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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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프랑스어: Normandie)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레지옹이다. 2016년 1월 1일을 기해 시행된 레지옹 개편에 따라 바스노르망디와 오트노르망디가 합병되면서 신설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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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노르망디의 면적은 29,906㎢이며 인구는 3,339,131명이다. 주도는 주 동부에 위치한, 센마리팀 데파르트망의 수도이기도 한 루앙이며 그 외 주요 도시는 르아브르, 에브뢰, 캉, 셰르부르 옥트빌, 알랑송 등이다. 루앙, 르아브르, 캉을 연결하는 지대에 노르망디 인구의 25% 이상이 거주한다. 북쪽과 서쪽으로는 영국 해협, 남서쪽으로는 브르타뉴, 남쪽으로는 페이드라루아르, 남동쪽으로는 상트르발드루아르, 동쪽으로는 일드프랑스, 북동쪽으로는 오드프랑스와 접한다.
하위행정구역은 구 바스노르망디의 망슈(Manche), 칼바도스(Calvados), 오른(Orne)과 구 오트노르망디의 외르(Eure), 센마리팀(Seine-Maritime)의 5개 데파르트망(Départment)으로 구성된다.
노르망디는 노르망디 공국 시대부터 이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다. 프랑스 혁명기(1790~1791년)에 노르망디주(Province)가 폐지되고 5개의 데파르트망으로 분리되었으며, 1972년 레지옹(Région) 체계로 재편되어 바스노르망디 레지옹과 오트노르망디 레지옹이 설립되었다.
북유럽 해상 무역의 중심지들 중 하나로,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배가 드나든다. 위치에서도 알아볼 수 있듯, 인종과 기후가 북유럽에 가까워서 요리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도 이 지역만큼은 음식이 단출하다. 포도가 자라기 어려워 사과로 만든 시드르와 칼바도스가 발달했다.[2][3]
자연환경[편집]
기후는 대체로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동부의 오트노르망디 지역은 센강(江) 양쪽으로 펼쳐진 파리 분지에 위치하고 해발 350m 이하로 평탄지가 많다. 서부 바스노르망디 지역은 아르모리칸 산지(山地)에 면하여 산림과 구릉이 많다. 영국 해협에 면한 북쪽은 코탕탱반도가 돌출되어 있으며 반도 해안은 습지대, 황야, 절벽 등의 다양한 지형을 보인다. 남부는 노르망디 구릉을 이룬다.
역사[편집]
고대에는 벨가이족과 켈트인이 거주하였고 기원전 5~6세기 로마시대에는 카이사르에 정복되어 로마제국 루그두넨시스(Lugdunensis)의 일부였다. 3세기 메로빙거 왕조 때 부터 루앙 등의 도시에 기독교가 전파·정착되었다. 9세기 프랑크 왕국의 쇠퇴기에 노르만인의 침입이 시작되어 911년 프랑크의 샤를은 노르만의 수장 롤로에게 공작(公爵) 작위를 주며 봉건적 주종 계약을 맺었다. 노르망디 공국이 성립한 이 시대부터 센강 하류 지방은 '노르만족의 나라', 즉 노르망디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롤로의 후예인 노르망디 공작 기욤(영어 정복자 윌리엄)은 1066년 잉글랜드를 공격하여 윌리엄 1세가 되었다. 노르망디는 1087년까지 잉글랜드와 한 나라로 다스려졌으며, 1346년-1360년과 1415년-1450년의 백년전쟁 때도 영국군 주둔지로 남아 있었다.
노르망디는 백년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방에 속하게 되었으나 종교 전쟁 때 알랑송, 루앵, 캉, 쿠탕스, 바유 등의 노르만 도시들이 개신교에 가담하여 프로방스 전체가 전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에 노르망디는 파리의 자코뱅에 대항하여 연방 공화국 설립을 주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4년 6월 5일까지 나치독일군의 점령지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였다 미국군 영국군 캐나다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나치독일군을 상대로 노르망디 해안에서 골드, 유타, 오마하, 주노, 소드로 해안을 5구역으로 나누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실행하였다.
