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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독일) 위치
본 (독일)
베토벤 기념비

(독일어: Bonn), 공식적 명칭으로 본 연방직할시(독일어: Bundesstadt Bonn)는 독일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도시이다. 1949년부터 1990년까지 서독 시절부터 독일의 재통일 이후인 1999년까지 행정부 소재지였다. 본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2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면적은 141.06km², 인구는 약 33만 명이다. 본은 게르만족과 로마인의 거주지이며 켈트어로 '도시'라는 뜻이다. 1770년에는 베토벤이 탄생하기도 하였다.[1]

개요[편집]

본은 라인강 중류에 있는 도시로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의 임시 수도였고 아직도 연방정부의 일부 기관이 남아 있는 사실상 제2의 행정수도이다. 본은 쾰른에서 남동쪽으로 24km 떨어진 도시로 독일에서 19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는 30여만 명으로 1,100만 명이 몰려 살고있는 라인-루르 광역도시권에 속한다. 본은 라인강이 라인협곡을 이탈하여 쾰른 저지로 흘러내리는 부근의 좌안(左岸)에 위치한다. 원래 한적한 소도시였으나, 1949년에 임시수도가 된 뒤 급격히 발전하여 주변으로 도시가 확대되고, 특히 국도(國道) 9호를 따라 남부지역의 도시화가 현저해서, 1969년에는 바트고데스베르크와 그 주변지역을 합병하였다. 본의 옛 시역(市域) 안에는 라인강변에 국회의사당이 신축되고, 관청가인 코블렌츠가(街)에 대통령관저·수상관저와 몇몇 정부 기관이 자리하는 외에 많은 정부 기관이 바트고데스베르크를 비롯한 시 주변 지역에 산재되어 있다. 한편 사무용가구, 사무용품, 인쇄, 출판 및 도자기, 경금속, 담배 등 공업도 새로이 일어나고, 보험 기타 업무활동도 활발하다.

본과 쾰른 사이에는 1932년에 완성된 독일 최고(最古)의 아우토반(자동차 도로)이 통하고, 코블렌츠와 사이에는 관광선이 운항된다. 시내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뮌스터 교회(11∼13세기), 쾰른 선거후(選擧侯)의 거성(居城)이었던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1818), 라인 향토박물관, 알렉산더왕(王) 박물관, 바로크 양식의 시청 청사, 베토벤의 생가(生家), 콘서트홀인 베토벤 홀 등 역사적인 건물과 문화시설이 있다. 본은 일찍이 켈트인의 취락이었으나, 1세기 중엽에 로마의 성채(城砦) ‘카스트라보넨지아(Castra Bonnensia)’가 설치되어, 오늘날의 본의 도시명의 기원이 되었다. 로마의 도시로서의 본은 자주 만족의 침해를 받았고, 특히 민족 대이동의 혼란기에는 철저히 파괴당했으나, 그 뒤 프랑크족 지배 아래 게르만의 도시로서 재생, 복구되었다. 1244년 쾰른의 대주교에 의해 도시권이 부여되고, 쾰른 선거후인 대주교가 그곳에 궁전을 둠으로써 크게 번영하였다. 1801∼1804년은 프랑스령, 1815년에 라인란트와 더불어 프로이센령이 되고, 빌헬름 3세에 의해 대학이 신설되어, 19세기에는 독일 문화생활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2][3]

지리[편집]

라인강 중류지역과 라인하류가 만나는 지점의 남서 방향 쪽으로 연방도시 본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지리적인 지점은 바트 고데스베르크에 라인계곡이 깔떼기 모양을 하고 있어서 특징적이기도 하다. 라인강의 양쪽 유역에 141.2km²의 면적으로 펼쳐진다. 라인강의 좌측(서쪽) 면적이 본의 전체 면적 중 약 3/4를 차지한다. 본은 다음과 같은 도시와 군(Gemeinde)들이 본과 인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부터 출발하여 시계방향으로 니더카셀(Niederkassel), 트로스도르프(Troisdorf), 장크트 아우구스틴(Sankt Augustin), 쾨니히스빈터(Königswinter), 바트 호네프(Bad Honnef), 레마겐(Remagen), 바흐트베르크(Wachtberg), 메켄하임(Meckenheim), 알프터(Alfter), 그리고 보른하임(Bornheim)이다.

역사[편집]

1989년에 본은 도시의 창립 2천 주년을 기념하였다. 창립의 해로 기준을 삼은 것은 기원전 12세기 라인강가의 첫 로마 병영지의 구축이다. 그러나 이미 기원전 38년에 로마의 사령관은 아그리파는 거주민을 이주시켰었다. 그리고 본 지역에는 이미 오래전에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다. 그 증거로는 오버카셀의 1만4천 년 된 이중묘와 기원전 408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베누스베르크의 묘와 목조책이 있다.

