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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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루바(네덜란드어: Aruba, 영어: Aruba)는 카리브해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이다. 소앤틸리스 제도의 중심에서 약 1,000km,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29km에 위치해 있다. 아루바의 서북단에서 동남단까지 길이가 32km로, 그 중 가장 넓은 지점은 그 거리가 10km이다. 아루바는 보네르섬, 퀴라소와 함께 ABC 제도로 묶여지기도 한다. 또한, 아루바와 함께 카리브해에 위치한 다른 네덜란드령 제도들은 네덜란드령 카리브라 불린다.
아루바는 네덜란드, 퀴라소, 그리고 신트마르턴와 함께 네덜란드 왕국을 형성한다. 이 나라들의 시민은 모두 네덜란드 왕국의 국민이다. 아루바 내에는 정식적인 행정 구역이 없으나, 인구 조사 등의 이유로 8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 중 오라녜스타트가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카리브해 지역과는 달리, 아루바는 기후가 건조하고, 선인장이 국토를 뒤덮고 있다. 이렇게 건조한 기후는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이끌어 나라의 관광업에 기여하였다. 아루바의 국토 면적 중 179km²에 해당하는 부분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목차
개요[편집]
역사[편집]
식민지 이전의 아루바[편집]
아루바에는 기원전 2000년부터 사람이 있었다. 그중 최초로 식별이 가능한 집단은 서기 1000년 즈음 남아메리카에서 이주하였던 아라와크족 계열의 카케티오 원주민들이다. 여러 고고학적 증거들이 아루바의 원주민들과 남아메리카 본토의 카케티오 원주민들의 지속적인 연관성을 시사한다.
유럽인들의 상륙과 스페인령 아루바[편집]
아루바를 방문한 첫번째 유럽인들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와 알론소 데 오헤다이다. 이들은 1499년 아루바에 도착한후 아루바를 스페인의 영토라 주장하였다. 이들은 또한 아루바를 "거인들의 섬"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당시 카케티오 원주민들의 비교적 높은 신장을 두고 한 얘기이다. 베스푸치는 아루바에서 목화와 브라질나무를 가지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그것으로 바다에 집을 지었다. 베스푸치와 오헤다의 일화는 곧 아루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스페인은 아루바를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알론소 데 오헤다가 1508년 아루바의 첫 총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1513년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카케티오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많은 이들을 히스파니올라섬의 탄광으로 보내 강제노동을 시켰다. 아루바는 다른 카리브 제도들과 달리 노예 기반의 집단농장과 대규모 노예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섬의 적은 강수량과 건조한 지질로 인해 적합하지 않다고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초기 네덜란드령 아루바[편집]
1636년,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30년 전쟁 도중 아루바를 점령하였다. 페터르 스타위베산트는 네덜란드령 아루바의 초대 총독으로 부임, 이후 뉴암스테르담 (현 뉴욕) 총독으로 활동하였다.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살아남은 아라와크 원주민들은 네덜란드의 지배 아래 자주적으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방목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고 네덜란드인들은 카리브해의 다른 식민지들의 육류 공급원으로 아루바를 이용했다. 아루바와 남아메리카 대륙과의 가까운 거리는 해안 지역들간의 문화적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그 예로, 19세기에 지어진 오라녜스타트와 베네수엘라 팔콘주 코로의 건축물들 사이에서 유사함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아루바는 네덜란드 식민통치 영향권 밖에 있어 네덜란드어가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았고,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기에 이르러 그 사용량이 증가하였다. 퀴라소, 아루바, 그리고 보네르섬의 학생들의 대부분은 18세기 후반까지 스페인어로 교육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도중 대영 제국이 아루바를 점령, 1806년부터 1816년까지 섬을 장악하였으나, 1814년 영국-네덜란드 조약에서 네덜란드에게 아루바를 돌려주었다. 아루바는 곧바로 보네르섬과 함께 "퀴라소와 종속 식민지 (Kolonie Curaçao en onderhorigheden)"에 편입되었다. 19세기 아루바 경제는 금광, 인산염 생산, 알로에 농장 건설 등의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20세기와 21세기[편집]
아루바 최초의 석유 정제소는 1928년 로열 더치 쉘에 의해 세워졌다. 수도 오라녜스타트의 서쪽에 위치하였으며 "독수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곧바로 당시 "라고 석유 운송 회사 (Lago Oil & Transport Co. Ltd.)"가 또다른 정제소를 아루바의 동쪽 끝, 현재의 산 니콜라스 지역에 완공하였다. 이 정제소들은 광활한 베네수엘라의 유전들에서 온 원유를 가공함으로써, 아루바 섬 전체에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 아루바의 정제소들은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1940년, 아루바의 석유 시설들은 런던의 네덜란드 망명 정부의 관리를 받게 되었으나, 1942년 독일 해군에게 공격당하였다.
