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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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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Australia, 濠洲) 위치
시드니 경제 중심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멜버른에 있는 왕립 전시관

호주(Australia, 濠洲)는 오세아니아 지역에 위치한 영연방 왕국이다. 정식 명칭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 약칭은 오스트레일리아라고도 한다. 수도는 캔버라이다. 다만 캔버라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라 시드니멜버른이 호주 수도인 줄 아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규모상 두 도시가 호주의 대표 도시다.

1788년 1월 26일 영국이 최초로 유럽인 정착지를 세운 이래 영국의 식민 상태였다가 1901년 1월 1일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발족하였다.

오세아니아에서 뉴질랜드와 더불어 남태평양 역내 경제를 이끌고 있는 국가이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륙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다만 면적에 비해 인구는 적은 편이다.

개요[편집]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와 태즈메이니아섬,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주권국이며 면적이 7,617,930 평방 킬로미터로 오세아니아에서 1번째, 세계에서 6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다.

북쪽은 티모르해(海), 동쪽은 산호해·태즈먼해, 남쪽과 서쪽은 인도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섬은 세계에서 제일 작은 대륙이다. 6개주, 오스트레일리아 수도주·노던준주(準州)와 노퍽섬, 매쿼리섬, 로드하우스섬, 크리스마스섬, 허드섬·맥도널드 군도, 코코스(킬링) 제도, 산호해(珊瑚海)군도,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주와 특별구역은 722개의 작은 지방자치구역으로 구분된다.

호주는 2022년 세계 14위의 경제 대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은 8위를 차지했다. 2021년 세계 5위 인간개발지수를 보유하고 있는 고소득 경제 선진국이기도 하다. 호주는 지역 강국으로 군사비 지출이 세계에서 13번째로 많다. 또한 삶의 질, 민주주의, 건강, 교육, 경제적 자유, 시민 자유, 안전, 정치적 권리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든 주요 도시들이 글로벌 비교 생활성 조사에서 예외적으로 우위에 있다. 유엔, G20, OECD, WTO, ANZUS, AUKUS,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4자 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APEC, 태평양 제도 포럼, 태평양 공동체, 영연방 등 국제 그룹의 회원이다.

국가 상징[편집]

국호[편집]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고대에 남반구에 있는 가상의 대륙을 이르던 말인 테라 아우스트랄리스(Terra Australis)에서 유래했다. 17세기에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여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영토에 적용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오스트레일리아는 1644년에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붙인 "뉴홀랜드(New Holland)"로 알려져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이름으로 굳혀졌다.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도 과학 논문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듣기 편하고 다른 지명과도 잘 어울린다"라고 주장한 탐험가 매슈 플린더스에 의해 널리 퍼졌다. 몇몇 유명 지도 제작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지도에 표기했다.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1512-1594)는 단어 "climata australia"를 그의 1538년판 복심장형 지도에 사용했고, 그의 스승이자 공동저자였던 게마 프리시우스는 그보다 앞선 1540년에 사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1817년 4월에 총독 래클란 매쿼리가 배서스트 백작에게서 받은 플린더스의 장부 영수증을 승인했을 때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8개월 후 매쿼리는 곧 정식으로 채택될 것이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용을 식민성에 권장하였다. 1824년에 영국 왕립해군은 신대륙을 오스트레일리아로 명명한다는데 동의했다. 새로운 이름은 1830년 해로 제작처의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명"에 처음 공개되었다. 구어체로는 "OZ"와 "the Land Down Under" (줄여서 "Down Under")가 있으며, "the Great Southen Land", "the Lucky Country", "the Sunburnt Country", "the Wide Brown Land"로도 불린다.

정식 국호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며 한국어권에서 공식적으로 일컫는 국호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이다. 그러나 이름이 너무 길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오스트리아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한자 음역인 '호사태랄리아주(濠斯太剌利亞洲)'를 줄인 호주(濠洲)라는 이름이 더 많이 통용되고 있다. 대한민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양국 정부에서도 "호주"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호주슬랭으로는 Straya라고 널리 불린다. 그 밖에 호주를 가리키는 슬랭으로는 Aussieland가 있다.

중화권에서는 광동어 발음에 맞춰서 오주(澳洲)라고 쓴다. 표준중국어 발음으로 아오저우, 광동어 발음으로 오짜우라고 한다. 중국어권은 호주와 유럽 오스트리아가 구분되어 혼동 여지가 없다.

국기[편집]

호주 국기
호주 국장

호주의 국기는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수립과 동시에 실시된 공모를 통해 제정되었으며 1901년 9월 3일에 멜버른에서 처음 게양되었다. 1908년 2월 23일에 현재와 같은 디자인으로 수정되었으며 비율은 1:2이다. 원주민들은 별도의 기를 사용한다. (토레스 해협 제도의 원주민의 경우 또 다른 독자적인 기를 사용한다.)

파란색 바탕 왼쪽 상단에 붙어 있는 유니언 잭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 연방의 일원임을 의미한다. 유니언 잭 아래쪽에 그려진 커다란 하얀색 칠각별은 연방의 별(Commonwealth Star)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를 구성하는 주와 준주를 의미한다. 국기 오른쪽에 그려져 있는 5개의 크고 작은 하얀색 별들(4개의 칠각별, 1개의 오각별(기난))은 남십자자리를 표시한다.

국기의 기본 디자인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수립된 1901년에 실시된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 국기에 그려진 커다란 칠각별은 원래 육각별이었는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형성한 6개의 식민지를 의미했다. 1908년에 오스트레일리아를 구성하는 주와 준주를 뜻하는 칠각별로 수정하여 오늘에 이른다.

국장[편집]

호주의 국장은 1908년 5월 7일 영국의 에드워드 7세 국왕에 의해 처음 승인되었으며 현재의 국장은 1912년 9월 19일 영국의 조지 5세 국왕에 의해 승인되었다.

국장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방패 안에는 호주를 구성하는 6개의 주인 뉴사우스웨일스주, 빅토리아주, 퀸즐랜드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태즈메이니아주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방패 위쪽에는 노란색과 파란색 두 가지 색으로 구성된 띠가 그려져 있다. 띠 위에는 연방의 별이라고 불리는 칠각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호주를 구성하는 주와 준주를 의미한다.

국장 바탕에는 호주의 국화인 아카시아로 만든 화환이 장식되어 있다. 방패 왼쪽에는 캥거루, 방패 오른쪽에는 에뮤가 그려져 있다. 방패 아래쪽에 있는 리본에는 국명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가 영어로 쓰여져 있다.

국가[편집]

호주의 국가는 'Advance Australia Fair'이다.

1974년까지는 따로 국가 없이 영국의 국가인 God Save the Queen/King이 국가였으며 매 조회시간마다 국가를 부르는 것이 의무였다.

허나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를 종식시키고, 영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한 고프 휘틀럼 총리 당시 국가 교체가 논의되었고, 결국 1878년 작곡된 '아름다운 오스트레일리아여 전진하라'가 국민투표를 통해 1984년 국가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이 국가에 비판적인 호주인들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호주 원주민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사에 원주민의 역사가 담겨있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이때문에 가사를 바꿔서 부르거나 아예 국가를 부르는걸 거부하는 사람까지 존재한다.

결국 정치권에서도 호주 원주민과의 화해를 위해 For we are young and free 구절 중 'young'에서 'One'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소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2021년 1월 1일 가사를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지리[편집]

호주의 지형도. 짙은 녹색은 가장 낮은 고도를 나타내고 짙은 갈색은 가장 높은 고도를 나타낸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위성 사진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

호주 대륙의 대부분이 사막이지만 대륙은 고산 지대에서 열대 우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서식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북동쪽의 열대 우림, 남동쪽과 남서쪽과 동쪽의 산맥, 그리고 중앙의 사막과 같은 다양한 풍경을 갖고 있다.

일반적 특성[편집]

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양태평양에 둘러싸여 있다. 아라푸라해티모르해에 의해 아시아와 분리되어 있으며, 산호해퀸즐랜드 해안에, 태즈먼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맞닿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자 6번째로 넓은 나라로 그 크기와 고립성 때문에 "섬 대륙"이라고 불리며, 종종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여겨진다. 오스트레일리아는 34,218킬로미터(21,261마일)의 해안선(섬 제외)과 8,148,250평방킬로미터(3,146,060평방마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매쿼리섬과 별도로 위도 9°와 44°S, 경도 112°와 154°E 사이에 위치한다.

[편집]

  •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2,228미터(7,310피트) 높이의 어거스투스 산(Mount Augustus)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층석으로 여겨진다.
  • 코지어스코 산은 호주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호주 영토에서는 허드섬에 있는 마우슨 피크(2,745 미터, 9,006 피트)가 최고봉이다.
  •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에서는 맥클린톡 산과 멘지 산이 각각 3,492미터(11,457피트)와 3,355미터(11,007피트)이다.

산맥[편집]

  • 동부 오스트레일리아는 퀸즐랜드, 뉴사우스웨일즈, 빅토리아 해안에 평행한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으로 표시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이름은 정확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 산맥의 일부는 낮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지는 보통 1,600m(5,249ft) 이하 이기 때문이다.)

사막[편집]

  • 아웃백으로 알려진 사막이자 반건조 지대는 국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참고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사람이 사는 가장 건조한 대륙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500mm 미만이다. 인구밀도는 km²당 2.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또한 인구의 대부분은 남동쪽 해안을 따라 거주한다.)

나무[편집]

  • 오스트레일리아의 숲은 대부분 상록수, 특히 덜 건조한 지역은 유칼립투스로 이루어져 있다. 호두는 더 건조한 지역과 사막에서 지배적이다.

기타[편집]

  • 해안 고원과 브리갈로 초원의 띠가 해안과 산 사이에 놓여 있고, 산맥의 내륙은 넓은 초원지역이다. 여기에는 뉴사우스웨일즈의 서부 평야와 에이나슬리 업랜즈(Einasleigh Uplands), 바클리 테이블랜드(Barkly Tableland), 퀸즐랜드 내륙의 물가랜드(Mulga Lands) 등이 포함된다. 동해안의 최북단 지점은 열대우림 케이프 요크 반도다.
  • 탑 엔드(top End)와 걸프 컨트리(Gulf Country)의 풍경은 열대 우림과 더불어 숲, 삼림지, 습지, 초원, 사막을 포함한다. 대륙의 북서쪽 끝은 사암 절벽; 킴벌리의 협곡과 필바라, 그리고 내륙의 남쪽에는 오드 빅토리아 평원과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물가 관목지 등 더 많은 초원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심장부는 중부의 고원이다. 중앙과 남쪽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유명한 사암 단층석인 울루루와 내륙 심슨, 티라리 및 스투르트 스토니, 깁슨, 그레이트 샌디, 타나미,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 등이 있으며 남해안에는 유명한 누르보 평원이 있다.

