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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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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그룹(Mitsubishi Group)
미쓰비시그룹(Mitsubishi Group)

미쓰비시그룹(三菱グループ, Mitsubishi Group)은 1870년에 창립된 일본의 복합기업이다. 미쓰비시UFJ은행미쓰비시 상사, 미쓰비시 중공업의 3사가 미쓰비시 그룹의 핵심 기업이다. 재벌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업 연합 중 가장 결속력이 강하다는 의미에서 '조직의 미쓰비시'라고도 불린다. 미쓰이그룹, 스미토모그룹과 함께 일본의 3대 재벌 그룹이다. 대표는 고바야시 켄(小林 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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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미쓰비시그룹은 해운·항공·자동차·금융·전자·중공업·부동산 등 다양한 업종에 진출해 있는 일본대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여러 산업을 위한 혁신적인 제품과 스마트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2년 뒤인 1870년 설립된 이 그룹은 일본 군국주의의 대외 침략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초기에 해운·탄광·조선·제철업을 했기에 미쓰비시는 일본 제국주의의 협력자가 될 수 있었다.[1] 그렇기 때문에 미쓰비시는 대표적인 일본의 극우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군수기업으로 성장했었고, 강제 연행한 조선인의 노동력을 사용했었다.[2] 미쓰비시에서 미쓰(三)는 삼이고, 비시(菱)는 마름모다. 즉 세 개의 마름모라는 뜻이다. 3개의 마름모가 좌우 대칭형으로 삼각형을 이루는 미쓰비시의 로고는 이와사키 가문의 문장을 변형한 것이다.[3] 미쓰비시는 약 130년간 그들이 발 담고 있는 업계 내의 발전과 기업 규모를 확장하는 데 힘쓰고 있다. 미쓰비시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 개발 성과의 결과물, 상표 가치 및 기업 사회에 대한 책임감 등, 여러 전력과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역량을 글로벌하게 발휘하고 있다. 이 같은 미쓰비시만의 차별화된 역량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점차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주축을 이루는 힘이 된다.[4]

주요 인물[편집]

이와사키 야타로[편집]

이와사키 야타로(Iwasaki Yataro)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 1835년 1월 9일 ~ 1885년 2월 7일)는 미쓰비시그룹의 설립자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신분을 팔아넘긴 하급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났다. 도사번의 용달 역부터 시작해 메이지 시대에는 해운업, 무기 거래, 우편 서비스 등으로 큰 부를 쌓았으며, 정경유착으로 독점적 이익을 누려 악명이 높다. 번의 실력자인 요시다 토요와의 인연을 계기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그는 1867년 '가이세이칸 나가사키상회'의 책임자로 발탁됐다. 가이세이칸 나가사키상회는 번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번 직영 상사였다. 나가사키에 책임자로 부임한 야타로는 천부적인 상인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도사번의 특산품 수출과 서양 국가들로부터 함선, 무기 수입으로 부를 늘려나갔다. 1868년 나가사키상회의 폐쇄 결정에 따라 오사카상회로 옮겨 도사번을 위한 무역 업무에 매진했다. 일본은 수백 년에 걸친 봉건 제도의 고립에서 막 벗어나 서방을 따라잡기 위해 질주하던 상황이었다. 회사는 급속한 성장을 거듭해 다양한 제조 및 상업 분야로 뻗어 나갔다. 이와사키 야타로는 막강한 토사 가문의 근거지인 시코쿠섬고치현 출신으로 토사 가문을 위해 일하며 오사카 무역 사업을 경영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1870년, 야타로는 토사 가문으로부터 전세 낸 증기선 3대를 가지고 미쓰비시그룹의 전신이자 선박회사인 쓰쿠모 쇼카이(sukumo Shokai)를 설립했다.[5] 1885년(메이지 18년) 양력 2월 7일 18시 30분 이와사키 야타로는 향년 51세에 위암으로 사망했다.[6][7]

역사[편집]

