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농구(籠球, basketball)는 다섯 사람씩 두 편으로 나뉘어, 상대편의 바스켓에 공을 던져 넣어 얻은 점수의 많음을 겨루는 경기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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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농구는 공중에 매단 바스켓(골대)에 공을 던져 넣어 득점을 경쟁하는 스포츠로, 한국에는 1902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Gillette, P.L)에 의해 소개되었다.
1891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국제 YMCA 체육학교(후에 스프링필드대학교) 캐나다 출신의 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가 겨울 실내 스포츠로 창안하였다. 처음에는 두 팀의 경기자 수가 일정하지 않았으나 1895년에 1팀은 5명으로 구성하기로 하고 1897년에 명문화되었고, 1896년 최초의 공식 경기규칙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초기에는 코트의 형태도 불규칙하였으나 1903년 코트의 라인은 모두 직선이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1905년 미국 서부 대학 바스켓볼협회가 생겼고, 1915년에는 YMCA · 미국체육협회 · 미국대학연맹이 협동하여 농구의 정상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농구의 전파는 YMCA를 통해 캐나다 · 남아메리카 · 일본 · 필리핀 · 한국 ·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비롯하여 유럽에서도 독일 · 불가리아 · 폴란드 · 프랑스 ·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보급되었다. 농구의 인기와 붐이 급격하게 고조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이다.
농구 경기는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1회 올림픽경기대회 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52년의 제15회 올림픽경기대회까지는 미국의 규정에 따라 경기를 진행하였으나, 이후부터는 국제아마추어농구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 Basketball Amateur:FIBA)의 규정에 따라 치러지고 있다.
세계대회 규모의 국제경기는 각국 대표들로 구성된 FIBA가 주관하고,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유럽 · 아시아 · 아프리카 · 남북 아메리카주의 각 지역에서 예선을 거친 대표팀이 출전하여 대전한다.
한편, 프로농구는 1898년 미국 뉴저지 주 트렌튼 팀이 생겼으며, 같은 해에 이미 미국에서는 리그전을 벌일 만큼 몇몇 프로팀이 신설되었다. 이후 프로팀의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프로농구는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2]
역사[편집]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학교에서 근무하던 캐나다인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YMCA 체육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칠만한 실내운동을 고안하던 중, '지상에서 10 피트 정도 떨어진 바구니에 공을 넣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겨울 스포츠의 필요성과 속도감, 그리고 실내라는 한계성을 고려해서 13개의 기본 조항을 제정한 후, 처음으로 농구 경기를 창안하였다. 지금 보면 다소 의아할 수 있지만, 처음 의도는 미식축구와 달리 몸싸움이 없는 안전한 스포츠를 만들고 싶어서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강력한 몸싸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농구를 보면 '이게 뭔 소리야?' 싶겠지만, 애초에 오늘날 농구도 미식 축구의 그것보단 훨씬 안전한건 사실이고, 네이스미스 박사가 처음 농구를 고안할 땐 이것보다도 안전하게 선수들 간의 과도한 신체 접촉을 배제하는 스포츠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농구가 생긴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과격한 몸싸움은 자연스럽게 용인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복숭아 바구니를 매달아서 공을 던져 넣는 경기로 만들었는데, 초창기엔 득점을 하면 바구니에서 공을 빼야 했기에 경기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도중 집에서 쓰다가 낡은 바구니에 공을 던졌더니 바구니 밑이 뚫려 경기가 끊기지 않고 바로 진행될 수 있어서 지금과 같은 골대가 창안되었다고 한다. 이 시범 경기를 본 체육학교 고위부들도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이 스포츠 이름을 창안자 이름을 따서 네이스미스 볼로 지으려고 했으나, 네이스미스가 거절하면서 결국 직관적인 바스켓볼이란 이름이 되었다. 한국에서 지칭하는 농구(籠球)라는 이름 역시 이 바스켓볼을 직역한 말이다. 최초의 농구 경기는 1892년 1월 20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스프링필드 대학교에서 열렸다. 농구는 1891년 12월에 고안됐지만, 규칙 발표랑 공식 경기는 이듬해인 1892년에 이루어진 것이다.
농구공은 1894년에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농구공을 처음 개발한 곳은 미국의 스팔딩이었는데 여기서 골대도 만들었다. 하지만 1890년대 골대는 매우 불편했다. 링(공을 넣는 둥근 부분)에 손잡이가 달려서 당겨야지 밑이 열리며 공이 떨어지는 구조였다. 경기 도중 골이 들어가면 심판이 경기를 멈추고 이걸 당겨서 림에서 공을 빼내 경기를 이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걸 본 네이스미스는 "이건 그냥 바구니에 공을 넣고 빼내는 거랑 다른 게 뭐냐?"라고 했고, 결국 이 림은 오래가지 않아 파기되고, 밑에 구멍이 뚫린 지금의 골대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출전 선수 제한이 없어서 양 팀에서 무려 20여 명이 다 나와 한 경기에 50여명 선수가 몰려들어 경기가 이뤄지기도 했기 때문에 아예 팀별로 코트를 양분해서 가드는 자기 코트에서 수비만 하고, 포워드는 상대 팀의 코트에서 공격만 했으며 중앙에 있다가 양쪽 모두를 오갈 수 있는 포지션으로 센터를 두기도 하였다. 중앙선을 기준으로 뒤쪽에 있는 가드들을 백코트, 앞에 있는 포워드와 센터를 프런트코트라고 불렀으며 이게 현재까지도 선수들을 포지션으로 나누는 용어로 사용된다. 어느 한 번은 이긴 팀이 거둔 점수가 1:0이었다. 지금처럼 100점대 점수가 나오는 농구에 익숙한 이들이 봤더라면 참 답답한 경기 구성이었을 듯하다.
