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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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스페인어: Sevilla, 영어: Seville, 문화어: 쎄빌랴)는 스페인의 남서부에 있는 도시로, 안달루시아 지방의 예술, 문화, 금융의 중심 도시이며 세비야주의 주도이다. 과달키비르강이 흐르는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평균 고도는 해발 7m이다.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다음이다. 세비야 자체만의 면적은 140.8km², 인구는 약 70만 명이다.[1]
개요[편집]
세비야은 스페인 남부 자치지방(comunidad autónoma)인 안달루시아의 주도(州都)이자 세비야 도의 도청소재지이며 과달키비르강 하류에 자리한 항구도시로 대서양과의 거리는 60km이다. 도시의 이름은 로마제국의 지배 당시 불렸던 지명인 '히스팔리스'(Hispalis)에서 유래한다. 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이슬람의 지배 당시에는 이스빌리야(Išbīliya)로 불렸고, 13세기 중반 카스티야-레온왕국에 정복되면서 오늘날의 세비야로 정립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번창했던 세비야는 712년 무어인들에 의해 정복되어 1248년 레콩키스타 운동을 벌인 에스파냐에 의해 탈환되기까지 이슬람 왕조의 수도였다. 16세기에는 신대륙과의 무역 독점권을 가져 대서양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아메리카 대륙이 자체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자 쇠퇴하였으나, 18~19세기 산업 재건과 공업화를 통해 세비야의 경제는 다시 회복되었다. 세비야은 콜럼버스의 항해가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고 콜럼버스의 묘도 이곳에 있다. 과거에는 배들도 작았고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이 수심이 깊고 유량도 많아 항구로서 기능해서 스페인 제국의 대표적인 무역 도시이자 신대륙 교역의 첫 관문으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수위가 낮아지고 배는 커진 지금은 내륙 도시에 가까워졌다. 세비야는 500여 년 동안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와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스페인의 명물인 플라멩코와 투우하면 떠오르게 되는 도시기도 하고 레콘키스타 이후 이슬람 모스크를 개조해 만든 세비야 대성당, 그리고 과거 이슬람 왕조 시절의 정원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알카사르 궁전, 김태희가 플라멩코를 춘 스페인 광장 등이 유명하다. 성지 주일~부활 주일 사이의 기간인 세마나 산타 기간이 되면 스페인 각지에서 열리는 행렬 의식이 그 중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덕분에 해당 기간이 되면 온 유럽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 행렬에 따른 교통 통제, 궂은 날씨까지 겹쳐지면서 온 도시가 혼잡해진다.[2]
명칭[편집]
세비야는 고대 로마 시절 히스팔리스(라틴어: Hispalis)로 불리다가 무어인 지배기에는 "시장이 열리는 곳"이란 뜻의 아랍어 이쉬빌리아(أشبيليّة)로 불렸다. 레콩키스타 이후 라틴어 이름 히스팔리스가 다시 사용되었으나 이후 p 가 v로 변하는 등의 음운변화를 거쳐 현재의 세비야로 굳게 되었다.
지리 및 기후[편집]
세비야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지점에서 약 80㎞ 상류에 위치한다. 동쪽의 말라가(Malaga)와 남쪽의 지브롤터 해협까지는 약 150㎞ 거리에 위치한다. 해발고도 7m에 약 141㎢의 면적을 가진 세비야는 주변이 산맥으로 둘러싸여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과달키비르강 하류에 위치하기 때문에 토양이 비옥해 올리브, 밀, 보리 등 농업에 적합하다. 주변을 둘러싼 산악지대에서는 구리, 철광석, 석탄 등의 광물도 채굴된다.
세비야는 고온건조하고 온난다습한 지중해성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19.2℃로 유럽에서 가장 따뜻한 도시 중 하나이다. 주변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들이 해풍의 영향으로 여름에 비교적 시원한 편이지만, 세비야는 내륙항이고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기 때문에 여름에도 매우 덥다. 5월부터 10월 사이 평균 최고기온이 34.5℃ 정도이고 7월과 8월에는 40℃를 넘는 날도 많아 평균 최고기온이 38℃로 매우 덥다. 하지만 여름 강우량은 극히 희박해 습하지 않아 그늘에서는 시원하다. 비는 주로 겨울에 내리고 연평균 강우량이 539㎜밖에 되지 않는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어 1954년 이후로 눈이 온 날이 2일에 불과할 정도로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3]
역사[편집]
세비야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지만, 도시로 개발된 것은 기원전 8~7세기경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무역로를 개척하면서 세운 식민도시부터였다. 페니키아인들은 이곳을 '히스발'(Hisbaal)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2세기 에스파냐의 동남부 해안지역을 정복한 로마인들은 이곳을 '히스팔리스'(Hispalis)라고 부르고 교역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로마제국 시기 세비야는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기 위한 거점이 되면서 이베리아반도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로마제국의 몰락 이후 5세부터는 반달족과 서고트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712년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들에 의해 정복되었는데, 약 500여 년 동안 세비야는 이슬람의 여러 왕조의 수도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번성하였다. 당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현재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탑(Giralda)과 알카사르궁전(Alcázar)의 석고 안뜰(Patio del Yeso) 등이 있다.
