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무예

위키원
Smhsmh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2월 25일 (수) 15:02 판 (무예 / 무술 / 무도)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무예(武藝)는 전통적으로 신체적 기술과 정신적인 훈련을 통해 자기 수련과 대인 관계에서의 승리 또는 방어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기술이나 예술을 말한다. 무예는 단순한 신체적인 기술 훈련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수련, 철학적인 원칙, 도덕적 가르침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발전해왔다.

개요

무예는 동양권에서는 흔히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전투 기술에서 발전한, 심신(心身)의 단련을 위한 체계적인 수련 방법을 말한다. 무술(武術), 무도(武道), 격투기(格鬪技)로 부르기도 한다. 엄격히 정의하자면, 무예는 싸움의 기술을 뜻하는 격투기나 무기(武技), 무술(武術)보다 더 넓은 의미를 담는 단어로서, 단순히 싸움의 기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예"(藝), 즉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목적과 의의를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도(武道)는 "도리"(道理), 즉 정신 수양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을 함축한다. 현대에는 실질적으로 크게 구분 짓지 않고 거의 같은 말로 사용한다. 하지만 단순히 체력 단련이나 스포츠 등과는 명확히 구분을 짓는다. 무예의 한 측면으로서 겨루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스포츠화시킨 것이 바로 격투 스포츠(Martial Sport 또는 Combat Sport)이다.

세계에는 다양한 무예가 존재하나 타인을 제압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련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어떤 무예는 불교, 도교 등의 종교나 철학적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하며, 다른 어떤 무예는 실전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무술은 일반적으로 대성권에서 유래된 태기권에 고전하는 공수도처럼 한계가 있었으며 현재도 여러 이유로 과거의 원형을 유지하는 무술들은 과거보다 더 발전한 라이벌 무술들과 비교해서도 약한 편이다.[1]

상세

무예는 활 · 칼 · 창 · 총포 등을 이용하여 전투에서 적과 겨루는 행동이다. 고대부터 한국은 신시(神市) 이래로 특별한 구역에 소도(蘇塗)를 세우고 국책으로서 무사들을 양성하였다.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 따르면 소도의 경기에서 선비를 뽑아 학문과 검술 · 궁술 · 기마 · 택견 · 앙감질 · 헤엄 등의 기예를 닦고, 산천을 두루 여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마한의 시월제(十月祭)와 같은 고대 제천행사에서 무예경기가 열렸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소도가 선 곳에는 충 · 효 · 신 · 용 · 인의 오상지도(五常之道)가 있었으며, 소도의 옆에는 반드시 경당(扃堂)을 세우고 미혼 자제들에게 독서와 습사(習射) · 치마(馳馬) · 예절 · 가악(歌樂) · 권박(拳博) · 검술(劍術) 등의 6예를 강습하게 하였다.

이처럼 활을 쏘고 말을 달리고 무술과 검술을 하는 것은 고대의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교육과목으로 실시되었다. 이러한 무예는 고구려 고분인 삼실총 · 쌍영총 · 무용총 · 각저총 등의 벽화에 나타나 있는 기사도(騎射圖) · 수렵도(狩獵圖) · 무인도(武人圖) · 개마도(鎧馬圖) · 기전도(騎戰圖) · 택견 · 씨름 등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씨름 · 택견 · 궁술 등으로 분류되지 않은 종합무예였으며, 살상과 놀이 및 무용 등의 요소를 고루 갖춘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후반 총포와 화약의 사용으로 무예종목들의 효용성이 떨어져 민속놀이로 변형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우리의 무예비법이 실전되고 중국의 무예와 권법이 널리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활이나 칼 등의 무기를 이용한 무예는 개인적인 수련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군대조직에서도 군사적인 효과가 높았다.

