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박물관(博物館, museum)은 고고학적 자료,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 밖의 학술적 자료를 보관, 진열하여 관중에게 전람시키는 시설을 말한다.[1]
목차
명칭[편집]
박물관(博物館)이라는 용어는 1860년 일본의 사절단이 미국의 워싱턴 D.C.을 방문했을 때, 특허국 진열장을 박물관이라고 번역한 것을 시초로, 그 후 후쿠자와 유키치가 1866년에 출판한 '서양 사정'에서는, 박물관이란, 세계 중의 유산, 고물(古物), 진물(珍物) 등을 모아 사람들에게 전시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한 시설이라고 정의하며, 박물관의 일종인 식물원, 동물원 등의 용어도 이 책에 의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영문 명칭 Museum은 고대 그리스어 "무세이온(Museion)"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뮤지의 집' 또는 '뮤즈에 헌납된 사원'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조형예술품과 보물을 봉헌하고 공연예술을 진행하였는데, 봉헌이 끝나면 조형 예술품은 창고에 보관하고 이 창고를 회화관, 조각관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즉, 이 때까지는 수집ㆍ보관ㆍ관리의 기능만이 있었다. [2]
정의[편집]
국제 박물관 협회의 정의: 지식의 증대, 문화재와 자연재의 보호교육, 그리고 문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자연계와 인류의 대표적 유산을 수집, 보존, 전달 및 전시를 하는 사회적 기관이다.
영국박물관 협회에서의 정의: 박물관은 대중의 이익을 위해 물적 증거와 관련 정보를 수집, 문서화, 보존, 전시, 교육(해석)하는 기관이다.
미국박물관 협회에서의 정의: 예술적, 과학적, 역사적, 기술적인 재료를 포함한 교육적이고 문화적 가치를 지닌 유물과 표본물을 소장하며, 단순히 일회적인 전시회를 열기 위한 목적이 아닌, 대중에게 교훈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연구, 해석 정리하고 전시하는, 공익에 의해 운영되고 대중에게 개방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조세감면 혜택을 받는 비영리적이고 항구적인 기관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의 정의(제 2조 정의): '박물관'이라 함은 문화, 예술, 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 하기 위하여 역사, 고고, 인류, 민속, 예술, 동물, 식물, 광물, 과학, 기술, 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하는 시설을 말한다.[3]
형성과 발전[편집]
뮤제이옹[편집]
고대 그리스의 뮤제이옹(museion)은 '뮤즈에게 헌납된 사원(the house of muse)'를 의미하며 현재 '박물관(museum)'이라는 용어의 유래이다. 뮤제이옹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홉 여신들의 '뮤즈의 신전', '명상의 장소', '진리를 탐구하는 시설' 등을 의미하였으며 여기서는 회화, 조각 등의 조형예술과 역사와 철학의 학문적 성과, 보물 등을 제례에 봉헌하고 이를 보관하는 보고역할을 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공연 예술이 펼쳐지는 일종의 복합 문화공간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대 박물관[편집]
기원전 284C 무렵 지어진 알렉산드리아 뮤제이옹(Museion of Alexandria)는 박물관의 고전적인 기능을 처음으로 갖추었다고 추정된다. 이곳은 알렉산드리아의 원정 이후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 왕이 부왕인 프톨레마이오스 소테르의 유언에 따라 조성한 것으로, 부왕이 사용하던 물건과 예술품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후일에는 신전으로 이용되거나 학자들이 문예와 철학을 연구하는 장소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미 다른 여러 교육 기관들이 무세이온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연구소나 학교의 성격이 강했으며 플라톤의 '아카데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시움'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무세이온과 같은 공공장소에 전리품 및 역사적 사건이나 일상에 대한 그림을 전시하였는데 이를 박물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전시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연활동이나 인간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인데 따라서 '교육적 기능'이 수반된다. 따라서 그리스의 무세이온과 같이 전시기능을 가진 고대의 기관들은 박물관과 유사한 교육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대왕의 사후 지속된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미술품의 수집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이는 이후 로마시대에 이르러 세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져 복제품이 생겨나게 되었다. 로마 군사들이 정복한 지역의 전리품과 미술품 등을 수집하여 가정에서 진열하게 됨으로써 사립박물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로마의 폼페이우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신의 신전을 공개하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뮤지움(museum)' 이란 단어를 진리를 탐구하는 토론장소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중세박물관[편집]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시설이 어느 정도의 박물관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교회에서 일련의 성서 유물을 중심으로 수집하였으며, 귀족이나 부호의 후원으로 수집되었다. 일부 교회와 수도원의 수집품은 바티칸 박물관가 같이 현대적인 박물관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유재산에서의 출발로 인해 수집기능은 있었으나 고전적인 박물관의 기능은 없었으며 흥미 위주의 전시를 하고 고가의 입장료를 징수하는 등의 폐단이 존재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박물관[편집]
르네상스 시대에는 학술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아 수집된 유물의 내용과 유형에 변화가 생겼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발견 이후 세계각지로부터 희귀한 물품들이 유럽으로 반입되었으며 서구의 귀족들과 부호들은 이러한 물품을 수집하여 개인 소장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소장품들은 보통 저택 내부에 마련된 전시실에 진열되었으며 이를 '경이로운 방'이라고 불렸다.