1248년 11월 가톨릭 국가 카스티야-레온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이끄는 레콩키스타 사업으로 세비야는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15세기 말 신항로 개척은 세비야에 경제적 부흥을 가져왔다.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이사벨 1세는 1503년 세비야 항구에 무역거래소(Casa de Contratación)를 세워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과의 모든 무역을 이곳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했다. 무역거래소는 세금 징수뿐만 아니라 항해와 관련된 인허가를 해주고 수출입을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신대륙과의 무역 독점권을 받으면서 세비야에는 유럽의 상인들과 사무실로 넘쳐나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에 세비야 대성당의 개축 작업이 완공되고 세비야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레온왕국의 연합왕국을 거쳐 16세기 에스파냐왕국이 탄생하면서 세비야는 에스파냐의 영토가 되었다. 15~16세기 동안 교회나 왕궁 등 세비야의 이슬람식 건축물은 고딕 건축 양식 등의 기독교 건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히랄다탑 위에는 고딕 건축 양식의 종탑이 세워졌고, 알카사르궁전 역시 고딕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세비야의 황금기는 16세기 후반 주변의 카디즈(Cádiz)항에도 무역사무소가 설치되고, 17세기에는 식민지들이 자체적으로 산업을 발전시켜 본국으로부터 수입할 물품이 줄어들면서 저물기 시작했다. 1647년에는 페스트가 유행해 5년 동안 전체 인구 60만 명 중 15만 명이 사망하며 도시의 활력을 잃게 되었다.
18세기 에스파냐 왕국의 카를로스 3세는 세비야의 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세비야 왕립담배공장을 설립하고, 19세기 전반기에는 도시의 주요 건축물들을 재건축하여 미관을 정비하는 등 도시의 내부 발전에 집중했다. 19세기, 철도가 건설되고 도시의 성벽 밖으로 도시가 확장되었으며, 세비야전기회사(Sevillana de Electricidad)의 설립으로 전기가 공급되었다. 1929년에는 포르투갈과 미국, 남미의 유수의 국가와의 화합을 목표로 이베로-아메리칸전람회(Ibero-American Exposition)가 세비야에서 개최되었고, 전람회를 위해 과달키비르강을 따라 다수의 건축물과 호텔이 건축되고, 도로가 확장되며 도시는 더욱 현대화 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 세비야는 스페인 산업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세비야는 내전 초기에 모로코로부터 침공해온 프랑코 진영에게 점령당하였다. 내전 기간 동안 세비야에서는 프랑코군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이 있었다.[4]
교통[편집]
세비야는 기차편(세비야 산타 후스타)과 버스편(플라자 데 아르마스/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의 정류장이 다르다. 다만 버스 정류장들이 구시가지에 더 가까운 편이고 인근 안달루시아 도시나 포르투갈의 리스본, 파루는 물론 바다 건너 아프리카 모로코 북부의 탕헤르(탠지어), 쉐프샤우엔으로 가기에도 더 편하다. 마드리드에서 고속철도 AVE를 이용하면 2시간 30분 내외가 소요, 그라나다에서는 일반철도(MD)나 버스를 이용하면 3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코르도바에서는 약 1시간 10분(MD), 45분(AVE) 정도 걸린다.
외곽에 세비야 국제공항이(IATA: SVQ, ICAO: LEZL) 위치해 있어 나름 항공편으로의 접근성도 보장되어 있다. 라이언에어와 부엘링이라는 두 걸출한 저비용 항공사의 포커스 시티이므로 스페인 전역 및 유럽 전역으로 오가는 항공편이 존재한다. 한편 세비야 공항에선 A400M을 엄청나게 많이 목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에어버스 디펜스 앤 스페이스의 세비야 공장이 세비야 공항과 활주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비야 공장은 A400M이 최종 조립을 마치는 곳으로서 에어버스사에겐 다른 의미로 중요한 공항이다.[5]
세비야 대성당[편집]
세비야 대성당(Sevilla Cathedral)은 스페인 세비야주 세비야에 있는 성당이다.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이고 두 번째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s Cathedral)이다. 대성당이 있는 자리에는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이다. 이슬람 사원은 사라졌지만 넓은 폭의 형태는 메카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영향이다. 1402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오랜 시기에 건축된만큼 고딕, 신고딕, 르네상스양식이 섞여 있다. 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에스파냐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남쪽 문 근처에는 콜럼버스 묘가 있는데,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다. 이 관에는 콜럼버스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다. 1987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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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세비야〉, 《위키백과》
- 〈세비야〉, 《나무위키》
- 〈세비야〉, 《요다위키》
- 〈세비야(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세비야의 기후와 자연환경(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세비야 대성당(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