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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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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

양옥(洋屋)은 서양식으로 지은 이나 건축물을 말한다. [1]

개요[편집]

양옥은 서양관(西洋館), 양관(洋館), 서양루(西洋樓), 양루(洋樓)라고도 한다. 양옥이라는 용어는 특히 한옥 같은 동양의 전통 건축물에 대비하여 서양 건축물을 이르는 말이다.

양옥은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개화기에 서양의 각종 문화와 함께 건축 양식이 들어오면서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각국의 공사관이나 종교 관련 건축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의 각국의 공관 건물은 주로 조지안 양식이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고, 종교 건축물은 주로 고딕 양식을 띠고 있었다.[1]

일본의 양옥[편집]

이인관 풍견계의 관

일본에서 서양관은 개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 국내에 건축되었던 서양 건축양식을 이용한 건물을 가리킨다. 주로 주택을 뜻하며 양관이나 양풍건축(洋風建築)이라고도 부른다. 고베에서는 막말기에서 명치기까지 건축된 서양관을 '이인관(異人館)'이라고, 대정기에서 전후 소화기에 건축된 서양관을 양관이라고 구별하여 부르고 있다.

서양관의 종류[편집]

거류지 건축[편집]

나가사키, 요코하마, 고베 등 외국인의 거류지에서는 외국인의 주택(이인관), 사무소, 학교, 교회 등이 건설되어 종래의 일본과는 이질적인 길거리가 만들어졌다. 다만 외국에서 온 기사, 기술자에 의해 건설된 건축 뿐 아니라 일본인 직인에 디자인 등을 지시하여 건설한 건축 역시 존재한다.

의양풍 건축[편집]

의양풍 건축(擬洋風建築)은 거류지 건축에 자극을 받은 일본의 도편수들은 눈동냥 귀동냥으로 배운 서양의 디자인을 사무소, 호텔, 학교 등 건축에서 이용하였다. 전통적 직인으로서의 기술을 기본으로 양풍 요소를 수용한 이러한 건축을 통틀어 의양풍 건축이라고 부른다.

외국인 기사의 건축[편집]

초빙 외국인(お雇い外国人)의 지도에 따라 건설된 공장, 도시 건축 등이 있다. 긴자 연와가, 도미오카 제사장 등이 대표적인 건축이다.

일본인 건축가의 작품[편집]

초빙 외국인 조시아 콘도르가 일본인에 최초로 본격적, 체계적 건축교육을 시켜주었으며 이에 따라 다쓰노 긴고 등 일본인 건축가가 육성되었다. 이러한 정식 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수용한 관청이며 사무소, 주택 등 서양관이 건설되게 되었다(사실 도쿄역 같은 거대한 규모의 건축을 서양관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건축 가이드 따위에서는 총칭하여 싸잡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서양관에 자극을 받아 점차로 각 지역에서도 현지 직인에 의해 서양관이 지어지게 되었다. 사진관이나 병원, 의원, 학교 등에 특히 서양풍 디자인이 즐겨 사용되었다.

메이지 이후의 사회에서도 일반적인 건축이라고 하면 단연 화풍건축이었다. 일부 정치가나 실업가 따위가 서양풍의 생활 스타일을 수용하기 위해 서양관을 건설한 경우도 있었으나 층고가 높고 개방성이 낮은 서양관의 특징은 계절별 기온차가 심하고 다우다습한 일본의 풍토와 적합하다고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신간에서 부유층이 많이 살고 있는 아시야에서는 내객을 응접하기 위한 양관과 주인과 가족이 생활하는 일본가옥을 조합한 저택이 많이 건설되었다. 현지 연구자 후쿠시마 다다쓰구는 이것을 통틀어 '화양관(和洋館)'이라고 분류하였다. 시가현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건축가 윌리엄 메렐 보리스의 작품이 그 모본이 되었다고 하는데, 태평양전쟁시 공습 및 한신·아와지 대진재시 피해로 인하여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 화풍건축이 압도적이던 시대에 세워졌던 서양관이니만큼 건물이 빚어내는 이그조틱한 이미지와 분위기에 탐정소설의 무대가 되기도 여러 번이었다(이를테면 《흑사관 살인사건》이라든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생활 스타일은 급격히 변화하였다. 주택의 형식 역시 크게 변화하여 서양풍의 양식과 과거의 양식을 부정하는 모더니즘 건축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풍토에 맞춘 비전통적 스타일의 주택이 전통적 화풍주택보다도 우세해졌다. 구미화가 널리 퍼진 오늘에 와서는 서양풍의 외견에 와시쓰 없는 주택이 세워지더라도 서양관이라고 부르는 일은 더 이상 없다. 화풍주택이 일반적이던 시대 서양풍 주거가 세워졌으니만큼 서양관이라 구별하여 부르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1]