기원전 본나(Bonna, 본의 옛 이름)에 로마의 영향이 작았던 반면, 기원후 9년의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이후에 상황이 변했다. 그 이후 수 십년 동안 로마군 군단이 들어서, 오늘의 본 북쪽 지역에 병영을 구축하였다. 병영의 주위와 그 남쪽, 오늘의 아데나워알레를 따라 상인과 공인들이 상촌(vicus)을 형성하였다.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에 본의 운세도 하락하였다. 바이킹족이 라인강 유역의 라인란트 지역의 침략 때 본은 882년에 두 번 불탔고 883년에 갓 재건된 후 노르만인들에 의해 침략당하고 불타고 강탈당했다.

프랑크 왕국 시대의 9세기와 10세기에 본에는 오늘의 뮌스터 성당 부근에 기독교 구심지인 빌라 바실리카가 형성되었고, 오늘날의 시장광장 부근에 시장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1243년을 제국으로부터 도시권을 완전히 이양을 받은 해로 보고 있다. 본의 또 다른 발전의 주요한 기점은 1288년의 보링엔의 전투이다. 쾰른의 선제후들이 브륄과 포펠스도르프와 함께 본에 거주지를 정하고 급기야는 궁전 소재지로 정하였다.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선제후들이 건축한 사치스런 궁전들로 본이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갖추게 되었다. 179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군 점령으로 이 시기는 종점을 맞았다.

나폴레옹의 패전 후 1815년에 본은 프로이센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이 시기에 본은 1818년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새로 건립된 본 대학교에 의해 윤곽이 지워진다. 이미 18세기 후반에 본에는 대학교가 있었지만 1794년에 프랑스 점령군에 의해 휴교되었다. 프로이센에 의해 재개교된 대학교는 선제후 시대의 대학교를 계승하지 않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전신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와 브로츠와프 대학교(브레슬라우 대학교)과 함께 교육정책의 한 맥락이었다. 대학교 명칭 중 "라인"이라는 단어는 본 대학교가 베를린과 브로츠와프 대학교의 자매학교임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후 백 년간 본 대학교는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가문의 황태자들이 선호하는 학교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본은 먼저 캐나다군, 그 후 영국군, 그리고 1926년까지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본 시민 중 유태인이 천 명 정도 목숨을 잃었다. 8천 명 정도는 강제 이주를 당하거나, 체포당하거나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었다. 1945년 5월 9일에 미군의 입성으로 본에 종전이 된 시점 도시가 파괴된 비율은 약 30%였다. 그 중 70%의 건물은 경중 파괴되었고 30%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4천 명 이상의 본 시민이 공중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1945년 5월 28일 영국 군대가 점령국으로서 도시를 인계받았다.

이후 본은 급격한 건축과 도시의 확대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1949년 11월 29일 본의 서독 수도 지정이 큰 기여를 한다. 본에서 가까운 쾰른 시장 출신으로 서독(독일 연방 공화국)의 초대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가 건국 직후 자신의 정치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과 로비전을 벌인 끝에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본을 독일 연방 공화국의 수도를 정했다. 인접해 있던 소도시 바트 고데스베르크와 보이엘이 통합되어 현재의 본이 되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큰 논쟁 거리였던 연방 공화국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베를린 시장을 지냈던 빌리 브란트 제4대 총리의 뜻에 힘입어 근소한 차이로 1999년(공식적인 행정 수도 이전 작업 기간은 1991년~1999년)에 연방수도를 독일인의 얼이 서린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매듭지어졌다. 의회가 본에서 이주해 나가고, 정부청사들이 갈리고, 외국 공관들의 이주로 인해 도시가 공백상태를 겪었지만, 본과 베를린 상생에 관한 법률에 의해 남아있는 부처들, 새로 이주해 온 정부청사들, 대기업의 유치, 국제기구의 유치, 연구소와 연구분야 기구들로 인해 본은 구조변화를 겪었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구조변화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4]

교통[편집]

서독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우어의 이름를 딴 쾰른–본공항은 본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져 있다. 2015년 현재 승객 수송에서는 독일 내에서 7번째로 크고 화물 수송 면에서는 세 번째로 큰 공항이다. 이 공항은 35개국 115개 도시에 운항을 하고 있고 독일에서 24시간 풀 가동 되는 몇 안 되는 공항 중 하나이다. 항공사 유로윙스, 택배회사인 페덱스 익스프레스, 화물전용 항공사인 UPS항공사가 이곳을 본거지로 하고 있다. 하루 6만7000여 명이 본 중앙역에서 도시철도(S-Bahn), 지하철(U-Bahn)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취리히, 브뤼셀, 암스테르담, 파리 등으로 가는 고속철 ICE를 이용한다. 2016년 현재 하루 평균 장거리 노선 80편, 지역 노선 165편의 기차가 이곳을 지난다. 버스는 약 30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경제[편집]

