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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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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팅(skating)은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이나 평탄한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운동을 말한다. 스케이팅은 다양한 형태로 나뉘며, 취미, 스포츠, 또는 공연 목적으로 즐길 수 있다. 스케이팅은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뉘며, 그 중 일부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한다.

개요

스케이팅은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를 지치는 일 또는 이를 행하는 스포츠를 말한다. 속도를 겨루는 스피드 스케이팅과 동작의 아름다움과 기술을 겨루는 피겨스케이팅, 짧은 트랙에서 순위를 겨루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으로 구분된다.[1]

유래와 역사

스케이팅의 역사는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석기시대의 동굴 유적지에서 동물의 뼈를 이용하여 만든 스케이트가 발견되었는데, 지금과 같은 활주 용구가 아니라 얼음판 위에서 운반 용구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무 바닥에 쇠날을 달아 타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고, 1676년에 이미 네덜란드에서 경주가 행해지고 있었으며,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모았다.

1863년 노르웨이에서 최초의 근대적 스피드스케이팅 경주가 열렸고, 1892년 7월 네덜란드의 주도로 국제스케이팅연맹(ISU)이 결성되었다. 이를 계기로 경기와 더불어 일반인 사이에도 스케이트가 널리 보급되어 대중화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24년에는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피겨스케이팅은 19세기 중 · 후반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1850년 에드워드 부시넬(Edward Bushnell)이 금속제 날을 부착한 스케이트를 개발하였고, 1860년대 중반에 발레 교사인 잭슨 헤인즈(Jackson Haines)가 발레에 기반을 둔 예술적 동작을 고안하면서 현대 피겨스케이팅의 기반이 다져졌다. 1891년 제1회 유럽피겨선수권대회가 열렸고, 1892년 국제스케이팅연맹(ISU)이 결성된 뒤 189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1회 세계피겨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기존의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 비하여 111.12m의 짧은 트랙에서 경기를 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으로서 북아메리카에서 발생하였고, 영국오스트리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성행하였다. 동계올림픽에서는 1988년 제15회 캘거리 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뒤 1992년 제16회 알베르빌 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1]

종목

스피드스케이팅

스케이팅 종목은 크게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으로 구분된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동계스포츠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종목이자 가장 대표적 종목이기도 하다. 속도를 겨루는 경기로서 순발력 · 가속력 · 근지구력 · 민첩성을 필요로 한다. 2명의 선수가 한 조를 이루어 더블트랙에서 경주하는 타임레이스가 일반적 경기 방식이다. 트랙의 표준규격은 일주 거리 400m에 각각 너비 5m의 이중 활주로(인코스와 아웃코스)를 갖춘 타원형이다. 세부 종목은 동계올림픽의 경우, 남자는 남자 500m · 1000m · 1500m · 5000m · 1만m와 단체 추적, 여자는 500m · 1000m · 1500m · 3000m · 5000m와 단체추적 등 총 12종목이 있다.[1]

피겨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은 빙판 위를 활주하며 여러 가지 동작으로 기술의 정확성과 율동의 아름다움을 겨루는 종목이다. 19세기까지 남자 선수만 경기를 치르다가 1906년부터 남녀 종목이 따로 열리게 되었다. 종목은 싱글과 페어, 아이스댄싱으로 나누어지며, 싱글과 페어는 각각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으로 구성된다. 아이스댄싱은 규정 연기인 컴펄서리댄스와 오리지널댄스 그리고 프리댄스로 구성된다. 쇼트프로그램은 제한 시간 안에 점프 · 스핀 · 스텝 등 규정된 과제를 포함하여 연기하여야 하고, 프리스케이팅은 제한 시간 안에 자유롭게 연기하되 정해진 횟수의 스핀 · 스텝 · 스파이럴을 포함하여야 한다.

