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노키아(Nokia, 영어: Nokia Corporation, 핀란드어: Nokia Osakeyhtiö 노키아 오사퀴흐퇴)는 핀란드에 본사를 둔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 솔루션 회사이다. 1865년에 설립되었으며, 초창기에는 종이를 만드는 제지 회사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후 케이블 회사와 고무 회사의 흡수 합병을 통하여 전자 회사로의 변신을 꾀하였고, 현재는 통신 시스템을 개발, 제조, 판매, 무역, 디지털 휴대전화 네트워크 공급 등을 하고 있다. 현 노키아 CEO는 라지브 수리(힌디어: राजीव सूरी, 1967년 10월 10일~)이다. [1]
개요[편집]
노키아는 핀란드의 통신장비 제조 기업이다. 회사 이름은 설립 당시 본사가 위치했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마을은 탐페레 근교에 있다. 시류에 따라 주력 사업을 자주 변경해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모토로라를 꺾고 전 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핀란드 내에서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몇 안되는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 폭풍처럼 몰아닥친 스마트폰 열풍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매출과 점유율이 폭락하였고, 결국 휴대전화 사업부를 MS에 매각하며 한때 부동의 1위를 수성하던 모바일 시장에서 퇴출되게 되었다. 이 과정이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노키아 휴대폰 사업의 실패는 '1등이라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면 결국 망하게 된다'(코닥)와 '영원한 1등은 없다'라는 교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노키아가 MS에 매각한 휴대전화 사업부분은 Windows Phone의 거듭된 실패 끝에 사실상 해체되었다. 다만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제외한 노키아 자체는, 과거에 쌓은 기술력을 발판삼아 B2B 통신장비 제조로 주력 업종을 변경하여 건재하고 있다.[2]
역사[편집]
노키아는 1998년부터 13년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핀란드의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휴대전화 사업부를 매각한 후 네트워크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1865년 광산 기사 출신 프레드리크 이데스탐(Fredrik Idestam)이 핀란드 남서부의 탐페레에 세운 작은 펄프공장을 모태로 한다. 3년 후 프레드리크는 탐페레에서 약 15㎞ 떨어진 노키아강(Nokianvirta) 언덕에 두 번째 공장을 세웠고, 1871년 강의 이름을 따 회사 명칭을 노키아(Nokia Ab)로 정했다. 1902년에는 발전업(發電業)도 함께 운영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10년대 말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르렀고, 결국 핀란드고무회사(Finnish Rubber Works)에 전력공급업체로 인수되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핀란드고무회사는 1898년 설립된 회사로 고무장화, 타이어 등을 제조했으며 노키아를 자사 관리 하에 둔 후부터 생산품에 노키아 상표를 부착해 판매했다.
1922년 핀란드고무회사는 핀란드전선회사(Finnish Cable Works Ltd; 1912년 설립, 전화·전선 제조)도 인수해 사업을 확장했다. 핀란드전선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에 케이블 공급자가 되면서 향후 전개된 사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1967년 노키아(Nokia Ab), 핀란드고무회사, 핀란드전선회사는 합병되어 노키아(Nokia Corporation)로 공식 출범하였다. 그 후 제지, 타이어, 신발, 케이블, TV 등 가전, PC, 전력, 로봇, 콘덴서, 군(軍) 통신장비, 플라스틱, 알루미늄,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1960년 무선전송장비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핀란드전선회사에 전자기술 부서를 설치하면서부터 통신장비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유선뿐 아니라 무선 네트워크의 기반 스위치로 활용되는 디지털스위치 DX200을 개발하고, 1982년 세계 최초의 카폰을 출시하였으며, 1984년 휴대용 전화를 선보였다. 1992년에는 유럽의 디지털 이동통신 표준으로 제시된 GSM 방식을 채택한 휴대전화를 출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영악화로 도산 위기에 직면했고, 1992년 CEO로 취임한 요르마 올릴라(Jorma Ollila)는 고무, 제지, 케이블, 가전 등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통신분야에만 집중하는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고, 핀란드의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해 핀란드의 국민기업으로 불렸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매출액은 핀란드 국내총생산의 20%에 달했고, 1998~2007년의 수출액 중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에 이르렀다.
한때 40%를 웃도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면서 2011년까지 13년 동안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의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바일 시장의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데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개발이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아 결국 2013년 9월 휴대전화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매각했다.