1870년 12월 이와사키 야타로가 해운회사 쓰쿠모상회를 창업하며 미쓰비시그룹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1872년 미쓰카와 쇼카이(Mitsukawa Shokai)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874년에 미쓰비시 쇼카이(Mitsubishi Shokai)로 바뀌었다. 야타로는 토사 가문의 문양인 3개의 오크 잎사귀와 자신의 가문의 문양인 3개의 겹친 다이아몬드를 결합해 기업의 엠블럼을 채택했다. 이 엠블럼은 회사 이름이 "3개의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Mitsubishi로 지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1874년, 일본군을 대만으로 실어 나를 선박을 기부한 야타로에게 일본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선박 30척을 수여했다. 1875년, 야타로는 정부에서 해체한 우체국의 직원들과 시설을 물려받아 회사 이름을 미쓰비시 메일 스팀십(Mitsubishi Mail Steamship)으로 바꾸었다. 미쓰비시 메일 스팀십은 중국러시아로 운항을 시작하고 해외 항로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1880년대 초, 미쓰비시는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되고 일본 정부에서 경쟁업체의 설립을 후원하면서 뒤이은 경쟁으로 두 회사 모두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정부의 개입으로 일시적인 휴전 상태가 되었으나 1885년 야타로가 죽고 그의 동생 이와사키 야노스케가 승계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불화는 1885년 정부가 중재한 합병으로 끝이 나고, 이때 일본우선(Nippon Yusen)이 창립되었다. 해양 부문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면서 육상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던 미쓰비시그룹은 나가사키의 아키타 및 다카시마 석탄 광산에서 요시오카 동광산을 매입했다. 그리고 1884년, 정부로부터 나가사키의 조선소를 대여해 거기서 일본 최초의 국내 생산 강철 증기선을 제작했다. 미쓰비시그룹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이와사키 야노스케의 독재 체제 하에 사업을 다각화해 나갔다. 야노스케는 미쓰비시그룹을 비롯하여 일본의 성장 중인 산업에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광산을 더 매입하고 회사 이름에서 스팀십(Steamship)을 삭제했다. 그는 또한 1890년 천황 궁전 옆에 있는 습지 80에이커를 약 1백만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에는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았던 투자였으나 현재 야노스케가 투자한 이 땅의 가치는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1893년 야타로의 아들 이와사키 히사야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졸업한 히사야는 점차 다각화되는 사업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미쓰비사그룹을 구조 조정해 은행, 부동산, 마케팅 및 관리뿐 아니라 채광 및 조선 사업을 위한 사업부를 설립했다. 히사야가 개인적으로 투자했던 기업 중 일부는 오늘날의 미쓰비시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고베페이퍼밀(Kobe Paper Mill, 현 미쓰비시페이퍼밀)을 매입하고 기린맥주(Kirin Brewery)의 설립을 지원했다. 히사야의 사촌 토시야는 일본 최초의 성공적인 판유리 제조업체인 아사히글래스(Asahi Glass)를 설립했다. 1916년 이와사키 야노스케의 아들 이와사키 코야타(岩崎小彌太)가 히사야의 뒤를 이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미쓰비시그룹은 한층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경영되기 시작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코야타는 여러 사업부를 반독립적 기업으로 통합하고 기계, 전기 장비 및 화학약품 등의 분야에서 미쓰비시그룹을 선두 기업으로 만들었다. 후에 미쓰비시 중공업이 된 이 기업들은 자동차, 항공기, 탱크버스를 개발했고, 미쓰비시전기(Mitsubishi Electric)는 전기 기계 및 가전 제품 부문의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이와사키 가문은 핵심 지주회사의 주식을 공모하면서 미쓰비시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조금씩 놓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엔 외부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이 반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와사키 코야타는 경영진과 직원들이 전쟁 동안 일본을 휩쓸던 외국인 혐오증에서 벗어나도록 격려했다. 그는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하면 "우리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영국인과 미국인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우리와 관심사를 공유한 친구들입니다. 평화가 다시 온다면 그들도 다시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라며 미쓰비시 경영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재벌 해체 방침에 의해, 1946년 9월 30일 미쓰비시그룹 본사가 해체되면서 미쓰비시 기업들은 더 작은 규모로 분할되었다. 무역 부문은 139개의 회사로 분할되고 미쓰비시중공업은 3개의 지역회사로 나뉘어졌다. 대다수의 미쓰비시 기업들은 미쓰비시라는 사명과 상징을 포기했다. 1950년대 이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 이후 일부 미쓰비시 기업은 자체 재편을 거쳐 대부분 사명과 상징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영 자율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들 기업은 과거 단일 조직으로서보다 훨씬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이와 동시에 공통된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이점을 누리고 있다.[5][8]