초기 농구 발전에 있어 큰 기여를 한 집단 중 하나가 미국 유대인 사회였다. 유대인들은 밖에서 활동하는 운동 같은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혈기왕성한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실내에서 여러 명이 땀을 흘리고 구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고, 덕분에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농구 = 유대인' 비슷하게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예 당시 농구선수의 70%를 유대인이 이룰 정도였다.
이 당시 유대인 외 미국 사회에선 야구나 미식축구 등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차츰 다른 사람들도 농구의 매력에 빠져들었으며, 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아마추어 농구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덕분에 60년대만 해도 백인층이 더 많이 하던 스포츠였으나, 지금은 흑인들이 주로 하는 스포츠라고 인식될 정도로 흑인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유태인이 주류인 이스라엘에서 축구를 능가하는 구기 종목으로 인기를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 유태인 중에선 처음으로 2000년대 후반 옴리 카스피가 NBA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NBA 후원사 중 하나인 시온스 은행을 비롯한 유태인 자본력 투자도 엄청난 종목이다. 유대계 자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지만 애초에 농구라는 운동을 보급하고 프로 농구를 키운 것이 미국 유대계 사회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유태인들의 농구에 관한 관심과 투자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다 보니 NBA 간부 중에도 유대인이 많아서 전 NBA 총재 데이비드 스턴이나 2014년 총재가 된 아담 실버도 유대인이다.
1932년에는 국제농구연맹이 결성, 전 세계에 통일된 농구 규칙을 전파하였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여자 종목이 채택되었다. 또한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때부터는 프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여자 농구의 경우에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이며, 매사추세츠의 스미스 여자대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던 센다 베런슨이 네이스미스가 농구를 만든 다음해인 1892년 농구 규칙을 조금 더 부드럽게 수정하여 여학생들에게 전파했고 이게 인기를 끌면서 여자 농구도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농구의 발명자인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1959년, 여자 농구를 전파한 센다 베런슨은 1985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때는 FIBA 회원국이 FIFA 가입국보다 많았던 적도 있었으며, 다른 스포츠와 달리 경기 규칙을 자주 개정하여 보다 흥미로운 스포츠로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3]
기본기와 전술[편집]
기본기[편집]
- 캐치는 농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로, 공의 방향으로 두 손을 내밀어 잡는 순간 끌어당기는 동작으로 공을 잡아야 한다.
- 패스는 2명 이상의 경기자가 공을 주고 받으며 상대편을 혼란시켜 득점 기회를 노리는 기술이다. 체스트 패스는 패스한 발을 내딛으며 공을 가슴 앞에서 마루와 평형이 되도록 밀어 던진다. 언더핸드 패스는 상대가 접근했을 때, 한 발을 옆으로 옮기면서 허리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듯이 던진다. 오버헤드 패스는 공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한 발을 옆으로 내디디면서 손목의 반동 이용하여 던진다. 숄더 패스는 공을 어깨 위에서 한 손으로 던지는데, 회전시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바운드 패스는 공을 땅 위에 바운드시켜 던져 보낸다. 훅 패스는 한 발로 점프하여 공을 몸 옆에서 들어 머리 위로 옮겨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반원을 그리듯이 던진다.
- 드리블은 공을 바닥에 튀기면서 위치를 변화시켜, 혼자서 경기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패스나 슛이 불가능할 때 주로 실시한다. 높은 드리블은 빠른 공격을 위한 드리블로 스피드가 필요할 때 쓰인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굽히고 손가락을 벌려, 달리면서 드리블한다. 낮은 드리블은 수비자가 공을 빼앗으려 할 때, 또는 밀집된 지역 안에서 공을 안전하게 몰고 갈 때 하는 드리블이다.
- 슛은 드리블이나 패스 이후에 바로 득점과 연결시키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세트 슛은 몸의 동작을 정지한 채 실시하는 슛이다. 먼 거리에서 두 손으로 하는 '체스트 슛'과 가까운 거리에서 한 손으로 하는 '원핸드 슛'이 있다. 점프 슛은 상대편의 수비를 피하여 높이 뛰어올라 실시하는 슛이다. 러닝 슛은 밀집된 수비 지역을 뚫고 들어가거나, 속공으로 달리면서 한 발로 뛰어올라 실시하는 슛이다. 리바운드 슛은 공이 바스켓에 맞고 되돌아나오는 것을 잡아 다시 실시하는 슛이다. 탭 슛은 손가락 끝으로 퉁겨서 실시하는 슛이다. 레이업 슛은 한 발로 점프했을 때, 반대쪽 손으로 공을 밑에서 받쳐 들고 팔을 완전히 편 자세에서, 몸이 가장 높은 위치에 도달했을 때 바스켓에 밀어넣듯이 실시하는 슛이다. 덩크 슛은 높이 뛰어올라 공을 바스켓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리꽂듯이 실시하는 슛이다.