2014년 4월 조직을 네트웍스 사업부(통신장비 사업), 히어(HERE) 사업부(지능형 위치 기반 서비스), 테크놀로지 사업부(기술개발과 라이센스 사업)로 개편하고, 네트워크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성했다.
한국 지사로 노키아코리아가 있다. 2014년 마산에 있던 (주)노키아TMC는 문을 닫았다. 노키아TMC는 1984년 9월 마산자유무역지역에 문을 열고 노키아 휴대전화 단말기를 생산했다. 당시 미국 탠디(Tandy)와 노키아가 공동으로 투자했다. 1993년 노키아가 탠디 지분을 양도받으면서 100% 지분을 소유했다. 노키아TMC는 인수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폐업 절차를 밟았다.[3][4]
한국과의 관계[편집]
한국 시장에 진출을 못 하고 있다가 2001년 폴더폰 두 모델과 바폰을 한국내 휴대폰 제조회사인 텔슨전자에 ODM 방식으로 출시를 했지만 국내업체의 견제와 뒤떨어진 기능과 잔고장 그리고 잦은 버그 때문에 신통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노키아가 주로 먹고 있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시장은 GSM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노키아의 단말기 라인업 역시 이 쪽으로 특화되어 있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세계구 규모로 치면 듣보잡인 CDMA를 사용하고 있으니 노키아 입장에서는 별도로 CDMA 단말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즉, 돈들여서 CDMA 단말기 만들어봤자 한국과 미국 일부시장 외에는 팔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노키아는 GSM의 개발에 깊숙이 관여했기에 GSM의 경쟁 상대인 CDMA용 단말기 제작 및 판매에 적극적일 리가 없었다. 결국 텔슨전자에 하청을 맡기고 마땅한 A/S센터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한국시장에서 망하게 된 주 이유였다. 결국 제품과 사후 서비스 모두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LG전자그리고 연구소까지 차려 잘나갔던 모토로라와 합작 형태로 진출한 카시오&히타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철수해 버렸다. 그리고 "외산이라고 좋은 거 아님, 요즘은 오히려 국산과 모토로라, 카시오&히타치가 넘사벽임"이라는 이미지만 심어주었다.
그 뒤로 이동통신 시장이 유럽과 동일한 방식인 WCDMA로 흘러가면서 한국내에서 계속해서 노키아 폰 출시 떡밥이 나돌기 시작하지만, 역시나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한국 정부의 WIPI 탑재 의무화 장벽 탓에 결국 진출을 포기했다. 출시가 안되던 중, 정부가 WIPI 탑재 의무화를 해제하면서 2009년 4월에 6210s "내비게이터"를 KTF를 통해 출시하면서 한국시장에 재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 법 때문에 간판기능인 내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하기 위한 한국 지도가 빠진 채로 출시. 해외로 들고 나가거나 (크랙된)가민맵을 이용하면 길 안내용으로 쓸 수 있다. 노키아가 위치정보사업자 인증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으나 한국내서비스는 무산되었다.
심비안 기반의 스마트폰이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원래는 KTF 외에 SKT로도 납품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SKT가 블랙베리 볼드를 내놓으면서 노키아 제품 출시를 포기하는 바람에 무산. 하지만 6210s 자체는 실패한 모델로는 볼 수 없는 게, 노키아가 한국내에 내놓은 물량 4만 5천대를 전부 팔아치웠다. 물론 대부분 버스폰으로 나간 것이기는 하지만 노키아는 출고가는 제대로 받고 내놨으니 손해는 보지 않은 셈이었다. 이후로 5800 익스프레스 뮤직을 출시, '가난한 자의 아이폰'이라는 별명과 함께 10만대 가량 판매하였으며 2010년 5월 25일 X6을 출시했다. N8은 SKT, KT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SKT는 소식이 없고 KT같은 경우 '노키아 코리아'에서 물량 공급을 2011년 4월쯤 되어야지 가능하다고 하는 바람에 KT에서 '시장성이 없다'라고 판단하여 출시가 취소되었다.