이 시기 미술과 작가에 대한 후원이 가장 두드러졌는데 특히 메디치(Medico)가의 후원자 역할은 박물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귀족들은 예술작업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선정하여 자신의 정치적 선전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하고, 거장의 작품들을 모으기도 하였다. 미술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으며 소장품을 관리하기 위한 박물관을 짓고 미술가를 초빙하여 조언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박물관 경영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실무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수집에 대한 열망이 과열되면서 로마 인근지역을 대대적으로 발굴하는 등 문화재를 훼손하는 일도 발생했다. 당시 박물관의 관람객은 일부 귀족과 특정계층에 한정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시대에 이르러 '박물관(museum)'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용어는 코시모 디 메디치(Cosimo de Medici)의 손자인 로렌조 메디치(Lorenzo de Medici)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근대 공공 박물관[편집]
근대에 이르러 박물관은 공공 박물관의 형식으로 변화하였으며 일반 대중들의 관심도 증가 하였다. 궁정, 귀족들이 근대적 시민혁명을 거치며 자신의 의도에 따라 소장품을 개방하거나 개인, 국가, 공공단체들이 공익을 위한다는 의도로 수집을 했던 시점이었다. 공공 박물관은 국가나 공공단체가 설립, 운영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 뿐만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박물관을 공개하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공 박물관의 설립이 시민의 취향을 존중하기보다는 기업홍보와 조세감면 혜택, 정치적, 과시적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비판이 존재하였다.
현대의 박물관[편집]
시민 혁명을 거치면서 박물관은 종래의 학자나 예술가 등 특정 계층을 위한 학술연구기관의 성격을 보였으며 나아가 대중에게 지식을 보급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영국의 경우, 1845년 박물관령의 공포로 박물관이 비로소 공공기관의 모습을 갖췄으며, 슬론 경(Sir Hans Sloane)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대영박물관이 1753년에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 이후 귀족의 전유물을 시민 전체의 것으로 돌려, 이를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이해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고 한다. 프랑스 왕립정부는 1750년부터 룩셈부르크 왕궁을 국립 박물관으로 용도를 변경하여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였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 루브르 궁에 왕궁 소장품을 옮겨 루브르 박물관을 설립,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였다. 이와 같은 왕립 박물관들은 후일 국립박물관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박물관의 증가는 일반 대중의 사회 교육과 문화적 참여권의 확대에 기여하였다. 또한 박물관의 보편화와 대중화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산업혁명에 따른 부의 축적, 대중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세기에는 전문 박물관이 형성되었다. 19세기 이전의 박물관은 종합박물관의 성격을 지녔으나 과학의 진보로 수집품이 늘고 분류와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전문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1799년 파리 이공학 박물관, 1807년 덴마크의 고고학 박물관이 그 예다. 19세기 박물관은 그 설립 목적이 신흥 도시의 힘을 과시하려는데 있었다. 이러한 박물관들은 건물이 대체로 화려하며 장식이 많다.