계열사[편집]

핵심 계열사[편집]

미쓰비시상사[편집]

미쓰비시상사(三菱商事株式会社, Mitsubishi Corporation)는 미쓰비시그룹의 종합 상사로,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이다. 일본 및 해외 약 90개 국가와 지역에 200개 이상의 거점을 가지고 있으며, 약 1,200개 그룹 회사들과 협력하여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대형 종합상사이다. 천연가스, 종합소재, 석유·화학, 금속자원, 산업인프라, 자동차·모빌리티, 식품산업, 컨슈머산업, 전력솔루션, 복합도시개발의 10개 그룹체제로 폭넓은 산업을 사업영역으로 한다. 무역뿐만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세계의 현장에서 개발 및 생산·제조 등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9] 미쓰이 물산(三井物産), 이토츄상사(伊藤忠商事), 스미토모 상사(住友商事), 마루베니(丸紅)와 함께 일본 5대 상사의 하나이며, 미쓰비시UFJ은행, 미쓰비시중공업과 함께 미쓰비시그룹을 대표하는 회사이다. 다이쇼 시대에 들어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취급하는 품목수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각 상업 부문을 독립시켜, 미쓰비시합자운영부를 기존의 경영 이론인 입업무역 방침을 기본으로 하여 1918년에 종합상사인 미쓰비시상사를 독립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재벌 해체에 의해 그룹이 해산되고 다수의 회사로 분열되었지만 1954년 다시 부활했다. 미쓰비시상사는 전학공투회의가 가장 활발했던 시대에 쓰치다, 닛세키, 피스캔 폭파 사건을 당하는 등 일본 대자본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무역중개를 중심으로 중개료를 비축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2010년부터는 자원개발에 직접투자(천연가스 및 원료), 미쓰비시식품 등을 통한 식량유통 시스템을 구축, 편의점 체인점인 로손을 통한 소비자 마켓 개척 등 유통에서 판매까지의 영역까지 확대하여 자본과 경영 등을 통해 체질변화를 이루어내 수익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10]

미쓰비시중공업[편집]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グループ, Mitsubishi Heavy Industries)은 일본 최대의 중공업 회사이다. 미쓰비시그룹의 사업 중 조선업과 항공업을 합병시켜 미쓰비시중공업으로 출범했다. 일본 제국의 군사력 강화 정책에 따라 무기 개발 생산의 중심회사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마토급 전함 2번함 무사시를 비롯한 주요 군함과 0식 함상전투기 제로센, 각종 전차 및 차량을 생산하는 등 일본 최대의 방위산업체로 부상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재벌해체 정책에 따라 서일본 중공업, 중일본 중공업, 동일본 중공업 3개사로 분할되었으나, 고도 성장기에 다시 통합되어 부활했다. 이후 현대 일본의 중화학, 우주항공, 인프라 산업, 방위산업 등에서 여전히 최대 규모의 핵심 회사로 군림하고 있다.[11] 2008년 90석 규모의 일본 첫 소형 제트 여객기인 '스페이스 제트' 개발 사업에 착수했으나 2023년 2월에 개발을 중단하고 철수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연소시 이산화탄소(CO2)를 발생하지 않은 수소 연료를 사용하는 가스터빈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12] 일제강점기에 1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일본 정부를 통해 한국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심어린 사죄조차 하지 않아 논란 위에 서 있다.[13]

미쓰비시UFJ은행[편집]

