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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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문트(Dortmund)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이다. 노르트라인페스트팔렌주의 지리적 중심부에 자리 잡아 경제적, 상업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다. 2014년 12월 기준 인구 580,511명으로 독일에서 8번째로 큰 도시이며 라인-루르 대도시권의 일부이다. 도르트문트 엠덴 운하(Dortmund-Emden Canal)의 종점인 도르트문트 항은 유럽에서 가장 큰 운하 항구로, 도르트문트와 북해를 연결시킨다.[1]
개요[편집]
도르트문트는 인구가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쾰른과 뒤셀도르프에 이어 세 번째, 독일 내에서는 8번째로 큰 도시이다. 라인강의 지류인 엠쉐르강과 루르강에 면하고 있고 동부 루르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882년에 설립되었고 신성로마제국의 자유도시가 되었다. 13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라인, 베스트팔렌, 네덜란드 지역을 아우르는 한자동맹의 '수석 도시'(chief city)로 동맹을 이끌었다. 1803년 자유도시로서의 권리를 상실하여 쇠퇴하였으나, 루르 탄전의 발전과 19세기 말 운하의 완공으로 공업뿐 아니라 상업의 중심지로서도 급속히 발전하였다. 신구교 간 대립으로 시작된 30년 전쟁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인구가 줄었으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살아나기 시작해 석탄, 철강, 맥주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독일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가장 많이 파괴된 도시의 하나로 꼽힌다. 특히 1945년 3월 12일 1,110대의 폭격기가 동원된 공습으로 도심 건물의 98%가 파괴되기도 했다. 도르트문트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그린 메트로폴리스'(생태주의 거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절반 가량은 수로, 삼림, 농경, 넓은 공원들이 있는 생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백 년에 가까운 대규모의 석탄 채굴과 제강의 역사와 대조를 이룬다. 도시의 전통 산업이었던 철, 석탄 분야의 제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생명공학, 의학 등 첨단 기술 분야가 새로운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독일에서 공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들 중 하나다. 이 때문에 2009년 '2씽크나우(2thinknow) 혁신도시 인덱스'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디지털 도시로 꼽혔다. 독일의 프로축구 리그 분데스리가에서 상위권에 있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팀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도르트문트는 루르 지역의 중심지이다. 530만 명이 모여 사는 루르 지역은 보쿰, 카스트로프-라욱셀, 발트로프, 뤼넨, 카멘, 우나, 홀츠비케데, 슈베르테, 하겐, 헤르데케, 비텐 등 11개 도시로 구성되는데 광역도시권으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 도르트문트의 지부르크구 옆에는 라인강의 저수지 헹슈타이제호수가 있다. 저수지 바로 북쪽에 시에서 가장 높은 254.3m 높이의 클루젠베르크산이 있다.
도르트문트는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연평균 온도는 9~10°C이고 연간 약 800mm 비가 내린다. 겨울에는 꾸준히 비가 오고 여름에는 가끔 소나기가 온다.[3]
역사[편집]
도르트문트 시 지역에서 인간 정착의 첫 흔적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르트문트가 공식 문서에 처음 언급된 것은 882년 트로트마니(고대 작센어: Throtmanni)라는 이름이었다. 도르트문트 시장권(Marktrecht)은 990년에 최초로 언급된다. 11세기에는 라이놀두스(Reinoldus)의 전설이 도시의 수호성자가 된다. 1152년 대화재로 도시가 파괴되자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황제가 도시를 재건해 2년간 이곳에서 거주했다. 1200년에는 이미 오늘날 도심 면적인 82핵타르가 도달되었고 도시성곽이 건축되었다. 1232년에는 도시 대화재가 발생했다. 방화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도시 전체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화재는 왕의 길(Hellweg) 북쪽의 밀집된 도심에서 심했고 소상인과 장인의 목재로 된 집뿐만 아니라 돌로 된 라이놀트 교회까지 파괴했다. 화재로 인하여 도시의 고문서 보관소가 소실되었고 이와 함께 대화재 이전 시기의 모든 문서도 사라졌다. 화재로 인해 사라진 도르트문트의 옛 특권은 1236년 프리드리히 2세가 도르트문트를 최초로 제국 도시로 지정하며 되살렸다.
1267년 성모 마리아 교회가 세워지고 시장, 행정 센터, 교차로 등이 생기면서 베스트팔렌 지방의 중심지로 떠올랐으며 제국의 자유도시가 되었다. 1293년 양조권을 처음 획득한 도시 중 하나가 되어 도시 내에서 시범적인 맥주 산업의 전개가 시작되었다. 1803년 나사우-오란제-풀다 공국에 편입되면서 자유도시의 지위를 잃고 1815년 빈 회의 결과에 따라 프로이센 왕국의 지배로 들어갔다. 프로이센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르트문트는 철강과 석탄의 중심이 되었다. 인구는 1875년 5만 7,000명에서 1905년 40만 명으로 늘었다.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이기 때문에 1920년 노동자들이 적군을 조직해 우파 군부의 쿠데타에 맞섰다.
나치 시절인 1938년 1,300석을 갖춘 유대교 공회당이 파괴되었고 정신 박약아나 신체적인 불구자들을 한다마르 정신병동에서 안락사 시킨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정유시설이 있는 도르트문트는 연합군의 집중적인 공습을 받았는데 도시 가옥 전체의 66%가 파괴되었다. 1945년 3월 12일의 공습은 4,851톤의 폭탄이 투하되어 전쟁기간 중 최대 규모의 폭격을 기록했다.