미국의 최초 대학박물관은 1805년에 설립한 펜실베이니아 예술원이라고 추정되며, 1876년 필라델피아의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대박람회와 1851년 런던의 대박람회의 결과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보스턴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의 박물관은 일반 대중의 지식개발을 돕는 시민의 교육기관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기존에 있었던 소수의 특정계층을 위한 박물관의 이념은 '공공성'을 부각하며 대중 친화적인 박물관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3]
한국의 박물관[편집]
삼국시대[편집]
수집과 보관의 기능을 중심으로 보면 백제 진사왕 7년(391년) 궁실을 중수하여 못을 파고 동산을 갖추어 진기한 짐승과 식물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경주의 안압지는 통일신라의 강력한 국력의 집약체로 풍부한 유물을 보유한 지하의 보고이다. 그 곳에 동물의 우리, 호랑이 뼈, 곰의 뼈, 조경석 등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식물의 수집과 보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근대박물관[편집]
1908년 어원사무국을 설치하여 고려자기를 비롯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시작하였다. 이왕가박물관은 근대적 의미의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으로 추정되며 1909년 창경궁이 일반에 공개되면서 동시에 박물관도 같이 공개되었다. 1909년 퇴위한 고종이 덕수궁에 고관 대작과 외국 사신들이 선물한 진귀한 물품들을 보관하기 위해 석조전을 건립하였다. 1938년 덕수궁이 공개되면서 석조전에 일본의 근대 미술을 진열, 상설 미술관으로 기능했으며 회화, 조각, 공예로 분류, 전시하였다.
현대박물관[편집]
1910년 '경주신라회'에서 출발하여 경주시 동부동 옛 객사 건물을 이용, 전시관을 개설한 것이 시작이다. 1921년 금관총의 발굴로 '금관고'를 만들어 보존과 전시를 했다. 1926년에 총독부 박물관의 분관으로 편입되었다. 부여에서는 1929년 '부여고적보존회'로 시작하여 1939년 역시 총독부 박물관의 분관이 되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설립되었다. 1970년대 이후 국립, 시립, 도립 형태의 박물관과 사립박물관의 설립이 증가하였다.[3]
종류[편집]
역사박물관[편집]
흔히 '박물관' 하면 가장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형태의 박물관을 말한다.
과거의 인류가 남긴 각종 문화재나 유물, 유적 등을 보존, 재현 및 전시하는 공간이다.
특별히 정해진 테마가 없이 인류의 발자취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박물관도 있고, 특정한 테마를 가지고 해당 테마와 관련된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박물관도 있다.
미술관[편집]
미술관(美術館, Museum of art)은 인간에 의해 제작된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수집, 보존 및 전시하는 박물관을 말한다.
현대 미술과 고전 미술은 너무나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소장품의 성향에 대해서 미리 알고 가야 미술관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미술관마다 시기에 따른 작품을 소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는 전시물에 있어 차이가 크다.
게다가 현대미술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하면 뜻이 좀 달라진다. 현대란 말은 보통 두 가지로 번역되는데, 모던(Modern)과 컨템포러리(Contemporary)다. 두 단어는 비슷해보이지만 좀 다른데, 모던 아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모더니즘 사조의 예술품을 뜻하며, 19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사조 이후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정도를 컨템포러리 아트로 부르고 있다. 다른 말로는 동시대 미술. 현재도 무수히 창작되고있는 예술가의 산실도 동시대 미술이 포함되는 셈이다. 물론, 현대나 모던, 컨템포러리가 이 전부를 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는 모더니즘 아트를 별도로 취급하는 미술관이 없기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름에 붙이고 있음에도 모더니즘 시기까지 포함한다. 사실 한국의 모더니즘 예술작품 수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의 미술관인 경우에는 이를 엄격하게 나누는 곳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자연사박물관[편집]
자연사박물관(自然史博物館, Museum of natural history)은 지구와 자연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귀족이나 부자들이 희귀한 물건을 수집하는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존재해왔으나, 특히 유럽에서 르네상스 이후로 지질학과 생물학에 관련된 수집물들을 전시해놓는 유행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전시실은 흔히 '호기심의 방', '신비의 방'으로 불리며 손님들에게 구경시켜주거나 지식인들끼리 학문을 논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취미나 과시용에서 벗어난, 인류 역사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은 프랑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 1635년 창설되었다. 일반 대중들에게 완전히 개방된 자연사박물관은 1683년 설립된 영국 옥스퍼드의 에슈몰린 박물관이 최초이다. 이후 자연사박물관은 식민지와 과학 기술력을 뽐내고 싶어하던 서구 열강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물론 현대시대에 들어와서는 순수히 학문의 발전과 대중교육의 목적으로 설립 및 운영된다.