양옥과 한옥의 비교[편집]

우리가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을 보면서 지금 그곳에 살기에는 불편하리라고 예견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의 주거생활이 당시의 그것과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안채사랑채로 나뉜 한옥의 구성이 독특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 당시의 규범들과 현재의 그것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당시의 문화와 오늘날의 문화를 비교한다면 그만큼 한옥과 양옥의 차이점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즉 과거 농경, 대가족중심의 사회였던 것과 오늘날 산업, 핵가족중심의 사회였다는 것을 비교하면 될 것이다. 또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배고픔에 시달려 왔던 지난 세대들을 이해한다면 전통한옥과 양옥과의 괴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옥[편집]

우선 한옥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집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한옥은 시원하다. 후원의 나무숲과 뒷산의 구릉을 통해 기류가 발생하고 찬 공기가 형성되는 까닭이다. 사실, 한옥이 첨단 고학의 결정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조량을 조절하기 위해 처마가 1.5~1.8m로 깊은 것도 그렇고, 잔디 대신 마사토를 깔아 마당에 반사된 빛을 쬐는 고급스런 조명 방식을 택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뿐인가. 유리창 대신 창호지를 쓰기 때문에 일정한 조도를 유지해 자연스럽게 시력을 보호해 주는 것 또한 과학의 산물이다. 천장에도 선조들의 뜻은 담겨 있다. 대청 마루는 입식 공간이고 방은 좌식 공간. 사람이 서 있을 때 정수리에서 사람 키만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천장 높이의 원칙이다. 이는 기 순환과 관련이 있는데 너무 높으면 정수리에서 발생한 기가 빠져나가 허약해지고 너무 낮으면 기가 눌린다는 데 그 근거를 둔다. 소나무를 다듬어 황토로 빚은 한옥이 온돌과 마루라는 이중 구조를 갖고있는 것도 엄동설한과 삼복더위를 이기기 위한 과학적인 배려다. 여기에 집 안인지 바깥인지 구분이 없는 툇마루와 대청 마루. 대청 마루와 방은 나지막한 문지방을 경계로 삼는데 여섯 짝 분합문을 대들보 걸쇠에 걸면 벽이 사라진다. 유럽이 20세기에 가 벽을 연구한 것에 비하면 우리 조상의 지혜는 훨씬 앞선 것이다. 또한 한옥이 주 가옥구조였던 시대는 농경과 대가족중심의 사회였다. 즉 농경에 가장 알맞은 구조를 경험과 선조들의 지혜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다.

양옥[편집]

양옥은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라는 명목으로 서양식 개량 주택이 마구잡이로 건립되었고 이에 따라서 한옥은 헐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동선의 비효율성이다. 주부가 아궁이. 부뚜막. 개수대를 오가며 마당과 마루를 거쳐 안방까지 오르내리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이었다. 양옥은 단층 스레트집에서 서양식 양옥과 오늘날 고층아파트등의 형태로 변화되어 왔다. 이는 양적인 확대와 산업중심과 핵가족제도에 기인한 것이다. 우선 우리역사상 오늘날을 제외하고 언제나 물질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아왔다. 또한 과거 농경사회와는 달리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사는 집이 아니라 단지 가옥은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주거공간은 편리함을 위주로 선호하게되었다. 또한 핵가족제도로 인해 개개인의 삶이 존중되면서 가옥구조에 있어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게 되었다.

