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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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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시 시기
룩셈부르크시 휘장
룩셈부르크시 야경
튕겐 요새
유럽연합 사법재판소

룩셈부르크(룩셈부르크어: Lëtzebuerg 러처부어시, 프랑스어: Luxembourg 뤽상부르, 독일어: Luxemburg 룩셈부르크)는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수도이다. 나라인 룩셈부르크와 구별하기 위해 룩셈부르크 시(룩셈부르크어: Stad Lëtzebuerg 스타트 러처부어시, 프랑스어: Ville de Luxembourg 빌 드 뤽상부르, 독일어: Stadt Luxemburg 슈타트 룩셈부르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노트르담 대성당 및 시청사가 있다. 부도심에 있는 키르슈베르크에는 유럽사법재판소, 유럽투자은행 등의 유럽연합의 기관, 룩셈부르크 대학, 라디오 룩셈부르크 등이 있다. 또한 룩셈부르크 시를 둘러싼 오래된 요새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개요[편집]

역사[편집]

963년 룩셈부르크 동부에 위치한 트리어(Trier) 지역의 생 막시맹(St Maximin) 수도원에서 발견한 문서에 작은 성(small castle)이라는 의미의 ‘러처부어히(Lucilinburhuc)’가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지명으로 발전한 것이다. ‘러처부어히(Lucilinburhuc)’는 현재 룩셈부르크시 복동쪽에 위치한 천혜의 바위절벽 지형으로 4세기부터 요새가 축조된 곳으로 지명이 남아있다. 로마시대에 깊은 협곡을 끼고 있는 지형의 특성상 군사적 요충지로 요새가 지어 졌으며 신성로마제국 시대에는 마을이 생기고 확대되면서 동서를 잇는 지리적 길목으로 자연스럽게 시장이 들어서면서 번성하였다. 10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지그프리트 백작(Count Siegfried)은 현재의 룩셈부르크시를 중심으로 북쪽의 아르덴(Ardennes)에서부터 남쪽의 라인강 지류인 모젤강(Moselle river)까지 통치하였다. 10세기 초부터 유럽의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성곽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12세기에는 도시의 확장과 더불어 성곽규모도 확대되어 현재의 노트르담성당(Cathedral of Notre Dame)까지 성곽이 완성되었다. 1340년부터 집권한 맹인왕 존(John the Blind) 은 새롭게 요새를 축조하였다. 1644년에 룩셈부르크를 통치하였던 스페인이 룩셈부르크시에 포대를 설치하고 23km에 달하는 터널도 건설하였다. 이후 룩셈부르크를 점령한 프랑스오스트리아는 1740년까지 포대를 확충하고 강화하였다. 18세기 프랑스 정치인이며 엔지니어인 라자르 카르노(Lazare Carnot)는 룩셈부르크시는 북쪽의 지브롤터(Gibraltar of the North)로 불리며 시 전체가 요새화되었다. 1839년 룩셈부르크가 독립하고 경제발전으로 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1867년부터 성곽과 요새가 대부분 철거되었다. 1994년 현재 남아있는 룩셈부르크시의 요새는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443년 부르고뉴 공작령(Duchy of Burgundy)의 선량공작 필립(Philip the Good)이 룩셈부르크시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다. 이후 유럽에서 중세를 지나 절대왕정 시대가 도래하면서 룩셈부르크시의 통치자는 전쟁과 조약체결을 통해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및 프러시아 등으로 19세기까지 끊임없이 교체되었다.

181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물러나면서 빈회의(Congress of Vienna)가 열려 유럽 열강은 룩셈부르크를 새롭게 형성된 네덜란드왕국(Kingdom of the Netherlands)에 포함시키되 대공국(grand duchy)으로 인정하여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시의 군사권은 독일연방프러시아가 장악하여 광대한 요새에는 프러시아군이 주둔하였다. 1866년 오스트리아-프러시아 전쟁(Austro-Prussian War)으로 독일연방이 해체되고 이듬해 1867년 런던조약(Treaty of London) 체결로 룩셈부르크시를 요새를 지키던 프러시아군은 완전히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 룩셈부르크는 완전한 자주권을 갖게 되어 룩셈부르크시는 역사상 최초로 주권국가의 수도가 되었고 시를 둘러싼 24km에 걸친 성곽과 4헥타르에 달하는 포대는 이후 16년에 걸쳐 대부분 철거되었다.