- 풋워크는 발을 놀리는 기술이다. 농구 경기는 진행속도와 공의 이동이 빠른 경기이기 때문에, 빠른 동작과 세밀한 기교가 요구된다. 스타트와 정지는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으로, 항상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순간적으로 빠른 스타트와 정지, 또는 방향 전환을 해야한다. 피벗은 한쪽 발 앞부분을 마루에서 떼지 않고 축으로 하여 방향을 전환하는 공격자의 풋워크, 사이드 스텝은 패스를 하거나 드리블로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좌우로 이동하며 공격자의 스텝을 막는 수비자의 풋워크이다. 또한 패스를 받는 순간에 밟는 스텝을 캐칭스텝이라하고 어떤 발을 먼저 밟느냐에 따라 축발이 결정된다
- 가이딩은 공격자의 드리블 · 패스 · 슛 등을 직접 방해하는 플레이이다. 리바운드는 공이 바스켓의 언저리에 맞고 되돌아 나오는 것을 높이 뛰어올라 잡아 내는 기술이다. 스탠스는 양쪽 발을 경기하기 알맞도록 벌린 자세를 말하며, 공격 · 수비 어느 쪽을 막론하고 항상 허리를 약간 구부린 자세가 자유로운 동작을 위한 기본자세라 할 수 있다.
- 스틸은 상대가 공을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가까이다가가서공을 쳐내서 빼았는 기술이다. 주로 더블드리블 상태에 쓰인다.[4]
전술[편집]
- 농구
농구의 전술은 크게 공격과 수비로 나눌 수 있다. 공격의 경우, 상대편의 수비 태세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지공법과 속공법이 있다.
- 지공법
- 상대편이 완전히 수비 태세를 갖추어 쉽게 바스켓 밑으로 공격할 수 없을 경우에 구사하는 공격법이다. 이때 공격법으로는 컷인 플레이 · 스크린 플레이 · 롤링 플레이 등이 있다. 컷인 플레이는 상대편 수비가 적극 수비를 펼 때 옆에 있는 공격자에게 공을 패스하여, 순간적으로 상대를 떼어 놓고 바스켓 쪽으로 뛰어들면서 공을 되받아 공격한다. 스크린 플레이는 2명 이상의 공격자가 협력하여 상대편의 수비를 차단시켜 다른 공격자 1명이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롤링 플레이는 5명의 경기자가 자기 위치에 관계 없이 자리를 넓게 잡고, 패스와 드리블로 공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수비를 하는 방법에는 크게 대인 방어와 지역 방어가 있다.
- 대인 방어(man-to-man defence)
- 수비자 전원이 공과 상대편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각자 한 사람씩 적극적으로 수비한다. 이 전법은 장점도 있지만, 상대편이 재치 있는 스크린 플레이를 하면 상대 선수를 놓치는 결점도 있다. 대인 방어는 코트전체에서 수비를 하는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 pressing)과 본인팀의 수비 진영에서만 수비를 하는 하프 코트 프레싱(half court pressing)이 있다.
- 지역 방어(zone defence)
- 공의 위치에 따라 정해진 지역을 수비하는 방법이다. 이 전법은 전체의 움직임이 대체적으로 일정하고 무리가 없기 때문에 속공에 편리하다. 그러나 대인 방어처럼 수비하는 상대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 선수의 습관이나 특기 등을 알아두어야 한다.
- 그리고 다이아몬드 앤드 원(diamond and one)과 트라이앵글 투(triangle two) 수비법과 같은 변칙적인 수비법들도 있다.[4]
경기 규칙[편집]
이하의 룰은 한국농구연맹(KBL)의 규정에 따른다.
- 장비
농구에서 필수로 요구하는 장비는 농구공과 코트와 선수 10명이다. 코트의 경우는 양 끝에 바스켓이 달린 장애물이 없는 평평한 직사각형이여야 한다. 정식 경기에서는 시계, 점수표, 점수판, 교체 알림판, 시간 정지와 휘슬 장치 시스템과 같은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한다.
농구공은 표면이 오렌지 색으로 되어 있어야 하며, 가죽이나 합성 재질로 된 8 ~ 12 조각으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주입 공기는 아랫면이 1.8m 높이로 코트의 플로어에 떨어뜨렸을 때 볼의 윗면이 1.2 ~ 1.4 미터 높이까지 튀어 오르도록 공기를 넣어야 한다. 공의 둘레는 75 ~ 76cm, 무게는 600 ~ 625g이어야 한다. 여자 경기에서의 둘레는 72.4 ~ 73.7cm이고, 무게는 510 ~ 567g이어야 한다.
- 코트 규격은 사이드라인 28m, 베이스라인 15m이다. 천장의 높이는 7m 이상, 경계선으로부터 장애물까지는 1m 이상, 관중석까지는 2m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한다.
- 백보드는 가로 1.8m, 세로 1.05m의 직사각형이어야 하며 전면은 평면으로 투명해야 한다.
- 백보드에는 링의 중앙을 중심으로 하여 가로 59cm, 세로 45cm의 직사각형을 너비 5cm의 흰색 선으로 그려야 한다.
- 바스켓은 안지름 45cm인 오렌지색 철제 링 주위에 길이 40cm의 흰 실로 만든 네트를 친다. 각 링은 제일 윗부분이 플로어로부터 3.05m 높이에 안전하게 백보드와 수직으로 부착해야 한다. 링의 안쪽으로부터 백보드 앞면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이는 15cm여야 한다.