미쓰비시UFJ은행(三菱UFJ銀行, MUFG Bank)은 2021년 기준 총 자산 규모가 세계 6위인 일본에서 가장 큰 민간 시중은행이다. 2006년 1월 1일 도쿄미쓰비시은행(BTM)과 UFJ은행(UFJBK)이 합병하여 탄생했다. 미쓰비시상사, 미쓰비시중공업과 더불어 미쓰비시그룹의 기둥으로 꼽힌다. 1996년, 거품경제가 붕괴된 뒤 은행 재편이 한창이던 당시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이 합병하여 '도쿄미쓰비시은행'이 되었고, 2006년에는 UFJ은행과 합병하면서 '미쓰비시도쿄UFJ은행'으로 변경되었다. 2018년에 이름이 너무 길다는 등 민원이 있어 한 차례 더 변경하여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14] 미쓰비시UFJ은행은 여러 은행이 합쳐졌기 때문에 그 기원을 정하기 쉽지 않다. 제일 오래된 것을 기준으로 하면 산와은행의 전신이었던 코우노이케환전점(鴻池両替店)을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코우노이케환전점은 1656년에 오사카에서 영업을 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미쓰비시은행은 미쓰비시의 창업자였던 이와사키 야타로가 1880년 창업했다. 미쓰비시UFJ은행의 업무적인 강점으로는 재생에너지 부문의 파이낸싱, M&A 어드바이저리, 외국환율시장에서의 고객 대응이 있다.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통장이 제공되는 것도 미쓰비시만의 특징이다. 1960년대 초, 미쓰비시 지소가 디즈니 랜드 유치 경쟁을 펼칠 때 힘을 실어주고자 디즈니 프로덕션과 계약을 맺은 이래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다.[15]

기타 핵심 계열사
  • 미쓰비시자동차(Mitsubishi Motors) : 1917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했으며, 1970년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독립한 자동차 제조 회사이다. 대표적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그룹 소속이면서 현대자동차㈜의 성장과 기술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회사이다. 미쓰비시 그룹의 계열 기업이었으나, 2016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면서 사명이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으로 바뀌었다.
  • AGC주식회사(AGC Inc.) : 도쿄에 위치한 일본의 글로벌 유리 제조 기업이다. 세계 최대의 유리 회사로 꼽힌다.[16]
  • 기린맥주(Kirin Company) : 일본 굴지의 주류 회사이다. 일반 기업 이름 표기로, 가타카나로 기린맥주(キリンビール)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17]
  • 미쓰비시전기(Mitsubishi Electric) : 일본의 주요 전자기업 중 하나이다. 1921년 미쓰비시중공업이 고베시 전기모터 공장을 분리시켜 설립했다.[18]
  •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Meiji Yasuda Life) : 일본의 대형 생명보험 회사이다. 메이지(明治)생명과 야스다(安田)생명이 합병하여 설립되었다.[19]
  • 미쓰비시케미컬홀딩스(Mitsubishi Chemical Holdings) : 미쓰비시그룹의 화학 계열 회사이자, 도쿄에 본사를 둔 일본 최대의 종합 화학 기업이다.[20]
  • 미쓰비시지쇼(Mitsubishi Estate) : 일본의 부동산 회사이다. 종합 부동산 개발업자(developer)로써, 매출로는 미쓰이부동산에 이어 업계 2위이다.[21]
  • 미쓰비시머터리얼(Mitsubishi Materials) : 미쓰비시그룹의 주요 비철금속 업체이다. 현재 구리 제련, 시멘트 제조, 금속 가공(자동차 부품 제조 등)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22]
  • 미쓰비시UFJ신탁은행(Mitsubishi UFJ Trust and Banking Corporation) : 2005년 10월에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그룹의 합병과 동시에 발족한 일본의 신탁은행이다.[23]
  • 일본우선(NYK Line: Nippon Yusen Kabushiki Kaisha) : 일본의 3대 해운회사의 하나로, 미쓰비시 상사와 함께 미쓰비시 재벌의 원류 기업이다.[24]
  •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Tokio Marine Holdings) : 1879년에 설립된 일본을 대표하는 보험사이다. 일본 손해보험 업계 최고의 매출액과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25]

기타 계열사[편집]

