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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멘락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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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위치

퀴멘락소주(핀란드어: Kymenlaakso)는 핀란드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

개요[편집]

퀴멘락소주의 면적은 5,588㎢이며 인구는 약 160,000명(2022년)이며 주도는 코우볼라이다. 우시마주, 페이예트헤메주, 남사보주, 남카리알라주와 접하며 7개 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역사적인 우시마 지역에 포함된다. 핀란드어로 퀴미강(Kymijoki)의 계곡이라는 의미이다. 스웨덴어도 동일한 의미다.

핀란드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가 진행된 지역이나 오늘날에는 대부분 탈공업화로 인해 쇠퇴한 곳이 많아 핀란드인 대부분은 헬싱키와 우시마주로 빠져나가고 있어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지역이다. 러시아와 가까운 지역이라 안보상으로도 불안한 점도 골칫거리다.

역사[편집]

원래는 없던 지역이나 스웨덴이 대북방 전쟁으로 카리알라의 비푸리를 잃으면서 기존의 비보리뉘슬로트주(Viborgs och Nyslotts län)가 제역할을 못하게 되자 큄메네고르드뉘슬로트주(Kymmenegårds och Nyslotts län)를 신설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프레드리크 1세 치세에 스웨덴에서는 러시아 제국에서 일어난 제위 계승 분쟁을 틈타 대북방전쟁으로 빼앗긴 실지를 되찾고자 하타르당의 주도로 대 러시아 전쟁을 일으켰으나, 재빨리 제위를 차지한 표트르 대제의 둘째 딸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에게 역공을 당해 핀란드가 초토화 된 후 체결한 오보 조약으로 퀴미 강 동쪽에서 사이마 호에 이르는 영토를 추가로 할양하면서 큄메네고르드뉘슬로트 주도 제역할을 못하게 되었고 1747년 사볼락스큄메네고르드 주(Savolax och Kymmenegårds län)가 신설되었다. 1775년 구스타브 3세는 사볼락스큄메네고르드 주를 큄메네고르드 주(Kymmenegårds län)와 사볼락스카렐렌 주(Savolax och Karelens län)로 분리시켜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었다.

러시아 제국으로 할양된 이후 핀란드 대공국 시대인 1831년 대부분이 미켈리 주로 편입되면서 큄메네고르드주는 폐지되었으나 겨울전쟁으로 비푸리주(Viipurin lääni) 대부분을 상실하면서 1945년 퀴미 주(Kymen lääni)가 신설되었고 현재 퀴멘락소는 1997년 폐지된 이 퀴미 주를 계승하고 있다.

주요도시[편집]

코우볼라[편집]

코우볼라는 핀란드 남동부 도시로, 퀴멘락소주 주도다. 유럽 러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코우볼라라는 이름은 곰을 의미하는 옛 핀란드어 코우보(kouvo)에서 파생됐다. 중세부터 사람이 거주해 온 코우볼라 홀로라, 리티, 발케알라 교구에 차례로 속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것은 리히메키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간 철도 노선이 건설된 1870년대 이후였다. 그 후 10년 동안 코우볼라 북쪽으론 사보 라인, 남쪽으론 코트카 라인 등 여러 철도 노선이 생기면서 핀란드에서 가장 번잡한 철도 교차로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핀란드 내전이 터진 1918년 백군과 적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핀란드 내전은 핀란드가 제정 러시아의 대공국에서 독립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이다. 당시 코우볼라 전투에선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거미줄 같은 철도 교통망 생기면서 코우볼라엔 개발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1922년 발케알라로부터 분리된 데 이어 이듬해 시장 도시의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1960년 코우볼라시가 탄생했다. 2009년 1월엔 쿠산코스키, 엘리메키, 안얄란코스키, 발케알라, 얄라 등 6개 지자체가 코우볼라시에 통합됐다. 이 도시의 슬로건은'Ihmeen hieno kaupunki(놀랍게도 좋은 도시입니다)'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벨라(Verla)의 제재 · 판지 공장과 주변의 거주 지역은 퀴미요키 강 북쪽에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북유럽에서 번창한 펄프 · 종이 · 판지 생산과 관련된 미니 산업 단지가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벨라의 첫 번째 제재소는 1872년에 세워졌고 판지 공장은 10년 후부터 운영됐다. 이 공장은 1964년 가동이 중단돼 건물과 기계를 보관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이 살던 숙박 시설은 50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거지역은 벨랑크요키 여울을 사이에 두고 생산지역과 구분돼 있다. 여울 주위엔 수력발전소가 있고, 깎아지른 듯한 암벽엔 낚시와 사냥을 묘사한 암벽화가 그려져 있다.

레포베시 국립공원은 쿠오볼라 관광지 중 1위에 올라 있으며 헬싱키로부터 자동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다.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과 호수가 장관이다. 특히 올하반부오리 언덕은 암벽 등산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도심에서 5km 떨어진 튀키메키 놀이공원은 핀란드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약 40개의 놀이시설이 있다. 주차장은 무료다.[3]

하미나[편집]

하미나는 핀란드 남동부 퀴멘락소주에 있는 도시로 헬싱키에서 동쪽으로 145km 떨어져 있다. 러시아에서 불과 35km 떨어진 EU 최동단 항구인 하미나항은 2011년 인근 코트카항과 통합됐다. 하미나코트카항은 핀란드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스크에 이은 발트해 3위 규모의 항구다. 7번 국도는 2014년 10월 고속도로로 업그레이드되면서 하미나를 헬싱키와 연결시켜주었다. 이 항구는 목재제품과 러시아로 가는 환적 화물을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유럽에 있는 구글의 5개 데이터 센터 중 하나가 하미나에 위치해 있다.

