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씨름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민속 스포츠로, 힘과 기술을 겨루는 격투기 운동이다. 주로 모래판에서 이루어지며, 선수들은 허리나 허벅지에 두른 샅바를 잡고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들어올려 승부를 결정한다. 승패는 상대방을 넘어뜨려 두 어깨나 몸이 모래판에 먼저 닿는지에 따라 판가름난다.
목차
개요
씨름은 한국 고유의 운동 또는 격투기로, 두 사람이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힘과 슬기를 겨루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이다. 여러 씨름으로 추정되는 그림들 중에 고고학적으로 씨름에 관한 정확한 기원과 모습은 오직 고구려 브벽화에서만 볼 수 있다. 세계 각지에도 씨름과 유사한 운동이 있으나 룰과 형태는 매우 다르다. 씨름과 유사한 격투기로는 일본의 스모, 몽골의 부흐, 터키의 씨름 등이 있다.
현대의 씨름 경기는 1920년대에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최근 씨름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져 민속 씨름경기는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대학씨름대회를 비롯한 전국, 지방 단위의 씨름대회가 설날이나 단오 때 주로 열려 지상파를 통해 방영된다.
씨름은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에 감은 샅바를 잡고, 경기가 시작되면 발을 제외한 몸의 일부가 땅에 먼저 닿은 사람이 진다. 경기 규칙은 복잡하진 않지만, 몸 전체의 근육과 기술을 고루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순발력, 근력, 정신력, 지구력, 체력 등 다양한 요소를 요하는 경기이다. 공식적인 경기에서는 주심 1명과 부심 2명이 심판을 보며, 경기장 지름은 8m에, 수평이어야 하고, 실외 경기장의 모래장 높이는 30cm-70cm 이상이며, 경기장 밖의 보조 경기장의 넓이는 2m 이상, 모래장의 높이는 20-10cm 이내로 해야 한다.[1]
역사
현대 이전
고구려 시대의 고분 중 각저총의 씨름도 벽화에서 알 수 있듯, 그 역사가 유구한 놀이이자 스포츠다. 한국의 전통 무술이라 할만한 것들 중에서도 특히 투기 중에서는 태껸과 함께 그나마 씨름 정도가 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려 시대까지는 수박이나 격구 같은 무술이 성행했지만, 조선시대는 오랜 기간 전쟁이 없었고 고려 말의 혼란기와 왕자의 난에서 얻은 교훈, 사병 혁파 등으로 말미암아 단체로 무술을 수련하는 것을 반역과 같은 것으로 보게 되어 전통 무술의 명맥이 거의 끊기게 된다. 그러나 씨름이나 택견은 둘 다 무술과 스포츠 두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조선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일제강점기까지 버텨냈다.
어쨌든 씨름에 대한 기록은 꽤나 많이 남아서 고려 충숙왕은 씨름 매니아였다고 전해지며 아들 충혜왕은 아예 궁궐에서 씨름을 즐겼고 공민왕도 국가주관으로 대회를 열어 씨름 대회에서 우승한 씨름꾼에게 쌀을 상품으로 내걸었으며, 용사라고 칭하여 왕을 호위하는 벼슬을 내려주었다. 조선시대에도 국가 주관으로 대회를 열어서 좋은 성적을 걷은 씨름 선수에게 상품을 주기도 했고, 무예연습종목에 씨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고 하니 나름대로 씨름을 긍정적으로 본 듯하다. 다만 명종대에 궁궐에서까지 씨름이 성행하던 도중에 경기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자, 사헌부에서 일시적으로 씨름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반짝 단속정도에 그쳤는지 그냥 흐지부지 된 모양으로, 이순신 장군도 씨름 대회를 열어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씨름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져, 조선 후기에는 단오와 설날이면 지역별로 소규모 경기가 열렸다고 전해지며 우승상품은 황소였다고 한다. 이것이 현대에도 트로피가 황소 모양인 이유다. 때문에 전국 씨름판을 돌며 소를 타가는, 소위 전문 씨름꾼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이 씨름이 워낙에 인기가 높았던 탓에 구경꾼들이 결과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등 범죄와 연결되는 문제가 있어서 조정에서 단속을 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위의 경우와 같이 어디까지나 반짝 단속 정도 수준에 그쳤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이어가서 이는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씨름이 현대 스포츠로서의 구색을 갖춘 것은 1927년 9월, 조선씨름협회의 창단 당해 휘문고등학교에서 개최된 '제1회 전조선 씨름 대회'로 비록 체급을 나누는 등의 세세한 규칙을 정하지는 못하였으나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던 씨름의 룰을 통합해 현대 씨름의 형태를 규정했다는 의의를 가진 최초의 프로 씨름이었다.
그 이후로도 씨름은 꾸준히 행해졌으나 이미 3.1 운동에 호되게 당한 전적이 있던 일제는 새로운 집회의 불씨가 될지 모르는 씨름 경기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고, 일제의 광기가 극에 치달은 1940년대에 달해선 1941년의 '제6회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씨름 경기는 더 이상 열리지 못했으며, 이는 해방까지 쭉 이어진다.
광복 이후 1946년, 조선씨름협회는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개명한 뒤 이듬해 기존의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의 명칭 또한 '전국씨름선수권대회'로 바꾸어 다시금 씨름 경기를 개최하기 시작했고, 1956년 열린 '제12회 전국씨름선수권대회'부터 체급제를 도입함으로써 씨름은 전 국민이 열광하는 현대 스포츠로서 새롭게 도약하게 된다.[2]
현대
해방 후에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씨름이 프로화 되기 이전인 1950 ~ 60년대에는, 명절 때 지역마다 씨름 대회가 열리곤 했다고 한다. 당시 전국을 돌면서 소를 타가는 반(半)직업적인 선수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는 동네 단위로 씨름 대회도 있었다. 특히, 큰 동네에서 씨름 대회가 열렸다 하면 힘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이 모두 출전했다. 상품으로 소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기실 고려 시대 때는 삼베가 상품이었고, 조선시대 때는 차등을 줘서 상품을 줬다고 한다. 무조건 소를 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상품 대신 상금을 주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라고 전해진다.
