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타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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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타바주(우크라이나어: Полтавська область)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위치한 주이다.[1][2]
개요[편집]
폴타바주의 면적은 28,748㎢이며 인구는 1,371,529명(2021년)이다. 주도는 폴타바이다. 북쪽으로는 체르니히우주와 수미주, 서쪽으로는 키예프주와 체르카시주, 남서쪽으로는 키로보흐라드주, 남동쪽으로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동쪽으로는 하르키우주와 접한다.
드니프로 강 동쪽에 위치해 있지만, 주민의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한다. 그외에 러시아어도 사용된다. 우크라이나어 사용자가 많다보니 우크라이나어가 주의 공식 언어이다.
폴타바주에는 석유와 천연 가스가 생산된다. 폴타바주의 폴타바에서는 대북방전쟁의 일부였던 폴타바 전투가 벌여졌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미르호로드 마을은 폭격을 받았다. 그러나 2022년 4월 현재 지상전은 없으며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에 완전히 장악된 상태이다.[3]
교육[편집]
크레멘추크국립대학교[편집]
크레멘추크국립대학교(KrNU)는 우크라이나 폴타바주 크레멘추크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공식 명칭은 ‘크레멘추크 미하일로오스트로흐랏스키 국립대학교(Kremenchuk Mykhailo Ostrohradskyi National University)’이다. 1960년에 설립됐고, 2010년에 국립대학교가 됐다. 학술부문은 6개 대학 및 학부, 27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다. 학사프로그램 30개와 석사학위과정 28개가 제공되며, 12개 분야에 박사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KrNU는 2022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신흥유럽 및 중앙아시아지역(EECA) 대학 가운데 301-350위권에 포함됐다. 2023년 에듀랭크(EduRank)의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세계 8411위, 유럽 대학 중 1987위, 우크라이나의 169개 대학 가운데 103위를 각각 기록했다. 교수진에 우크라이나과학원 회원과 우크라이나국가상 수상자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KrNU는 1960년 폴타바농업건설공과대학의 일반기술학부로 설립됐다. 학부는 하르키프주립폴리테크닉대학의 크레멘추크분원으로 전환됐다. 분원에서는 1974~89년 저녁수업 등이 제공됐고, 1989~97년까지 정규수업이 진행됐다. 1997년 분원을 포함해 여러 기관이 합병해 클레멘추크주립폴리테크닉대학이 설립됐으며, 대학은 7개 학부, 17개 학과로 구성됐다. 3년 후 대학교로 재편되고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증 받았다. 학교는 뛰어난 학문적 성과로 2006년 석사학위 수여자격을 부여받았으며, 2007년 미하일로 오스트로흐랏스키의 이름을 따서 새로 명명됐다. 2010년 국립대학교 지위를 부여받았다.[4]
폴타바[편집]
폴타바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보르스클라강 양안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이다. 폴타바주의 주도(州都)로 드니프로 강 좌안 지역에서는 가장 큰 산업 · 문화 중심지 중 하나다. 기원전 6~7세기 무렵의 유적이 남아있는 고도(古都)이며, 폴란드에 대항한 카자크 농민운동과 우크라이나 독립투쟁 활동의 주요 근거지이기도 했다. 구소련 시대에는 미사일 및 통신 장교들을 양성하는 군사교육의 중심지였다.
현재의 폴타바 지역에는 적어도 기원전 7세기나 6세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의 주거지와 스키타이인(Scythians)의 유적 등이 이 지역에서 발굴됐다. 폴타바의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시 당국은 1999년 건립1100주년을 선포하며 기념행사를 벌였다. 기록상으로는 고대 슬라브족의 기원과 설화 등을 담은 ‘이파티예프 연대기(Hypatian Chronicle)’에 1174년 ‘르타바(Ltava)’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돼 있다.
