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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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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

스모(相撲)는 일본의 전통적인 씨름이다. 두 명의 선수가 씨름판에서 맞붙어 상대편을 씨름판 밖으로 밀어 내거나 넘어뜨려서 승부를 낸다.[1]

개요

스모는 두 선수가 서로 맞잡고 밀어내기, 당기기, 제치기, 비틀기 등 여러 가지의 승부수를 써서 상대편을 쓰러뜨리거나 스모판 바깥으로 밀어 내면 이기게 되는 개인 경기이다. 스모 대회 중에 일본스모협회가 개최하는 공식적인 스모 대회를 '혼바쇼(本場所)'라 하며, 모두 15일 간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일 년 중 홀수 달에 한하여 모두 여섯 번 개최한다.

일본 사람들은 스모를 한자로 표기할 때 '상박(相撲)'이라고 쓰며, 스모선수를 '리끼시(力士)'라 하고, 스모를 겨루는 장소(씨름판)를 '도효(土俵)', 경기에 앞서 행하는 의식을 '도효마쓰리(土俵祭り)'라고 한다. 스모는 원래 단순한 스포츠라기보다는 길흉을 점치고 신에게 바치는 제례나 진혼, 주술 등의 행사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경기에 앞서 두 선수는 을 헹구고, 부정을 없애기 위해 소금을 씨름판 위에 뿌리는 도효마쓰리 의식을 행한다. 한국 씨름의 샅바에 해당되는 '마와시(まわし)'를 차고 경기를 한다.

체중이 아닌 실력별로 계급이 나뉘는데, 계급별 성적에 따라 상위 등급에 오르거나 하위 등급으로 강등된다. 한국 씨름의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요코즈나(橫綱, 그랜드 챔피언), 오제키(大關, 챔피언), 세키와케(關脇, 주니어 챔피언), 코무스비(小結), 마에가시라(前頭), 쥬료(十兩), 마쿠노시타(幕下), 산단메(三段目), 조니단(序二段), 조노구치(序口) 순으로 서열이 정해져 있다. 여기서 요코즈나가 되기 전의 상위 3단계인 오제키, 세키와케, 코무스비를 3약쿠(三役)이라고 한다. 일단 쥬료가 되면 경기장에 이름을 올릴 수 있으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급료를 받을 수 있다. 쥬료급 이상 선수를 세키도리(關取)라고 부른다.[2]

역사

스모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야요이 시대지만, 아마도 그 이전부터 스모라는 것 자체는 있었다고 추정한다. 물론 그때의 스모가 지금의 스모와 같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고, 처음에는 리키시들간 맨손 힘겨루기에 가까웠을 터이다. 말이 힘겨루기지, 기록에 의하면 유술이나 발차기 등도 포함한 사실상의 종합 격투였다. 이것은 스모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무도나 유술, 유도 등으로도 발전했다.

기록상으로 지금의 스모의 토대가 성립된 때는 나라 시대이다. 속일본기에 찌르기, 때리기, 차기 등 세 가지 기술을 금하고 48개 기술과 예법에 대한 기록이 있으므로, 이것을 현대 스모의 시작이라고 추정한다. 당시에서부터 스모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기에 정기적으로 스모 경기를 열기도 했고, 심지어 일본 황실이나 귀족들이 전문 스모 선수를 육성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즉, 스모는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의 프로 스포츠로 성장했다.

무로마치 시대, 가마쿠라 시대, 센고쿠 시대에도 장려되었는데, 오다 노부나가가 현재의 도효(씨름판)의 원형을 고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이묘들도 직속 리키시를 육성해 손님을 접대하거나 다른 다이묘의 리키시와 대결하는 어람 시합를 열었으며, 우수한 선수는 가신으로 임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에도 시대에는 서민층에게도 보급되고 직업 리키시도 등장하여 대중적으로 널리 퍼졌고 급기야 승패를 걸고 도박을 하는 등 사행성이 짙어지기도 했다. 사찰 건립 모금을 위해 스모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쿠로후네 사건 당시 에도 막부가 미국인들에게 일본의 상징으로서 자랑스럽게 보여준 것 중 하나도 스모였다.[3]

규칙

먼저 준비동작으로 시코(四股)라는 작은 의식을 치른다. 스모 선수 하면 으레 떠올리는 양다리를 쩍 벌리고 한 발씩 들었다가 지면을 강하게 내리밟는 행동이다. 원래는 시코아시(醜足)의 약자이기도 한데 스모 훈련방법의 일환이기도 하다. 민속적으로는 땅에 깃들어 있는 사악한 영령들을 짓밟아 멸한다거나 대지의 날뛰는 기운을 밟아 가라앉히거나, 혹은 밟는 것으로 잠자는 초봄 무렵의 대지를 깨워서 한 해의 풍작을 약속받는다는 의미도 있다.

경기 규칙 또한 매우 간단하다.

직경 4.55m짜리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도효(土俵)에서 리키시(力士) 2명이 승부를 겨루는데, 발바닥과 발가락을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가 바닥에 닿거나, 을 포함한 신체가 도효 바깥에 닿으면 패배한다. 씨름으로 치면 샅바라고 할 수 있는 마와시가 벗겨지거나 반칙을 한 경우도 마찬가지. 판정은 교지(行司, 심판)가 내린다. 승부 제도는 한방으로 결정되는 단판제다.

다른 투기 종목과는 달리 심판이 신호를 주면 경기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선수가 말 없이 몇 분간 서로 예비동작을 하다가 둘이 서로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시작한다. 실제 경기에서는 시합 전 준비 동작만 보통 5분 정도 소요된다. 입장하고, 물 마시고, 몸 풀고, 소금 뿌리고, 그 뒤로 자세 잡더니 풀고 소금 뿌리고, 자세 잡고, 자세 다시 풀고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현대에는 그나마 방송시간의 압박이 있어서 3회만 반복한다. 마쿠노우치 경기에는 그 사이에 깃발을 들고 장내를 도는 광고까지 한다. 광고 시간도 어느 정도 벌어 줘야 하는 것이다.

스모 이외의 많은 레슬링 계열의 격투기는 폴처럼 상대의 등이 땅에 닿아야 승리가 되는 경우가 많고, 장외가 반칙인 경우는 있어도 즉시 패배가 되는 사례는 적다. 이 때문에 스모의 승부는 다른 격투기와는 다르게 대부분 빠르게 끝나고 승패의 향방이 정말 미세한 차이로 갈린다. 체중제를 하지 않아도 승부가 성립하는 이유라고 봐도 될 것이다. 체격 차이가 커서 저게 뭐 상대가 되겠냐 싶은 시합도 체격이 작은 쪽이 순전히 기술과 순발력만으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신장 제한이 지금보다 엄격했던 시절 두피에 실리콘 보형물을 집어넣고 제한 신장을 넘겨 리키시가 됐을 정도로 체구가 작았던 마이노우미 슈헤이(舞の海 秀平)가 이런 선수로 유명했다. '기술 백화점'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다.[3]

일문과 도장

모든 스모 선수들은 '헤야'(部屋)라는 도장에 소속되고, 헤야는 반드시 일문에 소속되어야 한다. '헤야'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유가증권인 토시요리 카부(年寄株)가 필요하고, 카부를 인수하면서 동시에 헤야가 설치된 건물을 인수하거나 건축해야 한다. 그 정도 재력이 없이 토시요리 카부만 소유하면, 도장에 소속된 코치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부는 보통 1억 엔 전후로 거래되지만, 자신의 도장을 열 수 있는 면허개전과도 비슷하기 때문에 특정 계급 이상에서 일정 기간 이상 머무르는 등 세키도리로서의 실력을 보증받은 자들에게만 소유권이 주어진다. 도장들은 대개 도쿄에 있는데, 대로변이 아닌 골목 안쪽이라고 하더라도 도쿄의 3 ~ 4층짜리 단일건물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야카타가 송사에 휘말리거나 급서하는 등 변수가 없다면, 일반적으로 소속 헤야 출신의 세키토리가 후진 양성에 뜻이 있는 경우 선수 생활 과정에서 카부 계승자격을 취득한다. 이후 해당 도장에서 코치를 맡다가 스승이 정년을 맞으면 그 도장을 인수하면서 원래 소유하던 카부를 넘기는 식으로 대가 이어진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데릴사위 비슷하게 들어가 도장을 물려받는 경우도 많고, 결혼이 이혼으로 끝나면서 도장의 소유권을 놓고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일도 종종 생긴다.

도장이 크게 흥하여 세키토리가 여럿 배출되고 이들이 각각의 도장을 열기를 원하면 분가하면서 일문을 이룬다. 도장의 오야카타는 선수들의 지도뿐만 아니라 하위 계급 선수들의 숙식을 책임져야 하는데 스모협회로부터 급료와 보조금을 받긴 하지만 액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폰서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특히 도장에서 세키토리가 배출되면 그 선수의 출신지 향토 기업에서 줄줄이 스폰서를 자처하기 때문에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들 역시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3]

계급과 구조

일본의 스모계는 나이와 입문 당시 선 / 후배 등은 전혀 무의미하고 오로지 계급에 따라 대접받는, 철저한 실력지상주의 사회이다. 하위 계급은 상위 계급에게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절대 복종하고 예의를 지켜야 함은 물론 시중을 드는 일, 심부름, 훈련 보조 따위 잡무를 기꺼이 해야 한다. 동문의 선후배가 성적에 따라 지위가 역전되는 일도 잦고, 나이가 한참 차이 나는 후배라도 상위계급이라면 훈련 중 선배를 체벌하거나 심하게 훈계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긴다. 한 마디로 "꼬우면 네가 노력해서 출세해라."는 식이라 보면 된다. 물론 원칙은 분명히 그러하지만 스모계는 사문 내의 선후배 관계 또한 엄격하고 중요하며, 상위 리키시라고 하더라도 언제 몰락할지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계급이 높다고 후배에게 막무가내로 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훈련시간을 제외한 생활적인 부분이고, 훈련에 임해서는 상위 계급 리키시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3]

요코즈나(横綱)

리키시 중 최고위. 쉽게 말해 명예의 전당이다. 스모계에서는 전설의 경지로 생각하며 그에 맞게 대단한 예우를 받는데, 한 번 요코즈나가 되면 다른 스모 선수들과 달리 절대 강등 되지 않는다. 강등 걱정이 없으므로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출장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대회에 출전하면 그 격에 맞게 대회의 모든 출전자 중 무조건 가장 강력한 15인과 싸운다. 요코즈나를 이기면 단순한 1승이 아니라 승격 강등 심사에 유리하게 반영되는 스펙으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마에가시라의 경우에는 '킨보시'라고 하여 은퇴할 때까지 1년에 260만원에 해당하는 상여금을 지급받을 요건이 된다. 그만큼 요코즈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대신 성적이 나쁘면 강등이 아니라 바로 은퇴를 각오해야 한다. 출전자 중 가장 강한 15명과 싸우면서 최소 11승은 해야 체면을 지킨 것으로 평가받으며, 2대회 연속 10승 미만이면 사실상 강제 은퇴에 매우 가까워지게 된다. 물론 요코즈나까지 될 정도면 기본 실력이 대단하기도 하고, 강등 걱정이 없으니 무리해서 출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10승 미만으로 망신을 당하는 일은 별로 없다.