룩셈부르크시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1918년까지 독일의 점령을 받았다. 1918년 종전과 함께 독일군이 물러가면서 룩셈부르크는 대대적인 행정개혁을 단행해 아이크(Eich), 함(Hamm), 홀러리슈(Hollerich), 롤링거그룬트(Rollingergrund) 등 4개의 구(commune)를 룩셈부르크시로 편입시켜 시 면적이 크게 확대되었다. 룩셈부르크시는 1940~1944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다시 독일에 점령 당하여 주요 도로는 독일식 이름으로 바뀌었으나 종전 후 원래 지명으로 복원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룩셈부르크는 1867년 이후 유지하였던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유럽통합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51년에서 결성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모든 기구가 룩셈부르크시에 설립되었다. 현재에도 유럽연합의 주요 기관이 룩셈부르크시에 다수 위치하여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로 위상이 높다. 또한 1950년대 이후 룩셈부르크의 괄목할 경제발전에 힘입어 룩셈부르크시는 유럽금융과 통신산업의 중심으로 경제적으로 번영한 도시이다. 동시에 잘 보존된 여러 문화유적으로 시의 요새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매년 다양한 페스티벌과 축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리[편집]

룩셈부르크시는 룩셈부르크 남부의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프랑스벨기에로 연결된 아제트강(Alzette river)과 페트루세 계곡(Petrusse valley)을 끼고 있다. 룩셈부르크시로부터 서쪽으로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Brussels)이 213km 떨어져 있고 남쪽으로는 파리까지 372km, 그리고 동쪽으로는 콜론(Cologne)까지 209km 정도로 서유럽의 핵심적인 도시와 손쉽게 연결되는 거리에 있다.

룩셈부르크시는 넓은 공원, 숲 그리고 여러 역사적 유적이 산재하므로 인구 분포는 1㎦ 당 1,700명 정도로 서유럽의 중심도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곳은 아니다. 따라서 유럽에서도 맑은 공기와 넓은 녹지를 가진 대표적 도시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교통체증 완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2020년 2월부터 전국의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화 하여 이전보다 더욱 쾌적한 도시가 되었다.

다른 유럽 대도시와 비교하여 면적이 크지는 않지만 깊게 협곡으로 파인 강과 계곡을 끼고 있어 복잡한 지형을 띠며 협곡을 사이에 두고 2개의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룩셈부르크시 시청은 가파른 절벽 위에 위치하며 아래로 아제트강(Alzette river)이 흐른다. 70m에 달하는 협곡 위로는 여러 개의 교각과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협곡을 가로지르는 153m에 달하는 아치형의 아돌프다리(Adolphe Bridge)는 룩셈부르크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다리로 유럽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2017년에 건설된 공작 부인 샬럿 다리(Grand Duchess Charlotte Bridge)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룩셈부르크시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기후는 해양성기후로 겨울은 비교적 온화하며 여름은 선선하고 연중 2/3는 구름이 끼여 있는 날씨이다. 시의 연평균 기온은 9.3℃로 핀란드헬싱키와 유사하며, 해양성기후로 연중 기온차가 극단적으로 크지 않다. 가장 추운 1~2월 기온은 1~2℃ 정도로 영하 –2℃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는 날은 많지 않다. 또한 가장 더운 7~8월 기온은 17~18℃ 정도이며 종종 30℃ 이상 기온이 오르기도 한다. 또한 여름은 고온건조하며 겨울에는 비가 자주 내려 습도가 높다.

경제[편집]

룩셈부르크시는 독일라인란트팔츠주(Rhineland-Palatinate)와 자르란트주(Saarland), 벨기에왈릉지역(Wallonia), 프랑스로렌느(Lorraine)와 국경을 넘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한 광역지역(Grande Région)이다. 광역권 내 거주자들은 국경을 넘어 룩셈부르크시로 출퇴근하며, 물류, 제조, 금융분야 등에서 광역권의 중심 역할을 한다. 또한 룩셈부르크시는 룩셈부르크 경제의 중심지로 금융서비스, 부동산, 정보통신, 통신서비스, 운송과 물류, 생명과학과 관광 등 중화학 제조업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중심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교통[편집]

룩셈부르크에서 유일한 국제공항인 룩셈부르크 공항(Luxembourg Airport)은 룩셈부르크시 시청에서 불과 6km 떨어져 있다. 룩셈부르크 공항은 룩셈부르크의 국적기인 룩스에어(Luxair)의 허브공항이다.

룩셈부르크시의 5개 철도역은 룩셈부르크국영철도(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Luxembourgeois)에서 운영한다. 다만 인근국가와 연결되는 국제선 철도망은 독일, 프랑스, 벨기에의 해당 철도회사와 공동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룩셈부르크시에서 파리와 스트라스부르까지는 고속철이 연결되어 있다.

관광[편집]

  • 포대: 1644년 스페인 지배시절부터 건설된 24km에 달하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룩셈부르크를 지배한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건축을 진행해 독특한 유럽식 성곽과 요새를 보여준다. 룩셈부르크시의 포대는 1867년 도시의 확장으로 대거 철거되었지만 남은 부분은 보수를 거쳐 1933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면서 룩셈부르크시의 대표적 관광명소가 되었다.
  • 노트르담 성당(cathedral Notre-Dame)과 대공의 관저 그랜드 두칼 궁전(Grand Ducal Palace): 룩셈부르크시를 찾는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 겔레 프라(Gëlle Fra): 제1, 2차 세계대전에 희생된 군인을 추모하는 탑이다.
  • 아돌프다리: 협곡에 위치한 룩셈부르크시의 양쪽 지역을 잇는 아치형의 다리이다.
  • 미군묘지: 제2차 세계대전 시 룩셈부르크에서 희생된 5,076명의 미군을 기리기 위해 1960년에 조성되었으며 룩셈부르크와 미국의 돈독한 결속을 상징한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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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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