- 자유투 거리(골대중앙까지)는 4.2m 이고 3점거리는 정면 거리는 7.23m 이고 사이드 거리는 6.7m 이어야 한다.
- 팀 구성
팀은 2명의 포워드, 1명의 센터, 2명의 가드, 총 5명으로 구성된다. 포워드는 상대편의 바스켓 가까이에 있으면서 주요 공격자 역할을 하므로 슛에 능한 선수를 배치한다. '포워드'는 '파워포워드(PF)와 '스몰포워드(SF)가 있다. '파워포워드(PF)는 보통 힘이 센사람이 맡는다. 센터(C)는 경기를 시작할 때, 코트 중앙의 센터 서클에서 점프 볼을 해야 하므로 흔히 키 큰 선수가 맡는다. '센터'는 바스켓 앞에서 방어를 하기도 한다. 가드는 자기편의 바스켓 가까이에 있으면서 주로 수비에 치중하며, 공격할 때에는 포워드를 돕기도 하고 직접 슛을 넣어 득점하기도 한다. '가드'는 '포인트가드(PG)와 '슈팅가드(SG)가 있다. '포인트가드(PG)는 경기의 상황을 보고 패스를 하기도 하는 팀의 지휘관과 같은 역할이다. '슈팅가드(SG)는 3점 슛을 전문으로 쏘는 선수이다.
- 어느 팀도 선수가 5명 미만으로 줄어들 수는 없다. 만일 경기 중에 있는 선수가 5번의 반칙으로 퇴장 당해야 할 때 벤치에 있는 교대선수가 모두 5번 반칙으로 물러나 있는 상황이라면 바로 전에 5개의 파울로 물러난 선수와 교체해야 한다.
- 최소 경기 개시 예정시간 20분 전에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 12명의 이름과 번호가 기록원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스타팅 라인업이 표시돼 있어야 한다.
- 각팀의 주장 만이 자기 팀의 타임아웃 시간 중에 심판에게 질의할 수 있다.
- 심판
경기 담당 심판은 주심 1명과 부심 2명으로 구성된다. 주심과 부심은 코트를 대각선으로 2등분하여, 각각 오른쪽의 엔드 라인과 왼쪽의 사이드 라인을 따라 움직이며 규칙을 적용한다. 이들은 경기감독관 외에 기록원 1명과 숙련된 계시원 2명의 보조를 받는다.
- 경기 시간
프로의 경우 10분씩(FIBA) 또는 12분씩(NBA) 4번 게임을 한다. 작전 시간은 전 · 후반에 각각 2회, 30초씩 요청할 수 있다. 30초가 끝이나면 심판의 휘슬과 함께 선수들이 나가야한다.
- 공격제한시간
경기시간과 마찬가지로 공격할 때 24초의 공격제한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상대팀이 파울을 범했을 경우, 만약 14초를 지났을 경우 14초로 리셋되어 공격을 재진행하고, 14초를 넘기지 않았을 경우, 그 시간에서 계속 공격을 진행한다. 또한 만약 10분의 경기시간이 있는데, 이때 24초를 이미 넘겼을 경우 24초 공격제한시간 없이 경기시간 종료 휘슬이 울릴때까지 공격을 진행하고, 파울을 범했을 경우 시간에 상관없이 계속하여 경기를 진행한다.
- 경기 시작과 득점
경기는 센터 서클에서 양팀 각 1명씩 2명의 선수가 점프 볼을 함으로써 시작된다. 득점은 공을 상대편의 바스켓에 던져 넣었을 때, 필드 골은 2점, 3점 라인 밖에서의 슛은 3점, 프리드로우(자유투)의 경우 1점을 얻게 된다.
- 파울
- 규칙을 위반하되 상대와의 신체 접촉이나 경기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를 파울이라고 하며, 상대방에게 공격권을 넘겨 준다. 프로인 경우 한 팀이 한 피리어드에 각각 5개의 파울을 범하게 되면 6개째부터는 상대방에 프리스로가, 아마추어인 경우 전후반 각각 7개의 파울을 범하게 되면 8개째부터는 상대방에 프리스로가 주어진다. 슛 동작에서의 반칙은 2개의 자유투가 허용된다.
퍼스널 파울은 푸싱, 홀딩, 차징, 트리핑, 블로킹, 해킹 등을 말한다.
- 푸싱과 홀딩:상대를 밀거나 잡는 경우.
- 트리핑:상대방의 다리를 거는 행위.
- 차징:상대방에게 부딪히는 경우.
- 블로킹:진로를 고의로 방해하는 경우.
- 해킹:상대방을 치거나 때리는 경우.
슛 동작에서 파울이 생겼을 때 그 슛이 들어가면 1개의 자유투를 더 주고 그렇지 않으면 2개의 자유투를 준다 (3점 슛일 경우에는 3개).
- 테크니컬 파울
- 하프 라인 바이얼레이션:하프 라인을 통과한 후 같은 팀 경기자에 의해 자기 코트로 공이 돌아갈 경우. 울은 신체적 접촉이 없이 선수, 코치, 응원자가 경기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 상대편 주장이 지명한 선수에게 2개의 자유투를 주고, 공격권도 준다. 인텐셔널 파울은 선수의 행위가 공과 관계 없이 고의적이라고 판단한 퍼스널 파울일 경우로, 상대편에게 2개의 프리스로를 준다.
