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카렐리야지협

위키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카렐리야지협의 구조소나무 숲
라도가호

카렐리야지협(러시아어: Карельский перешеек, 로마자: Karelsky peresheyek , 핀란드어: Karjalankannas, 스웨덴어: Karelska näset, 영어: Karelian Isthmus)은 러시아 북서부, 핀란드만과 라도가호 사이에 위치한 약 45~110km(30~70마일) 너비의 땅으로, 네바강 북쪽에 있다. 북서쪽 경계는 비보르크만에서 라도가호의 서쪽 끝인 페콘라흐티까지 이어진 선이다. 카렐리야지협을 네바강 북쪽의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레닌그라드주 전체 영토와 카렐리야공화국의 작은 부분으로 정의하면, 지협의 면적은 약 15,000km² (5,800제곱마일)이다.

러시아-핀란드국경의 남동쪽에있는 지협의 작은 부분은 역사적으로 카렐리야지협 자체의 일부가 아닌 북부 잉그리아로 간주한다. 나머지 지협은 역사적으로 핀란드 카렐리야의 일부였다. 이곳은 1712년 대북방전쟁동안 러시아제국에 정복되었고 러시아제국의 자치지역인 핀란드대공국 (1809~1917)이 관할하였다. 핀란드가 1917년 독립했을 때 지협(현재의 Vsevolozhsky 지구 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부 지구에 해당하는 영토 제외)은 핀란드의 영토로 남았다. 핀란드 카렐리야는 제1차 소련-핀란드전쟁(겨울전쟁) (1939~1940)과 제2차 소련-핀란드전쟁(계속 전쟁) (1941~1944) 이후 핀란드에 의해 부분적으로 소련에 양도되었다. 1940년 부터1941년까지 지협의 양도된 영토 대부분은 카렐로-핀란드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협 전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대부분 쿠로르트니지구 )와 레닌그라드프리오제르스키구프세볼로즈스키구비보르그스키구 로 나뉘었다 .

지리[편집]

카렐리야지협은 바이크셀 빙하 작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장 높은 지점은 약 205m(670피트)의 렘볼로보 하이츠 빙퇴석에 위치했으며 산이 없지만 일부 지역에는 가파른 언덕이 있다. 가장 큰 강인 Vuoksi는 핀란드의 사이마호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라도가호까지 이른다. 1856년에 개통된 사이마운하는 핀란드 남부 카렐리야의 라펜란타를 지나 사이마호비보르크만을 연결한다.

생태[편집]

카렐리야지협은 주로 구조소나무(Pinus sylvestris)와 노르웨이가문비나무(Picea abies)로 형성된 침엽수림으로 덮여 있으며, 수많은 호수(예: 수호돌스코예 호수와 글루보코예 호수)와 작은 풀, 습지, 이끼로 덮인 습지가 있다. 숲은 지협의 약 11,700km²를 덮고 있으며, 총 면적의 75%가 넘는다. 습지대는 전체 면적의 5.5%를 차지한다. 지협의 남동부 에 있는 프세볼로즈스키구의 라도가호기슭을 따라 있는 넓은 지역에서는 다른 곳보다 습지가 훨씬 더 자주 발생한다. 네바강을 따라 있는 저지대도 한때 마찬가지였지만 , 현재는 물이 빠졌다. 토양은 주로 거대한 바위를 포함하는 포드솔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북쪽과 북서쪽에는 큰 화강암 암석이 드러나있다.

소나무 숲( Pinus sylvestris 포함 )이 가장 널리 퍼져있으며 카렐리안지협의 삼림 면적의 51%를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가문비나무숲(Picea abies포함 , 29%)과 자작나무숲 Betula pendula 및 B. pubescens 포함 , 16%)이 많이 있다. 또한 1184종의 관다발식물이 기록되어 있으며 붉은 다람쥐, 엘크, 붉은 여우, 산토끼, 멧돼지 등 동물이 많다.

기후[편집]

기후는 냉대습윤기후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650~800mm(25~32인치)이고, 11월부터 4월 중순까지 지속되는 긴 눈 내리는 겨울은 때때로 -40°C(-40F)에 이르며, 여름은 시원하다. 레닌그라드의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핀란드만의 온건한 영향으로 인해 이곳의 겨울은 좀더 온화 하지만 기간이 길다.