일단 규정상으로는 오제키로 승격한 선수가 2개 대회 연속 우승 혹은 그에 준하는 성적을 거둔 경우, 심의위원회를 통해 진급을 심사한다. 전적 외에도 품행, 인품 등도 고려하지만, 이 부분은 스모협회가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비판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사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2개 대회 연속 우승이 의무가 아니었다. 보통 오제키가 1개 대회를 우승한 이후, 심의위원회에서 '다음 바쇼에서 우승 혹은 몇승 이상을 올리면 진급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조건을 정해주는데 그 조건이 우승 직후 다음 대회에 13승 정도였다. 물론 그 조건에 미달하면 다시 처음부터 연속 우승이나 그에 준하는 성적을 달성해야 했다. 다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어서, 12승 정도로 우승에 실패했어도 요코즈나를 꺾었다거나 경기 내용이 좋으면 특별히 한 대회 더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되기도 하며, 13승을 올리고도 패한 경기에서 정말 형편없이 졌다면 심의가 보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와이 출신 고니시키, 아케보노 등이 연달아 요코즈나를 사정권에 두자 협회는 그들의 요코즈나 승격을 막기 위해 2대회 연속 우승을 해야 요코즈나로 인정해주겠다고 기준을 강화했는데, 이 때문에 90년대 일본의 국민 스타인 다카노하나 코지(貴乃花 光司)는 2년 가까이 연속 우승 직전에서 아케보노에게 패해 오제키에 머무르다 간신히 요코즈나에 올랐다. 이후부터 2대회 연속 우승은 엄격하게 지켜져 왔으나, 일본인 요코즈나의 명맥이 끊겼음을 이유로 협회가 괜찮은 일본인 오제키가 등장하는 대로 1980년대의 완화된 승격조건으로 교체해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그 혜택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기세노사토(稀勢の里 寛)였다. 기세노사토는 현 세대 최강의 리키시인 하쿠호를 상대로 그나마 가장 상대전적이 좋았던 일본인 리키시로 예전부터 많은 푸쉬를 대놓고 받아왔었다. 오제키 승진 때도 우승도 없는 32승 진급이라는 특혜에 가까운 성적이라 비판이 많았고 몇 년 간 맥이 끊겼던 일본인 리키시의 우승도 고에이도나 고토쇼기쿠가 차지하는 등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었다. 여러 번 협회의 파격적인 특혜성 승진 조건에도 번번이 물을 먹어오던 기세노사토가, 결국 준우승 이후 연속된 바쇼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2017년 19년 만에 순수 일본 출신 요코즈나로 승격했다.

바로 다음 바쇼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연속 우승의 굴레도 뒤늦게나마 벗고 자신을 요코즈나로 올린 것이 틀린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긴 했다. 그런데 하필 그 바쇼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제대로 치른 바쇼가 별로 없던 기간이 길어졌고, 18년 11월 바쇼에선 개막 후 내리 5연패를 당하는 망신을 당한 끝에 강제 휴장 조치가 내려지는 수모를 겪었는데도 회복되지 않아 19년 1월 16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드물게 우승을 하지 않고도 요코즈나가 된 사례가 하나 있는데, 훗날 프로레슬링과 격투기로 전향해 트러블메이커가 되었던 키타오 코지(요코즈나 시절 이름은 후타하구로)이다. 키타오는 10대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2미터에 가까운 체격과 잘생긴 얼굴로 엄청나게 인기몰이를 했는데, 사상 최연소 오제키 승진 후 연달아 우승권에 근접했고, 당대 최고의 요코즈나이던 치요노후지와 2번 연속 동률을 이루고 우승결정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엄청난 인기에 이제 20대 초반이고 절대자로 군림하던 치요노후지의 대항마로 키타오가 성장하리라 기대했던 협회는 논란을 감수하며 요코즈나로 승격시켰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우승자와 동률이고 3명의 요코즈나를 모두 격파한 실적을 근거로 내세웠다. 문제는 승격한 후타하구로가 번번이 치요노후지의 벽에 막혀 준우승만 2번 한 게 고작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품행 문제로 말이 많은 데다 도장의 후배와 스승의 사모를 두들겨 패는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고작 1년 만에 강제 은퇴당했다.

시합에서도 정면승부를 암묵적으로 강제당하는 등 요코즈나로서 품격을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다. 요코즈나가 헨카(変化, 회피기)를 썼다가는 갑분싸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위에 언급된 요코즈나 가쿠류는 어깨 부상 때문에 기세노사토를 상대로 헨카를 썼는데 어쩌다가 그 바쇼에서 우승까지 차지하자 왕창 까였다. 물론 요코즈나를 상대하는 다른 리키시들도 요코즈나에게는 암묵적으로 하타키코미(叩き込み) 같은 기술은 쓰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다카노하나나 하루마후지 같이 상대적으로 몸매가 날렵했던 리키시들도 요코즈나에 오르고 나서는 정면승부를 위해 그 전보다 체중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나가는 69대 요코즈나 하쿠호에게 따라오는 비판도 여기에 있다. 팔꿈치를 쓰는 등 요코즈나씩이나 되는 리키시가 '요코즈나다운 스모'가 아닌 '이기기 위한 스모'를 한다는 비판이다. 아무래도 일본식 정서의 결집체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603년부터 현재까지 421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반열에 오른 사람은 단 73명뿐으로,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받는 영광스러운 위치이다. 한국 씨름으로 비유하자면 천하장사 정도로 볼 수 있다. 스모계 자체가 워낙 보수적이고, 협회가 리키시들의 사생활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매우 강하기 때문인지, 실력만 놓고 보면 요코즈나의 자질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승격하지 못한 채 은퇴한 선수들이 많다. 스모 업계의 보수성이 조금만 덜했다면 현재까지 100명 넘게 이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른다.[3]

오제키(大関)

요코즈나 다음 가는 위치로 9단(段)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삼역(세키와케 혹은 고무스비)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3대회 합계 33승 이상을 거둔 경우 심의위원회에서 승급을 심사한다. 보통은 33승이면 승격이 되지만 별의별 이유로 승급이 반려되기도 하는데, 34 ~ 5승을 올리고도 3번째 대회의 성적이 안 좋았다거나 3대회 33승이라도 그 중 10승을 채우지 못한 대회가 있었다거나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상대들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거나 반대로 계급이 낮은 상대에게 허무하게 패했다거나 평소 언행이 과격했다거나 등이 있었으며 심지어 그냥 지금 오제키가 많아서 안 된다는 이유까지 있었다.

데뷔 2년만에 오제키 자리에 올랐지만 부상으로 1년여 만에 강등당했던 미야비야마의 경우 훗날 심기일전해 10승 5패, 14승 1패, 10승 5패라는 성적을 연이어 거두었지만 당시 오제키가 너무 많고 3번째 바쇼의 성적이 2번째만 못했다는 이유로 승급이 반려되었다. 그 다음에는 9승 6패를 거두었는데 이 또한 3바쇼 합 33승이라는 충분한 승수였지만 승급하지 못했다. 반대로 자신보다 격이 높은 요코즈나를 연파했다거나 하는 경우는 가점이다. 사실상 일본인 리키시들에게나 가능한 특혜로 여겨지긴 하지만 기세노사토나 고에이도가 32승을 거두고 승급했다.

고무스비에서 세키와케에 오르자마자 3대회 합계 33승 이상으로 오제키에 승진된 사례는 치요노후지가 유일하며, 2018년 새로운 오제키로 등극한 조지아 출신 토치노신 츠요시(栃ノ心 剛史)의 경우 마에가시라 계급에서 14승 1패로 우승 후 고무스비를 뛰어넘고 바로 세키와케로 승급했고, 이후 2대회에서 10승, 13승을 거두자 바로 오제키로 승급되었다. 오제키 승급도 심의위원회를 거쳐 심사하기 때문에, 스모계 대내 · 외적인 정세와 리키시 본인에 대한 여론, 위원들의 판단에 의해 유동적이고 자의적 해석이 내려질 때가 있다. 최초의 몽골인 요코즈나 아사쇼류의 경우 평소 과격한 언행으로 오제키 진급이 1회 보류된 바 있다.

요코즈나는 전설 취급이기 때문에 오제키가 실질적인 최고위직이라, 여러 특전이 있다. 오제키 계급에서 은퇴하면 퇴직금 액수도 크게 늘어나고 별도의 공로금도 푸짐하게 나오며, 강등 조건도 다른 리키시들보다 느슨하다. 카도반(角番)이라고 하며 두 가지 양태로 나타나는데, 두 대회 연속으로 패가 승보다 많아야 세키와케. 즉 한 대회 걸러 한 대회마다 8승만 찍으면 오제키의 지위를 반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1에 의하여 세키와케로) 강등되자마자 10승을 찍으면 다시 오제키

이 때문에 일정 이상의 기량만 유지한다면 요코즈나는 되지 못해도 오제키로 오랫동안 롱런하는 경우가 많고, 뛸 수 있을 때까지 뛰다가 더 이상 오제키 계급을 유지하지 못하면 알아서 은퇴하게 된다. 일본인 최다승 기록(1,047승)을 경신하고 은퇴한 카이오 히로유키(魁皇博之)는 무려 11년간 오제키로 재직하다 은퇴한 덕에 어지간한 요코즈나 부럽지 않은 퇴직금과 공로금을 수령했다.[3]

세키와케(関脇)

사실상 2위 계급으로, 기본적으로 오제키와 요코즈나를 제외한 선수들 중 이전 대회의 상위 2명을 세키와케로 두지만 세키와케가 2명 이상 있으면서 오제키로 승격하지 못하고 자격만 유지하는 경우 3 ~ 4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은 세키와케 두 명이 유지된 채로 오제키가 세키와케로 강등되거나, 코무스비 계급의 선수가 특출난 성적(13승 이상)을 거두어 승격되는 경우 볼 수 있다. 오제키로의 승격 조건은 보통 3대회 33승 이상, 강등 조건은 8패이다. 보통은 대진이 세키와케를 대회초반에 요코즈나, 오제키진과 경기를 많이 붙이기 때문에 확실히 치고 올라갈 기량이 없다면 초반부터 연속 패전을 쌓고 시작하기 쉽다. 그러다 까딱하면 강등이다. 세키와케는 강등과 관련된 특례도 없기 때문에 올라갈 거면 바로 올라가고 아니면 바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세키와케 계급에서 오래 머무는 경우는 드물다.