그러다 1983년 4월 13일부터 4월 17일까지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제1회 천하장사 씨름 대회를 계기로 씨름 중흥의 장이 열린다. 특히 1회 대회 천하장사인 이만기라는 엄청난 스타가 씨름계의 제왕이 되면서 국민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당시 민속 씨름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냐면 천하장사 결승전을 할 때는 길거리가 텅텅 비었고 심지어 밤 9시 메인뉴스가 천하장사 결승전 중계방송에 밀리던 때가 있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회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 기수를 맡았고 이 대회 역도 남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까지 땄던 이민우 선수가 얼마 안 지나 씨름으로 전향했을 정도였다.
이만기가 국민 천하장사가 되어 1980년대를 호령하면서 폭발했던 국민적인 인기는 훗날 강호동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이만기 이후의 2세대 민속 씨름의 간판으로 활약한 199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강호동이 돌연 은퇴 선언 후 방송인으로 전업하고 기존의 씨름 플레이 스타일이 대중으로부터 흥미를 얻지 못한데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씨름단이 다수 해체되면서 씨름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경기시간을 오전부터 잡아서 거의 하루종일 하는데다 서울특별시나 광역시보다는 각 지방의 군 단위 지역을 순회하며 대회를 열기 때문에 직관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도 전국단위 씨름 대회가 열릴 때면 항상 지상파 KBS1을 통해 대대적으로 생중계되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만일 경기 시간을 구기종목처럼 저녁 시간으로 개선해준다면 직장인들과 학생들을 팬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
여자 씨름의 경우 해방 전까지 명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해방 전후인 1940 ~ 50년대에 영남 일부지역에서 간헐적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1970년대에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정식으로 여자 씨름 대회를 개최하면서 최초의 전국규모 대회가 되었고, 1991년부터 대통령배 대회가 개최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남북분단 이전부터 향유하던 문화이므로 북한에서도 하는데, 기념일이나 명절때마다 국가나 지방정부, 학교 주도로 경기가 열리곤 하며, 각종 체육대회 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많이 장려된 종목이라고 한다. 특히 우승자에게는 황소 한 마리 등 푸짐한 상품을 내주면서 큰 관심과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참가하는데에 있어서 나이와 직종제한은 일절 없다고 하며 쇠퇴의 길로 접어 결국 없어진 남한의 민속 씨름과는 다르게 여전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도 씨름 선수나 전직 씨름 선수가 유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다만 남한의 씨름 대회와는 몇가지가 다르기는 한데 우선 남자의 경우에는 상의를 탈의한 채 출전하는 남한의 씨름 대회와는 다르게 상의를 입은 채로 경기에 출전하며 경기장도 모래판이 아닌 매트판에서 진행한다. 물론 기본적인 규칙은 비슷하다.
씨름 선수들은 대체로 체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군대 신체검사에서 대부분 보충역 이하의 판정을 받는다. 과거에는 BMI 면제 기준이 지금보다 널널해서 씨름 선수가 군대 면제 판정을 많이 받았으나 현재는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2]
프로 씨름의 몰락
프로 씨름이 1990년대 중후반 들어 몰락한 이유는 다른 프로 스포츠들의 성장과 젊은 세대의 무관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는 이만기로 대표할 수 있는 비교적 체격이 작은 선수들이, 현란한 기술과 몸놀림으로 큰 덩치를 넘어뜨리는 화려한 씨름이 점점 쇠퇴하고, 덩치로 승부하는 빅맨들의 게임이 씨름의 주류가 되면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게 거론된다. 일본의 스모의 몰락과 비슷한 현상이다.
프로 씨름 초기에는 체중 무제한인 백두급 선수라고 해도 120 ~ 130kg 정도가 최고였으나, 강호동의 은퇴 이후 160kg에 육박하던 김정필이 체격과 힘으로 버티는 수비 씨름으로 일관한 끝에 정상에 오르면서 150kg를 넘는 초중량 선수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후 이 거구의 선수들이 버티는 수비씨름만 일삼다보니 지루함에 관객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김칠규 등 기술 씨름의 명맥을 잇는 테크니션들이 김정필을 꺽으면서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지만, 점점 대형화하는 선수들과는 반대로 경기 내용은 단조로워졌다. 심지어 200kg이 넘는 씨름 선수가 등장하기도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런 빅맨들 중에서도 박광덕이 람바다를 추는 등 쇼맨십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를 화려한 콤보 기술로 내다꽂던 이만기, 고경철, 손상주 등의 기술 씨름과 함께, 이준희, 이봉걸이 3李 시대를 이루며 각자 개성을 뽐내던 시기에서 샅바 잡고 주야장천 밀고 당기기만 하다가 끝나는 지루한 씨름이 대세가 되니,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카운터를 날린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백승일과 이태현의 천하장사 결승전이다. 이 경기는 씨름 몰락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백승일은 큰 덩치에도 화려한 기술과 유연성을 보인데다, 끼와 말재주도 좋아 수비씨름으로 일관하던 김정필 부류의 선수들과 차별화 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같은 청구씨름단 소속이자 수퍼루키였던 이태현과의 결승전에서 서로 샅바잡고 빙빙돌다 시간만 끌어대면서 연장전 포함 7차전 끝에 계체로 승부가 결정되는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태현이 같은 팀 소속이라 백승일의 체중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승부를 피하다 계체로 가면 자신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계속 승부를 내지 못하고 연장전이 되자 그래도 승부를 보려고 공격을 하는 백승일과 달리, 아예 대놓고 시간끄는 자세로 뒤로 물러서는 이태현은 관중들의 야유가 빗발쳤는데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 다 씨름의 미래라 불리던 10대 선수가 승리에 눈이 멀어 저울 달기로 승부를 끌고가는 추한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던 사람들은 씨름에 대놓고 혐오감을 느꼈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씨름의 시청률과 관심도 대 폭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태현은 이후 백승일이 선점한 수퍼루키의 위치를 자신이 차지하고 씨름계의 최강자로 올라섰지만, 이미 등을 돌린 관객들은 채널을 돌리고 경기장에 발을 끊기 시작한 후였다.
