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
중립국(中立國,영어: neutral country)은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목차
개요[편집]
19세기 이래 중립은 약소국이 주로 채택하는 정치 외교 노선이었다. 강대국이란 세계의 안정 세력을 뜻하며 세계의 안정은 강대국이 솔선하여 세력의 균형을 꾀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므로 강대국은 중립정책을 채택하지 않는다. 이러한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의 틈바구니를 헤엄쳐 자신의 보전을 꾀하려고 하는 일부의 약소국이 중립을 표방하여 국제 정치상의 정책으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중립정책은 힘의 정책과는 상관적인 것으로서 힘의 정책이 번성하면 중립정책도 번성하고, 힘의 정책이 쇠퇴하면 중립정책도 따라서 쇠퇴하는 것이 국제세계의 실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후 국제연맹이 발족한 이래 얼마 동안은 중립 정책이 그림자를 감추었다. 연맹의 이념하에 힘의 정책은 미움을 받고 세력균형정책도 따라서 배격받게 되었으며, 또한 중립정책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이 그 권위를 상실하고 약소국의 신뢰를 모을 수 없게 되자 약소국간에 중립정책을 표방하는 국가들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강대국은 강대국대로 지난날의 세력 균형 정책, 즉 동맹 정책으로 복귀했다.
제2차 세계대전후 유엔의 발족과 함께 힘의 정책이나 세력 균형 정책이 이념 상 배척되고 중립의 역할이 약화 되었으나 '2개의 세계'의 대립이 국제 세계의 표면에 나타나, 이 대립이 '냉전'으로 격화하자 약소국 간에 혹은 신생국들 간에 중립을 표방하는 국가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사[편집]
고대나 중세사회에서 중립에 관한 관념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16세기에 절대주의 국가들이 국제적인 상업활동을 통하여 국가의 부(富)와 권력을 축적하면서부터 전쟁때 중립국의 이익과 교전국의 필요를 조화시켜야 할 중립제도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18세기에 네덜란드 등 해양국가들이 교전국에 의한 제한조치에 반발하고 중립국의 교전국과의 정상적인 무역거래를 주장하면서 18세기 말엽에 중립국의 상업활동에 관한 국제법규의 내용이 성립되기 시작하였다.
1780년 및 1800년의 무장중립(武裝中立)을 거쳐 1856년 파리조약에서는 중립국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국제상거래의 안전을 보장하는 전시 중립법규의 골격이 마련되었으며 1909년 런던 선언을 통하여 중립법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완성시켰다.
중립국의 의무[편집]
중립국이 교전국에 대한 의무는 교전국 양쪽에 대한 공평함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 전쟁수행에 관계되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원조를 교전국의 일방 또는 쌍방에 제공하여서는 안 된다는 회피 또는 자제 의무가 있다.
- 중립국의 영역이 교전국의 전쟁수행에 이용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방지 또는 저지 의무가 있다.
- 교전국 상호간의 전쟁수행을 위하여 전시금제품(戰時禁制品)을 규제하고 해상봉쇄(海上封鎖)를 단행할 때 중립국인은 이와 같은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할 묵인 또는 용인 의무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후부터 중립이나 중립국은 점차 국제관계에서 중요성을 잃게 되었으나 냉전기에는 자본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느 쪽과도 동맹을 안 맺으며 그 두 진영 사이에서 중도적, 중립적인 입장을 택한 제3세계 국가들이 많았다.
냉전이 종식 되면서 국제연맹, 부전조약(不戰條約), 국제연합 등 전쟁 자체를 불법화하거나 무력사용을 금지하는 제도 아래에서 전통적인 중립의 의미와 중립국의 의무는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침략국은 불법적인 전쟁도발의 책임과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전쟁행위의 존재를 부인하려 하며, 희생국은 제3국의 원조를 금지하는 중립을 불리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핵시대의 중립[편집]
국제정치역학구조하에서 중립이란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즉, 1국가가 중립법상의 권리·의무를 취하고 다변적인 승인을 받았더라도 시대적 필연성에 의해 포기할 수도 파기될 수도 있다는 가정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체제와 핵무장시대에서 특히 그러했다.