페어는 한 쌍의 남녀 선수가 똑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이 기본이며,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리프트, 남자 선수의 손을 잡은 여자 선수가 빙판과 거의 수평을 이루도록 누운 자세로 회전하는 데스스파이럴 등의 기술이 특징이다. 아이스댄싱은 남녀 선수가 한 쌍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페어와 유사하지만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어깨 높이 이상 들어올릴 수 없고, 경기중 남녀 선수가 양팔 길이 이상으로 떨어지면 감점되는 등의 차이점이 있다.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의 국제 규격은 56×26m 이상 60×30m 이하의 직사각형이다.[1]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서로 순위를 가리기 때문에 기록을 중시하는 롱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 비하여 테크닉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종목이다. 순간 스퍼트와 상대 선수를 견제하는 팀플레이, 레이스 운영 등이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동계올림픽에서는 남녀 500m · 1000m · 1500m와 남자 5000m 계주, 여자 3000m 계주 등 8종목의 경기를 치르며,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대회에서는 여기에 남녀 3000m 개인 경기가 추가된다.[1]

스케이트와 선수복장

스피드용 · 피겨용 · 쇼트트랙용의 3가지가 있다. 스피드용 날은 얇은 강철로 되어 있고, 이것을 물고 있는 원통의 튜브도 경금속이다. 피겨용은 스피드용처럼 길지 않으나, 회전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빙면에 접하는 부분의 양끝이 위로 약간 휘어져 있다. 쇼트트랙용은 스피드용과 달리 튜브가 밀폐되고 날이 약간 짧으며, 뒷날의 끝은 뒤따르는 선수의 안전을 위하여 지름 5㎜ 이상으로 둥글게 깎여 있어야 한다.

스케이트의 종류

스피드스케이팅의 경기복은 선수 몸의 자연스런 형태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어떤 형태라도 몸매와 다르게 보이는 것을 삽입하거나 부착해서는 안된다. 피겨스케이팅에서 여자선수는 스커트, 남자선수는 긴 바지를 반드시 입어야 하며, 꼭끼는 옷(타이츠)이나 소매가 없는 상의는 허용되지 않는다. 장신구나 소품도 허용되지 않으며, 부적합한 의상을 착용한 경우에는 감점 요소가 된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경기중에 동일한 국가의 모든 선수들은 개인 종목이나 계주에 관계없이 동일한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경기복의 허벅지 바깥부분에 국가 이름이 기재되어야 하며, 글자는 5㎝ 이상이어야 한다. 세계선수권대회나 동계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제공하는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선수번호가 표시된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1]

동계올림픽

  • 스피드스케이팅은 1924년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부터 정식정목으로 채택되었다. 세부 종목은 남자 500m · 1000m · 1500m · 5000m · 1만m와 단체추적, 여자 500m · 1000m · 1500m · 3000m · 5000m와 단체추적 등 총 12종목의 경기를 치른다. 남녀 단체추적은 2006년 제20회 토리노 대회부터 정식종목에 추가되었다. 세부 종목별 예선 통과 조건은 500m는 남자 36.00초 여자 39.50초, 1000m는 남자 1분 11.00초 여자 1분 18.50초, 1500m는 남자 1분 49.00초 여자 2분 00.00초, 여자 3000m는 4분 15.50초, 5000m는 남자 6분 35.00초, 여자 7분 20.00초, 남자 1만m는 13분 30.00초이다. 단체추적은 3명이 한 팀을 이루어 2개 팀이 각각 트랙의 반대편에서 동시에 출발한 뒤 마지막 3번째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기록을 측정하여 순위를 가리는데, 남자는 8바퀴, 여자는 6바퀴를 돈다.
  • 피겨스케이팅은 190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4회 하계올림픽 때 첫선을 보인 뒤, 1924년 동계올림픽이 창설되면서 싱글과 페어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아이스댄싱은 1976년부터 정식종목에 추가되었다. 남녀 싱글과 페어, 아이스댄싱 등 4개 세부 종목으로 경기를 치르는데, 최대 참가 인원은 남녀 싱글이 각각 30명, 페어는 20쌍, 아이스댄싱은 24쌍이다. 남녀 싱글과 페어 종목은 각각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이틀에 걸쳐 치르고, 아이스댄싱은 컴펄서리댄스 · 오리지널댄스 · 프리댄스를 3일에 걸쳐 치른다. 2002년 제19회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 발생한 판정 시비를 계기로 2004년부터 신채점제가 도입되어 국제빙상경기연맹이 승인하는 모든 국제대회에 적용되고 있다.
  •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1988년 캐나다의 캘거리에서 열린 제15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뒤 1992년 제16회 알베르빌 동계올림픽부터 남자 1000m와 5000m 계주, 여자 500m와 3000m 계주 등 4종목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94년 제17회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 남자 500m와 여자 1000m가 추가되었고, 2002년 제19회 솔트레이크 동계올리픽부터 남녀 1500m가 추가되어 현재 남녀 500m · 1000m · 1500m와 남자 5000m 계주, 여자 3000m 계주 등 총 8종목의 경기를 치른다.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대회에서는 여기에 남녀 3000m 개인 경기가 추가된다. 각 종목은 예선 · 준준결승 · 준결승 · 결승전을 치르는데, 500m와 1000m의 단거리는 4명이, 1500m 이상의 장거리는 6 ~ 8명이 동시에 출발하며, 각 경기에서 상위 2 ∼ 3명의 선수가 다음 경기에 진출한다.[1]