이처럼 씨름계를 대표할만한 초대형 스타의 명맥이 끊긴 것은 씨름의 쇠퇴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잘생긴 외모에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 기중기 이봉걸 이들이 경쟁하던 86 ~ 88년 사이는 그야말로 씨름의 황금시대로, 천하장사대회 평균 시청률이 3,40%를 유지했으며, 천하장사대회 결승전에는 길거리가 한산할 지경이었다. 이들의 은퇴 후에도 선수생활 은퇴를 예고하며 황혼기에 접어든 이만기를 꺾으며 새롭게 떠오른 당돌하고 건방진 악동 강호동의 존재로 이만기 은퇴에 따른 충격을 어느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새로운 간판으로 떠올랐던 강호동의 갑작스러운 은퇴 후에는, 위에 서술한 것처럼 '슈퍼두꺼비' 김정필을 위시한 비만형 선수들의 수비 씨름이 흥미를 떨어뜨렸고, 한때 '제2의 강호동'으로 불린 백승일,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 '봉팔이' 신봉민, '들소' 김경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골리앗' 김영현 등이 1990년대 중후반 씨름판을 이끌어 갔지만, 이만기와 강호동이 호령하던 시절의 카리스마와 스타성에는 한 참 미치지 못했다. 이후 여러 유망주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1990년대 내내 씨름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면서, 대회 스폰서가 떨어져 나갔다. 1996년까지만 해도 현대 코끼리 씨름단, LG증권 황소 씨름단, 세경진흥 사자 씨름단, 부산조흥금고 호랑이씨름단, 일양약품 원비씨름단, 청구 청룡씨름단, 한보철강 멧돼지씨름단[34], 진로 두꺼비씨름단 등 8개에 이르렀던 프로 씨름단은 1997년 들어 한보 사태의 여파로 한보 씨름단을 시작으로 1997년 외환 위기 크리까지 겹쳐 세경진흥, 조흥금고, 청구, 일양약품 씨름단이 줄줄이 해체되고 1999년 봄 진로 씨름단마저 끝내 해체되고 삼익파이낸스 백마씨름단과 강원태백건설 곰씨름단이 창단되어 4개 팀으로 겨우 구색을 맞추었지만 이 팀들도 모기업이 자금사정이 좋지 못했던지라 오래 존속하지 못했다. 결국 2000년에 신창건설 코뿔소씨름단이 삼익파이낸스 씨름단을, 지한정보통신 씨름단이 태백건설 씨름단을 인수했지만 지한 씨름단마저 오래 존속하지 못해 프로 씨름은 2004년까지 단 3팀만으로 운영되었다. 또한 지상파 TV 중계가 크게 줄어드는 와중에, 씨름연맹은 대책은커녕 미봉책조차 내놓지 않은 채 그저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천하장사 출신인 최홍만이 이종격투기로 전향하여 K-1에서 성공하고, 뒤따라 이태현, 김영현 등도 씨름판을 떠나 이종격투기로 옮긴 일은 씨름판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어떻게든 씨름 인기를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이만기를 씨름연맹은 시끄럽다고 영구제명해버렸다. 이것은 씨름연맹의 가장 큰 삽질로 평가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로, 씨름이 이 정도까지 몰락하게 된 배경으로는, 씨름에 큰 위기가 닥쳤는데도 무사안일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하여 프로 씨름을 망하게 만들다시피 한 한국씨름연맹이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한국e스포츠협회, 한국성우협회 등 일 못한다고 욕먹는 협회야 많긴 하지만 그래도 판 자체를 부숴버릴 수준으로 일을 개판으로 하지는 않는데, 아예 리그 자체를 망하게 할 정도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협회는 한국 역사상 한국씨름연맹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한때는 10팀이 넘어가던 프로팀은 최홍만이 속해있던 LG투자증권이 2004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고 신창건설 씨름단마저 2006년 초에 해체되어 사실상 막을 내렸고,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현대중공업도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에 운영권을 넘기고 실업팀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2017년 유일한 기업팀이었던 현대삼호중공업 씨름단도 해체되고 영암군청 씨름단으로 재창단되었다. 현재는 지자체 소속의 실업팀 위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종격투기로 옮긴 전직 씨름 선수는 최홍만을 제외하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대부분 조기 은퇴하거나 씨름계로 복귀했다.[2]
씨름계 내홍의 소용돌이 이후
씨름의 침체기 이후로 1980년대 전성기와는 달리, 이제는 천하장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늘어났다.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고, 광고모델은 물론 TV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던 이만기나 강호동이나 최홍만까지는 지금도 대다수가 기억하고 있는 편이나, 요즘에는 천하장사가 탄생하거나 배출되어도, 그가 누군지 이름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만큼 씨름이 심하게 침체되고 쇠락한 것이다. 그래도 설날과 추석 연휴가 되면, KBS 1TV에서 14 ~ 17시 시간대에 꾸준히 편성을 해주니, 중계조차 끊어진 다른 종목들에 비하면 민속 종목으로서 우대를 받고 있는 편이다.
그나마 예전에 살덩이들이 시간만 질질 끄는 지루한 경기 패턴을 버리고, 경기의 재미를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2003년부터 무제한급에도 체중제한을 도입해, 선수들도 예전 같이 130 ~ 150Kg를 넘는 나이 많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근육질의 건장한 청년들로 바뀌었고, 시합 자체도 꽤나 빠르고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명절 때 TV에서 시합을 하면, 구경삼아 한두 번 정도는 보길 권장한다. 일단 선수들 체격도 근육질이 더욱 두드러지게 바뀌었고, 예전보다 기술씨름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전략적인 측면도 보강되는 듯 하다. 대략 이런 반응들도 나오는 거 보면 마케팅 잘 하고 스타 발굴 잘 하면 중흥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듯 하다.