과학관[편집]
과학관(科學館, Science Museum)은 과학 기술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과학이라 하면 자연과학만을 떠올리지만, 과학관에서는 수학이나 암호학과 같은 형식과학 및 공학이나 의학과 같은 응용과학에 대한 자료들도 함께 다루는 경우가 많다.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시민과학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접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물원[편집]
동물원(動物園, Zoo)은 일정한 시설을 갖추어 살아있는 동물(좁은 의미에서는 육상동물)을 사육하고 관람시키는 곳. 아쿠아리움도 동물원에 해당하며 협회도 같고, 행정적으로도 같이 취급한다. 펭귄, 물개, 돌고래, 양서류, 파충류 등 몇몇 동물은 아쿠아리움과 동물원이 겹치기도 한다.
동물원은 동물의 보호와 번식, 연구를 꾀하고 일반인에게는 관람을 통하여 동물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동물에 대한 애호 정신을 기르면서 오락 및 휴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동물을 모아 기르거나 번식시킨다.
수족관[편집]
수족관(水族館, Aquarium)은 물속에 사는 생물을 모아 놓고 기르는 설비. 물에 사는 생물을 그들의 생태 조건에 적합한 환경 속에서 기르고 진열하여 그들의 생태나 습성 등을 여러 사람이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 자세한 내용은 어항 문서 참조.
네이버에서 수족관을 검색하면 이 어항과 횟집에 관련된 내용만 잔뜩 나온다. 해당 사이트에서 3번 항목에 대한 내용을 찾고 싶다면 아쿠아리움으로 검색해야 한다.
최초의 수족관은 해양 생물학자 잔 빌프뢰파워(Jeanne Villepreux-Power)가 개발했으며, 최초의 아쿠아리움은 박물학자 필립 고스(Philip Gosse)가 선보였다.
육상식물을 용기에 담아 키우는 것은 테라리움, 동물을 육성, 관찰하기위해 식물 등을 심어 서식환경과 비슷하게 꾸민 것을 비바리움, 습지식물 등을 심고 물이 흐르거나 고인 환경을 조성하는 팔루다리움 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다.
식물원[편집]
수족관(植物園, Botanical garden)은 식물의 전시에 중점을 두는 공원 및 정원, 유원지와는 다르게 식물원은 박물관의 일종으로, 식물의 수집과 연구에 좀 더 중점을 둔다. 연구 목적 이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진기한 식물을 가꾸어 교육과 감상에도 이용하고 있으며, 관광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외에 농업이나 공업 등의 산업 용도로 활용되는 식물원도 있다. 특히 멸종 위기 식물을 보전하도록 지정된 식물원들은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복원 프로젝트들을 맡아 시행하기도 한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움직이며 귀여움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별다른 지식 없이 돌아다녀도 재미있는 동물원이나 수족관과는 달리, 식물은 대단히 정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식물원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과 식물에 대한 흥미가 필요하다. 그렇게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식물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따분해 하는 경우가 많다. 관광이 메인인 경우가 많은 동물원과는 달리 식물의 수집과 연구가 주 목적인 만큼 재미나 즐거움보다는 감상이나 관찰 등 학술적인 부분에 목적을 두고 방문하는 것이 추천된다.
박물관 관람[편집]
박물관 같은 곳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정말 같이 갔을 때 굉장히 즐거울 수 있으나, 별 관심없는 친구를 데려가면 둘 다 제대로 관람할 수 없다. 본인은 제대로 관람하고 싶어도 지루해 하는 친구한테 미안해지기 때문. 특히 한국에선 박물관을 매우 지루하기만 한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더욱 그렇다. 수학여행이나 소풍, 여행사 등에서 박물관에 단체로 갈 때에는 관람료가 적어지는 장점이 있으나, 그 이상으로 제대로 관람하지 못하게 되어 사실상 손해. 따라서 박물관에 갈 때,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지 않은 사람을 데려가느니 차라리 혼자가서 PDA 타입의 자동 안내장치를 대여하는게 더 나은 관람 방법이다.
박물관을 관람할 때는 반드시 인터넷 등을 통해 해당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추천한다. 미리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 시간과 장소, 이용 요금 등을 분명하게 알아보자. 카메라 사용이 허용되는 경우와 금지되는 경우, 촬영은 허용되나 플래시만 금지된 경우 등, 박물관의 특성에 따라 관람 조건이 매우 상이할 수 있다. 사립박물관이나, 기타 메이저급이 아닌 박물관의 경우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있거나, 일반적인 박물관의 운영시간과 차이가 있거나, 이용료가 좀 비쌀 수도 있으니 헛걸음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국공립/사립을 막론하고 개중에는 공간이 좁아 유물 전시도 벅차 이용이 불편하거나, 다른 박물관 같으면 전체 전시내용 중 하나의 코스 정도만 차지할 분량 혹은 그 이하 수준 정도만 진열해 놓고 박물관 간판을 걸어놓는 형편 없는 데도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 실망도 작아진다. 전자는 국립공주박물관 구관 (현, 충남역사박물관), 후자는 대전선사박물관이 대표적인 곳이다.