1987년 150년 이상 된 미니슈터 슈타인 탄광이 폐쇄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도르트문트는 석탄과 철강산업에서 바이오 메디컬 등 첨단 산업이 시작되어 지금은 하이테크산업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2001년 피닉스호수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회르데구 티센크루프 제철소가 있던 자리에 인공호수 공사가 시작되어 2011년 완공되었다. 피닉스 호수는 3.2km에 이르는 산책로 및 자전거 도로가 들어서는 등 문화, 레저, 관광의 중심지가 되었다.[4]
교통[편집]
도르트문트는 공업의 중심지인만큼 교통망이 잘 뚫려있다. 아우토반은 당연히 기본적으로 탑재되어있는 곳이고,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차역 중 하나인 도르트문트 중앙역이 있다. 거기에 강을 끼고 있는 만큼 수상 교통도 발달했다. 게다가 국제공항인 도르트문트 공항도 있다. 도르트문트 중앙역 (Dortmund Hauptbahnhof)은 루르 지방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자, 전 독일에서는 세 번째로 큰 기차역이다. 이 위로는 쾰른 중앙역, 함부르크 중앙역 딱 2개밖에 없다. 하루 이용객이 13만 명, 경유 열차가 680편에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파리-에센 탈리스의 시종착역이다. 광부 등의 노동자를 묘사한 파사드가 인상적인 역이다.
도르트문트 공항(Dortmund Airport)은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덕분에 국제적인 인지도는 공기에 가깝지만, 독일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이 정도면 꽤나 큰 공항에 속한다. 그리고 유럽 지역 한정이지만 국제선도 운영한다. 다만 도르트문트 공항은 비교적 소규모 공항이라 저가 항공사들만 이용할 수 있다.
도르트문트는 내륙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산업도시이기 때문에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 항구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베스트팔렌과 니더작센을 거쳐 북해로 흐르는 엠스 강(Ems River)이 있었기 때문. 엠스 강을 토대로 운하 사업을 진행했고, 북해 연안의 도시인 엠덴과 연결되는 도르트문트 엠덴 운하(Dortmund-Emden Canal)를 건설하면서 해상 사업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5]
경광[편집]
도르트문트는 베스트팔렌의 '녹색 광역도시'라고 불린다. 시 전체 면적의 반 이상이 수로, 숲, 농지, 공원 등의 녹지(베스트팔렌파크, 롬베르크파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백 년 가까이 대규모의 탄광에서 석탄을 캐고 철강을 생산해온 것을 감안하면 뜻밖이라는 평가다. 전후 재건축은 파괴된 옛 건물들 대부분을 복원하지 않고 1950년대 양식으로 짓되 예전의 도시계획을 감안해서 진행됐다. 이에 따라 라이놀트 교회와 성모 마리아 교회 등 소수의 역사적인 건물이 복원되거나 재건되었다.
일부가 복원된 알테스슈타트하우스와 마리엔키르헤 같은 역사적 건물들이 메디컬센터 같은 전후 새로 지어진 빌딩들과 조화를 이뤄 여러 건축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한다. 도심 밖 근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지 않아 중세 모습이 보존되고 있다. 크로이츠 교회를 비롯해 100개가 넘는 건축물이 역사적인 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산업시설도 보존되고 있는데 양조장이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된 U타워, 산업박물관이 된 촐레른 제2 · 4 탄광, 한자 코크스제조 공장 등이 그것이다. 롬베르크 가문이 1822년 개설한 65에이커의 롬버파르크 식물공원은 영국식 경관을 갖추고 수천 종의 식물과 종려나무 테라스를 갖춘 수목원이 있다.
문화[편집]
도르트문트는 오랜 전통의 음악 도시다. 1887년 창립된 도르트문트 필하모니와 '세계 100대 재즈클럽'으로 꼽히는 도미실 재즈클럽이 맥을 잇고 있다. 공연장으로는 나치시절 파괴된 유대교회당 자리에 1996년 들어선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와 도르트문트 콘서트홀이 유명하다. 2002년 개관한 도르트문트 콘서트홀은 유럽 콘서트홀 평가기관(ECHO)에 의해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콘서트홀 21개 중 하나로 선정됐다. 박물관으로는 오스트발박물관, 문화미술사박물관, 독일 축구박물관, 양조장박물관 등이 있다. 중앙역 부근에 위치한 DFB박물관은 독일 축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국립박물관으로 U타워에서 도르트문트 극장에 이르는 1.6km의 문화 예술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U타워에 있는 오스트발박물관은 표현주의 작가인 에른슈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오토 뮐러, 에밀 놀데를 비롯해 피카소, 미로, 샤갈, 달리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앞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시장에는 높이 45m의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도르트문트공대, 도르트문트 응용과학대, 국제 경영대학원 등 교육기관이 있어 4만 9,000명의 학생을 수용하고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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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도르트문트〉, 《위키백과》
- ↑ 〈도르트문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도르트문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도르트문트〉, 《요다위키》
- ↑ 〈도르트문트〉,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도르트문트〉, 《위키백과》
- 〈도르트문트〉, 《나무위키》
- 〈도르트문트〉, 《요다위키》
- 〈도르트문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도르트문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