국가정책에 따른 각 시대별 무예의 실태를 보면, 고려 1384년(우왕 10)에 중낭장 곽해룡(郭海龍)이 건의하여 무예도감을 설치하고 무예로 무인을 선발하였으며, 조선 초기에는 1392년(태조 1) 훈련관(訓鍊觀)을 설치하였고, 1467년(세조 13) 훈련원(訓鍊院)으로 개칭하여 군사에게 무예를 훈련시켰다. 그러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까지의 무예로서는 궁사(弓射)에 속하는 몇 종류에 불과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얻어 보고 명나라 장수들에게 그 기법을 물어서, 장창(長槍) · 당파(鏜鈀) · 낭선(狼筅) · 쌍수도(雙手刀) · 등패(藤牌) · 곤봉(棍棒)의 여섯 가지 무기를 쓰는 기술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장창은 길이 1장 5척의 나무자루 끝에 창날을 물린 긴 창으로 보졸이 사용한다. 당파는 끝이 세 갈래로 되어 있는 7척 6촌의 삼지창이다. 낭선은 1장 5척 길이의 창으로서 대나무자루 앞쪽에 날카롭게 날을 세운 9 ∼ 11층의 가지가 붙어 있다. 쌍수도는 5척 칼날에 자루길이가 1척 5촌이 되는 칼을 양손으로 쥐고 사용한다. 등패는 등나무 줄기로 만든 둥근 방패와 요도(腰刀) · 표창(鏢槍)을 가지고 화살과 돌을 막으며 돌진하여 적을 공격한다.

곤봉은 길이가 7척이 되는 단단하고 둥근 나무 끝에 칼날을 붙인 무기이다. 1594년(선조 27) 2월에 창설한 훈련도감에서는 이 무예6기를 군사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궁술에 숙달한 무관들은 창검을 사용하는 새로운 무예를 기피하였다.

병조(兵曹)에서는 "우리 나라 풍속이 오로지 활쏘기만 익혀왔으므로 창검을 사용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갑자기 치고 찌르는 재주를 익히게 하여도 실정에 맞지 않아서 효과가 없습니다. 지금 이들 무관에게 이미 이룬 재주를 버리고 이루기 어려운 새기술을 익히게 하니, 활을 잡고 화살을 쏘게 할 경우 모두 명중시킬 수 있는 무사이지만, 칼을 잡고 머뭇거리게 될 경우 오히려 쓸모없는 둔한 군졸이 될 것입니다." 하고 아뢴 데 대하여, 선조는 일을 그르치지 말고 더욱 힘써 훈련시키라고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

효종 때는 임금이 친히 군사훈련을 자주 검열하고 장려해서 무예가 많이 숙련되기에 이르렀고, 1749년(영조 35)에 와서 죽장창(竹長槍) · 기창(旗槍) · 예도(銳刀) · 왜검(倭劍) · 교전(交戰) · 제독검(提督劍) · 본국검(本國劍) · 쌍검(雙劍) · 월도(月刀) · 협도(挾刀) · 권법(拳法) · 편곤(鞭棍)의 12기(技)를 더하여 앞서 배운 6기와 합한 십팔기무예(十八技武藝)로써 군사를 훈련하였다.

1790년(정조 14) 『무예도보통지』를 이룩함에 있어서, 말을 타고 행하는 무예인 기창(騎槍) · 마상쌍검(馬上雙劍) · 마상월도(馬上月刀) · 마상편곤(馬上鞭棍) 4기와 격구(擊毬) · 마상재(馬上才) 2기를 더 보태어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로 정비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이후 칼을 쓰고 창을 사용하는 격자지법(擊刺之法) 무예가 본격적으로 행하여지기 시작하였다. 임진왜란 후 조총(鳥銃)을 쏘는 군사를 양성하여 포수(砲手)라 하고, 활을 쏘는 궁병(弓兵)을 사수(射手), 창검병(槍劍兵)을 살수(殺手)라 하여 이들 군사를 통틀어 삼수(三手)라고 불렀다.

국가에서 무관을 선발하는 무과시험에는 이십사반무예로서 기창 · 격구 · 마상월도는 장교와 기병에 한하여 응시하게 하였으며, 보병에게는 쌍검 · 제독검 · 월도 · 왜검 · 교전 · 본국검 · 예도 · 장창 · 기창 · 당파 · 낭선 · 등패 · 권법 · 편곤 · 협도 · 곤봉 · 죽장창이 관무재초시(觀武才初試)의 과목이었다. 이 밖에 고대의 부여 · 고구려 때부터 행하여왔던 무예인 활쏘기에 속하는 목전(木箭) · 철전(鐵箭) · 편전(片箭) · 기사(騎射) · 유엽전(柳葉箭) · 기추(騎芻) 등의 종목이 들어 있고, 포수와 무예포수 선발에는 조총 3발을 사격하는 시험을 과하였다.