한옥과 양옥의 혼합[편집]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풍요한 지금은 "양옥의 한옥화"나 "양옥의 한옥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첫 번째로 양옥을 한옥의 이미지로 개보수하는 방법이 있다. 즉, 채나눔의 형식과 툇마루나 대청, 안마당 등 현대 건축에선 보기 힘들어진 여유 공간을 도입하는 것이다. 채나눔은 양옥임에도 안채뒷채 등의 공간을 연결, 한옥의 혹은 자형 구조를 닮아 가려는 것이며 이 외에도 베란다 대신 툇마루를 만들거나 서까래 옹마루 등을 함께 갖추는 등, 한옥의 특성을 살리려는 것이다. 아파트단독 주택 등 양옥에 살고 있는 일반인들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한옥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우선 골조는 콘크리트와 철골이더라도 마감재는 황토와 목조를 사용하고, 내부 공간을 개조할 경우 방 출입문을 불갈기 분합문으로 바꾸어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 직사광선을 확산시키는 유리창 대신 창호지로 바꾼다. 이렇게 하면 집안 분위기가 은은해지고 시력 보호에도 좋다.

한편, 양옥이라도 거실과 방의 높이를 달리 하면 기 순환을 도울 수 있다. 이를 위해 아파트의 경우, 시공할 때 위층과 아래층을 요철 모양으로 만들면 된다. 현재 삼성 건설에서 추진중인 아파트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2]

시공방법 차이[편집]

우리가 한옥과 양옥의 시공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한옥이 주로 목재를 비롯한 천연재료를 주재료로 하여 수공예적 작업에 많이 의존하고 있고, 양옥의 시공은 상대적으로 공업화된 재료를 주로 사용하고 기계화된 작업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양옥에는 많은 재료가 개발되어 있고 재료에 따라 다양한 시공방법이 개발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재료는 완제품 또는 반제품의 형식으로 개발되어 있어 현장에서 비숙련공도 공사가 가능한 정도로 개발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한옥의 경우는 아직까지 현장작업이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이러한 문제가 한옥의 확산보급을 막고있는 요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한옥과 양옥의 시공상의 차이가 나는 다른 요인은 한옥은 구조는 기본적으로 가구식 구조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양옥은 다양한 구조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양옥은 여러 나라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 구조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콘크리트 라멘조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주택이나 소규모의 건물에서도 조적조, 철골조, 경량철골조, 목조 등 여러 구조형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도 한옥은 심벽구조을 전제로 하고있기 때문에 구조체가 외부에 노출되고 구조의 아름다움을 생명으로 하고 있으나 서양에서 도입된 건축은 이러한 심벽구조보다는 주로 평벽구조을 위주로 하고 있어 구조체가 노출되지 않고 마감재로서 건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양옥의 재료선택이나 구조시스템의 채택은 내구성 등과 같은 기술적인 요소도 고려되지만, 많은 부분이 건축가의 개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어떠한 재료나 구조시스템이 채택되었다고 하더라도 표준적인 시공방법보다는 시공사의 노하우에 의하여 시공되고는 경향이 많다.

재료 차이[편집]

구조재에서 한옥은 목재(육송)가 주재료이고 양옥은 콘크리트, 철골(철골, 경량철골), 조적조, 목조 등이 주요다.

마감재(외부)에서 한옥은 돌, 전돌, 흙벽돌, 흙이 위주고 양옥은 벽돌, 타일, 목재, 유리, 뿜칠재, 플라스틱, 금속제(알미늄, 철판, 스텐레스 등), 페인트, 콘크리트, 콘크리트 판, 돌(화강석, 대리석, 기타)을 사용한다.

지붕재에서 한옥은 기와, 볏집, 억새, 너와, 천연슬레이트 등을 사용하고 양옥은 스라브, 스페니쉬기와, 동판, 아스팔트 슁글, 철판, 페인트, 천연슬레이트, 슬레이트 등을 사용한다.

내부 마감재에서 한옥은 목재, 벽지, 장판지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요사이는 주방, 욕실 등을 예전에 사용했고 지금은 한옥에 없었던 기능이 도입되어 일반 양옥의 주택에서 쓰이는 재료들도 많이 쓰이고 있다. 양옥은 바닥에 돌, 비닐계(타일, 시이트), 카펫트, 목재, 타일, 벽체에 벽지, 페인트, 목재, 벽돌, 돌, 타일, 뿜칠재, 플라스틱, 금속, 천, 천정에 벽지, 목재, 페인트, 뿜칠재, 금속, 천 등을 사용한다.[3]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1.2 양옥〉, 《위키백과》
  2. 한옥과 양옥의 비교〉, 《해피학술》, 2016-04-16
  3. 한옥과 양옥의 차이〉, 《네이버블로그》, 2006-08-08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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