- 바이얼레이션
- 파울 이외의 규칙 위반에는 상대편에 스로인이 주어진다. 바이얼레이션에는 워킹, 더블 드리블, 하프 라인 바이얼레이션과 라인 크로스, 아웃볼, 키킹, 오버 타임(3초, 8초, 24초) 등이 있다.
- 3초 룰:상대팀 제한 구역에서 3초 이상 머무를 경우.
- 8초 룰:8초 이내에 상대편 코트로 공을 넘기지 않을 경우.
- 24초 룰: 자신의 팀이 공을 소유하여 공격을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일정한 시간 내에 슛을 시도하지 않을 경우. 만약 상대가 파울을 했을 경우 공격제한시간은 다시 14초가 된다.[4]
인기[편집]
북미권에서 나온 구기 종목 가운데 가장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북미권에서의 수익도 많지만, NBA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북미권 다른 스포츠를 압도한다. NBA도 농구 글로벌화에 적극적이라 아시아나 남미, 유럽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에도 가서 친선경기와 사인회를 하며, 해외 농구 투자 및 지원도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축구 다음으로 대중화된 구기 스포츠로, 남미, 유럽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상당수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남미에선 아르헨티아나 브라질이 강호로 평가받는 편인데, 예컨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농구 결승은 '아르헨티나 vs 이탈리아'로 이뤄졌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딱 두 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그게 바로 '농구와 축구'에서였다.
유럽의 경우 지역에 따른 차이가 좀 있지만[37],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 등과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러시아 등 남 / 동유럽권에서 인기가 좋은 편이다. 특히 스페인의 농구 리그는 세계 리그 랭킹에서 NBA 다음인 2위를 달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 스페인은 서지 이바카와 파우 가솔, 마크 가솔 형제 등 유명 NBA 리거들도 상당수 배출한 바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튀르키예에서도 축구 다음으로 농구 인기가 좋다고 한다.
동유럽과 소련 같은 공산권 나라들에서도 농구 인기가 좋았다. 덕분에 냉전 시절 대리전 양상도 띠어 소련 해체 전까지 미소간 국가 대표팀 경쟁은 나름 치열했는데, 올림픽에서는 소련이 미국을 1972, 1988년에 두 번 꺾었고, FIBA 농구 월드컵에서는 소련 해체 전까지 소련이 전적에서 5승 3패로 미국에 앞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59년 대회에서 처음 맞붙은 소련이 미국을 71 - 36으로 뭉갰다가 이후로 몇 점 차 승부가 계속 벌어졌다. 그러다가 1978년 대회에서 97 - 76으로 소련이 압승을 거두며 우승했고 1982년 결승전에서는 95 - 94, 1점 차로 소련이 미국을 이기고 우승했다. 그러다가 1986년 대회 결승에서는 87 - 85로 미국이 설욕하며 소련을 제치고 우승한 게 마지막 소련 시절 대결이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1994년 러시아로 처음 나온 농구월드컵 결승에서는 드림팀으로 이뤄진 미국에 91 - 137이라는 결승전 사상 최다패로 참패를 당했고, 미국은 1959년 대회에서 당한 35점 차 대패를 제대로 설욕했다. 그러다가 1998년 대회에선 러시아가 66-64로 미국을 이겼다. 2002, 2006년 대회는 러시아가 불참했다가 2010년 이뤄진 대결에서는 89 - 79로 미국이 이기면서 농구월드컵에서 소련 시절까지 합치면 미국과 러시아는 6승 6패를 서로 기록 중이다.
한편, 그리스 같은 경우는 2천년대 후반 당시 NBA 현역 유명 선수던 조시 칠드레스를 미국에서 주는 돈 비슷하게 제시하면서 세금 부담과 여러 혜택(승리 수당 및 우승 수당 추가)까지 붙여서 그리스 리그로 불러온 적도 있었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도 제법 큰 화제였고, 이때 르브론 제임스는 농담조로 미국만큼 다른 나라도 돈을 준다면 나라도 가볼 생각이 있다는 말도 했다. 당시까지 미국 선수로서 유럽 리그로 가는 선수는 아직 NBA에서 뛸 실력이 안 되는 유망주이거나, 더 이상 NBA에서 뛸 실력이 안 되는 퇴물선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칠드레스는 당시(07 - 08 시즌) 팀 사정상 전 경기 후보로 나왔지만 출장 시간이 주전에 가까운 30분 정도였고 두 자릿수 득점도 기록한 준주전급 선수였다.
