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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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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섬
북해의 석유 시추기지 베릴 앨파(Beryl alpha)
북해 위성 사진
북해

북해(北海, North Sea)는 유럽 대륙 북쪽, 서유럽북유럽 사이에 있는 바다이다. 유럽 대륙, 영국, 노르웨이에 둘러싸인 대서양 동북부의 연해이며 발트해와 닿아 있다. 북해의 면적은 약 575,000km², 평균 수심은 94m이고 북위 55도 부근에 수심 18~36m의 도거뱅크(淺堆)가 있다. 유럽 대륙붕에 있는 부속해이다.[1]

개요[편집]

북해는 스칸디나비아반도영국, 베네룩스, 덴마크 사이의 대륙붕 위에 있는 유럽 대륙의 부속해다. 대서양, 노르웨이해를 접하고 있고,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이의 스케야락(Skagerrak) 해협과 덴마크, 스웨덴 사이의 케테겟(Kattegat) 해협을 통해 발트해와 연결된다. 라인강은 네덜란드를 거쳐 이 바다로 빠져 나온다. 북해 연안에는 북동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영국하고 접해 있다. 북해의 중앙에는 도거 뱅크라는 얕은 모래톱 여울 지형이 존재한다. 이곳은 도거랜드라고 하는 상당한 크기의 섬이었으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 해수면 상승으로 침몰한 곳이다. 북해 유전과 좋은 어장인 도거뱅크가 유명하며, 북해 남단은 영국해협과 함께 배들의 운항 밀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북해는 각종 미생물이 풍부하여 청어, 대구, 가자미, 넙치 등의 어류가 다양하게 있어서 세계 4대 어장의 하나가 되었다.[2]

명칭[편집]

북해라는 이름은 현재의 독일 서북부에서 네덜란드 해안에 이르는 지역에 살던 게르만 부족의 하나인 프리지아인(Friesen)들이 처음 사용했다는 의견이 있다. 한편에서는 독일 북부에 인접한 바다를 전부 북해라고 부르던 중세 독일의 한자 도시(Hansestädte)들이 교역 때 사용한 지도가 유럽의 다른 지방으로도 널리 보급되어 이 명칭이 정착하게 되었다는 견해를 낸다. 프리지아해(Mare Frisicum), 게르만해(Oceanum 또는 Mare Germanicum)라는 이름도 오랫동안 쓰였으며, 덴마크에선 오늘날에도 서해(Vesterhavet)와 북해(Nordsøen)가 병용된다.

위치[편집]

북해의 대부분은 유럽 대륙붕 위에 놓여 있으며 노르웨이에 근접한 일부 지역만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인접한 국가는 북동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나열하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영국이다. 그레이트브리튼섬이 끝나는 북쪽과 북서쪽은 노르웨이해와 맞닿아 있으며 남서쪽은 도버 해협을 거쳐 영국 해협으로 통하고 동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윌란반도 사이에서 발트해와 만난다. 발트해와는 독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남부를 관통하는 킬 운하로도 연결되어 있으며, 양 바다의 잠정적 경계는 노르웨이의 린데스네스와 덴마크의 한스톨름(Hanstholm)을 잇는 스카게라크 해협 위의 가상의 선이다. 노르웨이해와의 경계는 보통 스코틀랜드 최북단의 셰틀랜드 제도에서 노르웨이의 올레순(Ålesund)까지 그은 획으로 나타낼 수 있다. 1992년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오슬로-파리 협정은 북위 62도(62°N)와 서경 5도(5°W)를 경계의 기반으로 정한다. 북해로 흘러드는 주요 강으로는 대륙에 있는 엘베강, 베저강, 엠스강, 라인강, 마스강, 스헬데강과 영국의 템스강이 있다.