지질학[편집]

호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륙(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통째로 차지하는 나라이다. 대륙과 섬의 구분을 정할 당시에 유럽인들이 이 땅의 존재를 몰랐던 관계로 "그린란드보다 크면 대륙으로 하자"고 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이 조항을 정한 이후에 존재가 알려졌고, 그린란드보다 커서 대륙이 된 케이스다.

지질학적으로는 남극 대륙과 쌍둥이인 땅이다. 위치도 남극과 가깝다. 원래 곤드와나 대륙의 일부였으며, 초대륙 판게아가 로라시아-곤드와나로 쪼개지고 곤드와나는 남아메리카-아프리카-인도-극으로 쪼개졌는데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분열 이후 1억 년 이상 여전히 남극과 붙어 있었다. 남극에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억 년 전으로 이 당시만 하더라도 대륙 전체가 울창한 삼림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5천만년 전 갑자기 호주가 급격히 남극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남극 대륙은 남극해에 둘러싸이게 되고 차가운 남극 순환 해류가 냉각을 가중시키며 결국 얼음투성이 땅이 되고 만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현재의 위도에 위치하게 되면서 반쯤 사막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3천만년 전에는 해수면의 변화로 내륙에 바다가 존재했던 적도 있으며, 바다의 퇴적층과 사암 지층이 절묘하게 맞물려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중앙부에 거대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대찬정 분지. 사암층이 물을 잔뜩 머금고 있기 때문에 호주의 원주민들은 수백 km를 별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대찬정 분지 지층의 위쪽, 진흙이 벗겨지고 사암층이 드러나는 곳에 샘물이 솟아오르는데 이러한 곳만 수천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동남쪽 해안에 몰려 살기 때문에 느껴지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 중 하나로 나미비아와 2, 3위를 다투고 있다. 1 km2당 3.3명 가량. 1위는 몽골로 1 km²당 2명이다. 2020년 기준 어마어마한 땅덩어리에 사는 사람수가 고작 2,550만 가량으로, 땅덩어리가 수십분의 1에 불과한 한국의 절반 수준이고, 2,500만 명이 넘는 북한과 비슷하다.

하지만 지속적인 이민자 유입 등으로 인구가 꾸준히 증가 중이다. 그리고 전체 인구가 적다고 해서 대도시가 없다는 게 아니다. 2016년 기준으로 최대도시인 시드니는 520만 명, 제2의 도시 멜버른은 500만 명으로 이 양대 도시들은 나라 인구의 40%나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 외에도 브리즈번(235만), 퍼스(207만), 애들레이드(133만)등 한국에서도 광역시급 대도시 취급을 받을 큰 도시들이 나름 있다. 100만 이상 대도시들이 5개다. 호주보다 인구가 2배가량 많은 한국이 100만 이상 대도시가 현재 11개 있는 걸 감안한다면 호주의 인구대비 대도시 수가 결코 적지 않다. 호주는 전 세계에서 도시화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지형[편집]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주요 군도 내에 있는 600개의 섬 중 하나인 피츠로이 섬
호주 북부 노던 준주의 남부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 울루루.

오스트레일리아섬은 대륙으로 불리지만 대륙으로서는 세계 최소이며 그 지형은 다른 어떤 대륙보다도 변화가 적고 단조롭다. 둘레 약 2만km에 이르는 해안선도 굴곡이 적어 오랜 기간 안정상태를 유지해온 대륙임을 알 수 있다.

대륙의 동쪽 해상에는 브리즈번 근처에서 북상하여 뉴기니섬 부근에까지 이르는(약 2000km) 세계 최대의 산호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가 뻗어 있다. 대륙 주변의 대륙붕은 육지에서 320~2400km에 걸쳐 있어, 북쪽 아라푸라해(海)의 수심은 약 30m이고 남쪽 태즈메이니아섬을 사이에 둔 배스 해협은 수심 70m이다.

육지는 전체적으로 기복이 없이 평탄하여, 세계 전 육지의 평균 해발고도가 약 767m인 데 반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평균 해발고도는 330m에 미달해, 해발고도 700m 이상의 지역은 전체의 1/12 이하이다. 지형적으로는 서부대고원(西部大高原), 중동부저지(中東部低地), 동부고지(東部高地) 셋으로 나뉜다.

① 서부대고원:대륙의 약 40%를 차지하는 평균 해발고도 330m의 암석사막지대이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州)와 노던준주(準州)의 절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와 퀸즐랜드주의 일부에 해당하며 고생대(古生代) 이전의 편암·편마암·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서부의 해머즐리산맥·오프탈미아산맥과 중부의 맥도널산맥·머스그레이브산맥과의 사이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과우지대로, 극도로 건조하다. 그 대부분은 풀과 관목으로 덮여 고정되어 있으며 이동하는 사구(砂丘)는 거의 없다. 하천은 간헐성(間歇性) 하천으로 염호가 많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이 지역에서 광물자원, 특히 방대한 철광석과 보크사이트가 발견되었다.

② 중동부저지:대륙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이 저지대의 평균 해발고도는 150m 이하이다. 이 지대는 예전에는 해저(海底)가 되었던 곳으로 백악기(白堊紀)의 어패류 화석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에어호(湖)와 같이 해면 아래 약 10m의 염호도 있다. 중동부저지의 북부는 열대권에 속하며 강수량은 풍부하나 목축 외에는 중요한 산업이 없다. 중부∼남부 지역은 기후적으로는 건조하나 자분정(自噴井)이 많으며 중부의 대찬정 분지(大鑽井盆地)는 세계 최대의 자분정 분지로서 양의 사육이 성하다. 서쪽의 에어호 분지는 강수량이 연간 100mm 이하로 극히 적어 일부에서 양을 사육할 뿐,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남부의 머리강(江) 유역에서는 대규모의 양치기 외에 밀·과일·벼 등이 재배되고 있다. 이들 생산물의 집산지·반출항으로서 애들레이드시(市)가 발전되어 있다.

③ 동부고지:요크곶 반도에서부터 대륙의 동부까지, 북에서 남으로 대분수산맥(大分水山脈:그레이트디바이딩레인지)이 뻗어 있다. 그러나 이 산맥은 고지의 연속일 뿐, 높은 산은 없다. 고원 위는 넓은 평탄면을 이루어 농·목축업에 이용된다. 퀸즐랜드주의 바틀프리르산(1612m)을 제외하면 북부와 남부에는 해발고도 1500m 이상의 산이 거의 없다. 남부의 호주 알프스산맥은 7·8월의 적설기에 겨울 스포츠의 최적지가 된다. 이 산맥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최고봉인 코지어스코산(2234m)이 있다. 그 남쪽에는 빅토리아주(州)의 보공산(1985m)이 있고, 산맥이 일단 배스 해협으로 침몰하였다가 태즈메이니아주의 오사산(1617m)에 이어진다. 코지어스코산의 북쪽에서 발원하는 스노위·머럼비지·머리 등 하천을 다목적으로 개발하는 스노위 산지계획이 1949년에 착공되어 총 5200㎢의 범위에 걸쳐 수력발전소 7개소, 대규모 댐 16개소, 터널 145km, 수로(水路) 80km 등이 1974년에 완성되었다. 대분수산맥의 동쪽은 기름진 평야로서, 너비 50∼400km의 장대한 연안평야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경제의 심장부가 되어 있다. 대분수산맥에서 평야지역에 걸쳐서 석탄이 개발되어 외국으로 수출된다.

생태[편집]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징적 동물인 캥거루

생태학적으로 대단히 독특한 곳인데, 오랜 세월 고립된 대륙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생물종이 발달했다. 캥거루, 코알라, 오리너구리, 쿼카, 바늘두더지, 에뮤, 화식조, 웜뱃 등 이 나라가 아니면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동물들이 득시글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야말로 갈라파고스 제도와 더불어 생물학도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땅.

오죽하면 창조주가 남는 부품으로 만든 동물들이 호주의 동물들이라는 농담도 있다. 대충 사슴 머리랑 토끼 다리랑 붙여서 캥거루를 만든다든지, 오리부리하고 비버하고 붙여서 오리너구리를 만든다든지 등이 있다.

중부는 인구의 2%만 사는 황무지이다.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이름으로 유명한 '아웃백'은 "사람 살 곳 못 되는 깡촌동네"란 의미. 그런데 직접 방문해 보면 뭔가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이곳의 지질학적 특색은 북동부의 대산호초와 똑같다. 한때는 이곳이 따뜻한 밀림 지대와 얕은 바다였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북서부의 '샤크 만'에 있는 '해멀린 풀'에는 고대 생물인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번식 군락지에 세계에서 가장 큰 해초까지 있는 등, 여러모로 특이한 자연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독특한 생태계가 인간의 간섭에 의해 심각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 나라에서 한 희대의 사건이 영국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 보려고 토끼사냥을 하고자 토끼와 여우를 도입한 일. 당연히 천적이 없는 두 동물은 오늘날 호주의 자연 생태계에 크나큰 문제가 되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불과 열두 마리를 들여왔는데 이걸 풀어놓았더니 30년도 안 되어서 1억 마리까지 개체수가 늘어났다.

19세기말부터 호주 정부는 생태계를 파괴하다 못해 사막화까지 불러오는 토끼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토끼굴에 폭약을 때려넣기도 하고 여우와 개들을 풀어 사냥케 하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다 썼는데. 심지어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그 루이 파스퇴르 박사가 세운 곳 맞다)는 1935년 토끼에게 치명적인 피부암을 발생케 하는 바이러스 작전을 제안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호주 정부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까봐 이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0세기 들어 토끼 개체가 3억 마리(추정)까지 늘어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1945년부터 토끼 피부암 바이러스 작전을 개시해서 1억 마리까지 줄였다. 그런데 살아남은 개체들 사이에 바이러스 내성이 생겨버러셔 다시 개체수가 도로 회복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회귀하여 토끼굴에 다이너마이트를 떨어트려 없애고 있다. 또한 토끼들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19세기말부터 엄청난 돈을 들여 초장거리 철조망을 설치했는데 이것도 토끼들이 굴을 파고 넘나들어서 그리고 애완용 토끼에 주사할 약까지도 막아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토끼 관련 약품을 수입금지한 나라가 호주이다.