베흐칼라흐티 마을은 1336년 문서에서 처음 언급됐다. 1653년에는 피터 브라헤 백작의 제안으로 베흐칼라흐티 교회의 주변 지역은 베흐칼라흐티의 나머지 지역과 분리돼 베흐칼라흐덴 우시카우푼키라는 마을이 됐다. 베흐칼라흐덴우시카우푼키는 새로운 베흐칼라흐티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마을은 1712년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일어난 대북방 전쟁 중 파괴됐다.

1721년 중요한 대외무역도시인 비보리가 러시아에 항복함에 따라, 이 마을을 비보리의 대체지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때까지 제한된 무역거래로 조그만 국내항에 불과했던 이 마을은 대외무역을 포함한 광범위한 특권을 부여받았다. 핀란드 사람들은 곧 항구를 하미나로 불렀다.

도시의 재건은 1722~1724년에 이루어졌다. 악셀 뢰웬이 설계한 별 모양의 성곽과 도시계획은 16세기 중유럽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요새 개념을 도입해 설계됐다. 이런 요새 도시는 거의 보기 힘들다. 하미나와 비슷한 모양으로 설계된 도시는 이탈리아의 팔마노바와 프랑스의 느브라이삭이 있다.

1809년 러시아스웨덴의 평화협정이 하미나에서 체결됨에 따라 스웨덴은 라플란드와 올란드 제도 일부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다. 결국 스웨덴의 동쪽 절반은 하미나를 포함한 과거 점령 지역과 함께 러시아 제국의 자치구역인 핀란드 대공국에 편입됐다. 1819년에는 하미나사관학교가 설립돼 1903년까지 운영됐다. 1920년에는 같은 건물에 예비군 장교학교가 들어섰다.

러시아 국경과 불과 35km 떨어진 EU 최동단 항구인 하미나항은 2011년 인근 코트카항과 통합됐다. 하미나코트카항은 핀란드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스크에 이은 발트해 3위 규모의 항구로 떠올랐다. 함부르크, 앤트워프, 브레머하펜 등 북부 유럽 주요 항구들과도 긴밀히 연결된다.[4]

코트카[편집]

코트카는 핀란드 남부 퀴미요키강 어귀 핀란드만에 자리하고 있다. 퀴멘락소주에선 코우볼라 다음으로 큰 항구 도시다. 2011년엔 인근 하미나 항과 합쳐져 핀란드에서 가장 큰 무역항으로 떠올랐다. 코트카는 핀란드 말로 독수리란 뜻이다.

코트카는 1879년 도시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1907년 7월 21일부터 23일까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전당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당시 핀란드는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론 스웨덴의 문화가 강한 도시다.

1902년까지 스웨덴어가 공식 언어였고 상당 기간 핀란드어와 함께 이중 언어로 사용됐다. 1890년대엔 도시 인구의 16%, 1950년대엔 3%가 스웨덴어를 사용했다. 현재 스웨덴어 사용자는 1%다. 코트카는 핀란드에서 산업화가 크게 진전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코트카밀스의 종이 · 펄프 공장과 스토라 엔소의 펄프 공장은 지역 고용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1년 코트카항은 인근 하미나항과 합쳐져 핀란드 최대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스크에 이은 발트해 3위 규모의 항구가 됐다. 하미나코트카항은 러시아 국경과 불과 35km 떨어진 EU 최동단의 자유무역 항구다. 러시아와 동일한 철도 궤간을 사용하는 직통 철도망이 구축돼 있어 대러시아 물류에 최적 입지라는 평가다. 주된 취급 물품은 목재, 종이, 금속과 석재다. 도시를 관통하는 퀴미요키강은 낚시로 유명하며, 급류를 타며 래프팅을 즐길 수도 있다. 코트카 앞 바다엔 수십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가 있다.

비대 박물관 등의 관광명소를 관람할 수 있다. 이외에도 레스토랑, 쇼핑센터가 있다.

랑인코스켄은 퀴미요키강 계곡에 있는 낚시를 겸한 숙박 시설이다. 퀴미요키 강은 핀란드에서 가장 긴 강이다. 숙박 시설은 1888년 여름에 공사가 시작돼 이듬해 완공됐다. 러시아의 알렉세이 3세는 이곳을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다. 현재 연간 방문객 수는 1만4,000명에 달한다. 코트타 섬에서 2002년 문을 연 마레타리움 수족관은 60여 종의 토종 물고기를 전시하고 있다. 수족관외 수산연구시설, 학교, 극장, 기념품 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

코트카 중심가에 있는 이소푸이스토 공원엔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교회는 1799~1801년 사이에 세워졌으며 코트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퀴멘락소 지역〉, 《위키백과》
  2. 퀴멘락소〉, 《나무위키》
  3. 유럽지명사전 : 핀란드 코우볼라〉,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핀란드 하미나〉, 《네이버 지식백과》
  5. 유럽지명사전 : 핀란드 코트카〉,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국가
북유럽 도시
북유럽 지리
북유럽 섬
북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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