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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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섬은 앤틸리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쿠바 공화국 영토의 94.6%를 차지하며 수도 아바나는 섬 북쪽 해안에 있다. 길이는 1,233km, 면적은 105,006km², 쿠바섬과 인근 섬들로 이루이진 쿠바는 아메리카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이다.[1]
개요[편집]
쿠바섬은 카리브해 최대의 섬나라로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섬이다. 쿠바섬은 카리브해 북쪽에 있으며 주변으로 카리브해, 멕시코만, 대서양에 둘러싸여 있다. 북으로는 미국 플로리다반도, 서쪽에는 멕시코 본토, 동쪽에는 아이티, 남쪽으로는 자메이카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제1차 항해 때 쿠바섬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1514년 스페인이 식민지 체제를 확립하였다. 1868년부터 1878년까지 이어진 10년 전쟁, 1895년의 제2차 독립전쟁,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을 거쳐 파리강화조약으로 독립했다. 미국의 군정 후 1902년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종은 혼혈인(메스티소, 물라토) 51%, 백인 37%, 흑인 11%, 동양계 1%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기 전에는 타이노인 같은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 스페인인이나 아프리카 흑인들과 혼혈되면서 현재는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하다. 쿠바섬의 남동부 해안에는 미국이 관리하는 관타나모만 해군기지가 있으며 이 지역은 섬 전체의 0.1%를 차지한다.[2][3]
지리[편집]
쿠바섬은 카리브해 북쪽에 있으며 주변으로 카리브해, 멕시코만, 대서양에 둘러싸여 있다. 쿠바 북쪽으론 미합중국 플로리다주와 바하마, 동쪽으로는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와 아이티, 서쪽에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남쪽으로는 케이맨 제도와 자메이카와 이웃하고 있다. 쿠바는 카리브해의 군도로, 쿠바섬이 주요 섬이다. 주변의 섬들을 네 가지로 분류하는데 콜로라도스 제도, 사바나 카마구에이 제도, 하르디네스 데 라 레이나 제도, 카나레오스 제도이다. 쿠바 본섬은 면적이 105,006km²로 국토의 대부분을 이루며, 길이는 1,233km에 이르는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섬이다. 쿠바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은 남서쪽의 이슬라 데 라 후벤투드(젊음의 섬)으로 그 면적은 3,056km²이다. 쿠바의 총 면적은 110,860km²이다. 쿠바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2050년이 되면 국토의 6%가 바다에 잠긴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본섬은 대부분 평탄하거나 구릉이 있는 평야이다. 섬 남동쪽 끝에는 가파른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이 있는데, 가장 높은 곳은 피코 레알 델 투르키노 산(높이 1,975m)이다.
기후[편집]
쿠바섬의 기후는 열대에 속하지만, 연중 부는 북동쪽의 무역풍으로 온화하다. 일반적으로(지역차가 있지만) 11월에서 4월까지는 건기이며, 5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이다. 평균 기온은 1월에는 21°C, 7월에는 27°C이다. 카리브해는 기온이 따뜻한 데다 쿠바섬이 멕시코만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서 허리케인이 지나갈 때가 많다. 허리케인은 9월과 10월에 자주 일어난다.
역사[편집]
쿠바섬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제1차 항해 당시 발견하였다. 당시에는 시보네족(, 타이노족 등 5만여 명의 원주민들이 고도로 발달된 농경 생활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에스파냐인은 1511년 D.벨라스케스를 파견하여, 1514년에는 전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지 체제를 확립하였다. 원주민들은 사금(砂金) 채취와 농장 노동 등으로 혹사당한 데다 1528년의 대(對)에스파냐 반란, 1530년의 악성 유행병 등으로 거의 전멸상태에 이르렀다. 16세기 초부터 에스파냐인들은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수입하여 담배, 사탕수수 재배에 종사시켜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였는데 19세기까지 쿠바에 수입된 흑인 노예의 수는 100만 명에 이르렀다. 더욱이 쿠바는 에스파냐와 아메리카대륙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에스파냐는 이곳을 총독령(總督領)으로 만들고 신대륙 경영의 기지로 삼았다. 그러나 본국의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으로 쿠바는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고 정치적으로도 권리를 갖지 못한 상태였다. 17∼18세기에는 흑인들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나 에스파냐의 가혹한 탄압으로 끝을 맺었다. 19세기 초 아메리카대륙에서 일어난 미국독립혁명의 영향이 이곳에도 파급되어 1812년에는 아폰테의 지도 아래 대규모 흑인반란이 일어났다. 그후 노예제도 폐지, 농민혹사 금지와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1868∼1878년의 ‘10년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 독립전쟁 기간 중 공화제 헌법이 공포되고 데 세스페데스의 공화정권이 수립되었으나, 1878년 정치, 경제의 개혁과 노예해방을 약속한 ‘산혼조약’이 체결되어 전쟁은 일단 종결되었다. 그러나 에스파냐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1895년 쿠바 혁명당을 결성한 호세 마르티를 중심으로 제2차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어 1898년 아바나항(港)에 정박 중인 미국 선박 메인호(號)에서 원인 모를 폭파사건이 일어나 미국은 에스파냐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 전쟁에 개입하였다. 그 결과 전쟁은 4개월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파리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에스파냐는 쿠바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종전 후 3년 동안 쿠바에서는 미국 군대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으며, 1901년 공화제 헌법 제정과 때를 같이하여 미국의 내정간섭과 군사기지 설치를 인정하는 ‘플래트 수정조항(修正條項)’이 추가되어 1903년부터 1999년을 예정으로 관타나모만(灣) 등에 미국의 해군기지가 설치되었다. 미국의 군정 종결과 함께 1902년 5월 E.팔마를 수반으로 하는 공화제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양질의 토지, 사탕산업, 교통수단 등 쿠바 경제의 중추적 기능은 미국자본이 장악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수뢰(收賂), 부패, 실정(失政), 무책임으로 상징되는 고메스(재임 1909~1913) 정권에 이어 가르시아(1913~1921), 사야스(1921~1925), 마차도(1925~1933), 바티스타 이 살디바르(1934~1944, 1952~1959), 마르틴(1944~1948)의 독재, 부패 정치가 계속되었고 1912년에는 아프리카계 쿠바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3,000여 명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국의 지지로 정권을 장악한 마차도와 1933년 쿠데타로 마차도 정권을 전복시킨 바티스타는 속임수, 군대, 암살을 통하여 권력을 유지한 인물로 악명이 높다. 