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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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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江邊)은 의 가장자리에 잇닿아 있는 또는 그 부근을 말한다. 하천을 조망할 수 있는 강변 지역의 자연 친화적인 주거지역을 천세권이라고 부른다.

노들강변[편집]

옛 노래책에 수록된 노들강변 악보와 삽화

「노들강변」은 1930년대에 널리 유행한 신민요로서 음계는 경기 민요에서 많이 쓰이는 솔・라・도・레・미의 경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취입 당시는 3/4박자의 왈츠풍 리듬으로 반주가 이루어졌으나 경기 민요 가수들에 의해 불리면서 세마치장단으로 연주되었다.

형식은 3절로 된 유절 형식(有節形式)이며 1절은 32마디로 되어 있다. 가사는 세상의 한을 물에 띄워 보내려는 심정을 읊은 것인데, 슬픈 노랫말과 달리 음악은 경쾌한 느낌이어서 달관한 듯한 무상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노들강변」의 '노들'은 한자로 쓸 때 '노돌(老乭)'이라고 하는데 서울의 노량진을 가리키는 말이다.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란 뜻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한강은 조선 시대부터 구역마다 서로 다른 별칭이 있었던 것 같다. 뚝섬에서 옥수동 앞쪽을 동호, 동작동 앞쪽을 동작강, 노량진 앞쪽을 노들강, 용산 앞쪽을 용호 또는 용산강, 마포 앞쪽을 마포강이라고 불렀다.

1934년에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박부용 노래로 오케레코드사에서 취입된 이 곡은 오케 문예부 편곡으로 오케선양악단이 반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곡은 박부용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조모란, 김인숙, 이진홍 등 당시 경・서도 소리 가창자들이 김계선, 한성준, 고재덕 등의 반주에 맞춰 취입할 만큼 민요권에서 사랑을 많이 받아온 노래이다.

광복 이후에도 경기 민요 명창들에게 널리 불렸으며, 이 과정에서 템포도 느려지면서 초기의 빠른 왈츠풍 리듬이 세마치장단으로 바뀌었다.

1930년대 만들어진 대부분의 신민요는 양악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양악기와 국악기가 섞인, 일종의 퓨전 국악 밴드로 연주되는 등 전통적인 통속민요에 비해 양악적 특성이 강한 곡들이 많았다. 그런데 「노들강변」은 경기 민요의 하나로 인식되어 경기 명창들에 의해 널리 불릴 만큼 전통적인 특성이 잘 반영된 곡으로 평가받고 있고 경기 명창들에 의해 불리는 과정에서 더욱 전통적 특성이 더욱 강해진 몇 안 되는 신민요 중 하나이다.

또한 「노들강변」은 193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당시 신민요라는 신생 장르를 형성시키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최초의 히트곡이라는 점에서 신민요 역사상 아주 중요한 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들강변 전문

노돌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나 볼가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미드리로다

푸르른 저긔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돌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멧번이나 지여갓나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미드리로다

푸르른 저긔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돌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녕으로

재자가인 앗가운 몸 멧멧치나 데려갓나

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녀서

이 세상 싸인 한이나 두둥 실구서 가거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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