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잉글랜드(England)는 영국의 구성국 중 하나이다. 잉글랜드는 그레이트브리튼섬 남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북쪽으로 스코틀랜드, 서쪽으로 웨일스와 아일랜드해, 남쪽으로 영국해협, 동쪽으로 북해와 접한다. 지형은 대체로 평탄하며 면적은 130,395 km2이다.
잉글랜드는 영국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영국이라는 명칭 또한 잉글랜드에서 유래했다. 잉글랜드 왕국의 독자적인 역사는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하면서 구성국이 되었다.
개요[편집]
- 수도: 런던
- 면적: 130,395km²
- 인구: 5,652,000명(2022)
- 공용어: 영어(사실상)
- 정치체제: 영국 연방의 구성국
- 국가원수: 찰스 3세
역사[편집]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원주민이었던 켈트계 브리튼족들을 침략해 칠왕국을 세운 것이 잉글랜드의 시작이다. 그 전의 그레이트브리튼 섬 중남부에 있었던 브리타니아는 로만 브리튼으로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친 로마파 켈트계 원주민인 브리튼족들이 살고 있었다.
5세기에 제국 밖의 게르만계 부족들이 서로마 제국을 침략하자 로마군은 유럽 대륙 방어를 위해 브리타니아에서 철수해 버렸고 방위력의 공백을 틈탄 북방의 픽트족과 스코트족의 준동은 브리튼 족들에게 심대한 위협이 되었다. 특히 지금의 스코틀랜드인 칼레도니아의 스코트 족은 같은 켈트계지만 로마 제국에 끝까지 강경하게 반항했다. 서유럽 전역에 걸쳐서 켈트계 부족들과 공존 관계를 구축한 로마인들도 이들은 도저히 상종하지 못할 야만족으로 간주했다.
브리튼 족은 픽트족과 스코트족의 침입을 막으려고 바다 저편에 사는 독일, 덴마크 일대의 게르만족들을 용병으로 썼지만 브리타니아의 브리튼 족들에게는 로마와는 달리 용병 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규모의 군단 방위력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윌란 반도에서 앵글족에 뒤이어 이제는 색슨족이 대거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를 침략해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브리튼족들의 영역은 서부의 산악 지대로 축소되어 현대의 웨일스가 되었다. 그리고 동부에 남아있던 브리튼족들은 앵글로색슨족들과 혼혈이 되어 이후 잉글랜드의 기본 주민이 되었다.
잉글랜드는 그렇게 앵글로색슨족이 지배하게 되었으나, 게르만족 특유의 사회 체제 때문에 여러 대립 왕국들이 난립한 데다 본격적으로 바다를 건너 쳐들어오기 시작한 바이킹들의 침략으로 인해 오랫동안 분열된 상태였다.
그러다 10세기 즈음 애설스탠 왕 무렵에 처음 통일이 되었고 에드거 1세에 이르러서도 통일이 유지되었다가 덴마크로부터 쳐들어온 바이킹들에게 국가 전체가 정복되었다.
노르망디의 공작이었던 정복자 윌리엄이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 상태에 놓여 있던 왕국을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를 물리치고 정복한다. 정복자 윌리엄은 대륙의 봉건제를 잉글랜드에 도입하였으나 많은 부분에서 앵글로색슨의 관습에 따라 잉글랜드를 통치했다.
13세기에는 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굴복해 대헌장을 선포하게 된다. 이 문서는 귀족들의 권리를 확인시키기 위한 문서였지만 그동안 공식적인 헌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성이 있다.
잉글랜드 군주들은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 수차례 원정을 감행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장미전쟁으로 요크가와 랭커스터가 싸워서 튜더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 선포된 마그나 카르타 때문에 잉글랜드 왕들은 종종 자신이 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의회를 소집해야 했다.
장미전쟁을 제외하고는 대내 투쟁이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에 봉건적 봉사 의무도 세금으로 대체되었고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 '군대'도 용병이 상당량을 차지했다. 다만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 군대의 핵심은 여전히 두텁게 무장을 차려입은 기사진과 농민병 궁병대였고 용병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고용했다. 소작농 중의 일부는 '요먼'이라는 자영농 소지주가 되었다. 기사들은 싸울 일이 없자 토지를 매입하고 '젠트리'라는 계층을 형성했다. '젠트리'는 작위 없는 귀족에 가까웠지만 후대에는 세습 귀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주요 산업은 농업외에 양털 생산이 있다. 백년전쟁은 단순히 왕위 계승 전쟁이 아니라 양털 무역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플랑드르 지방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기도 했다. 젠트리는 양털이 매우 효과적인 이익 창출 수단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개방 농작지를 전부 목장으로 만들어 요먼 계층을 몰락시켰고 토지의 집약화를 이루었는데 이것을 인클로저(종획) 운동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잉글랜드 중부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농민들의 생활은 피해를 입었다.