역사[편집]

북해는 지질학적으로 오래된 바다로 약 3억 5천만년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북해의 분지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제3기 때의 일이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약 11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빙하기 동안의 북해는 몇 번이나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간빙기 동안에는 많은 북해의 해안들이 침수되어 있었다. 비스와 빙하기(Vistulanian glaciation) 동안에는 다른 빙하기 때와 마찬가지로 수량의 대부분이 최대 3km까지 두꺼운 얼음을 형성하고 있었다. 빙하기가 절정일 때의 수심은 오늘날보다 최고 120m까지 낮았으며 해안선은 현재보다 600km 북쪽에 놓여 있었다. 즉, 당시 북해의 바다 면적은 현재보다 훨씬 작았다. 비스와 빙하기가 끝날 당시의 수심은 평균해수면보다 60m 정도 아래였고, 해안선은 지금의 도거뱅크 북쪽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북해의 남단부는 당시까진 대륙이었고 그레이트브리튼섬은 이 도거랜드를 통해 유럽 대륙과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

기원전 4500-5000년 쯤부터는 영국 해협과 모래톱이 있는 바다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해진(海進)과 해퇴(海退)가 반복되었고, 기원전 3000년에는 남단부 해안의 수심이 현재의 4m 이하, 기원후가 될 즈음에는 2m 이하에 가까워졌으며 수심은 계속 높아지다가 1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다시 기원전 말의 수준으로 내려갔으나 이후부터는 다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1세기 초까지 7500년 동안은 수심이 매 세기마다 평균 33cm가 올라갔는데, 상승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있으며 20세기 동안에는 20-25cm가 높아졌다.

형태와 구성[편집]

북해는 평균 수심이 94m인 대륙붕 해역이다. 수심은 평균 25-30m 정도로 깊어도 50m 미만인 남부에서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높아져 노르웨이와 셰틀랜드 제도 사이에서는 100-200m에 이르게 된다. 해안 지역을 제외하면 가장 얕은 곳은 도거뱅크이다. 남부에서는 크고 긴 개펄이 많이 있다. 북해는 일반적으로 남부, 중부, 북부와 스카게라크 해협으로 통하는 노르웨이 해구로 나뉜다. '북해의 남쪽 만'(Southern Bight)은 벨기에에서 시작되어 독일만과 헬골란트만까지 포함한다. 도거뱅크는 독일 만과 북해 중부를 가른다. 모래톱은 네덜란드의 덴 헬더(Den Helder)에서 덴마크의 에스비에르(Esbjerg)까지 거의 끊임없이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절반 정도 크기를 가진 도거뱅크의 수심은 13-20m 정도이며 좋은 어장으로 유명하다. 폭풍우가 불 때는 파도가 종종 여기서 방향을 틀곤 한다.

노르웨이 해구의 평균 수심은 250-300m이며 스카게라크 해협 근처에서는 예외적으로 725m에 달한다. 해구를 따라서는 대서양으로 노르웨이 해류가 흐르며 이에는 발트해에서 유입된 바닷물도 포함된다. 스코틀랜드의 던디(Dundee)에서 약 200km 가량 동쪽으로 떨어진 북해 중부에는 '악마의 소굴'(Devil's Hole)을 비롯해 수심이 갑자기 올라가는 장소가 여러 개 존재한다. 이런 곳에서는 물이 90m에서 230m로 깊어진다. 도버 해협의 깊이는 약 30m이다. 해저는 영국 해협 서부로 갈수록 낮아져 동쪽 끝과 서쪽 끝의 차이는 100m가 난다.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의 수심은 보통 20-30m이며 네덜란드 쪽이 최고 45m로 약간 더 깊다.

수문학[편집]

북해는 함염량(含鹽量)은 장소와 시기에 따라 다른데 하구(河口) 근처에서는 15-25‰(천분율 수치), 북해 북부에서는 32-35‰이다. 수온은 겨울의 10°C에서 여름의 25°C 사이를 오가며 대서양과 수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류의 영향을 받는다. 셰틀랜드 제도 동쪽과 남쪽의 비교적 깊은 지역에서는 대서양에서 흘러드는 물로 인해 수온이 10°C에 거의 고정되어 있다. 반대로 수온의 격차가 큰 얕은 해안에서는 얼음이 생기기도 한다.

