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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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독일어: Dresden, 소르브어: Drježdźany, 체코어: Drážďany, 문화어: 드레즈덴)은 독일 동부에 위치한 작센주의 주도로 엘베강 강변에 위치해 있다. 작센 삼각 대도시권의 한 부분으로서 예로부터 독일 남부 문화, 정치, 상공업의 중심지이다. 문화 중심지로 유명하여 '독일의 피렌체'로 불리며, 특히 엘베 강변의 '브륄의 테라쎄'는 '유럽의 발코니'라 불릴만큼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 어원은 '강변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1]
개요[편집]
드레스덴은 독일의 도시이자 작센주의 주도이며 엘베강 연안의 마이센과 피르나의 중간,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한다. 오랫동안 작센주의 정치적 중심지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인구수에서는 라이프치히에 밀려 제2의 도시이다. 2000년대 한때는 인구증가율이 라이프치히에 앞섰기 때문에 2010년 기준으로는 드레스덴이 작센 최대 도시가 되기도 했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다시 역전당했다. 엘베강을 기준으로 강남의 구시가(Altstadt)와 강북의 신시가(Neustadt)로 나뉘며, 7개의 교량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면적은 328.8km², 도시 지역 인구는 약 79만 명으로 면적으로는 베를린, 함부르크, 쾰른 다음으로 4번째로 크며 독일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드레스덴은 엘베강 유역의 도시 가운데는 함부르크 다음에 큰 도시로 꼽히는데 대부분의 주민이 엘베 계곡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드레스덴은 작센 공국의 선제후와 왕들이 거주한 수도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문화와 예술의 유적이 도시 전체에 남아있다. 바로크나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많아 '보석상자'로 불리기도 한다. 한때는 폴란드 왕에 의해 통치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심 전체가 대부분 파괴되고 대부분 민간인인 2만 5,000여 명이 사망했다. 전후 재건으로 카톨리쉐 호프키르헤 성당, 츠빙거 궁전, 젬퍼 오페라하우스 등 도심 내 일부 역사적인 유적지가 복원되었다. 전후 동독에 속했다가 1990년 통일 이후 다시 유럽과 독일의 문화, 교육, 정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드레스덴공대는 독일의 10대 대학의 하나이다. 수많은 하이테크 기업들이 지사를 두고 있어 '작센의 실리콘 밸리'라고도 불린다. 작센 스위스는 엘베계곡 유역의 국립공원으로 등산할 수 있는 1,000여 개의 산봉우리가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2017년 함부르크 경제연구소와 베렌베르크 은행에 따르면 드레스덴은 독일에서 미래가 밝은 도시 중 순위 4번째로 나타났다. 드레스덴의 엘베계곡은 200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유네스코 당국은 이곳에 발트슐로센 다리(Waldschlößchenbrücke)가 건설되자 문화적인 경관을 해칠 수 있다며 유산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적되었다가 제외된 것은 엘베계곡이 세계에서 2번째가 된다.[2][3]
지리 및 기후[편집]
드레스덴은 엘베강 양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남쪽으로는 동부 오레산맥이, 동쪽으로는 113m 높이의 엘베 사암산맥이 있다. 가장 높은 곳은 트리벤베르크산으로 높이가 384m이다. 강가의 좋은 위치에 온화한 날씨를 가지고 있는데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을 비롯해 수많은 세계적인 수준의 박물관과 미술품을 가지고 있어 '엘베강의 피렌체'라고 불린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녹색도시의 하나인데 시 전체 면적의 63%가 숲 등 녹지로 되어 있다. 4개의 자연호수가 있고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문화적인 경관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엘베강변의 목장들이다.
독일 동부의 여러 곳과 마찬가지로 드레스덴은 해양성 기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나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대륙성 기후의 영항도 받는다. 여름은 따뜻하고 평균적으로 7월에 19.0°C 이다. 겨울은 독일 평균보다 약간 춥고, 1월 평균 기온은 0.1°C이다. 가장 건조한 달은 2, 3, 4월로 강수량이 한 달에 약 40mm, 가장 습한 달은 7, 8월로 80mm 이상이다.
역사[편집]
본래 슬라브족의 취락 지대였으나 중세시대 독일인의 동방식민운동에 의하여 독일인 주민들이 대거 이주했다. 1200년 이전에 성이 세워져, 1206년에 도시가 되었고 이후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인 하인리히 3세가 거성을 구축했다. 1316년에 일시적으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에 귀속되었으나 1319년, 다시 베틴 가문에게 반환되었다.
