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현
오키나와현(일본어: 沖縄県, 오키나와어: うちなー 우치나)은 일본 최남단에 있는 현으로 오키나와섬을 포함한 류큐제도와 다이토제도를 관할한다. 현청 소재지는 오키나와섬의 가장 큰 도시인 나하시(那覇市)이다.
오키나와현은 일본열도의 남쪽에서 대만 방향으로 뻗어 있는 류큐제도와 그 동쪽의 다이토제도를 관할하는 일본의 행정구역이다. 기후는 야에야마제도에선 최한월 평균 기온이 18℃ 이상 되는 열대기후이며 다른 지역은 온대기후를 보인다.
역사적으로는 메이지시대의 류큐의 본토 병합까지 일본과 청나라 양쪽의 문화가 혼합되었다. 그 때문에 본토의 도도부현과는 다른 문화와 풍속을 유지하고 있으며 관광산업이 지역 주민의 소득 대부분을 이룬다. 일본에서 장수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식생활 면에서 전후 미국의 통치 기간의 영향을 받아 평균 수명이 감소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이 점령한 이후 1972년까지 이른바 오키나와 반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국의 통치를 받았다. 미군의 일본 복귀 후에도 미군 기지가 상주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오키나와현의 중요한 현안 문제로 남아 있다.
개요[편집]
역사[편집]
과거 이곳은 류큐 왕국을 이뤘던 곳이었다. 고려(태조 왕건) 시대에 고려에도 속국임을 자처한 곳이다. 삼별초 세력이 자리를 잡은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나중에 사쓰마 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메이지 시대(1879년)에는 완전히 일본 제국에 병합되었다. 태평양 전쟁기간에는 구 일본군과 미군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의 강요로 인해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벌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는 미국의 지배를 받다가 1972년 오키나와 반환으로 일본에 다시 편입되었다. 미군은 이곳을 일본에 편입했지만 일본 내 대다수의 미군 기지가 이곳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지리[편집]
오키나와현은 40개의 유인도와 수많은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0.01제곱킬로미터 이상의 면적을 가진 섬은 160개이다. 최동단으로부터 최서단까지의 거리는 약 1,000킬로미터이며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의 거리는 약 400킬로미터이다.
- 최동단 : 기타다이토섬(北大東島)
- 최서단 : 요나구니섬(與那國島)
- 최남단 : 하테루마섬(波照間島)
- 최북단 : 이오토리섬(硫黄鳥島)
낙도가 많으며 낙도의 의료 환경은 인력 부족에다 경제적 이유로 인해 부족한 실정이며 병원이 없이 진료소만 설치되어 있는 섬도 많다. 그 때문에 낙도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응급 환자나 중병에 걸린 환자의 공수는 육상자위대라든가 일본 해상보안청에서 시행한다. 미야코섬(宮古島)와 이시가키섬(石垣島)에는 현립병원이 있어 오키나와섬이 먼 낙도에서 급히 공수될 때 가는 경우가 많다.
현청 소재지인 나하시의 반경 1,000 km 내에는 타이베이, 후쿠오카, 상하이, 푸저우가 있고, 1,500 km 내에는 오사카, 서울, 마닐라, 홍콩등이 있어 동북아시아·동남아시아·일본과의 중간 지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열대에서 생물에게 매우 적합한 기후를 타고 나 귀중한 동식물이 많다. 이리오모테섬과 이시가키섬의 일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리오모테살쾡이 등의 귀중한 생물이 많이 있다. 덧붙여 일본의 중요 습지 500개 가운데 54개가 오키나와 현내에 있다.
연간 강수량은 많지만 장마와 태풍에 의한 강우가 많고 매년 편차가 크며 큰 하천이 없이 곧바로 바다로 유입되는 양이 많기 때문에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1946년에 비해 인구가 2배 이상으로 급증함에 따라 물 부족은 더욱 심화되었다. 단수가 일상화되었으며 1981년부터 1982년 사이의 최악의 갈수기에는 326일 단수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 때문에 지붕 위에 물탱크를 설치한 가정이 많다. 그러나 수도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단수가 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일본의 영토이지만 본토에 비해서 지진이 적은 편에 속한다.
야에야마 제도는 열대 기후로 열대 우림 기후에 속하며 그 이외의 지역은 온대 기후에 속한다. 오키나와 현 각 지방 모두 고온 다습하고 연 강수량은 2,000밀리미터 이상이며 연평균 기온은 약 22도이다. 오키나와 지방은 동아시아에서 생겨난 많은 태풍이 접근한다.