키이브 루스(Kyiv Rus, 고대 러시아) 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13세기 중반 몽골족 침공 때 중부 드니프로강 인근의 도시 상당수가 점령되거나 완전히 파괴됐다. 폴타바도 그중의 하나였다. 14세기 후반 폴타바는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의 영토가 됐다.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Polish-Lithuanian Commonwealth)이 만들어진 후에는 폴란드의 손에 넘어갔다. 이 지역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카자크가 러시아 차르(Rus Czardom)와 손잡고 폴란드의 집권 세력에 대항해 일으킨 흐멜니츠키 봉기(1648~1657년) 때 폴타바는 카자크 부대의 거점 지역 중 하나였다. 이후 1775년까지 폴타바는 러시아 차르의 지배하에 헤트만(Hetman)이라는 수장이 이끄는 카자크의 반(半)자치적 군사 · 정치 공동체인 수장국(Cossack Hetmanate)의 중심지 중 하나이자 무역 도시로 성장했다.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 폴타바는 러시아가 오스만제국과 스웨덴을 상대로 벌인 전쟁을 거치며 큰 피해를 겪었다. 카자크 수장체제가 붕괴하면서 폴타바는 1775년 노보로시야(Novorossiy)현(縣)의 군(郡)단위 소재지가 됐다. 이후에도 폴타바는 러시아 제국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방행정의 크고 작은 중심지 역할을 했다. 1802년부터는 1세기 이상 폴타바현의 행정 중심지였다. 1802년 폴타바의 인구는 8,000명 정도였다. 19세기 폴타바는 러시아 제국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은 도시 재건 계획에 따라 재정비되었다. 신(新)시가지도 지름 345m의 원형광장인 크루흘라 광장(Kruhla Square)을 중심으로 8개의 대로(大路)가 뻗어 나가도록 설계되었다. 병원과 체육관도 들어섰다. 1808년 독일 장인(匠人) 50여 가구가 새로 지어진 독일인 정착촌으로 이주해 왔다. 이들에 의해 폴타바에 모직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1852년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양모 및 말 박람회 중 하나인 성엘리야 박람회(Saint Elijah Fair)가 롬니(Romny)에서 폴타바로 옮겨왔다. 1863년에만 1,690만 루블의 상품이 박람회에서 팔렸다. 1870년대와 1890년대에 건설된 철도는 폴타바 경제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19세기 말경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도시인 하르키브(Kharkiv)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폴타바는 가내 공업 위주의 지방행정 및 상업 도시가 되었다.
폴타바의 인구는 1858년 1만 5,500명, 1863년 2만 9,500명, 1897년 5만 3,700명, 1902년 6만 100명으로 상당히 빠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까지 폴타바는 여전히 반쪽짜리 도시였다. 1882년까지 건물의 약 9.4%만 석조였고, 1910년까지 도로의 8% 정도만 제대로 포장돼 있었다. 카자크들이 주로 거주하는 저지대 교외의 집들은 거의 농촌 수준이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와서야 공공건물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다.
우크라이나 독립 투쟁 기간(1917~1921년)에 폴타바는 정치 · 문화 활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 진보회 등 국가 부흥운동의 대표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소비에트 정권하에서 폴타바는 개편된 행정체계에 따라 폴타바주(州)의 주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폴타바도 큰 피해를 겪었지만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에 재건되었다. 1957년 도시개발계획이 세워지면서 폴타바는 새롭게 정비됐다. 소련의 군사교육 중심지 중 하나로, 주로 미사일과 통신 장교들이 이곳에서 양성됐다. 소련 공군의 폭격기 부대 사령부가 폴타바에 주둔하기도 했다.
폴타바는 동유럽 대평원 지대에 있는 도시로 폴타바고원과 보르스클라강의 가파른 강변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도시의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서쪽은 상대적으로 고지대인 해발 150~159m의 고원에 펼쳐져 있으며, 도시의 동쪽 지역은 보르스클라강의 범람원 지대와 계단식 강둑 일부에 걸쳐 있다.
폴타바 서부의 교외 지역은 짙은 회색토와 체르노젬이라고 불리는 흑토에 뿌리를 박은 숲이, 동부 교외 지역은 잔디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녹지가 도시 지역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자연 보호 기금 대상이 30개 이상 있다. 폴타바는 습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인 7월 평균 기온은 20.5℃, 겨울인 1월 평균 기온은 -7.0℃이다. 연간 강수량은 평균 525mm이며, 서리가 없는 날은 연평균 174일이다.
폴타바는 천연자원의 잠재력과 편리한 경제적 · 지리적 위치 덕분에 연료와 식품, 조명, 목재 가공업 등이 발달했다. 폴타바에서 가장 큰 산업 분야는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식품가공업이다. 각종 식용유 제조 공장과 육류 가공 단지, 가금류 포장 단지, 제분 · 제과 공장 등이 있다.
또한, 면직 · 니트 · 자수 · 가죽신발 제조공장과 같은 경공업 생산이 전체 산업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생산량의 약 25%는 기관차 수리, 화학공업용 기계 제조 등 기계 제조와 금속 가공업에서 나온다. 키이브 · 하르키브 · 드니프로 등 제련과 기계 제조 중심지와 가까워서 기계 공학이나 화학 산업도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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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폴타바주〉, 《위키백과》
- ↑ 〈폴타바주〉, 《나무위키》
- ↑ 〈폴타바 주〉, 《요다위키》
- ↑ 〈세계의 대학 : 크레멘추크국립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폴타바〉,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폴타바주〉, 《위키백과》
- 〈폴타바주〉, 《나무위키》
- 〈폴타바 주〉, 《요다위키》
- 〈세계의 대학 : 크레멘추크국립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폴타바〉,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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