이 점에서 비무장중립과 무장중립의 논리적 대립이 일어나는데 본질적인 문제는 국가 체제에 대한 취사 선택에 있다고 하겠다. 즉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영세중립국가는 물론 통상의 중립노선 국가들도 평시 중립 유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제법상의 중립문제가 전시중립에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핵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전시중립의 한계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즉,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으로 인해 핵전쟁의 발발이란 교전 당사국뿐만 아니라 인접국, 나아가서는 전 세계적 파멸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중립이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이 점이 핵보유 국가들까지도 핵전쟁을 회피하게 되는 근본 이유이지만 균형 유지와 우위 확보라는 명분하에 계속적으로 무기체제를 발전·강화시키고 있으므로 그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
그 주역인 미국과 소련이 각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주도국을 자처하여 군사 동맹이나 방위 조약 형태로 각각의 카테고리를 형성, 대립하였는데 이 시기의 중립 노선 국가들은 이를 '핵우산에 의한 종속'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일방에 기울어져 있었다. 이들의 논리는, 자위든 보복이든 핵의 사용은 범죄 행위이며, 핵보유 국가를 주축으로 한 각종의 군사 기구·동맹에 참여하는 것은 그를 용인하는 행위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경제·외교 등 국가 주권의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거부함으로써 국제평화 수호와 전쟁의 부인, 완전한 국가 주권 유지 및 행사라는 중립 개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중립정책[편집]
중립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서는 중립주의, 비동맹정책, 군사동맹으로부터의 자유, 적극적 혹은 능동적 중립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중립정책, 중립주의라는 정의는 국제법의 1체계인 중립법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 주도의 양극 체제와 그 종속성을 거부한다는 한시적인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 즉 그를 표방한 사회주의 국가들에 있어서는 소련·중국이, 자본주의 국가들에 있어서는 미국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중립국의 대외 정책에는 각국의 발전의 역사적 조건에 의거한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다.
- 아시아나 아랍 제국, 아프리카 제국의 중립주의는 그들 국가가 근래에 획득한 독립을 강화하기 위한 것과 지극히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 스웨덴이 취하고 있는 중립 정책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전통적인 정책이다.
- 중립 정책을 취하고 있는 국가도 대국간의 냉전에 말려들어 게다가 내정(內政)을 간섭받는 것을 피하고, 평화에의 공통적인 염원, 독립과 주권 존중과 평화에의 공통적인 투쟁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 새로운 전쟁 특히 핵전쟁의 준비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 군사 블록에 들어갈 것을 거부한다.
- 그 영토를 외국 군사 기지로 제공하는 것을 거부한다.
- 그들 국가를 포함하는 비핵무장지대의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통상 비동맹·독자 노선·중립 노선 국가로 총칭되는 이들은 정치·군사 부문에서는 강대국 주도의 정치·군사 기구 참여를 거부하는 대신에 그들 나름대로의 정치·군사적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권익 유지에 힘쓰고 있는데, 경제 분야에서는 각 국별로 서방측이나 소련에 기울어져 있다.
평화·중립[편집]
평화·중립은 중립 정책을 행하는 국가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문제에서 서는 중립이 아니고 일의적으로 평화의 편에 서는인 것이다.
- 중립은 그것이 과거의 시대에 행하여진 바와 같이 평화와 전쟁의 중간에 서는 중립, 즉 처음에는 기회주의적으로 자국을 둘러싼 형세를 관망하다가 장차 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은 국가에 가담하려는 동요적 기회주의의 중립적 태도는 아니다.
- 중립은 세계 평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중립으로서, 종래와 같이 자기의 국가만은 전화(戰禍)로부터 모면하고 싶다고 하는 소국의 소극적인 원망이 아니라, 국가의 대소에 관계없이 핵전쟁이나 신전쟁의 준비를 부정하고, 세계의 평화에 적극 기여한다.
- 중립은 어느 군사 블록에도 참가하지 않고, 군사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외국의 침략 전쟁에 가담·협력하지 않으며, 외국에 군사 기지의 설치를 허용하지 않으며, 참가해 있는 군사블록으로부터는 이탈하여 그것을 파기한다.
- 핵무기를 자국에 반입하는 것을 반대하고, 자국 군대에 핵무장을 허용하지 않으며, 영해·영공에 있어서의 핵무기의 수송·정찰을 금지한다. 그리고 또한 타국의 정찰 비행기 등의 영공(領空) 침범을 규탄한다.