물론 NBA 스타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하도 우승에 실패하는 것에 질렸고, 오랫동안 뛴 팀으로부터 팽 당한 것에 염증을 느껴 우승 한 번 해보자고 그리스로 넘어간 도미니크 윌킨스같은 특이 케이스도 있지만(윌킨스는 우승 후 NBA로 돌아와서 은퇴했다), 미국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타국 생활을 하는 경우는 당시까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아직 나이가 젊은 만 24세인데다 어느 팀에 가도 제몫을 해줄 수 있는 준척급 선수가 자발적으로 유럽에 간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래도 칠드레스의 그리스행으로 인해 미국 스타들이 유럽에서는 NBA의 절반도 안 되는 경기 뛰며 상대적으로 편하게 선수 생활을 하고, 기타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게 알려져 지금은 NBA급 기량이 있는 미국 선수들이 타 리그에서 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보단 훨씬 줄어든 편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중화권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데 축구를 뛰어넘는 인기 스포츠다. 중화권의 학교 운동장은 축구장이 아닌 야외 농구장을 기준으로 면적을 잡을 정도다. 일단 중국의 프로 농구 리그인 CBA가 중국 축구 이상으로 인기가 있는 제1의 인기 프로 스포츠이며, 대만에서도 야구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다. 특히 생활 스포츠 종목으로 가장 인기가 좋기 때문에 타국에서는 축구가 가지고 있는 실생활에서의 인기와 위상을 대만에서는 농구가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의 인기로 한국프로농구를 출범하여 지금까지도 주요 겨울 프로 스포츠 중 하나로 이어지고 있으며, 주로 실생활 스포츠로 인기가 있다. NBA도 한국내 농구 팬들에게 인기가 있어 케이블에서 주요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다. 일본은 프로 농구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늦게 시작했는데, 여차저차하다 2010년대 중반 B.리그로 통합되어 이어지고 있다. 몽골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구기 스포츠가 농구라고 한다. 특히 3X3 농구가 강자이다.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은 농구가 거의 국기이고, 미국의 영향을 받아 농구 열기가 엄청난 나라이다. 자국 농구 리그인 PBA와 NBA는 국민적 인기를 자랑한다. 그 외 서아시아의 이란이라든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축구 다음으로 농구가 대중적인 인기 스포츠이다.[3]
농구와 흑인 문화[편집]
농구는 흑인과 그들의 문화에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다. 농구에 특출난 실력을 보인 유망주들이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기 시작하면서, 별볼일없던 흑인 아이가 명문학교 농구 장학생이 되는 루트가 조명받게 된다. 더 나아가 프로 무대인 NBA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면, 엄청난 금액의 연봉을 받으며 유명 브랜드 기업과 스폰서를 체결하는 등 그야말로 스타의 삶이 보장된다. NBA 진출에는 실패하더라도 해외의 여러 프로 농구 리그에 진출하여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생활하는 선수들도 꽤 많다. 이에 시간이 지나며 차별과 가난에 눌려 지내던 상당수 흑인들 사이에서 농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힙합 등의 블랙뮤직과 더불어 그들의 문화이자 꿈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이나 유럽권에서 뛰는 흑인 선수에 가려져서 그렇지, 아프리카에서도 농구는 은근히 인기가 많다. 실생활 체육으로 축구 다음 농구가 인기있는 지역도 많다고 한다. 높은 골대가 있어야 하기에 축구보단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그래도 어줍잖게 만든 림으로 골대를 만들어 농구를 하는 모양이다. 케냐나 탄자니아에 살아본 이들이 쓴 책을 보면 미국 길거리 농구에 흑인들이 내내 붙어 있던 것처럼 여기서도 그렇다고 한다. 케냐에 사는 한 한국인은 버려진 림을 발견해 나무로 골대를 만들어 집 근처 빈터에 두니 동네 경기장이 되어버렸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흑인들이 몰려와 내내 경기를 하고 덩크도 넣고 경기에 열심히 임해 그들이 농구에도 환장하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킴 올라주원(나이지리아), 디켐베 무톰보(콩고민주공화국), 마누트 볼(수단)과 같은 성공 사례들이 나타나자 NBA 스카우터들이 아프리카도 주목하고 있지만 아직은 인프라가 열악하고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국가들도 많다 보니 유럽 각지의 선수들보다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NBA에서 성공한 아프리카 선수들이 아프리카 현지에서 유소년 대회나 훈련 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유망주들에게 농구를 접할 기회를 늘리는 추세긴 하다.
- 농구는 흑인에게 유리한 스포츠인가?
먼저 당연한 얘기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흑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무조건 유리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래리 버드, 스티브 내시, 디르크 노비츠키, 니콜라 요키치 등 NBA MVP까지 탄 백인 선수들도 꽤 있으며, 미국 대표팀조차 백인이 주류인 유럽 / 남미권 팀에게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흑인들로만 구성된 아프리카 팀들의 성적은 아직 최상위권 레벨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동양인 중에서도 야오밍처럼 뛰어난 농구선수가 간혹 나온다. 또한 점프력 / 민첩성 등에서 유리한 흑인 유망주들이라도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 출신이라면 당연히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출신의 하킴 올라주원이나 자메이카 출신의 패트릭 유잉 등은 뛰어난 운동신경에도 불구하고 농구와 관련 없는 삶을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오고 나서야 농구를 배웠다. 물론 농구 자체의 인기가 많이 높아진 현대 들어선 농구에 대한 접근성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기술 훈련이나 좋은 스승의 유무, 지원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성공하는 건 체계화 / 기술화가 두드러지는 현대 프로 스포츠에서 대단히 힘들다.