오제키로 가는 실질적 관문이기 때문에, 여기서 승급을 못하면 다시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오제키의 적격 기준은 현 계급이 세키와케이면서 최근 3바쇼 45전 중 33승 이상인데, 1 ~ 2승 미달임에도 통과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35승을 올리고도 승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3바쇼동안 총 승수 33승 이상이면서 각 바쇼에서의 승수 10승 이상이 최소 조건이다. 그외에 우승 경력, 수상 실적이나 요코즈나를 이긴 실적이 있으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그 기준이 상당히 자의적이며 오락가락 하는지라 말이 나오기도 한다.

얼마나 기준이 고무줄 같은지 8승 7패로 간신히 반타작을 넘긴 승률이 포함된 채로 32승을 채우고도 승격되는 경우도 있었고, 4바쇼 40승을 넘겼으니 32승이지만 승격시킨다며 승격되는 경우도 있었다. 근 10년간 3바쇼동안 삼역을 유지하면서 총 승수 33승 이상, 각 바쇼 승수 10승 이상을 거둬 승격된 경우는 단 두 차례뿐이었고, 그 중 한 케이스가 후술할 타카케이쇼이다. 우승 포함한 9승-13승-11승을 거뒀으나 9승이 껴있다는 이유로 승격이 반려되어 한 차례 더 세키와케에 머물러야 했다.

세키와케가 8패로 마감했는데 아랫쪽에서 딱히 올려줄 사람이 안 보인다 싶으면 3역에서 바로 아웃시키지 않고 고무스비로 남겨두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역사상 10번도 없었던 일인데 미타케우미 히사시(御嶽海 久司)는 '세키와케로 8패→ 고무스비 강등으로 3역 유지'를 두 번이나 찍어봤다.

역도산이 스모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세키와케까지 승격했다고 한다.[3]

코무스비(小結)

오제키, 세키와케, 코무스비를 통틀어서 산야쿠(三役:삼역)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상위 계급을 제외한 마에가시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리키시 2인이 다음 대회의 코무스비가 된다. 드물게 코무스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세키와케로 승격되는 경우가 있는데, 반드시 2인이 존재하는 세키와케가 공석이 되는 경우, 또는 마에가시라 상위 계급에서 대회 우승을 하거나 13 ~ 4승 수준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경우 바로 세키와케가 된다. 코무스비 역시 8패만 당하지 않으면 계속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코무스비 계급에서 보통 카치코시를 거두면 세키와케로 승격시켜줌이 관례다. 세키와케가 4인이었을 때 12승을 올리고도 세키와케로 승격되지 못한 사례가 있다. 반면 세키와케가 마케코시를 당하는 등 공석이 발생하면 8승만 채워도 세키와케로 진급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코무스비가 모두 마케코시를 기록한 경우 평막 상위권에서 8승만 해도 바로 세키와케로 진출하는 경우 또한 생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회 첫날 요코즈나와 코무스비의 시합이 배정되는데, 이 때문에 대회 초반부터 연패를 쌓고 시작하게 되기가 쉬워서 유지하기 어려운 계급이다.[3]

마에가시라(前頭)

이 계급에 속한 이들을 히라마쿠(平幕)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메이저리그 주전 선수들로 볼 수 있다. 최상위 리그인 마쿠우치의 정원 42명에 맞춰, 요코즈나와 삼역 이상 숫자에 따라 엔트리는 유동적이며, 그에 맞춰 실제 실력과 계급에 따라 선수의 순위가 표기된다. 예를 들면 前頭1, 前頭9 등이다. 5위 이내 선수들은 오제키나 요코즈나와도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카츠코시 조건이 8승으로 반타작이라고 해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기량이 좋은 선수들 중에서도 요코즈나, 오제키 급으로 진출할 능력이 안되는 경우 커리어 전성기를 마에가시라 상하위를 계속 오가다가 마치는 선수들이 많다.

마에가시라 상위와 하위의 격차는 오히려 마에가시라와 삼역 사이의 실력 차이 이상으로 심하다는 시각이 있는데, '엘리베이터 리키시'들의 존재 때문이다. 마에가시라 상위를 지키는 선수들은 요코즈나나 오제키를 만나도 마냥 패배하지는 않지만, 이 엘리베이터 리키시들은 하위 레벨일 때는 신나게 약자들을 잡다가도 상위 레벨에 올라오면 강자들 틈바구니에서 견디질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12패까지 얻어맞고 강등되는 일도 허다하며, 이런 식으로 1년 내내 30 ~ 40계단까지 오르내리기도 한다. 마에가시라는 대진표상 하위 선수를 잡으며 승수를 쌓다가 상위 선수와 만나면서 패배를 쌓는다.

마에가시라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2명이 코무스비가 되는데, 코무스비가 여러명 자리를 유지하는 바람에 T/O가 비지 않아 승격되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요코즈나부터 여기까지를 마쿠노우치(幕内)라 부른다. 엔트리 정원은 42명으로, 마에가시라 하위 순번은 주료로 강등되고 주료의 최상위 순번과 교체된다.

NHK의 TV 생중계의 경우, 일본 현지에서는 산단메 상위부터 중계하지만 해외 송출 채널인 월드 프리미엄에서는 마쿠노우치만 중계한다. ABEMA의 스모 채널에서는 조노구치부터 중계하지만 일본에서만 볼 수 있으며 해외에서는 지역제한이 걸려 못 본다.[3]

주료(十両)

타 스포츠에 비유하면 1군 백업 또는 교체 멤버 수준의 레벨이다. 즉 1.5군의 성격을 가진 리그이다. 마쿠우치로 가기 위해, 또 인간 이하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할 수 있는 마쿠시타 강등을 피하기 위해 싸우는 신예와 노장들의 실질적 격전지가 되고 있다. 주료부터는 마쿠우치와 동일하게 한 대회 15경기를 치른다. 승부에 임하는 치열함이 처절하게 드러난다는 이유로 주료급의 경기를 더 즐겨보는 팬들도 많다. 한 대회가 끝날 때마다 평균적으로 4 ~ 5명 정도 승격과 강등이 이루어지나, 부상과 결장으로 마쿠우치의 엔트리 정원이 많이 빠지면 42명을 채우기 위해 추가로 다음 순번 선수들을 선발하는 경우도 있다.

주료가 되면 공식적으로 시중 드는 심부름꾼(츠케비토, 付け人)도 1명 이상 붙게 되고, 복장과 헤어스타일도 특별한 것을 사용하며, 스모협회에서 하는 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 비즈니스 석이 제공된다. 이 계급부터는 24시간 내내 도장 공동생활을 할 의무에서 벗어나고 독자적인 개인 생활 공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승급이 확정되면 결혼 일정을 잡는 사람이 많다. 주료와 마쿠시타의 연 수입부터 최소 15배 이상 차이가 나므로 주료의 월급이 마쿠시타의 연봉보다 많고, 단 한 번만 주료 계급을 달더라도 퇴직금이 10배 가까이 불어나며, 개인 후원회도 이 시점에 결성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선수는 마쿠시타와 주료의 차이를 인간과 짐승의 차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스모 리키시들로서 수입으로나 지원에 있어서나 엄청나게 풍요로워지기 시작하는 위치이므로, 거의 모든 리키시들은 주료에 승진하려는 목표가 최우선이 된다. 주료 승격을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는 것에 비할 수 있으며, 요코즈나들의 은퇴 회견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물으면 거의 대부분 주료 승격 때를 이야기 할 정도이다. 특급 신예가 아닌 이상 주료와 마쿠시타를 몇 번 오르내리다가 주료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과 땅 차이만큼 대우의 차이를 실감한 리키시들에겐 엄청난 동기를 부여한다. 반면 마쿠우치에서 꾸준히 활동하거나 주료를 오르내리며 30대를 넘긴 베테랑들의 경우, 주료는 선수 생활 최후의 마지노선이 된다. 오제키로 승격할 만큼 특출난 선수들이 아닌 경우, 나이가 들수록 강등 회복 특례도 없는 마쿠우치에서 계속 8승을 채우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주료와 마쿠우치를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된다. 주료로 강등되어도 어느정도 컨디션과 기량만 유지하고 있으면 충분히 다시 승격할 수 있고, 강등된 만큼 기본급은 조금 줄지만 마쿠우치 시절 모아온 누적 상여금도 지급되기 때문에 실제 수입 또한 8 ~ 90% 가량은 유지된다. 그래서 자녀가 성장해 가는 30대 중반에도 주료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길 바라는 리키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베테랑들이 주료 계급조차 유지할 힘이 남지 않으면 마쿠시타로 강등되면서 기본급도 터무니없이 깎이고 누적된 상여금도 지급이 중지되므로 수입이 거의 없어지는 처지에 몰린다. 다시 올라오면 되긴 하지만 그 나이 먹고 다시 올라오는 것도 어려우니 주료에서 떨어지면 두 손 들고 은퇴할 수 밖에 없다. 마쿠시타로 강등되면 1년의 6번 대회 참가수당 15만 엔과 승리수당 몇만 엔이 전부다. 마쿠시타로 떨어지면 주료 때 104만 엔씩 나오던 기본급도 없고, 마쿠우치와 주료 시절 쌓아둔 누적상여금도 지급을 중지한다. 요코즈나부터 주료까지를 세키토리(関取)라 부르며, 여기까지가 스모의 메이저리거들이라 할 수 있다. 선수 명단을 작성할 때 이름을 굵은 글씨로 써 준다. 따라붙는 츠케비토는 하위 계급의 리키시로서 훈련소부터 경기장, 행사장까지 따라다니며 해당 리키시의 잔심부름이나 신변을 챙겨주는 역할을 한다. 그 리키시가 속한 헤야(도장)에서 붙기도 하고, 헤야끼리 연합한 일문에서 뽑히기도 한다. 또한 개인 케쇼마와시를 입고 의식을 위한 무대에 나갈 수 있다. 주료 이상이 되면 급여는 물론 신분까지 한 번에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3]

마쿠시타(幕下) 이하

위상, 대우 모두 미국 야구계의 마이너 리그로 비유하면 딱 맞는 계급으로, 세키토리들과 달리 한 대회에 7경기를 치르게 되며, 기본급과 상여금은 없고 오로지 1년에 6번 대회에 출장하는 횟수에 따라 출장수당과 승리수당만 지급된다. 마쿠시타 1위와 주료 13위는 딱 한 순번 차이지만, 수입은 15배 이상, 대우와 지위도 하늘과 땅 차이다. 비인간적인 대접과 연습을 빙자한 가혹행위, 상위 계급의 온갖 잔심부름과 시중도 감수해야 하며, 프라이버시 같은 건 없고 365일 24시간 오로지 도장 공동 숙소에서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이다.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장. 마쿠시타까지 성적에 따라 계급이 상승하는 구조는 동일하지만, 아마추어 우승 경력이 있는 경우 바로 마쿠시타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주료 승급이 유력한 마쿠시타는 그나마 트리플A 대접이라도 받지만 그 다음의 산단메(三段目), 조니단(序二段), 조노쿠치(序ノ口)로 내려갈 수록 처우가 기하급수적으로 열악해진다.