사실 일반에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비슷한 예제가 한 둘이 아니다. 길고양이라든가 두꺼비라든가 낙타라든가. 2010년대에 와서 특히 심각해진 종은 길고양이로, 호주는 최소 600만 마리, 최대 2000만 마리의 길고양이가 존재하고, 이 때문에 200만 마리의 길고양이를 죽일 계획이다관련기사. 이 길고양이들이 야생으로 진출해서 호주에만 존재하는 유대류들을 멸종시키고 있기 때문. 이미 28종은 멸종했고, 수백종은 멸종위기라고 판단한 이상 물러설 리가 없다.

물론 당연하지만 길고양이도, 여우도, 토끼도 죄가 없다. 그저 인간에 의해 낯선 곳으로 강제이주 당했고, 그런 환경에 적응해온 것뿐.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멋대로 들여왔다가 마음처럼 되지 않자 또 다 죽여버리려고 하는 인간들이다. 물론 위는 야생 길고양이를 말하는 거고 애완동물 고양이인 집고양이 즉 반려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좋아하고 많이 키운다.

호주 대륙에는 독사, 독거미, 악어, 상어 등 위험한 생물들이 많이 산다. 호주에 뱀은 140종이 사는데 그 중 90종이 코브라와 관련된 종의 독사다.대표적으로 인랜드 타이판, 호랑이뱀, 데스애더, 이스턴 브라운 스네이크, 킹 브라운 스네이크가 대표적이다. 검은과부거미를 위시한 독거미의 대규모 서식지로도 유명하여, 호주에서는 거미가 우호적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를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호주 주변의 강가에는 황소상어와 악어, 바다에는 대형 상어나 바다악어, 상자해파리, 독이 있는 푸른고리문어, 가오리가 많기 때문에, 호주에서 도시가 아닌 곳을 다닐 때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동물 뿐만 아니라, 닿기만 해도 심각한 중독 증세를 유발하는 짐피 짐피[32]와 같은 독초도 자생하므로, 야생에서는 식물조차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호주는 그 특유의 기괴한 생태계로 인해서 4chan 등의 해외 사이트에서 놀림거리가 되는 편인데 특히 에뮤 전쟁 처럼 동물을 상대로 진지하게 전쟁 선포까지 해놓고 심지어 졌다고 까이는 일이 많다. 토끼 개체수 줄이려고 온갖 비범한 짓까지 하는데 효과적으로 개체수를 컨트롤 못하는 것도 그렇고 동물을 상대하면 호구가 된다고 까인다. 거의 현실에서 몬스터 헌터를 찍는 수준이다.

2019년~2020년에는 낙타를 상대로 전쟁중이며 2020년 1월 시점에서 1만여 마리를 사살했다. 19세기 인도 및 중동 등지에서 현지인 기수들과 함께 영입해 호주 내륙탐사와 수송 등에 활용하다 이후 20세기 초반 이민규제와 수송수단의 자동화로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들판에 방출한 낙타들이 야생화한 것인데 호주에 포식자 역할을 할 대형 맹수가 없는지라 캥거루처럼 지나치게 수가 늘어 솎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2019년 가을부터 2020년 초에 이르는 거대한 산불로 인해 서울의 66배, 남한 면적에 맞먹는 넓은 지역이 불탔고 2020년 2월 13일을 기하여 간신히 화재를 진압했으나 이미 숲에 서식하는 막대한 수의 동물들이 죽었다. 동작이 느린 코알라 같은 경우 호주 전체의 약 30%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아남았더라도 먹이가 될 유칼립투스 나무가 전멸했기에 더 죽게 될 상황. 먹이나 서식지가 사라진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이제 위에 말한 동물 개체수 조절에 대해서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1년에는 쥐떼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앵무새까지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2022년 들어서는 인간의 활동이 재개되는 등으로 조금씩 진정되고 있다.

기후[편집]

오스트레일리아의 쾨펜 기후 구분도

전반적으로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서부 지역 40% 및 북부 지역 80%는 열대성, 나머지 지역은 온대성 기후이다. 내륙은 굉장히 건조하여 비를 거의 볼 수 없다. 다윈, 케언즈 등 북쪽은 1년 내내 덥다. 겨울의 경우 타운즈빌 등동북부는 서울의 5월과 비슷하며, 브리즈번은 4월 중하순, 시드니는 4월 초중순, 멜버른은 3월말 ~ 4월초랑 비슷하다. 여름에는 섭씨 42도의 살인폭염이 전국을 덮치며 여기에 동부 연안인 시드니 등은 습도도 높아 열대야까지 나타난다.

남반구에 있는 나라라 계절은 한국과 반대로,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1월 1일은 여름이다.

각종 재난이 연이어 일어나는 추세다. 특히 산불이 자주 나는데 2009년엔 기상이변까지 겹쳐 가뭄, 모래폭풍, 홍수, 산불을 동시에 겪었다. 게다가 2009년 2월 발생한 남동부 일대의 산불은 사상 최악으로 사망자가 130여 명이 이상 나오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재난 뿐만 아니고 환경문제도 은근히 심각하다. 비도 잘 안오고 땅도 척박한 지역이 대부분이어서 비료를 쏟아붓는 수준으로 줘도 생산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나마 오던 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토양 침식문제도 심각한 수준. 내셔널 지오그래픽 취재에 의하면 백인들이 이민와서 밀림을 뭉개고 거기 무리하게 밭이나 과일 재배지로 만들어 버린 결과라고 말한다. 호주 여러 곳 호수가 아예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말라버리면서 물부족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고 부랴부랴 농경지 확대 금지 및 여러가지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상황은 극히 나쁘다. 2001~2008년까지 농경지를 운영하던 농민들이 144명이나 자살해버릴 정도이며, 현재도 줄줄이 지방 농경지와 양을 돌보는 농장들이 폐업하고 정부에 실업 보조금 및 정착 지원금을 요구하는 게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호주 전역에 자원이 가득하다는 점이 있으나, 그걸 파내자면 역시 환경 훼손이 따르는 점도 정부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근데 또 언제 가뭄이었냐는 듯이 2010년 12월에는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 주에 엄청난 홍수가 발생했다. 심지어는 고지대인 투움바에도 홍수가 났다. 2011년 수해로 인해 바나나값이 폭등하여 이전의 4배 정도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었다. 이런 가뭄과 홍수는 상기한 대찬정분지의 특성에 기인한다. 쉽게 말해 거대한 물 머금은 스펀지같은 것이 대찬정분지의 토양이고 이 곳을 뚫어 관개농업을 하는 것이 중부 호주의 특성인데, 사막지역에 한정된 양의 물이 갇혀 있으니 퍼내면 모자라게 되고 또 폭우가 오면 엄청난 홍수가 찾아오게 되는 것. 이러한 관개농업의 문제는 조심스레 접근하지 않으면 대재앙이 올 수 있다. 아랄해와 차드 항목 참조. 그렇지만 호주의 경우 농업 및 수리기술이 발전해 있어 앞의 두 사례만큼 막장테크를 타고 있지는 않다. 진짜로 북아프리카중동,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메리카 여러 개도국들의 물 부족 사태를 보면 호주라는 나라의 역량은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한 강렬한 자외선은 한국에서 접하는 자외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특히 뜨거운 날씨에는 자외선 차단제 크림을 발라야 야외활동이 가능할 정도이다.

2019년 - 2020년 초대형 산불이 발생해 한반도 면적의 28%에 달하는 지역이 타버렸는데, 이웃나라 뉴질랜드까지 피해가 옮겨가기도 했다.

한편 남동부 일부 지역이 약 1천만 년 전만 해도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던 온대 우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후변화와 인간의 병크 등으로 온대 우림들이 죄다 황폐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편집]

서호주 킴벌리 지역의 원주민 암각화
호주 배서스트섬의 원주민

호주의 역사는 몇 만 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원주민이 세운 국가인 애버리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이 나라의 역사는 17세기경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처음으로 이 나라를 목격한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1770년에 영국의 선장 제임스 쿡이 본격적으로 이곳을 탐험한 이래, 1901년 1월 1일에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고 얼마 후에 군대가 창설되었다. 1931년 12월 11일부터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호주 원주민들과의 접촉, 그리고 최초의 영국인 정착자들에 관한 문제들 등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원주민[편집]

호주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65,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현재의 남아시아 지역에서 육교를 이용하거나 좁은 바다를 건너 이주했다. 아넘랜드(Arnhem Land)의 마제베베(Madjedbebe) 바위 은신처는 호주의 인간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유골은 현재 호주 원주민의 조상인 멍고인으로, 약 4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주 원주민의 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이다. 유럽인들이 처음 호주 원주민과 접촉했을 때, 이들은 복잡한 경제와 사회를 동반한 수렵채집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며,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약 75만명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었다. 호주 원주민들은 대지에 대한 경외심과 몽환시를 바탕으로 영적 가치를 지닌 구전문화를 가지고 있다. 토레스 해협인, 민족적으로 말레이시아인은 계절 원예와 바다의 자원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했다. 호주의 북쪽 해안과 바다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에서 온 마카사르 어부들에 의해 간간히 종종 방문되기도 했다.