목전 · 철전 · 편전 · 유엽전 등은 화살의 종류로서 목적물에 따라서 각기 용도가 달랐다. 이십사반무예로써 관무재초시 과목의 제식을 보면, 쌍검은 보졸이 양손에 요도를 하나씩 가지고 행하는 검술이고, 제독검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군사가 전하였다는 검법으로서 보졸이 요도를 사용하는 14자세가 있다. 월도는 칼날이 초승달 모양인 긴 칼을 가지고 보졸이 사용하였으며 32자세가 있다.

왜검은 임진왜란 때 왜병이 하던 검술을 받아들인 것으로 토유류(土由流) 30자세, 운광류(運光流) 25자세, 천류류(千柳流) 38자세, 유피류(柳彼流) 18자세가 있다. 이 왜검으로 적과 상대하는 교전 25자세가 따로 있다. 본국검은 신라 때 황창(黃倡)의 검술로 전하는 독특한 검법의 32자세이다. 예도는 칼날의 길이가 3척 3촌, 자루길이가 1척의 끝이 뾰족한 단도로서 27자세가 있다.

기창은 노란색이나 빨간색의 작은 기를 달았으며 짧은 창으로서 의장병이 사용하는 무기이다. 협도는 자루의 길이 7척, 칼날 3척, 무게 4근의 큰 칼을 가지고 보졸이 행하는 검술이며, 죽장창은 길이 20척에 날카로운 창날이 달린 대나무로 만든 긴 창이다. 편곤은 길이 8척 9촌의 곤봉 위쪽에 쇠고리를 붙이고, 여기에 길이가 2척 2촌 5푼이고 두께는 곤봉과 같은 쇠막대기를 연결한 도리깨 같은 무기이다.

권법은 맨손으로 행하는 격투 기술로서, 무예의 입문으로 행하는 32자세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예가 실제전투에는 실용되지 못하였고, 다만 군사훈련이나 무과시험과목으로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말기까지 지속하였으나 서구의 선진문명이 밀려오면서 신식 총포의 위력에 눌려 무예는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무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면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택견 · 궁술 등의 무예뿐만 아니라 오늘날 탈춤 · 살풀이 등의 각종 무용동작들이 기(氣)를 모았다가 푸는 무예의 동작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즈음에 와서 전통무예의 재현을 통하여 선조들의 기상과 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2]

자세와 동작

무예에서는 정확한 자세와 동작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효과적인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몸의 균형과 조절이 필수적이다. 자세와 동작의 정확성은 기술의 효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훈련을 통해 몸의 조절과 균형을 개선하고, 정확한 자세와 동작을 확보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전략적으로 승부를 이끌어나가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정확한 자세와 동작은 기술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승부의 결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바른 자세와 움직임은 기술의 실행을 더욱 정확하게 하고, 상대에게 더 큰 압박을 줄 수 있다. 또한, 정확한 자세는 부상의 위험을 줄이고, 플레이어의 체력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무예에서는 자세와 동작의 훈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실전에서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정확한 자세와 동작은 플레이어의 자신감을 높이고, 경기에서의 능동적인 행동을 촉진한다. 따라서 무예와 무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항상 정확한 자세와 동작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3]

기술과 전략

무예는 그 다양한 기술과 전략을 통해 특징화된다. 이들은 타격 기술, 방어 기술, 그리고 상대를 제압하는 전략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기술은 특정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이를 플레이어는 다양한 상황에서 습득하고 훈련해야 한다.

타격 기술은 상대를 공격하는 데에 사용되며, 강력한 타격과 정확한 명중률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상대의 방어를 뚫고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데 필수적이다. 반면에 방어 기술은 상대의 공격을 막고 반격할 기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상대를 제압하는 전략은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승부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는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적절히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따라서 무예는 기술적 완성도와 전략적 사고의 결합이 승부의 핵심이 되며, 이를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켜야 한다.[3]

정신적 요소

무예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 역시 훈련되어야 한다. 이는 집중력, 인내심, 그리고 자기 통제와 같은 요소들이 승부를 좌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레이어는 뛰어난 기술만큼이나 정신적인 강도를 길러야 한다. 집중력은 상대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며, 경기 중 무분별한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인내심과 자기 통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이는 승부에서 감정적인 흥분을 통제하고,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무예와 무술의 훈련은 몸과 마음을 모두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훈련 과정에서 몸을 단련하는 것만큼이나 정신적인 강도를 갖추는 데에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함께 강력한 정신적인 강도를 보유하여 경기에서 최상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3]