정말로 이례적인 사례지만 조노구치 밑바닥을 전전했음에도 인기를 누렸던 선수도 있다. 그 인물의 이름은 쇼난자쿠라 소타(勝南桜 聡太). 가나가와현 지가사키 출신의 스모 선수였고 통산 3승 238패, 스모 최고 연패기록인 104연패라는 장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5년 9월에 프로 데뷔를 했으며 본래 핫토리자쿠라라는 링네임을 썼으나, 져도 너무 진 나머지 나쁜 기운을 끊어보고자 여러 차례 시코나를 개명까지 할 정도로 노력했으나 2021년 7월에 결국 은퇴했다. 키는 180으로 큰 편이지만, 몸무게가 82kg에 BMI가 25 정도로 스모 선수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깡마른 몸이었다. 저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3승이나마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제법 운동신경은 있어서 헤야에서도 몸을 불리면 괜찮은 선수가 될 것이라 보고 데뷔를 시켜주었으나,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던 탓에 몸을 불리지 못했다. 일반적인 선수였다면 저런 대기록을 남기기 전에 진작에 은퇴했겠지만 다리근육이 너무 없어서 제 풀에 풀썩 넘어지거나 200kg씩 되는 선수들에게 어린애마냥 튕겨져나가는 등의 코믹한 모습 + 살이 안 쪘기에 스모판에서 보기드문 제법 훈훈한 얼굴 + 그럼에도 경마의 하루 우라라처럼 끝없이 져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근성있는 모습 때문에 스모 선수로서는 최약체였지만, 어중간한 주료급보다도 인기가 많을 정도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려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쇼난자쿠라는 가장 마지막에 쓴 링네임으로,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가장 오래 쓴 핫토리자쿠라 쪽이 검색결과가 많이 나온다.

그 외에 1986년에 데뷔해서 2022년에 은퇴할 때까지 계속 하위 계급에서 활동했던 하나카제라는 스모 선수도 있다. 하위계급에서 계속 머무는 사례 중 하나가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는데 쥬료가 되면 헤야를 떠나 스스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냥 하위계급을 유지하며 헤야에서 살곤 한다.[3]

선수 생활

대개의 리키시들의 첫 선수데뷔는 중학교, 고등학교 연령에서 조노구치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훈련소(헤야)에 뛰어들기도 한다. 일부는 대학에 진학하여 교내 명문 스모부를 거쳐 헤야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선수권에서 거둔 수상이력을 참작하여 조노구치보다 상위의 계급에서 리키시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제도는 과거 수많은 수정을 거쳐 현재의 방식으로 정립되었으며, 마쿠시타 쓰케다시(幕下付出)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 마쿠시타 15부터 시작하는 경우: 전일본 스모선수권 대회(아마추어 스모), 전국 학생스모 선수권 대회(학생 요코즈나), 전일본 실업단 스모선수권 대회(실업단 요코즈나), 국민체육대회 스모경기(성년남자부 A, 국체 요코즈나): 이 중 한 가지 선수권 우승 보유자
  • 마쿠시타 10부터 시작하는 경우: 전일본 스모선수권 대회 우승을 필수적으로 만족한 상태에서 나머지 세 선수권 중 한 가지 이상의 우승기록이 있는 자
  • 산단메 맨 끝자락부터 시작하는 산단메 쓰케다시도 있는데 그 조건은 상기 대회 8강 이상 입상한 경우이다.

마쿠시타 이하의 급료로 생활이 되는가 싶지만 실상 조노구치, 조니단의 경우는 신체적,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10대 후반 입문자들이 대다수이기에 츠케다시 없는 고졸, 대졸 출신 선수들은 금방 벗어나는 편이다. 스모는 수백 kg에 달하는 체중을 지속적으로 이겨내야 하는 강인한 인대를 타고나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위, 췌장 같은 장기들 또한 선수생활 동안의 가혹한 식습관을 버텨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재능충들의 스포츠이지만, 그 중에서도 어마어마한 재능까진 못되고 노력이 좀 필요한 재능충들의 경우 산단메 ~ 마쿠시타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20대 초 ~ 중반 정도 연령대에 주료로 승급하는 경우가 많다. 비합리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이나 낙오자에게 가혹한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대졸 취업자들의 연령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늦는 것은 아닌 셈이며, 무엇보다 스모에 입문하면 주료로 승급하여 나가기 전까지는 헤야에서 숙식을 다 책임지므로 돈이 나갈 일이 없다.

참고로 리키시들은 전부 본명이 아닌 링네임인 시코나를 쓴다. 이는 외국인 리키시도 예외가 아니라서 파란 눈의 리키시가 한자 이름을 쓰는 것이 스모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스모가 일본색이 강하다 보니 외국인 리키시들은 어느 정도의 일본어를 구사할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대신 외국인 선수라고 해도 결혼에 있어선 일본인 배우자를 종용받는데, 외국인 배우자를 둔다고 제적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케보노 타로의 케이스처럼 후원회가 해산당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일본인 배우자를 둔다.

스모 선수들은 이겨도 잘 웃지 않는데, 규정으로 상대 선수에게 감정표현을 자제하라고 써 있다는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패배해도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자제된다. 누가 이기고 짤막하게라도 세레머니를 보여주면 소소하게 이야깃거리가 될 정도였다. 어느샌가 잘나가던 스모 선수도 건강 때문에 은퇴할 때가 오는데 이때 그동안 모아둔 많은 돈으로 애인과 연애하거나 결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모 선수 생활은 건강에 매우 안좋아 수명이 짧을 뿐만 아니라, 애인들도 이를 노리고 유산을 얻기위해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도 있어서 다른 스포츠 선수처럼 행복한 은퇴를 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또한 현역 리키시의 경우 면허 여부와 상관없이 운전을 금지하는데 1985년 한 리키시가 교통사고를 일으킨 뒤로 생겨난 규정이라고 한다.[3]

교지(行司)

도효 위에서 심판 역할을 맡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심판은 따로 있다. 도효의 네 면에 토시요리들이 둘러앉아 교지의 판정이 정확한지 확인하고 의혹이 있을 경우 도효에 올라와 경기 상황을 재확인한다. 아예 명칭부터가 '승부심판'이다. 심판진 간 합의를 마치면 승부심판들은 다시 도효 아래에 좌정하고, 심판팀장은 경기 상황을 설명한 뒤 교지의 판단을 승인하거나, 뒤집거나, 또는 재경기를 선언하게 된다. 야구의 4심합의 제도랑 비슷하다.

물론, 심판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모에서 행하는 모든 의식에는 항상 교지가 무조건 입회한다. 도효를 다지고 나면 제례를 주관해야 하고, 글씨를 쓰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특유의 서체를 구현하기 위해 서예를 연마하기도 한다.

일본스모협회 소속 공식 교지 정원은 45명이다. 빈 자리가 생겼을 때 15 ~ 18세를 대상으로 채용을 한다. 교지의 링네임은 에도 시대 교지로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키무라(木村)와 시키모리(式守)를 성으로 쓴다. 이들에게도 등급이 존재하여 등급이 올라갈수록 착용할 수 있는 복장이 추가되고, 높은 등급의 선수들 경기의 심판에 참여할 수 있다. 최고등급인 타테교지(立行司)는 키무라 쇼노스케(木村庄之助)와 시키모리 이노스케(式守伊之助)라는 이름을 습명한다. 이들은 허리에 단도를 차는데, 최고등급의 심판으로서 책임과 마음가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키무라 쇼노스케는 2015년 3월 37대째가 은퇴하고 아직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다. 시키모리 이노스케는 2019년 1월 제41대를 맞았다.

교지의 의상은 원래 카미시모(裃, かみしも) 였으나 1910년부터 지금과 같이 히타타레(直垂, ひたたれ)로 바뀌었다.[3]

요비다시(呼出)

부채를 펼치고 다음 대결에 나올 선수를 호명하는 사람이다. 각종 잡무는 이 사람들의 몫이다. 도효를 빗자루로 쓸고, 물통과 소금을 나르며, 신호용 딱딱이도 친다. 호객을 위한 북을 치는 일도 맡기 때문에 북 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눈에 띄지 않지만 이들이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 있는데, 도효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주요 업무이다.

토시요리, 리키시, 교지는 링네임에 성과 이름을 쓰지만 요비다시의 링네임에는 이름만 존재한다.[3]

토코야마(床山)

리키시의 상투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링네임에는 이름만 존재하는데, 첫 글자는 모두 토코(床)로 맞춘다.[3]

경기

정규 대회는 1년 6번, 대개 홀수 달 2번째 일요일부터 시작하여 4번째 일요일에 끝나는 총 15일의 경기를 실시한다. 단, 2012년 접어들어, 거의 정설로 굳어져 왔던 2번째 일요일이었던 바쇼 첫날이, 첫 번째 일요일로 결정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각 바쇼 개최일은 연간일정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조노구치부터 마쿠시타까지는 15일 가운데 일곱 날짜에 경기가 배정되며 세키토리는 매일 경기에 나선다.

대개 부상 등의 이유로 휴장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 경우 휴장 1회는 1패와 동일하게 적용하므로 다음 승강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래 '공상제도'라 해서, 경기 중 입은 부상에 한정하여 휴장을 인정하되 승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적용되었다가 폐지된다. 훈련 중 부상이나 실수에 의한 부상과의 시비가 만만찮은 것도 있었지만 공상제도를 믿고 훈련이나 수행을 게을리하여 특히 일본인 리키시들의 경기력이 저하되었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는 몇몇 일본인 오제키들이 공상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탓으로, 3바쇼 기준으로 공상으로 휴식-카도반-카치코시를 하면 9개월동안 내내 빡세게 준비한 한 바쇼에서 8승만 찍어도 오제키 자리가 유지되는 터라, 이를 두고 해도해도 심하다는 여론이 불거졌고, 결국 공상제도가 폐지됨으로서 멀쩡하게 경기 중 다친 선수들만 계급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등 피해를 보게 되었다.

휴장으로 인해 직 · 간접적으로 승강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는 요코즈나 뿐이다. 그 요코즈나가 어떤 여론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그 휴장이 긍정적이게도, 부정적이게도 보이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래는 정규바쇼의 개최지이다.

