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음기
축음기(蓄音機) 또는 유성기(留聲機)는 음성을 기록하거나 재생하는 데 쓰이는 기기로, 전축을 포함하기도 한다.
개요
영어로는 '포노그래프(phonograph[1])'라고 하며, 특히 후대에 보급된 전형적인 형태의 축음기는 '그라모폰(gramophone)'이나 속어인 '토킹머신(talking machine)' 등으로도 불렸다. 축음기의 회전반을 가리키는 '턴테이블(turntable)'이 축음기 자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쓰인다.
의미만으로는 음악을 재생하는 모든 기구가 축음기가 될 수 있지만, 훗날의 물건들과 구별하기 위해 보통은 초창기에 나온 완전 어쿠스틱의 재생기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초창기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부터 HMV 등 유명한 회사들은 흔히 아는 나팔이 달린 태엽 축음기를 제작했다. 태엽과 나팔 시대의 축음기는 흔히 아는 LP판 대신 SP판을 사용한다. 이 시대에는 에디슨의 다이아몬드 디스크 같은 물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축음기는 태엽을 사용하는 기계이지 전자 제품은 아니다.
그러나 수동식 태엽에서 벗어나 전기 동력을 사용하게 되고부터는 일본어에서 '전기 축음기'와 약자인 '전축'이라는 표현을 수입하여 사용하였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전축이라고 하면 오디오 시스템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보통 부잣집 응접실(거실) 놓아 둔 오디오 시스템 - 고급 우퍼와 스테레오 스피커, 앰프, 턴테이블(+카세트 테이프 데크)가 층층이 쌓여있는 물건을 "전축"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1990년대에 들어 전축은 '오디오', 일체형 미니 오디오는 '미니콤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차츰 사장되었다. 다만 이때쯤 되면 전축에서도 원래의 '축음기'란 뜻은 거의 사장되어, 전축=LP판 턴테이블이란 의미로 쓰인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한국에서는 SP를 재생하는 기계뿐만 아니라(대개 축음기라고 하면 이쪽이다) LP를 재생하는 전자기기도 1940~50년대 초기형은 축음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 SP와 LP는 녹음 방식도 다르고, 재질도 달라 호환성이 없다.
종류
역사
처음 축음기는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했다. 이전에 소리의 파형을 기록하는 포노토그래프라는 기계가 있었으나, 기록한 소리를 다시 재생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기계는 에디슨의 축음기였다.
전에는 1분 정도밖에 기록할 수 없었던 에디슨의 원통형 매체였던 납관(wax cylinder)을 개량하여, 더 오래 음악 혹은 다른 음성 매체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본격적으로 오디오가 사람들에게 보급될 수 있도록 한 발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크기와 재질, 기록 방식을 달리 하면서 SP판, LP, 그리고 그리고 디지털 매체인 CD, SACD, DVD, 음악 파일까지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매체도 적지 않다.
- 최초의 축음기와 실린더 레코드의 등장(1877~1887)
최초의 축음기는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Phonograph이다. 전신소에서 일하던 에디슨이 송신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것이 음악처럼 들리는 데 착안하여 음악 기록 장치를 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 1879년에 소리를 기계 진동으로 바꾸어 이 진동에 대응하여 주석박에 홈을 파서 소리를 기록하였다. 실린더 레코드의 시작. 이것은 10년 후인 1887년에 소리를 더욱 충실하고 용이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납관을 사용해 납관식 축음기로 개량했다. 초기의 녹음은 소리를 기계적 진동으로 바꾸어 이 진동을 녹음침에 전하여 레코드에 홈을 팠다. 재생은 이 레코드의 홈에 바늘을 대서 기계적 진동을 얻어 이것을 진동판에 전하였다.
- 표준시간 음반(SP판)의 시대(1888~1947)
에디슨의 발명으로부터 몇년 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연구소에서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를 개량하여 소리 저장 매체로 주석 대신 왁스를 바른 원통을 사용하는 Graphophone을 개발했다. 1887년 에밀 베를리너가 아연 재질의 원반을 매체로 이용하는 Gramophone을 개발한다. 초기 그라모폰은 원통형 축음기에 비해 음질이 좋지 못했다. 베를리너는 엘드리지 존슨의 도움으로 그의 그라모폰의 음질을 원통형 축음기 수준으로 개선하여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표준시간 음반의 등장이었다.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미국에서 원통형 축음기와 원반형 축음기가 시장에서 경쟁을 했으며 저렴한 가격과 마케팅으로 인해 원반형 축음기가 시장의 승자가 되었다. 주로 재즈와 블루스, 동양의 경우 초창기 트로트가 상당한 인기를 구사하던 1800년대~1940년대 정도까지만 주로 생산했으며 LP판 기반의 전축이 등장한 이후 사라졌다. SP판은 이후 나올 LP판에 비해 저장 공간이 작아 한 면에 거의 1곡씩만 들어간다. 축음기에 SP판을 올리고 태엽을 감아 바늘을 그 위에 올리면 음악이 나오는데 1곡이 끝나면 바늘이 내려온다. 뒷면을 듣고 싶으면 돌판을 뒤집어서 다시 축음기 위에 올려놓고 구동시키면 된다.