유럽인들의 도착[편집]

1770년 4월 29일, 제임스 쿡이 보타니 만에 상륙하여 호주 동부 해안을 대영제국으로 주장
1813년까지 유럽인들의 호주 항해 경로

최초로 기록된 유럽인들의 호주 본토 관측과 상륙은 네덜란드인에 의한 것이다(1606). 네덜란드 항해사 빌렘 얀스존이 이끄는 다프켄 호는 처음으로 호주 해안을 측량하고 호주 원주민과 만났다. 그는 1606년 초에 케이프요크반도의 해안을 관측하고 2월 26일에 케이프 요크 웨이파의 현대 마을 부근의 페네파더 강(Pennefather River)에 상륙했다. 다음 해에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Luís Vaz de Torres)가 토레스 해협 제도를 항해했다.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에 서쪽과 북쪽의 모든 해협을 측량하고 "뉴 홀란드(New Holland)"라고 이름 붙였지만 정착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탐험가 윌리엄 댐피어는 1688년에 해적 선장 존 리드(John Read) 밑에서 일하는 동안 뉴 홀랜드의 북쪽 해안에 상륙했고, 1699년에 돌아오면서 다시 상륙했다. 1770년에는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지도화했는데, 그는 이 해안을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명명하고 대영제국에 보고했다.

1783년에 미국 식민지를 잃은 영국 정부는 뉴사우스웨일즈에 새 유형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의 지휘아래 "제1함대(the First Fleet)"로 불리는 함대를 보냈다. 캠프는 1788년 1월 26일(훗날 호주의 국경일인 호주의 날이 된다.) 포트잭슨만시드니 코브에 세워졌다. 영국 정착지는 반 디멘의 땅(Van Diemen's Land),현재의 태즈메이니아에 세워졌고, 1825년에 별도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1828년 공식적으로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스완 리버 식민지)의 서부 지역의 권리를 주장했다. 뉴사우스웨일즈의 일부는 각각 1846년에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1851년에 빅토리아, 1859년에 퀸즐랜드의 식민지로 분리되었다. 노던 테리토리는 1911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분리되며 설립되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유 지역(free province)"로 설립되었으며, 다른 주들과 달리 유형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빅토리아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찬가지였으나, 나중에 죄수들을 수용했다. 뉴사우스웨일즈의 정착민들에 의한 캠페인은 호주로의 죄수 수송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마지막 죄수선은 1848년에 도착했다.

호주 원주민의 인구는 150년간 정착민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인해 감소했다. 또한 천명이 넘는 원주민들은 정착민들과의 호주 국경 전쟁(the Australia Frontier Wars)으로 인해 사망했다. 1869 원주민 보호법(Aboriginal protection Act)에서 시작된 정부의 "동화"정책은 "빼앗긴 세대(the Stolen Generations)"라고 일컬어지는수많은 원주민 아이들을 그들의 가족과 사회에서 격리했고, 이 또한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되었다. 1967년 국민투표 결과, 특정 인종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는 연방정부의 권한이 확대되어 호주 원주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토지 소유권("원래 소유권")은 1992년 마보 대 퀸즐랜드에서 열린 호주 고등법원(제2호)이 영국 정착 당시 호주가 테라 무효라는 법적 교리를 호주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 시대[편집]

태즈매니아의 포트아서는 18, 19세기에 대영제국이 호주 영토에 건설한 수천 개의 교도소 가운데 11개의 남아 있는 교도소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호주의 초기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의 골드 러시 때문이었다. 호주라는 대륙 자체에서 풍화와 침식이 활발하게 일어나다보니 금광이 지하 깊숙히 묻혀 있지 않고 지표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는데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노천광산 하나만 발견하면 그냥 길가다 돈줍기만큼이나 쉽게 돈을 벌었던 것이다. 또한 호주 남부(애들레이드 등)에서의 따뜻한 기후는 와인 생산이나 농장운영에 적합했기 때문에 이민자가 우르르 몰려왔다.

초창기 호주를 개척했던 집단으로는 영국계 호주인과 함께 다수 그룹으로는 독일계 호주인들이 있다. 이들 독일계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프로이센 왕국 출신의 지리학자 겸 탐험가였던 루트비히 라이히하르트였다. 당시 현 호주 정부와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의 전신이었던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 총독부는 아웃백으로 불리던 호주 내륙의 탐사에 막대한 상금을 내걸고 지원자를 받았는데, 라이히하르트는 1842년에 이 탐사에 지원하여 브리즈번에서 포트에딩턴 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마치고 1843년에 시드니로 귀환한 바 있었다. 이 경험을 살려서 1848년에 재차 아웃백 탐사에 나섰으나 실종되었고, 동년 4월 3일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호주 초기 역사에는 미국의 메이플라워호 같은 간지나는 사건이 없고 기껏 해봐야 제임스 쿡 선장 얘기다 보니 '죄수 이송지'로서의 이미지가 쉽게 부각되지만, '호주인들은 죄수의 후손이다' 따위로 비하할 수는 없다. 당시 영국의 사법체계는 엄청난 엄벌주의를 채택해, 중범죄자는 기본이 사형에 경범죄 수준의 범죄에도 가차없이 중형을 내렸다. 빵 하나 훔쳤다고 몇 년씩 감옥에 집어 넣고, 판사가 기분 나쁘면 교수형에 처하던 시절이라 단순 절도죄나 생계형 범죄로 복역하던 죄수들이 많이 건너왔다. 처음 유형보내졌던 죄수 그룹 중엔 오이 12개를 훔친 죄수와 책 한 권을 훔쳤던 죄수도 있었다. 20세기 초에는 영국에서 고아들을 여기다가 버리는 식으로 이주를 시키기도 하였다. 당시 영국의 정책은 모든 식민지에 죄수를 이송하는 것이었고 미국과 캐나다 역시 영국 죄수의 단골 이송지였기 때문에 '초기 개척자가 죄수니까 죄수의 후손'이라는 식의 논리로 따지면 미국캐나다도 역시 죄수의 후손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훗날 영국 총리가 이에 대해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호주 백인들은 골드러시와 1, 2차 세계 대전 이후 호주에 정착한 사람들이며, 죄수의 후손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죄수는 후손을 못 보고 죽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행정관, 주둔군 군인 등 나라 일 하는 사람들만이 후손들을 봐서 이들의 후손들과 골드러시 당시 이민자들, 농업 개척자들의 후손들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한 때 그냥 특이한 식민지 정도로 취급되던 호주는 고기를 냉동하여 철도와 선박을 통해 운송하는 인프라가 갖추어지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로 밀 같은 곡물 혹은 양털을 주로 수출하던 호주는 냉동선을 갖추게 된 이후 양고기와 소고기를 냉동하여 영연방 각지에 수출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백인 농부들은 새로 농장을 개척하기 위해 꾸준히 호주로 유입되었고, 호주가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서 호주인들 사이에서는 독립해도 문제가 없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호주 자치령[편집]

1901년 호주 최초의 의회 개회식을 묘사하고 있는 톰 로버츠의 그림 The Big Picture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영국 영토였지만 영국 본토에서는 너무나 멀었고,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사회적 혼란이 심화되고 폭동도 종종 터졌다. 주 원인은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에 청나라 출신 중국인 계약 노동자(이른바 쿨리)들을 데려온 데 있었다. 중국인 계약 노동자들은 성비가 매우 불균형했는데 1860년대 당시 기준으로 중국인 이민자 4만여 명 중 여성은 12명 정도에 불과했다. 호주에서는 중국인 쿨리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차례 폭동이 빈발하게 되었다.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노동자를 포함한 아시아인 노동자 유입에 대한 반발은 결국 호주의 독립으로 이어진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발로 이후에 호주 자치령에서는 백호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아시아인들의 호주 이민을 제한하였다. 물론 호주 자치령의 성립 배경에는 중국인들에 대한 호주 백인들의 반발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독일 제국이 북마리아나 제도스페인에서 사들여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등 타국의 위협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들에게 외교권과 국방권을 제외한 내정을 위임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캐나다 자치령의 선례를 따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지정되어 있었던 6개 식민지를 통합해 오스트레일리아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라는 자치령으로 지정하고 독자적인 헌법을 제정했다. 이것이 1901년으로 사실상의 호주의 독립 및 건국이었다.

1942년 다윈 폭격,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은 100여 차례 호주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원래는 영국과 한 나라라는 의식이 강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은 호주의 국가 의식이 싹트는 계기로 작용했다. 영연방의 호주-뉴질랜드 연합군단(ANZAC)의 일부로 참전한 호주 군인들은 1915년 갈리폴리 전투에서 광부들과 함께 계속해서 실전을 치렀다. 전쟁이 끝났을 때에는 총 인구 500만 명 중 약 6만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전쟁에서 가족 중의 한 명을 잃었다. 특히 영국군의 패전사례이자 병크인 갈리폴리에서 전사자가 많았다. 케말 아타튀르크가 워낙 먼치킨 명장이기도 했고 윈스턴 처칠의 병크도 컸다. 어쨌든 이 일로 호주와 터키는 악연이 좀 있다. 이를 계기로 호주 식민지인들은 다른 영국 식민지와 함께 본국 영국에 대해 더 많은 권한을 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헌장이 제정되어 호주는 외교권과 군사권까지 가지게 되는 사실상의 독립국이 되었다.

또한 1930년대의 불경기와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전, 그리고 한국전쟁베트남 전쟁의 참전으로 국민들은 자신이 호주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제국군에게 본토의 다윈을 폭격당하는 쇼크를 겪었던 호주인들은, 태평양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이후에도 호주 내 인구가 적어서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호주인들은 이를 계기로 이민 관련한 제한을 상당부분 철폐하고(2차대전 이전에는 미국처럼 아일랜드 출신들을 차별했고, 이탈리아그리스, 포르투갈, 유고슬라비아 등 남유럽 출신 이민자들을 알프스 인종 등등 드립을 치며 차별하였다. 유럽 각지에서 이민 초청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비교하자면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유럽 전역에서 이민을 받았던 것과 다르게, 호주는 2차대전 이전까지는 백인 대다수가 영국, 아일랜드, 독일계 출신이었다.

호주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20세기 후반까지도 남아있던 원주민에 대한 차별을 빼 놓을 수 없다. 아예 정책 수준으로 일어난 일인데, 과거에는 원주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자연 유산으로 간주했으며 원주민 아이를 '문명화'해준답시고 백인 가정에 강제 입양시키는 일 등을 통해 원주민 문화의 대부분을 의도적으로 소실시켰다. 그 대상이 된 이들은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라 불린다. 이를 잘못된 것이라고 점차 인식하면서 각종 화합 시도가 있었지만, 1990년대 정도까지도 정부 수준에서는 유감 표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후 집권한 케빈 러드 총리는 2008년 2월 13일에 공식적으로 반성과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세계는 이를 주목했으며 20~21세기의 역사적인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식으로 부끄러운 흑역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학교 등지에서 왜곡 없이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아직 처우 개선은 부족하다.