  • 1월 하츠바쇼(初場所): 료고쿠 국기관
  • 3월 하루바쇼(春場所): 오사카부 오사카시 나니와구, 오사카 부립 체육관(大阪府立体育会館)
  • 5월 나츠바쇼(夏場所): 료고쿠 국기관
  • 7월 나고야바쇼(名古屋場所):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 아이치 현 체육관(愛知県体育館)
  • 9월 아키바쇼(秋場所): 료고쿠 국기관
  • 11월 규슈바쇼(九州場所):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후쿠오카 국제 센터(福岡国際センター)

그리고 정규 대회 사이에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 등을 돌면서 경기를 펼치는 순업(巡業, じゅんぎょう)이 있다. 당일치기 약식 토너먼트로 이때의 성적이 순위표에 반영되지 않으며, 승부보다 '공연'·'퍼포먼스'로 보면 적절하다. 도시 같은 곳에서 스모를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순업의 의미다. 덤으로 요코즈나로 은퇴하면 부와 명예가 따른다고는 하지만, 이미 상한 몸으로 오래 살기는 바라기 힘들고 요즘엔 민속 씨름처럼 그다지 안 쳐준다. 오죽하면 "생전에 돈 많이 벌어 놓고 빨리 죽어 유산도 빨리, 많이 남기는 요코즈나가 1등 신랑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을까. 다만 의학의 발달과 은퇴 후 다이어트 하는 등 나름 건강을 관리해서 장수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경기 시간이 매우 짧다. 스모 경기가 길어봐야 1분을 넘지 않고 아주 짧은 경우는 0.2초 만에 승부가 나는 경우도 있으며, 3분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는 심판인 교지가 중간에 휴식시간까지 줄 정도로 굉장히 긴 경기로 인식되고 실제로도 매우 드물다.[3]

인기

일본 내

일본에서는 각종 언론사 조사를 보면 야구 · 축구 다음가는 관람 스포츠로서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 보는 스포츠로서 뿐만 아니라 학교나 마을에서 스모 대회를 여는 등 하는 스포츠의 입지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인기에 비해서 유독 일반인 수련 인구는 매우 적은 종목이기도 하다. 일시적인 이벤트로 즐기는 경우는 많아도, 취미나 아마추어 종목으로 일상에서 꾸준히 수련하는 사람은 적다. 우선 경기를 할 때의 복장부터가 거의 벌거벗은 수준이라 심리적으로 저항감을 유발하며, 리키시의 몸도 다른 스포츠 선수에 비해 일반인과 괴리가 크다. 이러다보니 스모 자체가 육중한 몸으로 무대뽀로 밀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동작이 멋있지 않다는 인식이 있고, 여성의 경우 노출 문제도 있어서 더욱 스모 입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다른 스포츠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관심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일부에서는 복장이나 룰 등을 수정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마추어 스모를 보급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본격적인 대회가 아닌 동네 체육대회 수준에서는 대개 티셔츠를 입고 경기에 임한다. 특히 여자 선수들은 노출 때문에 프로들도 레오타드 위에 마와시를 입는다.[3]

일본 외

철저한 일본 내수용 종목이지만 와패니즈들을 중심으로 은근한 매니아층이 있는 모양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에 등장하는 환등기 슬라이드에 스모 장면이 등장한다든가,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에서 아침 뉴스 쇼에 스모 선수와 앵커가 직접 붙어보는 씬이 나오는 등, 서양 영화에서는 프랑스에펠탑 나오고 인도 가면 타지마할 나오는 식으로 이국의 풍물 취급해준다. 다만 흥미가 없을 경우에는 돼지들의 싸움 취급하면서 신기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NHK 월드 JAPAN에서는 무료로 스모 대회를 정기적으로 녹화 중계 해준다.

역사적으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스모팬이라고 알려졌다. 루스벨트는 백악관에 일본 스모선수와 유도선수를 초빙해 대련했으며 시라크는 "정치인의 길을 걷지 않았으면 스모 선수를 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반려견 이름을 '스모'라고 짓고 스모를 비하한 니콜라 사르코지와 말싸움을 할 정도로 스모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실제로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여러차례 일본 총리와 스모 경기를 직관했고, 퇴임 이후에도 스모를 직관했을 정도로 찐팬이긴 했다.

세키토리가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는 급여가 일본 기준으로도 높기 때문에 해외에서 입문하는 사람도 꽤 있다. 1970년대 하와이 출신의 제시 제임스 와일라니 쿠하울루아(Jesse James Wailani Kuhaulua), 링네임 다카미야마 다이고로(高見山 大五郎)가 외국인 출신 최초로 마쿠우치 우승을 달성하며 일세를 풍미했고, 은퇴 후 제자 양성을 하는 과정에서 하와이 · 사모아 출신의 폴리네시안들이 유입되었다. 90년대 이후로는 몽골 · 동유럽 출신들의 입문이 이어졌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순업의 일환으로 호주 · 미국 등에서 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2004년 2월 14일과 15일에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월 18일에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유러피언 스모 챔피언십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스모 대회들이 유럽에서 개최되고 있다. 체급을 나누어 경기를 치르고 있다.[3]