18세기 초에 동군 연합 상태에 놓여있던 스코틀랜드 왕국과 연합법을 통해 한 왕국으로 합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과 아일랜드 왕국(Kingdom of Ireland)이 함께 있는 체제를 만들었고 19세기 초에 다시 한번 합침으로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연합 왕국의 일원이었던 아일랜드섬 남부가 대영제국의 자치령(dominion)인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어 영국 본국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현재 영국의 공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 되었다.
정치[편집]
1707년 연합법이 내려진 이후로 잉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등과 달리 독자적인 자치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이전의 잉글랜드는 잉글랜드 정부와 의회에 의해 통치되어 왔으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하나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병령으로 인해 이러한 지방 자치정권을 폐지하고 통합된 영국 정부와 의회가 잉글랜드를 통치해왔다. 그러나 1999년에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자치정부의 설립이 허용되면서 잉글랜드에게도 자치정부의 수립을 허용해 달라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는 영국 공화주의 운동과 연계되어 한때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결국, 잉글랜드는 통합 영국 정부와 통합 영국 의회의 직할이 결정되었고, 잉글랜드는 이로써 런던에 위치한 영국 정부와 의회의 반대로 영국 내에서 유일하게 자치정부를 가지지 못한 지역이 되었다.
경제[편집]
잉글랜드의 경제수준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이는 앵글로-색슨 경제 모델이라는 단어를 만들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경제 수준은 영국 내에서 가장 높으며, 유럽의 500대 기업 중 100여 개가 런던에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잉글랜드는 고도로 산업화된 지역 중 하나이며, 화학과 제약 산업은 특히 발달해있다. 또한 기술, 우주 항공 산업, 군수 산업, 소프트웨어 산업 등이 발달해 있다.
런던은 주로 가공된 물품을 수출하며 석유, 차(茶), 모직물, 설탕, 목재, 버터, 금속, 고기 등의 원료 제품을 수입한다. 잉글랜드는 30,000 톤 이상의 쇠고기를 수출하며, 그 가치는 대략 75,000,000 파운드(£)에 이른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은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쇠고기 수입국이다.
금리와 통화 정책을 주관하는 영국의 중앙 은행은 런던에 위치한 잉글랜드 은행이다. 런던에는 또한 영국과 유럽 내에서 가장 큰 증권 거래소인 런던증권거래소가 위치해 있다. 런던은 국제 금융의 중심지 중 하나이며,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 도시이다.
전통적으로 중요했던 제조업은 잉글랜드에서 최근 10년간 급격히 쇠퇴하였고, 동시에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였는데, 예를 들어 관광 산업은 영국에서 6번째로 큰 산업으로, 760억 파운드의 수입을 벌어들인다.
주민[편집]
흔히 이베리아족으로 지칭되는 대서양 연안 구석기인들이 최초로 영국에 정착한 제민족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후 대륙으로부터 선진 기술을 지닌 켈트족이 정착해 오면서 선주민과의 혼혈이 이루어졌고,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켈트화가 진행되었다. 로마 제국의 브리튼 정복 이후에는 소수의 로마인들이 건너왔다.
로마의 행정과 군사 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한 기원후 5~6세기 경부터 라인 강 하류, 플랑드르, 유틀란드 반도에서 게르만 민족의 일파(一派)인 앵글족, 색슨족, 유트족 등이 브리튼 섬을 침략했다. 초기에 이들 민족은 선주민과의 혼혈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 혼혈이 진행되어 오늘날의 영국인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민족적으로 혼합되어 있어 언어도 어원상 여러 개의 국어가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5~6세기에 침입한 앵글로색슨 족의 언어가 우세하여 현대 영어 어휘의 반수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주로 프랑스어와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잉글랜드인은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 웨일스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정복자들을 흡수했다. 많은 수의 유대인도 잉글랜드에 정착했으며, 최근의 이입 이민으로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 카리브 제도, 홍콩 출신의 사람들이 잉글랜드의 주민에 추가되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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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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