다만 같은 조건이라면, 백인보다 흑인이 농구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농구에 대한 인프라가 확고히 구축되어 있는 미국 내의 흑인 / 백인 선수들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모수가 되는 미국의 인구 비율은 흑인들이 약 13 ~ 15% 남짓 되고 히스패닉들이 이보다 약간 더 많으며, 백인이 60%대 초반 ~ 50% 대 후반이고 나머지 10% 가량이 아시안이나 아메리카 원주민, 태평양 제도 / 북극 원주민 등 그 외 출신이다. 헌데 NBA의 경우 흑인들의 비율이 2020년 기준 74.2%, 백인은 16.9%이며, 나머지 8.9%는 히스패닉 선수들과 극소수의 아시아계 선수들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회적 편견에 따라 흑인들이 농구로 몰리기 때문에 더 인재가 몰리는 것 아니냐고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긴 힘들다. 왜냐하면 2021년 기준 대학 농구(NCAA)에서 백인 선수들의 비율은 67.3%, 흑인 선수들은 16.5%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쉽게 풀이하면 아마추어 레벨에선 오히려 백인 농구선수들이 흑인 농구선수들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대학 농구에선 백인이 흑인보다 4배나 많은데, NBA에서는 반대로 흑인이 백인보다 4배나 많다는 얘기이며, 다수의 NBA선수들이 NCAA 주전 출신이란 걸 감안하면 이는 흑인 선수들이 백인 선수들에 비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뜻도 된다. 흑인 선수들이 NBA에 많은 이유가 단순히 흑인들이 더 농구를 많이 하기 때문은 아니란 말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여러 차별이나 양질의 교육을 받기 힘든 확률이 더 높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스포츠로 꿈을 이루려고 하는 인구의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백인 아마추어 선수들이 흑인 선수들보다 더 많은 이유는 애초에 미국 사회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미국 내 백인 비율은 57.8%, 흑인 비율은 12.1%이다. 또한 농구선수 전체로 보면 2021년 기준 미국에서 (하부 리그를 포함한) 선수들 중 백인의 비율은 72.8%, 흑인들은 8.9%이다. 즉, 아마추어건 프로건 어느 레벨에서건 백인 농구선수들이 훨씬 수가 많은데, 가장 엘리트 레벨인 NBA에서만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말은 미국에서 농구인 수는 백인이 흑인보다 훨씬 많지만, NBA까지 도달하는 인원은 흑인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흑인이라고 무조건 농구를 잘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흑인 집단에서 뛰어난 농구선수가 나올 확률이 백인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높다고 볼 수 있다.[3]
국제 농구 대회[편집]
- 올림픽 농구
- FIBA 농구 월드컵
- 아시안 게임 농구
- 팬아메리칸 게임 농구
- 아프리칸 게임 농구
- 퍼시픽 게임 농구
- 유니버시아드 농구[3]
한국의 국제 대회 성적[편집]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여자 농구 팀이 은메달을 받은 게 유일한 농구 종목 메달 기록이지만, 당시 공산권 나라들이 대거 불참해서 빛이 바랜 감은 있다. 이걸 제외하면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여자 농구 팀이 4위를 거둔 게 가장 좋은 국제 대회 성적이다. 반면 남자 농구는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개최국 자격으로 처음 본선에 참여했으나 9위에 그쳤으며, 이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다시 본선에 진출했으나 이때도 광탈했다. 이후로는 매번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올림픽 본선 진출조차도 못 하고 있다. 아시아에는 겨우 1장의 본선 출전권이 있기에 늘 중국에게 가로막혔고 마지막 희망 대륙 간 플레이오프에서도 유럽이나 북중미 팀들의 벽이 높아 좌절해왔다. 농구월드컵에서도 1970년 유고슬라비아 대회에서 처음 나가 거둔 11위가 최고 성적일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다.
2011년 아시아 농구권 대회 3위로 다시 한번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은 한국은 2012년 7월 2일 ~ 8일까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플레이오프 대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한편 남자 농구와 달리 4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기록하던 한국 여자 농구 대표팀은 최종 예선에서 탈락하여 5회 연속 진출 도전에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농구에선 8년 만에 한국이 결승에 올라가 중국에게 패하면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농구 금메달을 받은 뒤로 아시아 대회에서 중국이나 아랍 지역 나라들에게 줄줄이 깨지던 한국 농구계 입장에서는 모처럼 희소식이었지만, 이 대회 나온 이란만 해도 주전이 거의 빠졌음에도 동메달을 받았다든지, 8강전에서 필리핀에게 고전했기에 우려도 많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그런 우려를 딛고 농구에서 최초로 남녀 동반 우승을 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특히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은 전력적으로 우위에 있던 상대 이란을 결승전에서 후반 4쿼터 막판 극적인 역전승으로 이기고 1970년, 1982년, 2002년에 이어 4번째로 아시안 게임 농구 우승을 하는 영광을 얻었다. 재미있는 것은 우승한 4개의 대회 중 2개가 한국에서 개최되었다는 점과 거기다가 나머지 중 하나인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의 기존 개최 예정지가 원래 한국의 서울이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한국 개최 아시안게임의 우승 징크스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아시아 선수권 대회의 경우, 1960년부터 2017년까지 29번 열린 대회에서 한국은 딱 2번 4강에 들지 못했는데 2009, 2015년 대회. 그리고 전체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많이 4강에 진출했고 가장 많이 준우승한 팀이다. 2013년 필리핀에서 열린 FIBA 아시아컵으로 이름이 달라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도 16년 만에 3위를 차지하면서 역시 16년 만에 2014년 스페인에서 열리는 농구월드컵 참가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2015 남자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중국을 20점 차 이상으로 앞서다가 반격 당해 73 - 76으로 패했고, 카타르에게 또 63 - 69로 패하면서 8강전에서 이란과 맞붙는 상황이 되었다. 만약에 카타르를 이겼더라면 일본과 맞붙을 수 있었다. 카타르도 한국처럼 3승 2패이지만 승자승으로 앞서 2위이다. 뭐 이란도 필리핀에게 73 - 87로 지긴 했지만 그리고 이란에 62 - 75로 완패하면서 20년 만에 올림픽 진출 도전도 또 물거품이 되었다. 5, 6위전에서 레바논에게 87 - 88로 지면서 한국은 최종 순위 6위로 마감하면서 2009년 톈진 대회에서 거둔 7위에 이어 사상 2번째 최악의 성적으로 대회를 끝냈다.