이로 인해 N8출시와 함께 오픈되기로 했던 노키아의 무료 내비게이션 시스템인 '오비맵', 노키아의 앱 스토어인 '오비스토어'의 오픈역시 무산되었다. 루미아 710 KT를 통해서 출시한다는 기사가 나왔다.그 이후 2013년도까지 단 한대의 루미아도 추가 출시 하지 않았다. 2013년 4월 피처폰 아샤(asha)를 한국내 자급제 용이나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용으로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기사 인터넷이 가능하고 일부 EA게임도 되고 페이스북, 트위터를 사용할수 있다. 게다가 라인(메신저), 와츠앱을 사용할수 있다. 가격은 해외에서는 약 10만원 초반으로 알려저 있다. 본격 편의점폰! 출시가 확정되면 프리피아 2nd가 경쟁력에서 밀려서 끝날 것으로 보이나 노키아가 한국 내 출시를 조용히 포기했다.
2015년 기준, 현재 대치동 오토웨이타워에 노키아 한국지사가 남아있으나 노키아 한국어 지원 페이지로 접속하면 글로벌 페이지로 연결되는 것과 KT테크 AS센터에서 더이상 노키아 수리용 부품이 공급되지 않는다고 밝힌 정황상, 노키아 TMC를 포함해서 노키아 코리아는 현재 Customer Care 부문을 정리하면서 소비자용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NSN B2B Support와 위치정보사업자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부서만 남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LG U+ 2.6Ghz LTE용으로 화웨이제 장비 대신 들어온 NSN제 장비도 이곳에서 유지보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노키아가 뜬금없게도 한국에 R&D센터를 열었다. 이미 준비 단계에서부터 국내의 관련 연구단체들과 협력하면서 적극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통신기기 제조사로서의 노키아는 한국 시장을 완벽히 포기하진 않은듯하다. 기사 마지막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U+와의 관계 역시 확인사살이나 다름없다.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볼 일이다.
2015년 8월 24일에는 공정위가 MS 한국 법인의 노키아 단말기 부문 인수를 조건을 달아 최종 승인했다. 인수 공식 발표 이후에도 단말기 국내 출시 소식이 없었던 이유 중에 이런 것도 있었던 듯. 그러나 2016년 1월까지도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휴대폰을 포함해서 자사 Mobile Device의 한국 내 출시 관련 보도자료를 단 한 건도 내지 않은 상태다. 이는 2014년 7월 이후의 통신 3사 완전 호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전파인증의 강화로 인해서 VoLTE를 지원하지 않는 외산 폰들의 한국 정식 발매가 불가능해지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이 오로지 한국만을 위해서 Windows 10에서 VoLTE를 지원하게 만들 의지는 없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다른 해외의 디바이스 제조업체도 같은 사정인데 2016년 1월 현재, Lenovo의 레노버 PHAB Plus는 이 문제로 인해서 한국에 발매되었다가 다시 발매가 취소되었고 소니의 엑스페리아 Z5도 한국 발매 계획이 있었으나 이 문제로 인해서 발매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2]
휴대전화 사업부문[편집]
휴대전화 산업에 뛰어들어서 2011년까지는 휴대전화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이 1위였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모바일 중심으로 흘러가는 휴대전화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내주었으며 애플과 LG전자에 추격당하던 중에 설상가상으로, 점유율이 종래의 40%대에서 23%까지 떨어졌으며, 영업 이익이 2009년 3분기 기준 4억 2,60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하고 매출이 1조 유로 아래로 내려갔다.
2013년 9월 2일에 결국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에 54억 4,000만 유로(약 7조 8,654억 원)에 매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스티븐 엘롭 CEO가 마이크로소프트로 복귀하기로 하고, 리스토 실라스마 회장이 CEO로 취임하게 되었다. 해당 사업부는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로 이전되었다.[1]
위성지도 사업부문[편집]
자회사 히어맵은 2015년 독일의 아우디, BMW, 다임러 AG 자동차 3사 컨소시움에 약 3조 5천 800억 원으로 매각하였다.
무선 네트워크[편집]
자회사이자 합자회사인 통신 네트워크 회사인 노키아 지멘스 네트웍스의 지멘스 지분을 인수 인계해 노키아 네트웍스를 완전히 소유하게 된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부문과 위성지도 사업부문을 매각한 자금을 기반으로 2016년 알카텔-루슨트를 흡수 합병하였다. 노키아는 이로써 2018년 기준 화웨이 및 에릭슨과 함께 통신 장비 및 무선 네트워크 시장의 세계 3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1]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노키아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nokia.com/
- 〈노키아〉, 《위키백과》
- 〈노키아〉, 《나무위키》
- 〈노키아〉, 《두산백과》
- 〈노키아〉,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기업》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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