물의 순환[편집]

대서양의 물은 영국 해협과 그레이트 브리튼 섬의 해안을 따라 흘러든다. 가장 중요한 담수(淡水) 공급원은 사실 발트해이며, 정확히는 발트해로 흐르는 강물들이다. 북해와 직접 연결된 강들은 매년 296-354km³(발트해: 470km³)의 물을 바다로 내보내며 841.500km²(발트해: 1.650.000km²)의 면적을 거른다. 한편 노르웨이 해류는 대개 50-100m의 깊이를 지닌 곳에서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해안을 따라 대서양으로 흐른다. 온도가 더 높은 대서양의 해류는 여기서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며, 바닷물의 내부 기온이 다른 곳보다 높은 데에 일조한다. 겨울 노르웨이 해류의 기온은 2-5°C(대서양: 6°C), 염도(鹽度)는 34.8‰ 이하(대서양: 35‰이상 )이다. 발트해의 기수(汽水)와 피오르(fjord) 등에서 유입되는 물들이 북해의 함염량을 비교적 낮게 조정한다.[3]

조석[편집]

북해 자체는 조석(潮汐) 현상을 일으키기에 너무 얕고 작기 때문에 북대서양이 이 역할을 대신한다. 밀물과 썰물은 12.5시간 정도의 간격을 두고 교대한다. 조수는 코리올리 효과에 의해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영국 해안을 거쳐 12시간 정도 후에는 독일 만에 들어선다. 영국 해협을 통해 흘러오는 조수에 의해 생기는 무조점(無潮點)은 도버 해협 바로 앞에 있으며 영국 남부와 네덜란드의 데 호프덴(De Hoofden) 사이에 낀 지역의 간만에 영향을 준다. 덴마크 남부와 스코틀랜드 남부를 잇는 선상(55°25'N, 5°15'E)과 노르웨이 남부에도 무조점이 있다. 조수는 이들 지역의 주위를 돌아서 흐른다. 조수간만의 차는 노르웨이 남부에서는 약 50cm 정도이며 해안이 무조점에서 멀수록 커진다. 얕은 해안과 깔때기 형태로 비좁아지는 부분도 차이를 벌어지게 한다. 조차가 6.8m로 가장 큰 곳은 영국의 워쉬 하구(Wash)이며 독일 해안의 조차는 2-4m 정도이다.

생태[편집]

북해는 강한 조석 현상과 바다가 얕은 곳에 다수 서식하는 켈프와 해초, 종류의 다양함, 풍부한 영양소 등이 북해를 다양한 생명들의 서식지로 만든다. 북해에는 여러 종류의 군집(群集)이 존재하는데 기본적으로는 해안 지대와 물로만 구성된 지대로 나눌 수 있다. 북해에는 간만의 차이에 따라 환경이 달라지는 염성 소택지(鹽性沼澤池)와 조간 소택지(潮間 沼澤池), 하구가 다수 있다. 북해의 조간 소택지는 세계적으로 제일 크고 서식하는 생물의 종류도 가장 다양하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원양(遠洋) 지대와 해저 지대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 보호[편집]

북해로는 해로운 물질들이 직간접적으로 유입된다. 해안 지방은 인간에 의해 상반된 영향을 받는데 관광지나 휴양지로 인간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 받는 환경적 부담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크지만, 한편으로는 관광업 자체가 잘 보존된 환경에 의해 득을 보기 때문에 환경 보호를 위한 경제적인 자극이 생겨난다. 북해로 흘러드는 여러 강어귀들의 주위에는 약 1억 6천만명의 인구가 850.000km²에 분포되어 있다. 북해는 유럽 하수 상당 부분의 종착점에 해당한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노르웨이 남부의 하수는 전부, 영국과 스위스에서는 거의 전부, 독일에서는 75%, 윌란반도에선 50%, 프랑스에서는 25%,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하수는 일부가 북해로 흘러든다. 이들 지역들이 세계 공업 총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에 달한다. 1969년 북해 인접 국가들은 처음으로 북해의 환경 보호를 위한 협약에 서명했는데, 당시 본(Bonn)에서 체결된 이 협약은 채유(采油)로 인한 환경 오염만을 다루고 있었다. 오슬로 협정(1972년)과 파리 협정(1974년)은 다른 유해 물질들도 관심 사항에 추가했는데 1992년의 오슬로-파리 협정은 환경 문제를 각국이 스스로 담당한다고 규정했다.