독립[편집]

1954년 유럽에서 호주에 도착한 전후 이주자들

자치령 시절 호주는 개헌을 할 때에는 영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의 법적 예속 관계가 있었으나 1986년에 호주 의회와 영국 의회가 호주 법(Australia Act)를 통과시킴으로써 호주는 영국과의 법적 예속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현재의 호주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건너온 유럽계 이민자나 이후의 유입인구가 거의 절반이고, 미국과 다르게 아직도 영국계 호주인 등 백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그 뒤를 잇는 나라다.

오늘날 호주는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 다른 나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스스로를 아시아 국가의 일원으로 강조하며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 중이다.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에 가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호주의 농산물을 수입해오던 영국이 1970년대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소련 해체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해체 이후 동유럽이 개방되면서, 호주의 수출품 상당수는 영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였다. 대신 동아시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호주는 대체 수출 시장을 찾을 수 있다. 동아시아 경제의 급성장이 아니었다면, 아직 수출 대부분을 1차산업 생산품에 기대는 호주는 20세기 중반 이후 아르헨티나나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몰락한 것처럼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을 것이다.

21세기 들어서 호주는 신냉전 상황 하에서 호주-중국 무역 분쟁을 겪고 있다. 호주는 이미 제1차 냉전 시대 당시에도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긴 했으나, 당시 냉전은 소련과 미국 사이의 대치였고, 호주의 역할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21세기 오바마 행정부 시대 이후 미중 대결이 본격화되고 제2차 냉전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서방 제1세계 진영 내에서 호주의 지정학적 입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정치[편집]

캔버라의 의회의사당

호주는 연방 의회 중심의 입헌 군주국이다. 1901년 연방 정부가 성립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 하에서 안정적인 자유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해 왔으며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준주 정부 사이에서 권력이 나누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방 중 하나이다. 호주의 정부 체제는 영국(입헌 군주제, 강령한 정당 규율)과 미국의 정치 체제(연방 주의, 성문 헌법, 선출된 상원과 강력한 양원제)의 요소들과 독특한 자신들만의 특징들을 결합한 것이다.

연방 정부는 세개의 부서로 분리된다.

  • 입법부: 군주, 상원 및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의회
  • 행정부: 의회의 추천에 따라 정부 기관장이 임명한 총리 및 기타 국무장관으로 구성된 내각의 결정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연방 집행 위원회.
  • 사법부: 호주 고등 법원과 다른 연방 법원, 의회의 추천에 따라 행정 장관이 임명하는 판사

찰스 3세는 호주의 국왕으로 군림하며 연방 정부의 총독과 호주 정부의 주지사들에 의해 대표된다. 주지사들은 국왕의 장관들의 조언에 따라 관습법을 제정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총리 및 연방 집행 위원회의 행위에 대한 법적 명목상의 지도자로서 정부 장성이 행동을 취한다. 정부 수반은 이례적이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총리의 요청을 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는 특별한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75년 헌법 위기 당시 휘트람 정부의 해임이었다.

상원에는 76명의 상원 의원이 있다.(각 주에서 12명, 준주에서 2명) 하원에는 151명의 하원 의원이 있으며, "인구에 따른 소선거구에서 선출된다. 각 선거구는 최소 5석을 보장 받는다. 양원의 선거는 3년마다 동시에 실시된다. 준주 출신을 제외한 상원의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6년으로, 하원 선거 주기에 맞춰 선거를 치른다.

태즈메이니아와 호주 수도 준주를 제외한 모든 하원 선거는 선호투표제, 상원은 비례대표와 결합된 이양식 투표제이다. 18세 이상의 모든 유권자는 의무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하원의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당수가 총리가 된다. 많은 지지를 받은 정당이 없는 경우에는 헌법에 따라 총독이 총리를 임명하며, 의회의 신임을 잃은 경우에는 파면한다.

일반적으로 정부, 연방 정부, 주 정부에는 노동당과 자유당, 국민당이 이루는 보수연립(Coaliation), 두개의 주요 정당으로 나뉜다. 보수 연합은 중도 우파, 노동당은 중도 좌파로 간주된다. 무소속 의원들과 몇몇 군소 정당들은 주로 상원에서 표를 얻었다.

가장 최근의 연방 선거는 2019년 5월 18일에 열렸고 그 결과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 연합이 정부를 유지하게 되었다.

행정구역[편집]

오스트레일리아의 주 및 준주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영국이 세운 식민지가 연합해 만들어진 연방국가로, 영국이 세운 식민지는 거의 그대로 호주의 주가 되었고 일부 인구 희박 지역이나 수도 등은 준주가 되었다. 그 외에도 해외 속령이 몇 개 있다.

각 주와 준주, 해외 속령은 연방과 마찬가지로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다.

각 주에는 영국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호주 국왕을 대리하는 주 총독(governor)이 있고 그가 명목상의 주 대표가 된다. 그러나 실제 주의 행정 수반은 각 주 의회 하원에서 선출된 주 총리(premier)이다. 영국에서 독립한 오늘날 주 총독은 주 정부에서 임명한다.

준주에는 주 총독과 같은 역할을 하는 행정관(administrator)이 있는데 주 총독과 달리 호주 총독이 임명한다. 물론 행정관도 형식상의 대표일 뿐 실제 준주의 행정 수반은 준주 총리(chief minister)이다.

호주 수도 준주는 준주지만 연방 수도라는 특성 때문에 행정관이 없고 준주 총리만이 있으며, 저비스베이 준주는 행정적으로 아직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 호주 수도 준주에 종속되어 있어 행정관도 의회도 없다. 그래서 행정관 직책이 있는 준주는 노던 준주밖에 없다.

해외 속령들도 준주와 비슷한 방식으로 명목상의 대표와 해외 속령의 행정수반이 있다.

각 주 의회는 양원제를 택하고 있다. 퀸즐랜드는 예외적으로 1920년대에 상원을 없애 단원제이므로 주 총리도 그냥 의회에서 선출한다. 준주와 해외 속령은 모두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 뉴사우스 웨일스주(New South Wales, NSW) - 주도는 시드니. 서구 문명의 유입 이후 역사가 제일 오래된 주이다. 인구도 제일 많다.
  • 빅토리아주(Victoria, VIC) - 주도는 멜버른.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주. 뉴사우스웨일스와 함께 호주 남동부의 쌍벽을 이룬다. 호주가 연방제를 채택하였을 적에 호주 수도의 위치를 두고 뉴사우스웨일스와 경합했을 정도. 호주의 대표적인 공업지대로 제조업 및 금융사업이 발달해있는데, 2010년대 들어 호주 달러 강세로 제조업이 죽어가고 있어서 상당히 암울한 편. 예를 들어 2017년 이전까진 호주의 도요타, 홀덴, 포드 공장들이 다 여기에 있었는데, 현재는 죄다 문을 닫았다.
  • 퀸즐랜드주(Queensland, QLD) - 주도는 브리즈번. 호주 북동부에 위치한다. 비교적 개발이 많이 진행된 남동부 해안가의 브리즈번과 골드 코스트 부근을 제외한 나머지는 몇몇 예외를 빼면 촌구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네다.
  •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 (서호주 Western Australia, WA) - 주도는 퍼스. 호주에서 제일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주로, 호주 서부를 통째로 담당하지만 정작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은 주이다. 하지만 이래봬도 호주 역사에서 뉴사우스웨일스와 태즈메이니아에 이어 세번째로 지정된 식민지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계 최대규모의 철광산이 여기에 있다. 그 외 광산업이 활발해서 부유한 주이다. 1인당 평균소득이 1억이 넘는 주다. 호주 백만장자 3만 3천명 중 절반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상징인 흑조(블랙 스완)가 유명하다. 쿼카가 이 지역에 산다.
  •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 (남호주 South Australia, SA) - 주도는 애들레이드. 호주와인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재배, 생산된다. 캥거루 아일랜드와 더불어 유명한 소금호수들이 대부분 이곳에 있다. 주의 위치나 산업규모가 애매하다보니 젊은 사람들은 시드니나 멜버른같은 큰 도시로 떠나는 경향이 많다. 21세기 들어 여기서 석유 유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태즈메이니아주 (Tasmania, TAS) - 별명은 Tassie(타지). 주도는 호바트.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 포지션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쪽의 섬. 빅토리아에서 배를 타면 갈 수 있다(물론 비행기도 다닌다). 실제 발음은 태스메이니아 정도겠지만, 호주 관광청에서는 태즈매니아로 표기하고 있다. 사납기로 소문난 희귀 동물인 태즈메이니아데블로 유명하다.
  • 노던준주 (북부 준주 Northern Territory, NT) - 주도는 다윈. 애버리지니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울루루도 이 주에 위치한다. 이 주에 51구역과 더불어 미국의 극비 군사기지로 유명한 파인 갭이 있다.
  • 호주 수도준주 (Australian Capital Territory, ACT) - 캔버라를 관할하는 행정구역이다. 호주가 연방제를 채택하면서 새로 수도를 지어야 할 필요성이 생겨서 만든 주이다. 면적도 굉장히 작다. 여기에 호주 최고의 대학인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ANU)가 있다.
  • 저비스베이 준주 (Jervis Bay Territory, JBT) - 완전히 독립된 준주가 아니다.

외교[편집]

수십년간 호주의 외교 관계는 ANZUS 조약을 통한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창립 멤버인 ASEAN, 태평양 제도 포럼, 태평양 공동체를 통한 아시아·태평양과의 관계 발전 의지 속에 추진되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05년 동남아시아에서 우호 협력 조약을 체결한 것에 이어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취임식을 가졌고,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6회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또한 호주는 영연방 정부 수반들이 협력을 위한 주요 포럼을 제공하는 영연방 국가의 일원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제 무역 자유화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케언스 그룹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의 설립을 이끌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으로 국가 간의 주요한 자유 무역 협정을 추진해 왔다. 미국 자유 무역 협정(FTA)과 뉴질랜드와의 긴밀한 경제 관계 무역 협정(Close Economic Relations), 중국, 일본, 대한민국, 칠레-호주 자유 무역 협정(FTA)을 실시함과 동시에 2015년 11월 현재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을 의회에 상정하고 있다. 카티온

오스트레일리아는 트랜스-태즈만 여행 협정(Trans-Tasman Travel Arrangement)에 따라 뉴질랜드와 두 나라 간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성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나라들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많은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중에서도 뉴질랜드와는 혈맹과도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ANZAC 군으로 참전하였다. 호주 주재 뉴질랜드 고등판무관은 뉴질랜드 외교관 중에서도 가장 고위직 인사가 맡는 것이 관례이며, 캔버라의 고등판무관 사무소는 캔버라 의회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뉴질랜드, 영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는 지역 방위 협정인 5개국 방위 협정(Five Power Defence Agreements)의 당사자이다. 국제 연합의 창립 회원국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다자 간 협력에 적극적이며 60여개국이 원조를 지원하는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2005-06년도에 25억 오스트레일리아달러의 개발 지원을 제공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2년 글로벌 개발 센터의 개발 기여도에서 종합적으로 15위에 올랐다.