1947년 8월, 아루바는 네덜란드 왕국 내 자치국으로서의 독립을 위한 첫 스타츠레흐멘츠 (Staatsreglement), 즉 헌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저명한 아루바 정치가인 헤니 에이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1954년, 네덜란드 왕국 헌장이 제정되었고, 이로써 아루바와 왕국 내 나머지 지역 간 관계의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는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를 형성, 카리브해에 있는 모든 네덜란드 식민지를 하나의 행정구조로 통합하였다. 당시 아루바인들은 이 새로운 정부 형태가 퀴라소에게 지배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이러한 조치들에 대해 불만족하였다.
1972년 당시 네덜란드령 기아나 (현 수리남)에서 열린 회의에서 아루바 출신 정치인인 베티코 쿠로즈는 아루바, 네덜란드, 수리남, 그리고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네 개의 주(州)로써 각각의 고유한 국적을 가지는 네덜란드 연방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후 정당을 창당 (Electorale Volksbeweging, 인민 선거 운동), 이를 바탕으로 아루바에게 더 큰 자치권, 더 나아가 독립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1976년 아루바의 국기와 국가(國歌)를 만들어 독립국가로서의 요소를 갖추었다. 1977년 3월, 유엔의 지원 아래 국민투표를 시행하였다; 전체 참여자 중 82%가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택했다. 같은해 쿠로즈가 총파업을 일으키면서 네덜란드 정부에 대한 압력이 가해졌고, 아루바와 네덜란드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쿠로즈는 이후 당시 네달란드 총리였던 요프 덴 아윌을 만나게 되었고, 양측은 헤이그 사회 연구소에서 독립을 대비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동의하였다 (보고서 제목: Aruba en Onafhankelijkheid, achtergronden, modaliteiten, en mogelijkheden; een rapport in eerste aanleg, 아루바와 독립, 배경, 양상, 그리고 기회; 예비 보고서) (1978).
1983년 3월, 아루바는 네덜란드 왕국과 독립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이 합의 이후 네덜란드 왕국이 일련의 단계에 따라 아루바에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1985년 8월, 아루바는 헌법 초안을 작성하였고, 곧바로 만장일치 승인을 받았다. 1986년 1월 1일, 아루바의 첫 의회 선거가 열림에 따라 아루바는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에서 분리, 공식적으로 네덜란드 왕국을 형성하는 국가가 되었고, 1996년에 완전 독립 국가가 되는 것이 예정되었다. 그러나, 쿠로즈가 1985년 교통사고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무의식 상태에 이르렀다; 그는 1986년에 사망, 그가 많은 세월 동안 염원해왔던 아루바의 독립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사망 이후 Libertador di Aruba, 아루바의 해방자로 추대되었다. 그 이후 아루바 인민당 (AVP)의 헤니 에이만이 초대 아루바 총리가 되었다. 한편, 아루바의 석유 정제소가 문을 닫게 되었고, 이는 아루바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후 아루바는 관광산업을 급진적으로 추진하여 이를 아루바의 최대 산업으로 키워냈다.
1990년 당시 아루바 총리였던 넬슨 오두버의 요청으로 조인된 헤이그 협정에서 아루바, 네덜란드, 그리고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의 각 정부들은 아루바의 완전 독립 국가로서의 이행을 연기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아루바의 완전 독립을 예정하는 조항이 1995년 폐지되었으나, 이 조항은 이후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정치[편집]
아루바는 네덜란드, 퀴라소, 그리고 신트마르턴 등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 중 하나이다. 아루바는 기본적으로 자치를 보장받으나, 외교와 국방에 있어서는 네덜란드가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루바의 정치는 21명으로 구성된 의회와 8명으로 구성된 내각의 틀 아래 이루어진다. 아루바 의회의 21명의 의원들은 보통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4년의 임기를 수행한다. 아루바 총독은 네덜란드 왕정에 의해 임명되어 6년의 임기를 수행하며, 아루바의 총리와 부총리는 의회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각각 4년의 임기를 수행해야 한다. 아루바는 지금은 없어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의 일부였으나, 1986년 분리되면서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아루바는 유럽 연합 회원국은 아니지만 해외 영역 (Overseas Countries and Territories, OCT)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유럽 개발 기금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지리[편집]
아루바는 카리브해 남부 소앤틸리스 제도 중에 리워드앤틸리스 제도 안에 위치한 평평하고 강이 없는 섬이다. 아루바는 퀴라소에서 서쪽으로 77 km, 베네수엘라 파라과나반도에서 북쪽으로 29 km 떨어져 있다. 아루바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백사장이 있는데, 비교적 해류로부터 안전하다. 아루바의 대부분의 인구와 관광개발이 이 두 곳에 분포한다. 이에 반면, 아루바의 북해안과 동해안은 바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대부분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루바의 내륙지역에는 언덕들이 분포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후이버그 (165m)와 아루바 최고봉인 자마노타 산 (188m)이다.
아루바 자연 다리는 아루바의 북해안에 위치한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석회석 다리이다. 2005년 붕괴 직전까지 아루바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였다.
주민[편집]
아루바의 인구는 출생국가를 기준으로 아루바, 콜롬비아, 네덜란드,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퀴라소, 아이티, 수리남, 페루, 중국, 그리고 기타국가 출신로 구성되었다.
아루바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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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편집]
- 〈아루바〉, 《위키백과》
소앤틸리스제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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