한편 한국 요리나 K-POP의 중흥에 겹쳐 씨름 또한 한류 스포츠로 정착시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에 관해 2008년 대한씨름협회가 주도하여 세계씨름연맹이 발족,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씨름의 세계화에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세계화 노력탓에 몽골의 부흐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씨름 선수로 등록하여 대회에 나오기도 하고 국제 교류전을 열어 각지의 유사한 스포츠, 레슬링등과 교류를 맺고 친선경기와 교류경기를 하기도 한다. 2014년에는 터키, 스페인, 스위스, 몽골 등 각지의 전통 씨름 선수를 초청하여 각개의 룰로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러시아의 연해주에서도 씨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러수교 30주년을 맞아 주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영사관과 연해주 씨름협회의 주관하에 씨름 대회가 연해주에서 개최되었다.[2]
경기방법
50여 년 전에 직접 씨름판을 목격한 이에 따르면 씨름판이 벌어지면 오픈 게임으로 어린이들의 시합인 '아기씨름'부터 벌어진다고 한다. 이 씨름에서 차차 나이를 높여 나중에는 어른씨름이 된다.
경기운영을 살펴보면 씨름은 대개 사흘 동안 계속되는데, 첫날에는 비용을 걷기 위한 걸립으로 비용을 찬조받는 한편 어른들이 씨름에 붙게 되면 먼저 '비게'를 뽑는다.
한 사람이 세 사람을 물리치면 비게급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첫날을 보내고 이틀째 되는 다음날에는 비게끼리 붙어서 우열을 가려낸다.
이 판에서는 비게가 비게 한 사람을 이기면 되는데 이 시합을 '비게씨름'이라고 한다. 이 날 온종일과 사흘째 되는 마지막날 오전까지 비게씨름이 계속되면서 탈락자가 나오게 되고, 오후에는 끝까지 남은 장사끼리 결승전이 벌어지며 여기에서 장사가 가려져 우승자가 나오게 된다.
경기방법은 우선 씨름판을 벌이려면 넓은 마당이 있어야 하고, 이 마당에 맞붙을 두 사람이 마주 꿇어앉는다. 이 두 사람은 샅바를 매고 서로 어깨를 맞댄 뒤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샅바를 먼저 잡고 왼손으로는 상대방의 허벅다리에 건 샅바를 잡는다.
양편의 준비태세가 다 되었으면 심판의 구령에 따라 동시에 허리를 펴고 일어나면서 시합이 시작된다. 두 사람은 모든 재간을 다 써서 상대방을 먼저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무릎 이상의 몸체가 먼저 땅에 닿는 편이 지게 된다.
오늘날의 경기는 시설과 용구 · 복장을 비롯하여 경기운영방식 · 경기기술 등이 옛날에 비해 매우 세분되어 있다.[3]
시설과 용구
경기장은 모래로 시설함을 원칙으로 하며, 실내경기장은 매트로 할 수도 있다. 규격은 높이가 30㎝ 이상 70㎝ 이하로 하고, 넓이는 직경 8m 원형으로 하며 수평이어야 한다.
또한 선수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경기장 밖으로 1.5m 이상의 보조경기장을 두어야 하며,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의 높이의 차는 10 ∼ 20㎝ 이내로 한다. 단, 매트로 시설할 경우 수평으로 하며 선폭은 5㎝, 넓이는 모래경기장과 같다.
초등학교부 60㎏급 이상과 중학교부 · 고등학교부 · 대학부 · 일반부의 샅바는 청 · 홍색 광목(16수) 전폭으로 하며, 초등학생의 샅바는 광목(16수) 반폭으로 한다.
샅바의 길이는 허리와 허벅다리 둘레에 맞도록 신축성 있게 조절하여 만든 협회의 공인된 샅바이어야 한다. 경기복장은 씨름하기에 적합한 짧은 반바지를 입고 소속표시는 좌측 재봉선에 부착한다.[3]
체급
초등학교부 · 중학교부 · 고등학교부와 대학 및 일반부는 모두 경장급(輕壯級) · 소장급(少壯級) · 청장급(靑壯級) · 용장급(勇壯級) · 용사급(勇士級) · 역사급(力士級) · 장사급(壯士級) 등 7체급으로 분류한다. 단체전의 정선수는 7명으로 하고 후보선수는 각 체급에 1명 이내로 한다.
계체량은 경기전일 17시에서 17시 30분에 완료해야 하며, 계체는 전종별 1회에 한한다. 모든 선수는 자기 체급 이상에는 참가할 수 있으나 자기 체급 이하의 체급에는 참가할 수 없으며, 이중출전할 수 없다.[3]
경기종별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분류한다. 단체전에는 시 · 도 대항전, 직장대항전, 도시대항전, 각급학교대항전, 군경 및 예비군대항전으로 구분한다. 개인전은 전국장사씨름대회만 체급에 제한이 없으나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체급별로 할 수도 있다.
선수권대회는 체급별로 하며, 각종 대회 학생부는 체급별로, 또는 체급 제한 없이도 할 수 있다. 단체경기는 정선수 7명으로 구성하며 승부는 승자수로 결정한다.
각 부(초 · 중 · 고 · 대 · 일반부) 선수는 이중으로 출전할 수 없으며 신청서에 참가신청한 체급 외에는 출전할 수 없다. 단체경기에 출전하기 위하여 신청한 정선수가 계체량에 실격되어 정선수로 팀이 구성되지 못할 경우는 팀전체가 실격되며, 부상 및 사고로 인하여 시합을 못하는 선수는 순번선수에게만 1패로 인정한다. 단체 출전선수가 경기 도중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못할 경우 출전자격을 갖춘 후보선수로 교체할 수 있다.[3]
경기운영방법
- 경기방식: 단체경기와 개인경기로 구분하여 경기를 운영한다. 단체경기의 대전방법은 맞붙기전(토너먼트) 혹은 돌려붙기전(리그)으로 실시하며, 개인전도 맞붙기전과 돌려붙기전으로 시행한다.