- 장시간 음반(LP판)의 시대(1948~)
음반 규격의 일종으로 LP 음반, 레코드판이라고도 부른다. 이 음반 규격이 등장한 초창기에는, 당시 널리 쓰이던 SP(Standard Playing Record)나 EP(Extended Playing Record)등에 비해 훨씬 긴 재생 시간을 가지고 있어서 LP라는 이름을 붙게 되었다. 1948년에 발표됐을 때의 반응은 DVD가 블루레이 디스크로 업그레이드되는 것 이상의 충격이었다. 크기는 지름 12인치(30cm) 내지는 매우 드물게 10인치(25cm)고, 무게는 일반적으로 110 ~ 180 g 정도이다. EP, LP 등 레코드 판의 재질이 플라스틱(비닐)으로 제조되므로 영어권에서는 모두 바이닐 레코드(Vinyl Record)라고 일컬어서 부르며 한국에서는 LP가 주로 유통되었으므로 LP가 레코드 판의 대명사가 되었다. 주류 음반시장에서 LP의 지위를 이어받은 것이 CD이다. 한편 레이저디스크는 CD의 레이저 픽업 기술을 적용하기는 했지만 디지털 매체가 아닌 LP와 같은 아날로그 매체이다.
LP는 말 그대로 장시간 음반이라는 뜻이지만, 제대로 된 싱글 음반 시장이 없었던 대한민국에서는 EP나 7인치 싱글 음반까지도 포괄해서 LP라고 부르고 레코드판과 LP, 바이닐을 동의어로 쓰는 경향이 있다. 다만 싱글과 EP는 엄연히 규격이 다르므로 구분해야 한다. 규격에 상관없이 아날로그 음반을 통칭하고 싶을 때는 '바이닐(Vinyl Record)'로 부르면 된다.
EP가 원래는 음반 매체의 이름이었다가 이제는 매체와 관계없이 수록곡이 4~7곡인 음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과 비슷하게, 해외에서는 매체 관계없이 정규 앨범을 그냥 LP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원리
일반적으로 음반을 회전시키기 위한 크랭크와 태엽, 그리고 소리 증폭을 위한 나팔관과 재생용 바늘이 결합된 구조로 되어 있다. 간혹 대형 몸체에 화려한 장식이 된 물건도 있고, 가구의 일종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보통 축음기에 사용되는 판에는 미세한 홈이 파여 있는데, 바늘을 움직이는 판 위에 놓게 되면 바늘이 이 미세한 홈들을 지나면서 진동하게 되고, 그 진동을 나팔관[5]이 증폭시켜서 사람이 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를 키운다.
브랜드
축음기는 빅터 축음기, 에디슨 축음기, 콜롬비아 축음기 등 여러 브랜드가 존재했는데 이중 당시 상당히 인기가 많았던 쪽이 '빅터 축음기(Victor Gramophone)'이다. 빅터는 한국에도 많이 흘러들어왔으며 '죽은 주인을 그리워하는 강아지' 문양이 그 회사의 상표인데 황학동 종로 등지의 연로하신 분들에게 물어보면 개표 축음기 라고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다. 실제로 한국의 골동품 전문 사이트에 있는 녀석들은 대체로 이 빅터들이다.
구매
한국의 경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때 굉장히 많은 물건들이 수입되었다. 인사동길 이나 황학동 서울풍물시 뒷골목에 가면 골동품들이 널려 있으며 물량은 많은 편이다. 골동품 가격은 저렴한 편이지만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물건이 많다. 종종 골동품 전문 사이트에서도 판다.
골동품이지만 상태가 좋은 제품을 구하고 싶으면 이베이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가끔 좋은 중고 물건이 올라오는데 경매 입찰로 구매하면 된다. 보통 미국인들이 판매자인데 상태가 좋은 축음기는 미국 현지에서도 가보급이라 가격은 굉장히 비싼 편이다.
의외로 최근까지 인도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인도의 불량한 전력 공급 사정으로 인해 전기가 전혀 필요없는 태엽식이나 수동 축음기가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시골에서는 쓴다고 하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신품인데 이상하게 저렴한 축음기'는 십중팔구 인도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물론 음질은 '소리가 나긴 한다' 이상을 기대하면 안된다. 인테리어 용으로는 안성맞춤일 듯.
관련 관광지
강원도 강릉에 있는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에 가면 온갖 축음기를 관람할 수 있다. 다소 고가의 입장료 임에도 빈티지 문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각광받는 장소이다. 축음기외에도 1920~30년대 공중전화기, 주식시세일람표 등 3층 건물 전체가 빈티지 물품으로 가득 차 있다. 박물관장이 빈티지 문화 매니아로 해외까지 나가 구해왔다고 한다. 개인 소장품이라 물건을 구매할 수는 없고 관람만 가능하다.
기타
당시의 축음기는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하였기에 재생되는 소리는 지금의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빈약하지만, 이런 소리를 좋아하는 팬층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한다.
원래 축음기는 일본식 표현이고 한국에서는 유성기(留聲機)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축음기에 밀려 유성기 쪽이 쇠퇴한 상태이다. 중화권에서는 현재도 유성기라고 부른다.
종이 깔때기와 바늘로도 간이 축음기를 만들 수 있다.만드는 방법 간단히 종이로 된 바늘을 걸고 손으로 돌려도 소리가 나며, 판매되는 제품도 있다.관련 영상
그래미 어워드의 로고와 트로피는 축음기 모양인데, 그래미라는 단어부터가 축음기의 영어인 그라모폰에서 따온 것이다.
LP 플레이어 등장 이전 오디오 기술의 축음기 기술의 정점은 주크박스에서 찍는다.
동영상
참고자료
- 〈축음기〉, 《사이트명》
- 〈축음기〉, 《위키백과》
- 〈축음기〉,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 〈축음기〉, 《두산백과》
- 〈축음기〉,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 〈장시간 음반〉, 《나무위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