본을 대표하는 기업은 도이체 포스트 DHL 그룹이다. 2000년 완전히 민간 회사가 된 DHL그룹은 소포 특급 배송과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공기업 독일 우정국에서 민간 기업으로 바뀐 도이체 포스트는 2014년 영국의 우정국을 인수하는 등 2015년 현재 매출 573억 유로에 순이익 26억4000만 유로의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본을 대표하는 또 다른 기업은 도이체 텔레콤으로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회사인데 유럽에서 가장 큰 통신회사이다. T모바일이라 불리는 이동통신회사 등 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중부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에 진출해 있고 2016년 현재 매출 790억 유로에 순이익 31억 유로를 올리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총 21만8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문화지 및 관광지[편집]

도시 중심부 시장광장 옆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구 시청건물은 시장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선제후궁전은 요세프 클레멘스 아우구스트 쾰른 대주교 겸 선제후의 집무실로 건축되었으나 1818년 이래 본대학의 메인 빌딩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1km 떨어진 곳에 대주교의 관저로 지어진 포펠스도르프 전은 폐허가 된 옛 궁전자리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데 이 궁전도 본 대학의 일부가 됐다. 또 이 궁전의 부속건물 중 일부는 본 수목원 겸 식물원으로 개조됐다. 거리 양옆에 마로니에가 늘어선 포펠스도르프 알레는 2개의 궁전을 잇고 있는 거리인데 본에서는 처음으로 관광마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시장광장 부근인 본가세에는 박물관으로 변신한 베토벤의 생가, 베토벤 하우스가 있다. 그를 기리는 기념동상이 뮌스터 플라츠 광장(Münsterplatz)에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본 미니스터 교회가 있다.[5]

고층건물로는 독일 우편회사인 도이체 포스트 DHL그룹의 본사 포스트 타워(높이 162.5m)와 통일 이전 서독의 의회가 사용하던 랑거 오이겐 빌딩이 있다. 라인 강변에 위치한 라인아우에 공원은 시내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비견된다. 헤를레 수목원은 본과 인근 지벤산 사이의 라인계곡에 위치한 수목원으로 날씨가 따뜻한 달이 되면 한 달에 두 번 무료로 개방된다. 지벤산은 본 남쪽으로 중부 라인 지역의 아래에 있다. 빙겐에서 코플렌츠 사이에 있는 중 부라인의 위쪽 지역은 40여 개의 성과 중요한 포도원이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건축물[편집]

시장광장(Marktplatz)에는 로코코 양식으로 건축된 구시청(Altes Rathaus)이 있다. 이 건물은 본의 상징 중의 하나이다. 구시청으로부터 가까운 거리에는 과거 쾰른 선제후의 거처인 선제후 궁전이 있다. 현재는 본 대학교의 본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포펠스도르프 아베뉴(Poppelsdorfer Allee)는 선제후 궁전을 포펠스도르프 궁전과 연결시킨다. 후자는 18세기 후반에 선제후들의 여가목적을 위하여 지어졌다. 두 궁전을 연결하는 축을 가로질러서 중앙역의 철로가 놓여있다. 중앙역의 본관건물은 오늘날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중앙역 앞쪽 광장에는 한 때 노숙자들의 집합장소였던 본 구멍(Bonner Loch)이 있기도 하다.

  • 본은 베토벤이 탄생한 곳이다. 베토벤의 집은 박물관과 연주회장으로 쓰이고 있다.
  • 베토벤 오케스트라가 있다.
  • 1959년에 건립된 음악연주회장인 베토벤 홀(Beethovenhalle)이 있다.
  • 본 극장(Theater Bonn)이 있다. 이전에는 오페라 극장(Oper)이라 불렸다.
  • 쾨니히스빈터(Königswinter)은 왕의 겨울이라는 뜻으로 니벨룽의 노래에서 용을 물리치던 전설과 관계가 있다. 언덕에는 용의 성과 파충류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및 기념관[편집]

본에는 적지 않은 수의 박물관이 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빈의 건축가 구스타프 파이흘에 의해 설립된 독일연방공화국 예술 및 전시관(Kunst- und Ausstellungshalle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또는 간단히 Bundeskunsthalle) 그리고 독일연방공화국 역사관은 개관 이래 독일에서 가장 방문수가 많은 박물관에 들어간다. 연간 50만명의 방문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별전시회 때에는 이 수를 훨씬 웃돈다. 두 박물관 모두 본 시에서 건립한 본 미술관(Kunstmuseum Bonn)과 함께 1990년대 초에 세워졌다. 이들 박물관들과 수 개의 다른 박물관들이 위치해 있는 거리를 박물관 거리(Museumsmeile)라고 칭하기도 한다.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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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본 (독일)〉, 《위키백과》
  2. 본(독일)〉, 《나무위키》
  3. 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 《요다위키》
  5. 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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