더욱이 1933년 직접, 간접으로 쿠바의 정치를 좌우해온 바티스타는 군부의 지지를 받는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얻어냈고 바티스타에 대항한 1956년 바르킨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1959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하여 쿠바는 공산화되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집권한 이후 쿠바 내 미국 자산을 모두 국유화하였고, 이에 미국은 강력 반발하며 보복으로 1961년 1월 3일 국교를 단절하고 대사관을 폐쇄하였다. 이후,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쿠바 공산화 때부터 1993년까지 쿠바의 독재정권을 피하고자 120만 명의 쿠바인이 쿠바를 탈출하였다. 1970년대 쿠바는 볼리비아, 앙골라 등의 공산당 군벌들을 원조했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해당 국가의 정부군을 지원하였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쿠바의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1993년에는 일부 민간차원의 미국과의 교류를 허용하였으나 미국은 금수 조치로 쿠바에 제재를 가했다. 카스트로정권에 반대하여 수감된 양심수가 500명에 이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쿠바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침해로 비난받아 왔다. 2008년, 피델 카스트로의 건강악화를 이유로 친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새로운 국가평의회장직을 계승했다. 2014년 12월 18일, 쿠바는 적대적인 관계였던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했다. 2016년 11월 28일에 마침내 피델 카스트로는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
천연자원[편집]
쿠바의 가장 중요한 광물 자원은 니켈이다. 쿠바는 러시아 다음으로 니켈 매장량이 많다. 캐나다의 에너지 기업인 쉐리트 인터내셔널(Sherritt International) 사는 모아에 거대한 니켈 광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주요 자원으로는 니켈 채굴로 나오는 부산물인 코발트가 있다. 쿠바는 세계에서 정제한 코발트 생산량이 다섯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석유 탐사로 북부 쿠바 분지에서 약 46억~93억 배럴의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6년 쿠바는 이곳에 시험 시추를 시작하였다.
주민[편집]
쿠바는 500여 년 전에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 인디오를 학살했기 때문에 백인 정착자와 흑인 이주민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주민의 인종 구성은 물라토가 37%, 유럽계 백인이 51% (주로 스페인계), 흑인 11%, 중국계 1% 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 외에도 메스티소가 있다. 쿠바 정부는 인종별 통계는 인종차별로 연결된다는 이유로 인종별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추계 값은 점차 혼혈이 증가하는 추세이며 2002년 쿠바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쿠바의 총인구는 1117만7743명이고 이 중 남성이 559만7233명, 여성이 558만0510명이었다. 인종별로 보면, 백인이 727만1926명, 메스티소 및 물라토가 277만8923명, 흑인이 112만6894명이었다. 인구 통계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마이애미 대학교의 쿠바와 쿠바-미국 연구소(The Institute for Cuban and Cuban-American Studies)는 62%가 흑인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2002년 인구 조사에서는 백인이 65.05%로 나타났었다. 국제 소수자 인권 연대(The Minority Rights Group International)는 아프리카-쿠바 혼혈인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혁명 전후의 빈약한 자료와 체계적인 연구의 결핍으로 인하여 여전히 의문인 상태라고 말한다. 쿠바의 인구에서 아프리카 출신의 후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33.9%에서 62%로 매우 다양하다. 쿠바의 주민은 매우 복잡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점점 흑인계의 인구증가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백인과 메스티소가 사회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다. 근래에는 다양한 종족간의 결혼도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종족의 통합을 지향하는 추세다.
언어[편집]
쿠바는 공용어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쿠바 내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는 다른 표현들이 쓰이고 있고, 중남미 쪽 스페인어(특히, 카리브 스페인어)와 관련이 깊은 편이다.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에는 러시아어도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 공용어에서 제외됐다가 2019년에 러시아어 프로그램이 다시 개설되는 등 쿠바에서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방문해보면 관광지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호텔에서도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그나마 통하는 곳은 시가 박물관 정도이다. 쿠바 가이드북에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간단한 스페인어 몇 가지는 익혀서 방문하라고 나와 있다. 냉전 때는 공산권 국가들과 관계를 가졌고 이후로는 주로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국가들과 교류가 잦다. 학교에서도 영어 교육 과정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개혁개방이 되고 혁명 후 단절되었던 미국과의 재수교가 이뤄지면서 교육과정에 영어 과목이 포함되었고, 카사나 택시 등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은 영어 회화가 가능한 경우도 점차 느는 추세다. 특히 요즘 10-20대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세대여서 그런지 영어를 대강 알아듣는 편이다. 예전에 쿠바에서는 타이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타이노어도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소멸되었다.
쿠바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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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주변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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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쿠바섬〉, 《위키백과》
- 〈쿠바〉, 《나무위키》
- 〈쿠바(쿠바 개황)〉, 《네이버 지식백과》
- 〈쿠바의 역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