대한관계[편집]

미국, 영국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외관계 연결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국가가 호주이다. 영국과 같이 뉴질랜드나 인도 등 영연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재해주기도 하고, 자신들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남태평양 국가들과 대한민국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있다.

2022년 신년을 맞아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 호감도 설문조사에서 미국, 스웨덴 바로 다음인 3위로 호감도가 높았다.

대한민국과 호주는 전통적 상호 우방 관계로, 1950년 6월 6.25 전쟁 발발 당시 호주군이 주한영연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당시 경기도 가평 등에서 영국을 비롯한 같은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 뉴질랜드 등과 가평 전투를 통해 북한군, 중공군과 교전을 벌였던 적이 있으며 이로 인해 대거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호주 육군에는 가평 대대라고 이름을 붙인 부대가 있다.

1961년에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범죄인도조약, 이민협정 등이 체결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과 호주는 당시 미국과 밀월관계를 맺으려 했기에 다른 국가들이 명분이 없다며 외면한 베트남 전쟁에도 대한민국과 호주는 군대를 파병하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다. 1997년 말에 한국이 외환위기로 휘청거릴 때 수습이 지지부진하자 당시 호주 총리가 IMF에 "빨리 한국 지원해 주세요."라고 요청했다는 설이 있다. 물론 호주 정부 당국자들이 실제로 이랬을 가능성은 없지만 그만큼 한국이 호주와의 무역에서 꽤 비중이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실제로 IMF 사태 당시 가장 먼저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나라는 호주였다.

소고기 수출국이라는 이미지는 미국산 소고기 파동 사건 이후 더 가속화 되었는데 201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수입 소고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호주 기준에서도 전체 호주산 소고기 수출의 13%를 차지하는 등 소고기는 한호무역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축산물 외에도 호주의 천연자원 수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한국은 호주와의 무역에서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보는데 광물 자원을 포함해서 워낙 많이 수입하기 때문이다. 흔히 일반인들 사이엔 소고기가 제일 유명하지만 사실 호주의 對한국 수출에서 유연탄, 철광 등 광물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한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은 중국, 일본에 이어 호주가 3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이다.

호주에서는 한국산 버섯의 수요가 많다고 한다. 호주가 수입하는 한국산 버섯은 총 버섯 수입량의 82%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으며, 2020년 기준 3년째 버섯 수입국가 1위를 지키고 있다. 주로 아시안 음식점이나 식품점 등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고 한국식 버섯 요리 또한 수요가 있다고 한다. 해당 기사 호주에서 흔한 양송이버섯 대신 이국적인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표고버섯, 노루궁뎅이버섯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양국을 이어주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과 호주는 항공노선을 통해 자주 왕래하며 유학, 관광, 이민 등의 목적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 호주를 가려면 최소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한다. 양국의 항공노선은 직항노선외에도 주변국들을 경유하는 노선도 많이 존재한다. 양국 국민들은 상대국을 입국할 때 무비자로 입국가능하다.

군사[편집]

호주 방위군(Australian Defence Force)은 호주 육군, 왕립 호주 해군(Royal Australia Navy), 왕립 호주 공군(Royal Australia Air Force) 등 총 8만 121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사령관은 정부의 추천에 따라 방위군 중 한 곳에서 국방군 총사령관을 임명한다. 일상적인 군사 작전은 최고 사령관의 지휘 하에 있으며, 보다 광범위한 행정과 방위 정책은 장관과 국방부에 의해 수행된다.

호주의 2016~17년 예산안에서는 국방비가 국내 총생산(GDP)의 2%를 차지해 세계 12위의 국방 예산을 기록했다. 호주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포함한 유엔과 지역 평화 유지, 재난 구호, 무력 충돌에 관여해 왔다. 또한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12개 지역에 다양한 역할의 2,241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경제[편집]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퍼스

호주는 세계 6위의 국토면적과 이를 바탕으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천연자원과 농축산물 등의 1차산업으로 수출성과가 경제의 축이 되는 나라이며, 금융업과 IT 산업 등 3차산업에 꾸준히 재투자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오세아니아 역내에선 지역강국 지위를 갖고있으며, 2,500만명이라는 미약한 인구 대비 세계 명목 GDP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부국이다. 1인당 GDP 기준 아시아-태평양 지역내에서 5만달러를 초과하는 국가는 싱가포르와 호주가 유이하다.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에 속하는 호주는 시장 경제, 높은 1인당 GDP, 상대적으로 낮은 빈곤율을 가지고 있다. 평균 재산으로 볼 때 호주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는 스위스를 추월해 평균 재산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호주의 빈곤율은 2001년에서 2013년까지 10.2%에서 11.8%로 증가했다. 이는 2013년에 크레딧 스위스 연구소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중앙값과 두번째로 높은 평균 재산을 가진 국가로 확인되었다.

호주 달러는 크리스마스섬, 코코스(킬링 섬)섬, 노퍽섬, 키리바시, 나우루, 투발루를 포함한 독립된 태평양 섬 국가들을 포함한 국가의 화폐이다. 2006년 호주 증권거래소와 시드니 퓨처스 거래소가 합병하면서 호주 증권 거래소는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증권 거래소가 되었다.

경제 자유 지수(2017년)에서 5위를 차지한 호주는 세계 14위의 경제 대국으로 1인당 국내 총생산(명목)이 10위인 55,692달러를 기록했다. 또한 UN의 2017년 인간 개발 지수에서 3위를 차지했다. 멜버른은 The Economist의 2014년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애들레이드, 시드니, 퍼스가 각각 5위, 7위, 9위를 차지했다. 호주 정부의 총 부채는 2010년의 GDP의 20%에 해당하는 호주 달러 1,900억달러에 달한다. 또한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집값과 가장 높은 가계 부채 수준을 가지고 있다.

공산품보다는 원자재 수출에 중점을 두는 호주의 무역 전략은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21세기 초 이후 무역 조건에서 압박을 가해 왔다. 호주는 국내총생산(GDP)대비 7%이상의 수지를 가지고 있으며 50년 이상 지속적으로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겪어 왔다. 또한 OECD의 연평균 2.5%와 비교해 15년간 연평균 3.6%의 성장률을 보였다.

호주는 2008-2009년 대침체에서 경기 침체를 겪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이다. 하지만, 호주의 6개 주요 교역국의 경제는 경기 침체에 빠져 있고, 이에 영향을 받아, 호주의 경제 성장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호크 정부는 1983년 호주 달러를 유통시켰고 부분적으로 금융 규제를 완화했다. 하워드 정부는 노동 시장의 부분적인 규제 완화와 함께 전기 통신 산업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간접세 제도는 10%의 관세(GST)도입과 함께 2000년 7월 크게 바뀌었다. 호주의 조세 제도에서 개인 소득세와 회사 소득세는 정부 수입의 주요 원천이다.

2018년 9월 현재 정규직의 수는 1264 만 800명(파트 타임 포함)이며 실업률이 5.2%이다. 2013년 11월 중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복지 대상자의 수가 55%증가했다. 2013년에는 228,621명의 실업 수당 수급자가 등록되었는데, 이는 2007년 보다 64만 6414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대학원 진로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다양한 직종의 신입 사원들의 정규직 채용은 감소했으나 졸업 후 3년부터 증가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2-3%이고 기준금리는 5-6%이다. 관광, 교육, 금융 서비스를 포함한 경제의 서비스 부문은 GDP의 약 70%를 차지한다. 천연 자원이 풍부한 호주는 주요 농산물 수출국이며, 특히 밀과 양모, 철이나 금과 같은 광물, 그리고 액화 천연 가스와 석탄 등의 에너지를 수출한다. 농업과 천연 자원은 각각 국내 총생산(GDP)의 3%, 5%에 불과하지만 수출 실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호주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은 일본, 중국, 미국, 대한민국, 뉴질랜드이다. 또한 호주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와인 수출국이며, 와인 산업에 매년 55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농업 및 축산업[편집]

육류 생산이 월드클래스로 대표적이지만, 세계 4대 곡물에서는 에 강점이 있다. 세계 6위의 밀 생산국가이자, 수출에서는 다. 또한, 세계 5위의 쇠고기 생산국가로 쇠고기 요리가 발달해있다. 국내에서는 호주청정우라는 이름으로 호주산 쇠고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아르헨티나산 소고기보다 호주 소고기를 더 많이 접하는 편이다.

광업[편집]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국가답게 천연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세계 1위의 석탄 수출국으로 세계 석탄 교역량의 28%를 차지하며, 천연가스나 원유도 많다. 그 외에 각종 광물 자원도 아주 많아 니켈, 아연, 납, 은, 탄탈룸, 미네랄 샌드, 동, 금, 망간 등 대부분의 광물 매장량이 세계 6위 안에 드는 우월함을 자랑한다.

특히 이 나라가 천연자원 부존에서 쩔어주는 것은 많고 많은 자원들 중에 단일품목으로 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5대 자원, 즉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석탄, 구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 철광석과 석탄은 세계 시장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공급자이며 구리는 칠레에 이어 세계 2위, 천연가스와 석유는 아직 채굴과 수출이 활성화 되지 않은 단계이지만 조만간 세계 2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에 등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천연자원으로 가장 혜택을 많이 누리는 나라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천연자원 수출이 전체 수출의 60~80%를 차지하며 이 중 대부분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경제권의 수요에 의존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러한 에너지, 자원 개발에서 해외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제철 공업이나 화력발전용으로 이용하는 연료인 역청탄(유연탄)의 대부분은 호주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제조업[편집]

제조업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나마 있던 제조업이 한국 중국 등 신흥 제조업 강국에 밀려 박살났다고 보는것이 낫다. 상술한 환율 문제 등으로 그나마 있던 제조업 기업들도 힘들어 하는 상황이다.