1485년, 베틴 가문의 영지 분할 조약인 라이프치히 조약으로 베틴 가문의 방계인 알브레히트계에게 넘어갔다. 슈말칼덴 전쟁에서 작센-마이센 공작 모리츠는 독일 왕 페르디난트 1세와 동맹을 맺어 1547년, 종가인 에른스트계의 요한 프리드리히 1세가 가지고 있던 선제후직을 찬탈하여 작센 선제후로 등극하였고 드레스덴을 거주지로 정하면서 작센 선제후국의 수도가 되었다. 17세기에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발생한 30년 전쟁과 1685년의 대화재 등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거나 전소되자 도시 주위에 성벽을 구축하고, 18세기에 이르러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각종 문화시설을 정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세우면서 독일 유수의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7년 전쟁 때 작센이 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프로이센군의 포격을 받아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때 작센 왕국이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계기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 도시를 작전기지로 삼고 동맹군과 싸웠기 때문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 산업화로 인한 경제 붐이 일어나면서 초기 단계의 기계 엔지니어링, 자동차, 항공, 카메라, 초콜릿 산업 등이 발달하기 시작, 1945년 이전 드레스덴은 독일의 주요 도시 중 가장 활발한 산업도시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후 드레스덴은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후방에 위치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2월 14일 영국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건축물들과 공장시설이 파괴되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종전 후 동독령으로 들어가면서 전쟁 보상으로 주요 공장들이 해체되고, 기업들은 본사를 서독으로 이전했다. 그나마 많은 숙련된 전문 인력들은 동독에 남았다. 이후 도시의 고 건축물에 대한 일부 복구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으나 공산 정권 하에서 복구 속도는 매우 지지부진했으며 드레스덴에 남아있던 유일한 고딕 건축 양식의 건물이었던 성 소피아 성당(Sophienkirche)는 1962년 발터 울브리히트의 지시로 완전히 철거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이후 30여년 가까이 엘베 강변의 브륄 테라스(Brühlsche Terrasse)를 구성하는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드레스덴의 구 시가지, 특히 노이마르크트(Neumarkt)는 사실상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알트마르크트(Altmarkt)와 프라하 거리(Prager Straße)의 경우 1960년대 후반 이후 사회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어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이후 고 건축물의 폐허 더미와 사회주의 양식 건축물이 뒤섞여 난개발로 몸살을 앓던 드레스덴은 1989년 동독 정권이 무너지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된다. 통일 직후 연방정부는 동독 시절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구시가지의 복구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연방정부의 지원 아래 작센주 정부는 구시가지 내 사회주의 시절의 건축물들을 전부 철거하고 궁극적으로는 구시가지를 폭격 이전의 상태로 원상복구시키겠다는 중장기 플랜을 수립해 현재까지 작업을 착수하고 있다. 3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 현재는 이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인데 1726~1743년에 세워졌다가 1945년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성모 마리아 교회(Frauenkirche, 프라우엔키르헤)가 1993년부터 복원에 착수해 2005년에 준공되어 다시 축성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라우엔키르헤 복원과 동시에 구시가지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던 경찰본부(1979년 완공)가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사진과 설계 자료를 토대로 폭격 이전의 건축물들이 복원된 상태이다. 구시가지 복원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드레스덴은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알트마르크트내 동독 시절 지어진 스탈린주의 양식 건축물과 노이마르크트내 문화과학궁전(Kulturpalast)의 경우 드레스덴의 공산권 역사를 상징하는 시민공간이라는 이유도 있고 시민들이 보존을 원하여 철거되지 않고 낮에는 도서관으로, 저녁에는 레스토랑으로 아직도 계속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4]
관광[편집]
드레스덴 구경거리의 대다수가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엘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건설로 그 문화유산적 가치가 크게 훼손되어 2009년 세계유산에서 지정해제되었다. 애당초 1945년 이후 만들어진 건물들에게 세계유산이란 칭호를 붙여준 것 자체가 연합군이 이 도시에게 너무했다는 의미로 붙여준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도시 동쪽으로는 엘베강이 체코에서 독일로 흐르며 좁은 협곡을 지나는데, 이 곳의 경치가 작센의 알프스라 불리며 널리 알려져 있어서 드레스덴과 함께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과거에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과 예술품들 덕분에 '엘베 강의 피렌체'(Elbflorenz)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궁전들과 박물관, 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고,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이름을 딴 젬퍼오퍼(Semperoper)라는 오페라 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다. 구시가는 중세시대부터 드레스덴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엘베 강의 남쪽에 해당한다. 구시가 답게 계획되지 않은 복잡한 길거리가 펼쳐져야 정상이나, 2차대전 당시의 폭격 이후 동독에서 복원 없이 공산주의식 직선형 신도시계획으로 만들어져 구시가지로 복원된 강가 주변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바둑판식 모양을 하고 있다. 물론 노이마르크트 까지 구시가지가 조성된 2021년 기준으로는 복잡한 길거리가 형성되었다. 시청사와 십자가교회 등이 있으며, 드레스덴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이다. 물론 시청사는 광장에 접해있지는 않고 조금 떨어져있다. 시청사의 탑 위에는 금박을 입힌 높이 4.9m의 '황금 사나이' 입상이 서 있다. 시청사 발코니에서는 드레스덴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945년 연합군의 공습으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는데 1953년부터 시작된 복원작업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만 되찾았다. 시청사 건물 옆에는 외벽이 검게 그을린 십자가교회가 서 있으며, 후기 바로크와 초기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소년성가대는 매우 유명한데 그 역사가 700년이 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1434년부터 시작된 Striezelmarkt가 열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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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드레스덴〉, 《위키백과》
- ↑ 〈드레스덴〉, 《나무위키》
- ↑ 〈드레스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드레스덴〉, 《요다위키》
- ↑ 〈드레스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드레스덴〉, 《위키백과》
- 〈드레스덴〉, 《나무위키》
- 〈드레스덴〉, 《요다위키》
- 〈드레스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드레스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