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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흐얀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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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위치

포흐얀마주(핀란드어: Pohjanmaa)는 핀란드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 [1][2]

개요[편집]

포흐얀마주의 면적은 7,600㎢이며 인구는 175,726명(2022년)이며 주도는 바사이다. 중앙포흐얀마주, 남포흐얀마주, 사타쿤타주와 접하며 16개 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핀란드에서 올란드 제도 다음으로 스웨덴어를 구사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교통[편집]

바사 공항[편집]

핀란드 서부 포흐얀마주의 주도 바사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9km 거리에 위치한다. 1938년 개항했으며, 2014년 확장·현대화된 신 여객 터미널을 개관하였다. 2015년 활주로를 재포장하였다. 핀란드에서 면적 기준으로 4위에 드는 공항이며 튀르키예와 그리스 등지의 휴양 도시로의 국제선 계절편을 활발히 운항한다. 공항 코드는 VAA(IATA), EFVA(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다. 활주로는 2,500m×45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로는 노르웨이 에어셔틀(Norwegian Air Shuttle)·에게항공(Aegean Airlines)·프리버드항공(Freebird Airlines)·선익스프레스(SunExpress)·핀에어·코렌던더치항공(Corendon Dutch Airlines) 등 총 8개사가 있다. 국제선은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 튀르키예 안탈리아(Antalya),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 그리스 카니아(Khaniá)의 총 4개 도시로의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국내선은 수도 헬싱키(Helsinki)를 연결한다. 공항에의 교통편으로는 바사 도심을 연결하는 E8, E12 도로가 인접한다.[3]

오울루 공항[편집]

핀란드 오울루(Oulu)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10.6km 거리에 위치한다. 핀란드 공군과 시설을 공유하며 헬싱키반타공항(Helsinki-Vantaa Airport)에 이어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이용객수가 많은 공항이다. 1936년 10월 오리트카리(Oritkari)에 설립된 구공항을 대체할 신공항으로 건설되어 1953년 6월 30일 개항했으며, 2011년 여객 터미널의 대규모 확장 공사를 완료하였다. 공항 코드는 OUL(IATA), EFOU(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다. 활주로는 2,501m×60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로는 노르웨이 에어셔틀(Norwegian Air Shuttle)·넥스트제트(Nextjet)·핀에어·에게항공(Aegean Airlines)·프리메라에어(Primera Air)가 있다. 국제선은 라트비아 리가(Riga)·에스토니아 탈린(Tallinn)·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그리스 카니아(Khaniá)·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 등을 연결한다. 국내선은 수도 헬싱키(Helsinki)·탐페레(Tampere)·투르쿠(Turku)·로바니에미(Rovaniemi)로의 노선을 운항한다.[4]

교육[편집]

바사대학교[편집]

바사대학교는 핀란드 포흐얀마주의 바사(Vaasa)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1968년 바사 경제·경영 학교(School of Economics and Business Administration in Vaasa)로 시작해 1977년 국립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캠퍼스는 보트니아만의 해안가 근처에 있는 옛 방적공장이 있던 팔로사리(Palosaari) 공원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1994년 지어진 대학 본관 건물인 테르바호비(Tervahovi)는 지역 건축가 카를 악셀 세테보리(Carl Axel Setterberg)가 설계했다. 대학 건물과 기숙사 등은 1856년 지역 사업가 A. A. 레본(August Alexander Levòn)이 세운 방적공장 건물과 노동자 숙소를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다. 경제, 경영, 금융, 회계 등의 분야에서 특성화 되어 있으며, 평생교육 분야의 레본 연구소(Levón Institute), 바사 에너지 연구소(VEI, Vaasa Energy Institute) 등의 부설 연구기관이 있다. 한국의 경희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들과 학생 및 연구 분야의 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5]

바사[편집]

바사는 핀란드 서부 해안도시로 포흐얀마주의 주도다. 주민의 69.8%가 핀란드어를 쓰고 24.8%가 스웨덴어를 사용한다. 과거 핀란드를 식민 지배했던 스웨덴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는 도시다. 바사의 최초 지명은 무스타사리(Mustasaari)였으나 이후 니콜라잉카우풍키(Nikolainkaupunki), 바사(Vasa)로 바뀌었다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사의 역사는 14세기부터 시작한다. 중부 스웨덴의 해안지역에 살던 선원들이 옛 바사 지역에 상륙했고, 남서부 핀란드의 지주들도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14세기 중반 성모 마리아 교회가 세워졌으며, 1370년대엔 코르스홀름에 요새가 건설돼 행정 중심지로 사용됐다.