호주 정부는 제조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국 자동차 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였으나 치솟는 환율과 높은 임금 때문에 2017년, 홀덴, 포드, 토요타 등 호주에 공장을 갖고 있던 자동차 기업들이 전부 공장을 폐쇄했다.

금융[편집]

국가 경제의 기반이 관광업이나 광업처럼 금융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산업으로 견인되는 까닭에 금융 시장의 규모는 선진국 중에서 작은 편에 속한다.

2021년 기점으로 주식 시장의 규모는 1.3조 미국달러로 26.1조 미국 달러인 미국 주식시장은 물론 11.3조 달러 규모의 중국 장이나 3.3조 달러의 영국 주식시장, 1.4조 달러 규모의 한국 주식시장보다 작다.

호주 내 20위 권 대기업의 총 집합 지표인 S&P/ASX20에 속한 기업들은 대부분 채굴 업체, 소비재 유통업 같은 기업들이고 금융권에 해당하는 기업은 빅4 시중 은행을 제외하면 맥쿼리 투자은행 1곳 뿐이다.

호주 내에서도 금융권에 종사하는 전문직이나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커리어 성장이나 고연봉을 희망하며 미국이나 영국으로 많이 향하며 호주 내에서도 이는 심각한 인재 유출로 우려하여 정부 주도 적극적 투자 유치 등을 통해 핀테크나 4차 산업 기반 산업의 성장을 기획하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도 없고 갈 길도 먼 상황이다.

부동산[편집]

큰 땅덩어리에 적은 인구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적이라는 편견과는 정반대로 미친 듯한 부동산 가격과 그 상승폭으로 매우 악명이 높다. 물론 또다른 영연방 이민 국가인 캐나다와 뉴질랜드 대도시권 부동산에 비하면 양반이라지만 호주 부동산은 공식적으로 토지의 거래가가 기록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단 한 번도 이렇다할 조정/하락장을 경험한 적이 없다.

특히 대도시들이 드넓은 땅덩어리에 골고루 분포되었으며 산업 구조의 다각화/고도화로 다양한 분야에서 가치 창출이 이루어지는 미국 및 유럽의 선진국들과는 다르게 호주는 소수의 도시에 인구의 대부분이 밀집되어 있고 그에 비해 주거 시설, 문화/여가 시설, 의료 시설, 일자리, 도로망 등 인프라는 매우 부족하며 부족한 인구를 메우기 위해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쇼핑몰, 기차역, 의료 시설들이 탄탄한 지방 중소 도시들도 일자리나 자녀 교육, 삶의 질과 같은 이유들로 청년층이 등을 돌리는 마당에 인프라는 커녕 슈퍼마트라도 있으면 다행인 호주의 시골들에 사람들이 도시의 편의성을 버리고 갈 리가 만무하다. 도시로 들어와야 하는 이유는 많은데 도시를 나갈 이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니 인구 밀집>집값 상승의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것.

또한 호주는 1985년에 처음 양도소득세를 도입했으며 그 이전에 구입하거나 소유한 부동산에 대해서는 일체의 양도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50~60년대에 태어난 호주의 베이비붐 세대가 보통 주택을 구입하기 시작한 것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이니 베이비붐 세대가 굳이 기존 매입 부동산을 팔지 않고 렌트를 돌리는 것도 매물 시장 순환율 저하에 한 몫을 한다. 한국의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처럼 부동산 평가액에 따라 매년 부가되는 세금도 없으니 다주택자들이 부동산을 내놓을 이유도 더더욱 없는 것.

이로 인해 호주는 2022년 기준 부동산 버핏지수가 330을 돌파한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금리 인상 기조가 강화되고 은행권의 대출 규제가 까다로워지는 2022년에 호주 부동산은 5% 보증금(LTV 95%)은 예삿일이요 각종 소득 증빙이나 자산 규모를 뻥튀기해서 억지로 대출을 받아놓고 집을 사는 하우스푸어들이 매우 많다. 코로나-19 이전 호주 전체 중위 소득 연봉은 5만 호주달러를 상회하는 와중에 한국의 투룸인 1 bedroom 아파트가 시드니 근교에서 60만 호주달러에 달하니 이미 아득하게 제정신을 벗어난 부동산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호주 청년층과 무주택자들도 부동산 시장과 임금의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매우 심하며 부동산 시장이 안정적인 싱가포르나 잃어버린 30년 이후 계속 횡보 혹은 하락을 지속하고 있는 일본으로 이민을 가려는 젊은층이 많아지고 있다. 이민 국가인 호주에서 미쳐버린 자산 시장의 폐해로 또다른 이민 세대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또 아이러니다.

인문사회[편집]

인구[편집]

호주의 인구는 2021년 7월 15일 기준 2583만 명으로,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가장 많으며, 전 세계에서 52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호주의 인구는 1950년 817만 명에서 1990년 1696만 명으로, 인구가 2배로 증가하였으며, 2015년에는 2393만 명으로 증가했다. 2019년 유엔의 인구전망에 따르면, 호주의 인구는 2030년 2817만 명으로 증가하며, 그 이후에도 계속증가해 2100년 4287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는데, 대부분 이민의 영향이 컸다. 2019년 호주의 외국인 인구는 752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외국인 수가 8번째로 많다. 호주의 이민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30%로,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에서 이민자 비율이 가장 높다.

평균 인구밀도는 km²당 3.4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이는 차지하는 지역 대부분이 건조한 스텝 기후와 사막 기후의 성질을 띄고 있기 때문이며, 인구의 대부분은 서부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의 89%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수의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도시화된 수준이다.

호주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종별로 인구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지만, 인구 조사(센서스)에서는 응답자가 원주민인지, 토레스 해협 제도 사람인지 등 자신의 혈통을 지명하도록 한다.

주민[편집]

호주의 원주민은 석기시대와 똑같은 수렵생활을 영위한 데 지나지 않았으며, 식민지 당국은 그 노력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원주민 인구는 크게 감소하여 순혈종의 원주민 약 4만 명이 특별보호구에서 보호 생활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의 주민 구성을 생각할 때 원주민은 현실적으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주민은 모두 최초의 선대 이래 도래한 사람들이며, 현재 총인구 약 1,973만 중 96%가 유럽계 백인으로 구성되어 명실공히 '백인의 천하'라 해도 좋겠다. 그중 영국계가 압도적으로 많아 90%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이민에 의한 인구 증가를 꾀해 왔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급속한 자원 개발,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고, 또한 1930년대의 낮은 출생률에 기인하는 인구 구성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이민 수용정책이 채용되었다. 이탈리아·그리스·네덜란드·독일 등지로부터의 이민이 많다. 한편 골드러시 때의 중국인 채광부와의 사이에 일어난 노동력의 덤핑·생활 정도의 저하 등의 문제가 얽혀서 발생한 백호주의 정책이 최근까지 채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여론과 아시아로 눈길을 돌린 이 나라의 입장 등으로 백호주의 정책이 파기되었다.

복지국가[편집]

호주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된 복지국가이다. 사회보장제도는 고령자·신체장애자 등에 대한 연금과, 실업자·병약자·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수당 등이 있다. 그 밖에 여러 복지단체에 대해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주택정책이 잘 되어 있어 2008년 기준으로 호주의 주택 보급률은 70%를 조금 웃돌아 세대의 약 25%의 정도는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영국계 주민이 많고, 영연방의 하나인 탓에 생활양식이 영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여가 활동[편집]

대다수의 호주인들은 퇴근 후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하루 중 가장 큰 낙으로 생각한다. 크리켓·론 볼링·럭비 등의 스포츠가 활발하다. 이 외에도 골프나 경마, 수상 스포츠, 캠핑을 즐기고, 일요일 오후에는 지역적으로 있는 '아르보(오후라는 뜻)'라는 정원 맥주파티에서 서로 어울린다. 호주인들은 흔히 예고없이 친구와 친척집을 '잡담하러' 방문하는 관습이 있고, 시골에서는 남녀가 따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느긋한 옥외생활의 분위기는 먹는 일과 그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이곳 사람들은 호주식 바비큐라는 요리를 항시 즐기게 되었다. 많은 공원이나 해변가에서는, 점심때나 저녁식사시간이면 불에 굽는 스테이크와 갈비 소시지의 냄새가 환담소리와 맥주 깡통 비우는 소리와 어울려 은은히 새어 나온다. 야외식사의 풍습은 굴·게·바닷가재, ‘야비’라고 하는 민물가재 등을 파는 거리의 노점에서도 성행되고 있다. 도박도 널리 행해져 대규모 사교클럽이 인기가 있고, 행락을 위하여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인권[편집]

또한 호주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노동조건을 몇 가지 갖고 있다. 그들은 일년에 4∼5주의 휴가와 연중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다수의 공휴일을 확보하고 있다. 또,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외에, 호주인들은 농업전시회, 국왕의 생일, 그리고 멜버른 사람인 경우에는 이 나라 최대의 경마행사인 '멜버른 컵' 경기 때도 근무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찍 근무를 시작하여 오후 5시면 끝마침으로써, 몰려오는 파도 옆의 백사장에서 본격적으로 일광욕을 하는 등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만들고 있다. 오늘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의 하나는, 태양에 바랜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십대의 젊은이들이 풍요와 넘치는 영양, 그리고 야외생활로 다져진 건강한 피부빛의 육체들을 가지고 서프보드와 윈드서핑 장비가 꽂힌 캠프용 자동차 주위에 모여 있는 모습이다.

언어[편집]

대부분 호주 사람은 영어를 쓰는데, 호주 영어(오지 잉글리시)는 미국 영어나 영국 영어와 구별되는 특징 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0%는 가정에서 영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가정에서 많이 쓰는 언어가 중국어(2.1%), 이탈리아어(1.9%), 그리스어(1.4%) 순이다. 이민 1세대나 2세대 상당수는 두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계 이주민은 베트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영어 구사자도 있다. 일례로 동남아시아에 온 주민은 베트남에서 온 주민처럼 고향 언어를 사용하는 점이랑 영어를 같이 구사하는 점도 있는 편이다.