- 모든 경기는 선수의 완전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3전 2승제로 하되 경기운영의 사정에 따라 단판제로 할 수도 있다. 이의 결정은 경기부의 의견을 들어 임원장이 결정하는데, 대진표는 각 팀 대표자의 입회하에 추첨으로 한다.
- 샅바매는 방식: 샅바는 고리를 오른다리에 걸고 긴 띠를 뒤로 돌려 고에 끼워 맨다. 이때 허리의 띠를 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신축성 있게 매어야 하며, 띠와 고의 교차점은 우측 대퇴부 중심선에 있어야 한다.
- 경기개시: 씨름의 도(道)를 존중하는 뜻에서 양선수는 본부 및 상호 간에 인사를 한 뒤 앉아서 샅바를 잡는다. 양 선수는 무릎 간격 30㎝ 이내에서 무릎을 꿇고 정좌해서 다리샅바를 먼저 잡고 어깨를 대고 허리샅바를 잡은 뒤 왼무릎을 세운 다음 일어나서 주심의 신호에 따라 경기를 시작하는데, 샅바를 잡을 때 오른다리를 뒤로 물리지 못하며 허리샅바는 중심선(재봉선)을 넘겨 잡을 수 없고 한 번 잡은 샅바는 다시 추스려 잡을 수 없다.
- 경기진행중 양 선수가 샅바를 놓았을 때나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갔을 때는 재경기를 한다. 그러나 고의로 상대를 밀어내는 선수는 경고를 받게 되고 고의로 경기장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1패가 된다. 2회 주의 받으면 경고 1회가 되며, 경고 1회가 주어진 선수는 주의 없이 바로 경고를 준다. 경고 2회는 1패가 되며, 3회가 되면 실격패가 된다.
- 경기시간 및 채점: 선수의 감투력을 배양하고 완전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3판 2승제로 승부를 결정한다. 승부의 제한시간은 초등학교부와 중학교부 이상(대학부 · 일반부 포함)으로 구분한다.
- 초등학교부는 1승부를 1분으로 하고 1분 내에 승부가 없을 때에는 30초를 쉬고 1분 동안의 연장전을 한다. 그리고 중학교부 이상 경기는 1승부를 2분으로 하고 2분 내에 승부가 없을 때에는 1분 쉬고 다시 2분 동안 연장전을 한다.
- 3전 2승 중 1승부는 결정되고 2회전에서 경기시간이 경과하면 먼저 승리한 선수가 승자가 되고, 1회전 경기에서 양 선수가 승부가 나지 않을 때에는 2회전에서 승리한 선수가 승자가 된다.
- 그리고 1대 1 동점이고 3회전 때 경기시간이 초과되거나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주의나 경고를 받은 자가 패자가 되고, 주의와 경고를 받은 선수가 없을 경우에는 체중이 가벼운 선수가 승자가 된다.
- 돌려붙기전의 채점방법은 2명이 동점일 경우에는 승자승으로 순위가 결정되나 3명 이상이 동점일 경우는 매 시합 종합승패수에 의한 득실로 가리며, 득실도 같을 경우는 주의, 경고, 체중이 가벼운 선수의 순서로 승자가 결정된다.
- 경기판정: 경기진행중 무릎 이상의 어느 부분이든 몸체가 지면에 먼저 닿는 선수가 패자가 되고, 경기를 포기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기권패가 된다. 경기진행중 상대선수를 고의로 밀어내면 경고를 당하고 고의로 경기장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1패를 받게 된다.
- 그러나 경기진행중 기술이 성립되어 경기장 밖에서 승부가 결정되었을 때에는 유효로 인정한다. 단, 기술을 성립시킨 선수의 두 발이 주경기장 내에 있을 때에만 승자로 인정한다.
- 반칙: 목을 조르거나 비틀어 쥐거나, 팔을 비틀거나 꺾거나, 머리로 받거나,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치거나, 눈을 가리거나, 기타 경기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패자로 판정하며 해당대회의 선수자격을 박탈한다.
- 징계: 경기상 제반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상벌위원회를 두며 심판위원회에서 결정, 처리한 사건이나 혹은 각 위원회의 징계요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 징계처리를 한다.
- 경기중 부정선수가 출전하였음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그 부정선수 또는 그 부정선수가 소속한 단체는 즉시 실격으로 하고, 그 선수 또는 단체가 획득한 모든 지위는 무효가 되며 부정행위를 한 선수나 단체는 상벌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게 된다.
- 심판: 심판은 주심 1명과 부심 2명, 심판장으로 구성하며, 경기의 승부판정과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항을 관장한다. 심판원은 협회가 인정하는 심판복장을 반드시 착용하여야 한다. 주심은 경기장 안팎을 유동적으로 위치하여 경기진행과 승부의 판정을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선언하여야 한다.
- 주심은 부심으로부터 판정에 이의가 있거나 승부의 판정을 단독으로 결정하기가 곤란할 때는 즉시 이의를 받아들여 부심 및 심판장과 합의하여 결정한다.
- 주심은 호각을 가지고 경기의 개시 · 중지, 승부의 판정 등을 선언하며, 경기중 선수가 부상할 우려가 있을 때나 샅바가 불완전할 때는 중지시켰다가 다시 진행시킬 수 있다.
- 그리고 주심은 진행부를 통하여 3회 이상 호명하여도 출전하지 않을 경우에는 기권으로 판정하며, 경기진행중 규칙위반이나 폭언·폭행 등의 탈선행위를 하는 자는 즉시 경기중지 또는 퇴장을 명할 수 있다.
- 부심은 경기장 바깥 좌우측 정면에 위치하며, 시종 경기의 우열을 주시하면서 주심의 판정에 이의가 있거나 경기는 끝났는데도 주심이 승부판정을 결정하지 못할 때에 이의 또는 재심을 요청할 수 있다.