- 평화와 독립을 강화할 것을 지향하고 그래도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확고하게 중립을 수호한다.
영세중립[편집]
영세 중립국은 자위(自衛) 이외의 전쟁을 행하지 않으며, 평시에는 중립정책을 실행하여서 군사동맹이나 군사블록에 참가하지 않고, 영세중립 국가를 전쟁으로 이끌어 들일지도 모르는 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며, 타국과 우호 관계를 강화하도록 조약 상의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의 법적 지위를 말한다.
영세 중립의 지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중립국과 관계 국가와의 다변적인 협정이 필요하다. 물론 영세 중립을 희망하는 중립 국가 그 자체의 발의(發意)가 전제로 된다. 중립의 실천은 그 국가의 주권의지(主權意志)에 달려 있다.
21세기 이전에 영세중립국의 중요한 실제 예시로서는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있다. 2022년 기준 영세중립국을 주장하는 나라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투르크메니스탄, 코스타리카 등 5개국이다.
오스트리아의 중립[편집]
오스트리아는 1955년 10월 26일에 국내법으로 영세중립이 일방적으로 선언되고, 이에 대하여 미국이나 소련 등 강대국들이 부여한 개별적 승인의 집적으로 영세중립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형식으로 영세중립이 성립된 것은 오스트리아가 역사상 처음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가 완충국으로서의 위치를 획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는 스위스와는 달리 UN에도 일찍 가입하였다. 영세중립국이 UN 회원국의 의무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샌프란시스코 회의 당시의 해석이 그 후에 변경되어, UN헌장에의 중립이 재평가됨으로써 오스트리아의 UN 가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다만 오스트리아는 1995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후 중립성을 의심받았으며, 2017년 출범한 항구적 안보협력체제(PESCO)에 가담한 이후로는 중립국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더욱 커지면서, 현재의 오스트리아를 중립국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이 상태로 유럽군이 창설된다면 오스트리아는 논쟁의 여지조차 없이 중립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편, 스웨덴과 핀란드에 대해서도 같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이 둘은 NATO에 가입을 신청하면서 중립노선을 확실히 이탈하였다.
스위스의 중립[편집]
스위스의 고전적인 영세 중립도 다변적인 국제 조약과 스위스 자신의 주권 의지에 의거하여 성립되었다(1815년 1월의 의정서). 스위스의 영세 중립은 강대국에 의해 보증됨과 동시에 무장 중립이었으나, 이것은 스위스가 그 중립을 수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군대를 가질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에 가입했으나 연맹이 취하는 군사조치에 참가할 의무가 면제되었다(런던 선언). 그리고 또한 외국 군대의 영토 통과를 거부하고 국내에 있어서의 군사 행동의 준비를 인정하는 의무에서도 면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침해한 200기 이상의 독일·영국·미국의 비행기를 격추 또는 억류하고 또한 영토 내로 퇴각해 온 프랑스 부대까지도 억류했다.
스위스는 유엔에 영세중립국의 지위와 양립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다가 2002년 3월 3일 유엔가입에 대한 국민투표결과 유엔가입이 통과됨에 따라 스위스도 2002년 9월 10일 190번째 회원국으로 UN에 가입하였다. 그리하여 스위스도 더이상 영세중립국이 아니며 UN 결의에 따라 행동할 의무가 정해진 것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립국으로서의 금기를 깨고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군에 원조를 제공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 ‘이로서 스위스는 완전히 중립국이 아니게 되었다’는 의견과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중립국으로서 비판했다’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한 쪽의 편을 공개적으로 들어준다는 이례적 선택을 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향후 스위스의 중립국 지위에 대한 재정의 논의가 발생할 수 있다.
바티칸의 중립[편집]
1929년 이탈리아왕국과의 라테라노조약에 의하여 형식상 영세중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바티칸은 교황이 다스리는 종교국가이기 때문에 영세중립국 위치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국가나 국교가 없는 국가 정도에 한하며, 이슬람, 불교, 힌두교같이 다른 종교를 믿는 국가에서는 잘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최근 일어난 미중갈등과 미국의 대만 관련 언급에서는 중국과 미수교 상태 및 대만과의 단독 수교국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향하고 있다.