박물관 관람시에는 해당 전시물들에 대한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눈요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관람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박물관 홈페이지에서는 박물관 관련 자료나 전시품 목록, 사진, 배치도 등을 제공하니 이를 이용해 잘 알아보고 가자. 인터넷 백과사전이나 나무위키에서 관련된 항목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귀찮아도 이런 걸 잘 알아보고 가야 박물관에 가서 허무해지지 않는다.
관람 시 또 하나 주의할 점이라면, 박물관 안내판에 쓰여 있는 설명을 100%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어느 박물관이나 관람객이 많이 찾는 걸 싫어하는 경우는 없고, 그러다 보면 사실을 다소 과장하기도 하기 때문. 물론 유사 역사 수준은 아니고 충분한 근거를 보여주지 않는 채 주장하는 수준이지만,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소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으면 있을수록 오히려 더욱 경계해야 하며, 이런 점은 다큐멘터리도 비슷한 부분이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로, 정말 심각한 경우에는 박물관 안내판에 쓰여 있는 설명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도 상당하니 박물관 관람 전에는 최소한 필히 전시물들이 무엇인지라도 제대로 알고 가는 것이 좋다.
박물관은 대부분 월요일에 휴관한다.[2]
역할[편집]
사회, 문화적 역할[편집]
박물관은 인류문화와 자연에 대한 기록을 가능한 한 원형의 상태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윤리적 책임이 있다. 대중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소장품을 통해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환경요인의 변화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여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박물관은 그 사회를 반영하고 문화 앞에 사회적 불평등을 감속시키면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존경받는 예술가와 손잡고 획일 되거나 공적 가치가 부여된 것이 아닌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시키는 구실을 한다. 또한 문화의 요지로서 후원자 그룹, 자원봉사자, 프로젝트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박물관 업무에 실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비공식교육기관으로서 정규적인 교육기관이 각종 문화 행사와 활동이 용이하도록 박물관의 시설과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 공동체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행할 수 있으며 도서관, 극장 과 같은 문화공간을 문화의 하부 구조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경제적 역할[편집]
현재 박물관은 관광사업의 컨텐츠 중 하나로서 지역 경제를 회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정치적 역할[편집]
일반 대중의 자긍심과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을 고양하고 전통적 문화 가치를 함양할 수 있다.[3]
여담[편집]
박물관은 일정한 요금을 요하는 곳도 있고, 무료 관람이 가능한 곳도 있다. 또, 어떤 박물관은 특정한 날이나 요일에 무료 관람을 허가한다. 박물관은 보통 수익을 요하거나, 일반인을 상대로 전시물을 판매하지 않는다.
상시 박물관이 아니지만 코엑스나 킨텍스에서 여는 기간 한정 전시회도 박물관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옛 건축물이나 유적도 전시실 건물에 진열되지 않았을 뿐 박물관이다. 경주시나 로마 같은 곳은 도시 곳곳에 유물과 유적이 널려있기에 도시 전체를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통 한 나라의 국력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소위 강대국일수록 크고 아름다운 박물관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대인배이기까지 하면 관람료와 시설 이용료가 무료가 된다. 단, 이 경우 분명 자기 나라의 박물관인데 타국의 문화재가 더 많이 있는 풍경을 매우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이 두곳은 한때 제국주의 국가로 이름을 떨친 나라의 중앙 박물관이라 그런지 전세계에서 약탈해온 물건이 대부분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그나마 프랑스 작가의 작품과 왕실 유물이 비교적 있으나, 대영박물관은 없다. 그래서 "장물창고", "도둑의 소굴"이라며 까이기도 한다.
이런 박물관을 가진 국가에서 흔히 하는 변명으로 '그래도 이런 귀한 문화재들을 우리 나라에서 소중히 보관해 준 공로는 인정해 달라. 원래 국가에 그대로 뒀다간 훼손되었을 문화재도 많지 않느냐?'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그럼 해당 국가에 반환하고 그 문화재를 보존 관리할 인력과 돈을 지원해주면 되지 않느냐?'란 반박이 가능하다.[2]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