지만 하계올림픽 메달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동계올림픽 개최국에서는 메달에 유리(1992 알베르빌), 스파라그마이트(1994 릴리함메르), 옻(1998 나가노) 등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08년 하계올림픽에서야 하계올림픽에서 다른 소재인 비취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00년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하계 올림픽 메달은 원형이었지만, 동계올림픽 메달의 모양은 훨씬 더 다양하다. 또한 동계올림픽 메달의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하계 올림픽 메달보다 더 크고, 더 두껍고, 더 무겁다.[2]
참가 메달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로 선수와 지원 스태프, 대회 관계자, 대회 기획 및 관리에 참여한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참가 기념 메달과 참가 증서를 받았다. 우승자 메달과 마찬가지로 올림픽 대회마다 바뀌며, 하계와 동계 대회에 따라 다른 메달이 수여된다.
메달 수여식
메달과 시상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32년 하계올림픽에서 현재와 같은 표준이 도입되기 전까지 매우 다양했다. 1932년 이전에는 모든 메달이 폐막식에서 수여되었으며, 초기 몇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입장했다. 시상하는 고위 인사는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고, 선수들은 메달을 받기 위해 지나갔다. 우승 시상대는 1930년 브리티시 엠파이어 게임에서 사용된 것을 본 앙리 드 바예라투르의 개인 지시에 따라 도입되었다. 우승자는 더 높은 높이의 가운데에 있고 은메달리스트는 오른쪽에, 동메달리스트는 왼쪽에 선다. 1932년 동계올림픽에서는 폐막식에서 메달이 수여되었으며, 각 종목의 선수들이 처음으로 시상대에 차례로 올라갔다. 196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주경기장의 선수들이 각 경기가 끝난 직후 메달을 받았으며 다른 경기장의 선수들은 다음날 주경기장으로 와서 메달을 받았다. 이후 올림픽에서는 각 경기장에 우승 시상대가 설치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1960년 하계올림픽은 메달을 선수의 목에 걸어준 최초의 올림픽이었다. 메달은 월계수 잎 사슬에 매달려 있었지만, 지금은 리본에 매달려 있다. 아테네가 2004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했을 때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도 올리브 화환 왕관을 받았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년 하계올림픽에서 각 메달리스트는 올림픽 로고가 새겨진 나무 조각상을 받았다.
동계올림픽의 메달은 경기 당일 저녁 또는 경기 다음날 저녁에 별도의 시상식에서 수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02년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 플라자"는 대중이 멀리 떨어지거나, 관객이 적거나, 고지대에서 열렸을 시상식을 보고 음악 공연 등이 포함된 저녁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으로 대중화되었다.[2]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