채널 제도[편집]
채널 제도는 1204년의 노르망디 분할 이후에도 계속 잉글랜드 왕실에 충성하였으나 잉글랜드의 일부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국의 일부로 되어있다. 잉글랜드의 국왕 (현재 엘리자베스 2세)는 노르망디 공의 작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노르망디 공이라는 작위는 잉글랜드 밖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1259년 파리 조약으로 인해 잉글랜드 왕실의 프랑스 영토에 대한 작위가 전부 포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법에 따르면 여성이 '공'의 직위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4]
산업[편집]
중·동부는 토양이 비옥하고, 전통적으로 낙농업과 유업이 활발하다. 캉 부근에는 철광산이 있어 중공업이 성하다. 현대에 들어 섬유공업이 쇠퇴한 반면 셰르부르 옥트빌·루앙·르아브르를 중심으로 조선·정유·기계·화학·자동차 공업이 발달하였다. 서부의 영국 해협으로 돌출한 코탕탱반도는 전체적으로 목축이 성하다. 농축산물은 곡물류, 양질의 버터와 다양한 치즈, 소고기 등이 특산품이다. 시드르주와 사과를 원료로 한 브랜디로 칼바도스 데파르트망의 지명에서 명명된 칼바도스가 유명하다. 디에프는 주요한 어항(漁港)이며, 옛부터 중요한 하천 교통로인 센 강변의 도시인 르아브르, 루앙 등의 항구와 공업 도시가 발달하였다. 해수욕장과 휴양지는 코탕탱반도 서안 도시들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있다.
문화유적[편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몽생미셸과 만, 르아브르도시를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바이외태피스트리가 소장된 바이외 , 옹플뢰르, 지베르니, 그랑빌, 에트르타, 도빌 등이 유수 관광지이다. 중세기 및 중세 이전의 건축 중에서는 레 장들리(Les Andelys)에 12세기 건설된 가이야르 성(Château Gaillard), 루앙 서쪽의 주미에쥬(Jumièges)에 7세기 세워진 수도원 등이 대표적이다. 고도인 루앙에 다수의 고딕 건축이 보존되어 있고 칼바도스의 리지외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지로서 많은 가톨릭교도가 찾는다.
행정구역[편집]
노르망디는 총 5개의 데파르트망 (주)가 설치되어 있다.
- 망슈주 - 프랑스의 데파르트망으로, 주도는 생로이며 인구는 495,153명(2007년 기준), 면적은 5,938㎢, 인구밀도는 83.4명/㎢이다. 주 이름은 영국 해협의 프랑스어 이름인 "라망슈 해협"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 센마리팀주 - 프랑스 북부 연안과 센강 어귀에 위치한 오트노르망디 지방의 주로, 주도는 루앙이며 인구는 1,243,834명(2006년 기준), 면적은 6,278㎢, 인구밀도는 198.1명/㎢이다.
- 오른주 -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알랑송이며 인구는 292,609명(2007년 기준), 면적은 6,103㎢, 인구밀도는 47.9명/㎢이다. 주 이름은 오른강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주내에 있는 코뮌은 2011년 당시 모터 스포츠 경주 대회 이력이 있는 코뮌인 에세이가 대표적으로 유명하다.
- 외르주 -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에브뢰이며 인구는 541,054명(1999년 기준), 면적은 6,040㎢, 인구밀도는 89.6명/㎢이다. 주 이름은 외르강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 지베르니는 클로드 모네의 사망지다.
- 칼바도스주 -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방의 주로, 주도는 캉이며 인구는 693,679명(2016년 기준), 면적은 5,548㎢, 인구밀도는 130명/㎢이다.
여담[편집]
- 영화 해변의 폴린, 녹색광선 중후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 고어물상륙작전의 배경이다.
- 게르만계와 노르만계 비중이 높다. 그리고 노르만어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 백년전쟁 당시 주요 상륙지라는 것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으로 인해 폭탄드랍의 상징으로 쓰인다.
- 쉘부르의 우산의 쉘부르가 바로 이 지역이다.
- S.S 노르망디도 이곳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 기암성의 무대가 되는 에기유 크뢰즈(L'Aiguille Creuse, 속 빈 바늘)이 노르망디의 에트르타(Étretat) 지역에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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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노르망디 (레지옹)〉, 《위키백과》
- 〈노르망디〉, 《네이버 지식백과》
- 〈노르망디〉, 《나무위키》
- 〈노르망디〉, 《위키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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