스웨덴의 카를 9세는 1606년 10월 2일 코르스홀름 교회 주변의 오래된 항구에 무스타사리 마을을 세웠다. 1611년 이 마을은 도시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스웨덴 왕가 이름인 바사(Vasa)로 개명됐다. 바다 항로, 조선, 그리고 타르 무역 덕분에 바사는 17세기에 번영의 길을 걸었다. 1793년 바사엔 2,178명의 주민이 있었으며 대화재가 발생한 1852년엔 3,200명으로 증가했다.

바사는 1808~09년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진 핀란드 전쟁 중에 다른 도시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었다. 1808년 6월 바사는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됐고, 일부 지방 관리들은 충성을 맹세했다. 1808년 6월 25일 스웨덴의 요한 베르겐스트롤레 장군이 1500명의 군대와 4개의 대포를 이끌고 니콜라이 데미도프 장군 휘하의 러시아군 1700명이 점령하고 있는 바사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6월 30일 러시아군은 바사에서 철수했다. 러시아에 충성을 맹세한 모든 공무원은 해고됐고, 일부는 민간인들에게 폭행당했다.

9월 13일 러시아군이 다시 돌아왔고, 다음날 약 50km 북쪽 지역에서 벌어진 오라바이스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승리했다. 1808년 겨울 즈음 러시아군은 핀란드 전역을 장악했다. 프레드릭샴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동부 핀란드 지역을 잃었고, 바사는 제정 러시아의 핀란드 대공국 일부가 됐다.

목조 건물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던 바사는 1852년 대화재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바사와 주민들에 관한 자료 대부분이 소실됐다. 대화재 후인 1862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 이름을 딴 니콜라잉카우풍키(Nikolainkaupunki)라는 새로운 도시가 바사에서 북서쪽으로 7km 떨어진 해변에 건설됐다. 도시계획은 칼 악셀 세테르베르그에 의해 19세기 건축양식에 따라 세워졌다. 새 도시는 대화재의 재앙적 결과를 반영해 5개의 넓은 대로를 따라 구획됐고, 각 구역엔 골목길들이 만들어졌다. 도시 이름은 니콜라이 2세가 1917년 하야한 후 바사로 개칭됐다.

핀란드 내전 중인 1918년 1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바사는 핀란드의 수도였다. 헬싱키에서 대대적인 정치인 검거 선풍이 불자 핀란드 상원은 수도를 바사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당시 바사는 상원을 지지한 백군의 지배 아래 있었고 서방 세계와 접촉도 가능했다. 1918년 2월 1일 바사에서 업무를 시작한 핀란드 상원 의원은 4명뿐이었다. 내전에서의 역할로 인해 바사는 '백군 도시'로 알려졌다. 전쟁에서 승리한 백군 군인을 묘사한 동상이 시 광장에 세워졌다.

1930년대 주민들 대다수가 핀란드어를 사용함에 따라 'Vasa'도 핀란드어 철자법대로 'Vaasa'로 바뀌었다. 전쟁 후 바사는 산업화가 크게 진전됐는데, 전자회사 스트룀베리가 주도했다. 스트룀베리는 나중에 ABB에 흡수 합병됐다. 2013년 베헤퀴뢰 지자체가 바사에 통합됐다.

바사는 핀란드 서부 발트해에 면한 해안도시다. 발트해 북쪽 보트니아만에 있는 크바르켄(Kvarken)군도는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지반이 매년 약 1cm 융기해 섬의 면적이 1km2씩 넓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해안선이 바뀌고 섬들이 서로 합쳐지면서 호수와 습지, 늪이 생겨나고 있다.

바사는 겨울은 건조하고 여름은 따뜻한 대륙성 냉대기후대에 속해 있다. 북대서양 해류 덕분에 알래스카의 남쪽과 비슷한 위도임에도 살기 좋은 기후다. 연평균 기온은 4.2˚C다. 전반적으로 눈이 잘 내리지 않지만 가끔 폭설이 오기도 한다.

바사는 여러 개의 산업단지가 있는 산업도시다. 제조업이 전체 일자리의 4분의 1을 제공한다. 영화제작사인 퓨처 필름과 바사 코티 피자의 본사가 있다.

포흐얀만 박물관은 마리안푸이스토 공원에 위치해 있으며 바사 시장광장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이 박물관은 1895년 설립됐으며 문화사, 예술 및 과학 분야의 소장품을 전시한다. 성모 마리아 교회의 유적과 종탑, 바사 학교 유적이 있다. 1852년 화재로 폐허가 된 시청 건물도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포흐얀마 지역〉, 《위키백과》
  2. 포흐얀마〉, 《나무위키》
  3. 두산백과 : 바사 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4. 두산백과 : 오울루 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5. 두산백과 : 바사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6. 유럽지명사전 : 핀란드 바사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국가
북유럽 도시
북유럽 지리
북유럽 섬
북유럽 문화
북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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