- 부심은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경기중 선수가 부상할 우려가 인정될 때에는 즉시 주심에게 건의할 수 있다. 경기도중 사고로 인하여 경기불능일 경우에는 임원장 및 심판부장에게 보고하여 승부를 결정한다. 경기자는 심판의 권위를 절대존중해야 하며 주심의 판정이나 합의된 판정은 절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3]
실전성
레슬링, 유도, 브라질리언 주짓수, 스모와 달리 손싸움이나 깃싸움이 없고, 상대방의 허리에 묶인 샅바를 미리 잡고 경기를 시작하는 탓에 일각에서는 힘싸움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붙잡은 상황에서 테이크다운 공방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접전 상황에서 유도나 레슬링은 크게 붙잡히지 않으면서 점수를 따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지만, 맞붙잡고 경기를 치르는 씨름의 규칙 때문에 씨름 선수의 균형 감각은 매우 좋은 편이다. 실제로 중심을 잡기 어려운 모래판에서 샅바로 상대방의 손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버티고 반격하는 것은 기술과 균형 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한국의 유도 선수 중 씨름 경력이 있는 이들은 벨트라인을 잡는 씨름 기술을 유도에서 쓰기도 했으며 외국 선수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술에 대응하지 못하여 꽤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이 점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고전 유도소녀만화 《야와라》에서도 언급이 된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실전 싸움꾼이라고 하는 조창조의 경우 자기 사정상 당시의 남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것저것 배웠지만 가장 실전에서 효과적이었던 것은 의외로 씨름이라고 한다. 안 배우면 대응이 안 되는데 순간적으로 상대의 균형을 흔들어서 넘어트리기 좋고 그러면 끝나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래도 손싸움 없이 미리 맞잡은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는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종목에 진출함에 있어 결코 장점이라 볼 수 없었다. 실제로도 일단 잡거나 잡힌 상황에서 넘어트리는 공방 능력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고 가늠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스탠딩 상황에서 매우 취약한 편이었다. 이는 당연한 게 씨름은 서로 붙잡은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아예 필요가 없다. 그런데 다른 무술들은 거리를 둔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씨름 선수들이 거리를 가늠하다가 빈틈을 보여 후속타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씨름은 그 특성상 타격에 대한 대비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타격을 방어하는 능력이 취약한 것도 단점이었다. 그래플링이 타격기를 무조건 압도한다는 통념과 달리 산타를 개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유술 위주인 중국권법이 타격 공방에 있어 취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과거 일본에서도 유도 선수들이 권투 선수들과의 교류에서 안면 타격을 대처하지 못해 크게 밀렸다는 기록이 있다. 씨름 선수들 중에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사실상 유일한 선수가 최강의 리치를 가진 최홍만이었으나 정확히는 씨름 선수 경력이 있는 이들 중에서 그렇다는 거지 전성기 당시 그의 파이팅 스타일은 씨름이 아닌 리치를 활용한 아웃복싱을 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피지컬로 압도하는 스타일이어서 이조차 씨름 선수로서 의미있는 결과는 아니었다. 타 그래플링과 달리 그라운드 공방 역시 존재하지 않아 일단 상대를 넘어뜨리는데 성공하더라도 거기서 무언가를 더 진행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씨름이 유도나 레슬링 등 타 그래플링에 비해 덜 체계적이라는 거지, 씨름 선수는 당연히 운동 좀 하는 일반인보다는 훨씬 강하다. 당장 강호동과 이만기가 정치계, 연예계 인사 중 계속해서 실전 싸움 순위권에 꼽히곤 한다.
참고로 한국내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황명세 선수가 바로 씨름 선수 출신이다. 레슬링, 유도, 씨름, 주짓수(스탠딩 상황) 등의 그래플링 종목에서 상대선수를 넘어뜨리는 메커니즘 자체는 매우 비슷하기에 가능한 일이다.[2]
기술
한국의 씨름 기술은 내국(內局:배지기) · 외국(外局:등지기) · 윤기(輪起:딴족거리) 등으로 구분되어 단조로웠다. 그러나 씨름경기가 민속놀이에서 벗어나 스포츠로 정착, 발전함에 따라 그 기술도 다각적으로 향상되었다.
1983년 9월에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민속씨름협회의 통합에 따라 씨름 기술 용어의 통일 작업을 추진했다. 이 일을 전담할 씨름기술용어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마침내 씨름 기술 54수를 확정하고, 한글학회의 인준을 거쳐 1984년 1월 대한씨름협회 이사회에서 가결, 확정하였다.
씨름 기술의 근본은 심신의 힘, 즉 체력이며, 그 원리는 내부적 힘과 외부적 힘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는 임기응변적 몸의 중심상태를 뜻한다. 씨름에 있어서 공격과 방어와 받아치기의 기술은 상대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그 힘을 이용하는 동시에 자기의 힘을 합쳐서 뜻하는 방향으로 상대의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씨름 기술의 종류는 크게 손기술 · 다리(발)기술 · 허리기술 · 혼합기술로 나누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2]
손 기술
- 앞무릎치기: 바른 자세에서 어깨를 맞대어 상대방의 중심을 쏠리게 하다가, 쏠렸을 때 오른어깨와 오른다리를 빼면서 오른손으로 앞으로 나온 상대방의 오른무릎을 쳐서 앞으로 회전시켜 넘어뜨린다.
- 앞무릎짚기: 오른다리를 크게 뒤로 빼면서 오른손으로 상대의 무릎을 짚고 목과 가슴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고리를 비켜 위로 당기며 무릎의 손을 고정시키며 넘어뜨린다.
- 앞무릎뒤집기: 공격수의 앞다리(오른쪽)가 상대의 오른쪽 발 앞까지 크게 비켜 앞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의 윗몸을 뒤집고, 오른손으로 상대의 무릎을 밑에서 위로 쳐올리면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회전시켜 뒤집으면서 넘어뜨린다.
- 오금당기기: 상대의 고리가 아래로 처져 있고 상대방의 앞무릎이 굽어 있을 때 두 손으로 상대의 오금을 공격수의 두 다리 사이로 끌어당겨 넘어뜨린다.