바티칸은 현재까지 UN에 가입하지 않았다.
투루크메니스탄의 중립[편집]
독립직후에 영세중립을 모색해왔고 1995년도에 UN회원국 만장일치로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되어서 법적으로 영세중립국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주도하는 구 소련권 국제기구에도 정회원국으로 가입해 있지 않다. 심지어 독립국가연합(CIS)도 정회원국이 아닌 준회원국이다.
투루크메니스탄은 남북한 모두와 외교관계를 맺고있다.
코스타리카의 중립[편집]
1948년 헌법으로 군대 비보유국이며 1983년 공산 독재국가인 북한과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을 계기로 외교를 단절하였다.
중립의 의무[편집]
국제법에서 중립이란 국제법상의 전쟁상태가 발생했을 때 그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 제3자적 입장을 취하는 국가가 교전 당사국 쌍방에 대해서 가지는 지위, 즉 권리와 의무 관계를 의미한다.
중립에는 평시 중립과 전시 중립의 2가지가 있는데 국제법의 1체계인 중립법은 상기한 바와 같이 전시 중립에 관한 것이다. 스위스·오스트리아 같은 영세 중립 국가는 전시 중립은 물론 평시 중립 의무도 이행해야 하나 그 밖의 국가들에 있어서는 전쟁 상태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비로소 교전 당사국 또는 제3국과의 사이에 중립법 상의 관계가 발생한다.
1907년의 개전 조약에 의하면 중립법상의 전쟁상태란 당사국 사이에 전쟁의사가 표명되었을 때 성립한다는 것이 통설이나, 외교 관계의 단절을 수반한 사실 상의 무력 행사도 묵시의 의사 표명으로 보아 전쟁 상태로 취급해야 한다는 견해도 유력하다.
- 최근의 예로서 명문 상의 국제법 위반을 피할 목적으로 명시적인 전쟁의사 표현을 회피했던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과 미국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후자의 견해도 타당성이 있다고 하겠다. 전쟁상태가 발생하면 교전 당사국은 물론 제3국과의 사이에는 평시와는 다른 권리·의무 관계가 설정되는데, 통상 국외 중립 선언으로 중립국의 지위를 차지할 국가들은 중립법상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동시에 중립법상의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묵인 의무[편집]
묵인 의무란 중립국은 교전 당사국이 전쟁 수행 과정에서 행한 행위로, 자국 또는 그 국민이 받은 불이익을 전쟁법이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는 묵인해야 한다는 의무이다. 이에 관련된 대표적인 것으로서 교전 당사국의 비상징발권(陸戰中立條約)이 있다.
전쟁 상태시 교전국 쌍방은 선박 나포나 검색을 하고 중립국 화물일지라도 전시 금제품이면 몰수할 수 있으며, 해상 봉쇄를 설정한 지역에 침범한 선박·화물은 중립 국적 소유일지라도 포획할 수 있다. 또한 전쟁 수행 과정에서도 중립국 또는 그 국민의 권익에 대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침해를 가하게 되는데, 평시의 경우라도 당연히 가해국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가 따르겠지만 전시 상태에서는 교전 당사국이 국제법 상의 전쟁 법규를 준수하고 있는 한 중립국은 그를 묵인하여 감수해야 한다.
회피 의무[편집]
중립국은 전쟁 상태 중인 교전 당사국 일방에 대하여 전쟁 수행에 관련되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 원조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 규정이다. 즉 중립국은 교전국 일방에 병력을 파병하거나 군함·병기·탄약 기타 군사용으로 공용될 수 있는 선박·항공기 등 모든 군용 자재를 제공해서는 안 되며, 교전국에 군자금 등 금전을 증여하거나 대여해서도 안 된다. 이에는 교전국이 발행한 공채의 위탁 모집·보증 등의 행위를 포함하며, 교전국 일방에 제공할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제공해서도 안 된다.