  • 에네오스 홀딩스(ENEOS Holdings) : 2010년 4월 1일에 설립된 일본의 석유화학 회사이다. 일본 내 최대, 세계 6위 규모의 석유회사이다.[26]
  • 미쓰비시후소(Mitsubishi FUSO Truck & Bus Corp.) : 버스트럭 메이커이자 일본의 자동차 제조 기업의 하나다. 1932년 미쓰비시조선의 고베조선소에서 일본 최초로 대형 자동차인 트럭과 버스, 디젤 엔진을 생산하여 전 세계에 생산망과 판매망을 갖추고 있다. 2003년에 미쓰비시자동차의 대형 상용차 부문이 분사해 설립했다.
  • 미쓰비시로지스틱스(Mitsubishi Logistics) : 130년의 전통의 일본 최대 규모의 창고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창고 업계의 선두주자이다. 특히 의약품 및 화학 물질 취급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27]
  • 미쓰비시제지(Mitsubishi Paper Mills) : 종이 및 도공지, 정보기록용지, 감광 재료를 주로 생산하는 제지 회사이다. 현재는 감광재료 기술을 토대로 하여 전자, 의료 등의 신규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28]
  • 미쓰비시플라스틱(Mitsubishi Plastics) : 미쓰비시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일본의 화학소재 전문업체이다.
  • 미쓰비시레이온(Mitsubishi Rayon) : 화학 물질, 플라스틱 및 섬유를 제조하는 일본의 섬유 회사이다. 일본 최대의 아크릴 섬유 메이커이다. 2010년에 미쓰비시케미컬홀딩스의 전액 출자 자회사가 되었다.[29]
  • 미쓰비시종합연구소(Mitsubishi Research Institute) : 1970년 주식회사의 형태로 출발하여 현재 1,000여 명의 사원과 3개의 해외지사(워싱턴, 런던, 홍콩)를 보유한 일본의 대표적인 종합연구소이다. 미쓰비시 종합연구소의 업무활동은 크게 두 부문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기업과 정부 부문 관련 컨설팅과 조사·연구, 시스템 개발이다. 두 번째 영역은 데이터 및 정보제공 서비스 영역이다. 미쓰비시 연구소는 자체적 데이터베이스와 함께 미국정부에서 제공하는 NTIS를 통해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복잡한 테이터처리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30]
  • 미쓰비시신도(Mitsubishi Shindoh) : 구리 제품을 제조 및 유통하는 주식회사이다. 구리, 구리 합금, 긴 구리 및 기타 제품을 생산한다.
  • 미쓰비시제강(Mitsubishi Steel Manufacturing) : 일본에서 특수강을 제조하는 대표적인 회사이다. 건설기계, 산업기계,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 대응하는 탄소강, 저합금강, 스프링강 등의 특수강을 생산하고 있으며, 정밀기계 가공품이나 고기능특수재료가공품 등에 쓰이는 소형재 산업도 전개 중이다.[31]
  •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itsubishi UFJ Securities) : 일본의 주요 금융지주회사이다. 약칭은 상호의 영문기호의 앞글자를 따 MUFG라고 한다. 주식시장에서의 상장명을 미쓰비시 UFJ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미쓰비시UFJ은행, 미쓰비시UFJ신탁은행, 미쓰비시UFJ신탁홀딩스, 미쓰비시UFJ리스, 미쓰비시UFJ니코스 등의 주요 5개사를 중심으로 한다.[32]
  • 니콘(Nikon) : 1917년 미쓰비시 4대 사장인 이와사키 코야타가 출자해 만든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가 전신이다. 1946년 소형카메라 명칭을 '니콘'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때 제품 명칭이 현재의 기업명이 됐다.[8] 주요 제품으로는 카메라, 렌즈, 쌍안경, 현미경, 계측기, 반도체 노광 장비 등이 있다.[33]
  • 미쓰비시건설(P.S. Mitsubishi Construction) : 1952년 설립된 콘크리트 기술 분야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건설 공사를 전개하는 기업이다. 일본 내 건설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34]
  • 로손(Lawson) : 일본의 편의점 체인점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쿠야호가 폴스에서 처음으로 점포를 열었으나, 2001년부터 다이에한테서 미쓰비시상사가 인수해 2017년부터 미쓰비시그룹의 소속 기업이 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세븐일레븐 다음으로 규모가 큰 편의점 체인이다. 본사는 도쿄도 시나가와구 오사키에 위치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89년 태인유통을 통해 들어왔으나, 1995년에 코오롱그룹이 인수하였다. 이후 1999년 대한민국에서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롯데그룹 계열의 코리아세븐에 인수되어 대한민국에는 로손 점포가 소멸되었다.[35][36]