- 앞무릎짚고 밀기: 바른 기본 자세에서 상대의 오른다리 무릎을 짚고 어깨(오른쪽)를 축으로 하여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 뒷오금짚기: 상대의 자세가 왼다리 자세일 때 상대의 중심을 앞으로 약간 끌어당기면 상대가 뒤편으로 움찔 물러서려고 할 때 상대의 왼다리 오금을 걸어 몸의 중심을 낮추면서 밀어붙인다.
- 옆무릎치기: 상대 자세의 다리(발) 위치가 옆으로 일직선으로 있으면서 상대가 몸 중심을 오른다리에서 왼다리로 옮길 때 오른손으로 상대의 바깥부분을 쳐서 옆으로 넘어뜨린다.
- 콩꺾기: 상대의 앞무릎에 손을 대어 앞무릎치기 동작을 시도하면 상대의 앞다리와 무릎이 펴지거나 굽혀진다. 이 순간 고리를 잡은 손과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금을 동시에 끌어당겨 채서 넘어뜨린다.
- 팔잡아돌리기: 고리를 잡고 있던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팔의 윗부분, 즉 상박을 힘차게 잡아당기면서 오른손바닥으로 상대의 오른무릎 바깥 부위를 차면서 상대를 회전시켜 넘어뜨린다.
- 앞다리들기: 통다리들기라고도 한다. 상대의 몸 중심이 뒤로 처져 있을 때 띠를 잡고 있던 손으로 상대의 고리를 깊숙이 잡고 무릎을 굽혀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상대의 앞다리를 들어젖혀 넘어뜨린다.
- 손짚이기: 상대의 팔이 힘없이 아래로 처져 있을 때 또는 그와 비슷할 때 순간적으로 공격자의 한 손이나 두 손으로 처진 손을 경기장에 짚게 한다.[2]
다리 기술
- 밭다리걸기: 오른쪽 다리로 상대의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걸어 앞으로 당겨 붙이면서 상대의 뒷면으로 중심이 기울어지도록 감아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 밭다리후리기: 밭다리걸기기술과 비슷한 동작에서 상대를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중심을 이동시키면서 공격자의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아 후리치는 모양으로 다리를 감아올리면서 넘어뜨린다.
- 밭다리감아돌리기: 밭다리걸기로 상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재빨리 오른쪽 어깨를 빼면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감겨 있는 오른다리를 올리면서 감아돌린다.
- 안다리걸기: 상대 선수를 앞으로 끌어당겨 붙여 오른다리로 상대의 왼다리를 안쪽으로 감아 끌어붙여 밀어 넘어뜨린다.
- 오금걸이: 맞배지기 싸움에서 힘씨름이 되었을 때 상대의 오른쪽 오금을 안쪽으로 걸어 밀어젖혀 넘어뜨린다.
- 호미걸이: 상대를 무릎 위에 들어올려 아래로 놓는 순간 상대의 발목 뒷부분을 발꿈치로 걸어서 끌어당기면서 젖혀 넘어뜨린다.
- 낚시걸이: 두 선수가 맞배지기로 샅바를 당겨 상체가 붙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공격수가 오른무릎을 밖으로 굽히면서 발목을 상대의 오른발 바깥 발목에 걸어서 낚아 젖혀 넘어뜨린다.
- 뒷발목걸이: 상대가 왼다리자세일 때 오른쪽 다리 발목으로 상대의 왼발 발목을 바깥으로 걸어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 뒤축걸어밀기: 상대를 들어올리지 않고 서 있는 자세에서 오른쪽 발뒤꿈치로 상대의 오른쪽 발뒤꿈치를 걸어당겨 상대를 밀어 뒤로 넘어뜨린다.
- 발목걸어틀기: 샅바를 단단히 잡고 공격자의 오른발목으로 상대의 왼다리 발목을 안으로 걸어 왼쪽으로 틀어 젖혀서 상대를 넘어뜨린다.
- 앞다리차기: 바른 기본자세에서 앞으로 나와 있는 상대의 오른다리 발목을 발바닥으로 오른편에서 왼편 앞으로 차서 낚아채 넘어뜨린다.[2]
허리 기술
- 배지기: 씨름의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공격재간의 하나이다. 바른 자세에서 왼쪽 아래 복부와 왼허리로서 상대를 들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상대의 몸안으로 들어가면서 발은 뒤꿈치를 들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던진다.
- 오른배지기: 바깥샅바잡기 또는 왼어깨자세가 되었을 경우에 오른쪽 허리와 다리가 상대의 몸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의 배를 공격하여 던진다.
- 맞배지기: 서로가 샅바를 단단히 휘어잡고 일어나자마자 몸의 중심을 낮추고 무릎을 굽혀 상대를 정면으로 맞대어 끌어붙여서 뽑아 던진다.
- 엉덩배지기: 바른 기본자세에서 공격자가 어깨로 상대를 미는 순간 오른편으로 공격자의 몸을 크게 회전시켜 엉덩이를 상대의 배 깊숙이 돌려대어 힘차게 당기면서 상대를 돌려 던진다.
- 돌림배지기: 두 선수가 기본자세로 맞잡은 상태에서 팔과 몸의 힘의 중심을 차츰 오른편 위로 올리는 '나선형'회전을 취하면서 상대를 배지기 형태로 돌려 던진다.
- 들배지기: 샅바를 단단히 잡아 무릎을 굽히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약간 앞뒤로 붙여서 상대를 무릎 위까지 높이 들어올려 배지기기술로 연결시켜 던진다.
- 들어놓기: 상대를 무릎 위 또는 가슴 부근까지 들어올려 몸에다 바싹 붙여 허리를 당겨 조이면서 그대로 상대가 엉덩방아를 찧게 하고 힘을 가하여 온몸으로 누른다.