해안과 섬[편집]

현재의 북해는 최종 상태에 다다르지 않았으며 항상 움직이고 있다. 폭풍으로 인한 해일 같은 자연 현상 외에도 약 500여 년 전부터 인간의 노력으로 행해진 간척 사업 등이 해안선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북반부[편집]

그레이트브리튼섬은 동부 해안만이 북해에 속하며 완전히 북해에 둘러싸인 군도(群島)로는 셰틀랜드 제도와 오크니 제도(Orkney Islands)가 있다. 여러 대의 빙하기 동안에 현재의 해안이 있는 곳에 놓여 있던 빙하가 여러 마디로 갈라진 해안 지대를 만들었다. 노르웨이에 많이 분포된 피오르(fjord)는 고산 지대에서 내려온 빙하가 길고 좁은 틈을 파내고, 수심이 상승할 때 그 곳에 물이 차오름으로써 형성되었다. 피오르에서는 가파른 해안선을 자주 발견할 수 있으며 수심은 북해에서는 비교적 깊은 편에 든다. 한편 피에르는 피오르와 비슷하지만 만이 더 넓고 얕으며 작은 섬들도 종종 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빙하가 밑바닥의 변화에 피오르에서보다 더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피예르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의 북해 해안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다. 피예르 상의 여러 섬들은 오늘날에는 사주(沙注)나 퇴적한 모래에 의해 형성된 반도와 연결되어 있는 육계사주(陸繫砂洲, tombolo)인 경우가 많다.

피예르의 남쪽은 대부분이 빙하기의 빙퇴석에 의해 생긴 절벽으로 된 해안과 이어진다. 해안의 수평적 충돌이 절벽을 부러지게 하며, 여기서 부러진 조각들은 개펄의 주요 퇴적물 공급원이 된다. 절벽 해안의 흐름은 개펄과 소택지로 구성된 하구에 의해 끊긴다. 잉글랜드 남부의 강어귀는 템스 강과 험버 강에 속한다. 노르웨이 남부와 스카게라크 해협에 면해 있는 스웨덴 남부의 해안에서는 암초 해안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피오르나 피예르와 마찬가지로 빙하가 광범위한 지역을 깎아낸 데서 비롯된 것이다. 노르웨이 남부에서 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해안가의 암초들은 수 킬로미터 정도 길고 거의 완전히 닳은 상태로 바다 표면의 조금 밑에 놓여 있다.

남반부[편집]

벨기에에서 덴마크에 이르는 남부와 남동부의 해안 역시 빙하기에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나, 바다와 퇴적물에 의해 받은 영향이 위에서 언급한 곳들보다 훨씬 더 크다. 해안은 얕고 평평하며 조수의 범람과 후퇴가 반복된다. 바닷물은 퇴적 작용을 일으킨다. 조수차가 1.35m보다 작은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해안에는 사구(沙丘)가 있는 경사가 완만한 해안이 형성된 반면 조수차가 1.35m-2.9m 사이인 곳에서는 퇴적물에 의해 섬이 생기며 엘베 강 어귀에서처럼 조수가 2.9m보다 높으면 물밑에 사주가 잠긴다. 네덜란드의 서프리지아 제도와 독일의 동프리지아 제도는 파도가 부서지는 곳의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여기에 침전되는 퇴적물이 쌓인 결과이다. 퇴적물은 계속 높아졌고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땅은 계속 단단해져 오늘날에는 상당히 고정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일부는 계속 역동하고 있는데 예로서 동프리지아 제도의 유이스트섬(Juist)의 교회가 섬의 변동에 의해 1650년부터 5번 위치를 바꾼 것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원래 유이스트 섬은 두개의 섬이 하나로 합쳐져 탄생했다. 이웃한 방어로게섬(Wangerooge)은 1700년-2000년까지 섬 자체의 길이만큼 동쪽으로 떠내려갔다. 환경적 여건에 의해 이 두 프리지아 제도의 서쪽은 계속 닳는 반면 동쪽에는 새로운 퇴적물이 쌓인다. 따라서 주민들은 섬들의 서부에 있는 시설들의 보호에 신경을 더 쏟는다. 섬들 사이에는 조수의 통과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물길이 존재하며, 이는 섬들이 언젠가는 붙어 자라게 되는 현상을 막는 용도로 쓰인다.