목적

  • 자기 방어: 위기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습득한다. 무예는 실생활에서의 위협을 대비하고,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신체 단련: 체력과 근력을 강화하고, 전반적인 신체 건강을 유지한다. 규칙적인 무예 훈련은 근육 발달, 심폐 기능 강화, 유연성 향상 등에 도움을 준다.
  • 정신 수양: 집중력, 인내심, 자기 통제 등의 정신적 요소를 강화한다. 무예는 정신적 수양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기 통제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 도덕성과 윤리: 올바른 행동과 판단을 위한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실천한다. 무예는 예의, 존중, 겸손 등의 덕목을 가르치며, 도덕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 경쟁과 스포츠: 다양한 대회와 경기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하고,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무예는 스포츠로서 경쟁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문화와 전통 보존: 무예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한다. 무예는 각 나라의 문화역사를 반영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자기 개발: 개인의 자신감을 높이고, 리더십과 협동심을 기른다. 무예 훈련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 개인의 성장을 도모한다.
  • 평화와 교류: 국제적인 문화 교류와 평화로운 관계를 촉진한다. 무예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 사이의 이해와 교류를 돕고, 평화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무예 / 무술 / 무도

무술(武術), 무예(), 무도()는 모두 전통적인 전투 기술과 철학적 가치와 관련된 용어이지만 각각은 그 목적과 초점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먼저, 무술은 '전투 기술' 또는 '전투 예술'을 의미하며, 주로 실전에서의 전투와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 무술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성과 효율성에 있다. 상대를 제압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 요소에 집중하며, 기술 자체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대의 복싱이나 MMA와 같은 격투기, 또는 전통적인 검술과 궁술이 무술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무술은 전투 상황에서의 생존과 실질적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무예는 '무의 예술'이라는 뜻으로, 무술에서 한 단계 나아가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예술성과 전통적인 미적 가치를 포함한다. 무예는 전투 기술을 단순히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키며, 기술의 연마 과정에서 전통적인 의식과 아름다움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 무예인 택견이나 중국의 태극권은 기술적 정밀함과 함께 독특한 미적 동작이 강조된다. 무예는 무술에 비해 기술과 예술적 요소를 융합시켜, 단순한 싸움의 기술을 넘어서 미적, 전통적 가치를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무도는 '무의 길'이라는 의미로, 단순히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넘어 정신적 수양과 인격 완성을 목표로 한다. 무도는 철학적이고 내면적인 수양에 중심을 두며, 기술 습득을 넘어도(道)를 통해 수련자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일본의 유도, 검도, 한국의 태권도와 같은 무도는 기술적인 측면보다 정신적 균형과 인격 함양을 중시하며, 수련 과정을 통해 수련자가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무도는 기술의 습득이 목적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자신의 삶과 내면을 탐구하고 완성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 무예
  • 예술적 표현과 기술 연마
  • 미적 가치와 전통을 유지
  • 기술과 예술의 융합
  • 택견, 우슈, 태극권
  • 무술
  • 실전적인 전투기술
  • 생존, 싸움의 효율성
  • 실용성 강조
  • MMA, 복싱, 격투기
  • 무도
  • 철학적 정신적 수양
  • 자기완성, 인격 함양
  • 수련을 통한 정신적 성장
  • 유도, 검도, 태권도

이 세 가지는 개념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상호 연결되어 있다. 무술은 실전적이고 효율적인 기술로 시작하여, 무예로 발전하면서 예술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가 추가되며, 궁극적으로는 무도로 승화되어 수련자의 정신적, 철학적 성장을 추구한다. 이는 각 수련자가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어느 단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무술, 무예, 무도는 기술, 예술, 철학의 연속체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의 성장과 전통의 계승이라는 다층적인 가치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무술, 무예, 무도는 각각 실용적 전투 기술, 예술적 표현, 철학적 수양이라는 초점의 차이를 가지고 있지마, 그 뿌리는 동일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연마를 넘어, 인간의 정신적 성장과 전통의 계승이라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며,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각주

  1. 무예〉, 《위키백과》
  2. 무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3. 3.0 3.1 3.2 무예와 무술의 역사와 기술적 특징〉, 《티스토리》, 2024-04-02

참고자료

같이 보기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무예 문서는 스포츠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