처음 유럽인이 호주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이 사용하는 약 200에서 300개 토착 언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약 70개 정도만 살아남았으며, 그 가운데 20개는 사멸 위기에 있다. 이들 토착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인구는 약 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02%이다.

종교[편집]

시드니의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호주에서 가장 큰 종파인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해 있다.

호주는 국교가 없다. 호주 헌법 116조는 연방정부가 어떤 종교를 설립하거나, 어떤 종교의 준수를 강요하거나, 어떤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을 금지한다.

2021년 인구 조사에서 인구의 38.9%가 "무종교" 로 확인되었으며 2001년의 15.5%에서 증가했다. 가장 큰 종교는 기독교 (인구의 43.9%). 가장 큰 기독교 종파는 로마 가톨릭 교회 (인구의 20%)와 호주 성공회 (9.8%)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문화 이민은 비기독교 종교의 성장을 가져왔으며, 그 중 가장 많은 종교는 이슬람교 (3.2%), 힌두교(2.7%), 불교(2.4%), 시크교(0.8%), 유대교(0.4%)이다.

2021년에는 8,000명이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원주민 종교에 가입했다고 선언했다. 호주의 원주민들의 애니미스트적 신념은 수천 년 동안 실천되어 왔다.본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영성은 '꿈꾸는 꿈'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땅의 소속을 크게 강조한다.

교육[편집]

초등교육[편집]

호주에서는 영국식 영어에 따라 초등학교를 Primary School 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호주의 초등학교는 6년이 아니고 1학년 들어가기 전의 학년인 Foundation year[1] 를 포함한 7년이다. 이 시기에는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을 배운다. 등교 시간은 대부분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이고 하교 시간은 3시부터 3시 30분이다.[2]입학시기는 2월인데, 7월~이듬해 6월생까지를 받기 때문에 7~1월생은 6세에, 2~6월생은 5세에 입학을 한다. 학년은 보통 2월경에 시작해서 12월 초에(이 또한 주마다 다르다.) 끝나는데, 이는 크리스마스 (12월 25일)-새해 첫날 (1월 1일)로 이어지는 기간이 매우 덥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기는 semester와 term으로 나뉘고 1년에 2개의 semester (한 semester 당 2개의 term)와 4개의 term으로 나눠진다. 각 term 사이에는 짧은 방학이 있고 연말의 여름방학만 조금 더 길다. term 사이 짧은 방학은 2주 정도로 부활절 기간이자 가을방학에 해당하는 4월 초/중순, 겨울방학에 해당하는 7월 초/중순, 봄방학에 해당하는 9월 말/10월 초 그리고 연말 여름방학은 1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이다. 이는 중/고등학교(year7~year12) 까지 해당된다. 다시 말해 호주에서는 대학 입시와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해를 넘기지 않고 진행된다.

영어를 배워야 하는 유학생들을 위한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반이 따로 있는 학교가 많다.

교육은 연방 정부가 아닌, 주정부가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문서에 작성되어 있는 정보는 모든 주에 적용되지 않는다.

중등교육[편집]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따로 있지 않고 한 학교이며 이를 High School/Secondary School 이라 한다. 몇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Yr 7-10 (한국으로 따지면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1학년)은 Juniors, Yr 11-12 (고등학교 2-3학년)은 Seniors. 사실 각 주마다 돌아가는 교육 시스템이 달라서 ACT나 TAS 같은 경우는 10학년 까지 high school 을 다닌 후 남은 2년을 컬리지에서 보내고 SA에서는 8학년 부터가 하이스쿨이다. 한 교실에서 대부분의 공부를 해결하는 한국의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중고등학교는 과목마다 대강 구역이 나눠져 있으며 수업마다 교실을 옮겨야 한다. (출석을 부를 때도 교실이 따로 있다...) 큰 땅덩이를 자랑하는 섬나라인 만큼 대부분의 High School은 넓은 잔디 운동장과 함께 숲, 정원, 시냇가 등을 보유하고 있어 학생들이 자연친화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에 기여한다.

심지어 중학교 시기부터는 필수 과목인 영어 (영문학 포함), 과학, 수학, 사회 (역사 포함) 등[3][4]은 그대로 배우고 추가 과목을 2-3개 정도 직접 선택해서 배울 수 있다.

외국어 과목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세르비아어,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페르시아어, 힌디어, 타밀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에 심지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까지 매우 다양하다. 대개 학생들은 자신의 가정에서 사용하거나, 혹은 할아버지 대나 그 이상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언어를 선택해서 배우지만, 아시아와 교역이 많은 탓에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등 아시아계 언어의 인기도가 높은 편. 실제 호주에서 외국어 과목 순위 1위는 일본어, 2위는 프랑스어, 3위는 독일어일 정도이다.

10-11 (고1-고2) 학년까지의 과정이 쉬운 편이라 오스트레일리아의 교육이 쉽다는 편견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으로 12학년이 되면서 과목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로 갈라진다. 쉬운 과목은 여전히 쉽지만, 대입 시험이 상대 평가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득점 하기도 힘들 뿐더러 어렵다고 여겨지는 과목은 업스케일 되는 데 반해, 쉬운 과목은 과목 자체가 다운스케일 된다. 또한 고1(10학년)까지 한국의 중학교 1, 2학년 수준으로 쉬웠던 수학과 과학 등의 과목들은 고2(11학년)때가 되면 난이도가 급 상승한다. 받은 한국의 교과목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난이도가 올라간다면, 오스트레일리아는 본격 대입기간인 11학년(고2)에 가서야 난이도가 이전학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뛰어오른다고 볼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입이 한국에 비해 쉽게 여겨지는 이유는 대학입시가 한국만큼 과열되지 않아 학생끼리의 경쟁이 덜하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지 절대 공부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다.

고등교육[편집]

호주국립대학교(ANU, 19위)를 포함해 QS 세계 대학 순위 50위 안에 5개 호주 대학이 랭크돼 있다.

QS 세계 대학 랭킹에 의하면 호주는 대학 시스템이 미국, 영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강하다.

호주의 대학 진학률은 약 50% 정도이다.

외국에서 호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은 IELTS (아카데믹 모듈. 일부 학교는 제너럴 모듈도 받아 준다.)나 TOEFL을 치러야 대학에 갈 수 있다. 단, 유학생이라도 호주 중/고등학교에서 몇년간 정규교육을 받았으면 공인영어시험 점수 없이 현지 호주 학생들과 같은 조건으로 한국의 수능격인 대입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영국식 학제를 받아들여 학사학위는 보통 3년제로 운영되며, 석사 학위도 코스웍의 경우 1년~2년까지 다양하다. 영어권 선진국에 교육으로 명성이 높은 나라라 유학생 인구가 굉장히 많은데 특히 아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아시아 유학생들의 성지이다. 중국,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 베트남 등 많은 나라에서 유학온다. 드넓은 땅에 대학은 40여곳에 불과하며, 거의 모두 정부차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높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필수과정이라는 인식이 덜한 편이라 종합대학외에 기술대학 (TAFE)으로의 진학도 활발하며,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호주의 대학 대부분이 세계대학평가에서 상위 5%에 들 정도로 뛰어난 교육수준을 자랑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대학으로는 호주국립대학교, 멜버른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등이 있으며, 이들이 속한 그룹 오브 에이트라는 여덟 대학이 호주를 대표하는 명문대학으로 꼽힌다. 다만 최근 들어 유학생들의 등록금이 해마다 치솟고 있어 적게는 연간 2만불에서 많게는 연간 4만5천불까지, 굉장히 비싸졌다 (그리고 계속 오르고 있다).

문화[편집]

오스트레일리아는 기본적으로는 다민족·다문화사회(multicultural society)를 지향하나, 예술은 오랫동안 유럽의 전통에 기초해왔으며 부분적으로는 환경, 역사, 원주민의 문화 및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도 영향을 끼쳤다. 연방 및 주정부와 방송협회 등에서 음악·미술·문학 등에 각종 상금이나 보조금·장려금을 주며 국내 예술가의 양성에 힘쓰고 있다. 화가인 러셀 드리스데일, 시드니 놀런, 아서 보이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원주민 예술은 정부의 권장에 힘입어 그 위치를 굳히고 있다. 1896년 이래 큰 인기를 누리던 영화사업은 잠시 침체되었다가 1969년 이후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그린카드》, 《트루먼 쇼》,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등을 연출한 피터 위어 감독과 배우 니콜 키드먼, 제프리 러시, 가이 피어슨, 케이트 블랜쳇 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음악은 이민온 사람들에 의해 크게 발달하였는데, 기타의 대가인 카자흐스탄 출신의 슬라바 그리고리얀(Slava Grigoryan)이 유명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브란덴부르크 오케스트라와 오스트레일리아 챔버 오케스트라는 세계적 수준이다. 유명작가로는 197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패트릭 화이트(Patrick White), 현대작가 팀 윈턴, 현대 작가이자 시인인 레스 머리 등이 있다.

6개주의 주도와 캔버라, 태즈메이니아의 론세스턴에는 식물·동물·광물·고고학·인류학의 자료를 수집한 박물관이 있다. 또, 국립 도서관·미술관·동식물원 등이 각지에 설치되어 이용된다. 캔버라 서쪽 교외에 있는 남반구 최대의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 부속천문대, 우메라의 우주개발연구소, 1926년에 설립된 연방과학산업연구기관(CSIRO) 등이 있다.

스포츠[편집]

오스트레일리아식 축구와 럭비 리그, 크리켓, 축구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축구의 경우는 2004년엔 8개 팀으로 프로 축구 리그인 A-리그가 창설되었다. (현재 현대 A-리그에는 10개 팀 (그 중 하나는 뉴질랜드에 연고를 두고 있다.)이 있다.) 올림픽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2번 연 적이 있었다. 크리켓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호주 지도[편집]

호주 행정 지도[편집]

호주 지형 지도[편집]

호주 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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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오스트랄라시아 같이 보기[편집]

오스트랄라시아 국가
오스트랄라시아 도시
오스트랄라시아 바다
호주의 섬과 지리
뉴질랜드의 섬
오스트랄라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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