북프리지아 제도는 높고 건조한 불모지로 구성된 섬들의 퇴적물에서 생겼다. 덕분에 북프리지아 섬들의 핵은 다른 프리지아 제도보다 변화에 덜 민감하지만,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운동은 다른 곳 못지 않다. 질트섬(Sylt)의 경우 북쪽에 놓인 항구는 퇴적물 문제를 안고 있는 데 반해 남쪽에서는 섬의 일부가 분리될 위험에 처해 있다. 할리히(Hallig, 만조 때 물에 잠기는 북프리지아 제도의 해안)들은 중세 시대에 있었던 폭풍에 의해 물에 잠긴 소택지의 나머지로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한때는 100개가 넘었으나 현재는 10개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파도에 쓸려가거나 제방의 일부가 되었다. 북프리지아 제도의 북쪽 개펄 바다에 있는 섬들은 원래는 사구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섬이 모래에 점점 잠식되는 것이 큰 문제였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기 위해 섬에 작은 숲들을 가꾸게 되었다. 북해 남동부에도 마스, 라인, 베저, 엘베나 아이더강(Eider) 쪽으로는 여러 개의 하구들이 존재한다. 네덜란드 쪽에서는 간척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에이설호를 제방으로 막은 후 행한 간척이 제일 규모가 컸다. 에스비에르에서 덴 헬더까지는 광활한 조간 소택지가 펼쳐져 있으며 이 중 몇몇 곳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헬골란트섬은 예외적인데 이유는 섬이 개펄이 높아져 생긴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인 트라이아스기 전기에 이미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자원[편집]

1958년 지질학자들은 흐로닝언주의 슬로흐턴(Slochteren)에서 유전 지대를 발견했다. 1966년부터 북해 곳곳에서 시추(試錐)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1969년, 필립스 석유 회사(Phillips Petroleum Company)는 노르웨이의 해역에서 저유황 석유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에코피스크 유전 지대(Ekofisk)를 발견했다. 1971년부터 유조선들이 에코피스크의 석유를 실어날랐고 1975년에는 영국의 클리브랜드(Cleveland)로, 1977년에는 독일의 엠덴(Emden)으로도 송유관이 뚫렸다. 석유 회사들이 북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석유 파동부터인데 이는 석유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투자가 유리해진 덕분이다. 높은 생산비는 획득하는 석유의 높은 질과 가까운 서유럽의 판매 시장, 정치적인 고려에 의한 후원 등으로 충분히 회수할 수 있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유전들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현재에는 450여 개의 해저 굴착용 인공섬들이 존재하며 북해는 연해 석유 채굴에서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북해에서 에너지 자원이 압도적으로 많이 비축된 곳은 노르웨이와 영국령의 해역으로 노르웨이 쪽의 비축량만 해도 석유는 전체의 54%, 천연 가스는 45%에 달한다. 노르웨이의 스타트피오르 유전 지대(Statfjord)의 개발을 위해서는 노르웨이 해구를 관통하는 송유관이 놓였다. 노르웨이의 법에 따라 국영 기업인 스타토일(Statoil)이 유전 지대에 소유하는 지분은 최소 50%이다. 북해에서 가장 큰 천연 가스 지대는 노르웨이 해구 안에 놓인 수심 345m 밑의 트롤(Troll)이다. 플랫폼의 높이는 472m이고 무게는 656.000t으로 연해 자원 발굴용으로는 최대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인간에 의해 바다로 운반된 가장 큰 물체이다. 독일 쪽 해역의 경우에는 이들 자원이 거의 없으며 플랫폼은 두 개가 세워져 있다.