2017년 FIBA 아시아컵에선 준결승에서 이란에 81 - 87로 패해 14년 만에 결승 진출이 물거품이 되었으며,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허재 감독이 아들 선발 논란으로 가족 농구라는 비판을 받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동메달(3위)에 만족해야 했다.[3]
농구 용어[편집]
- 더블 드리블(double dribble): 한 번 드리블을 끝낸 다음 계속하여 드리블을 하거나 양손으로 동시에 공을잡는 반칙.상대팀에게 공격권을 준다.
- 더블 파울(double foul): 양팀의 경기자가 거의 동시에 퍼스널 파울을 범한 경우.
- 데드 볼(dead ball): 공이 바스켓에 들어갔을 때 또는 심판의 휘슬로 잠시 경기가 중단된 상태.
- 도지(dodge): 풋워크를 교묘하게 구사하여 상대편 선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
- 레이업슛(lay up shoot): 골대에 근접한 구역에서 위쪽으로 슛을 하는 것.
- 루즈 볼(loose ball):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공.
- 맨투맨 디펜스(man to man defense): 대인방어. 즉 각 선수마다 상대편 선수 한 사람씩을 정하여 책임을 지고 수비하는 방법.
- 멀티플 파울(multiple foul): 한 팀의 선수 두 명 이상이 거의 동시에 범하는 퍼스널 파울.
- 바이얼레이션(violation): 파울 이외의 규칙 위반. 벌칙으로 상대편에게 공격권을 준다.
- 백 코트(back court): 엔드 라인에서 중앙선 앞쪽까지의 코트의 절반으로, 수비 팀에 속한 부분.
- 백패스 룰(back pass rule): 공을 가지고 있는 팀이 프런트 코트로부터 공을 되돌려 보낼 수 없는 규칙.
- 사이드암 패스(side arm pass): 공을 어깨 옆 위쪽에서 받아 동hd 자세대로 하는 패스.
- 30초 룰(三十秒 rule)(Thirty second rule): 공을 가진 팀이 30초 이내에 필드 스로를 해야 하는 규칙.
- 3점 라인(三點 line)(Three point line): 바스켓의 중심점으로부터 반지름 6.25cm인 반원을 양쪽 사이드 라인과 평행하게 엔드 라인까지 연장한 선.
- 3초 룰(三秒 rule)(Three second rule): 공을 가지고 상대편의 프리스로 라인 안에서 3초 이상 머물지 못하는 규칙. 스리세컨드 룰.
- 센터 토스(center toss): 경기 시작 때 센터서클에서 양팀 센터 중앙 위로 공을 올려 주는 것.
- 스크린 플레이(screen play): 상대방이나 자기편 선수를 방패 삼아 상대방의 플레이를 지능적으로 방해하는 플레이.
- 스톨링(stalling): 득점이 많은 팀이 공을 빙빙 돌려 가며 소극적인 패스로 시간을 끌어 승리하는 전법. 지연 작전.
- 에어볼(air ball): 슛을 시도했지만 골대의 림에 맞지 않은 경우
- 컷트(cut): 상대방의 패스를 도중에 가로채는 것.
- 인 플레이(in play): 경기 규칙에 의하여 플레이되고 있는 일.
- 점프 볼(jump ball): 게임의 개시 또는 더블 파울일 때, 프리스로가 끝난 후 헬드 볼을 할 때나 공의 소속이 불확실할 때 점프서클 안에서 두 선수가 심판이 올려 준 공을 점프하*여 빼앗는 일.
- 존 디펜스(zone defense): 골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비 위치를 정해 두는 지역방어.
- 클린 슛(clean shoot): 던진 공이 링에 닿지 않고 깨끗하게 바스켓 안으로 골인되는 슛.
- 트래블링(traveling): 공을 가지고 3보 이상 걷는 동작. 워킹 또는 캐링볼이라고도 함.
- 트리핑(tripping): 다리를 이용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파울.
- 포메이션(formation): 안전하고 분명하게 공격하기 위하여 동료 선수 및 공의 움직임을 합리적으로 조직한 전법.
- 포스트 플레이(post play): 프리스로 라인 주변에 배치한 장신선수를 중심으로 하는 공격법.
- 프런트 코트(front court): 상대팀의 바스켓 뒤쪽 엔드 라인에서 센터 라인에 가까운 쪽 코트 부분.
- 피벗(pivot): 한 발을 붙이고 다른 발로 상대의 수비를 피해 회전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동작.
- 헬드 볼(held ball): 양 팀의 선수가 동시에 공을 잡았을 경우나 공격자가 상대방의 근접 마크로 인해 플레이를 하려는 뚜렷한 동작 없이 5초가 지났을 경우. 이때 심판은 점프 볼을 선언한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