대한민국의 해수욕장들이 7월 상순에 개장하여 8월 말에 폐장하는 반면 오키나와 지역의 해변들은 3월 중순부터 11월 하순까지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서 대한민국을 비롯한 중국,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77년 2월 17일에 구메섬(久米島)의 측후소에서 처음으로 눈이 관측되었다(실제로는 진눈깨비였지만 분류상은 눈과 동일 취급으로서 기록된다). 이 기록은 일본 기상청이 공식으로 발표한 강설 기록인 것과 동시에 오키나와 현의 기상 관측사상 최초의 적설 기록이다.
지역[편집]
오키나와 제도(沖縄諸島)[편집]
- 나고시(名護市)
- 구니가미군(国頭郡)
- 시마지리군(島尻郡)
- 우루마시(うるま市)
- 오키나와시(沖縄市)
- 기노완시(宜野湾市)
- 우라소에시(浦添市)
- 나카가미군(中頭郡)
- 나하시(那覇市) - 현청 소재지.
- 도미구스쿠시(豊見城市)
- 이토만시(糸満市)
- 난조시(南城市)
사키시마 제도(先島諸島)[편집]
- 미야코제도(宮古諸島)
- 야에야마제도(八重山諸島)
경제[편집]
오키나와의 경제는 지역 특성상 3차산업 위주로 한다. 일본 본토의 3차산업의 비율은 70% 남짓인 반면 오키나와는 무려 80%가 넘어간다. 특히 3차산업 중 레저/관광업의 비중이 매우 높다. 또한 제조업이 매우 열악하여 대규모의 고용을 할 수 없다보니 타 지자체에 비해 공공 사업의 비중이 무척이나 큰데 이러한 일자리들 대다수가 비정규직 위주로 하다보니 오키나와의 비정규직 비중은 무려 40%가 넘어간다. 주일미군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은데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일본인의 숫자가 무려 1만명 좀 안되는 숫자다.
2차 산업의 비중은 일본에서 가장 낮다. 일본 본토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라 2차 산업의 비중이 20%를 넘기는데 오키나와의 2차 산업 비중은 20%가 채 안된다. 특히 규모있는 제조업체가 매우 적은편인데 그나마 있는 규모있는 제조업체는 오리온 맥주, 오키나와 코카콜라 보틀링, 오키나와 호멜, 류큐 시멘트, 오키나와 제분, 오키나와 햄, 블루실 등 몇 없다.
그 외의 제조업으로는 아와모리, 도자기, 빈가타(紅型), 칠기, 유리 공예와 같은 지방 특산품을 만드는 소규모 작업장들이 많이 있다.
한편 건설업의 비중은 본토에 비해 상당히 높은데, 미군기지 건설에서 시작해서 관광지 개발, 나하시 신도심 개발 그리고 유적 복원 등 일손이 필요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1차 산업도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에서 중점적으로 밀어주던 사탕수수는 점점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현내 어항(漁港)으로는 이토만시의 이토만항과 이시가키시 리토항이 현 내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축산업으론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오키나와 특성상 돼지 사육이 활발한 편이다. 특히 오키나와 재래종인 아구(アグー)가 유명하다.
2019년 기준 오키나와현은 본토에서 멀리 있는 지역 도서인 관계로 현내의 GDP는 4조 2,820억 엔(406억 달러)과 gnp 1인당 소득 수준은 287만 엔(27,594 달러)으로 일본에서 가장 낮다.
주일미군[편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으며, 지금도 주일미군의 대부분이 여기에 주둔하고 있다. 오키나와 출신 학자 아라사키 모리테루에 따르면, 오키나와는 일본 영토의 0.6%에 지나지 않는데 75%의 미군 기지가 오키나와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기지는 오키나와현 전체면적의 8%, 오키나와 인구의 90%이상이 사는 오키나와 본섬의 15%를 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군 기지로 인한 평화와 안전 보장이라는 수혜는 누릴 수 있어도 미군 기지로 인한 현실적인 피해와 불이익은 거부한다는 태도를 암암리에 고수하고, 미군 기지의 존재로 인한 피해와 불편은 오키나와에 떠넘기고 있다. 일본의 미군기지 중 절대다수가 오키나와에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하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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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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