1999년은 에너지 자원의 개발이 정점에 달한 해로 거의 6백만 배럴(950.000m³)의 석유와 280.000.000m³의 가스가 산출되었다. 이후부터 셸이나 BP 같은 대형 기업은 비축량이 적은 북해에서 손을 떼었고 전체적인 생산량도 감소하는 추세이다. 인간의 손이 아직 닿지 않은 곳에 잠재된 자원의 양은 현재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해에서는 처음으로 반출되기 시작한 종류의 하나인 브렌트 원유(原油)의 가격은 EU에서는 표준 가격과 유럽의 이외 지역이나 아프리카, 근동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비교 가격으로 정착되었다. 석유와 가스 이외에도 주변국들은 매년 수백만 km³의 모래와 자갈을 북해에서 채취해 여러 건축 계획에 사용하고 일부는 해안 보호용으로도 쓰인다. 2003년에는 네덜란드가 30.000.000m³, 덴마크가 10.000.000m³를 채집해 1위와 2위를 기록했으며 독일의 채집량은 700.000m³로 하위권에 들었다.

어업[편집]

20세기 초반부터 북해 남부의 해안에서는 주로 저인망을 이용한 상업적 어업이 행해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로 어획량은 거의 3.000.000t를 기록한 1980년대까지 계속 높아졌다가 이후 다시 감소 추세로 바뀌어 현재는 평균 2.300.000t 정도가 잡히는데, 이 수치는 매년 변동이 심하다. 이 중 150.000t 가량은 쓸모없이 그물에 같이 걸려들며 85.000t 정도는 해양의 비척추동물들이다. 잡은 물고기들의 절반 정도는 어분(漁粉)이나 어유(漁油)로 가공된다. 대서양 고등어, 대구, 해덕대구(haddock), 민어(Merlangius merlangus), 북대서양대구(Pollachius virens), 가자미, 혀가자미 등이 주요한 어획물이다. 이외에도 자주새우(Crangon crangon), 바닷가재나 게들도 잡힌다. 섭조개, 가리비와 굴 등은 양어장에서 자란다.

주변의 인구 밀도가 높은 만큼 물고기의 남획에 따른 위험도 높다. 1983년부터 유럽 연합은 어획 할당량을 정해 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나 해덕대구의 양은 크게 감소했다. 덴마크의 저인망 어업으로 인해 매년 목숨을 잃는 쇠돌고래의 수만 해도 5000마리에 달한다. 1960년대부터 물고기를 잡는 시기와 어선의 수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로 물고기의 총수를 늘리려고 시도하지만 아직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위험한 항로[편집]

북해는 예로부터 춥고 거칠어서 항해하기 불편한 해역이다. 북위 60도의 중위도 저기압대에 걸친 까닭에 기상 악화가 잦고 바람이 많이 분다. 날씨가 좀 안 좋으면 어김없이 폭풍해일이 닥치는데, 이 폭풍해일이 오늘날의 북해 연안선을 만드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는 연구도 있다. 범선 시대에서는 범선이 북해의 암초에 좌초되거나 거친 파도에 부서져 난파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추운 계절에는 얼어 죽는 사람도 많은 까닭에 항해사들은 아무리 멀리 돌아서 가더라도 최대한 북해를 피하도록 변경하기도 했고, 그나마 북해를 건너가는 범선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으며, 2차 대전 당시의 전함도 갑판에 물이 들어찰 정도로 거친 바다였다. 현대에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아서 한 번 기상이 악화되면 폭풍해일 때문에 현대화된 대형 컨테이너선에서 컨테이너 유실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 곳이다.

북해 지도[편집]

북해 주변 국가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북해〉, 《위키백과》
  2. 북해〉, 《나무위키》
  3. 북해〉,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북해〉, 《위키백과》
  • 북해〉, 《나무위키》
  • 북해〉,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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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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