한국 지사[편집]

미쓰비시그룹은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법인을 설립해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미쓰비시상사(일본 미쓰비시상사 지분 100%),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일본 미쓰비시전기 지분 54%·미쓰비시전기빌딩테크노서비스 지분 26%·미쓰비시주식회사 지분 20%), 한국미쓰비시전기(일본 미쓰비시전기 지분 100%) 등이 대표적이다. 니콘기린맥주도 한국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니콘이미징코리아(니콘 지분 100%), 니콘프레시전코리아(일본 니콘 지분 100%), 한국쿄와기린(일본 쿄와하코기린 지분 100%)이 있다.[8]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인을 고용하는 등 한국에 경제적 이득을 주기도 하지만, 일본 모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므로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은 대부분 일본 모회사로 직행된다.[37]

특징[편집]

금요회[편집]

금요회는 1952년 사장간담회로 발족되어, 미쓰비시그룹 주요 27개 계열사 대표들이 매월 2번째 금요일에 모이는 자리이다. 중공업과 상사 등 핵심 계열사를 중심으로 강력한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8] 미쓰비시그룹이 '조직의 미쓰비시'로 불릴 정도의 결속력이 이 금요회에서 나온다. 금요회는 사실상 미쓰비시그룹을 총 지휘하는 최고의사결정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금요회의 대표는 상사·중공업·은행의 대표가 순번으로 맡는 것이 관례이다. 미쓰비시그룹은 금요회를 단순한 친목 모임이며, 금요회는 경영과 무관하다면서도 구체적인 질문에는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그룹 각사의 경영에 직접 간섭하는 강제력은 없으나, 단순히 친목단체로 보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왜냐하면 다른 그룹의 사장단 회의와는 달리 상설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수십 명의 그룹 내 엘리트 직원들이 사무국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요회 전반의 총괄은 금요회 사무국장이 관장한다. 그리고 사무국장 밑에는 몇 개의 핵심 조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월요회'이다. 매달 3번째 월요일에 열리며 각사의 총무부장들이 참석한다. 금요회 결정사항에 대한 검토, 금요회 자문에 대한 답신 등을 토의하는 곳으로, 그룹 각사의 엘리트들이 모인 실무부대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조직은 매달 첫 번째 금요일에 열리는 '미쓰비시상표검토회의'가 있으며, 각사의 법무·재무·특허 관련 업무 부장들이 출석한다. 이들 위원회의 운영은 미쓰비시라는 사명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지불하는 상납금으로 조달한다.[39]

논란[편집]

강제징용[편집]

미쓰비시그룹은 일제 강점기 시대, 당시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노역을 하게 했다. 하시마섬(군함도) 등에서 비인간적인 대우와 급여 체불을 일삼았다. 당시 미쓰비시그룹이 주로 생산했던 제품은 가미카제 폭격에 쓰였던 제로센 전투기, 일본군의 잠수함을 비롯한 군용 장비와 군수품들이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일본인들로 구성된 인권단체가 가담하여 미쓰비시와 법정싸움을 벌였다.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일본이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 및 피해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하여 일본에서의 판결은 패소 확정되었다. 미쓰비시는 제2차 대전 당시 강제 노동에 징용됐던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포로와 가족들에게만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한국에만 강제징용을 했던 피해자들에게는 단 한마디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소송은 일부 승소하였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라는 전제에서 이러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구 미쓰비시그룹이 일본법에 따라 해산되는 등의 절차를 거쳤다고 할지라도, 원고들은 구 미쓰비시그룹에 대한 이 사건 청구권을 현 미쓰비시그룹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2]

각주[편집]