이상의 의무 규정은 관습법으로서 유지되어 왔는데 '해전 중립 조약'에서 최초로 명문화되었다. 그런데 회피 의무의 이행 주체는 국가로서 그 국민이 사인(私人)의 자격으로 교전국 일방을 지원하는 행위는 제외된다. 즉 중립국 국민이 교전국 일방의 공채 모집에 응하거나 지원병으로서 입대하는 행위, 민간 회사가 교전국을 위해 무기를 제조하거나 또는 수출하는 행위 등은 사인 자격으로 행하는 한 회피 의무의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도 방지 의무와 관련, 중립 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
방지 의무[편집]
국가의 병역은 불가침이므로 어느 국가나 외국의 침입을 거부·격퇴할 권리를 갖는다. 전시에 있어서 중립국은 그 영역 침범을 거부·격퇴할 권리는 물론 그 영역이 교전국 일방에 의해 전쟁목적에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데 이것이 방지 의무이다. 이를 위해 무력을 사용해도 교전국에 대한 적대 행위가 아니며, 힘의 열세로 사실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그 책임이 교전국에 부과되어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육전중립조약과 해전중립조약에 그 구체적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데 후자가 다소 완화적이다. 다만 중립국은 자국의 영역에 대한 교전국 선박·항공기의 통과 일시 정박을 반드시 금지할 의무는 없다.
중립국 목록[편집]
-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중립국
- 헌법상이나 대외적으로 중립을 표방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거나 논란이 있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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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국 헌법 9조 참조. 헌법상으로는 교전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미일안전방위조약과 일본 자위대등의 강한 군사조직 때문에 중립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견해가 많다.
- 과거 중립국이었다가 포기하였던 나라들
- 노르웨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무력침공으로 1945년 중립노선을 포기하였다.
- 네덜란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국과 동맹국 사이에서 중립을 고수했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추축국과 연합국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였으나 제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이를 무시하고 침공, 점령하면서 1945년 중립노선을 포기했다.
- 대한제국: 1904년 러일전쟁 당시 고종이 대한제국의 중립노선을 표방한 적이 있으나 일제가 이를 무시하고 이듬해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서 중립노선이 백지화되었다.
- 덴마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무력침공으로 1945년 중립노선을 포기하였다.
- 룩셈부르크: 1867년 독립 당시 영세중립국 보장을 받았으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 모두 독일에게 점령당한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영세중립을 포기하였다.
- 불가리아 왕국: 전간기였던 1930년대 중, 후반기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선언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소련의 무력침공과 간섭,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추축국과 연합국을 겉돌다가 1944년 중립을 포기했다.
- 벨기에: 제1,2차 세계대전 연속으로 독일군에 침공당하면서 중립을 포기했다.
- 미국: 고립주의에 입각한 중립정책으로 개국 이래 유럽이나 기타 해외 문제에 끼어들지 않았으나, 19세기 말에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유럽과 함께 패권경쟁을 한 적이 있었고, 처음엔 꺼렸지만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진주만 공습 이후에 결국 참전한 두차례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현재는 '세계의 경찰'과 '팍스 아메리카'라는 별명을 듣는 가장 개입주의적인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했다.
- 스웨덴: 영세중립국까지는 아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에도 굳건한 중립노선을 표방유지하며 나치 독일의 침공을 면했다. 한반도에서 스위스와 함께 중립국 감독위원회 국가로 활동하며 남북한 중재를 대변해주고 있고 올로프 팔메 총리 집권기 때 꽃피운 중재외교 덕에 지금도 제3세계 지원이나 국제분쟁에 많이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고 옆나라 핀란드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을 신청하였다.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주도하에 중립국이 되었다.
- 튀르키예: 튀르키예공화국 수립후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조국에서 평화, 세계에서의 평화" 원칙을 내걸고 중립국임을 표방했다. 케말은 튀르키예 독립전쟁 이후로 무력을 외국에 쓰지는 않았다. 케말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이뇌뉘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와중에도 중립정책을 고수했으나 연합국의 압박으로 결국 참전했다. 2차대전 이후 마셜 플랜 원조를 받고 북대서양조 기구에 가입하면서 중립 노선을 완전히 폐기했다.
- 핀란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에 공격당한 이후 추축국에 협력하기도 했으나 1944년 연합국으로 전향하고 전후 중립국이 되었다. 다만 소련의 영향력을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해서 핀란드화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친소국가로 남아야 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등 친서방국가로 노선을 확실히 바꾸었지만 대체로 중립국으로 인정되는 편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옆나라 스웨덴과 함께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을 신청하며 중립적 지위를 완전히 포기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