소득

수입 구조

스모는 프로스포츠에 가까운 성격임에도 매우 독특한 지급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통 프로스포츠의 경우, 선수구단과 개인적인 계약 관계를 맺은 일종의 자유소득직 프리랜서, 혹은 개인사업자로 분류할 수 있는데, 스모의 경우 요코즈나부터 조노구치까지 모든 계급의 선수들이 일본스모협회에 전원 소속되어 조직적으로, 공적으로 급여를 지급받는 중앙집권제 형태이다. 스모협회로부터 받는 공식적인 수입은, 크게 월급인 고정급과 1년에 6차례 열리는 정규바쇼(스모대회) 참가 누적으로 정산하는 상여금, 출전수당 + 우승상금 + 승리수당 + 현상금 등의 포상금, 그리고 퇴직 시점에 협회로부터 정산하는 퇴직금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월급: 1년 14개월(9월과 12월에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너스로 지급)
  • 요코즈나: 약 282만 엔(한화 약 2,738만 원)(연 3,948만 엔)
  • 오제키: 약 235만 엔(한화 약 2,278만 원)
  • 3역: 약 171만 엔 (한화 약 1,660만 원)
  • 마쿠노우치: 약 132만 엔 (한화 약 1,281만 원)
  • 주료: 약 104만 엔 (한화 약 1,009만 원)
  • 상여금: 세키토리의 경우 최저 상여금 보장금액에 미달하면 최저 보장 지급하고, 이후 실적에 따라 꾸준히 누적되어 +α로 지급하는 연공서열 방식이다. 상여금 계산식은 제법 복잡한데, 간략히 요약하면
  • 승급할 때마다 계급 점수 가산
  • 카치코시 달성할 경우 '(승-패)×0.5점'
  • 우승 30점(전승하면 20점 추가)
  • 킨보시 1개에 10점
이렇게 누적된 점수에 물가상승에 맞춘 금액(현재는 4,000 엔[한화 약 38,000 원])을 곱해서 지급한다.
  • 요코즈나: 150점 보장, 600,000 엔
  • 오제키: 100점 보장, 400,000 엔
  • 마쿠노우치: 60점 보장, 240,000 엔
  • 주료: 40점 보장, 160,000 엔
즉 주료로 승격만 해도 최소 16만 엔, 마쿠노우치에 진입만 해도 최소 24만 엔을 두 달에 한 번씩 고정급 외 보너스로 받는다. 게다가 우승을 많이 하고 그만큼 많이 이길수록 누적상여금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예를 들면 2000년대 후반부터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사상 최다 37회 우승자 요코즈나 하쿠호의 경우, 2018년 3월 시점 누적점수가 사상 최고인 1929.5점인데, 여기에 4000을 곱한 금액을 받는다. 즉 1,929.5 × 4,000 = 771만 8,000 엔이다. 8,0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2개월에 한 번씩 누적상여금으로 받는다. 1년 누적상여금 지급액이 5억에 가깝고 정기급여(약 4억 원)보다 더 많다. 현재까지 누적 1천 점을 넘긴 선수는 하쿠호 포함 역대 6명이다. 또한 킨보시를 여러 번 획득한 선수들의 누적상여금은 비슷한 승률의 마쿠우치 선수들보다 월등히 높다. 킨보시 한 번에 10점이니, 요코즈나를 한 번만 이겨도 은퇴할 때까지 두 달에 4만 엔, 5번 이기면 20만 엔씩 더 받는 것이다. 한 번 누적된 점수는 감액되지 않고 계속 지급되지만, 아래 계급으로 강등되면 승진할 때 계급 점수를 추가로 준 만큼만 감액한다.
  • 포상금: 출장수당, 특별수당, 보조금, 우승상금, 현상금 등
  • 우승상금과 기능상 · 수훈상 · 감투상의 3상 수상: 주료 우승 200만 엔, 마쿠우치 우승 1,000만 엔, 3상 수상시 200만 엔(주료는 3상 미해당)
  • 특별수당(연 6회) & 지방대회 출장수당(연 3회): 특별수당은 연간 6회 열리는 매 대회마다 삼역 이상에게만 지급하며, 11일 이상 출전시 전액, 6일 이상 출전시는 3분의 2를, 그 :이하는 3분의 1 지급. 전일 휴장(불참)시는 지급하지 않는다.
  • 요코즈나: 특별수당 200,000 엔, 출장수당 420,000 엔
  • 오제키: 특별수당 100,000 엔, 출장수당 약 340,000 엔
  • 3역: 특별수당 50,000 엔, 출장수당 약 290,000 엔
  • 마쿠노우치: 출장수당 약 250,000 엔
  • 주료: 출장수당 약 230,000 엔
  • 보조금(연 3회)의 경우 주료 이상부터 25,000엔씩 동일하게 지급. 연 75,000 엔
  • 현상금: 마쿠노우치에 출장하면
  • 승리한 선수에게 봉투 갯수로 현장 지급되며, 협회가 아닌 스폰서 기업에서 협찬한다. 2014년까지는 봉투 1개당 60,000 엔, 이후부터 62,000 엔이며, 30,000.엔은 그 자리에서 선수에게 현금으로 지급하고, 5,300 엔은 스모협회의 몫이다. 나머지 26,700 엔은 세금충당금이라고 해서 협회가 적립한다. 이것으로 연초 선수가 소득세를 납세할 때 모자라는 급액을 대납해주기도 하며, 적립 누적된 금액은 선수 은퇴 시점에 일시금으로 별도 지급한다.
  • 봉투갯수는 스폰서 기업의 갯수와 같으므로, 보통 대회 초반과 하위 선수들의 대전은 갯수가 작고 강자들끼리 대전하는 시합에는 많아진다. 대회 초반에는 경기 당 평균 10개 내외, 대회 마지막 날이나 빅매치에는 한 시합에 40 ~ 50개 까지도 늘어난다. 2015년 이전까진 스폰서 참가 제한을 50개로 정하는 바람에 1경기 최다 현상금은 아사쇼 류의 51개였으며, 특례에 의한 갯수 제한이 해제된 2015년 이후 하쿠호, 카쿠류, 키세노사토 3명의 61개가 최다다. 즉 단 한 게임, 10초 남짓한 시간에 61 × 62,000 엔 = 약 360만 엔을 거머쥔 셈이다. 선수에게 즉시 현금으로 돌아오는 금액인 30,000 엔으로 잡아도 183만 엔, 우리 돈으로 약 1,900만 원이다.
  • 한 바쇼(대회) 최다 현상금 기록은 2010년 하쿠호의 541개로 15일 동안 무려 3,354만엔을 획득하였다. 2010년대 이후 기업의 스폰서 참여가 급격하게 늘어난 덕분에, 역대 최고 기록 1 ~ 4위까지 모두 하쿠호의 몫이다. 또한 연간 최다 현상금 1 ~ 5위 기록도 모조리 하쿠호가 차지하고 있으며, 2010년 현상금 합계 2,111개로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하쿠호를 제외하면 1,600개를 넘는 선수도 전무한데, 2010년대부터 스폰서 참여 기업의 갯수 제한을 없애 현상금 봉투 숫자가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다만 현상금 봉투 갯수가 늘어나는 추세는 스모의 저변이 커져서가 아니라 인기가 줄어들어서다. 이는 선수들에게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공식적인 스폰서 참가 형태는 늘었지만 선수 개인의 후원회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2006년 아사쇼 류가 27개로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1시합 현상금 봉투는 50년 가까이 26개가 최다일 정도였다. 심지어 스모의 황금시대이자 일본경제의 최정점이던 80년대를 상징하는 최고의 요코즈나 치요노후지, 90년대 일본 전국민의 우상이던 다카노하나 조차도, 한 시합에 현상금 봉투를 평균 20여 개가량 수령했다.
물론 하쿠호가 실력 면에선 위의 둘에게 밀리지 않지만, 치요노후지나 다카노하나가 누렸던 어마어마한 인기와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격차가 크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와 위상이 한참 못한데도 현상금 숫자는 최소 두 배 이상 많으니 의아할 수도 있다. 이는 과거 기업이 인기 스모 선수들에게 대대적인 후원회 활동을 축소하고 현상금 봉투로 대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의 선수 후원 활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인기 선수들의 경우는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선수 후원 회장을 맡기위해 경쟁할 정도였다. 초인기 선수인 치요노후지나 다카노하나 같은 정도가 되면, 많은 기업 오너들과 스폰서들이 각자 선수후원회를 만들어 경쟁하며 거의 일생의 호사를 책임져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엔 마쿠우치만 되어도 기업이 중심이 된 후원회의 지원 덕분에, 스모협회의 월급과 현상금 등은 한푼도 쓰지않고 전부 저축할 수 있었으며, 후원기업에서 선수가 소속된 도장을 먹여살리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모 선수 개개인을 지정해 엄청난 지원을 해주는 기업들은 줄어들고, 이제는 후원금 액수를 정해 깃발을 올리는 것으로 홍보비 지출을 투명하게 줄여가는 추세라 봐도 된다. 즉 스모의 인기 하락과 경기불황, 기업의 투명한 회계가 자리잡은 현재는, 기업들도 선수를 직접 후원하는 비용을 크게 줄이고 부담없는 TV광고 스폰서 깃발만 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차피 과거처럼 선수후원회 감투로 얻는 명분 보다는, 실질적으로 TV에 나오는 광고 효과를 더 중시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선수들에겐 현상금의 갯수가 과거처럼 명예나 상징적인 의미가 아닌, 실질적인 현금 수입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된다.
  • 퇴직금: 양로금과 근속가산금으로 구분, 양로금의 경우 계급에 비례해서 가산하며, 근속가산금은 얼마나 오래 위치를 지켰는지에 따라 가산한다.
  • 양로금: 자격자 조건은 3역 이상이거나 마쿠우치 통산 25대회 이상 자격유지 또는 20대회 이상 연속 유지. 그 외는 비자격자.
  • 요코즈나: 1,500만 엔
  • 오제키: 1,000만 엔
  • 3역: 763만 엔
  • 마쿠노우치: 자격자 763만 엔, 비자격자 475만 엔 + 계급유지 가산
  • 주료: 자격자 475만 엔, 비자격자 115만 엔 + 계급유지 가산
  • 근속가산금: 계급별 금액에 위치를 유지한 대회 횟수만큼 곱한다.
  • 요코즈나: 50만 엔
  • 오제키: 40만 엔
  • 3역: 25만 엔
  • 마쿠노우치: 자격자 20만 엔, 비자격자 15만 엔
  • 주료: 15만 엔
만약 다음과 같이 10년 세키도리로 활동하며 요코즈나로 은퇴한 경우, 퇴직시점 근속가산금으로 2천만 엔을 수령하게 된다.
  • 20대회 요코즈나 유지: 20 × 50만 = 1,000만 엔
  • 10대회 오제키 유지: 10 × 40만 = 400만 엔
  • 10대회 삼역 유지: 10 × 25만 = 250만 엔
  • 10대회 마에가시라 유지: 10 × 20만 = 200만 엔
  • 10대회 주료 유지: 10 × 15만 = 150만 엔
  • 특별공로금: 이는 오제키가 은퇴하는 경우에만 해당되며, 2005년부터 지급 금액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많다. 보통 뛰어난 업적을 이룬 요코즈나와 인기 선수에게 더 많은 공로금을 지급한다고 알려져 있다.
  • 그 밖에 현상금에서 절반 가량 협회가 세금충당금으로 떼어 적립해 둔 누적 금액도 은퇴 시점에 일괄 지급된다. 이것도 7 ~ 8년 마쿠우치로 꾸준히 활동하고 은퇴하는 중견이상 선수들이면 보통 1,000만 엔 이상 모인다. 위와 같은 것들을 종합하면, 요코즈나의 경우 퇴직시 지급금 합계는 기본적으로 5억원 이상, 오제키의 경우 3억원 이상이라 보면 된다. 물론 이건 근속연수와 지위, 계급 상승 시점에 따라 편차가 엄청나게 크고, 요코즈나와 오제키 특별공로금도 선수에 따라 다르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몹시 부진해서 3년도 재위하지 못하거나 부상으로 일찍 은퇴하지 않는 한 거의 그 이상이라 보면 된다. 마쿠우치로 5년 정도, 주료를 합쳐 총 7 ~ 8년 가량 세키토리로 선수생활을 하는 중견급이면, 보통 퇴직 시점 일시금으로 2억원 정도는 바라볼 수 있다.
  • 위와는 대조적으로 세키토리에 진입하지 못한 선수들의 수입은 참담할 정도로 작다. 월급은 없으며 출전에 따른 시합수당이 전부이다. 대부분 도장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세키토리의 시중이나 보조로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스모의 인기가 높던 시절에는 하위 선수들도 후원회를 통해 생활의 보조를 받았으나, 현재는 세키토리로 승격이 확실한 극소수의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제외하면 금전적 지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출전 수당 승리 수당 카치코시 장려금 우승 상금 기본 퇴직금
마쿠시타 15만 엔 2,500엔 6,000엔 50만 엔 20만 엔
산단메 10만 엔 2,000엔 4,500엔 30만 엔 20만 엔
조니단 8만 엔 1,500엔 3,500엔 15만 엔 10만 엔
조노구치 7만 엔 1,500엔 3,500엔 10만 엔 7만 엔

보면 알겠지만 선수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세키토리에 오르기 위해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마쿠시타 1번과 주료 14번은 딱 한 계단 차이에 불과한데, 수입과 대우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만큼이다. 마쿠시타의 기본 연 수입은 90만 엔, 승리수당과 장려금을 합쳐봐야 간신히 백만 엔을 넘기는 정도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만약 마쿠시타에서 한 대회 전승으로 우승한다고 쳐도 2달 총 수입이 50만 엔 + 15만 엔 + 23,500엔 = 약 67만 엔에 불과하다. 그런데 주료로 승격해 한 번만 대회에 나가도 2개월 동안 최소 224만 엔이 들어온다. 기타 보수와 출장비 · 퇴직금까지 놓고 보면 북유럽과 제3세계 극빈국의 차이만큼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 리키시들의 지위에 따른 연봉 추정
위에서 보듯 스모는 철저한 계급제 사회로 세키토리 미만 계급에서는 수입을 논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따라서 주료 이상이 되면 신분의 상승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제법 풍요롭고, 퇴직 이후도 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구조 때문에 세키토리에서 하부리그 탈락이 예정되면, 선수들이 거의 은퇴를 결정한다. 다만 우승권에는 미치지 못해도 마쿠우치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레벨의 선수들은, 주료로 강등되어도 수입은 80% 가까이 유지되기 때문에 바로 은퇴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주료와 마쿠우치 리그를 오르내리다가 마쿠시타 강등이 확정되는 경우 은퇴하게 된다. 주료부터 마쿠우치 중간 레벨까지의 평균 수입은 격차가 크지 않으며, 삼역 이상이 되면 대폭 뛰어오르게 된다. 최정점인 요코즈나는 격이 다른 수입과 대접을 받지만, 대회에서 10승 미만 이거나, 대회초반 하위 등급에게 연패를 당하거나 하면 강제 휴장을 시킨 후 은퇴 압력을 받게 된다. 요코즈나는 명예직이라 강등이 없고 은퇴가 유일한 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 강자로 오랫동안 우승권에 머물 수준이 아닌 이상, 약체 요코즈나보다 오제키로 오래 남아있는 것이 여러면에서 유리하다는 시각이다. 오제키는 승격한 후 최소 강등조건이 2대회 연속 마케코시(승보다 패가 많은 경우), 즉 두 대회 중 8승 이상만 거두면 계속 강등되지 않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제키로 머물러 있으면 자연히 누적상여금도 올라가고, 근속가산금도 계속 쌓이기 때문에 오히려 단명 요코즈나보다 수입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철밥통 고위공무원인 셈이다.
  • 평균 이상(반타작 승률 이상) 세키토리의 공식 연봉 추정
  • 주료: 최소 급여 약 1,630만 엔
  • 마에가시라: 최소 급여 약 2,060만엔 + 현상금 현금 수령 300만엔 이상[55]
  • 삼역: 최소 급여 약 2,630만엔 + 현상금 수령 600만엔 이상[56]
삼역이 아닌 마쿠우치 등급에서 요코즈나를 이기면 누적상여점수가 10점 가산되며, 기능상 등 3상을 수상하면 추가로 200만엔을 수령한다.
  • 오제키의 공식 연봉 추정
  • 최소 급여 약 3,720만 엔 + 현상금 수령 1,000만 엔 이상
이 등급의 선수들은 요코즈나와 대전에서도 열세이긴 하지만 승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고, 빅매치들이 많이 잡혀 현상금 봉투 갯수가 좀 더 많다. 우승권에 가깝기 때문에 누적상여금도 많아지고, 근속가산금도 빠르게 증가하여 장기 재위할수록 유리하다. 기본 4억원 ~ 5억원 정도의 연 수입은 기대할 수 있으며, 장기 재위하고 우승 경력이 붙어 누적상여금이 대폭 증가한 오제키들은 요코즈나 못지 않은 수입이다.
  • 요코즈나의 공식 연봉 추정
  • 최소 급여 약 4,550만엔 + 현상금 수령 2,000만 엔 이상 + 당연히 우승권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에 연 1회 정도 우승을 가정하면 우승상금 1천만 엔 이상 대략 요코즈나로서 현재 공식적인 수입을 가정한다면, 최소 연 8억 원 정도는 기대할 수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초짜 요코즈나의 경우고, 여러 번 우승, 전승우승, 승수 누적으로 누적상여금이 대폭 증가한 중견 요코즈나라면 이보다 대폭 증가한다.
역대 최강자 중 하나인 하쿠호의 연봉을 추산해 보면, 약 17 ~ 18억 원 이상이다. (2014년 기준) 기본급 및 수당 약 4,200만 + 누적상여금 약 4,000만 + 현상금 5,796만 + 우승 3회 3,000만 = 1억 6,996만 엔이다. 다만 상기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공식적으로 표기되는 수입은 과거의 전설급 요코즈나들보다 더욱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공식 수입 외 후원금, 선물, 광고수입 및 판공비 등등으로 받는 유 / 무형의 소득은 많이 차이가 난다. 참고로 스모선수에게 제공되는 후원금은 과세를 하지 않는다.[3]