- 들안아놓기: 양 무릎을 굽히면서 상대의 왼편무릎을 안다리 오금 안쪽으로 당겨서 상대를 무릎 위에 높이 들어올리면서 띠를 놓은 오른손으로 상대의 두 다리를 오금을 감는 듯 짚으면서 윗몸으로 밀어붙인다.
- 돌려뿌리치기: 두 선수가 무릎을 맞댄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하여 돌면서 그 탄력과 회전속도에 의하여 상대를 떨어뜨린다.
- 공중던지기: 어깨를 맞잡고 있는 상태에서 빼면서 뒷무릎을 굽혀 약간 앞으로 나오는 동시에 상대를 비껴 앞 위로 당기며 온몸의 힘을 위로 솟구쳐 올리면서 고리와 띠를 잡은 손과 팔을 크게 왼편 위로 올려서 상대를 몸에 붙이지 않고 던진다.
- 허리꺾기: 상대를 끌어당겨 허리띠를 깊숙이 잡고 고리를 잡은 손과 같이 손목을 안으로 굽히면서 허리를 꺾어 당긴다.
- 밀어던지기: 바른 자세에서 뒷무릎을 약간 굽혀서 몸의 중심이 뒤로 기울어졌을 때 샅바를 당기면서 밀어붙인다.[2]
혼합 기술
- 모둠앞무릎차기: 어깨로 상대의 어깨 및 윗몸을 약간 위로 밀어올리는 듯하여 발생하는 힘의 반동을 이용, 상대 몸의 중심이 약간 앞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어깨를 빼면서 오른손으로 상대의 앞무릎을 치면서 오른발바닥으로 상대의 발목 안쪽을 걷어찬다.
- 차돌리기: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상대의 뒷발목 및 다리를 옆으로 후려차며 돌려 던진다.
- 무릎대어돌리기: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발바닥으로 상대편 왼다리 바깥무릎에 대어 오른쪽으로 돌려 던진다.
- 등채기: 허리띠를 잡고 있는 오른편 손이 상대의 어깨너머로 띠를 잡아서 앞으로 힘껏 잡아당기면서 던진다.
- 등쳐감아돌리기: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쪽 바깥 오금을 감는 동시에 등띠를 잡고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왼편으로 중심회전을 하되 감겨 있는 다리를 위로 올리면서 윗몸을 앞으로 굽히면서 크게 회전한다.
- 등쳐감아젖히기: 등띠를 잡은 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고 등쳐감아돌리기의 기술과 반대로 몸을 뒤로 당겨 젖힌다.
- 연장걸이: 바른기본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꼬아 감아서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중심이동하여 돌며 감아 던진다.
- 잡채기: 기본자세에서 순간적 순발력으로 힘껏 샅바를 당겨 오른쪽 허리를 상대의 허리 및 몸에 붙이는 동시에 상대의 허리를 꺾는듯 젖혀 던진다.
- 애목잡채기: 허리띠를 잡고 있던 손으로 상대의 목을 감아 잡채기 기술요령에 의한 방법으로 공격을 시도하여 던진다.
- 들어잡채기: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넣고 상대방을 가슴 가까이 당겨 든 자세에서 왼쪽으로 젖혀 넘어뜨린다.
- 옆채기: 바깥잡기에서 고리를 잡은 왼손을 놓고 왼쪽으로 돌면서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깊숙이 넣고 허리샅바를 당기면서 옆으로 채올려 넘어뜨린다.
- 업어던지기: 상대의 허리샅바를 놓고 상대의 오른팔을 잡고 오른허리를 상대의 허리부분에 밀착시켜 몸을 왼쪽으로 돌려 상대를 업어서 던진다.
- 어깨넘어던지기: 겹쳐잡기 상태에서 상대편 몸 안에 있던 선수가 뒤로 뒤집는 자세로써 상대를 어깨너머로 던진다.
- 자반뒤집기: 기본자세에서 장기전 상태로 돌입하여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등띠를 잡고 위에서 등을 누를 때 상대편 몸 아래 있는 선수가 뒤집어 젖힌다.
- 샅들어치기: 겹쳐잡은 상태에서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가서 머리와 목으로 흔들어 중심을 잃게 하여 뒤로 넘어뜨린다.
- 앞으로누르기: 혼전 끝에 상대의 몸 중심이 앞으로 쏠릴 때 상대의 윗몸을 아래로 눌러 손을 짚게 하거나 앞으로 쓰러지게 한다.
- 꼭뒤집기: 상대의 바깥다리를 피하면서 뒷덜미를 손으로 누르고 왼쪽 다리 고리의 손을 틀면서 오른쪽으로 돌려 넘어뜨린다.
- 빗장걸이: 상대방의 안다리걸기기술이 성립되었을 때 상대의 다리를 사타구니로 죄어붙여 발목으로 상대의 왼다리 오금을 걸어 왼쪽으로 젖힌다.
- 무릎틀기: 기본자세에서 맞배지기 형태로 쌍방 무릎이 굽은 상태에서 쌍방이 오른쪽 부분이 맞닿아 있을 때 상대의 옆무릎을 붙여 왼편으로 틀어젖힌다.
- 덫걸이: 상대가 배지기 공격을 할 때 또는 왼다리를 앞으로 세울 때 오른다리로 상대의 왼다리를 밖으로 걸어당겨 상대를 밀어 덮친다.[2]
샅바 잡기
샅바 잡기는 샅바의 고리부분이 걸린 다리나 샅바를 잡는 팔이 상대의 팔보다 위에 있는 경우에 따라, 보통 왼샅바, 오른샅바, 양샅바로 나뉜다. 체계화된 공식경기에서는 왼샅바가 정식이지만, 지역별로는 각기 다르다. 한국의 경우에는 앉아서 샅바를 잡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한국 프로 씨름의 더잡기 때처럼 서서 샅바를 잡는것이 보통이다.[2]
반격 기술
상대가 공격을 할 때 반격을 하는 기술이다.
- 되치기: 현재까지 유일한 반격기술, 상대방의 공격을 견뎠거나 받고있을때 역으로 기술을 쓴다.[2]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