국제대회

동계올림픽 외에 국제빙상경기연맹이 주관하는 국제대회는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세계올라운드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 세계종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 세계스프린트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 세계주니어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가 있다. 피겨스케이팅 종목은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 세계주니어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세계싱크로나이즈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 유럽싱크로나이즈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 유럽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 4대륙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와 그랑프리피겨스케이팅파이널,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은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 세계주니어쇼트트랙선수권대회 · 유럽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 유럽쇼트트랙선수권대회가 있다.[1]

한국의 스케이팅

한국에 스케이트가 보급된 것은 19세기 이후이며, 1908년 5월 26일 현동순(玄東淳)이 미국 선교사 길레트(P.Gillett, 한국명 吉禮泰)가 귀국하기 위하여 가구를 경매할 때 스케이트를 처음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스케이트는 지금의 것과는 달리 보통의 구두 밑창에 짧고 두꺼운 날을 나사로 고정시킨 것이었다. 1920년 2월 8일 한강 인도교 부근에서 한국내 최초의 빙상경기대회라고 할 수 있는 전조선스케이팅경기대회가 열렸고, 광복 후 1948년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조직되어 그해에 열린 제5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참가하였다.

이후 국제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다가 1976년 이영하가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빙상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후 배기태가 1990년 세계빙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세계남녀스프린트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고, 1992년에는 김윤만이 알레르빌 동계올림픽 1000m에서 한국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이강석이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2007년 세계종별선수권대회 5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였고, 2009년에도 같은 대회의 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 이규혁도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2007년과 2008년, 2010년 3차례 종합우승을 3회 차지하였고, 여자 선수로는 이상화가 2010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한국 최초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이승훈이 남자 5000m 장거리에서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을, 모태범이 남자 500m 단거리에서 한국 최초의 금메달을, 이상화가 여자 500m 단거리에서 한국 여자 빙속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피겨스케이팅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27년으로, 이일(李一)·연학년(延鶴年) 등 5 ∼ 6명이 서울피겨스케이팅구락부를 조직한 것이 그 시초였다. 그러나 8·15광복 전까지는 한국내대회조차도 제대로 열린 적이 없을 만큼 일부 호사가들의 여기(餘技)에 지나지 않았다. 1954년 제35회 전국체육대회부터 피겨부가 포함되었고, 1955년 제10회 전국빙상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되었으며, 1956년 제1회 남녀 종별피겨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동계올림픽에는 1968년 제10회 그로노블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제무대에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김연아의 등장을 계기로 일약 피겨스케이팅 강국으로 떠올랐다. 김연아는 2004년 ISU의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2위를 기록하여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시니어 대회에서도 2006년과 2007년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연속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2009년 ISU 4대륙선수권 금메달,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석권하였다. 특히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총점 207.71을 기록하여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200점을 돌파하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팅이 큰 인기를 모음으로써 종목의 기반도 강화되고 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1983년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남녀 1명씩 출전하였으며, 1985년 국가대표팀이 본격적으로 구성되었다.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제16회 알베르빌 대회에서 김기훈이 남자 1000m에서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남자 50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하였다. 2006년 제20회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안현수와 진선유과 각각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한국 최초로 올림픽 단일대회 3관왕에 오르는 등 쇼트트랙 최강국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2006년 동계올림픽까지 한국이 획득한 17개의 금메달은 모두 쇼트트랙 종목에서 나온 것이다.[1]

동영상

각주

  1. 1.0 1.1 1.2 1.3 1.4 1.5 1.6 1.7 1.8 스케이팅〉, 《두산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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