타 스포츠와의 비교

시장규모가 야구나 축구에 비해선 적은 탓에, 연봉 규모도 낮은 편이다. 같은 일본을 시장으로 하는 일본프로야구의 경우 2010년대 기준 최상급 선수들의 연봉이 5 ~ 6억엔 선에서 형성되는데, 스모는 야구의 절반 이하다. 3억엔 선에서 형성되는 프로축구도 최고연봉과 평균연봉이 야구보다는 낮지만, 스모보다는 높다. 더군다나 축구나 야구 둘 다 정말 정점을 찍는다면 유럽, 미국 등의 해외리그로 가서 천문학적인 연봉을 버는 대박을 바라볼 수도 있는데, 스모는 정점을 찍어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거기에 수입구조와 저점 역시 프로야구의 경우 입단시 거액의 계약금으로 일단 입단만 하면 목돈을 쥘 수 있으며, 프로가 못 되어도 사회인야구 등으로 어쨌든 먹고 살 길이 있다. 축구는 하부리그의 존재로 프로의 문호가 넓으며, 정 뭣하면 세계화된 스포츠인 만큼 동남아 등의 약간 수준이 낮은 리그 입단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스모는 프로 데뷔 이외에는 먹고살 길 자체가 딱히 없고, 어떻게 데뷔를 하더라도 상술했듯 주료로 승급하지 못한다면 먹고살만한 돈을 쥘 수가 없다.

더군다나 더 혹독한 투기종목 특성상 은퇴연령대도 야구 / 축구에 비해 낮은 편으로 간혹 40대, 못해도 30대 중반까지는 해 볼 수 있는 야구 / 축구에 비해 스모는 30대 초반이 끝이다. 같은 3대 스포츠라고 해도 결론적으로 축구 / 야구 선수보다 생애소득이 적다. 이래서 어차피 고생할 거면 돈이라도 더 많이 버는 야구나 축구로 인재가 몰리는 것이다. 스모가 날이 갈수록 인재풀이 줄어드는 데에는 투기종목의 혹독함, 젊은 세대가 보기에 그닥 폼 나지 않다는 점, 외국인 쿼터 제한이 없어 힘이 쎄다는 인식이 있는 몽골인이나 폴리네시안과 무제한으로 경쟁해야 하는 경쟁의 빡셈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런 고생에 비해 버는 돈이 적다는 고점 문제도 상당히 크다.[3]

외국인 선수의 득세

상기했듯 스모는 일본인들이 프로 선수로 하기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종목이다 보니 일본인 선수층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일본에 비해 경제력이 딸리는 동유럽, 몽골, 폴리네시아 등지의 외국인에게는 저 정도만 해도 일단은 만족스러운 금액인지라 21세기 들어선 외국인들이 스모판을 주름잡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에는 불가리아 출신의 고토오슈 가쓰노리가 유럽인 최초로 우승하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 말만 일본 국기이지 챔피언 자리는 정작 외국인들이 휩쓰는 상황이 되다보니, 일본의 자존심인 스모를 되찾자는 마음으로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하기를 바랬으나, 현실은 요코즈나는 커녕 일본인의 우승도 요원한 상태였다. 그나마 같은 동아시아계라 그런지 몽골 선수들이 주목받는 편이었다.

그러던 중 2016년에 고토쇼기쿠(琴奨菊)가 10년 만에 일본인 우승을 달성하고, 2017년에 기세노사토(稀勢の里 · 본명 하기와라 유타카) 선수가 몽골인 요코즈나 하쿠호(白鵬)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19년 만에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했다. 하지만, 기세노사토는 요코즈나가 된 이후 부상과 그로 인한 성적 부진에 빠지면서 급기야 일본 요코즈나 심의위원회로부터 좀 더 분발하라는 '격려' 결의를 받기도 하는 등 순탄치 못한 선수 생활을 이어간 끝에 결국 2019년 1월 16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나마 일본인 출신이라고 스모협회가 띄워주거나 팬이 많던 인물들이 여러 사건사고를 일으키거나 키세노사토처럼 그 지위를 오래 유지하지 못 하고 떠나고 사실상 외국인 프로들이 일본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 되자 이제 와서는 일본의 국기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3]

신체 조건

현대의 스모 선수들은 몸집이 비대한 사람들이 주로하기 때문에 돼지들의 싸움으로도 비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선수들이 육중하고 이중엔 비만으로 인한 여유증 경향도 나타나다보니 선수의 사진이 카카오톡에서 실사인물 노출이 나오는 불법 촬영물로 간주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원래 스모는 힘이 좋은 역사, 그러니까 특별한 트레이닝 없이도 강한 사람들이 하는 경기였다. 그래서 과거에는 비교적 근육질이면서 체지방량은 많으나 체지방률은 낮은, 힘 좋은 변강쇠 같은 타입이 많았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오즈모 최상위 마쿠우치(幕内) 부문 리키시들의 평균 체격이 키 170 cm 남짓에, 평균 체중은 105 kg도 채 되지 않았다. 다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중량을 이길 수 있는 게 없다."는 공식이 퍼지고, 그로 인해 덩치가 큰 외국인들이 스모에 많이 진출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살을 찌운 선수들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스모판에서 비대한 스모 선수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술이나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힘의 사용 같은 것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즉, 몸집이 비대한 사람들이 하는 스포츠가 되어버렸다. 한국 씨름이 이만기, 강호동 등 기술씨름 위주였다가 백승일, 최홍만, 김영현 등으로 거인들의 대결로 변한 것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스모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밀어붙이는 힘인데, 이것은 동일한 근력이면 당연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쪽이 유리할 수 밖에 없으니 자연스럽게 체중을 키우면서 밀어내거나 버티는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여기서 씨름과의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하는데, 씨름의 경우 당기는 힘이 가장 중요하고, 샅바를 당겨 중심을 흔드는 것부터 기본 전략이 된다. 반면 스모는 반대로 밀어내는 힘이 가장 근본이 된다. 때문에 한국 씨름 출신 선수들이 일본 스모에 진출하는 경우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라고 한다. 2천년대 중반 마쿠우치로 꾸준히 활약했던 인하대 씨름선수 출신 김성택(金成澤)도, 서로 맞잡은 대치 상태가 되면 뛰어난 손기술과 잡아 당기는 힘으로 상대를 무너뜨렸지만, 기본적인 밀어붙이기에 한계를 보여 3역(三役)으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박광덕 또한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에 잠시 도전했던 적이 있는데, 훗날 "한국 씨름과 일본 스모는 힘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 스모는 미는 힘이 특히 중요하지만 씨름은 당기는 힘 또한 중요하다" 라며 김성택과 비슷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엇비슷한 근력이라면 무조건 체중을 불려야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화된 후, 스모 선수들은 그 특유의 덩치 키우기에 매진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00㎏은 가뿐히 넘기는 스모 선수들이 그 체중을 유지하고 더 불리기 위한 식사 요령이 있는데, 바로 하루에 두 끼만 먹는 것이다. 그 두 끼를 그야말로 폭식하면, 쉴 새 없이 먹는 것보다 체중이 더 크고 빠르게 올라간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지방은 몸에서 쓸 에너지를 비상용으로 축적해두는 용도로 늘어난다. 하지만 영양분이 자주 공급될 경우 몸에서 도리어 지방축적을 줄인다고 한다. 그래서 스모 선수들과는 달리 보디빌더들은 고단백 저지방의 적은 양의 음식을 자주 먹는 방법으로 근육을 만든다. 그렇지만 2010년 이후로는 스모선수들은 보디빌더들이 비시즌에 섭취하는 웨이트 게이너 같은 고칼로리 셰이크도 섭취하는 비중이 늘었다. 고강도의 운동을 한 뒤에 엄청나게 고형식 식사를 폭식하다시피 먹다보니 위장장애로 사고를 겪는 선수들이 있어서이다.

하와이 출신이며, 스모 역사상 2번째로 무거웠던 287 kg을 기록한 (제6대) 고니시키 야소키치(小錦 八十吉). 문자 그대로 산만한 체격에서 나오는 큼지막한 돌진은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으며, 특히 노년 여성층의 호응이 엄청났다.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의 선수가 선전하면 좀 더 돋보이는 측면도 있다. 1980년대에 스모 역사상 최고의 요코즈나로 존경받고 있는 치요노후지는 183㎝, 127㎏ 정도로 스모 선수치고는 상당히 작은 체격이었으며, 이마저도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체중이 더 늘지 않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엄청난 근육을 붙여 겨우 몸을 만든 것이다. 치요노후지의 전성기 시절 사진을 보면 일반적인 스모 선수의 몸매가 아니라, 잘 다져진 프로레슬러같이 탄탄한 몸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은퇴한 몽골 출신 하루마후지의 경우, 요코즈나 시절에도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마쿠우치 시절에는 겨우 110 kg을 오르내리는 날렵한 몸이었다. 그 덕분에 아크로바틱한 몸놀림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거구들에게 역전승을 거두는 일이 많아 인기가 매우 높았다. 또한 사상 최고의 요코즈나로 최다승을 비롯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하쿠호 역시 스모 선수로는 평균적이라 할 수 있는 체중인 151 kg 전후이며, 일본 출신 선수들보다 월등한 192 cm 신장에 골격도 두텁다. 하쿠호 이전 최강으로 군림하면서 가장 화려했지만 사건사고와 논란거리를 동시에 몰고 다닌 이슈 메이커 아사쇼류 역시 최전성기의 체중은 140 kg 내외였다. 이처럼 당연한 말이지만, 만일 체중이 스모의 승부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라면 애초에 경기를 할 필요도 없이 체중을 재서 더 무거운 선수가 이기면 되는 종목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저체중 리키시의 시합을 보면 상당히 테크니컬한 움직임으로 자신보다 무거운 상대를 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체중보다 높은 확률로 승부가 결정 나는 요소가 있는데 그건 뒤를 잡히고 밀어붙이면 진다는 것이다. 스모 경기 방식상 뒤를 잡히는 경우 거의 90% 이상의 확률로 패배한다.[3]