  1. 김종성 기자, 〈당신 옆엔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020-08-21
  2. 2.0 2.1 김흥길, 〈(김흥길의 경제이야기) 대표적 전범 기업 미쓰비시 그룹〉, 《경남일보》, 2019-08-25
  3. 임재현 기자, 〈미쓰비시의 두 얼굴〉, 《아이오토카》, 2015-09-25
  4. ☆wjdgodls☆, 〈미쓰비시의 역사, 전망 그리고 CEO〉, 《티스토리》, 2023-04-18
  5. 5.0 5.1 Mitsubishi 그룹 연혁〉, 《미쓰비시전기 공식 홈페이지》
  6. 이와사키 야타로〉, 《위키백과》
  7. 최인한 국장, 〈(인포그래픽)일본의 재벌(2) 일본 재벌 원조, 미쓰비시그룹의 탄생〉, 《한국경제》, 2014-06-05
  8. 8.0 8.1 8.2 김보라 기자, 이돈섭 기자, 〈(전범기업 팩트체크)②강제동원 대명사 '미쓰비시'〉, 《비즈와치》, 2019-09-23
  9. MITSUBISHI CORPORATION WITH KOREA〉, 《미쓰비시상사》
  10. 미쓰비시상사〉, 《위키백과》
  11. 미쓰비시 중공업〉, 《나무위키》
  12. 성호철 기자, 〈9조원 투입 日 ‘제트여객기 프로젝트’ 실패... 미쓰비시 사업 철수〉, 《조선일보》, 2023-02-07
  13. 이꽃님 기자, 〈(이슈)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 5년간 국민연금 5조 6천억 유용〉, 《종합시사매거진》, 2019-09-04
  14. 이춘규 기자, 〈日최대 미쓰비시도쿄UFJ은행 명칭서 '도쿄' 뺀다〉, 《연합뉴스》, 2017-05-15
  15. 시원스쿨 일본어, 〈[일본의 3대 메가뱅크 소개 上 - 메가뱅크의 정의와 미쓰비시UFJ은행]〉, 《네이버 블로그》, 2021-04-11
  16. AGC주식회사〉, 《위키백과》
  17. 기린 맥주〉, 《위키백과》
  18. 미쓰비시 전기〉, 《위키백과》
  19. 서윤석 기자, 〈메이지야스다생명 공식 출범〉, 《보험신보》, 2004-01-12
  20. EXㅣDB, 〈(일본 기업) 미쓰비시 케미컬 홀딩스(三菱ケミカルホールディングス, Mitsubishi Chemical Holdings Corp.)〉, 《티스토리》
  21. 미쓰비시지쇼〉, 《위키백과》
  22. EXㅣDB, 〈(일본 기업) 미쓰비시 마테리얼(三菱マテリアル, Mitsubishi Materials Corp.)〉, 《티스토리》
  23. 미쓰비시UFJ신탁은행〉, 《위키백과》
  24. 일본우선〉, 《위키백과》
  25. 도쿄해상홀딩스〉, 《나무위키》
  26. ENEOS〉, 《나무위키》
  27. EXㅣDB, 〈(일본 기업) 미쓰비시 창고(三菱倉庫, Mitsubishi Logistics Corp.)〉, 《티스토리》
  28. 인쇄연구소, 〈일본-미쓰비시제지(주) (http://www.web.infoweb.ne.jp)〉, 《다음카페》, 2011-11-02
  29. Mitsubishi Rayon〉, 《Wikipedia》
  30. 김태연 기자, 〈(미쓰비시종합연은 어떤 곳인가) 일본정부.기업 이끄는 최고〉, 《매일경제》, 1998-03-04
  31. 도쿄무역관 리겐타, 〈일본의 특수강 업계 현황〉, 《코트라》, 2022-06-22
  32. 미쓰비시UFJ파이낸셜 그룹〉, 《위키백과》
  33. 니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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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미쓰비시 그룹〉,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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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김보라 기자, 〈한국에서 돈 벌어 주머니 채우는 '전범기업'〉, 《비즈와치》, 2019-08-05
  38. 이윤석 기자, 〈미쓰비시 계열사 수장들의 '금요회'…"재벌 해체 이후에도 그룹으로 존재"〉, 《네이트뉴스》, 2021-05-11
  39. 이우광, 〈탄탄한 조직력의 대명사 미쓰비시 '그룹 핵심' 자동차, 지원 포기한 까닭은?〉, 《동아비즈니스리뷰》, 2016-09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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