역사[편집]

발트핀족의 조상들은 아마도 기원전 8500년경에 카렐리야지협으로 이동했을 것으로추측한다. 11세기에 스웨덴과 노브고로드공화국은 세금 보유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1323년 노테보리조약은 현재 세스트라강과 볼치아강으로 알려진 강을 따라 그들 사이의 국경을 확립했다.

17세기에 스웨덴은 칼렐리야지협 전체와 잉그리아를 획득했다. 이때 많은 카렐리안이 트베리의 카렐리아로 탈출했다. 1721년에서 1917년까지 이 지역은 러시아제국에 속했으며, 러시아가 잉그리아를 정복하면서 시작된 대북방전쟁에서 승리하여 새로운 제국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지협의 남쪽 끝에 오래된 스웨덴 도시인 녈스칸스 대신 건립되었다(1703). 그런 다음 1812년에 북서쪽 절반이 구핀란드의 일부로 이전되어 1809년에 러시아 제국의 자치지역으로 창설된 핀란드대공국에 양도 되었다 . 유리한 기후와 풍부한 어장, 그리고 러시아제국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근접성으로 인해 카렐리야지협은 19세기에 산업혁명이 기세를 얻으면서 핀란드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비보르크-리히매키 (1870년), 비보르크-히톨라-소르타발라(189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켁스홀름-히톨라 (1917년) 철도가 지협을 가로질러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19세기 말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비보르크 구간을 따라 있는 인근 지역이 부유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인기있는 여름 휴양지가 되었다.

핀란드가 1917년 독립을 선언했을때 지협(현재의 프세볼로즈스키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부 지구에 해당하는 영토 제외)은 핀란드의 영토로 남았고, 비푸리주의 일부였으며 비푸리는 핀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잉그리아 핀란드인이 거주 하는 나머지 지역의 상당 부분은 북잉그리아공화국로 분리되었지만 1920년말 타르투조약에 따라 러시아에 재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여러 방어선이 지협을 가로질러 배치 되었으며 전선은 이 지협을 따라 앞뒤로 이동했다. 1939년 11월 소련은 마이닐라 포격을 감행 하고 핀란드를 침공했는데, 이는 겨울 전쟁으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적군은 비례적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소련군은 1940년 2월에야 지협을 가로질러 만네르헤임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 핀란드는 3월 12일 모스크바 평화조약에서 카렐리야지협과 라도가 카렐리야를 소련에 양도 했다. 모스크바 평화조약에 첨부된 의정서에 따라, 전투는 3월 13일 정오(레닌그라드 시간)에 끝났고, 3월 26일까지 핀란드군은 완전히 철수했다. 양도된 지역의 약 42만 2천 명에 달하는 카렐리야 인구는 핀란드의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다. 3월 31일, 양도된 영토의 대부분은 소련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에 편입되었다.

1941년, 독일은 바르바로사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했다. 며칠 후 핀란드에서 제2차 소련-핀란드전쟁(계속 전쟁)이 시작되었다. 핀란드는 처음에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았고, 약 26만 명의 카렐리야 피난민이 귀국했다. 1944년 6월 9일, 강력한 소련군이 비보르그 공세를 개시하여 10일 만에 1939년 이전 국경에서 비보르그까지 전선을 밀었다. 귀환한 카렐리야인들은 다시 핀란드로 대피했다. 전쟁을 종식시킨 모스크바 휴전조약은 1944년 9월 19일에 체결되었다.

전쟁의 결과로 카렐리야지협의 인구는 거의 완전히 대체되었는데, 소련의 다른 지역 사람들, 주로 러시아인이 그곳에 정착했다. 정복된 영토의 오래된 핀란드어 지명의 대부분은 1948년경 정부에 의해 발명된 러시아어 지명으로 바뀌었다.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에 포함된 영토와 지협 남부(동화되었지만)의 핀란드어 지명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소련 시대에 지협 전역에 많은 청소년여름캠프가 세워졌으며 그 중 일부는 여전히 존재한다.

교통[편집]

카렐리야지협의 서쪽부분은 스칸디나비아와 중부 러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카렐리야지협 문서는 세계지리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