식사량

스모는 다른 운동과 비교해 봐도 유독 식사량이 많다. 호주와 미국 작가들이 세계 여러 나라를 취재하며 일반인, 여러 직업 종사자 등을 취재하며 하루에 먹는 음식량을 사진찍어 상세히 올린 적이 있는데 이란 레슬링 선수들과 터키 씨름인 귀레쉬 선수와 일본 스모 선수들도 취재했다. 당연히 운동선수이니 레슬링과 귀레쉬 선수들도 많이 먹는 편이지만 스모 선수들이 먹는 양은 이들의 3배는 될 정도였다. 칼로리 측정에서도 겉으로도 그리고, 이란 레슬링 선수들은 일본 스모 선수가 먹는 음식 사진을 보고 모두들 웃으면서 "이렇게도 많이 먹고 운동할 수 있다니!"라고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더불어, "와아, 기술도 필요없이 살찐 몸으로 밀어붙이는 대회일까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주로 먹는 음식으로 고칼로리의 냄비 요리인 창코나베가 유명하다. 그래서 창코나베집 상당수가 은퇴한 스모 선수들이 창업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첫 스모에 입문한 수련생의 임무 중 하나가 요리를 비롯한 주방일이기도 하며, 창코나베의 어원이 식사당번을 의미하는 '창코방(ちゃんこ番)'이기도 하다. 무슬림이 라마단 기간 야간에 먹는 이프타르에 맞먹는 고열량이라는 것만 빼면 맛도 영양도 괜찮은 요리이니 혹시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먹어봐도 좋을 듯하다. 실제로 영양사들이 먹어 봤는데 영양 밸런스가 좋아서 놀랐다고 한다.

창코나베뿐만 아니라, 카라아게와 계란말이 등 평범한 가정식도 많이 만들어 먹고 요리에 필요한 기본 소스도 능숙하게 만들며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는 선수들도 수련생활을 거치면 1년 안에 칼질, 볶음도 능숙하게 한다.

마쿠우치 선수들은 긴자 술집에서 최고로 환영받는 손님들이다. 수입에 비해 돈 쓸 일이 많지 않다보니 씀씀이가 크고, 덩치만큼이나 술도 많이 마시는 데다 특히 츠키비토의 존재 때문에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한 번 들릴 때마다 수 십만에서 수 백만엔씩 소비하는 큰손이라서 비단 긴자뿐만 아니라, 쉬는 날 식당 주인들에게도 단체회식으로 환영받는다.

보수성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도 스모계는 특히나 극도로 보수적이기로 유명하다. 도효에는 21세기인 현재도 금녀의 영역이다. 도효 위에서 쓰러진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 여성 의료인이 도효 위에 올라갔다가 여자는 내려가라고 안내방송을 했고, 이게 일본 내부뿐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을 계기로 스모계 내에서도 이대로는 안된다, 여성의 진입을 필요할 땐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외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요코즈나가 되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 프로레슬러인 존 덴타가 프로레슬러가 되기 전에 스모를 했었고, 외국인이 요코즈나가 되는 것에 대한 시각이 한참 안 좋던 그 당시에 외국인임에도 차후 요코즈나가 되는게 유력했을 정도의 유망주였지만 결국 스모계에서 은퇴하고 프로레슬러로 전향한 것도 스모계 특유의 보수성에 못버티고 은퇴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도 요코즈나들은 출신국적에 상관없이 결혼도 일본인과 해야 한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또한 스모 레슬러들은 모두 리키시로써의 활동명을 부여받는데, 외국인들도 일본식 이름을 부여받는다. 외국인이라도 리키시로 활동할 때는 일본식 이름을 써야할만큼 보수적인 것이다. 심지어 리키시들은 몸에 타투가 있을 경우 경기할 때 무조건 가려야 한다. 타 종목 운동선수들이 타투를 굳이 가리지 않거나, 타투에 보수적인 사회에서조차 운동선수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예외로 두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리키시들은 외출을 할 때도 전통의상을 입어야하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며, 정장 등 전통의상 이외의 옷을 입고 외출하면 현역 리키시가 전통의상을 입지 않았단 이유로 안 좋게 보곤 한다. 일본 사회에서 전통을 계승하는 집안들은 특히나 보수성이 상상 이상인데, 스모 집안들이 대표적이다.[3]

스모의 주요 용어

  • 도리쿠미(取組): 스모 경기의 한 시합을 이르는 말이다. 도리쿠미는 승 / 패의 계산, 중요하거나 주목할 만한 경기, 결과의 계산 및 포상금 산정 등의 단위로 취급된다.
  • 도효(土俵): 스모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의 이름이다. 흙을 쌓아서 만든다. 도효 자체의 원래의 의미는 '흙(土)을 잔뜩 넣은 가마니(俵)'이다. 이를 사용하여 경기장을 만들기 때문에, 경기장의 이름을 도효바(土俵場)라 불렀으며, 이를 줄여서 '도효'라고 부르게 되었다.
  • 리키시(力士): 스모를 하는 선수를 '리키시' 또는 스모토리(相撲取り)라고 부른다.
  • 마와시(廻し,回し,まわし): 스모를 할 때 선수가 몸에 걸치는 일본 전통 샅바로, 훈도시의 일종이다. 일본에서는 스모 외에 일부 마쓰리에서도 사용한다. 선수가 서로 붙잡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으로 한국의 씨름에서 사용되는 샅바에 비견된다.
  • 시로보시(白星), 구로보시(黒星): 스모 경기의 승패를 가리켜 각각 시로보시, 구로보시라 일컫기도 하며, 스모 경기가 진행될 때 각 리키시 별로 호시토리효(星取表)에 승리는 흰 동그라미(○), 패배는 검은 동그라미(●)로 표시된다.
  • 헤야(部屋): 직업 스모 선수들은 스모에 입문할 때부터 동료 선수들과, 지도하는 사범격인 '오야카타'(親方)와 함께 도장 및 수련장 격인 '헤야'에서 합숙하며 신체 및 기술의 단련을 한다.(스모 선수들의 연습을 게이코(稽古)라고 한다.)[4]

스모의 방식

스모 경기는, 직경 4.55 미터(15척)의 원형 또는 사각형 모양의 경기장인 도효(土俵) 안에서, 몸에 마와시를 찬 두 선수가 서로 대결하여(도리쿠미) 승부를 겨루는 형태이다. 도효 바깥으로 나가거나, 지면에 신체의 발바닥 이외의 부분이 닿았을 경우, 또는 반칙을 했을 경우 패배가 된다. 스모 경기의 승부를 판정하는 주심 역할은 오즈모에서는 교지(行司)가 맡는다.

스모 경기는, 전통적으로 참가하는 선수의 나이, 신장, 체중에 따라 구별을 두지 않고, 유도 등의 무차별급 경기와 같은 방식으로 행하여진다. 기량이 비슷할 경우 체중이 무겁거나 신장이 우월한 쪽이 경기에 유리한 연유로, 오즈모의 리키시들은 15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이 보통이다.

준비과정- 시키리

원형의 도효 안에 선수가 들어서, 처음에는 약간 서로 떨어져서, 상대의 안면을 마주하고, 허리를 낮추어, 도효 가운데에 그어진 준비선에 주먹을 쥐고 대며 준비를 한다. 이 과정을 시키리(仕切り)라고 하며, 다음 과정인 다치아이(立ち会い)가 시작될 때까지 몇번 반복한다. 횟수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몇번이라도 상관없으며 (단 제한 시간이 있을 경우 그 범위 안) 반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맞붙기- 다치아이

주먹을 쥐어 바닥에 댄 상태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양쪽이 동시에 일어나 서로를 향해 돌진해 부딪친다. 보통은 정면으로 부딪치나, 반드시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 이 과정부터 스모의 경기가 시작 된 것이며, 이를 다치아이(立ち会い)라고 한다.

심판의 신호가 없이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여 시작을 결정 하는 방식은 세계의 비슷한 경기들 가운데 스모의 독특한 시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시키리를 반복하는 가운데, 서로 기합이 올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판단되는 순간에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교지는 단지 이 과정을 확인 하는 것 뿐이다.

단, 최근에는 시간 제한이 설정되어 있다. 1928년 1월 12일 NHK의 라디오 방송이 시작 된 이래, 방송 시간 내에 승부를 보기 위해, 마쿠노우치는 10분, 주료는 7분의 제한 시간이 설정되며, 그 전에는 없었던 도효 위의 시키리 선이 설치가 되며 현재와 같은 다치아이의 과정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그 당시의 사진 자료를 살펴 보면, 다치아이의 거리 제한이 없고, 머리와 머리를 서로 붙인 상태에서 개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오즈모에서 적용되고 있는 시간 제한은 마쿠노우치 4분, 주료 3분, 마쿠시타 이하는 2분 이내로 적용되고 있다.

승부의 판정

경기의 승리는 다음 경우에 결정된다.

  • 상대의 발바닥 이외의 부분을 도효의 땅에 닿게 했을 때. 상대를 던져 등이 땅바닥에 닿게 하거나, 상대를 끌어당겨 손바닥이 닿도록 하거나, 상대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닿는 경우 전부 상대편의 패배로 결정된다.
  • 상대를 도효 바깥으로 내보냈을 때. 상대의 신체가 도효 바깥의 지면에 닿았을 때도 역시 승리가 결정된다.
공격법

스모 경기에서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한다.

  •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상대의 가슴을 머리나 양 손으로 밀거나, 손을 펴 상대의 목을 밀어내거나 뺨을 치거나, 다리를 후리는 등의 공격법을 사용하여, 상대방보다 우위의 상황을 만든다.
  • 마와시를 움켜잡아 당기거나 끌며 기술을 시도한다. 양쪽 모두 마와시를 움켜잡았을 때, 서로 팔이 교차하게 되는데, 이때 안쪽에 위치한 팔을 시타테(下手), 바깥쪽에 있는 팔을 우와테(上手)라 부른다.
승부 기술

일본어로는 기마리테(決まり手)라 불리며, 스모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기술을 의미한다. 일본스모협회에서는 스모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기본기, 던지기, 걸기, 비틀기, 젖히기 등의 분류에 따라 82가지 기술과 5가지의 승부효과(기술이 아님)를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 아마추어 스모에서도 이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4]

동영상

각주

  1. 스모〉, 《네이버 국어사전》
  2. 스모〉, 《시사상식사전》
  3. 3.00 3.01 3.02 3.03 3.04 3.05 3.06 3.07 3.08 3.09 3.10 3.11 3.12 3.13 3.14 3.15 3.16 3.17 3.18 3.19 3.20 3.21 3.22 스모〉, 《나무위키》
  4. 4.0 4.1 스모〉, 《위키백과》

참고자료

  • 스모〉, 《네이버 국어사전》
  • 스모〉, 《시사상식사전》
  • 스모〉, 《나무위키》
  • 스모〉, 《위키백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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